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도노동자의 처지

노동자의 처지는 투쟁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 있다. 생존권을 벼랑으로 내모는 자본의 공세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의 계획에 몸을 내 맡기는 순간 정상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주체적인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조건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철도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98년 경제위기와 맞물려 철도 민영화공세가 가시화되자 54년 어용철도노조를 뒤집었다. 연이어 민영화저지투쟁을 통해 국회에 상정된 민영화법안을 폐기시키고 공사화의 길을 걸었다. 공사전환이후에도 일상적인 구조조정 계획으로 인해 끊임없이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철도노동자가 저항 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요인은 고용불안에 있다. 고용안정 쟁취와 철도의 공공성 강화 요구는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한 묶음이다. 노조무력화 공세에 맞서 투쟁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철도노조는 민주노조를 쟁취한 이래 지난 9년간 철도민영화 법안 폐기, 인원충원 등 구조조정저지, 비정규직 문제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으로 버텨온 역사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을 단결의 구심으로 인정하고 한편으로 투쟁은 지속하더라도 시원스런 성과를 축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발은 빼고 있는 형국이기도 하다.

국가권력과 철도공사 당국이 바로 이점을 노리고 분할 통제 공세를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2차 파업이후 철도노조에 대해 유례없는 초강수의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투쟁은 해도 안 된다”, “투쟁에 동참하면 손해만 본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조합원 대중과 노조 지도력을 분리시키고자 한다. 자본과 국가권력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저항이 가장 두려울 것이다. 특히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이번 임ㆍ단협 쟁취 파업투쟁(1,2차 파업) 과정에서 국가권력은 철도노조의 목줄을 끊어 놓고 싶은 열망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철도노조의 ‘법을 지키려는 필사의 노력’의 한편에는 철도공사와 정부의 가림막이 없는 ‘초법ㆍ탈법적인 노조 죽이기’가 있다.

철도노조 단체협약 해지는 5월 23일로 발효한다. 정부와 공사의 ‘노조 죽이기’의 기조를 바탕으로 한 단협해지는 단결과 저항의 유일한 수단인 노조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이는 사측에 엄청난 칼자루를 쥐어주는 꼴이고 이 과정을 경과하면서 그들은 불순한 목적을 달성하려 할 것이다. ‘2012년까지 철도의 적자를 반으로 줄이지 않으면 민영화 하겠다’는 ‘선진화계획’은 사실상 민영화를 위한 정지작업일 뿐이다. 이는 완전한 자본의 논리 즉 돈벌이를 위해 철도를 운영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철도노동자들은 심각한 정리해고의 칼바람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철도이용객인 국민의 교통비 부담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사측도 알고 노조도 아는 상황에서 노조가 선택할 길은 투쟁을 통한 노조 지키기냐? 단협의 핵심조항을 사측이 원하는 대로 내어주고 무력화 될 것이냐? 하는 처지에 있다.

2. 철도노조 2차 파업이후 도전과 응전

작년 11월 26일부터 12월 3일까지 8일간 진행한 2차 파업에 대해 철도공사는 노동자에 대한 확인사살을 시도했다. 무엇보다 파업으로 인한 해고와 징계는 유례없는 싹쓸이에 가깝다. 파업에 참여한 지부장급 이상 모든 간부를 해고시켰다. 파업에 참가한 지부(현장)단위 간부들을 전원 2정직, 3정직 등 중징계 했다.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전원에 대해 감봉에 처했다. 그들이 살벌한 징계국면을 조성하여 노리는 것은 조합원과 현장간부들을 위축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 (현장)간부들은 정직 처분을 받아도 전원 집에서 쉬지 않고 소속한 노조(지부, 지방본부 등)로 출근하여 현장순회, 선전전, 집회투쟁 등 다양한 일상 활동을 벌여왔다. (정직을 받았다고 모두가 출근하지 않으면 노조는 마비된다.) 평조합원들은 누구나 받는 징계가 되어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집중 집회 참석률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파업에 참석한 조합원들은 당당했고 불참한 조합원들이 도리어 몸 사리기가 심해졌다. 문제는 2차 파업에 참석률이 낮았던 일부직종ㆍ부서 등에서 노조활동이 위축되는 양상이 나타났고, 반면에 집단적으로 파업에 동참한 주력직종과 지부단위는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았다.

한편 철도공사는 철도노조의 재정 줄을 끊기 위해 2006년 3월 파업으로 발생한 100억에 대해  즉시 조합비 압류를 집행했다. 조합비 압류의 의미는 투쟁기금은 물론이거니와 200여명에 달하는 해고자 생계지원을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노조는 힘을 쓸 수 없어 스스로 무기력해 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철도노조는 이에 대응하여 해고자 구호를 위해 1년간 조합비 1% 인상안(규약변경)을 총투표에 붙였는데 조합원은 압도적으로 가결시켰다. 그리고 손배금 100억을 갚기 위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모금(차용)에 들어갔는데 적극 호응하여 76억이 모였다. 이외에 상급노조에서도 동참하여 100억을 해결했다. 이리하여 공사의 노조에 대한 돈줄조이기 의도를 무력화시킨 셈이다.

철도공사는 징계국면을 전개하는 한편으로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차량정비(검수)주기를 늘려 정원을 대거 감축하고 경춘선 외주화를 추진하는 등 각 직종에 분사화 계획을 발표하고 속도를 내고 있다. 허준영 사장은 관리자들에게 일일보고 체계를 만들어 현장탄압을 강제하고, 심지어 노조사무실의 전기를 끊는 통제도 서슴지 않았다.

3. 투쟁 방침은 옳다! 왜 주춤 거리는가?

1, 2차 파업을 경과한 철도노조는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지 않고는 요구를 관철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실상 필수유지업무지정이라는 악법을 수용한 채 진행하는 파업이 여객수송과 물류 타격을 주는 정도는 한계가 있다. 또한 필수유지업무를 인정하지 않고 예전처럼 전면 (불법)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사상 초유의 해고, 징계사태를 둘러싸고 합법ㆍ불법 논란이 중심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동파업이 아니다 하더라도 한날 한시에 파업 투쟁 전선이 만들어 지는 것, 이에 대한 엄호와 지지를 조직하는 것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철도노조는 대의원대회와 확대쟁의대책위를 통해 3차 파업 기조를 확정했던 것이다. 철도노조의 파업투쟁과 일정을 같이 하는 노조들이 형성되었다. 결국 메이데이를 전후하여 총파업, 총력투쟁 방침이 확정된 것이다.

파업돌입 D-day 4월 30일이 임박해 오면서도 철도노조 중앙지도부는 무기한 파업인지, 파상파업인지, 하루파업인지 도무지 그 파업기조와 구체적인 전술 방침이 오리무중이었다. 그 사이 각 지방본부별로 약간의 색조를 달리하며 활동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파업돌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으나 임박해 오면서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역과 직종 지부에 따라 분위기 차이는 있음) “파업이 임박했는데 너무 조용한 것 아니냐?”, “파업에 들어가기는 하나?”, “하루파업하고 마는 것 아니냐?” 등등. 4월 22일에 가서야 의장단회의(조합과 지방본부장회의)에서 30일 파업돌입을 재확인 했을 뿐이었다.

4월 26일, 철도노조 집행부는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파업을 5월 중순으로 순연한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화물연대 집행부 역시 같은 결정을 내렸고, 민주노총은 중집회의를 열어 5월 14일로 천안함 희생자 장례를 고려하여 파업시기를 순연한다는 결정을 공식화했다. 건설노조도 결국 민주노총 중집 결정에 따른다고 한다. 이리하여 4월 30일 시기집중 파업은 일정기간 연기되었다.

4. 자본과 국가권력은 죽일 듯 덤벼드는데…

의혹투성이 천안함 사건으로 온 나라 언론들이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희생자 장례일정과 파업투쟁이 비슷하게 겹치는 것도 사실이다. 돌발변수로 나타난 이 사건이 파업투쟁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파업의 효과를 극대화하여 파괴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 파업일정을 순연할 수도 있다. 그러하다면 남은 문제는 공무원노조 투쟁시기를 마지노선으로 하여 대한민국 이명박 고용사장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파업파괴력을 극대화하는데 집중하면 될 것이다. 

지배세력들은 모든 권력기구ㆍ분리통제와 탄압기제를 활용하여 총공세를  하고 있을 뿐 한 치의 양보나 타협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이미 당해놓고도 양보교섭을 통해 족쇄가 되는 합의안이라도 받아 안고 싶어 하는 자들이 없지 않다. 파업투쟁 전선이 형성될 상황이 된다면 필경 정부와 자본은 노조 간 연대의 고리를 끊기 위해, 파업투쟁을 무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분리통제를 위해 미끼를 던질 것이고, 이들은 미끼를 스스로 물고 싶어 하는 자들이다. 이런 부류들의 왜곡되고 헛된 망상은 조합원들의 지도부에 대한 믿음을 갉아 먹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또한 책임 있는 노조간부들이 대중파업ㆍ연대파업을 조직하는데 집중하지 않은 채 파업투쟁을 지자체 선거 공간열기 정도에 가두려는 발상 또한 뒤집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대중투쟁에 기반을 두지 않은 선거투쟁은 정세반전은 물론 단 한걸음의 진보도 확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철도노조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철도노조만의 것이 아니다. 지배세력이 겨냥하는 것은 곧 노동자 일반에 대한 기본권을 박탈하는 것이고 민주노총으로 표현되는 주력노조들을 포로로 삼고 싶어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미 자본의 공세에 나자빠지고 그들의 수중에 헌납된 거대 노조들을 보라! 철도노조는 해지된 단협을 되찾고 민주노조를 사수하여야 한다. 다른 노조들 또한 사정이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소속 조합원의 단결을 더욱 도모하고 굳건한 연대를 강화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전망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길이 철도노조와 민주노조운동이 사는 길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