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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기타 >
제목 <세미나 후기> ≪뜨로츠키주의인가 레닌주의인가≫
글쓴이 이규환|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480
날짜 2012-09-20 조회수 1862 추천수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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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로츠키주의인가 레닌주의인가≫는 ≪정세와 노동≫에 장기간 연재되었던 글로, 인도계 영국 학자 하르팔 브라르가 오랜 기간에 걸쳐 기록해 왔던 논문과 글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세미나는 노사과연에서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함께 내용을 검토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에서는 쏘련의 1920년대 노선투쟁과, 여기서 패배한 뜨로츠키 반대파의 반혁명적 투쟁이 어떻게 제국주의 세력과 동맹했는지 추적해 가고 있으며, 이들의 좌편향적이고 ‘초’혁명적인 구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반공주의로 탄생하게 되었는지 대단히 명확하게 밝혀내고 있다.










저자는 뜨로츠키 노선의 ‘모든 것’에 대한 반대와 비판으로 시종일관 하고 있다. 스딸린이라는 음흉한 성품의 ‘독재자’가 ‘모든 나쁜 것’들을 만들어 냈다는 뜨로츠키와 그 추종자들의 전설을 조목조목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뜨로츠키는 자신의 영구혁명론 공식에 현실을 적용시키고자 했다. 자본주의 국가 간의 불균등 발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보지 못했고, 이는 뜨로츠키가 계속적인 오류를 범하게 되는 근간이 되었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이론에 도식화되지 못한 쏘련의 사회주의를 타도의 대상으로 보았다.










뜨로츠키는 당내 모든 노선투쟁에서 패배했다. 언제나 잘못된 판단을 했다. 결과론으로 볼 수 없는 명백한 오류들이 있었다. 당에서 축출되기 전인 1927년 15차 당대회 전 당내 토론 기간에 뜨로츠키-지노비예프 반대파 블록의 강령에 표를 던진 당원은 0.5%에 불과했다. 잘못된 판단에 지지를 받지 못한 노선투쟁은 반체제적인 권력투쟁으로 넘어갔다. 모든 수단과 방법들이 동원됐다. 사보타지, 테러, 파괴 등... 때로는 상상을 초월한 방법들이 동원됐다. 우익 반대파와의 협력 이후에 궁극적으로는 나찌와의 동맹으로까지 나아갔다.










‘모스크바 재판’이라 불리는 범죄에 대한 재판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범죄를 다루는 방식이 자본주의 체제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스크바 재판’은 부르주아 언론이 물량공세로 선전한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숙청’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기소된 이들은 자신의 행위들을 대부분 인정했다. 절차는 대부분 정당한 것이었다. 부르주아 언론들이 주장한 ‘고문’과 ‘약물’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통용되는 수사방법이지 당시 쏘련 사회주의 체제에서 사용되는 방식이 아니었다. 당시 재판과정을 지켜보았던 스웨덴 대사, 미국 대사, 영국의 판사 등 재판의 결과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던 이들은, 재판이 매우 공정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20세기 현실 사회주의의 역사는 여전히 많은 부분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실정법은 사회주의 연구에 대한 모든 접근을 근본적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주위에는 왜곡과 편견으로 가득찬 거짓정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것들 대부분은 부르주아 언론의 창조적인 능력보다는 뜨로츠키와 그 추종자들이 만들어낸 현실에 대한 왜곡과 관념에 일차적으로 기반하고 있다. 쏘련의 문서고 개방 이후, 부르주아 언론들은 뜨로츠키와 그 추종자들이 만들어 낸 전설을 입증하는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했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입을 닫고 ‘글라스노스찌’를 ‘개방’이라는 두루뭉술한 의미로 얼버무려 버렸다. 










뜨로츠키주의는 20세기 현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단 한번도 지배사상인 적이 없었으며 21세기인 지금에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반대이고 모든 반공주의의 원천이자 자양분으로 어떤 형태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뜨로츠키주의는 사회주의의 모든 역사를 부정하는 반대 구호로 빚어진 사상 없는 사상이다.









이 책은 반대와 비판의 어조로 일관하고 있지만, 역사적 맥락에 어긋나는 부분이 없다. 권력투쟁의 역사로 파편화되어 있던 20세기 초반 쏘련의 역사는 노선투쟁의 이해와 함께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퍼즐로 맞추어진다.





저자의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들은,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출판된 단행본에서도 그 일부가 소개되고 있지만, 좀 더 많은 구체적 사료들이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명확해 지는 것이야말로 뜨로츠키주의를 분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절된 20세기 사회주의 역사를 21세기로 이어주기 위해 뜨로츠키주의는 반드시 절멸되어야 한다.










차스뚜시까라고 불리우는 러시아 속요가 있다.





고려속요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20세기 전반까지 구전되면서 민중성을 유지해 간 대표적인 러시아 민중의 노래라고 한다. 1920~30년대 생활상을 노래한 시들 대부분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어, 당시 사회상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그 중 두 편만 소개하면 글을 마칠까 한다.










춤추러 갈 테야.





발 굴러 신나게 춤출 테야.





잘 가거라 인생이여, 너,





따분하고 낡은 인생이여!










무성한 자작나무





산 아래 고운 향기 솔솔 풍기네.





행복한 시절 돌아왔으니,





이제는 살고 싶어라.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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