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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피델의 고찰-나토의 불가피한 전쟁
글쓴이 피델 카스트로 E-mail send mail 번호 218
날짜 2011-03-20 조회수 3155 추천수 143
파일  1301069903_F.hwp

  



































나토의 불가피한 전쟁 (2011년 3월 2일)




















이집트와 튀니지와는 달리, 리비아는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인간 개발 지수(Human Development Index)가 가장 높고 수명도 가장 길다. 또한 리비아 정부는 교육과 보건에 특별한 신경을 쓰고 있으며, 문화 수준도 단연코 이웃 국가들보다 높다고 하겠다. 리비아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리비아 민중은 식량이나 기본적인 복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리비아의 야심찬 생산 시설 건설과 개발 프로젝트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을 수입해야 했던 것이 문제다.





이집트, 튀니지, 중국, 여타 나라에서 수백, 수천의 노동자들이 리비아로 들어 왔다. 리비아는 막대한 소득이 있었고, 다른 부유한 국가의 은행에 넣어둔 빵빵한 현금고를 가지고, 그 부유한 국가들로부터 소비 상품부터 고도화 병기에 이르기까지 갖가지를 수입했다. 결국 바로 그 수출국들이 지금은 인권의 이름으로 리비아를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대중 매체들이 뿌려대는 거대한 허위의 캠패인은 세계 여론을 혼란에 빠뜨렸다. 리비아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나 결국 진실은 이미 널리 퍼진 거짓에서부터 분리될 것이다.





텔레수르(TeleSUR)1) 같은 진지하고 명망있는 방송국들은 고맙게도 리비아의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리비아의 여야 양쪽에 보도팀과 촬영팀을 특파했다.





본국과 연락이 끊어진 상태에서도 성실한 외교관들은 살해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며 목숨을 내놓은 채 밤낮으로 경과 보고를 위해 상황을 관찰했다. 하지만 제국과 그 동맹들은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진실을 교란하기 위해 교묘한 언론 술책을 썼다.





의심의 여지없이 벵가지 반군의 젊은이라면, 남자고 여자고, 베일을 썼건 안 썼건,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비록 인구 95%가 이슬람교도이긴 하지만, 리비아는 아랍 국가로, 그 부족 구성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부유한 선진국의 소비 경제를 떠받치는 방대한 석유 생산량을 감당하고 있는 아랍 세계에 혁명의 물결이 퍼지는 것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제국주의와 나토는 리비아의 내전을 명분삼아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이번 사태 초기부터 발표된 미국의 입장은 분명히 이러한 맥락에서 봐야 한다.





환경(미국 정치 환경―역자)이 더 유리해질 일은 거의 없다. 공화당 우파는 말솜씨(레토릭) 좋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지난 11월 선거 때 큰 타격을 입혔다.





극단주의 티파티의 이념적 지지를 받는 파시스트 "임무 수행" 그룹은 대통령의 선택지 대부분을 지워 버렸고, 사상 최악을 기록하고 있는 재정 적자과 통제를 벗어난 공공 부문 부채 상승으로 인해 오바마의 건강 보험 프로그램과 불안한 경제 회복 계획이 위험에 처하게 됐다.





미국은 스스로 만들어 낸 거짓과 혼란의 급류를 타고 UN인권위원회 내에서는 목표한 바를 모두 이루었지만, 리비아 군사 개입을 위한 안보리 안건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찬성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허나 군사 개입에 대해서 힐러리 국무장관은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 하겠다고 한치의 의심도 남기지 않는 어조로 웅변했다.





예상한 대로 리비아가 내전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이 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취할 수 있었던 조치도 아마 국방장관더러 불난 집에 기름 한통 끼얹으라고 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것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희대의 연기자들도 절대 상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반군의 지도자들이 몹시 복잡한 상황에서 어떠한 외세의 군사 개입도 거부한다고 선언하면서 봉기했다는 사실이다.





리비아 국민 의회 대변인 압델 아피스 고가는 2월 28일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1000km 떨어진 도시에서 다양한 매체의 기자들을 만나 "리비아 나머지 지역도 리비아 인민에 의해서 해방될 것이다." 고 발표하였다.





고가는 반군 점령 도시들을 대표하는 "국민 의회"의 진영을 발표하면서 "트리폴리 해방을 위해서 무력도 필요할 것이다." 라고 확신했다.





또한 고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보이지만, 그 때문에 우리의 영토, 영해, 영공이 침해받는 걸 원하진 않는다." 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AFP 통신은 그날 늦게 이렇게 논평했다. "자주 통치에 대한 반군 지도자들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동시에 벵가지의 리비아 인민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벵가지의 각국 기자들에게 이러한 의견들이 전해졌습니다."





같은 날 벵가지 대학교의 정치학 교수인 알베이르 임네이나는 "리비아에는 아주 강력한 민족주의적 감정이 흐르고 있습니다." 라고 진술했다.





그녀는 2003년 미국이 민주주의 도입이라는 미명 하에서 이라크 지역 전체를 단계적으로 침략했지만, 그 가설은 진실 앞에서 무너져 버리고 말았던 사실을 인용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게다가 이라크의 전례가 아랍계의 모든 사람들을 질리게 했지요."





"불안의 극심한 고통 속에 이라크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수순을 따르는 것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아요. 미국인들이 들어와서 결국엔 카다피를 그리워하게 될까봐 걱정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혁명이고 앞으로 뻗어 나가는 것도 우리에게 달린 일이죠."





이 방송이 나간 지 몇시간 되지 않아 미국의 두 주요 일간지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는 황급히 이 주제에 대한 새로운 기사를 찍어냈고, 독일의 DPA도 다음날 3월 1일 다음과 같이 받아썼다. "오늘자 미국발 소식에 따르면, 리비아 야당은 카다피에게 충성을 다하는 군대에 대해 서방 국가들이 전략적 지점에서 공습을 가해주었으면 하고 요청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리비아 국민 의회 내에서도 토론이 있었다고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가 인터넷 버전을 통해 보도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이러한 토론은 곧 카다피 재집권 가능성에 대한 반군 지도자들 점증하는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UN의 틀 안에서 공습이 이루어질 경우, 이것은 국제 개입을 뜻하지 않는다." 라고 [뉴욕타임즈]는 리비아 국민 의회 대변인을 인용했다.





"국민 의회는 변호사, 학자, 판사, 리비아 사회의 주요 인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DPA 통신은 이렇게 전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서방의 지원 없이 카다피 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면 오래 버틸 수 없으며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임을 깨달은 반군 지도자들을 인용했습니다."





DPA가 공업, 농업, 건설 노동자들, 실물 생산에 연결된 이들, 젊은 학생들과 시위대 안에서 발견되는 전투원들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은 점은 충격적이다.





어째서 반군을 '미국과 나토의 공습을 이끌어 내 리비아인들을 죽이길 원하는 사회 주요 인사들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몰고 가려 하는가?





언젠가 진실은 알려질 것이다. 이라크에서 사람들이 죽고, 고향땅이 무너지며, 수백만의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거나 이민을 가야만 했던 끔찍한 경험을 유창하게 서술해주는 벵가지 대학교의 정치학 교수 같은 사람들이 있는 한!





3월 2일 EFE 통신은 고가를 다시 섭외했다. EFE의 방송에서 고가의 발언은, 내가 보기에는, 전날의 발언을 긍정하면서도 부정하는 듯 한 인상이었다. “3월 2일, 벵가지의 리비아 반군 지도자들은 오늘 UN 안보리에 카다피 정권의 ‘용병에 대하여’ 공습을 요청했다.”





“우리 군은 수비적 입장에 서 있으므로 용병에게 공격을 가할 수 없다.” 벵가지에서의 기자회견에서 고가는 이렇게 말했다.





“전략적 공습은 우리가 거부하는 국제 개입과는 다른 것이다.” 이 대변인은 이렇게 강조했다. 여전히 리비아 사태에 대한 외세의 군사 개입을 반대하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숱한 제국주의 전쟁 중에 이와 유사한 게 있을까?





1936년 스페인 내전? 1935년 무쏠리니의 에티오피아 침공? 2003년 조지 부시의 이라크 전쟁? 아니면 1846년의 멕시코에서부터 1982년 포클랜드에까지 미국이 주도한 수십번의 아메리카 침공 전쟁 중에서?





아! 물론, 우리 쿠바에 대한 피그스만 침공과 이에 이어진 50년 간의 경제봉쇄도 빠뜨려서는 안되겠다. 오는 4월 16일은 피그스만 침공에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날이다.





베트남 전쟁까지 포함해서, 이 모든 전쟁 중에서 수백만이 목숨을 잃고 숱한 정당화 수단을 소모하고 가장 냉소적인 방법이 군림했던 전쟁은 과연 어느 것인가?





리비아에서 일어날 피할 수 없는 군사 개입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내 생각에 취재가 아주 잘 된 것으로 보이는 AP 통신의 오늘자 방송을 소개하겠다. "일부 나토 국가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1990년대 발칸반도에서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했던 것을 모델 삼아 리비아에도 비행 금지령을 내리는 계획을 고려하고 있다고 외교 정보원은 말했습니다"










결론은 이렇게 난다. "민감한 정세를 고려하여 익명 처리를 요청한 이 외교 정보원은, 현재 고려 중인 선택지는 서구 군사 동맹이 1993년 UN의 위임을 받아 보스니아 영공에 설정한 비행 금지 구역이나, 1999년 UN과는 무관하게 나토가 실행한 코소보 공습 정도를 모델로 삼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해서 쓰겠다.




















나토의 불가피한 전쟁 2편(2011년 3월 3일)















리비아 대령이던 28살 카다피는, 이웃 이집트의 압델 나세르의 영향을 받아, 1969년 국왕 이드리스 1세를 내치고 중요한 혁명적 개혁을 이루었다. 농지 개혁, 석유의 국유화 등이 그것이다. 늘어나는 소득은 경제 사회적 개발에 재투자됐고, 특히 교육과 보건 서비스가 드넓은 사막 위에 좁디 좁은 경작지를 가지고 사는 소수의 리비아 인민들을 위해 중요하게 취급됐다.





"화석수(아주 오래된 지하수―편집자2))"라는 넓고 깊은 바다가 그 사막 아래에 있었다. 경작지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미래엔 그런 대수층3)이 석유보다 더 중요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부분적으로는 이슬람 국가를 특색짓는 열정적인 종교적 신념이 아랍 국가에 잔존하는 강력한 부족적 요소들을 대신하였을 것이다.





리비아 혁명은 합법적이고 정치적인 조직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창안하고 도입했으며, 쿠바도 기본적으로 그것들을 존중하였다.





우리는 리비아 지도력이라는 개념에 관한 어떠한 논평도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나토의 기본적인 걱정거리는 리비아가 아니라 아랍계에 퍼지고 있는 혁명의 물결임은 분명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것을 저지하려 들 것이다.





요근래,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봉기가 일어나기 전까진, 미국과 나토 연합국들의 관계가 몹시 좋았던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리비아와 나토 사이의 고위급 회담에서 나토 측의 누구도 카다피와 어떠한 트러블도 없었다. 리비아는 고품질 석유와 가스, 포타슘의 안정된 공급처였으니까. 20세기 초에 리비아와 유럽 열강들 사이에 있었던 일4)로 인한 껄끄러움들은 모두 극복되었다.





석유 시추와 송유 같은 전략적 부문들에서 리비아는 외국의 투자를 받았다.





많은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가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IMF는 기꺼이 한 역할을 차지했다.





카다피를 칭찬한 아즈나르(역: 1996~2004의 스페인 수상)의 행동은 논리적으로 볼 때 진실성이 없어 보였고, 아즈나르의 뒤를 이어 블레어(영국의 전 수상―역자), 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의 총리―역자), 사르코지(프랑스의 대통령―역자), 사파테로(스페인의 전 수상―역자)는 물론 내 친구인 스페인 국왕까지 과거에 카다피를 냉소했다. 그들은 즐거워했다. 





내가 하는 소리가 단지 '이건 좀 아닌데...' 정도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왜 저들이 카다피를 헤이그의 국제 사법 재판소의 법정에 세우려고 하는지 나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해 보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저항 중인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에게 종일 사격을 가한 것을 들어 카다피를 고발하려고 한다. 하지만 리비아 정부가 가지고 있던 고성능의 진압장비와 무기들이 사실은 미국, 영국을 비롯해 카다피의 저명한 친구들이 제공해준 사실은 왜 해명하지 않는가?





나는 현재 리비아 침략과 점령을 정당화하기 위해 쓰이고 있는 냉소와 거짓말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바이다.





내가 카다피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1년 5월이다. 그가 살고 있던 집을 레이건이 습격한지 15년 째 되던 해이다. 그는 그 집이 있던 자리로 나를 데려가 그 흔적을 보여 주었다. 당시 그의 집은 폭격기로부터 직접 포격을 당해 대부분 파괴되어 있었고, 당시 공격을 받아 그의 세살박이 딸이 목숨을 잃었다. 로널드 레이건이 살해한 것이다! 나토나 UN인권위나 안보리와의 일체의 협약도 없이!





그 전에 리비아를 갔던 때가 1977년이었는데, 그때는 그 땅에 혁명 과업이 진행된지 8년째 되던 해였다. 트리폴리를 갔었고, 세브하의 일반 인민 의회에도 참가했고, 화석수를 끌어 올려 관개로 사용하는 농업 실험도 구경했다. 벵가지에 갔을 때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전투를 겪은 전설적인 나라였다. 당시 전체 인구가 600만이 채 안 되었고, 그 막대한 화석수나 석유의 매장량도 알려지기 전이었다.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식민 지배에서는 모두 해방된 상태였다.





우리는 앙골라에서 미국과 콩고, 남아공 정부가 부족 노선을 이용해 조직한 용병 군단과 15년간 싸웠다. 1975년 미국의 지시를 따르는 이 용병 군단은 앙골라를 침략해 앙골라 계급 해방을 저지하고 기동화기를 이끌고 르완다 접경지대까지 도달했다. 이 침략 과정에서 상당한 쿠바 교관들이 사망했고, 우리는 신속히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5).





쿠바 세계주의자들과 앙골라 부대가 협력하여 싸움으로써 남아공 군은 당시 남아공이 점령중이던 나미비아 땅까지 밀려나지만, 이어 앙골라 혁명 과업을 저지하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도움으로 남아공은 핵을 개발하게 된다. 하여 쿠바와 앙골라 연합군이 1988년 쿠이토 쿠아나발레 전투에서 남아공 공군력을 대패시키고 위험을 무릅쓰고 남아공 군이 저항을 시도하던 나미비아 국경으로 진군했을 당시, 남아공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1962년 앙골라 남부에서 쿠바군이 핵공격의 위험에 노출된 이후, 두번째 핵 위협이었다. 하지만 이미 핵무기 사용으로도 전세를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혐오스러운 체제에 종말을 고할 패배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일들이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남아공의 피에트 보사가 저지른 만행이다.6)





오늘날 리비아 내전을 목도에 두고, 과거 아프리카의 내전에 제국주의가 개입하여 벌어진 끔찍한 이야기와 그 전쟁이 앗아간 수백 수천의 목숨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 들을 수나 있는가?





아랍 인민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위험 앞에서 이런 과거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들은 억압과 착취의 희생자가 되기로 체념한 것이 아니잖은가.





아랍 세계의 혁명 세력은 미국과 나토의 위력 앞에 겁을 먹고 있다. 이는 모든 특권을 지닌 자를 앞에 둔, 모든 권리를 읽은 자의 심정이리라. 따라서 이 혁명은 1789는 바스티유를 폭풍에 몰아 넣었던 유럽에서의 운동보다 훨씬 엄청난 운명을 겪게 될 것이다.





스스로 '짐이 곧 국가'라 거리낌없이 떠벌이던 루이 14세가 누리던 특권마저도 사우디 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왕이 누리는 특권에는 미치지 못하고, 루이 14세의 부라고 해봐야 거의 모든 땅이 사막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하를 흐르는 막대한 부(석유―석유)에는 턱도 없다. 이 막대한 부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시추량을 결정하고 국제 유가를 조절하는데 이용된다.





리비아 위기가 시작되고 나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 생산은 하루 100만 배럴에 육박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사우디 아라비아와 석유 회사들의 일일 수익은, 최저가로 계산하더라도, 10억불 이상 증가했을 것이다.





사우디의 인민들이 돈 속에서 헤엄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건설이나 다른 부문에서 쥐꼬리 만한 임금을 받으며 하루 13~14시간씩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에 대한 슬픈 이야기들만이 있을 따름이다.





이집트와 튀니지의 노동자들과,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점령지와 예멘뿐만 아니라 일인당 소득이 훨씬 높은 바레인과 아랍 에미리트에서까지 실업청년들에 의해 일어난 일들을 보고, 착취의 일반 체계를 뒤흔드는 혁명의 물결에, 사우디 지배층은 깜짝 놀라 충격을 받았다.





예전과는 달리 정보 왜곡이 유난한 아랍에서도 오늘날에는 인민들이 여러 사건에 대해 즉각적으로 정보를 얻고 있다.





현재 이어지고 있는 사건이, 식량 가격의 현저한 상승과 기후 변화에 의한 절망적인 영향과,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상 유지를 원하는 특권층들에게는 최악으로 느껴질 것이다. 반면에 세계 최대의 옥수수 생산국인 미국은 옥수수 생산량의 40%와 콩 생산량의 대부분을 자동차에게 먹일 바이오연료 개발을 위해서 허비하고 있다. 세계 농업 생산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미국의 생태학자 레스터 브라운은 현 식량사태에 대한 한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볼리바리안 대통령 휴고 차베즈 역시 나토의 개입없이 리비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하게 노력하고 있다. 만약 실제 개입이 이루어지기 전에 차베즈가 광범위한 여론을 형성하는 개가를 올린다면 그가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라크에서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또다른 나라에서 다시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고찰 끝. <노사과연>










 





번역 : 임경민(회원)















[역자주: 





출저: http://www.granma.cu/ingles/reflections-i/3marzo-nato.html





원출저: CubaDebate





영역: Granma International





한역: 임경민(walkleftiii@gmail.com), 영역에서 중역]
















1) 역자 주: TeleSUR는 베네수엘라에 기반을 둔 범남미 진보매체 방송국. 자세한 설명은 위키 항목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TeleSUR.






2) 편집자 주 : 지층이 퇴적할 때에 함께 들어가서 그대로 남아 있는 물.






3) 편집자 주 : 지하수를 품고 있는 지층.






4) 역자주: 리비아는 지난 세기초부터 50년대까지 이탈리아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5) 역자주: 1975년~2002년 사이에 벌어진 앙골라 내전의 초기 상황을 말하고 있다. 앙골라는 과거 포르투갈 식민지로서 해방 운동 당시 쏘비에트 연방의 지원을 많이 받았고 그 중 특히 쿠바와의 관계도 상당히 돈독한 편이었다. 해방 이후 맑스-레닌주의와 반공주의 간의 갈등을 발단으로 1975년 앙골라 내전이 발생하는데, 당시 냉전 상황 하에서 이 내전에 미국과 쏘비에트 연방, 중국이 크게 개입하게 됐다.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와 르완다 역시 당시 쏘비에트 연방과 함께 참전했다. 자세한 설명은 위키 항목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Angolan_Civil_War )






6) 역자주: 역시 앙골라 내전 기간 중에 있었던 쿠이토 쿠아나발레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쿠이토 강 전투에서 쿠바와 앙골라 군이 거둔 승리는 곧 평화협정으로 이어져 앙골라 내전 2기는 막을 내리고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앙골라에 평화가 찾아온다. 또한 이 전투에서의 패배를 계기로 피에트 보사의 인종차별주의 정권이 힘을 잃고 만다. 이는 후일 넬슨 만델라의 집권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다. 자세한 설명은 위키 항목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Cuito_Cuanavale
















노사과연 총회에 맞춰서 책을 급히내다 보니 오류가 있군요. 나중에 오류들 일괄 수정하겠습니다. 2011-03-21 21:35:21
보스코프스키 예. 차베스가 집권후 제헌과정을 거치면서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볼리바리아가 맞을 겁니다. 2011-03-21 19:05:20
임경민 죄송합니다. 오역입니다.
볼리비아가 아니라 볼리바리아입니다. (원문은 The Bolivarian president, Hugo Chavez )
2011-03-21 14:23:22
보스코프스키 원문이 잘못 나온 건가요? 아니면 오역인가요? 휴고 차베스는 볼리비아가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볼리비아의 대통령은 에보 모랄레스 입니다. 2011-03-21 13: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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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6 피델의 고찰-나토의 불가피한 전쟁[4] 피델 카스트로 2011-03-20 3155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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