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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뜨로츠키주의인가 레닌주의인가(17)
글쓴이 하르팔 브라르 E-mail send mail 번호 219
날짜 2011-03-21 조회수 2041 추천수 131
파일  1300645983_6부.hwp

  

























6부










집단화에 대하여















“오직 우리가 실천상에서 농민들에게 토지에 대한 공동의, 집단적인, 상호 협력적인, guqed조합 경작의 잇점들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면 .... 그 수중에 국가권력을 쥐고 있는 노동계급은 실제상에서 농민들에게 그것의 정책의 올바름을 입증할 것이고 광대한 농민 대중들의 실제적이고 영속적인 추종을 확보할 것이다.”    ―레닌










“... 하나의 구호의 선언은 농민층이 사회주의를 향해 대중적으로 전환하는 것을 야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적어도 하나 이상의 환경이 이것을 위해 필요한데, 즉, 농민층의 대중들이 선언된 구호가 올바른 것임을 확신해야만 하고 그들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집단농장들은 힘에 의해 수립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리석고 반동적일 것이다.”





                                                            ―스탈린






























18장





집단화





(집단화에 대한 스탈린의 글들에 대한 서문으로 쓰여짐)




















쏘련에서 집단화의 문제는 언제나 가장 논쟁적인 주제였다―쏘련 내에서 그리고 밖에서. 그리고 그것은 농촌에서 사회주의의 물질적 기초를 건설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집단화의 일반적 중요성 때문에 그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일반적으로 집단화의 중요성에 대한 몇몇의 언급들을 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이 기회를 집단화에 대한 당의 레닌주의적 노선으로부터의 두 가지 일탈들―우익과 ‘좌익’적 일탈―을 다루는 것으로 삼을 것인데 그 일탈들에 대해 당의 노선은 승리하기 위해서 매우 격렬한 투쟁 속에서 싸워야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모든 나라의 부르주아지의, 그리고 그것의 노동계급운동에서 대리인들, 뜨로츠키주의자들, 수정주의자들, 사회민주주의자들, 그리고 개량주의자들, 모든 색깔과 색조의 반동들의, 쏘련에서 집단화에 반대하는 격앙된 울부짖음들이 단지 위장된―그리고 어떤 경우들에는 공공연한―자본주의의 혹은 더 정확하게는 그것의 복고의 옹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A. 집단화의 일반적 중요성










(1) 첫째로, 집단화는 농민층의 관점에서 거대한 중요성이 있는데 왜냐하면, 소규모 농민농장은 불가피하게 압도적인 다수의 농민 대중의 파멸, 궁핍 그리고 빈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 근거에 대한 레닌의 몇몇의 선언들이 있다:










“소규모 농장에서는 빈곤으로부터 탈출구는 없다.” (레닌, 선집, 8권, p.195)





“상품 생산 하에서 소농체제는 대중들의 빈곤과 억압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 (레닌, 선집, 6권, p. 60)





“우리가 우리의 소규모 농장들을 옛 방식으로 계속 경작한다면, 심지어 자유로운 토지에 기초한 자유로운 시민들로서라도 계속 경작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불가피한 파멸에 직면할 것이다.” (레닌, 선집 6권, p.370)





“오직 공동의, 협동조합의, 상호협력적인 노동을 통해서만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이 우리를 끌어들이고 있는 난국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레닌, 선집 8권, p.193)





“우리는 대규모의 모범 농장들에서의 공동의 경작으로 넘어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으로부터, 러시아가 처해 있는 진정으로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 탈출구는 없다.” (레닌, 선집, 6권, p. 371)










(2) 두 번째로, 오직 집단화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국가권력을 쥐고 있는 노동계급은 농민층의 광범한 대중들의 영속적인 추종을 확보할 수 있다. 오직 집단화를 통해서만 노동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체제에서 농민층의 주요 대중에 대한 그것의 지도력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오직 우리가 실천 상에서 농민들에게 토지에 대한 공동의, 집단적인, 상호협력적인, 협동조합적인 경작의 잇점들을 보여줄 때만, 우리가 상호협력적인 협동조합 농장을 수단으로 하여 농민을 돕는 데 성공할 때만, 국가권력을 그 수중에 쥐고 있는 노동계급은 실제적으로 농민에게 그 정책의 올바름을 입증할 것이고 실제적으로 농민층의 광범한 대중들의 현실적이고 영속적인 추종을 확보할 것이다.” (레닌, 선집, 8권, p.198)










(3) 소규모 농민 농장이 지속되는 한, 자본주의의 복고의 위험은 모든 위험들 중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것인데 왜냐하면 “쏘비에트 정권은 두 개의 반대되는 토대들, 즉, 자본주의적 요소들을 파괴하는 대규모 사회주의 산업에 대해 그리고 자본주의 요소들을 발생시키고 있는 소규모의, 개인적 농민 농장에 대해, 계속적으로 오랫동안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탈린, 저작집, 13권, p.176)





여기에 레닌이 이 점에 대해 말한 것이 있다:










“우리가 소농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한, 공산주의보다는 러시아에서 자본주의를 위한 보다 확실한 경제적 기초가 있다. 이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도시에서의 생활과 비교하여 농촌에서의 생활을 주의깊게 관찰한 사람은 누구나 우리가 자본주의의 뿌리들을 잘라내지 못했고 내부의 적의 토대, 기초를 침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후자는 소규모 생산에 의존하는데 그것을 침식하는 단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인데, 즉, 나라의 경제를, 농업을 포함하여, 새로운 기술적 기초 위에, 현대의 대규모 생산의 기술적 기초 위에 놓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초가 되는 것은 오직 전력 뿐이다. 공산주의는 쏘비에트 권력 더하기 나라 전체의 전기화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라는 소규모 농민의 나라로 남아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명확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는 세계적 규모에서만이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자본주의보다 더 약하다. 모두가 이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고 있고 우리는 우리의 경제적 토대가 소농의 토대로부터 대규모 산업의 토대로 변형되도록 할 것이다. 오직 나라가 전기화될 때만, 오직 우리의 산업, 우리의 농업, 우리의 수송체제가 현대의 대규모 산업의 기술적 기초 위에 놓여질 때만, 우리는 최종적인 승리를 획득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소규모 생산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를 계속적으로, 매일, 매시간, 자연발생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발생시키고 있다.”










(4)마지막으로 집단농장은 개인주의적 농민층을 집단주의의 정신으로, 사회주의의 정신으로, 재주조하고 그리하여 그것을 노동계급에게 더 가깝게 데려오기에 가장 좋은 매개이다. 그것들은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의 끈이 강화되어서 농민층을 노동계급에게 더 가깝게 데려오고 그리하여 계급들의 제거와 폐지를 위한 길을 닦는 유일한 매개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혹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맑스주의자가 아니고, 레닌주의자가 아니고 ‘농민 철학자’일 뿐인데 그는 앞을 보는 대신에 뒤를 본다.” (저작집 9권, P.222)










그리고 왜 집단농장이 농민층을 집단주의 정신으로 재주조하는 데 가장 적합한 매개라는 것인가? 왜 그것들은 계급들의 폐지를 위한 길을 닦는 매개인가? 대답은 그것들이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에 금속의, 새로운 기술적 장비에 기초한 그리고 집단노동에 기초한 끈을 수립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소규모 경작자를 재주조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끈이다. 여기에 레닌 동지가 이 맥락에서 말한 것이 있다:










“소규모 경작자의 재형성, 그의 전체적인 정신과 습관들의 재주조는 몇 세대에 걸치는 작업이다. 소규모 경작자에 관하여, 이 문제는 풀릴 수 있는데, 그의 전체적인 정신은 건강한 노선들을 가질 수 있는데 즉, 오직 물질적 토대에 의해, 기술적 수단에 의해, 농업에서 대규모로 트랙터들과 기계들을 도입함에 의해, 대규모의 전기화에 의해서만이다. 그것이 소규모 경작자를 근본적으로 그리고 거대한 속도로 재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농민층을 재주조하기 위한, 그것을 노동계급에게 더 가깝게 데려오기 위한, 모든 계급들의 폐지를 위한 필요한 조건들을 창출하기 위한 레닌주의적 계획이다. 이 레닌주의적 계획은 혹자가 듣기에, 그것을 위한 물질적 토대를 건설함이 없이 인민의 마음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 하는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매우 자주 제기되는 어리석고 하찮은 반동적인 유토피아들에 완전히 대립되는 것이다. 레닌의 계획은 다른 한편으로, 농민층을 재주조하는 유일한 길, 즉, 이러한 재주조를 위해 필요한 물질적 조건들을 창출함에 의해 그러한 길을 보여준다. 레닌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인민의 마음 속에 바로 건설될 수 없다. 그것은 물질적 기초를 갖고 있다. 일부 ‘사회주의자들’이 쏘련에서 집단화와 산업화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레닌의 이러한 혁명적 가르침을 무시함에 의해서이다.





자, 위에서 간략하게 집단화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농업의 집단화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농민층의 적들, 노동계급의 적들 그리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적들이라는 것을 명확히 이제는 볼 수 있다.





이제 당의 집단화에 대한 레닌주의적 노선으로부터의 두 가지의 일탈로 넘어가자.















B. 집단화에 대한 당의 레닌주의적 노선으로부터의 두 가지 일탈들










첫 번째 일탈―‘좌익적’(뜨로츠키주의적) 일탈










간략하게 ‘좌익적’(뜨로츠키주의적) 일탈은 다음의 말들로 요약될 수 있다: 그것은 전체의 농민층에서 단지 자본주의의 복고를 위한 도구만을 본다. 그것은 농민층의 기본적 대중을 믿을 수 없는 반동적인 대중으로서만 간주하고 그리하여 농민층의 기본적 대중과 동맹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의 ‘불화’를 옹호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분리된 하나의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믿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뜨로츠키주의자들에 의해 옹호된 정책들의 모험주의적 특징을 설명한다. 이 모험주의 하나만으로도 뜨로츠키와 지노비예프가 1925년 12월의 당 14차 대회에서 완전한 규모의 집단화를 당에게 강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이유를 설명한다.





물론 당은 이 모험주의적 정책을 거부했는데 명확하게 되어야할 이유들을 간략히 말하겠다. 집단화의 문제들에서 뜨로츠키주의적 모험주의(그것은, 그렇지 않으면 비어있고, 싫증나고 그리고 의미없은 생활을 채워주기 위해 흥분시키는 어떤 것을 항상 바라보는 소부르주아에 대한 특별한 호소를 갖고 있다)에 대한 당의 거부 이후로, 뜨로츠키주의자들은 집단화의 정책이 너무 늦게 채택되었고 볼세비키 당과 스탈린이, 쿨락들이 1928년에 쏘비에트 국가에 대해 곡물을 팔기를 거부함에 의해 쏘비에트 정권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려고 시도하기 까지, 그리하여 도시들과 적군에게 굶주림과 기아의 광경을 제공하기까지 쿨락의 야만스런 본성을 깨닫지 못했다는 전설을 퍼뜨렸다. 이 비판은 쏘련에서 뜨로츠키주의 반대파와 연관되어 있다.





이 비판은 그러나 총체적으로 토대가 없는 것이고 실제적 현실을 희망섞인 생각으로 뜨로츠키주의가 대개 대체하는 것에 토대를 두고 있다. 뜨로츠키주의는 그것이 구체적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뜨로츠키주의이기를 중지할 것이다. 쿨락들이 “가장 야만스럽고 잔혹하고 야만적인 착취자들”이라는 것과 그리하여 제거되어야만 했다는 것은 거의 뜨로츠키주의의 발견이 아니다. 여기에 레닌이 쿨락들을 묘사한 것이 있다:










“쿨락들은 가장 야만스럽고 잔혹하고 그리고 야만적인 착취자들인데 그들은 다른 나라들의 역사에서 몇 번이고 지주들, 짜르들, 사제들 그리고 자본가들의 권력을 복구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쿨락들은 인민의 소수이다. ... 이 흡혈귀들은 전쟁 동안에 인민이 겪은 결핍에 토대를 두고 부유하게 되었다. 그들은 곡물과 다른 생산물들의 가격을 올림에 의해 수천수만의 루블을 긁어 모았다. 이 거미들은 전쟁에 의해 파멸한 농민들을 희생하여, 그리고 굶주린 노동자들을 희생하여 살이 쪘다. 이 거머리들은 근로자들의 피를 빨아들였고 도시와 공장들의 노동자들이 더 굶주리게 될수록 더 부유하게 되었다. 이 흡혈귀들은 토지들을 그들의 수중에 모았고 또 모으고 있다. 그들은 빈농들을 계속 노예화하고 있다.”










계급으로서 쿨락들을 제거하는 것 그리고 농민층의 집단화가 사회주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은 또한 뜨로츠키주의의 발견이 아니다. 이미 레닌 동지의 저작들로부터 인용된 글들은 이것에 대한 충분한 증거이다.





그리하여 의문이 떠오른다: 집단화의 거대한 중요성의 그리고 계급으로서 쿨락들을 제거하는 것의 필요성의 견지에서, 왜 집단화가 보다 일찍 시작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왜 쿨락들이 실제로 그랬던 것보다 더 일찍 제거되지 않았는가? 왜 볼세비키 당은 8차 당대회까지 거슬러 가면, 계급으로서 쿨락들의 제거의 정책을 선언하는 것보다 쿨락들의 착취적 경향을 제한하는 정책을 선언했는가? 왜 당은 1926년에 쿨락들의 제거를 위한 뜨로츠키주의자의 요구들을 거부했는가?





그 대답은, 당이 이 공세의 성공적인 결과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준비함이 없이 쿨락들에 반대하는 공세를 취했다면, 그러면 그 공세는 가장 무모한 모험주의로 입증되었을 것이고 틀림없이 실패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실패는 쿨락들의 강화를 의미했을 것이다. 보다 이른 시기, 즉, 1926-7년에 쿨락들에 반대하는 공세는 틀림없이 실패했을 것인데 왜냐하면 당시에 쏘비에트 농촌에는 쿨락들에 반대하는 단호한 투쟁을 위한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 국영 농장들과 집단 농장들의 광범한 망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에 쏘비에트 국가는 국영농장들과 집단농장들의 사회주의적 생산에 의해 자본주의적인 쿨락 생산을 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스탈린 동지가 고려 중에 있는 지점에 대해 말한 것이 있다:










“1926-1927년에 지노비예프-뜨로츠키주의 반대파는 쿨락들에 반대하는 즉각적인 공세의 정책을 당에 부과하려고 그들의 최선을 다했다. 당은 그 위험한 모험을 시작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심각한 사람들은 장난삼아 공세를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쿨락들에 대한 공세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은 쿨락들에 반대하는 연설들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또한 지노비예프-뜨로츠키 반대파가 당에 부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쿨락들에 반대하는 심술부리기(a policy of pinpricks)정책과도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쿨락들에 반대하는 공세를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쿨락들을 분쇄하고 계급으로서 그들을 제거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러한 목표들을 설정하지 않는다면, 공세는 단순한 선언, 심술부리기, 미사여구가 될 것이고 결코 실제적인 볼세비키의 공세가 아닐 것이다. 쿨락들에 반대하는 공세를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위해 준비해야만 하고 그리고 나서 쿨락들을 치고 그들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호되게 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우리 볼세비키들이 실제적인 공세라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약 5년 전 혹은 3년 전에 이러한 공세를 조금이라도 성공의 전망을 가지고서 할 수 있었는가? 아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물론 1927년에 쿨락들은 600,000,000푸드1)가 넘는 곡물을 생산했고 그중 약 130,000,000 푸드가 농촌 지구 밖에서 시장에서 팔렸다. 그것은 고려되어야만 하는 심각한 권력이었다. 우리의 집단농장들과 국영농장들이 그 당시에 얼마를 생산했는가? 약 80,000,000푸드였고 그중 약 35,000,000푸드가 시장에 보내졌다(매매할 수 있는 곡물). 여러분 스스로 판단해 보라, 우리가 당시에 쿨락의 생산고와 쿨락의 시장용 곡물을 우리의 집단농장들과 국영농장들의 산출고와 시장용 곡물에 의해 대체할 수 있었는가? 명백히 우리는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들 하에서 쿨락들에 반대하는 결정적인 공세를 시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했었을 것인가? 그것은 틀림없는 실패, 쿨락들의 위치의 강화 그리고 곡물이 없는 상태로 남겨진다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노비예프-뜨로츠키 반대파의 모험주의적인 선언들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쿨락들에 반대하는 결정적인 공세를 할 수 없었고 해서도 안 되었던 이유이다.”










그러면 이것은 왜 쿨락들에 대해, 왜 이 “피를 빠는 자들”에 대해, 이 “거미들”에 대해, 이 “거머리들”에 대해 그리고 이들 “흡혈귀들”에 대해 인내하였고 당이 그들의 즉각적인 제거의 정책보다는 그들의 착취적 경향들을 제한하는 정책을 추구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은 왜 당이 8차 대회에서 쿨락들의 착취적 경향들을 제한하는 정책을 채택했고 왜 이 정책이 신경제정책(NEP)의 도입의 그 시기에 11차 당대회에서 다시금 선언되었는지, 왜 이 정책이 당의 15차 대회에 의해 확인되었고 그리고 왜 당이 1929년 여름까지 줄곧 이 노선을 추구했는지 이유를 설명한다. 스탈린 동지가 올바르게 언급한 대로, “구호의 선언은 농민층이 대규모로 사회주의를 향하여 전환되는 것을 야기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C. 농민층과의 “불화”로 인해 재난을 초래하는 뜨로츠키주의자의 처방 대(對) 농민층의 주요한 대중들과 “견고한 동맹”을 통하여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레닌주의적 정식










‘좌익’적(뜨로츠키주의적) 일탈이 당에서 우위를 점했다면, 그 결과는 쏘련에서 자본주의의 복고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뜨로츠키주의자들이 옹호하고 있던 것은 농민층의 주요한 대중에 반대하는 즉, 중농들, 농민층의 60%에 반대하는 내전의 선언에 다름아니었기 때문이다. 중농층에 반대하는 이러한 내전의 선언은 쏘비에트 정권을 농민층의 주요 대중과의 “적대적인 충돌”로 가져가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적대적인 충돌”은 쏘비에트 정권의 존재 자체에 대한 매우 심각한 위험을 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당이 뜨로츠키주의에 의해 옹호된 이런 모험주의적 ‘정책’을 거부한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뜨로츠키주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농민층의 주요한 대중을 향한 이 모험주의적인 정책에 대한 뜨로츠키주의의 옹호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농민층의 혁명적 역할을 부정하고 하나의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뜨로츠키의 악명 높은 ‘영구혁명’ 이론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이 ‘영구혁명’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이 농민층의 주요 대중들을 지도하여 사회주의 건설의 경로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이 문제에 대해 뜨로츠키주의의 몇몇의 선언들이 있다:










“압도적인 농민 대중이 있는 후진적인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정부의 위치에서 모순들은 오직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무대에서 국제적 규모에서만 풀릴 수 있다.” (뜨로츠키, “1905년”-서문), 그리고:





“유럽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의 직접적인 국가적 지원이 없다면, 러시아의 노동계급은 스스로를 권력에 유지할 수 없고 일시적인 지배를 지속적인 사회주의 독재로 변형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한 순간도 의심할 수 없다.” (뜨로츠키, “우리의 혁명”). 그리고:





“예를 들면 ... 혁명적인 러시아가 보수적인 유럽에 직면하여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희망없을 것이다.” (저작집, 3권 1부 p.90).










모든 현실에 직면하여 날아다니면서 그렇게 완고하게 위의 반동적인 견해들을 고집한 뜨로츠키가 만약 실천으로 옮겨지면 그의 반동적인 환상을 현실로 바꾸었을 정책을 옹호했을 것임이 그러면 놀라운 것인가? 만약 뜨로츠키의 노선을 따랐다면, 러시아의 노동계급은 의심의 여지없이 스스로를 권력에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농민문제에 있어서 당의 레닌주의적 노선을 반대하는 데서 뜨로츠키의 동맹자인 지노비예프는 또한 노동계급과 중농층 간의 동맹을 믿지 않았다. 대신에 레닌주의로부터 이탈하여 그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조건 하에서 중농층의 중립화를 옹호했다. 당시에 코민테른의 의장이었던 지노비예프가 1925년 1월 18일에 <프라우다>에서 이 쟁점에 대해 쓴 것이 여기 있다:










“코민테른의 모든 당들에게 절대적으로 공통적인 많은 과제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은 ... 농민층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다. 전 세계의 농업인구 중에는 세 개의 층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에 의해 획득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맹이 될 수 있고 되어야만 한다(농업 프롤레타리아트, 반프롤레타리아트―소규모 보유 농민―그리고 노동을 고용하지 않는 소농층). 농민층의 또 하나의 계층이 있는데(중농들) 그들은 우리에 의해 최소한 중립화되어야 한다.” (스탈린, 선집 7권 pp. 381-2에서 인용한 것).










뜨로츠키주의 반대파의 주요한 경제학자인 프레오브라젠스키는 심지어 농민층을 최대한 착취되어야 하는 대상으로서 사회주의ㅡ산업을 위한 “식민지”라고 선언하는 정도까지 나아갔다.





반대파의 또 한 사람의 지도자인 스미르노프는 공공연하게 중농들과의 “불화”를 옹호했다:










“우리는 우리국가의 예산이, 이 50억 예산의 더욱 큰 부분이 산업으로 흘러들어야만 한다는 그런 방식으로 수정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틀림없는 파멸을 초청하는 것 보다는 중농들과의 불화를 견디는 것이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미르노프, 로즈스코-시모노프스키 지구 당협의회에서의 연설, 1927, 스탈린 전집 10권, p.262에서 인용됨).










혹자는 얼마나 깊은 틈이 뜨로츠키주의를 레닌주의로부터 갈라놓는지를 깨닫기 위해서 뜨로츠키주의 반대파의 위에서 인용된 선언들과 레닌 동지의 글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부분을 비교하기만 하면 된다.





뜨로츠키주의가 “틀림없는 파멸”를 회피하는 최선의 수단으로서 “중농들과의 불화”를 옹호한 반면, 레닌주의는 반대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적 역할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공고화를 보장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 농민층의 기본적 대중과의 동맹을 옹호한다.





“...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레닌은 말했다, “최고의 원칙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그것의 지도적 역할과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다.” (러시아 공산당(볼)의 전술에 대한 보고,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의 연설, 1921년 7월 5일, 전집 32권, p.466)





이리하여 레닌주의에 따른다면, “중농들과의 견고한 동맹”없이는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하다(레닌, 1919년 3월 18일의 러시아공산당(볼)의 8차 대회에서의 개막연설을 보라, 전집 29권, p.125).





그러나 뜨로츠키주의에 따르면, “중농들과의 불화”가 “틀림없는 파멸”을 회피하는 유일한 수단이다(스미르노프, 위의 인용을 보라).





더구나 중농층은 1927년에 전체 농민층의 60%를 구성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농층과의 불화는 그들을 쿨락들의 수중으로 몰아넣고 쿨락들을 강화시키고 빈농들을 고립시킬 것이었고 말을 바꾸면, 뜨로츠키주의에 의해 옹호되는 성격의 불화는 농촌에서 내전을 시작하는 것, 그리고 농촌에서 쏘비에트 지배를 매우 위험하게 약화시키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뜨로츠키주의의 논리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의도들이다. 여기에 스탈린 동지가, 반대파의 바람들과 (그것의 의도들) 중농층과의 불화라는 그것의 정책의 불가피한 재난스러운 결과 사이의, 불일치를 묘사한 것이 있다:










“나는 반대파들이 이 모든 불행을 위하여 고의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고발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파가 희망하고 있고 또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중농층과의 불화라는 반대파의 정책으로부터 불가피하게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결과들의 문제이다.”





“크릴로프의 우화 ‘신선과 곰’에서 곰에게 일어났던 것과 동일한 것이 여기서 반대파에게 일어나고 있다. (웃음). 그의 친구인 신선의 머리를 바위 덩어리로 부수려는 데 있어서 곰의 의도는 그를 끈질긴 파리로부터 구제하는 것이었다. 곰은 가장 우호적인 동기에 의해 유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의 우호적인 동기는 우호적인 것과 거리가 먼 행동을 초래했고, 그것 때문에 신선은 그의 목숨을 지불해야 했다. 물론 반대파는 혁명이 오직 좋기만을 희망한다. 그러나 이것을 획득하기 위해 그것은 우리의 모든 건설사업의 와해 속에서 혁명의 완전한 패배를, 노동계급과 농민층의 완전한 패배를 결과할 그런 수단들을 제안하고 있다.”





“반대파의 ‘강령’은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의 동맹의 파괴를 위한 강령, 모든 우리의 건설 사업의 와해를 위한 강령, 산업화의 사업의 와해를 위한 강령이다.” (저작집 10권, p. 265)















D. 1929년과 농민층의 집단화로의 전환










그러나 1929년 하반기까지 상황이 극적으로 변화했고 쿨락들에 반대하는 결정적인 공세를 위한 그리고 계급으로서 그들의 제거를 위한 모든 전제조건들이 나타났다. 이 전제조건들은 무엇이었는가? 그것들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국영농장들과 집단농장들이 시장용 생산물에 관하여 쿨락들의 농장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1929년에 집단농장들 자체로 29,100,000 센트널2)의 곡물을 생산했는데 그중 12,700,000이 시장용 곡물이었다. 1927년에 쿨락들을 타격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던 이유, 그리고 1929년에 쿨락들에 반대하는 공세가 실천가능한 현실이 되었다는 이유를 설명함에 있어서, 이것이 스탈린 동지가 1927년 이후로 발생한 변화들을 특징지었던 것인데 그것은 당이 쿨락들에 반대하는 뜨로츠키주의적 선언들과 미사여구들에 반대하면서 쿨락들에 반대하는 실제적인 레닌주의적 공세를 떠맡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지금 어떠한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쿨락들을 타격하기 위한, 그들의 저항을 분쇄할, 계급으로서 그들을 제거할, 그리고 그들의 산출고를 집단농장들과 국영농장들의 산출고에 의해 대체할 적절한 물질적 토대를 갖고 있다. 1929년에 집단농장들과 국영농장들에서 생산된 곡물은 400,000,000푸드(1927년에 쿨락 농장들의 총 산출고보다 200,000,000푸드가 적은)에 달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다. 1929년에 집단농장들과 국영농장들이 시장용 곡물로서 130,000,000푸드보다 많게(즉, 1927년에 쿨락들보다 더 많은) 공급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1930년에 집단농장들과 국영농장들의 총 산출고는 900,000,000푸드의 곡물(즉, 1927년의 쿨락들의 총 산출고보다 많은)보다 적지 않게 달할 것이고 그들의 시장용 곡물의 산출고는 400,000,000푸드보다 적지 않을 것(1927년에 쿨락들이 공급했던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많은)임을 여러분은 알고 있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 문제가 어떠한가이다. 동지들.





“거기에서 여러분은 우리 나라의 경제에서 발생한 변화를 보고 있다.”





“이제, 여러분이 보듯이, 우리는 쿨락들의 산출고를 집단농장들과 국영농장들의 산출고에 의해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토대를 갖고 있다. 지금 우리의 쿨락들에 반대하는 단호한 공세가 부정할 수 없는 성공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쿨락들에 반대하는 단지 무익한 연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참되고 단호한 공세를 하려 한다면, 쿨락들에 대한 공세가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최근에 쿨락들의 착취적 경향들을 제한하는 정책에서 계급으로서 쿨락들을 제거하는 정책으로 옮겨간 이유이다.” (저작집, 12권, pp.175-6)










둘째, 쏘비에트 국가와 산업이 이제는 집단농장 운동을 신용의 편의와 기계들과 트랙터들의 공급을 통하여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1927-28년에 쏘비에트 정부는 집단농장들을 금융지원하기 위해 76,000,000루블을 할당했다. 1928-29년에 170,000,000루블 그리고 1929-30년에 473,000,000루블이 할당되었다. 추가적으로 65,000,000루블이 집단화 기금을 위하여 동일한 기간에 할당되었다. 그것들의 공급물자를 200,000,000루불 만큼 증가시켰던 집단농장들에 특권이 부여되었다. 집단농장들을 위해 봉사했던 트랙터 센터의 7,000대의 트택터들을 고려하지 않고, 국영농장들에 의해 집단농장들에 주어졌던 트랙터들을 이용한 도움을 고려하지 않고도, 집단농장의 들판에서 사용을 위하여 국가는 총 400,000 마력을 가진 30,000대보다 적지 않은 트랙터들을 공급했다. 1929-30년에 집단농장들은 곡물 10,000,000 센트르에 달하는 종자대부와 종자 원조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집단농장들은 7,000개 이상의 기계와 트랙터 스테이션들의 수립에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직접적인 조직적 원조에 의해 크게 도움을 받았다.





이 모든 조치들의 결과는 3년 만에 집단농장들의 수확면적의 40배 증가 그리고 동일한 3년 동안 즉, 1927-29년 동안에 집단농장들의 곡물 산출고의 50배 증가(시장용 부분에서 40배 이상의 증가와 더불어)였다.





셋째, 농민층의 사회주의를 향한, 집단화를 향한 전환. 이것은 우연적인 혹은 자연발생적인 방식으로 갑작스레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여러해 동안에 걸친 고된 투쟁을 통해서 준비되어야만 했는데, 그 속에서 당은 인민들을 집단화로 가는 길에서 차례차례로 장애물들을 제거하면서 이끌었다. 여기에 스탈린 동지가 1929년 하반기에 수백만의 빈농과 중농들의 강력한 대중적인 집단농장 운동이 발생했던 기초위에서 발전의 과정을 묘사한 것이 있다:










“농민층의 사회주의로의 전환은 갑작스레 시작되지 않았다. 더욱이 그것은 갑작스레 시작될 수 없었다. 진정으로 당은 15차 대회에서 이미 집단화의 구호를 선언했지만 그러나 구호의 선언은 농민층이 대규모로 사회주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야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최소한 하나 더 많은 환경이 이것을 위하여 필요한데 즉, 농민층 대중들이 선언된 구호가 올바른 것임을 확신해야만 하고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이 전환은 점차적으로 준비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발전의 전체 과정에 의해 그리고 우리의 산업의 발전의 전체 과정에 의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농업을 위하여 기계들과 트랙터들을 공급하는 산업의 발전에 의해 준비되었다. 그것은 쿨락들과 단호하게 싸우는 정책에 의해 그리고 쿨락 농장을 빈농과 중농 대중들의 통제 하에 놓았던 1928년과 1929년에 그들이 떠맡았던 새로운 형태의 우리의 곡물 조달의 과정에 의해 준비되었다. 개인주의적 농민을 집단주의적 방법으로 훈련시켰던 농업의 협동조합들의 발전에 의해 그것은 준비되었다. 개인적 농장에 대한 집단적 형태의 농장의 잇점들을 농민들이 확인했던 집단농장들의 망에 의해 준비되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쏘련 전역에 퍼져있던 그리고 농민들이 그들 스스로 현대 기계들의 잠재력과 우월성을 확신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현대적 기계들로 장비된 국영농장들의 망에 의해 준비되었다.”





“우리의 국영농장들을 단지 곡물의 공급의 원천으로서만 간주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실제적으로 국영농장들은 그들의 현대적 기계들을 가지고, 그들이 부근의 농민들에게 주는 도움에 의해, 그리고 그들의 농장의 미증유의 발전에 의해 농민 대중들의 전환을 촉진하고 집단화의 길로 그들을 데려오는 지도적 힘이었다.”





“거기에서 여러분은 1929년 하반기에 시작된 그리고 우리나라의 생활에서 커다란 변화의 시기를 예고한 수백만의 빈농과 중농들의 대중적인 집단농장운동이 떠올랐던 기초를 보고 있다.” (저작집 12권 pp. 288-289, 16차 대회에 대한 보고)










전술한 것으로부터 볼세비키 당의 집단화에 대한 정책은 레닌주의적 정책이고 유일한 올바른 정책이었다는 것이 완전히 명백하다. 뜨로츠키주의에 옹호된 정책이 가장 위험하고 절망적인 모험주의로 가득 차 있고 그리고 만약 이 정책이 실행되었다면, 그 결과는 틀림없는 파멸이었을 것임은 똑같이 명백하다. 우리는 이제 볼세비키당이 1926-7년에 쿨락들을 타격하기 위한 뜨로츠키주의의 요구들을 거부함에 있어 천번이나 올바랐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또한 당은 쿨락들에 반대하는 공세를 시작함에 있어서 필요한 기초를 이미 준비했던 1929년에 천번이나 올바랐다. 당은 이제까지 추구되어 왔던 쿨락들의 착취적 경향들을 제한하는 정책으로부터 계급으로서 쿨락들을 제거하는 정책으로 옮겨가는 데 있어서 1929년에 완전하게 정당화되었다.





계급으로서 쿨락들의 제거는 뜨로츠키주의자들이 생각했듯이 단순한 행정적 사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최고의 경제적 중요성을 갖는 문제였다. 쿨락이라는 계급은 뜨로츠키주의자의 포고에 의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구체적인 경제적 조치들(이미 위에서 개요을 말한 유형의)을 취함에 의해 그리고 필요한 경제적 및 정치적 조건들을 준비함에 의해서만 제거될 수 있었다. 스탈린 동지가 말했듯이:










“행정적 조치들에 의해, GPU를 통하여, 명령을 내리고, 도장을 찍고 그리고 그것을 해결한다는 것에 의해 쿨락들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동지들은 틀렸다. 그것은 쉬운 방식이지만 그것은 효과가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쿨락들은 경제적 조치들에 의해 그리고 쏘비에트 법률에 따라서 패배시켜야 한다. 그러나 쏘비에트 법률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물론 이것은 쿨락들에 반대하는 어떤 행정적 조치들을 취하는 것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행정적 조치들은 경제적 조치들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저작집, 10권, p.319)










더욱이 쿨락들에 반대하는 전면적인 공세를 시작하기 위한 때는 올바라야만 했다. 이 점에서의 어떠한 오류도 놀이삼아 쿨락들에 반대하는 공세를 하는 것을 의미했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존재 자체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을 의미했다. 레닌주의 지도력의, 볼세비키 전술의 주요한 특징들의 하나는 사회주의의 적들에 반대하는 공세를 시작하기 위한 올바른 때와 타당한 근거를 선택하는 것이다. 스탈린 동지의 적절한 말로써 이것을 살펴보면:










“볼세비키 정책의 기술은 때와 장소의 조건들에 관계없이, 그리고 대중들이 지도부의 이러한 혹은 저러한 조치들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관계없이 당신의 모든 소총들로써 무차별적으로 사격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볼세비키 정책의 기술은 가장 신속하게 최대의 결과들이 획득되어야만 하는 전선에 화력을 집중하기 위하여 모든 환경들을 고려하고 때와 장소를 선택할 능력이 있다는 것에 놓여 있다.” (저작집, 11권, p. 55)










그러나 당이 이미 쿨락들의 착취적 경향들을 제한하는 정책으로부터 계급으로서 쿨락들을 제거하는 정책으로 옮겨갔을 때,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14차 대회(1926-27년)에 이어지는 바로 그 시기에 탈쿨락화를 옹호했던 뜨로츠키는 계급으로서 쿨락의 제거라는 당의 정책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그의 <쏘련공산당의 당원들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1930년 3월 23일)에서 뜨로츠키는 당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집단농장들을 그들이 실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것들과 일치시켜라3)





“... 탈쿨락화의 정책을 포기할 것”





“... 오랜 기간 동안 쿨락들의 착취적 본성을 억제하는 것을 유지할 것” 그리고





“쿨락들에 관계된 지도적 원칙은 철의 ‘계약 체제’(그것 아래서 쿨락들은 국가에 고정된 가격으로 그들의 생산물의 일정량을 공급해야만 했다―하르팔 브라르)이어야만 한다.”










이것이 특징적인 뜨로츠키주의, 그것의 진정으로 엉터리의, 반변증법적인 그리고 반동적인 내용을 가진 뜨로츠키주의이다: 1926년에는 탈쿨락화 그리고 1930년에 탈쿨락화 정책의 포기!!





만약에 이러한 엉터리가 충분하지 않다면, 뜨로츠키는 말하자면 1933년에 새로운 판에 의해 그것을 보충했다. 집단화가 이미 주요하게 달성되었을 때, 뜨로츠키는 그의 <총탄>의 호들에서 국영농장들이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것들의 해체를, 집단농장들이 허구적이라는 이유로 다수의 집단농장들의 해체를, 그리고 쿨락들을 제거하는 정책의 포기를 요구했다. 산업의 영역에서 뜨로츠키는 양보의 정책으로의 수정을 그리고 많은 쏘비에트 산업의 기업들이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래의―역자) 소유자들에게 임대할 것을 요구했다.





스탈린 동지가 이 뜨로츠키주의 강령을 반혁명적이고 자본주의의 복고의 하나로서 성격지우는 데 있어서 완전히 정당했다:










“거기에서 여러분은 이들 경멸할 만한 겁쟁이들 그리고 항복자들의 강령을 가지고 있다― 쏘련에서 자본주의를 복고한다는 그들의 반혁명적인 강령!” (저작집, 13권, p.370)





이것이 ‘좌익’적인 뜨로츠키가 스스로 마스크를 벗고 그의 진정한 우익적 경향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폭로한 방식이다.





‘좌익’ 기회주의적 일탈을 다루었으니, 이제 당의 레닌주의적 노선으로부터 우익 기회주의 일탈로 넘어가자.















E. 우익 기회주의(부하린주의) 일탈










‘좌익’(뜨로츠키주의) 기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서유럽에서 승리한 혁명의 도움없이 그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쏘련이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건설한다는 것의 가능성을 믿지 않았고 그리하여 농민층의 기본적 대중과 동맹이라는 사상조차 선호하지 않았던 반면에, 우익(부하린주의) 기회주의자들은 다른 극단으로 갔는데 그들이 자본주의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쿨락까지 포함하여 전체 농민층과의 어떠한 종류의 동맹이라도 그들 스스로 찬성한다고 선언했고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조건들에서 계급투쟁의 기제를 무시하고 쿨락들이 자동적으로 “사회주의로 성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부하린, "사회주의로의 길"(스탈린, 전집 12권, p, 41에서 인용됨)]. 부하린 그룹은 사회주의의 진전과 경제의 사회주의 형태들의 발전으로 계급투쟁이 잠잠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하린 그룹에 의해 옹호된 우익 기회주의 이론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가장 심각한 위험을 제기했다. 그것의 해악은 “... 그것이 노동계급을 진정시켜서 잠들게 하고 우리나라의 혁명적 세력들의 동원된 준비성을 침식하고 노동계급을 동원해제하고 쏘비에트 정부에 반대하는 자본주의적 요소들의 공격을 촉진한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스탈린, 저작집 12권, p.41).





그리고 그것은 그러했다. 1928년 초까지 쿨락들은 신경제정책(NEP)이 그들이 예상했고 희망한 대로 쏘련에서 자본주의의 복고를 초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반대로 농촌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들의 약화와 패배를 초래하고 사회주의의 공고화를 초래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쏘비에트 정권에 반대하는 저항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1928년부터 이 저항은 가장 첨예한 형태들을 띠었다. 쿨락들의 저항은 다음 두가지 사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였다. 첫째, 자본주의 요소들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공세가 전속력으로 그리고 계획에 따라서 진행되고 있고, 쿨락들이 그리하여 압박을 느끼고 있고, 절망적으로 저항해야만 하는지 혹은 무대에서 자발적으로 사라져야만 하는지를 결정해야만 했다는 사실. 둘째, 자본주의의 요소들은 무대에서 자발적으로 떠날 바람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 스탈린 동지는 계급투쟁이 잠잠해지는 것에 관한 부하린의 우익 기회주의적인 우화를 마주하여, 다음의 결코 잊혀질 수 없는 말들을 표명했다:










“사회주의 사회가 발전하고, 노동계급의 적들을 파산시키고 반면에 우리의 적들은 침묵 속에 퇴각하고 우리의 전진을 위해 길을 내줄 것이고, 그리고 ‘예기치 않게’ 모든 사회적 그룹들이 예외 없이, 쿨락들과 빈농들이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이 ‘갑자기’ 그리고 ‘감지할 수 없게’ 투쟁이나 동요 없이 밀려오는 사회주의 사회의 파도 속에서 그들 스스로를 발견할 때까지, 우리가 전진하는 것이 상상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우화는 일반적으로 그리고 특수하게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조건 속에서 일어나지 않고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노동계급이 하나의 계급사회에서 투쟁 혹은 동요 없이 사회주의로 전진할 수 있는 경우는 결코 있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사회주의로의 전진은 착취적 요소들로 하여금 전진에 저항하도록 야기하고, 그리고 착취자들의 저항은 계급투쟁의 불가피한 첨예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계급투쟁이 2차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 노동계급이 잠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저작집 11권, p.180)










계급투쟁이 잠든다는 그리고 쿨락들이 “사회주의로 성장해 간다”는 기적에 관한 부하린의 어리석고 하찮은 우화에도 불구하고, 쿨락들은 쏘비에트 정부에 대한 심각하게 조직된 저항을 시작했다. 부하린과 그의 그룹을 제외하고 누가 쿨락들의 이해를 옹호하기 위해 당에서 머리를 내밀겠는가? 부하린주의자들은 쿨락 농장들의 쇠퇴를 쏘련에서 농업의 쇠퇴로서 제기했다. 그들은 산업의 발전속도를 늦출 것, 외국무역의 독점의 이완, 집단화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의 강등, 그리고 자본주의 요소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양보를 요구했다.





쿨락들로부터의 최초의 심각한 공격이 1928년 1월의 곡물조달 위기의 시기에 나타났다. 쿨락들은 곡물을 쏘비에트 국가에 팔기를 거부했다. 쏘비에트 정부는 1억3천만 푸드의 곡물 부족의 상황에 처했다. 어떤 예비도 결핍된 상황에서, 쏘비에트 정부는 쿨락들이 곡물을 팔기를 거부할 경우에 그들의 곡물을 징발하는 효력이 있었던 형법 107조의 적용과 같은 긴급 조치들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저기에서의 왜곡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국가에 의해 요구되는 곡물의 필수적인 공급을 쿨락들로부터 조달하는 바람직한 효과가 있었던 긴급조치들의 적용은 부하린주의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과도함’과 전투한다는 위장 하에서, 부하린주의자들은 사실상 당의 올바른 정책과 전투하는 데에 그리고 쿨락들을 옹호하는 데에 종사했다. 여기에 스탈린 동지가 부하린주의자들의 부정직한 기회주의적 속임수를 폭로한 것이 있다.










“지금 바로 부하린의 그룹에서 가장 유행하는 단어는 곡물 조달에서 ‘과도함들’이라는 단어이다. 그 단어는, 그들의 기회주의적 노선을 가리는 것을 돕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유행하는 상품이다. 그들은 자신의 노선을 위장하기를 원할 때 다음과 같이 대개 말한다: 우리는 물론 쿨락에게 가해지는 압력에 반대하지 않지만 이 영역에서 범해지고 있고 중농을 상하게 하는 과도함들에 반대한다. 그들은 그리고 나서 이 과도함들의 ‘공포들’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그들은 ‘농민들4)’로부터 온 편지와 마르코프의 패닉에 빠진 편지들을 읽고 그리고는 다음의 결론을 끌어낸다: 쿨락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정책은 포기되어야만 한다.”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올바른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과도함들이 범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올바른 정책이 아마도 포기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기회주의자들의 대개의 속임수이다: 올바른 노선을 수행함에 있어서 과도함들이 범해지고 있다는 것을 핑계로 그 노선을 폐지하고 그것을 기회주의 노선으로 대체하라. 더욱이 부하린 그룹의 지지자들은 또 다른 종류의 과도함, 더 위험하고 더 해로운 과도함―즉, 쿨락과 융합하는 방향에서의 과도함, 도시인구의 유복한 층에 대해 순응하는 방향에서, 당의 혁명적 정책을 우익 일탈자들의 기회주의적 정책을 위하여 포기하는 방향에서의 과도함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침묵한다.”





“물론 우리는 모두 그러한 과도함에 반대한다. 우리의 누구도 쿨락들에 반대하는 방향의 타격이 중농들을 상하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명백하고 그것에 대한 어떤 의심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부하린 그룹이 그렇게 정열적으로 탐닉하고 있고 우리당의 혁명적 노선을 폐기하고 그것을 부하린 그룹의 기회주의적 정책에 의해 대체하는 데 사용되는 과도함들에 대한 수단에 가장 강조점을 두어 반대한다. 아니다. 그들의 그러한 속임수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종류의 과도함도 수반하지 않았던, 당이 취한 하나의 정치적 조치를 적어도 지적해 보라. 이것으로부터 끌어내어지는 결론은 우리가 과도함과 싸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유 때문에 노선 자체를, 그것이 유일한 올바른 노선임에도, 누가 비방할 수 있겠는가?”





“7시간 노동일의 도입 같은 하나의 조치를 들어보라. 이것이 최근의 시기에 우리 당에 의해 수행된 가장 혁명적인 조치들의 하나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성격이 심오하고 혁명적인 이 조치가 자주 과도함들을, 때로는 가장 반대할 만한 종류의 과도함들을 수반하고 있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것이 우리가 7시간 노동일을 도입한다는 정책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부하린 반대파의 지지자들은 곡물 조달 캠페인 동안에 범해진 과도함들을 강조함에 있어서 그들이 어떤 곤란함을 가져오는지를 이해하는가?” (저작집, 12권, pp. 96-97)










쿨락의 이해들을 옹호함에 있어서 부하린 그룹은 당이 농민층을 향하여 군사-봉건적인 착취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고 고발하는 정도까지 나아갔다. 부하린 그룹이 반혁명적인 부르주아지의 병기고로부터 당에 반대하는 무기를 빌어 왔다는 것은 거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 당의 역사에서 나는 당이 군사-봉건적 착취라는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고 고발된 어떤 사례도 회상할 수 없다. 당에 반대하는 그 무기는 맑스주의자들의 병기고로부터 빌어온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것은 어디로부터 빌어온 것인가? 카데츠의 지도자인 밀류코프의 병기고로부터. 카데츠들이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리기를 원할 때, 그들은 대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들, 볼세비키 신사분들은 농민들의 시체 위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다. 부하린이 ‘공물’에 대한 비명을 지를 때는, 그는 밀류코프 신사들의 장단에 따라 노래하고 있는 것이고 인민의 적들의 자취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12권, p.59)










부하린의 그룹은 쿨락들에 반대하는 싸움에 반대했다. 그것은 노동계급과 전체 농민층의, 쿨락들을 포함하여, 동맹을 찬성했다. 그러나 당은 이러한 동맹에 대해 가장 강조점을 두어 반대했다.










“아니다, 동지들, 이러한 동맹을 우리는 옹호하지 않고 옹호할 수도 없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하에서 노동계급의 권력이 확고하게 수립된 때에, 노동계급과 농민층과의 동맹은, 빈농들에 대한 의존, 중농들과의 동맹, 그리고 쿨락들에 대한 싸움을 의미한다. 우리의 조건 하에서 농민층과의 동맹이 쿨락들과의 동맹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레닌주의와 공통점이 전혀 없다. 농촌에서 모든 사람들, 부자 혹은 가난한 사람을 다같이 즐겁게 하는 하나의 정책을 수행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맑스주의자가 아니고 바보인데 왜냐하면 이러한 정책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지들. (웃음과 박수). 우리의 정책은 계급 정책이다.” (스탈린, 저작집, 11권, p.52)










레닌주의는 확실히 농민층의 기본적 대중과의 견고한 동맹을 지지하는데 그러나 레닌주의에 따르면 노동계급과 농민층의 기본적 대중과의 동맹의 전체적인 목적은 노동계급의 지도적 역할을 보장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공고화하고, 계급들의 폐지를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물질적 그리고 정신적(문화적)―을 창출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레닌주의는 계급들을 폐지한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농민층의 기본적 대중과 (쿨락들을 배제하고) 견고한 동맹을 지지한다. 레닌주의는 어떤 종류의 동맹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레닌 동지가 이 주제에 대해 표명한 것이 있다: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의 협정은 어떤 것이라도 의미한다고 여겨질 수 있다. 우리가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협정은, 그것이 노동계급의 독재를 지지하고 계급들의 폐지를 목표로 하는 조치들의 하나일 때만 허용될 수 있고 올바르고 원칙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의 협정이라는 정식은 물론 쏘비에트 정권의 모든 적들과 독재의 모든 적들이 찬동하는 정식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현재는” 레닌은 말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보유하고 있고 국가를 지도하고 있다.그것은 농민층을 지도한다. 농민층을 지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첫째로 계급들의 폐지를 향한 과정을, 소규모 생산자들 지향한 것이 아니라,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 근본적이고 주요한 과정에서 방황한다면, 우리는 사회주의자들이기를 멈추고 스스로를 소부르주아지의 진영에서, 지금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첨예한 적들인 사회혁명당원들과 멘세비키들의 진영에서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부하린에 의해 옹호된 농민층과의 동맹은 중농들과 만이 아니라 쿨락들과의 동맹을 의미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적 역할을 확보하는 것,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강화하는것 그리고 계급들의 폐지를 촉진하는 것과 거리가 먼 이러한 동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적 역할의 부정, 그것의 독재의 약화, 그리고 계급들의 영구화를 초래할 것임은 거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쿨락들에 반대하는 동맹을 동시에 의미하는 중농층과의 동맹만이 계급들의폐의 방향의 길을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계급들은 착취자들에 반대하는―쿨락들과 다른 자본주의적 요소들에 반대하는―계급투쟁을 통해서만, 그리고 그들과의 동맹을 통해서가 아니라, 폐지될 수 있다.





기회주의적 정책들을 가진 부하린의 우익 기회주의 그룹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거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의 패배가 없었다면 1930년대 초반에 쏘련에서 자본주의의 복고가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부하린 그룹의 우익 기회주의자들이 ‘좌익’ 기회주의자인 뜨로츠키-지노비예프 그룹과 같이 확실하게 뿌리가 뽑혔던 것은 볼세비키 당과 그 당시 지도자인 스탈린 동지의 신용, 영광 그리고 명예였다고 말해져야 한다. 패배한 그룹들은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이어서 당에 반대하여 세력들을 결집시켰고 그리하여 그들의 반레닌주의적 그리고 우익-반동적인 본질을 드러내었다. 그 둘 간에는 강령의 형태를 제외하고는 차이가 전혀 없었다. 진실들은 ‘좌익들’의 강령이 우익들의 그것과 같이 자본주의 복고의 방향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런 의미이고 그리고 이렇기 때문에 맑스-레닌주의자들은 항상, ‘좌익들’은 또한 사실상 우익들이다라고, 주장해왔던 것이다. 여기에 스탈린 동지가 우익(부하린주의자)과 ‘좌익’(뜨로츠키주의) 기회주의자들을 특징지우면서, 그 둘 간에 공통적인 것, 즉, 상이한 경로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복고를 위한 그들 각각의 강령들을 분명히 한 것이 있다:










“우익의, 솔직한 기회주의자의 우리 당에서의 일탈의 위험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 그것이 우리 적들의 힘을, 자본주의의 힘을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에. 그들은 자본주의의 복고의 위험을 보지 않는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하에서 계급투쟁의 기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하여 자본주의에 대해 양보하는 것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우리 산업의 발전 속도를 늦출 것을 요구하고, 도시와 농촌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들에게 양보를 요구하고, 집단농장들과 국영농장들의 문제가 배후로 강등될 것을 요구하고 외국무역의 독점이 이완될 것을 요구한다 등등.”





“우리 당에서 우익적 일탈의 승리가 자본주의 세력들을 해방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입장들을 침식하고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의 복고의 기회들을 증대시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 당에서 ‘좌익적’(뜨로츠키주의적) 일탈의 위험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 그것이 우리 적들의 힘을, 자본주의의 힘을 과대평가한다는 사실에. 그것은 오직 자본주의의 복고의 가능성만을 보고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력에 의해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의 가능성을 볼 수 없다. 그것은 절망에 굴복하고 우리 당내에서 테르미도르 경향들에 대한 수다로 스스로를 위안해야만 한다.”





“‘우리가 소농의 나라에 살고 있는 한 공산주의보다는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보다 확실한 기초가 있다’라는 레닌의 언급으로부터 ‘좌익’적 일탈은, 쏘련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우리는 농민층과 함께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의 동맹이라는 사상은 진부한 사상이라는, 서구에서 승리한 혁명이 우리를 도우러 오지 않는다면 쏘련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몰락하거나 혹은 타락할 것이라는, 우리가 농민층과의 분열이라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초산업화의 환상적인 계획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쏘련에서 사회주의라는 대의는 파멸할 것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는, 그릇된 결론을 끌어낸다.”





“그리하여 ‘좌익적’ 일탈의 정책에서 모험주의가 나온다. 그리하여 정책의 영역에서 그것의 ‘초인적인’ 도약이 나온다.”





“우리 당에서 ‘좌익적’ 일탈의 승리가 노동계급이 노동계급 대중의 나머지로부터 분리를 초래할 것이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패배와 자본주의의 복고를 위한 조건들을 촉진하는 것을 초래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이들 위험들, ‘좌익적’ 그리고 우익적, 레닌주의 노선으로부터 이들 두 개의 일탈들, 우익과 ‘좌익’이 상이한 방향으로부터이지만,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본다.” (전집 11권, pp. 240-1)










유일한 차이는 ‘좌익들’(뜨로츠키주의자들)은 초‘좌익적’ 미사여구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첨언하면 다음을 서술한다.










“... 그들, ‘좌익들’이 우익들과 동일한 사회적 뿌리를 갖고 있고, 드물지 않게 레닌주의적 노선과 싸우기 위해서 우익들과 협정을 맺고 블록으로 결합한다는 것을 세상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좌익들’이 때때로 소리 높은 ‘좌익적’ 미사여구의 도움으로 그리고 우익들에 대한 가장 단호한 적수라는 자세를 취함에 의해 노동자들의 일부분을 그들의 편으로 유혹하는 데 성공하는지.”










더 나아가기에 앞서, 집단화에 대한 볼세비키 당의 레닌주의적 노선에 대해, 일반적인 부르주아에 의해 겨누어진 비판들의 대부분은 볼세비키 당내에서 부르주아 사회주의자들 즉, ‘좌익’(뜨로츠키주의자) 기회주의자들과 우익(부하린주의자들) 일탈자들의 입론의 강령들과 노선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 지나가면서 언급될 수 있다. 그것은 그밖의 다른 것이 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좌익’과 우익 기회주의자들의 강령들은 위장된 형태를 띠고 심지어 맑스주의적 술어로 표현될지라도 자본주의 복고의 강령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부르주아의 견해와 다른 한편으로는 뜨로츠키주의자들 및 부하린주의자들과 같은 ‘사회주의적’ 기회주의자들의 견해에서 일치가 나온다. 그리하여 일반적인 부르주아가 공산주의 운동에서 그의 계급(부르주아 계급)의 대표들 즉, 사회주의적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동정이 나온다. 그리하여 일반적 부르주아의 반스탈린주의와 친뜨로츠키주의가 나온다. 부르주아들은 어떤 술어가 사용되는지를 걱정하지 않는다5). 그는 자본주의의 혁명적 타도보다는 자본주의의 옹호와 보전에서 그것이 사용되는 한 심지어 맑스주의연(然)하는 술어의 사용을 거부하지 않는다. 사실 어떤 환경 하에서는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유일한 길은 맑스주의연하는 미사여구들의 사용을 통한 것인데 왜냐하면 오직 이러한 미사여구만이 노동자들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고 있던 쏘련에서, 뜨로츠키주의자들이 어떻게 공공연하게 자본주의의 복고를 요구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어떤 말을 공공연히 했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당은 물론이고 모든 노동자들의 조직으로부터 욕을 먹었을 것이고 모든 계급의식적인 노동자에 의해 완전히 경멸당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동계급의 그리고 맑시즘의 이름으로 자본주의의 복고를 위한 그들의 강령을 내놓아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그들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봉사가 놓여 있다. 그리고 여기에 노동계급과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그들의 배신이 또한 놓여 있다.















F. 힘의 사용과 집단화










우리가 언급하기를 원하는 또 하나의 문제, 즉, 집단화에서 힘의 사용의 문제가 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쏘련에서 집단화가 농민층의 다수의 의지에 반한 강제적인 집단화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날카로운 반복과 무시, 공공의 편견의 힘을 통해 획득되었는데 그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에 의해서만 아니라 스스로를 맑스-레닌주의자라고 부르는 약간의 사람들에 의해서도 믿어졌다는 것이 커다란 부끄러움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몇가지를 언급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오직 교정할 수 없는 관료주의자들―뜨로츠키주의 유형만이 아니라 일반적 부르주아들―만이 쏘련에서 집단화가 힘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혹은 되었을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다. 오직 집단화를 커다란 중요성을 가진 경제적 조치로서보다는 행정적인 관료주의적 사안으로서 간주하는 사람들만이 집단화를 이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만약 집단화가 집단화한다는 뜨로츠키주의적 행정적인 포고로 무장된 ‘하사관 프리시비예프’에 의해 성취될 수 있다면, 그러면 물론 1929년이 아니라 1926년에(뜨로츠키와 지노비예프에 의해 요구되었듯이), 더욱이 훨씬 일찍 즉, 레닌의 생전에 집단화를 할 모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경우에 우리는 뜨로츠키주의자들이 1926년에 집단화를 요구하는 데 있어서 올바랐고 반면에 레닌주의자들은 이 요구를 거부함에 있어서 틀렸다고 인정해야만 한다. 뜨로츠키주의자들은 1926년에 집단화를 요구했는데 왜냐하면 최악의 부르주아적인 관료주의적 전통을 유지하면서 집단화가 한 조각의 종이와 프러시아 하사관의 막대로 얻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당이 이 관점에서 집단화를 볼 정도로 어리석었고 이 방법들을 실행했다면 그 결과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권력에 있는 노동계급과 그들과 동맹없이는 노동계급이 오랫동안 권력의 자리를 유지할 것을 희망할 수 없었던 농민층의 기본적 대중 사이에 “적대적인 충돌”이었을 것이다. 그 효과는 내전이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틀림없는 파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은 집단화를 필수적인 경제적 전제조건없이는 달성될 수 없는 경제적 조치로 간주했다. 그리고 반복하자면, 이러한 전제조건들은 다음과 같았다:





(a) 그것이 트랙터들, 기계들 그리고 기술적 노하우를 농업에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의 산업의 발전





(b) 신용과 다른 재정적 편의와 도움을 부여할 국가의 능력





(c) 집단농장과 국영농장들이 쿨락의 생산을 대체할 수 있을 지점까지의 발전





(d) 집단농장의 발전의 문제에서 쏘비에트 농민층에 대한 선진 노동자들에 의해 주어지는 지도(노동자의 여단들과 노동자 선전가들의 형태로)





(e) 공급과 시장 협동조합들 그리고 생산자들의 협동조합을 매개로 하여 그들 사이에 협동적인 공동체적 생활을 불어넣는 것을 통해 대중들을 교육한다는 레닌주의적 정책을 당이 수행하는 것.





위의 모든 조치들은 노동계급과 농민층과의 끈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없다면 집단화에 대한 모든 시도들이 ‘바르샤바의 3월’과 같이 끝났을 것이고, 그것이 없다면 집단화가 자발적 성격을 잃어버리고 차례로 집단화에 대한 죽음의 조짐을 보였을 것이다. 집단화에서 성공들은 바로 집단화의 자발적 성격 때문에 성취되었다. 강제가 무대에 나타난 순간에(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언급될 것이다) 집단농장들은 녹아없어지기 시작했고 스탈린을 인용하면 “집단농장들에 대한 최대의 확신을 어제는 갖고 있었던” 농민들의 부분이 “그것들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집단농장 동지들에 대한 답변)










사실은, 집단화에 찬성하는 운동은 농민층의 압도적 다수에 의해 매우 열정적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은 상당한 여세를 몰았는데 1929년 말에는 농민층의 주요 대중들 사이에 있는 어떤 불만족도 “집단농장이 쏘비에트 정부의 집단농장 정책 때문이 아니라 쏘비에트 정부가 기계들과 트랙터들을 농민들에게 공급하는 것에 관하여 집단농장운동의 성장과 보조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탈린, 저작집 12권. p.137)










비록 집단농장운동이 전체적으로 자발적인 성격이었지만, 이것은 개별적인 경우들에서 열정이 과도한 당활동가들과 모든 종류의 ‘좌익적’ 왜곡하는 사람들에 의한 당 정책의 왜곡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왜곡들은 다음의 성격을 가졌다:





(a) 집단농장운동의 자발적 성격에 관한 원칙의 위반, 집단농장들이 녹아없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위반. 이러한 위반이 제거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왜곡이 교정되지 않았다면, 쏘련에서 집단화에서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쏘련에서 집단화가 강제적으로 달성된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에서 부르주아 비판가들이 얼마나 틀렸는가를 보여줄 따름이다. 정확히 반대이다.





(b) 쏘련에서 조건들의 다양함을 고려하는 것을 요구하는 원칙의 위반. (쏘련은 3개의 지구 그룹들로 나뉘어 있었는데 각각에 대해 주요하게는 집단화를 완수하는 근사한 날짜들이 고정되었다.)





(c) 당시에 집단농장 체제에서 주요한 고리로서 집단농장운동의 협동조합형태를 규정하는 규칙의 위반. 농업의 협동조합단계를 건너뛰어 직접적으로 꼬뮨적 단계로 나아가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세 가지의 각각의 왜곡들은 ‘집단화의 비율과 집단농장운동의 발전을 원조하기 위한 국가의 조치들’이라는 제목의 1930년 1월 5일에 채택된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결정의 위반속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위반들이 정치국, 중앙위원회 그리고 스탈린이 많이 혐오하고 반감을 가진 것이었다는 것은 거의 말할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당의 정책의 이러한 왜곡들이 표면에 나타난 순간에 그것들을 교정하는 조치를 밟은 것은 중앙위원회와 스탈린 자신이었다. 혹자는 이것을 확신하기 위해―뜨로츠키주의자와 다른 부르주아적인 정반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스탈린 동지의 기사 ‘성공에 현혹되어’(1930년 3월 2일) 그리고 ‘집단농장 동지들에 대한 답변’(1930년 4월 25일)을 읽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면 여기에 스탈린동지가 집단화에 대한 당 정책의 이러한 관료주의적 왜곡들과 관련하여 그리고 그것을 저주하여 쓴 것이 있다.










“하사관 프리시비예프의 ‘정책’과 집단농장 발전에서 자발성의 원칙에 의존하는 그리고 지역적 특징을 고려하는 당 정책 사이에 어떤 공통된 것이 있을 수 있는가? 명확히 그들 간에는 공통된 것이 전혀 없고 있을 수 없다.” (“성공에 현혹되어”)










그리고 나아가: “이러한 왜곡들, 이러한 집단농장운동에 대한 관료주의적 포고, 이러한 농민들에 반하는 가치없는 위협들에 의해, 우리의 적들을 제외하고 누가 이익을 얻는가?” (앞의 책)





그리고 더욱 더: “집단농장들은 힘에 의해 수립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리석고 반동적일 것이다.” (앞의 책)










스탈린은 집단농장의 조직화에 대한 예비적 작업을 “집단농장운동에 대한 관료주의적 포고, 집단농장들의 성장에 대한 서류 상의 결의들, 서류상에서 집단농장들의 조직화들―아직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그 ‘존재’가 허풍떠는 결의들의 무더기에서 선언되는―”에 의해 대체하려는 시도들을 탄핵했다. (앞의 책)





그러나 바로 약간의 지역적 왜곡들―당에 의해 신속하게 제거되었던 왜곡들―이 발생했다는 것 때문에 이것이 당의 집단화에 대한 노선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그러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올바른 정책은 약간의 왜곡들이 등장함이 없이는 결코 실행된 적이 없다. 오직 기회주의적 협잡꾼만이 올바른 정책에 대한 약간의 왜곡들이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범해졌다는 이유 때문에 포기되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 왜곡들로부터 끌어내어져야 할 타당한 결론은 우리가 그것들과 싸워야 하고, 우리가 그것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지, 우리가 올바른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한번 당의 집단화에 대한 정책이 레닌주의적이고 올바른 정책이었다는 것이 확인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올바른 레닌주의적 공식에 기초하는 정책이었다: ‘빈농에 의존하고, 중농과 견고한 동맹을 수립하고, 결코 단 한 순간도 쿨락들에 반대하는 투쟁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오직 이 공식을 적용함에 의해서만 농민층의 주요 대중이 사회주의 건설의 경로로 끌려 올 수 있고 실제로 그러했다. 당의 정책은, 그것이 ‘좌익’(뜨로츠키주의자)에 반대하는 그리고 우익(부하린주의자)에 반대하는 일관되고 원칙적인 투쟁을 수행했기 때문에, 당이 앞서 나가려는 사람들에 반대하는(뜨로츠키주의자들) 것뿐만 아니라 뒤쳐져 가는 사람들에 반대하는(부하린주의자들) 무자비한 투쟁을 수행했기 때문에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에 다른 쟁점들에서처럼 집단화에 대한 당의 정책의 성공의 비밀이 있다.





언급된 유형의 몇몇의 왜곡들을 반대하면서, 집단화는 농민층의 기본적 대중의 능동적 협동과 열정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계급의 국가가 반혁명적 폭력의 사용에 연루되어 있고 사회주의의 전진을 정지시키기 위한 그들의 절망적인 시도들에서 정부와 당 활동가들에 대한 테러와 살인에 호소했던 쿨락들과 착취자들에 대한 혁명적 폭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쏘비에트 국가가 쿨락들과 다른 자본주의적 요소들의 반동적인 폭력에 맞서기 위해 혁명적 폭력을 사용했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힐난할 수 있는가? 반대로 쏘비에트 국가가 주요한 혁명적 과제들의 하나를 수행하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가 바로 그 실패를 힐난하는 것이 더욱 정당한 것이 아닌가? 우리의 계급의 적, 쿨락들에 대한 혁명적 폭력의 사용에서 무엇이 틀렸는가? 그것이 뜨로츠키주의자들, 수정주의자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자들로부터 희극적인 울부짖음을 야기한다는 것은 그들이 노동계급운동의 대열에서 부르주아지의 요원들이라는 사실의 더 한층의 증거를 제공할 뿐이다. 예를 들면 여기에 고려 중인 주제에 대해 즉, 반동들에 대한 승리한 혁명적 당의 혁명적 폭력의 사용에 대해 엥겔스가 쓴 것이 있다.










“... 승리한 당(혁명에서)이 헛되이 싸웠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무기가 반동들에게 영향을 주는 테러의 수단을 통해 이 지배를 유지해야만 한다. 부르주아지에 대한 무장한 인민의 이러한 권위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파리꼬뮨이 하루라도 지속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반대로 그것이 충분히 자유롭게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그것을 힐난해야만 하지 않는가?” (엥겔스, “권위에 대하여”,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에 의해 인용됨, p.74).










 이 신사들(뜨로츠키주의자들과 다른 부르주아 사회민주주의자들), 이들 반스탈린주의자들(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반레닌주의자들인데 왜냐하면 스탈린은 레닌의 가장 충실한 생도였기 때문이다)은 혁명적 천재의 위에서 인용된 언급들―모든 단어가 가장 심오한 의미로 가득 찬―에서 의미의 깊이에 대해 숙고해본 적이 있는가? <노사과연>










번역:편집부











1) 편집자주 : 쏘련의 식량단위 1푸드는 16.38kg. 






2) 편집자주 : centner,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50kg에 해당하는 무게 단위.






3) 편집자 주 : 집단농장을 곡물의 생산자이며 조달자로서만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계급동맹을 무시하고 있다. 원문은 “Bring the collective farms into line with their real sources of support"






4) 편집자 주: 문맥 상 ‘농민들’을 가장한 쿨락들의 글이라는 의미로 보면 될 것 같다.  






5) 바로 뜨로츠키주의 반대파가 쏘련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불만족하는 비프롤레타리아 계급들의 감정들을 반영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적들은 반대파에게 칭찬들을 퍼부었고 그중에서 다음의 것은 단지 몇몇의 사례들이다. 여기에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지도자이고 쏘련에서 자본주의의 복고를 옹호하는 ‘러시아’의 멘세비키들의 지도자인 단이 반대파에 대해 말해야만 했던 것이 있다:





“거의 단어 하나까지 사회민주주의적 비판을 반복하는, 현존하는 체제에 대한 그들의 비판에 의해, 볼세비키 반대파는 ... 사회민주주의의 적극적인 강령의 수용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 노동자들의 대중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공산주의 노동자들의 사이에서도 또한 반대파는, 주의깊게 다루어지면 쉽게 사회민주주의적 결실을 낳을 수 있는 사상들과 감정들의 학교를 배양하고 있다.” (조찌알리스티체스키 베스트니크, no. 17-18).





여기에 밀류코프의 반혁명적 부르주아 당의 중앙기관지인 뽀슬레드니에 노보스찌가 반대파에 대해 말한 것이 있다:





“오늘날, 반대파는 독재를 침식하고 있는데 반대파의 모든 새로운 간행물은 점점 더 ‘무서운’ 단어들을 말하고 있는데, 반대파는 스스로 지배적인 체제에 대한 증가하는 폭력적 공격들의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당분간 우리가 그것을 정치적으로 불만족하는 인구의 광범한 부분을 위한 대변자로서 그것을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하다.” (뽀슬레드니에 노보스찌, no. 1990, 스탈린 저작집 9권, pp.56-7에서 인용됨)





그리고 나아가:





“오늘날 쏘비에트 권력의 가장 무서운 적은 알아채지 못하게 그것에 살금살금 다가서서 모든 측면에서 그것의 촉수들로 그것을 움켜쥐고 그것이 파괴당했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쏘비에트 반대파가 수행하고 있는 것은―우리가 아직 떠오르지 못한 준비의 시기에서 불가피하고 필수적인―바로 이러한 역할이다.” (뽀슬레드니에 노보스찌, no. 1983, 스탈린, 앞의 책에서 인용됨)





해설은 불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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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7 뜨로츠키주의인가 레닌주의인가(17) 하르팔 브라르 2011-03-21 2041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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