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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현장 >
제목 <2010년 상반기 금호타이어투쟁 평가> 2010년,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은 왜 투쟁을 멈추었는가?
글쓴이 취재 및 정리: 손미아 (편집위원) E-mail send mail 번호 140
날짜 2010-06-06 조회수 6141 추천수 150
파일  1275830763_금호.hwp

  













서론











서론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이 2010년 5월 10일 투쟁을 멈추었다. 예전부터 광주를 비롯한 전남지역에서 가장 강한 노동조합의 힘과 강한 노동자들의 단결력을 자랑하던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이 투쟁을 멈추었다는 소식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왜 그들은 투쟁을 멈추었는가? 과연 쌍용노동자 투쟁의 쓰라린 경험이 그들을 뒷걸음질치게 했는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취재자는 금호타이어 노동자 몇 분들과 전화통화를 한 후 시간을 내줄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광주로 달려갔다. 취재자는 5월 16일 일요일 아침 11시경 황룡강가에서 금호타이어 노동자들과 간단한 대담을 통하여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투쟁이 멈춘 근원은 지난 5월 10일 노사협정을 타결한 금호타이어 노동조합 집행부가 관료주의, 노사협조주의보다 더 오른쪽으로 간 “어용집행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쌍용노동자들의 대투쟁의 역사를 상기해야 한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 대투쟁의 가장 큰 의의는 비타협적인 투쟁을 통하여 노동자들의 기개를 전세계에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우리는 금호노동자들의 투쟁의 역사 속에서 부정할 것을 부정해야 한다. 그것은 누구도 노동자들의 투쟁을 멈출 수 없고, 그 운동은 역사 발전의 방향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1. 2010년 상반기까지 금호타이어노조 투쟁경과










2010년 상반기까지의 투쟁의 경과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2009년 12월 30일 금호그룹이 워크아웃 선언을 하면서 시작된다. 금호자본은 2010년 1월 6일 1차 워크아웃을 하기 전에 노동조합에게 동의서를 요구하였다. 처음에 노동조합이 거부하자, 1월 10일 사측은 노동자들에게 지불해야할 상여금을 체불하고, 모든 수당 등을 체불하였다. 2월 1일부터 채권단에서 요구안이 있기 전에 노동조합은 '노사자구안을 만들어서 정리해고를 피하자!'고 하면서 2월 1일부터 조사 교섭에 들어갔다. 조기교섭과정에서 사측은 바로 '정리해고를 하겠다'고 노동조합을 압박하였고, 이에 대해 노동조합은 '워크아웃이 발생했을 때 단 한명의 해고자도 없어야 한다'며 대응하였다. 노사협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4월 1일 노동조합은 회사 측과 잠정합의안을 체결하나, 4월 7-8일 현장 노동자들은 잠정합의안을 부결시킴으로써 투쟁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에 사측은 4월 10일 187명에 대해 정리해고를 단행하였다. 사측이 정리해고를 시행하자마자 바로 노동조합은 노사협상에 나섰고, 4월 18일 취업규칙확약서를 쓰는 조건으로 노사가 잠정합의안에 동의했다. 결국, 노사가 합의한 잠정합의안은 4월 21일 현장노동자들의 찬반투표에서 가결되어 2010년 5월 10일 노사 협상과정에서 정리해고명단에 있던 187명이 취업규칙확약서를 쓰는 조건으로 회사에 복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로써 금호타이어의 정리해고협상은 일단락되었지만, 취업규칙확약서의 내용이 워낙 굴욕적이어서 ("나를 다시 회사에서 고용해주어서 감사하고.." 등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해고통지서를 받았던 187명 중 5명은 취업규칙확약서를 안 쓰고 그대로 해고를 당하고 투쟁을 선도하는 길로 나서고 있다. 그 중 범대위 투쟁체에서 조직적으로 결의하여 자발적으로 해고를 당한 3명은 김승렬, 박현완, 허영대이다. 현재 이들 3명은 이후의 투쟁을 위해 공식적으로 해고되어 정리해고반대투쟁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 금호족벌체제의 자본축적욕이 만들어낸 금호자본의 위기 










금호자본이 왜 이렇게 정리해고를 강행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금호타이어 공대위 소속인 장갑곤, 김승철동지는 “사측이 정리해고를 할 명분이 안 되는 데도 불구하고 정리해고를 감행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올해 1년 생산물량이 가득 계획되어 있다. 경영권이 포기되어야 하는데, 회사의 압박카드가 먹혀들어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2010년 올해 투쟁하려는 의지만 있었어도 투쟁을 위한 조건이 정말 좋았다. 싸울 의지만 있었으면 충분히 싸울 수 있었다.”라고 하면서 투쟁이 멈춰진 것에 대해서 매우 분통해 했다.





장갑곤동지는 이어서 "사측이 대우건설 인수를 시도하면서 회사가 위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금호자본은 10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욕심을 내다가 위기가 오니까 정리해고의 칼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금호자본은 2005년 5000억의 은행자본을 빌려 대우건설을 인수했고, 2006년 대한통운을 인수했으며, 문어발식 기업확장을 계속하여 17개 계열사에서 53개 계열사로 확장하였다. 결국 금호자본의 자금조달능력이 감소하고, 유동성위기가 증가하자 정리해고카드를 내밀게 된 것이다. 현재 부채는 128%에서 500%이상 되고 있다. 금호자본가들이 경영을 무리하게 하였고, 그리하여 2008,9,10년에 정리해고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현재 금호자본이 워크아웃상태까지 오게 된 과정이 김우중이 기업을 확장해가는 양상과 맥락이 같다."면서 금호자본의 무리한 자본축적욕구가 금호자본위기의 원인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렇다면, 금호자본1)은 그동안 어떻게 경영을 해왔는가? 금호자본의 위기는 어디에서 왜 발생했는가? 한국의 타이어 산업은 북미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수출을 해오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지만, 그 발전의 본질은 노동자들의 장시간의 노동 및 야간노동시간의 연장과 작업속도의 증대로 인한 절대적 상대적 잉여가치의 증대로 인한 것이었다. 타이어산업은 거대자본이 투하된 기계장치산업이어서 자본은 불변자본의 절약을 위하여 하루 24시간 공장을 가동시키고자 하였고2),  자본은 타이어공장 노동자들에게 24시간 공장가동을 위해서 야간노동과 노동일의 연장을 하게 함으로써 잉여가치획득의 극대화를 추구하여 왔던 것이다. 또한 타이어산업은 노동생산성이 고도화된 기술집약적인 산업이어서 거의 모든 공정이 자동화되어진 공정들이어서 노동자들은 기계에 부속품처럼 기계의 작업속도에 맞추어서 노동을 해야하므로, 자본의 잉여가치획득의 욕구에 따라 작업속도와 노동강도가 계속 증가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금호자본의 잉여가치 획득의 욕구는 실제로 금호타이어에서 매출총이익의 증대, 영업이익의 증대, 영업이익률의 증대로 귀결되었다. 이렇게 하여 금호타이어 노동자들도 다 알다시피, 금호자본은 1997년말 아시아에서 터진 경제공황의 시기조차 타이어산업의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경제공황의 시기에도 한국의 타이어산업은 막대한 이익을 냈다3). 금호타이어의 매출총이익4)을 보면, 경제공황 직후인 1999년 4005억, 2000년 3562억원, 2001년 3774억원, 2002년 4007억원으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영업이익5)을 보면, 1999년에는 1,446억원, 2000년에는 1,197억원 2001년에는 1,375억원, 2002년에는 1,792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은 이미 막대한 영업이익을 금호타이어 사측에 무상으로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업이익률은 1999년 10.4%, 2000년 8.9 2001년에 9.5%이었다. 이와 같이 금호노동자들은 금호자본에게 매우 높은 수준의 잉여가치를 생산해 주었다.





1997년말 경제공황 이후 세계경제회복을 배경으로 하여 2004년-2006년까지 한국의 타이어 산업은 계속적으로 호황이었다. 2004년에는 세계경제가 회복되면서 타이어 산업 호황을 맞고, 2005년-2006년에도 지속적으로 타이어산업의 호황에 따라 금호타이어도 전성기를 누렸다. 2006년은 세계경제의 팽창확대와 자동차산업의 확대기여서 자동차 판매량 증대로 타이어 시장의 호황을 맞았다. 국내 타이어 업계가 중국에서 호황을 누리는 것은 급격히 늘어나는 중국 내 자동차 생산량 및 판매량과 맥을 같이한다.





이렇게 경제가 호황이었던 시기에 금호자본은 무엇을 했는가? 2006년 호황시기에 금호타이어 자본은 호황으로 획득한 잉여가치를 가지고 인수, 합병, 확장에 매진하게 된다. 그리하여 금호자본은 대우건설 및 대한통운 인수를 통한 사세 확장과 주요 계열사들의 신성장에 올인하였다. 또한 금호자본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인수뿐 아니라, 해외공장과 국내공장확장에 매진한다. 금호타이어자본은 2006년 한해에 중국의 난징, 톄진, 창춘, 빈증성에 해외 공장을 건설하였고, 금호중국기술연구소를 준공함으로써 해외 현지에서 제품ㆍ기술 개발에서부터 생산까지를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글로벌 체제를 만들었다6). 또한 금호타이어는 중국에 이어 베트남에까지도 현지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빠른 행보에 나섰다”7). 한편, 금호타이어자본은 2005년 12월 연산 200만개 규모의 평택공장을 완공한 데 이어 2006년 하반기 공장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8).





족벌체제로 구성된 금호자본은 2006년 당시 기업인수합병과 해외 및 국내 공장 신설과정에서 경영에는 자신있다는 투의 망발을 일삼았다. 그들의 망발이 매일 신문에 오르내릴 정도로 말이다. 2006년 당시 박삼구 금호 아시아나 회장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한꺼번에 인수하더라도 자금동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하였고, “지금이라도 1조 5000억원짜리 수표를 끊을 수 있다”9)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당장의 현안으로 떠오른 대우건설 인수와 관련해 “이미 2조원대의 현금 동원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일부 재무적 투자자와 협력하면 큰 부채없이도 대우건설 인수를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10). 서울경제는 그 당시에 “박 회장은 특히 대우건설 인수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들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룹이 올해를 기점으로 해외 사업을 더욱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성과 창의성을 겸비한 인재 확보가 최우선 과제라는 판단에서다.11)”라고 적고 있다. 신훈 금호산업 부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해를 기업 인수ㆍ합병(M&A)과 해외건설시장 진출의 원년으로 삼겠다”며 “대우건설 인수가 성공할 경우 동남아와 중동지역으로의 건설사업 확대의 교두보가 마련될 것12)”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망발은 1년도 못되어 바로 그들의 경영위기로 터져나왔다.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가 2006년 9월말에 마무리 된 후, 바로 문제는 터져나왔다. 금호그룹은 자기 덩치보다 큰 대우건설을 단독으로 인수한 결과, 모든 사람들이 우려했던 바대로 차입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금호그룹의 신용등급은 급격히 떨어지게 되었다. 금호타이어자본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순차입금은 2007년 현재, 2005년말 대비 6500억원 증가한 1조1000억원이었다. 대우건설 인수과정에서 금호그룹 전체의 2006년말 기준 총 차입금이 2조906억원까지 증가했다. 결국, 금호자본의 무리한 대우건설인수는 2009년 마이너스의 영업이익을 가져오게 된다13).





2009년 금호그룹은 결국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합의 하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신청을 하였다14). 현재 금호그룹의 금융권 부채는 총 18조여 원으로 이중 금호산업이 약 2조 원, 금호타이어가 약 1조6000억 원이다. 그 당시 채권단은 금호그룹 주력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경우 4조 원 규모의 대우건설 풋백옵션15)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산업은행이나 채권단 공동으로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금호자본이 워크아웃을 신청하자마자 여러 언론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금호그룹이 벼랑 끝 위기에 처한 것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 무리한 M&A가 화근이다16)”, “부실의 근본 원인은 2006년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17)”라며 금호자본의 위기는 무리한 자본의 집중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2010년 초에 금호타이어 공장에서는 생산이 계속 증가하고 판매가 순조롭게 되어 2008년 3분기 이후 6분기 만에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18), 채권단과 금호자본은 금호타이어노동자들에게 강도높은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금호타이어자본은 2010년 3월 3일 1,199명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노동청에 제출했다. 193명을 정리해고하고, 1,006명을 하도급 업체로 내보낸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19).





이것은 누가 보아도 뻔하게 금호자본이 노동자들에게 자행하는 폭력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왜 금호타이어자본은 이러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일까? 금호타이어자본은 임금삭감, 구조조정 등 비용절감을 통해 영업이익을 내겠다는 것이다 20). 그러나 이것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금호타이어 박삼구회장이 자신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21). 금호타이어 자본은 2009년 워크아웃 이후에도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금융권에 차입금상환으로 바쳐왔다22). 그런데도 불구하고, 2010년 3월 금호자본이 금호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의 칼날을 폭력적으로 휘두르는 것에 노동자들이 분노해야하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것이다 .





세계공황이 시작된 지금 자본가끼리의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금호산업 경영정상화 방안에 대한 투자자들의 합의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되어, 산업은행은 우선 전략적 투자자 없이 대우건설을 인수하고서 추후 마땅한 기업이 나타나면 대우건설을 넘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금호자본이 자본가끼리의 경쟁에서 몰락하게 된 본질적 이유는 무엇인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잉여가치가 끊임없이 자본으로 재전환해 들어가는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일정한 정도의 자본축적이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전제조건이라면, 이제 거꾸로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자본의 가속적 축적의 원인으로 된다. 그리하여 자본축적에 따라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발전하고,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따라 자본축적이 발전한다.23)”라고 하였다. 현대 자본주의하에서 가장 양심있는 자본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은 노동자들이 생산해 낸 잉여가치부분을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적 축적의 방법24)이기도 하므로 어쩌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불가피한 자본주의적 축적의 법칙일 것이다.





금호자본은 자본의 집적, 집중을 통한 자본축적과정에서 성급함으로 몰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금호자본은 이 몰락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모든 죄값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금호자본은 어떻게 노동자들을 수탈하였는가? 첫째, 자본의 축적과정, 즉 잉여가치의 자본으로의 재전환과정에서 부당한 방법을 썼다. 금호자본은 현재 생산된 잉여가치를 자본으로 전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미래에 생산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잉여가치의 부분을 미리 빚을 내어 타기업을 인수합병하였다. 금호자본이 2006년 대우건설 및 여러 대기업을 인수하고 해외생산공장설립을 증대해 나갈 때에는 전세계적으로 호황의 말기였던 것이다. 2008년 공황에 접어들자, 빚으로 확대재생산을 해 놓은 자본의 축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어리처럼 불어나는 이자를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둘째, 노동자의 상여금을 줄이고 노동인력 감소와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받아가야 할 부분인 노동력유지비를 폭력적으로 빼앗아 자본의 축적에 포함시킨 것이다. 우리가 본질을 명확히 살펴보면 이러하다. 즉, 표면적으로는 금호자본이 워크아웃을 신청하였기 때문에 채권단이 금호타이어의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금호자본 자신들이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채권단의 중심세력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고양이가 낯가리고 아웅한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그 채권단의 주식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 바로 금호족벌이 아닌가? 그러니, 그들은 산업은행과 채권단에 겉으로는 살려달라고 하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들이 그토록 잉여가치를 착취해온 노동자들에게 이제는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가져가야 할 부분마저도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에 노동자들은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금호자본의 워크아웃의 본질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셋째, 금호자본에 대해서 노동자들이 분노해야할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금호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금호 자본은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잉여가치를 이용하여 노동자자신을 공장밖으로 내쫒고 실업상태로 내몰며 상대적 과잉인구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금호자본은 이미 취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축출하려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자본주의생산방식에서 자본의 축적은 자본구성의 변동, 즉 불변자본에 비한 가변자본의 상대적 감소를 가져오고, 상대적 과잉 노동인구를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25). 이렇게 해서 자본은 자신들의 가치증식욕을 위해 언제나 착취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는 산업예비군을 만들어내는 것이다26).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발전과 노동생산성의 발전[이것은 축적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이다]으로 자본가는 개별노동력의 착취[외연적 또는 내포적]를 증대시킴으로써 종전과 동일한 양의 가변자본의 지출로 더 많은 노동량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축적이 진행됨에 따라, 한편으로는 더 큰 가변자본이 노동자의 수를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더 많은 노동량을 운동시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크기의 가변자본이 같은 양의 노동력으로 더 많은 노동량을 운동시키며, 그리고 끝으로 더 숙련된 노동력대신 더욱 큰 수의 질 낮은 노동력을 운동시킨다.......





노동자계급의 일부에게 과도노동을 시킴으로써 나머지 부분을 강요된 나태에 빠지게 하는 것과, 또 그 반대로 산업예비군 때문에 취업자가 과도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개별 자본가들의 치부수단으로 되며, 동시에 사회적 축적의 진전에 대응하는 규모로 산업예비군의 생산을 촉진한다27).










이것이 바로 금호자본이 대우건설을 합병한 이후에 구조조정을 하려고 하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넷째, 금호자본의 위기는 세계공황의 시작기에 터져버렸다. 바로 호황이 지속되었더라면 어쩌면 금호자본의 무한한 축적욕은 노동자들의 잉여가치의 생산으로 충족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금호자본이 대우건설을 인수하자마자 바로 세계공황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금호자본이 인수한 대우건설이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고 말았다. 바로 대우건설에서부터 시작된 과잉생산위기가 금호자본 전체의 이윤축적구조를 깨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은 이윤을 추구하지 못한다면 몇날 며칠을 굶은 흡혈귀와 같다! 그래서 금호자본이 누가봐도 말도 안 되는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나선 것이다. 금호자본은 바로 재수없게도 호황의 끄트머리에서 공황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을 듣지 못한 채, 과잉생산위기에 빠져들어가는 대우건설을 부여잡음으로써 동반몰락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그들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3. 협상과 타협으로 사측에 굴복한 금타 노동조합 집행부










금호타이어 사측과 노동조합과의 협상의 전개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금호타이어 사측은 지난 2009년 12월 30일 워크아웃 신청을 한 후, 2010년 3월 3일 오후 1시 경 조합원 193명의 정리해고 예고와 1006명의 아웃소싱을 통한 도급화 계획을 노동청에 신고하고, 문자 메시지와 통지서를 해당 조합원 1,199명에게 통보하였다. 애초 금호타이어 사쪽이 낸 구조조정 안은 ‘기본급 20%, 상여금 200% 삭감, 1,199명 해고 및 도급화’다. 생산직 4,100여 명 중 30%에 가까운 인력 구조조정과 30% 임금 삭감 안이었다. 이런 사쪽의 구조조정 안은 기업정상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박삼구 금호그룹 일가의 소유권 확보를 위한 구조조정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재벌 일가의 잘못된 경영과 투기적 행태가 낳은 경영실패 책임론이 일었지만 회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금호타이어지회(대표지회장 고광석)는 3월 2일 회사 측과의 10차 교섭결렬 선언 이후 확대간부회의를 진행하고 상무집행위원 전원이 철야농성에 돌입하였다. 또한 발빠르게 3일 쟁의대책위원회를 소집하고, 노동청에 쟁의행위 조정신청서를 제출하였다. 3일 사측의 정리해고 예고 통보 이후 지회는 즉시 조합원 선전전을 진행하고, 천막농성과 함께 지회 민영선 수석부지회장과 금호타이어곡성지회 임채균 사무장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이때까지는 노동조합 집행부가 잘 대처하였다. 그러나, 노동조합 집행부가 투쟁을 한 기간은 단 며칠에 불과했다.





노동조합은 바로 노사협상에 들어가 노사잠정합의안을 도출하게 되는 것이다. 금속노조 금호타이어 지회는 4월 1일 회사 쪽과 임금, 단체협상에 잠정합의안을 도출한다. 금호타이어 노사는 이날 22차 본 교섭을 갖고 ‘기본급 10% 삭감 5% 반납, 상여금 200% 반납, 193명 정리해고 유보, 597명 단계적 도급화, 워크아웃 졸업 때까지 임금 동결, 현금성 수당 일부 삭제, 워크아웃 졸업 때까지 복리후생 중단 및 폐지’ 등에 잠정 합의했다. 그러나, 금속노조 금호타이어 지회가 4월 7일과 8일 실시한 2010년 임금·단체협상 잠정합의안 찬·반 투표가 부결됐다28)29).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은 잠정합의안을 부결시킴으로써 그들의 투쟁의지를 보여주었는 데도 불구하고, 2010년 4월 14일, 금호타이어노조가 먼저 회사 쪽에 교섭재개요청을 했다. 그 당시 ��참세상��의 김용욱기자는 “4월 7-8일 조합원 투표에서 잠정합의안 부결이후 노조가 현장 조합원들을 조직하면서 힘을 먼저 키운 후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선 투쟁조직, 후 교섭론이 우세하자, 노동조합은 지회가 13일 교섭 재개 성명을 낸 것은 선 조직화 여론에 맞서 교섭 우선론에 힘을 싣겠다는 일종의 여론 작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즉, 노동조합 집행부가 현장의 투쟁의지를 일방적으로 꺾고, 타협과 협상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보고 있다30).





결국, 2010년 4월 18일 금호타이어 노사가 2010년 임금-단체협상 잠정합의안을 맺게된다. 이 잠정합의안은 1차 잠정합의안의 ‘정리해고 유보’안에서 ‘정리해고 철회’안으로 바뀐 것 외에는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유보가 철회로 바뀌긴 했지만 회사가 투쟁을 주도하는 조합원들게 사실상 항복을 강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31). 결국 4월 21일 금속노조 금호타이어 지회 2010년 임금-단체협상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가결되었다32).





합의안이 가결되자 노조집행부는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사측에 굴욕적으로 항복할 것을 호소하였다 33). 지난 4월 22일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가 제출한 임단협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를 통과하며 금호타이어 지회의 파업 투쟁이 종결되었다. 이번 금호타이어 정리해고협상과정은 이례없이 사측이 정리해고를 발표한지 한달도 못되어 모든 협상을 노조가 먼저 제기하여 끝내버린 상태이다.





이번 협상과정을 지켜본 많은 이들은 노동조합이 투쟁력을 상실한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한지원은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이 2010년 영업이익을 냈고, 당기순손실이 모두 이익으로 전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금호타이어 박삼구 회장이 채권단으로부터 자신의 경영권을 보장받기위해 강행하는 구조조정에 백기를 들어 노동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지도력을 상실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한지원은 “노동조합의 양보합의안은 사실상 노동자 임금 삭감으로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을 보장해 준 것 이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라고 언급하고 있다34).





또한 이번 노동조합집행부의 양보는 무엇보다 193명의 정리해고 유보로 597명의 단계적인 도급화를 인정하게 됨으로써, 생산직의 10%에 가까운 인력의 비정규직화를 받아들이게 되어 추가 구조조정의 틈을 열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35).





금호타이어 노동조합 집행부는 안타깝게도 노동자 계급의식을 잃어버렸다. 지금이라도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단결력을 통하여 노동자계급의식을 고취해야 한다.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은 노동자계급의식을 상실한 노동조합 집행부를 견인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노동자계급의식에 입각한 지도력을 세워야 한다.















4. 금호타이어 워크아웃 대응을 위한 현장공대위 활동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싸움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금호타이어 현장 조직들은 현 노조 집행부의 굴욕적 임단협 합의와 무기력한 집행력을 비판하며 집행부 탄핵 운동을 벌이고 있다. 금호타이어 공대위는 조합원 1/3 이상이 발의할 경우 총회를 소집하게 되어 있는 금속노조 규약에 근거하여 3기임원 탄핵을 위한 총회소집 요청을 3천5백여 조합원 중 2천여 명의 서명으로 금호타이어 지회에 제출한 상태다.36)





금호타이어 워크아웃 대응을 위한 현장공대위 (이하 공대위)는 2010년 1월 19일 민주노동자회, 현장조직건설준비위, 개별적인 노동자들이 모여서 제안서를 돌리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3인의 공동대표 (조삼수, 허용배, 장갑근)로 구성된 공대위는 노동조합에게 사측에 대해 행동을 같이 하자고 면담을 몇차례 요구했는데, 노동조합은 공대위와 면담은 일체 없다고 하면서 거부하였다.





이번 인터뷰에서 동지들은 공대위와 노동조합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공대위는 2010년 5월 3일부터 5월 16일 동안, 현집행부에게 5월 23일까지 현집행부의 총사퇴를 표명해라! 안 그러면 불신임투표에 들어가겠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2010년 4월 29일 ‘조합집행부는 탄핵을 받아야할 사유가 안 된다!’라고 하며 탄핵임시총회의 소집을 거부하고 있다. 현재 공대위가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에 요구하여 조삼수 공대위 대표가 총회소집권자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노조집행부는 총회도 거부하고 금속에서 총회대표위로 선정한 조삼수동지도 못받아들이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총회와 관련해서 지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금속에서 지명된 조삼수를 인정할 수 없고, 법적으로 소집권자 지명 무효 가처분을 내고 탄핵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탄핵무효가처분 신청을 제출하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 공대위는 왜 노동조합을 탄핵하려고 하는가? 한 동지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09년 8-9월에 똑같은 정리해고 투쟁이 있었는데, 임금동결, 양보로 정리해고를 철회시켰는데, 실제로 정리해고 과정에서 임원선거가 있었는데, 그 당시 금타의 고광석지부장은 ‘규칙대로 한다’고 하면서 정리해고 투쟁기간 동안에 임원선거를 시작하여 지회장 재선에 도전하여 정리해고가 진행된 상태에서 지회장선서를 시작하였다. 고광석지부장은 당시 ‘정리해고 투쟁을 마무리 짓기위해 내가 위원장을 하겠다’라고 하면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고광석이 위원장후보로 나설 때에는 사측을 ‘사단을 내겠다’고 한 후, 당선된 지 2일만에 양보안을 내게 된다. 이 상황을 보고, 조합원들은 고광석위원장에 대한 1차탄핵을 시도한다. 그 당시 고광석을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주축은 민주노동자회, 정투위, 정리해고 철폐투쟁위원회 이었다. 1차 탄핵투표에서 63%의 탄핵지지율이 나왔으나, 147표가 부족하여 탄핵이 성사되지는 못하였다.”





공대위가 부르주아 언론들에게 ‘노노갈등을 유발한다’라는 악선동을 당하면서도 노동조합 집행부를 ‘탄핵’하려는 이유는 처음부터 노동조합이 양보교섭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데 혐의를 두고 있는 것이다. 공대위는 노동조합이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해서는 양보할 수 밖에 없다’라는 말로 계속적으로 투쟁을 회피하고 양보교섭을 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공대위에 속한 한 동지는 현장에서 공대위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다고 한다. 현장은 공대위에 힘을 실어줄 수도 없고 공식적으로 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기는 하나, 노동조합 집행부는 이미 현장 조합원들에 의해 신뢰를 잃고있다는 것이다.





한 동지는 “지금까지 공대위는 대외적인 집회에 조직을 동원하고 공대위 선전전을 진행했다. 금호타이어 해고철폐위원회를 중심으로 1달 동안 투쟁을 전개했다. 노동자들은 공대위에 대한 신뢰를 하기는 하나, 직접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5.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투쟁의 역사










과거 금호타이어 노동운동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였다. 금호타이어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된 첫 시기를 금호현장에서 보낸 장갑곤 동지가 다음과 같이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의 투쟁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1987년 대투쟁 이후, 금호타이어에서 민주노조를 세우기 시작했다. 1989년 파업이 두달간 지속되었다. 1994년 이전까지만 해도 위원장에 당선되면 직권조인을 하는 관료주의적인 악습이 남아있었다. 이를 깨기 위하여 1993년 범민주진영은 배현수 후보를 내세워 투쟁에 임했으나, 사측에 의해 6개월 선거후 박탈당했었다. 사측선관위(사측)는 경고를 하였다, 선거날 무효표처리하는 과정에서 사측이 후보를 박탈시켰다. 이때 가장 활발한 투쟁을 하였다. 조합원들은 사측에서 내세운 노동조합위원장을 투표로 부결시키고, 범민주진영에서 장영렬 후보를 내세워 당선시키고, 1994년 임금인상과 조합원 총회를 위한 파업을 하였다. 6월 25일 파업을 시작하여 6월 29일 공장을 침탈당하고 2차 근거지를 전남대학교로 옮겨가 1달간 장외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때 전 조합원이 3400여명이었는데, 3100여명까지 투쟁에 결합하였고, 쇠파이프를 2500여명이 들었었다. 화염병도 공장에서 다 만들었다. 이후에 복귀선언을 하였다. 이것이 벌써 15년전의 이야기이다. 이때 41명이 구속되고 몇억의 손해배상을 당하였지만, 1994년 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의 시작이었다.”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투쟁의 역사는 ��민주노조 투쟁과 탄압의 역사��에서 아래와 같이 기술되었다.










“금호타이어는 악명높은 조합 탄압 사업장이었다. 87년 이후 해마다 임단협 협상시 총회를 통한 임단협안 체결을 거부하여 결국 직권조인을 하게 된 위원장이 매년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그러려니와 94년도에도 임단협 협상이 시작되자 조합간부들이 조합원을 만나려는 것을 현장출입통제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가로막았다. 또한 회사 측은 교섭에 들어간 상태에서 부위원장을 징계에 회부하고 해마다 되풀이되어 온 체결권 시비는 물론 타결시까지 일체의 투쟁을 안 한다는 것에 합의하라는 등 조합을 자극하는 행동으로 일관하였다. 결국 6월 25일 조합은 파업에 돌입하였으나 파업에 돌입하자마자 헬기의 정찰이 시작되고 금호 대표이사, 전남도경, 시청 등의 명의로 ‘불법파업’이라는 내용의 선전물이 살포되었다. 이후 6월 28일 저녁부터 29일 새벽에 걸쳐 공권력이 투입되는 등 정부와 회사 사이에서는 파업진압을 위한 시나리오가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다. 공권력 투입과 조합원 연행과정에서 경찰은 무자비한 폭행을 가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공권력 투입 후에도 노동자들은 파업대오를 유지하며 완강히 투쟁하였으나 정부와 사측의 상상을 초월하는 총체적 탄압에 못이겨 결국 7월 22일 복귀를 결정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회사와 정부에 의해 25명이 구속되고 152명 손배청구, 46명 고소·고발, 8명이 공식수배되었다. 게다가 연행된 노동자들은 고문까지 당했으며, 투쟁을 지원하던 광노협 의장 김상진은 경찰의 사주에 의해 폭력배에게 테러를 당하는 등 탄압은 극에 달하였다37)










그러나, 그 이후 노동운동이 발전적이지는 않았다고 장갑곤동지는 말한다.










“1996-1997년 노개투 투쟁은 형식적이었다. 3-4일 회사도 휴업을 때리고, 노동조합도 복귀 못하게 하였다. 그러던 그 집행부가 IMF를 견디면서 임금동결 등등 사측의 요구를 다 들어주기 시작했다. 금호타이어는 IMF때 가장 큰 흑자를 냈으나, 사측은 곧 죽는 시늉을 하였다. 2000-2010년까지 임투가 지속되었고, 17대 (2003-2004년)때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시켜내는 투쟁을 하였다38). 이때 정규직화투쟁으로 직무도 정규직화해내고, 비정규직노동인력도 정규직화해 내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하고, 480명을 정규직화 시켰다. 직무도 정규직화 하였다. 그러나, 2008년 금속1기 집행부가 되면서 정리해고 문제로 크게 꺽이기 시작하였다. 그때 정리해고문제가 나올 때, 임금양보 대신 생산성향상을 하면서 원하는 임금확보하는 것이 Big Deal이 되었다. 이때부터 노동조합이 양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2008년 이후, 2009, 2010년에 오면서 계속 정리해고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분명, 2005-2008년간 3년 연속 무파업 사업장을 기록했던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투쟁과정에는 한계가 있다.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은 그들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이제 다시 1994년 투쟁의 역사를 복원해야 한다.















6.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이 투쟁을 멈춘 이유










(1) 노동조합 집행부에 당선되기 위한 선거야욕이 빚은 참사










2010년 5월 10일 금호타이어 노동조합 집행부는 투쟁을 멈추었다. 아니, 노동자들의 투쟁의 동력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고광석 집행부는 고광석 개인의 한계만이 아니라, 실제 사측에 의해 움직인 집행부였다고 말한다. 누구는 심지어 이렇게도 말한다. “회사와의 선을 넘어야 할 지, 넘지 않아야 할 지 판단해야 하는데, 회사와의 선을 넘은 것이 아니냐?”





그런데, 처음부터 사측의 사주를 받는 또는 사측에 의해 구성된 어용집행부였을까? 아니다. 고광석 집행부가 "어용"집행부로 귀결된 배경에는 탄생의 비밀이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노동자들에 의하면, 고광석집행부는 그동안 대기업 현장조직들의 대기업 선거관행의 부작용이 낳은 사생아이다. 구악습의 오물을 뒤집어쓰고 나온 사생아였던 것이다. 광주 금호타이어 공장에는 몇 개의 현장조직이 있었다. 1994년 금호타이어 노동자 대투쟁을 주도했던 현장활동가들에 의해 구성된 '현장의 힘'이 있었고, 또 사상적인 입장을 달리했지만 현장에서 입지를 넓혀가던 '민주노동자회'가 있었다. 특히 1994년 파업세력들이 총합된 것이 현장의 힘이었다. 이 두 조직의 흐름이 노동조합 집행부 선거전을 자신들의 운동의 중심으로 놓게 되면서 운동이 변질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두 조직의 흐름이 전투적이고 투쟁적이고 건강함 흐름이라기보다는 집행부 장악에 많은 힘을 쏟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다보니, 중요한 사안에서도 조합원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노동조합 집행부 선거과정에서 현장 안에서 친회사에 가까웠던 세력들이 현장의 힘에 합류하게 된다. 그런데 이 세력들은 애초부터 민주노조운동을 하던 집단이 아니었다. 현장의 힘은 선거에 눈이 어두워 선거용으로 '친회사 어용세력'과 손을 잡게 되었다. 2009년 고광석이 선거에 나오면서 선거기간동안에 실천연대라고 하는 회사어용조직이 현장의 힘에 결합하면서, 현장의 힘 소속이었던 고광석이 실천연대소속의 세력들과 행보를 같이 하면서 노동조합 집행부에 당선되게 된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때부터 금호노동조합은 어용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광석 집행부가 당선된 2009년 이후, 현장의 힘은 고광석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장의 힘에 계파가 나누어져 있었고 계파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현장의 힘이 처음부터 무리하게 '친회사 어용세력'과 손을 잡게 된 배경에는 다른 현장조직인 민노회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 있었다. 민노회의 힘이 확대되어가고, 현장의 힘이 선거에서 당선되어야 하니까 그 진영과 손을 잡게 된 것이다. 한편, 현장 노동자들이 현재의 세력을 집행부로 선택한 반대급부로 그동안 여러번 노동조합집행부에 당선되었던 민노회세력이 노동조합 집행부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준 점이 깔려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고광석, 황경순 등도 현장의 힘의 투쟁파에 속해있었는데, 이들이 투쟁파 내에서 힘이 약해지자, 친회사 세력과 힘을 합하여 집행부에 당선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번 대담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집행부는 민주노조를 할 세력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원칙과 기풍과 무관한 세력이었다는 것이다. 2010년 투쟁과정에서 집행부에 속해 있는 이 세력에 의해서 '노사합의'가 매우 순조롭고 빠르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현장조직의 한계에 대해 이번 대담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전에는 현장조직에 보수(어용)세력이 못들어 왔으나, 지금은 알게 모르게 보수(어용)세력이 들어와 있다. 현장이 경제투쟁에 매몰되다보니 이런 문제가 있다. 운동노선이 무너진 것이다. ”





“고광석은 조합활동을 했을지언정 노동운동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 사측의 워크아웃에 떨었을 것이다”










한편, 전화인터뷰에 응했던 광주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모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수언론이 노노갈등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명백히 노노 간의 대립갈등이 아니다. 처음부터 어용과 민주노조를 분리하고자 하는 투쟁이다. 빨리 시급히 힘을 조직해서 집행부를 뒤집어 엎는 것이 금호타이어의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현장 대기업운동들이 집행부 장악을 위한 활동으로 전락해서 올바른 원칙과 자세, 노선, 사상에 기반한 조직확산과 활동이 아닌, 선거집권을 위해서 이 세력 저 세력이 규합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노동운동을 추진해갈 세력, 소위 금호집행부를 같이 했던 현장의 힘도 동화되어버리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결국, 현장활동가들이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함으로써, 조직 내로 끌어들인 세력에 의해서 점령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운동의 건강한 측면보다는 집권욕에 눈이 멀게 되고 자충수를 두었다. 현장세력에 파고들어온 어용세력이 너무 비대해져서 내부의 후보경선이나 각종 사업에 두드러지게 되면서 현 집행부가 올라오게 되었다. 이 집행부에 이의제기를 했으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집행부가 집행을 했는데, 이런 과정을 놓고 보면 이미 예견되었었다. 이후에 현장의 힘의 일부가 탈퇴하고 나오게 되었는데, 이 현상이 단지 금호타이어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심각성이 더 크다. 최근에 집행부는 탄핵문제랄지 각각의 과정에서 금속노조의 지침도 거부하고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 집행부는 자기들이 있어야 할 곳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노사협조주의와 회사 측이 용인하는 범위 안에 안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다. 어용도 이런 어용이 없다. 이것을 까부수고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공대위에게 위안과 희망이 있다. 그러나, 공대위도 이러한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공대위가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다. 공대위가 새롭게 탄생하지 않는한 새로운 역사를 쓰는데 어려움이 있다."















(2) 금속노조 등 노동조합 상층부의 관료주의적이고 타협적인 태도










금속노조 등 노동조합 상층부는 금호노동조합 집행부가 굴욕적인 협상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금속노조 등 노동조합 상층부의 관료주의적이고 타협적인 태도와 입장이 금호노동조합 집행부의 굴욕적인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그 이유는 첫째, 금속노조는 금호타이어 자본의 본질을 보는 측면에서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금속노조 이상호연구위원은 “대우건설의 지분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악성채무를 몰아넣는 방식으로 워크아웃을 추진하고 있다”며 “한마디로 배드 컴퍼니(Bad Company)로 분류된 금호타이어는 그룹 부실경영의 최대 희생양”이라고 했다. 이러한 분석은 마치 금호타이어 자본에게 ‘희생양’이라는 면죄부를 부여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39).





또한 이상호연구위원은 “금호타이어사태의 원인이 사측이 주장하는 고임금이나 고비용이 아닌 방만한 경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정리해고만을 고집하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며 “사측은 채권단의 요구를 빌미로 정리해고를 강행하기보다는 노사합의에 기반 한 비용절감 방안으로 금호타이어 경영정상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사측이 노사협상에 나설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상호연구위원은 또 “노조가 인위적인 인력감축이 전제되지 않는 경영정상화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 있음을 밝힌 바,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위해서는 사측이 먼저 고용유지원칙을 기본으로 하여 강제적인 해고조치를 철회해야 한다”고 하면서, 노조에 대해서도 이상호연구위원은 “타의에 의해 발생한 기업위기라고 하더라도 경영상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파국을 막기 위한 전향적인 조치로서 고통분담방안에 참가해야 한다”며 “기존 임금 및 복리후생에 대한 한시적 삭감 및 유예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최대한의 고용유지와 노조기본활동에 대한 보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40). 결국, 그는 노동조합 집행부로 하여금 협상에 나서도록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





이상호연구위원은 “금호타이어가 현재 워크아웃 상태지만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법정관리로 넘어갈 가능성 또는 상존한다”며 “작년 쌍용차사태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시간은 결코 노조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상황의 종결을 제안하고 있다41). 그러나 이글의 앞부분에서도 밝혔듯이, 금호자본의 운명은 그들 족벌의 축적욕구가 만들어낸 것이고 자본가끼리의 경쟁에 의해 결정될 것이지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주고 타협해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전혀 아니다. 이 점에 있어서 이상호 연구위원은 자본의 문제를 노동자의 문제로 이전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준) 한지원도 “금속노조와 지역지부는 금호타이어지회가 이러한 양보교섭안을 작성하는 것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다.”며 금속노조 및 상층노조 관료들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42).










(3)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의식발전의 한계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투쟁이 멈춘 이유 중의 하나로 우리는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의식발전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1987년 이후 전남지역에서 가장 강렬하게 투쟁했던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이 투쟁을 멈추고 타협과 협상의 테이블에 갖혀버린 이유가 무엇인가? 





인터뷰에 참가했던 한 동지는 우선적으로 조합원들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조합원들 자체가 주체로 서지 못하고 몸을 사리고 있었다. 누가 불을 지르면 바로 일어서는 기풍이 있었는데, 노동조합이 사측으로부터 워낙 협박과 강제를 하다 보니 조합원 스스로 낮추어 버렸다.”










이 동지가 이야기했듯이, 현장 노동자들은 누군가 불을 지르면 바로 일어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동지는 이어서 “현장활동가들이 서지 못하는 이유는 금호타이어 투쟁이 활동가를 중심으로 해오긴 했는데, 조합원 스스로 한 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한쪽에서 억눌려버리면 억눌리게 되고, 강한 집행부가 나오면 따라 하기도 하는데, 스스로 하지는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라고 말한다.





금호타이어의 한 노동자 동지는 지난 10년 동안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이 쇠퇴하였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94년 이전에 조합원의 불만이 팽배했었다. 1994년 이전에는 관리감독체계가 심했다. 생산을 적게 하거나 불량을 많이 내면 대기시키고, 조인트 까고, 남으라고 하면 남아야 하고...... 그래서 노동자들의 불평이 심했다. 임금도 중소기업 수준밖에 안 되었다. 그러다가 1994년 이후 폭발했다. 그러나, 그 이후 10년간 무사안일에 빠졌고,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을 높이지 못했다. 큰소리치는 활동가에게 모든 것을 의존했는데, 큰 소리치는 활동가가 죽어버리니 다 죽어버리게 되었다.”





향후 대안은 무엇인가?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노동자계급의식이 고취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장갑곤동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이를 먹고 안 먹고 간에 학습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사상학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활동가들이 나타나야 한다. 현장에서 싸워야 한다. 너무 안 싸운다. 옛날에는 활동가들이 막 싸웠었다. 계속 싸워야 한다. 부딪히지 않고 협상해서는 낮은 자세로 질 수밖에 없다.”





김승철동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장운동조직은 선거운동에서 노동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래야 고광석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현장 내에서는 활동가들이 검증받아야 한다. 그래야 대중투쟁이 활성화될 수 있다.”















7.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은 향후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에게 이번 구조조정은 끝이 아니고 단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현재 밀려오고 있는 거대한 세계경제공황 속에서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은 향후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이 글은 4가지의 과제를 제안한다.










첫째: 자본의 횡포를 알리고,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한계 및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모순을 폭로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집중과 집적이 사회의 생활과정을 끊임없이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 되지 못하고, 자본가계급의 사적 소유욕을 만족시켜야 하는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을 폭로해야 한다. 맑스는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은 다음과 같이 발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장벽은 자본 그것이다. 즉 자본과 자본의 자기증식이 생산의 출발점이자 종점, 동기이자 목적으로 나타난다는 점, 생산은 오직 자본을 위한 생산에 불과하며, 따라서 생산수단이 생산자들의 사회를 위해 생활과정을 끊임없이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장벽이 있다. 생산자 대중의 수탈과 빈곤화에 의거하는 자본가치의 유지와 증식은 이러한 장벽들안에서만 운동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장벽들은 자본이 자기의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생산방법들 [생산의 무제한적인 증가, 생산을 위한 생산,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무조건적 발달로 향하여 돌진하는 생산방법]과 끊임없이 모순된다. 수단―사회적 생산력의 무조건적 발달―이 제한된 목적[기존자본의 가치증식]과 끊임없이 충돌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물질적 생산력을 발달시키고, 이 생산력에 적합한 세계시장을 창조하기 위한 역사적 수단이라고 한다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또한 자기의 역사적 과업과 자기의 사회적 생산관계 사이의 끊임없는 충돌이라고도 할 수 있다 43).”










맑스는 “자본이 일반적 사회적 세력으로 발달해 가는 것과, 이러한 사회적 생산조건들을 지배하는 개별 자본가들의 사적 세력이 증대해 가는 것 사이의 모순은 점점 더 심하게 전개되지만, 그 반면에 이러한 전개는 이 모순의 해소를 또한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전개는 동시에 생산조건들을 일반적・공동체적・사회적 조건들로 전환시키는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44).”라고 하면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자체에서 모순해소가 있다고 말한다. 맑스는 공황시기에 이러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이 모순이 드러나는 과정이 바로 모순이 해소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공황시기에 “생산조건들을 일반적・공동체적・사회적 조건들로 전환시키는 것”에는 공황시기에 노동자들의 물러섬없는 투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더욱 극명해지고, 자본주의의 한계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과정이 포함될 것이다. 또한 노동자들이 공황시기에 투쟁을 통하여 계급의식을 고취시켜 나갈 때, 바로 새로운 사회로 향하는 ‘공동체적 사회적 조건’들이 마련되는 것일 것이다. 이렇게 볼 때, 2009년 77일간 자본에 대항하여 끝까지 투쟁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도 거시적으로 볼 때, 노동자계급의 공동체적 계급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 이러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의 교훈은 비단 금호 노동자들에게만이 아니라 현재의 세계공황시기를 겪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해당된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자본가에 대한 비타협적인 투쟁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자본가계급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노동자들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의 교훈을 알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둘째: 금호 노동자들은 금호자본이 자본축적과정에서 노동자를 공장에서 축출하려는 시도에 대항하여 투쟁해야 한다. 금호자본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구조조정을 통하여 실업자로 만들어버리고,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자본을 축적하려고 했다. 이러한 금호자본의 폭력적인 행위는 반드시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써 막아야 한다.










셋째: 공장에 남아있는 노동자의 노동력재생산비마저 강탈하고 노동강도를 높이려는 시도에 대해 대항하여 투쟁해야 한다. 금호노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듯이 현재 금호타이어공장의 생산주문은 오히려 폭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현재 노동자들의 30-40%을 해고시키려는 금호자본의 의도는 분명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몇배 증가시킴으로써 잉여가치를 추구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자본의 의도를 폭로하고, 노동자의 생존권과 건강권을 확보하는 것이 노동해방으로 향하는 근본조건이 됨을 인식하고 자본의 노동강도강화의도에 대항하여 투쟁해야 한다. 










넷째: 금호자본의 위기는 세계공황의 초입에 선 전세계 자본가계급의 위기이다. 여기에 대해서 노동자들은 자신감을 갖고 투쟁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망해가고 있는 것은 금호 노동자들이 아니라 바로 전세계의 자본가계급인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미 세계공황의 초입기에 들어선 자본의 위기를 자신들의 위기로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노동조합 관료들의 관행적인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협상과 타협에 대항하여 단호하게 투쟁해야 한다. 세계공황의 시기는 분명히 자본가계급이 이윤을 획득할 수 없는 구조, 즉 과잉생산위기이지 노동자의 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들의 투쟁의 기회로 만드는 것은 바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고취에 있다.










결론적으로 금호노동자들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모순이 노동자의 투쟁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궁극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노동자 계급의식을 확고하게 갖추어야 한다. 이 노동자 계급의식이야말로 노동자들이 자본의 위기에 수동적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의지에 따라 운동을 발전시켜 가는 데 가장 중요한 투쟁의 동력이다. 금호노동자들이 노동자 계급의식을 확고하게 해야만 자본가계급이 그들의 위기를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함으로써 노동자들이 당면하게 되는 생존권 위기에 과감하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이다. <노사과연>










인터뷰: 장갑곤 (금호타이어 범대위 대표), 김승철 (범대위 및 금호타이어 정리해고 철폐투쟁위원회 상황실장), 그 외 광주지역의 활동가 2인45)





취재 및 정리: 손미아 (편집위원)






1) 금호타이어 (錦湖타이어, Kumho Tire)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력 계열사이다. 1960년대 삼양타이어로 설립하여 1996년 금호타이어로 이름을 바꾸었다. 금호타이어는 1960년 첫 타이어를 생산하였고 현재 우리나라와 해외 총 8개 공장에서 연간 6,600만개의 타이어를 생산하고 있다. 본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에 곡성공장이,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에 평택공장이, 중국 장쑤 성 난징 시에 남경공장, 톈진 시에 천진공장, 장춘 시에 장춘공장이 있으며, 베트남에도 공장이 소재하고 있다.






2) 이 자료는 김두한의 금호타이어 경영분석 관련 글을 참고하였다.






3) 1999년 중국에 진출한 한국타이어는 올해 상반기 중국에서 2억8000만 달러(약 2800억 원)의 매출로 최고의 반기 실적을 냈다 (��한국경제신문��).






4) 매출액에서 매출원가를 빼면 매출 총이익이 된다 (매출 총이익= 매출액-매출원가).






5) 금호노동자들이 타이어를 만들고 팔아서 생기는 영업활동과 관련된 것은 영업이익이다. 매출총이익은 기본적으로 타이어제조와 관련되어 발생한 이익이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생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관리노동도 필요하며, 생산물의 판매를 위해서 사무직 노동자들의 노동도 소요되고 자본이 소요된다. 이것들이 이 사무직 노동자들과 판매직 노동자들의 임금 등을 판매비와 일반관리비라고 한다. 매출총이익에서 이것을 뺀 것이 바로 영업이익이다. 이 영업이익은 주식회사의 소유자, 즉 자본의 소유자 혹은 주식의 소유자가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가져가는 몫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윤이란 이처럼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것을 자본의 소유자들이 무상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김두한, 「금호타이어 경영분석」, 2006)






6) 이데일리 2006-03-08 08:57






7) 디지털타임스 2006.03.29






8) 헤럴드 생생뉴스 2006.04.05 10:32






9) 머니투데이, 2006.3.17. 08:17 www.pbj.co.kr






10) 서울경제 2006-03-09 13:27






11) 서울경제 2006-03-09 13:27






12) 서울경제 2006-03-09 13:27






13) 2005년 1693억원, 2006년 803억원, 2007년 1135억원, 2008년 363억원, 2009년 -593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게된다.






14) 채권단은 금호그룹 주력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경우 금호 유동성 위기의 근원인 4조원 규모의 대우건설 풋백옵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산업은행이나 채권단 공동으로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58234 2009-12-29 21:51:18).






15) 금호그룹이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맺은 풋백옵션의 행사 시기가 내년 1월15일로 다가오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풋백옵션은 금호그룹이 당시 대우건설 재무적 투자자(FI)들로부터 3조5000억 원 정도를 지원받는 대신 올해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행사가격인 3만1500원을 밑돌면 차액을 보전해주기로 계약이다. 29일 종가 기준으로 대우건설의 주가는 1만2750원에 불과해 재무적 투자자들이 일제히 풋백옵션을 행사하면 4조 원 가량의 자금이 필요하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30085706&Section=02)





   금호아시아나는 2006년 12월 재무적투자자(FI)(투기꾼)들로부터 3조 5000억원을 투자받아 대우건설을 사들였다. 2009년 12월15일을 기준으로 주식 가격이 3만 1500원 이하로 떨어질 경우 차액을 전액 보상하는 풋백옵션의 대금은 4조원에 이르렀다. 올 초부터 금호생명, 아시아나IDT 등 계열사 매각에 나섰지만, 지난해 말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풋백옵션 대금은 그룹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룹이 들어올린 대우건설은 ‘승자의 독배’였던 셈이다.






16) 금호그룹이 벼랑 끝 위기에 처한 것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 무리한 M&A가 화근이다. 외부 차입을 통해 '배보다 배꼽이 큰' 인수합병을 시도, 재계 순위 8위까지 오르면서 덩치를 키우기에는 성공했으나 뒷감당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 특히 지난해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금호그룹의 M&A 전략은 덫이 됐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30085706&Section=022009-12-30, 프레시안).






17) 금호타이어 부실은 매출감소에 따른 영업손실로 터져 나왔지만, 부실의 근본 원인은 2006년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금호그룹은 약 6조 원에 가까운 대우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그룹 계열사의 자금을 총동원했다. 금호산업이 1조7천억, 금호타이어가 4천5백억, 아시아나항공이 2천6백억 등을 투자하여 금호그룹 내에서 3조 원 정도를 마련했고, 나머지 3조원은 재무적 투자자라고 불리는 국내외 사모펀드들에서 자금을 동원했다. 인수대금의 50% 정도만을 마련하고 나머지는 빚으로 채운 것이다. 무리한 기업 인수는 몇 가지 점에서 문제를 발생시켰다. 먼저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등은 무리한 자금 동원으로 부채 규모가 2005년에 비해 급증하며, 매년 이자 부담과 자금 상환 압박을 받게 되었다. 금호타이어의 이자비용은 2005년 400억 규모였는데, 2008년 1,540억으로 급증했다. 2008년 영업이익이 362억인 것을 참작하면, 당해 타이어를 생산해 번 돈보다 4배나 되는 돈을 금융 기관에 이자로 지불한 것이다. 부채비율도 급증하여, 금호타이어는 2005년 128% 정도였던 부채비율이 2009년 1,085%가 되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5902)






18)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금호타이어가 2008년 3분기 이후 6분기 만에 영업이익 흑자 전환했다. 이같은 실적 호조에 대해 금호타이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시장 회복에 따른 수출 증가와 적정 재고 관리 등을 통한 공장 가동율 증대가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금호타이어의 주력 시장인 북미시장에서 자동차 및 타이어 시장이 실적 호조를 보인 점이 해외 매출 증가의 주요인이었다고 금호타이어 측은 설명했다. 또 워크아웃 기간 중 긴급자금 지원 지연에 따른 원재료 부족 사태에도 불구, 전년동기 60%에 머무르던 공장가동율이 약 90%대로 상승하며 판매 상승을 뒷받침한 것으로 나타났다.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353921)






19)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5902






20) 사측의 계산은 간단하다. 09년에 비해 영업이익을 2,000억 정도 증가시키기 위해 비용과 매출의 숫자를 맞추는 것이다. 사측 계산은 전체 생산직의 25% 규모에 달하는 인력 조정과 40% 가까운 임금 삭감을 통해 연간 약 1,000억에서 1,500억 원 정도의 노동 비용을 절감하고, 경기 회복으로 매출을 20~30% 증가시키면 올해는 작년보다 2,000억 정도 추가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약 2천억 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2010년에는 작은 수준에서라도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5902)






21) 금호타이어 자본이 3월부터 기를 쓰고 구조조정을 감행하려고 하는 데는 숨겨진 이유가 있다. 현재 금호타이어 박삼구 회장의 주식은 전량이 담보로 잡혀 있는 상태라 사실상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이 박삼구 회장의 인사권자인데, 박삼구 회장은 산업은행과 다른 채권자들에게 기업 수익을 증가시켜 채무를 상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내주어야만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숨은 이유다. 이번 구조조정 계획은 그 첫 번째 신호인 셈이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5902).






22) 금호타이어는 대우건설, 대한통운 인수를 위해 무리하게 자금을 운영한 결과 2009년에만 1,185억 원의 이자를 지불했다. 경제 위기 이전 2008년에 금호타이어가 영업이익으로 번 돈이 3천6백억 원 수준이니, 정상대로 영업을 했다 해도 타이어를 만들어 번 돈의 3분의 1은 이자 비용으로 지불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제조업 기업 중 이 정도의 이자 규모를 견딜 수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여기에 채무 상환금까지 고려하면, 금호타이어는 아무리 타이어 만들어 팔아봤자 남는 돈이 있을 수 없는 상태다. 참고로 2009년 금호타이어보다 매출이 1조원 가량 많았던 한국타이어의 이자 비용은 150억 원 정도였다. 심지어 금호타이어는 노동자들 임금도 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2010년 1월부터 2월 말까지 단기차입금 2,060억 원을 갚았다. 그나마 2009년 4/4분기부터 호전된 영업 사정으로 얻은 수익도 모두 금융권 차입금 상환에 바친 것이다. 노동자들이 임금도 받지 못하며 벌어들인 돈 모두를 채무 상환과 이자 지불에 써야 하는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은 누가 봐도 박삼구 회장 일가에게 있다. 하지만 정작 잠정합의안은 노동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니, 조합원들이 분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6226).






23) 칼 맑스, ��자본론�� 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853p,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제1권 (하) 2009년 제 2개역판






24) 맑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토대위에서 성장하는 사회적 노동생산성의 증진방법은 어느 것이나 동시에 잉여가치의 생산을 증대시키는 방법인데, 이 잉여가치는 이번에는 축적의 형성요소로 된다고 했다 (칼 맑스, ��자본론�� 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853p,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제1권 (하) 2009년 제 2개역판).






25) “자본주의적 축적 그 자체가 자기 자신의 정력과 규모에 비례해 상대적으로 과잉인, 즉 자본의 평균적인 자기증식욕에 필요한 것보다 더 큰 규모의 노동인구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칼 맑스, ��자본론�� 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860p,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제1권 (하) 2009년 제 2개역판)”






26) 칼 맑스, ��자본론�� 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862p,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제1권 (하) 2009년 제 2개역판






27) 칼 맑스, ��자본론��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867-8p,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제1권 (하) 2009년 제 2개역판






28) 임금협상 찬·반 투표 결과는 재적 조합원 3,561명 중 찬성 1,514명(43.76%), 반대 1,946명(56.24%)로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 단체협약 찬·반 투표 결과도 찬성 1,485명(42.92%), 반대 1,975명(57.08%)으로 과반수를 넘지 못해 부결됐다. 금호타이어 지회와 회사는 12월부터 3월까지 4개월 분의 체불임금, 상여금, 년 월차 수당 지급일정을 제시하며 잠정합의안 가결에 힘을 실었지만 조합원의 판단은 부결로 기울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6211)






29) 2010년 4월 초에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금호타이어지회(이하 금호타이어 노조)가 사측과 잠정 합의한 임단협안이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찬성 44%, 반대 56%로 부결되었다. 조합원들은 40%에 가까운 임금 삭감, 모든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야기할 단계적 도급화, 일시 유예에 불과한 정리해고 유보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6226).






30) http://cast.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48217






31)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6318






32) 금호타이어지회는 4월 21일 조합원 투표를 통해 임금협상찬반 투표 결과는 재적 조합원 3,562명 중 찬성 2,195명(64.22%), 반대 1,223명(35.78%)로 가결됐다고 공고했다. 단체협약 찬반 투표 결과도 찬성 2,200명(64.37%), 반대 1,218명(35.63%)로 가결됐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6393).






33) 노조집행부는 해고자들에게 “살아주십시오. 끝까지 같이 갈 수 있도록 힘을 내어 주십시오. 지금은 자존심도 상하고 피눈물이 나지만 함께 합시다”라며 개별확약서 제출을 통한 복직 호소문을 4월 22일 냈다. 노조는 “지금은 우리 자신만의 생각과 논리를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서 “서로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민주노조를 지켜내고 그 역사를 이어가며 그 곳에 우리 해고자 동지들도 원직복직하여 같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호소 드린다”고 밝혔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6393)






34) 최근 발표된 금호타이어의 2010년 1/4분기 경영 자료를 보면 금호타이어지회 집행부의 양보교섭안은 결국 사측의 압박에 노조가 굴복한 것이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지난 4월 30일 금호타이어가 발표한 1/4분기 영업실적 공시에 따르면 금호타이어는 1분기에 213억의 영업 이익을 냈고, 당기순이익도 208억에 달했다. 5분기 넘게 계속되었던 영업손실, 6분기 넘게 계속되었던 당기순손실이 모두 이익으로 전환된 것이다. 금호타이어지회는 회사가 당장이라도 망할 수 있다는 공포에 끝도 없는 양보교섭을 했지만, 사실 금호타이어는 2010년 1월부터 3월까지 세계 경제 위기 완화와 자동차 판매 증가로 경제 위기 이전인 2007년 1분기 수준의 이익을 내고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다른 글을 통해 밝힌 것처럼 금호타이어의 문제는 영업이 아니었다. 금호그룹 차원의 투기성 인수합병 때문에 발생한 재무 구조 악화가 문제였다. 금호타이어는 세계 경제 위기 이전까지 단 한번도 영업 손실을 기록한 적이 없었지만, 대우건설 인수 직후인 2006년부터 단기차입금 증가로 인한 과도한 이자 비용 등으로 매년 당기순손실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 1월 이후 워크아웃 기간 중에 차입금 상환이 유예되고 금호사옥 등 일부 자산을 매각하면서 영업외비용에 여유가 생겼고, 2010년 1분기에는 순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박삼구 회장이 노동조합에게 임금삭감과 도급화를 강요한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밀어붙인 구조조정은 채권단에게서 자신의 경영권을 보장받기 위한 제스처였다. 과감한 비용절감을 통해 채권단의 빚을 앞으로 갚을테니 자신의 경영권에 대해서는 손대지 말라는 것. 다시말하면 금호타이어의 빚은 노동자들이 갚아 나갈 것이라는 거다. 실제로 노동조합이 임단협안을 통과 시킨 직후 4월 24일 경 주요 채권단과 금호타이어 경영진은 비밀 회동을 통해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을 보장하고, 이후 채권단 출자 전환 과정에서 감자될 박삼구 회장의 주식을 워크아웃 이후 최우선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협조한다는 내용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5월 6일 산업은행, 우리은행 등의 채권단과 금호타이어는 5천8백억 원 규모의 빚을 주식으로 전환시키고(출자전환) 6천억 원의 신규자금을 대출해 주는 대신 기존 대주주들은 자신의 주식을 100대1로 감자시키는 합의안을 도출했다. 박씨 일가가 대주주인 금호석유화학이 가지고 있던 금호타이어 주식이 대폭 줄어들어 대주주 지위를 상실하지만,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은 보호받는다. 물론 워크아웃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박삼구 회장은 금호타이어 법인의 돈으로 자신의 주식을 채권단으로부터 되살 것이고, 채권단은 그동안의 이자까지 더해서 빚을 회수할 것이다. 결국 이 판에서 손실은 본 것은 노동조합 뿐이다. 박삼구 회장은 경영권과 미래의 소유권을 보장받았고, 채권단은 당장 회수하지는 못했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채권을 온전히 회수할 수 있게 되었다. 파업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백기를 든 노동자만 임금 및 고용에 관해 손실을 입은 것이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신뢰를 잃고 지도력을 상실해 앞으로의 투쟁을 조직할 능력을 잃었다. 이쯤되면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이라도 박탈할 수 있는 법정관리보다 현재가 무엇이 나은지 불명확하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미루며 금속노조의 비정규직 관련 정책에도 어긋나는 도급화 방안까지 찬성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노동조합의 양보합의안은 사실상 노동자 임금 삭감으로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을 보장해 준 것 이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6672)






35)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6211






36)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6672






37)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1970-2000 민주노조 투쟁과 탄압의 역사��. 도서출판 현장에서 미래를






38) 2000년에 장영렬집행부가 당선되었고, 16대 임영기, 17대 배현수, 18대 허용대, 19대 (금속1기집행부) 이광윤, 금속2기집행부 고광석, 금속3기 집행부 고광석으로 이어진다.






39)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7657






40)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7657






41)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7657






42) 금속노조와 지역지부는 금호타이어지회가 이러한 양보교섭안을 작성하는 것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다. 금속노조가 아직은 무늬만 산별이라는 점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이다. 조직적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금속노조니 대공장지회에 대한 개입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객관적 한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투쟁에서 금속노조가 자본의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유리한 정세에서 과감한 투쟁을 만들어 내는 분석력과 전략적 집중성도 보이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 평가가 필요한 지점이다. 한 예로 금속정책연구원에서 나온 보고서는 노조 역시 경영상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전향적으로 고통분담에 참여할 것을 이야기하며, 비핵심부분에 대한 도급화, 임금 및 복리후생에 대한 한시적 삭감, 노동친화적(?)인 명예퇴직방안을 고려하며 사측과 타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보고서는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 쌍용차 등의 예를 봤을 때 시간은 노동조합 편이 아니라며 노조에 전향적 태도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6672).  






43) 칼 맑스, ��자본론�� 3권 3편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들의 전개 300p,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제3권  2006년 제 1개역판






44) 칼 맑스, ��자본론�� 3권 3편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들의 전개 317p,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제3권  2006년 제 1개역판






45) 이 글은 2010년 5월 16일 금호타이어 노동자들 (장갑곤 범대위 대표, 김승철 범대위 및 금호타이어 정리해고 철폐투쟁위원회 상황실장)과 광주지역의 활동가 두 명과 대담을 통하여 정리한 것이다. 취재 및 정리는 손미아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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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 <2010년 상반기 금호타이어투쟁 평가> 2010년, 금호타... 취재 및 정리: 손미아 (편집위원) 2010-06-06 6141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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