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시작하기에 앞서

08년 촉발된 세계사적 경제위기는 현대중공업 원·하청노동자들에게 곧바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소위 ‘미국발’이라고 명명되던 금융위기(금융시스템 붕괴)의 실물적 여파가 한국 땅 대표적 노동집약 제조산업인 조선업에 이르진 않았지만, 현장에선 닥쳐올 경제위기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바로 나타났다.

09년 시작과 더불어 한동안 중공업 현장 공방전의 주된 내용이 되었던, 현대중공업노조(위원장 오종쇄)의 “교섭권 위임”의 근거가 바로 “선제적 대응”이었다. 당시 조선업 위기가 도래하기 전에 미리 대응해야 한다며 “(노조의)교섭권을 (회사에)위임”한다는 현중노조의 공표는, “노동조합운동의 뿌리를 뽑는 행태”, “노조가 사측의 앞잡이가 되어 위기를 조장하여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행태”, “어용노조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행태” 등등 현장의 즉각적인 비판과 저항을 불러왔다.

당시 쟁점의 옳고 그름이 어떠하든, 전례없는 조선산업 위기를 앞두고 현중노조가 어용으로서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행위에 나섰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소한 지금도 커다란 문제로 얘기되고 있는 자본의 공격에 대한 “양보교섭(론)”을 이미 넘어선 행보를 보인 것이다. ― 물론, 본격적인 구조조정 공격이 감행되고 있는 현재에도 사측의 가장 든든한 ‘벗’이 되고 있다. 때문에 현대중공업 현장에서 구조조정 공격에 맞선 노동자들의 대응방안을 이야기함에 있어 강력한 “어용노조”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의 조선산업은 비정규직·하청 비율이 대단히 높은 대표적인 제조업이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든 조선 사업장은 절반이상의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을 사용하고 있다. ― 절반이상은 기본이고 대개의 경우 70% 이상의 비율이며, 조직률은 0%다 ― 한국 조선산업 사업장엔 쟁쟁한 노동조합들이 대공장 노조로서의 명패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은 50%도 채 안 되는 정규직노동자들만의 절름발이 노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또한 2003년 하청노조가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조직화란 측면에서는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공장안에서 높은 비율의 조직되지 못한 비정규직·하청노동자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조선업 위기에 따른 본격적인 자본의 구조조정 공격과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이것은 얼핏 대규모 구조조정에서 더할나위 없이 자본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기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반대로 가장 커다란 예측불허의 위험요소이기도 하다.

조선산업 공황의 속도가 자본이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급속하게 전개된다면, (사실 현재의 조선업 공황이 그러한 양태다) 따라서 자본의 가장 든든한 ‘벗’인 어용노조를 앞세워 현장 노동자들의 불만과 분노를 적절히 통제해가며 구조조정을 전개할 여력이 사라진다면, 자신의 통제 범위를 넘어(대규모의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 노동자 투쟁의 잠재력이 폭발한다면, 자본으로서는 가장 끔찍한 재앙일 것이기 때문이다.

1. 현대중공업 상황에 대한 개괄

1) 장기 조선호황과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의 증가

현대중공업은 조선, 해양플랜트, 엔진, 건설장비, 전기전자시스템 등 다양한 사업부분으로 이루어졌으며, 비중과 매출에서 조선부분이 절반이상을 차지해 왔다. 지속된 조선산업의 호황으로 인해 생산설비 확충 등을 수반하며 꾸준히 성장하였으나, 94년 이후부터는 생산직 노동자들을 새로이 고용하지 않았고, 대신 늘어난 물량은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을 확대하여 처리해 왔다. 해마다 정규직노동자들은 정년으로 인한 자연퇴사 등으로 꾸준히 줄어들었으며, 줄어든 정규직 노동자들의 수 이상으로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은 계속 늘어났다.

현재 생산직 노동자를 기준으로 보면, 이미 현대중공업엔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의 비율이 더 높아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조선사업부분뿐 아니라, 현대중공업의 모든 사업부문에서도 그러하다. ― 정규직노조(현중노조)의 조합원 수는 1만 8천여명이 된다. 현중사측의 공식 언급으로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의 수는 1만 9천여명이다. 정규직노조의 조합원이 과장 이하의 사무직을 포함하고 있음을 무시해도 숫적으로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의 수가 더 많다. 

2) 현대중공업과 소위 ‘사내하청업체’

현대중공업 사측은, 소위 ‘사내하청업체’들에 관하여선 상호 물량완수 계약(도급계약)에 의한 기업간 대등한 관계라 말하고, 하청업체는 독립적인 경영권을 갖춘 기업체로서 일체의 경영간섭은 없다는 주장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현대중공업 울타리 내에 존재하는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 대해서 실질적으로는 사용주로서의 권리는 무제한 사용하면서 그 책임은 전혀 지지 않으려는 거짓 주장에 불과하다.

소위 ‘사내하청업체(들)’은 일체의 독자적인 생산수단(설비, 장비 심지어 1회용 소모품까지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생산에 대한 독자적인 계획은 물론이고 인력운영 및 계획에 관한 사항까지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 사측이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은 소위 ‘하청업체’의 인력운영에 관해서도 직접 관여하고 있다. 생산공정(생산계획의 유일한 기획자이자 실행자는 현대중공업뿐이다)에 의해 각 부서별로 편재되어 있는 ‘하청업체(들)’의 인력 계획을 수립하고 강제해 왔다.

이번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공정계획(물량축소)에 따른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와 도급단가 조절(인하)로 인한 살인적인 임금삭감 공격을 주도한 실질적인 주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

2. 현중자본의 구조조정 공격의 양상

1) 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임금동결과 대규모 전환배치

현장에서 2008년 말부터 회자되기 시작한 조선산업 위기는 09년 초부터 정규직노조의 ‘교섭권 위임’(과 ‘임금동결’)으로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겐 해고와 임금삭감 위협으로 시작됐다. 09년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본격적인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인력 구조조정(해고)과 임금삭감의 공격이 진행되고 있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4도크 폐쇄예정으로 인한) 대규모 부서 통폐합으로 2010년을 시작했으며, 3월 2일부로 조선부문에서 750여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5개 사업부서로 전환배치되었다.

2)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 공격

09년 연말을 경과하며 이미 상당수의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됐다. 세간엔 잘 알려지지도 않고 티도 나지 않았지만, 그 수는 2천 여명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물론, 정확한 수치는 알 수가 없고, 과장되었을 수도 있다. 이 수치는 12월 말경 “10%정도의 인원감축이 이뤄졌다”는 중공업 관계자의 말을 인용보도한 신문기사를 토대로 어림짐작된 것이다. 2만여명의 하청노동자들 중 10%면 2천여명에 이른다.

현대중공업은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인력구조조정(정리해고)를 기획하고 집행함에 있어 업체별로 정리(해고)인원을 배정하여 진행케 하였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업체에서 10여명 내외의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 대한 해고가 진행됐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생산계획과 인력운영계획의 일환으로 사내 공문을 통해 각각 업체별로 정리해고 인원을 선정하여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3)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및 노동조건 개악 공격

09년 말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끝나자마자(거의 동시에 이뤄졌다는 표현이 옳을 듯 하다)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전공장 차원의 대대적인 임금삭감 공격이 시작됐다. 각 부서별, 업체별 차이는 있지만 기본급10%, 수당50%, 토요일 무급화(기존 4시간 보존)가 평균적 기준이 되고 있다. 임금삭감의 규모가 너무나 커서, 다른 것이 묻혀버렸지만,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은 비단 ‘임금’에만 있지 않다. ‘취업규칙’을 일제히 변경함으로써 노동조건 전반 또한 악화된 것이다.

노동조건 후퇴와 임금삭감 공격이 진행된 양태를 살펴보면,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방식과 “(새로이)근로계약서를 체결”하는 방식이 공통된 것으로 나타난다.(별도의 노무담당이 없는 160여개의 사내하청업체가 같은 시기에 일제히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다. 09년 연말 각 업체별 정리해고 인원을 산정하여 하달한 것과 동일하게, 현중사측이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의 방안까지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임금삭감과 관련된 것은, 노골적으로 삭감된 임금으로 새롭게 근로계약서를 체결하는 형태와 취업규칙 중 주5일 근무제 도입 후 4시간 유급이 인정되던 토요일 가급을 폐지하는 형태, 그리고 수당을 삭감하는 형태가 종합되어 이뤄졌다. 근로계약 갱신을 통해 기본급(10% 내외)의 삭감을,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월 16시간의 유급 시간의 삭감을, 수당(50% 내외)의 삭감은 (개별적 차이는 존재하지만) 월 임금을 직접 50에서 100만원 가까이 삭감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 ‘수당’은 일정정도의 기본급에 이르면 더 이상 임금인상이 없는 하청노동자들에게 사실상 기본급 인상분을 보존해 주는 사실상의 기본임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사실상 잔업과 특근으로 기본 생활임금을 충당해 왔던 노동자들로서는 물량감소를 이유로 줄어든 잔업과 특근으로 인해 실제 받게되는 월 평균 임금의 감소는 더욱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취업규칙의 변경은 단순히 토요가급(4시간)의 폐지를 통한 임금삭감뿐 아니라, 여러 가지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특별한 명칭이 없이 단지 ‘수당’이라고 불리웠던 사실상의 기본급에 해당하는 ‘수당’을 삭감함과 동시에 “출근장려수당”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출근일수에 따라 변경되도록 한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에 따르면 보유한 년차를 사용하더라도 수당에서 그만큼 손실을 감수해야하는 것이기에 이것은 사실상 휴가권을 박탈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이외 변경된 취업규칙들에는 징계권의 강화 등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악화시키는 수많은 요소가 첨가되고 있다.

3. 구조조정 상황에서의 현중 원·하청노동자

1) 정규직노동자들과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

현중자본의 구조조정 공격 양상은 표면상, 정규직과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을 구분하고 있는 듯이 보여진다. 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 공격은, ‘임금동결(09년 교섭권 위임의 결과)’과 대규모 전환배치로 나타났다. 하지만,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은, 대규모 정리해고와 임금삭감 등 매우 폭력적인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표면상의 차이 즉,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정리해고 등 직접적인 공격이 (아직까진) 없다는 것으로 인해, 현중자본의 구조조정을 보면서도 정규직노동자들과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은 바라보는 시각이 달리 나타나고 있다. 오늘까지도 현격한 조선물량감소로 인한 조선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추가 전환배치의 소문, 그리고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추가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의 소문이 끊이질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이 살인적인 임금삭감으로 인해 당장 생계위협을 느끼고, 지속되는 정리해고 공격에 극심한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정규직노동자들은, 전환배치 인원 이상의 희망자가 모집에 응모하는 등 현중자본의 구조조정 ‘계획’에 순응하고 있는 형국이다.

2) 현중 원·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막는 장애

전환배치가 자본가들의 구조조정 공격의 일환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공격’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정규직노동자들이 순응하는 모양새를 띠는 것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 두 가지 요인을 가장 주요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의 존재 자체다. 단순생각만으로도 “현장에 2만이 넘는 하청노동자들이 있는데, 우릴(정규직노동자들) 정리해고하겠냐?”가 성립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앞으로 매년 1,000여명에 가까운 정규직 자연감소인원(정년 퇴직자)에 대한 예상까지 보태지면 정규직노동자들에게 고용문제는 당장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생길 일 없는 문제”로 치부되기에 너무나 쉽다.

두 번째는, 강력한 어용노조의 존재다. 어용노조는 09년 ‘선제적 대응’이라는 말로, 자본보다 한 발 더 앞서 ‘교섭권 위임-임금동결’을 갖다 바친 바 있다. 이번 사측의 대규모 전환배치를 위한 인원 모집 계획 또한 “일자리 나누기” 희망자 모집이라 칭하며 포장에 포장을 덧씌웠다. 물론, 아무리 적극적인 어용행각이라고 하더라도, 어용노조의 행위가 정규직노동자들에게 설득력이 있어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용노조가 대중적 설득력이 있어 ‘성공’을 거두기 때문이 아니라, 그 “행위”―노동자들의 이해에 서지 아니하고 사측의 이해에 복무함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자체가 주요한 장애요인이다.

어용노조 8년을 경과하며 현중노조가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라는 기대치는 점점 사라져갔다. 이번 경제위기 시작과 함께 노골적으로 나타난 현중어용노조의 행각은 누구의 눈에도 현중자본의 충실한 “마름”으로서의 모습이었다. 어용노조 8년을 경과하며 점점 낮아지던 기대치(현중노조가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라는)조차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노동조합에 기대할 것이 없는 노동자들, 아니 노동조합을 사측과 동일하게 판단하는 노동자들이, 사측(자본)의 공격에 맞선 대응방안을 모색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것이된다. ― 이번 대규모 전환배치 인원 모집 당시, 거의 모든 부서에서 모집자 보다 자원자가 더 많은 상황이 발생했다. 때문에 오히려 사측이 인원을 ‘선별’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이 과정에서 누락된 자신을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항의까지 이뤄지기도 했다. 이미 물량감소로 몇 달전부터 잔업·특근이 줄어 생활임금이 현격히 하락한 상황뿐 아니라 조선경기의 전망 또한 불투명한 조건에서, 물량이 많은(아니면 최소한 조선보다 일이 편한) 사업부로의 이전을 희망하는 노동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살아갈 방안을, 노동조합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할 처지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불가피한 선택이 이번 전환배치 자원모집과정을 통해 보여진 것이다. 노골적이고 강력한 어용노조의 존재가 과거 대투쟁(노조 단결투쟁)의 경험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정규직노동자들조차, 완벽한 개별로 해체해 버린 것이다.

4. 아래로부터 새로운 원·하청 단결 운동을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현중자본의 구조조정 공격은 계속될 전망이다. 조선부분 정규직노동자들은 추가로 계속해서 타 사업부서로 전환배치 될 것이다. ―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대중공업 그 어떤 사업부서도 조선부문 정규직노동자들을 한없이 수용하진 못한다.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은 또한 다시금 정리해고와 추가 임금삭감 공격에 내몰릴 것이다. ― 하지만, 이미 현중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의 인내의 한계는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현실로 보면 현중자본의 구조조정 공격은 아무 문제없이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전환배치 인원에 미리 선별된 활동가들은, 뿌리를 둔 부서를 이전시키려는 술책에 맞서 편한 업무로의 배치 등의 회유를 단호히 거부하며 투쟁했다.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 또한, 비록 소수이지만 현대중공업 전 공장 차원에서 진행된 임금삭감 공격에 맞서 저항했다. 초기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임금삭감 공격이 주춤했던 이유도 산발적으로 터져나왔던 이러한 하청노동자들의 저항에 기인한다. 하청노동자들의 저항은 단순했다. ― 임금삭감과 노동조건을 하락시키는 목적으로 진행된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고, 근로계약 갱신을 거부하는 것! 즉, 아무것도 하지않는 것만으로도 현중자본의 계획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전환배치가 완료되고,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와 임금삭감 공격의 막바지에 새로운 투쟁들이 생겨나고 있다. 각 업체별로 진행된 소수만의 저항을 넘어서 업체 전체노동자들이 삭감된 임금회복을 위해 스스로 대표자(들)를 선출하고 업체사장에게 협상을 요구하는 업체투쟁이 생겨난 것이다. 3월 초 현재, 삭감된 임금회복 투쟁에 나선 하청노동자들은 업체사장의 폐업공고에 맞서 고용쟁취 투쟁으로 한 발 더 나아갔다. 몇 일 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업체장의 진실고백(?) 덕에 그 동지들은 또 한 발 나아갈 수 있었으며, 투쟁의 정확한 상대를 찾을 수 있었다. ― 그 동지들은 불과 몇일 만에, 임금회복을 넘어 물량감소로 인해, 공정조정으로 인해 정리해고와 업체폐업이 될 수밖에 없다면, “우리의 고용은 현대중공업이 책임져라”라고 요구하며, 인근 업체 동료 하청노동자들에게 함께 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현중자본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소규모 하청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저항과 중공업 사측에게 고용책임을 요구하는 업체 투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현장에서부터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저항과 투쟁이 지속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개인에서 업체로, 업체에서 타업체 동료 하청노동자들로, 단결의 확대 가능성 또한 보여준다.

하청노조는 이러한 하청노동자들의 자발적인 투쟁을 더욱 촉진하고 확대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그 동안 각기 업체별로 고립되어 각개 격파당하며 패배했던 투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업체별 단결 또한 만들어 가야만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이 아무리 잘 대응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부족한 것이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아래로부터의 단결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엔 그 어떤 것보다도 정규직 활동가들의 역할이 요구된다.

하청노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조직력이 미천하여, 여전히 현중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은 개별로 존재하고 있다. 노골적인 어용노조의 행각으로 인해 사실상 정규직노동자들도 하청노동자들과 그 처지와 조건이 다르지 않다. 여느 민주노조 사업장에서 볼 수 있는 “자본에 맞서 노조로 단결하여”는 현중현장에 당장엔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냉정하게 본다면, 현대중공업 원·하청노동자들은 모두 개개별로 현대중공업자본의 야만적인 구조조정의 공격을 맞이하고 있는 형국이다.

때문에, 현장에서부터 정규직 조합원 동지들이, 그리고 비정규직·하청노동자 동지들이 새롭게 아래로부터의 단결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현중자본의 구조조정 공격에 맞설 유일한 방안일 수밖에 없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