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을, 동시에 현실에서 되살려야 할 ‘세계여성의 날’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의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이 ‘노조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10시간노동 보장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임금을 인상하라’를 외치며 싸웠다.

2010년 3월 8일 한국 부산의 센텀병원에서 해고된 간병노동자들이 ‘부당해고 철회하라’, ‘생존권을 보장하라’를 외치며 싸우고 있다.

102년 전과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요구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세계 여성의 날’의 의미는 무엇일까?

‘세계 여성의 날’의 전개

산업 혁명과 시민 혁명으로 인해 서유럽 세계가 자본주의 체제로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여성들의 지위는 크게 달라졌다. 자본주의 체제는 여성들을 가사노동과 육아의 부담에 더하여 가혹한 작업장으로까지 밀어 넣고 남성보다 가혹한 조건을 요구했다.

이에 대항하여 여성 노동자들의 불만이 1857년 미국의 뉴욕 시에서 처음으로 폭발한다. 이때 방직, 직물 공장에서 일하던 수백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맨해튼 로워 이스트사이드(Manhattan's lower east side)에서 12시간 노동을 주장하며,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에 항의하는 시위를 일으켰다. 이는 곧 경찰의 난폭한 공격을 받고 해산되었고, 70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체포됐다. 비록 이 시위가 경찰에 의한 야만적인 진압으로 끝이 났지만 이후에도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한 계속적인 투쟁으로 2년이 지난 1859년 3월, 이 여성들이 최초로 그들의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다.

1866년 9월 제네바에서 열린 제1차 대회에서 인터내셔널은 여성노동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했고, 어린이와 여성노동자 보호와 차별 반대를 위한 투쟁을 벌여 나갔다.

1889년 7월 19일(이 날은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클라라 체트킨은 파리에서 열린 제2차 인터내셔널 창립대회 연설에서 여성의 일할 권리와 어머니와 아동의 보호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여성의 광범위한 참여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첫 연설을 하였다.

1899년 헤이그 회의가 개최되기까지 2개월간에 유럽 18개국에서는 565회나 평화를 위한 여성 집회가 열렸고 여기서 여성들은 전쟁중지, 국제적 분쟁을 조정할 강력한 사법재판소의 설치 등을 요구했다.

1907년 2월 28일 미국 여성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일하는 여성에 대한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최초의 ‘여성의 날’이 조직되고 뉴욕에서 처음으로 기념하게 된다. 그것은 20세기 초 몬트리올, 시카고, 필라델피아, 뉴욕 등 많은 주요 거점에서 수많은 파업과 시위에 참여한 수천 명의 여성노동자들의 명예로운 투쟁으로의 의미를 가지며, 여성노동자들은 참정권 쟁취, 임금인상, 작업장 환경개선, 아동노동 철폐를 위해 저항하고 투쟁했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섬유여성노동자들 1만 5천여 명이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정책의 중단,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면서 거리로 나와 가두시위를 벌였다. 임금 인상, 10시간노동,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보장, 선거권을 주장하며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맞서 투쟁했다.

1910년 제2인터내셔널의 노동여성회의에서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 1857-1933)으로부터 매년 같은 날,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투쟁하는 '여성의 날' 행사가 제안되었다. 17개국에서 참석한 여성대표 전원이 이 제안에 찬성하였고, 1911년 3월 19일에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을 치르기로 결정한다. 1848년 3월 19일은 프러시아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프랑스 2월 혁명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 계급의 봉기 움직임에 위협을 느끼고 여성 참정권 등을 약속한 날이었기에 이 날로 결정된 것이다.

1911년 3월에는 코펜하겐 회의 결정에 따라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에서 100만 명 이상의 남성과 여성 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그들은 투표권과 공직에 나아가는 권리뿐만 아니라 노동권, 직업 훈련을 받을 권리, 직장에서의 차별 철폐를 요구하였다.

이후 유럽과 미국 등지의 각국에서는 여성노동자들의 사회운동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1912년에는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에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게 되었으며, 그 해 5월 뉴욕의 5번가에서는 1만 5천 명 이상의 여성 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주장하는 시위를 펼쳤다.

1913년에는 1880년에 있었던 뉴욕 여성 섬유노동자들의 중요한 파업을 기념하여 날짜를 3월 8일로 바꾸었다.

이후 세계 여성의 날은 독일, 미국 등 선진국이 아닌 주변 국가들까지 끌어들이는 성과를 보인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경찰 협박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집회가 상트 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개최되었다.

1913년 이후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은 모든 정치집회가 금지된 제정 하에서도 끈질기게 국제 여성의 날 행사를 이어나갔다.

1914년 빵 폭동(Bread riots)이 러시아 여성노동자의 주도로 시작되어 평화 운동의 기치 아래 유럽에 먹구름처럼 드리워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반대시위를 개최했다.

<뉴욕 의류노동자 스트라이커, 1913>

<뉴욕 의류노동자 스트라이커, 1916>

1913년에서 1915년까지 여성의 가두행진과 시위가 많은 유럽 도시들에서 일어나 ‘세계 여성의 날’을 함께 축하했다.

1917년 2월 23일(러시아력으로 3월 8일)에 여성들은 페트로그라드에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할 것을 주장했으며, 짜르 전제 정부에 맞선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특히, 러시아혁명의 경우는 여성들 만의 투쟁이 아닌 남성노동자들과 단결하여 자본가권력과 싸운 결과였다. 파업의 요구 사항은 대부분 여성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유급 출산휴가, 수유시간 제공, 공장 내 보육시설 설치 등이 포함되었다. 러시아혁명 이후 쏘련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유럽에서는 산발적으로나마 행사가 계속되었으나 미국에서는 진행되지 못했다.

북미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으나 그것은 페미니스트들의 화려하고 공개적인 행사로 진행된다.

1970년대 초반 영국에서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운동이 성장함에 따라 다시 광범위하게 기념되기 시작했다.

‘세계 여성의 날’의 부활은 여성노동자계급 역사의 다양한 측면들과 관련된다. 그것은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여성노동자 파업, 특히 미국 섬유산업에서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한편, 1977년부터 유엔은 자국의 역사와 전통, 관습에 비추어 ‘여성의 권리’와 ‘국제 평화’를 위한 ‘유엔의 날’을 제정하였다. 이후에 여성노동자가 진정한 주체가 아니라 자본의 공식적인 기구들이 여성과 관련된 중요한 의제들을 선점하려고 노력한다.

한국의 경우 ‘세계 여성의 날’은 여러 가지 사회 운동에 대한 탄압적인 정책을 유지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집권시절에 공개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뜻있는 소수에 의해서만 치러지는 작은 행사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은 1985년에 가서야 일부 해소되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있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세계 여성의 날은 본격적인 정치색을 가지게 된다. 이후 세계 여성의 날은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전국여성노조, 민주노총 및 각종 여성주의 단체들이 주최 및 후원하는 전국적인 정치, 문화 행사로 자리 잡는다. 1988년 서울지역노동자협의회 여성국과 한국여성노동자회 주최로 열린 ‘여성노동자 큰잔치’를 시작으로 민주노총이 건설되기 이전인 94년까지 매년 평등한 노동권과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여성노동자대회가 개최되었다. 1997년 민주노총 여성위원회가 만들어진 이듬해, 98년 3월 8일에는 양대노총과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하여 중앙대회 1000명, 인천대회 300명, 마산대회 250명, 광주대회 150명, 부산대회 300명 등이 참가하는 대회를 진행하였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뻔뻔스럽게도 ‘여성을 위한 일자리’라고 선전하는 일자리는 보육, 간병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대부분이며,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발표한 ‘퍼플잡(purple job)’도 ‘여성의 일ㆍ가족 양립을 지원한다’는 명분하에 단시간 근로제, 즉 파트타임, 시간제 노동을 여성에게 확대하겠다는 것이며,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출산과 육아에 필요한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이다. 전 세계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직접 거리로 나와 연대하고 투쟁했던 것처럼, 여성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지키는 방법은 투쟁 외에 다른 길이 없다. 102주년을 맞는 올해는 민주노총이 주관하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성소수자위원회,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 건설 준비모임, 전국여성연대 등이 ‘3.8 공동기획단’구성하여 공동 주최하였다.

일반 여성운동이 남성을 상대로 싸우는 데 반해서,

노동자 여성운동은 남성노동자와 손잡고 자본과 싸운다

최근에 이명박 정권은 세계적인 공황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가장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의 경제상황이 다른 나라의 상황과는 상관없는 그런 경제구조가 아니다.  현재 산업 곳곳에서는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 최악의 실업률과 물가 상승, 임금 하락이 일어나고 있으며, 가정에서는 출산과 육아, 교육비 문제가 노동자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특히, 여성의 생존권과 노동권은 가장 우선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102년 전, 사실은 훨씬 이전부터 여성노동자들이 헌신적으로 싸워 왔지만 자본주의의 틀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처지는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오히려 악화되는 경우가 더 많다).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가 단결하여 자본가계급과 싸울 때만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102주년 ‘세계 여성의 날’을 통해 역사가 가르쳐 주는 것은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가 개별적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여성의 날의 의미를 애써 감추고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려고 한다. 100년 전에는 여성의 인권과 노동환경은 무척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크게 나아진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여성부 홈페이지(http://www.moge.go.kr/)를 보면 ‘세계 여성의 날’과 관련한 제대로 된 행사가 하나도 없다는 것에서 이들이 얼마나 여성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는지는 알 수 있다. 하나 있다면 토론회(「여성! 베이징 그리고 15년」)가 있는데, 내용은 없고 했다고만 적혀있다. 그냥 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세계 여성의 날’에 관변단체를 내새워 한국여성의 인권 및 사회적 지위향상, 이명박 정부의 출산ㆍ육아정책, 여성정책에 대한 기만적인 언사들을 늘어놓는 행사를 하느니 차라리 가만있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도 같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며 무엇을 할 것인가?

당면한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은 우선 당장은 가사노동의 고단함과 직장에서의 노동착취라는 엄청난 이중고에 시달리는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보육원, 양로원 등 필요한 사회적 기관들이 만들어져야 함을 주장해야 한다.

나아가 여성억압에 맞서 여성해방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러시아혁명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본가와의 투쟁과정에서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공고히 해야 한다.

‘나의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그날까지 여성노동자들이여 일어나라!

빵과 장미(BREAD AND ROSES)¹⁾

 ―제임스 오펜하임(James Oppenheim)

우리가 환한 아름다운 대낮에 행진, 행진을 하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컴컴한 부엌과 쟂빛 공장 다락이

갑작스런 태양이 드러낸 광채를 받았네.

사람들이 우리가 노래하는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행진하고 또 행진할 땐 남자를 위해서도 싸우네,

왜냐하면 남자는 여성의 자식이고, 우린 그들을 다시 돌보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린 착취당하지 말아야만 하는데,

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리네 :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할 때 수많은 여성이 죽어갔네,

그 옛날 빵을 달라던 여성들의 노래로 울부짖으며,

고된 노동을 하는 여성의 영혼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 우리가 싸우는 것은 빵을 위한 것 - 또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

우리들이 행진을 계속하기에 위대한 날들이 온다네

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

한 사람의 안락을 위해 열 사람이 혹사당하는 고된 노동과 게으름이 더 이상 없네.

그러나 삶의 영광을 함께 나누네 :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 함께 나누네.

- 시 번역 :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