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가 장기화되면서 노동자ㆍ민중의 생활이 갈수록 더 고통스러워 지고 있다. 기업의 파산과 구조조정, 감원으로 실업자가 이미 폭증했지만, 그 대열은 더욱 더 길어지고 있다. 임금은 동결ㆍ삭감되고 있다. 게다가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과 국가, 그리고 극우언론의 공격이 집요하게 가해지고 있다.

비단 극우적 전통이 도도하고, 사회보장이 극히 취약한 한국에서의 상황만이 아니다. 제2차 대전 이후 ‘사회복지’로 명성이 높았던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랜드라는 ‘북유럽 5개국’을 포함한 자본주의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최근 조심스럽게 ‘출구전략’ 운운하는 부르주아들의 희망대로 경기가 다소 호전된다고 하더라도 노동자ㆍ민중의 생활상의 형편이 나아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가히 천문학적 규모로 쏟아 부은 구제금융, 공황구제로 폭발적 인플레이션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그 ‘경기의 호전’이라는 것이 저들 스스로 말하는 “고용 없는 성장”, 그것도 극히 단기간에 그칠 그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고용 없는 성장”! ― 그것은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주의적 경쟁이 강제한 고도의 과학기술혁명의 결과 물질적 생활수단의 생산과 재생산, 그리고 그것의 조건이 되는 생산수단의 생산과 재생산이 많은 생산부문에서 사실상 전면 자동화를 실현하고 있고, 또 전면 자동화로 수렴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에서 발전한 생산력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그것의 결정적인 모순ㆍ충돌, 결정적인 양립불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진보적이라고 명성이 자자한 일부 천재들은 “기계도 가치를 생산한다”느니, 심지어 “인간의 존재 자체가 가치를 생산한다”느니 하고 떠벌리고 있지만, 이는 경제과학에 대한 철저한 무지, 구제불능의 무지의 고백일 뿐이다. 고도의 과학기술혁명의 결과 생산이 자동화ㆍ무인화되고, 그리하여 소위 ‘고용 없는 성장’이 가능해졌다고 하는 것은, 즉 인간의 노동이 투여되지 않고도 생산이 가능해졌다고 하는 것은 그들 생산물이 (사실상) 무가치하게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치란 생산물 그것의 물적 속성이 아니라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회에서 사회적 분업자들이 그들의 노동생산물을 상호 교환하는 데에서 생기는 그 생산물의 사회적 속성이어서, 그 실체는 인간 노동이요, 그 크기는 바로 그 생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도시화로, 그리고 특히 자본의 탐욕스런 이윤 추구 때문에 발생한 생태계의 극심한 오염으로 많은 사람들이 수돗물이라는 형태로, 그리고 정수된 물이라는 형태로 마실 물에 돈을 지불하지만, 천연의 맑은 물은 누구나 무상으로 그것을 마신다. 아직은 참을 수 있는 대기를 무상으로 호흡하고 있는 것처럼. 다름 아니라, 대기, 천연적인 맑은 물에는 인간의 노동력이 투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저 ‘고용 없는 성장’이 자랑하는 전자동화 생산, 무인생산의 생산물은, 그것들이 인간의 노동력 투하 없이 생산되는 만큼, 즉 무가치하게 생산되는 만큼, 무상으로 분배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의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법칙인 가치법칙이 명(命)하는 바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본주의적 소유양식, 자본주의적 취득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그렇게 무가치하게 생산된 생산물이라도 결코 무상으로 분배될 수 없다.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그것도 자본주의적으로 소유되어 있고, 따라서 그 생산물이 사적으로, 자본주의적으로 취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이 사회에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그리고 널리 인민 대중의 빈곤과 고통, 타락, 절망은, 그리고 나아가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들은 바로 이렇게 ‘고용 없는 성장’을 운운하게 할 만큼 고도로 발전한 생산력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본주의적 소유관계, 자본주의적 취득양식 사이의 모순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 자체를 지양하지 않고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공황, 즉 과잉생산 공황은 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폭발이고, 일시적ㆍ잠정적 지양인데, 그것은 철저히 노동자ㆍ민중의 빈곤과 고통, 타락, 절망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그것이고, 더욱 심각한 그 폭발을 예비하는 지양이다. 이 또한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 명명백백히 밝히고 있는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오늘날 이 경제과학의 법칙에 거슬러서 노동자ㆍ민중을 빈곤과 고통, 타락, 절망에서 구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지식인들, 지식인 활동가들이 있다. 말하자면, 양력(揚力)의 법칙을 거슬러서 비행기를 날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런 지식인들, 그런 지식인 활동가들이, 그런 마술사들이 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떼를 지어 그렇게 떠들어대고 있고, 떼를 지어 그렇게 대중을 현혹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소위 기본소득론, 그리고 사회적 기업론, 사회적 기업가론이 그것이다.

재산이 있든 없든, 노동은 하든 말든, 아무런 심사도 조건도 없이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 기업은 이윤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안녕ㆍ복지의 증진을 그 목표로 삼아 활동해야 한다! ― 얼마나 훌륭하고 고결한 주장인가!

그런데 저들은 이 훌륭하고 고결한 이상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본주의적 취득양식을 전제하고도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서 맑스는, 예컨대 “고리대로부터 빈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1350년에는 프랑세-꽁떼[Franche-Comté)의 사르렝[Sarlins]에, 그리고 1400년과 1479년엔 이탈리아의 페루쟈[Perugia]와 싸보나[Savona]에) 세워졌던 공설전당포들(Monts-de-piété)”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이것들은 신심(信心) 깊은 욕구는 그것이 실현될 때에는 그 정반대물로 전화한다고 하는 역사의 역설을 보여주기 때문에 주목할 만할 뿐이다”(��자본론�� 제3권, 제5편, 제36장, MEW, Bd. 25, SS. 614-15)라고! 사실, 구태여 맑스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춘궁기에 굶주리는 빈민을 구휼하겠다는 고상한 목적에서 출발한 고구려의 진대(賑貸), 고려의 의창(義倉), 조선조의 환곡(還穀)이 실제는 어떻게 그 빈민들을 착취하는 기구로 되었는가는, 중고등학교 때에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은 모든 기업이 그 자체로서 사회적 기업이다. 그리고 그 존재 의의, 목적, 그리고 절대적 조건은 이윤의 취득, 축적이다. 그런데도 저들 ‘사회적 기업(가)론자’들은 ‘사회적 기업’이라는 용어를 제멋대로 사용하면서 자본주의에서 기업이 자선단체라도 될 수 있는 것처럼 사기를 치고 있다. 저들이 말하는 ‘사회적 기업’의 대표적인 예인 소위 ‘마이크로 크레디트’ 업체들의 고리대금화가, 즉 유럽의 공설전당포가 걸었던 길, 우리 역사의 진대ㆍ의창ㆍ환곡이 걸었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널리 문제로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재산이나 소득, 노동과 상관없는 기본소득?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사회보장이 높기로 성가가 높았던 저 유럽 국가들에서도 그것을 보장한 적이 없다.

그리고 소위 기본소득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해보고 싶다면,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북유럽과 서유럽 일부 국가들에서 상당히 높은 정도로 제도화된 저 사회보장에 대해서, 그것이 어떻게 도입ㆍ제도화되었으며, 그 후 어떤 궤적을 밟고 있는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분명 한편에서는 러시아의 10월 사회주의 혁명에 자극받고 고무되어,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1930년대의 대공황과 그 귀결로서의 제2차 대전을 겪으면서 그에 대한 환멸과 그에 의한 각성으로 그들 국가의 노동자ㆍ민중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 자체와 정면으로 대결하고, 그것을 전면적으로 폐지하려고 나섰기 때문에 도입ㆍ제도화되었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으로부터 자본주의 사회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도입ㆍ제도화하지 않을 수 없도록 저들 자본가계급이 내몰렸기 때문이지,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라’거나 ‘누구에게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는 투정ㆍ호소ㆍ애원을 그들이 수용하여 그것을 도입ㆍ제도화한 것이 아닌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렸다고나 해야 할까?!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노동자ㆍ민중이 그에 안주하자 그것은 더 이상 강화되기는커녕 약화되기 시작했고, 쏘련을 중심으로 한 20세기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되자 그 사회보장 역시 급속한 속도로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속도는 단지 노동자계급의 저항의 강도에 달려 있고, 그 저항의 강도에 역비례하고 있을 뿐이다.

1930년대, 1940년대, 그리고 1950년대 초반의 ‘개혁’ 혹은 ‘제3의 길’이 사회보장의 도입ㆍ제도화의 별칭이었다면, 1980년대, 특히 1990년대 이후의 ‘개혁’ㆍ‘제3의 길’은 바로 그 신자유주의적 해체의 별칭임은, 사태의 진행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명백하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본주의적 소유ㆍ취득양식을 온존시킨 채 ‘선언’을 조직함으로써, 투표를 조직함으로써 소위 ‘기본소득’을 ‘쟁취’하겠다는 것! 이윤이 아니라 사회의 안녕ㆍ복지를 목표로 삼는 소위 ‘사회적 기업(가)들’을 양성하여 이 사회의 빈곤, 고통, 타락, 절망을 구제하겠다는 것! ― 이것들은 기껏해야 환상이다. 그리고 이미 19세기 중반 이후 도달한 사회과학의 성과를 고려할 때, 그것은 사실 사기, 죽었던 것의 부활이다! 19세기에 이미 죽었던 것들이 현대 중국 무협소설ㆍ무협영화의 강시(殭屍 ― 강시란 본래는 얼어 죽어 썩지 않은 시체이다)처럼 부활하여 날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강시의 역할은 대(對)자본 노동자전선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따라서 정치적으로 교란하는 것이다.

우리는 저 죽었던 것들, 부활하여 날뛰며 노동자전선을 교란하고 있는 저 강시들과 어떻게 투쟁해야 할까? 이미 19세기 중반에 독일의 상태를 비판하면서 맑스는 명확한 답을 주고 있다.

독일의 상태들과 전쟁을! 물론이다! 그것은 역사의 수준 이하에 있고, 모든 비판 [수준]의 이하에 있지만, 인간성의 수준 이하의 범죄자가 사형집행인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여전히 비판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그것들과의 투쟁에 있어서 비판은 결코 두뇌의 열정이 아니라, 그것은 열정의 두뇌이다. 그것은 결코 해부용 메스(mes)가 아니라, 그것은 무기이다. 비판의 대상은 비판의 적(敵), 논박하려는 게 아니라 절멸시키려는 적이다. 왜냐하면 저 상태의 정신(Zeist)은 이미 논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래 그것들은 결코 사유할 만한 객체가 아니라, 경멸할 만한 그리고 경멸받고 있는 존재들이다. 비판 자체는 이 대상과 화해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과는 이미 일단락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비판은 이미 자기목적으로서의 비판이 아니며, 단지 수단으로서의 비판이다. 그 본질적 파토스(Pathos)는 분노이며, 그 본질적 작업은 탄핵이다.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 MEW, Bd. 1, S.380; 최인호 역, 같은 글,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1권, pp. 3-4.)

“독일의 상태들”을 “저 죽었던 것들”, 혹은 “저들 그럴 듯한 말로 사기치고 있는 자들”이나 “전선을 교란시키고 있는 자들”로 바꾸어 읽는 것, 그것만으로 우리가 그들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는 명확할 것이다. 저들은 애초에는 비록 선의, 즉 무지에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진보적 지식인’, ‘진보적 활동가’를 자처하면서 그 성가(聲價)를 자산으로 ‘기본소득’이니 ‘사회적 기업(가)’니 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그 무지의 책임을 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악의의 책임, 즉 사기의 책임을 결코 면할 수 없다.

기본소득, ‘사회적 기업’ ― 고결한 이상이다. 그리고 실제로 ‘무인생산’이, ‘고용 없는 성장’이 운위되고 있는 오늘날의 생산력을 고려하면, 생산관계를 사상(捨象)하고 그러한 생산력의 높이ㆍ크기에 의해서만 타산한다면, 현실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본주의적 취득양식 아래에서는 결코 아닐 뿐 아니라, 기존의 사회보장제도조차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의 추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전제한 위에서의 선언, 즉 투정ㆍ호소ㆍ애걸복걸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ㆍ취득양식과의 정면 대결만이 해방과 복지를 보장한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