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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현장 >
제목 2010년 메이데이 집회와 노동자 문화에 대한 고민(2)
글쓴이 정은진| 노동예술단 선언 ‘몸짓선언’, 자료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148
날짜 2010-09-20 조회수 2275 추천수 122
파일  1284974059_문화.hwp

  

























2010년 민주노총의 수도권 메이데이 집회. 민주당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격려사? 연대사 즈음 되는 발언을 한다. 대오는 별반 반응이 없다. 다른 순서에 비하면 살짝 냉소적인 정도? 몇 몇 활동가들은 그런다. ‘작년에도 민주노총 집회 때 민주당이 올라가 발언했잖아. 새삼스럽게 뭘..’





몇 년 전만해도 백기투항하는 굴욕적인 발언에 반발해 마이크를 잡으러 뛰어나가고, 분노에 찬 소리가 오고 가는 것이 새삼스런 일이 아니었다. 게시판이 뜨겁게 달구어지고 논쟁이 오고갔다. 누구들에겐 그것이 격이 떨어지고 짐승처럼 보일런지 모르겠지만 거칠어도 목소리가 있었다. 헌데 2010년 메이데이, 투쟁방향에 대한 논쟁은 보이지 않고 심지어 지배계급이 마이크를 잡았다. 마치 한 배를 탄 동지인냥 말하는 그의 얘기를 그 집회의 주인공이라는 대오는 그저 듣고 있었다. ‘다 그렇지 뭐...’라고 뱉는 씁쓸함만 맴돈다.





우린, 투쟁의 공간이라는 집회에서마저도 자본주의라는 커다란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 버리는 걸까?















소외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참 싫은 말이다. 하지만 사실 우린 참으로 익숙해져있다.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에는 두려움과 귀찮음 등등 제약이 늘 따른다. 그래서 때로는 무언가를 하는 것으로부터의 소외가 오히려 편하다.










얼마전 한 노동조합의 집회에 문화부분에 대한 지원을 요청받았다. 조합원을 조직할 수 있겠냐고 물었고, 이리 저리 알아보던 동지는 불가능할 거라 했다. 조합원들이 직접 앞에 서도록 하려했던 구상은 폐기되었고, 상징물을 만들어 우리의 투쟁을 표현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그리고 그런 작업 역시 조합원들과 같이 만들어야한다고 설득해 결국 몇 명의 조합원이 왔다. 엄밀히 말하면 간부들이 왔다. 와서 함께 상징물을 만들면서 그런다. ‘이런 건 선언에 맡겼으면 완제품으로 딱~ 가져와야지~이게 뭐하는 겨~’ 집회를 코 앞에 두고 바쁜데 간부들이 모였으니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취지에서 조합원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고자 했는지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





‘외주’라고 하기엔 너무 과할까? 조합원의 손을 넘어 간부들의 손, 뛰어넘어 연대하는 단체활동가들의 손... 그리고 때로는 이벤트대행업체의 손으로까지 넘어간다. 내 목소리를 내야하는 그것들이 말이다.





물론 역할분담과 지원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역할분담도 어느새 자본의 그것과 닮아간다. 각자 자기 공정만 하고 소통하지 않는다. 때로는 목적이 무엇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서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일은 쉬울 수 있다. 그러나 기계적인 일 처리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해방되고자 하는 자들의 역할분담이고 함께 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함께 할 때면 가능한 자본주의의 비주체적인 방식과는 다르고자 노력한다. 목적을 나누고 소통하고 논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함께하는 동지들에게 이런 저런 것들을 제안한다. ‘단위에서 책임자를 정해서 회의에 결합해야 한다, 연습이나 작업을 할 때 와서 함께하자, 조직하자, 논의하자, 평가하자 등등...’ 써 놓고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요구사항이 참 많은 것으로 느껴지나 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조심스럽게 얘기하지만 이런 요구에 우리 활동가 동지들, 적잖이 당황하고 힘들어한다. 개인적으로는 바쁘고 힘든 동지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보니 가끔은 힘들어도 그냥 혼자 해 버리는 게 편하겠다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혼자만의 생각을 깨는 것 역시 자본의 생각에서 벗어나는 투쟁이라 생각하고 한번 더 쓴 소리를 한다. 조금 더디더라도 주체적으로 함께 만들도록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투쟁이고 운동이라 생각하기에 찌들어있는 자본의 방식을 조금이라도 털어버리고자 이에 맞서 투쟁한다.










실제로 기계적으로 급하게 그냥 맡겨버린 경우, 모든 것이 참 쉽다. 잘되면 맡길 단위를 잘 섭외한 거고, 안 되면 외주(?) 준 단위의 책임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팀은 다음 번엔 안 부르면 그만이다. 서로에 대한 평가나 소통도 없다. 같이 고민하고 준비한 것이 아니니 그럴 수밖에 없다. 무슨 기계 부속품을 바꿔끼는 것 같다.





그럴 때면 떠오르는 노랫말이 있다. ‘장사 안 된다고 정리해고, 싸게 먹힌다고 비정규직, 외주, 용역, 파견근로... 네 맘대로 고통분담 다 했냐?’1) 자본의 행태들을 늘어놓은 랩인데, 가끔은 우리의 활동방식과도 별반 다를 게 없이 느껴진다. 그냥 아무 문제의식 없이 그렇게 닮아가다 보면 나중엔 우리가 저들과 왜 싸웠는지도 헷갈릴 것 같다. 이런 작은 부분에서도 통하니 말이다. 그렇게 속속들이 그들의 논리에 안겨있는 한, 가진 것 없는 우리는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다.















주체로 서기










몇 년간의 집체문선을 보면서 몇몇 동지들이 말한다.





‘한 번 하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다. 전문 배우들로 재구성해서 탄탄하게 해 보는 게 어때?’





아깝다는 말에 살짝 뿌듯하고, 동지들의 제안에 애정과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 제안을 받고도 가능하면 각 지역별로 그 지역 현장의 동지들과 함께 집체문선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동지들이 스스로를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참 없기도 할 뿐더러 노동과 투쟁, 그 삶 속에서 나오는 표현의 질감은 어떤 전문적인 배우가 연기하는 것과 다름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깊이 느끼게 되면 그녀가, 그가 표현하는 진솔함은 또 다른 동지들의 공감을 불러오곤 한다. 2010년 6월 9일, 쌍용차지부의 1주년 집회 에 집체문선이 있었다. 쌍차투쟁에 꾸준히 결합한 팀의 한 동지가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제안했고, 힘든 조건이었지만 지부 간부들과 함께 만들어냈다. 상황과 조건이 여의치 않아 짧은 시간에 적은 수의 동지들이 함께 했지만... 문선을 만들어냈고, 당일 집회에 모인 많은 동지들과 가슴 찡한 무언가를 나눌 수 있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부품이 되어버린 우리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심지어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몇 차례 집체문선을 함께해온 동지가 그랬다. 처음엔 이게 정말 가능할까? 의구심을 가졌었다고... 그런데 이제 그 동지는 문선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활동을 돌아보고 그것을 반영해 더 적극적인 표현을 해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활동의 의지를 세워낸다. 순종과 짜여진 틀 안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과 그것을 뛰어넘어 적극적인 인간, 하나의 주체로서 만들어가며 느끼는 것은 다르다. 이는 자본이 만들어내는 소외를 극복해내는 투쟁의 과정이고, 해방투쟁의 한 걸음이다.





2008년 4월,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길어지던 때, 장기간의 투쟁으로 지쳐가던 율동패 동지들이 집체문선에 결합했다.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도 동지들은 투쟁의 순간순간을 떠올리며 가슴 찡해 했다. 그리고 집체 문선을 끝낸 이후 평가 자리에서 한 동지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너무 힘들어 투쟁을 포기하고 싶은 때 연습을 시작했다. 문선은 문예로 선동을 한다는 것이라는데... 이번에 문선을 하면서는 그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선동됐다... 다시 투쟁할 힘을 얻었다‘2) 그리고 그 동지는 끝까지 투쟁의 끈을 놓치 않았고 지금도 율동패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0 메이데이 집회 집체문선, 바라보기가 아닌 함께하기 위한 시도










주체로 함께하기 위한 고민의 흔적은 집회 곳곳에 있다. 자유발언이나 투쟁단위의 공연들이 그렇고, 함께 소리를 모아내거나 움직이는 것도 그렇다. 이런 노력들이 흥미유발을 목적으로만 사고되지 않고 목적의식적으로 채워질 때 좀 더 발전적인 투쟁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메이데이, 집체문선을 만드는 과정에도 그런 고민과 실천이 있었다. 비록 소수가 모였지만 집체문선을 만드는 그 시작부터 민주노총 문화국장 동지와 연출단, 그리고 현장의 문화패 동지들이 모여 메이데이 투쟁 기조, 현장 상황, 각자 이번 메이데이 문선에서 하고픈 이야기들이 무엇인지를 공유했다. 연습을 진행하고 당일 메이데이 집회에 결합하는 과정에서도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활동의 하나하나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지점들이 발견되었고 평가로 남았다. 이후 더디더라도 극복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선언에서는 나름 몇 년간의 바람이었다고 할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화패 동지들에게 제안해 함께 집체문선을 만들었다. 민주노총의 현장 문화패들과 전장연 문화패가 따로 각자의 공간에서는 활동을 해 왔지만 함께 문선대로 서는 것이 처음이라 함께함에 있어 서툰 점도 많았고, 운동진영의 무지함에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면서 우리의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고민과 투쟁을 나눌 수 있었다.3)










물리적인 공간에 대한 시도도 있었다. 대규모 집회의 경우 특히나 대오와 무대가 분리되어 거리감이 커진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오 속에서 마이크를 잡도록 하기도 하고 영상 생중계를 통해 대오의 모습을 비추기도 한다. 2006년, 공공연맹 간부합동수련회 집체문선을 연출하면서 대오에 아시바탑(철탑)을 쌓아 그 공간을 활용했었다. 그런 시도들을 확장시켜 2009년 11월 공공노동자대회에서 문선을 연출할 때에는 앉아있는 대오 안으로 길게 들어가는 T자형 돌출무대를 만들어 활용했었고 이번에는 T자형 돌출무대와 더불어 이동하는 특설무대를 대오 중간쯤에 설치해 활용했다. 실제로 조합원 사이에 있던 특설무대에서는 가까이 있던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문선의 흐름에 따라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환호하기도 하는 감정의 교류를 나눌 수 있었다.










지극히 당연히 되어야 할 부분이지만 잘 되지 않은 것들을 다시 강조한 것들도 있고, 새로운 시도들도 있었다. 아직은 작지만 꾸준히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력하다보면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장되고 그 속에서 또 다른 부분들을 찾아내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일상적으로! 계급적으로!










집체문선의 경우 보통 한 달 정도 주말마다 모여 논의하고 연습을 한다.(물론 연출을 맡게 되는 우리는 훨씬 자주 모여 준비한다.) 사실 한 달은 매우 빠듯하고 벅찬 시간이다. 노동과 투쟁에 바쁜 동지들 모두가 모여 하는 연습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표현하고 현 정세에서 동지들에게 얘기하고자 하는 것을 모아 전달할 수 있는 건, 그리고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일상적인 모임을 통해 소통하고 투쟁 속에 연대하며 그런 훈련들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상적인 모임을 조직하려는 노력이 자꾸 줄어간다. 민주노조 사수를 외치지만, 민주노조의 골간은 많이 무너져있다. 골간을 세워내고 조직하는 것이 어렵다보니 할 수 있는 것만 하게 되나보다. 조합원을 조직해서 무엇을 만드는 것 보다는 외부 지원단체에 아예 통으로 맡겨버리는 경우가 많아진다. 조합원을 조직하면서 더불어 외각 지원단체들과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만들어내면 좋을 것을 안타깝게도 대중을 조직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 하는 건 자꾸 부차적인 일이 되어 간다.





이번 메이데이 집체문선도 예전에 비하면 적은 수의 문화패들과 함께했다. 노동자대회와 같은 대규모의, 미리 예정된 공간을 통해 더 조직하고 확대하고 모을 수 있을 텐데도 잘 되질 않는다. 골간이 무너져 있는 것도 큰 일이지만 무너져 있다 해서 더 조직하려 하지 않는 것이 더 그 붕괴를 빠르게 한다. 노동자대회의 문선대를 꾸리는 과정도 점점 변해가고 있다. 각 단위별로 문화패 또는 원하는 사람을 찾아 문선대가 조직되도록 해야 하는데 점점 골간을 타고 복원해내며 조직하기보다는 아름아름 아는 사람들 정도 수준에서 조직되는 형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4)










어렵게 사람들이 모인다 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주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으로 존재하는 한 주체적이기 위한 과정은 하나의 투쟁이다. 일상적으로 계급으로써의 나를 찾고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문화패나 소모임을 조직하고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운영되어야 한다.










얼마 전 활동한 지 얼마 안 되는 율동패와 노조 문화담당자와의 만남이 있었다. 만나고 서로의 상황을 나누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와서 하는 말이 이렇다. “정선생~이 율동패 잘 하나? 00율동패 수준 정도 되나? 열심히 연습해~ 몇 천명 앞에 서 봐야지? 내가 몇 천 명 앞에 무대에 세워줄게. 잘하면 거기서 내가 15분 준다. 열심히 해”





헉... 동지들과 그간 조심조심 쌓아온 얘기들이 한 번에 부정되는 순간이었다. ‘동지’라는 호칭부터 시작해서, 율동패를 평가하는 기준, 다른 패와의 기계적인 비교, 권위주의, 많은 사람 앞에 세워준다는 마치 연예기획사 같은 생각, 문선과 활동, 운동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일상적인 모임을 하고 ‘노동자, 동지, 투쟁’이란 단어가 들어간 노래에 맞춰 노래하고 몸짓을 한다 해도 자본의 논리를 그대로 가지고 형식만 노동자의 것을 취한다면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 비틀어진 해방의 길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애써 길을 만들어왔건만 그 길이 비틀어져 결국 돌고 도는 자본의 길을 다시 한번 공고히 하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에서 숨쉬는 우리는 일분 일초, 쉬지 않고 퍼부어대는 자본의 폭우로부터 피해 숨어있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촉각을 바짝 세우고 싸우지 않고서는 무엇이 자본의 논리인지 무엇이 해방의 논리인지도 구분하지 못하고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논리를 말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그냥 모이고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도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징그러운 자본의 논리를 인식하고 떼어내려 애써야 한다. 투쟁 머리띠를 묶고 투쟁조끼 입고 자본의 말을 하는 끔찍한 동지가 많은 이상 해방의 길은 점점 비틀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적극적 인식을 통해 얻는 만족감’










“내가 보기에 이들은 매우 행복한 듯 했다. 또 아마도 이들은 의식에 눈뜸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는 중국 프롤레타리아들로써는 내가 만난 최초의 집단일 것이다. 중국에서는 순종 속에서 만족을 구하는 일이 보편화되어 있는 반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을 통해 얻는 더 깊은 의미의 만족감은 좀체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5)










계급지배사회에서 피지배계급의 존재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은 투쟁으로 이어진다. 투쟁을 해가며 겹겹이 쌓여있는 억압의 기제들과 맞부딪치게 된다. 그 속에 더 깊고 과학적인 존재에 대한 인식이 있다. 만족감도 그 속에 있다. 하지만 점점 조용해져 자본의 늪에 빠져드는 이상 만족감은 좀처럼 깊어지질 않는다. 투쟁의 목표가 자본주의에서 그나마 진보적인 작은 조각으로 남으려 함이 아니라면, 우리의 상태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과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장애인 활동가 동지와 얘길 하다 많이 공감한 적이 있다. 그 동지는 야학을 알고 투쟁하는 동지들을 알기 전까지는 집에서 어머니와 거의 하루 종일을 함께 지냈다고 했다. 권리를 알고 투쟁을 알게 되면서 사람으로 사는 자신을 느꼈고,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단다. 그런데 하루는 집에서 어머니와 대화를 하는데 어머니가 화를 내시며 하는 말이. “나가서 뭐 하는 건 좋은데, 너 좀 변했다. 왜 이렇게 사사건건 불만이 많아졌냐~ 말이 많아졌어!”





그러고보면 나 역시 활동을 하게 되면서 그랬던 것 같다. 묶여있던 상태를 인식하고 깨부수고 나오는 해방의 과정은 그런 건가 보다. 말도 많고 불만도 많은...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집회 역시 좀 더 말도 많고 불만도 쏟아냈음 한다. 집회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공간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다듬어졌으면 좋겠다. 착취의 구조를 인식하고 그 속에 하나의 사람으로 자신을 인식해 투쟁에 함께하게 된 만족감에 주저앉아 어느새 또다시 스스로를 얼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자꾸 돌아보고 확인해 봐야 한다. 그럴때만이 우리의 투쟁은 다시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을 향하는 제대로 된 길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럴때만이 지금 입고 있는 낡은 계급지배사회의 옷을 벗고 새로운 인간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인간을 위한 낡은 인간의 몸부림을 쉬지 말자. <끝> <노사과연>






1) 지민주 2집 수록곡 ‘다했냐’ 중. 작사: 박현욱






2) 투쟁사업장을 중심에 놓고, 공동투쟁의 전선을 만들자는 주제를 가지고 만들어낸 집체문선이었다. 퍼포먼스와 ‘다시 바리케이트 위에’라는 노래에 맞춘 몸짓으로 구성했다. 






3) 집회 당일 전동휠체어를 탄 동지가 문선을 하는 중에, 그 다음 순서를 준비하는 분들이 그 동지의 이동경로에 넘을 수 없는 판넬을 미리 놓는 바람에 문선을 하던 동지가 휠체어에서 떨어져 날아갈 뻔하기도 하고 휠체어가 무대에서 떨어질 뻔도 했다. 또 당일 총연맹 위원장의 장애인 비하 발언이 있었다. 문선대 동지들은 뒤풀이 자리에서나마 총연맹 실무자에게 문제제기를 했고 이후 전장연의 문제제기와 총연맹 위원장의 반성과 사과가 있었다. 더 적극적인 실천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이후 연대 속에 서로를 더 올바른 주체로 세워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4) 골간의 강화로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지만, 다른 측면도 존재한다. 2004년 사회적 합의분쇄와 총파업사수를 기조로 집체문선을 준비한 율동문선대와 민주노총 총연맹 중앙의 논쟁이 있었다. 당시 영상을 담당했던 수도권영상패는 만약 총연맹 중앙에서 율동문선대를 물리적으로 막는다면 그 부분까지도 생중계하겠다고 뜻을 모았었다. 2004년까지는 큰 집회에 생중계를 담당했던 수도권영상패였는데, 그 때 이후로는 총연맹으로 노동자대회 때 집회 영상을 함께하자는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율동문선대로 함께했던 문화패가 한동안 민주노총의 노동자대회 때 중앙문선대로 조직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2010년 메이데이의 경우, 선언에서 연출을 제안받으면서 당연히 골간을 통한 조직을 요청했으나 산별연맹 단위에서 조직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담당자가 문선대 결합을 문의하는 현장패를 문선대로 연결시키지도 않은 경우도 있었다.






5) 에드가 스노우 지음. 두레출판사. ��중국의 붉은별 上�� 103쪽. 홍군에 대한 지은이의 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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