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우리를 죽여라”, “학생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 이 엄동혹한에 월 임금 70-80만원의 청소직에서조차 해고된 6순ㆍ7순의 할머니ㆍ할아버지 노동자들의 절규다. 조금만 인간다운 세상이라면 손자ㆍ손녀 재롱을 보며 여생을 즐겨야 할 6순ㆍ7순의 할머니ㆍ할아버지들이, 노동이 생활의 욕구라서가 아니라 해고되면 당장 먹고살 수가 없기 때문에, 해고를 할려면 “차라리 우리를 죽여라”라고, “학생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절규하고 있다! 청소라도 해서 먹고 살 게 해달라고! 그 할머니 노동자들이 삭발투쟁을 하면서 바리깡으로 머리를 미는 할머니 노동자도, 그 머리가 밀리는 할머니 노동자도, 그 옆에서 피켓을 들고 “차라리 우리를 죽여라”고 절규하던 할머니 노동자도,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데굴데굴 언 땅을 구르며 통곡한다. 절망과 서러움에.

어디 그뿐인가? 이 엄동의 칼바람 속에서 수십 미터 크레인 위에서, 공장 정문의 철구조물 위에서 목숨을 담보로 한 농성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영도에서, 부평에서. 이 엄동혹한에 수십 일, 수백 일, 아니 1천수백 일 노숙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의도에서, 서울시청 앞에서, 혜화동에서, 구미에서....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노동자들의 분신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눔의 세상, 참으로 몹쓸, 참으로 더러운 세상이다!

그런데 이 몹쓸, 이 더러운 세상은 자본이 혼자 만들고 있는 게 아니다. 노동자들이, 조직 노동자들이, 아니,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노동자들을 무기력의 나락으로 이끌고 있는 조합관료들이, 민주노총의,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조합관료들이 함께 만들고 있다.

1월 9일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전년(121건)보다 28.9% 감소한 86건으로 2006년 교섭 단위 기준으로 노사분규를 집계한 이후 가장 적었”고, “사실상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가장 안정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단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신이 이어지고, 처절한 투쟁ㆍ절규가 이어지고 있는 속에서 “지난해 노사관계는 환란 이후 가장 안정”을 기록했다니,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예적 안주(安住)가, 대기업 정규직 노조 관료들의 배신이 얼마나 우심했던가?!

이눔의 몹쓸 운동판을 참으로 어찌할꺼나!?

확- 뒤집어엎어야 한다. 이눔의 몹쓸 세상, 더러운 세상도, 이눔의 몹쓸 운동판, 노조 관료들의 배신도!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의 무기력도! 아니, 그 어리석은 노예적 안주도!

누가?

노동자들 자신이!

어떻게?

물론 대중적 투쟁으로! 대중의 전투적 투쟁으로!

누구나 다 아는 당위(當爲), 그러나 당장 방법이 없고, 그래서 하나마나 한 소리라고? ―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자. 특히 전쟁을 거친, 운동과 사상의 폐허 속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저 끔찍한 파쇼체제 속에서 어떻게 운동이 태동하여 성장했고, 어떻게 그것이 ‘80년대의 대투쟁’으로 폭발해 나왔는지를 되돌아보자. 그리고 어떻게 오늘의 무기력으로, 배신으로 추락했는지를 되돌아보자.

우선, 객관적으로는 착취와 빈곤, 억압이, 파쇼적 억압이 있었다. 그것이 대중적 저항과 투쟁의 온상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착취와 빈곤, 억압이 있고, 그것들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다만,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과 두 가지가 조금은 다르다.

첫째로, 그 전엔 극소수의 관리직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는 절대다수, 그야말로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이 극심한 착취와 빈곤, 억압에 시달리고 있었다면, 요즈음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과거의 투쟁의 성과로, 상대적으로, 물론 단지 상대적으로만 조금은 처지가 나아져 있다. 이것이 그들의 무기력의, 노예적 안주의, 배신의 객관적 조건이다.

그러나 그들이 상기해야 할 것, 혹은 그들로 하여금 상기하게 해야 할 것은 우선 자신들의 작은 안락은 오직 자신들의 투쟁의 성과여서 안주와 무기력, 배신은 이윽고 바로 자신들의 그 알량한 안락을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망치한(脣亡齒寒). 비정규직의 투쟁이 무너지면 자본의 공격은 즉각 자신들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니, 사실은 이미 그렇게 몰려가고 있는데도 저들은 아직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음엔 파쇼적 억압이 다소 완화되어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이 역시 물론 투쟁의 성과다. 그런데 파쇼적 억압이 완화된 정치적 사회적 공간은 당연히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더욱 조직하고 고도화하는 공간으로 활용했어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안주하고 무기력해지는 길을 걸었다. 그래서 오늘날 그 억압은 급격히 파쇼화하고 있다.

아무튼 이래저래 과거의 대중적 저항과 투쟁의 온상, 착취와 빈곤, 억압이, 파쇼적 억압이 다시 강화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세계 대공황과 더불어! 그리고 그와 더불어 더 나아가서는 끔찍한 전쟁의 위험도 증대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주체, 투쟁주체의 문제, 그 사정이다.

1980년대의 대투쟁은 그저 우연히 터져 나온 게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대중 속에서 그 투쟁을 준비하고 만들어 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터져 나온 것이다. 선진적 활동가들, 선진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1980년대 그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새삼 얘기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러한 활동은 사실은 1970년대로, 1960년대로, 나아가서는 195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초기의 활동가들이 개개인의 차원에서 후년까지 ‘지조’를 지켜냈는지, 아니면 생활의 중압감이나 파쇼의 억압에 중간에 좌절했는지, 아니면 변절했는지는 물론 별개의 문제이다. 아무튼 대중 속에서의 그들의 그러한 끈질기고 헌신적인 노력과 투쟁, 희생이 없었다면, 1980년대의 투쟁, 1987년의 그것은 없었거나, 있어도 미미했을 것이고, 전혀 다른 것이 되었을 것이다. 선진 활동가들, 선진 노동자들의 노력과 투쟁은 그만큼 중요하다.

오늘날의 이 몹쓸 세상, 더러운 세상을, 이 몹쓸 운동판, 노조 관료들의 배신,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의 무기력, 그 어리석은 노예적 안주를 뒤엎는 작업은 선진 활동가들, 선진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 대중이 그 전투적 투쟁을 통해서 그것들을 뒤엎게 하는 데에는 선진 활동가들, 선진 노동자들의 대중 속에서의, 다시 말하지만, 대중 속에서의 집요한 노력과 투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과 투쟁이 바로 선진 활동가들, 선진 노동자들의 임무이자 보람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선진 활동가들, 선진 노동자들은 어떤가?

물론 그들 역시 무언가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그 대다수가 1980년대의 대대적인 투쟁이 있게 했던 과거의 선진 활동가들, 선진 노동자들과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노동자 대중 속에서, 대중과 하나 되어 그 모범으로서가 아니라, 끼리끼리! 활동가끼리의 모임으로만! 대중과는 물과 기름처럼!

물론 1990년대 이후의 시대 상황이 작용한 탓도 클 것이다. 무엇보다도 1980년대까지 많은 선진 활동가들, 선진 노동자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선명한 세계사적 전망이 있었으나,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된 이후에는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하다. 바로 그 때문에 정치적 전망을 찾아서 끼리끼리 모이고 모인 측면이 다분하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많은 활동가들이 대중 속에서 대중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떠도는 것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전망은 바로 이 몹쓸 세상, 자본주의적 생산의 법칙 속에 있기 때문에, 쏘련 해체 이전의 전망이 다분히 직관적인 그것이었다면, 이후 선진 활동가들, 선진 노동자들이 체득해야 하는 전망은 과학적인 그것이어야 함을 의미할 뿐이지, 그것이 그들이 대중과 유리되어야 할 이유는 아니다. 오히려 그 과학적 전망을 대중 속에 선전해야 할 선진 활동가들, 선진 노동자들의 임무, 책임은 더욱 절실하다.

선진 활동가들, 선진 노동자들은 스스로에게 자문해볼 일이다. ― “나는 활동가 모임 말고, 내 활동 현장의 동료들과 몇 개의 모임이나 꾸리고 있으며, 얼마나 열심히 그것들을 조직하려 노력하고 있나?” “나는 현장에서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저 친구야 뭐 으레 그런 친구야’ 하고 경원시되고 있지는 않나? 혹은, ‘꾼’ 취급을 받고 있지는 않나?” “나는 내 현장의 동료 노동자들과 얼마나 친근하며, 그들은 나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얼마나 신뢰하나?”

활동가 모임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 모임을 통해서 학습하고, 정세를 토론하고, 전략과 전술을 모색하고, 경험을 공유하고 하는 것들은 운동의 과학적 목적의식적 성장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대중 속에서 활동하지 않는 선진 ‘활동가들’, 대중과 더불어 활동할 줄 모르는 선진 ‘활동가들’의 그러한 모임은 단지 공론(空論)의 장일 뿐이고, 패거리끼리의 모임일 뿐이다. 그런데도, 1987년의 대투쟁으로 정치적 사회적 공간이 다소 열린 후로 선진 활동가들, 선진 노동자들은 그 정치적 사회적 공간을 대중과의 접촉면적을 넓히고 대중 속에서의 활동을 강화하는 데에 활용하는 대신에 갈수록 끼리끼리의 공론의 장을 만들어내고 활성화시키는 데에만 주력해온 측면이 다분하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과 같은 무기력, 안주, 배신을 배양해온 주체적 요인이다.

새해에는 새롭게 ‘대중 속으로!’의 기풍, 그러한 활동기풍을 만들어가자. 의식적으로 그러한 기풍을 만들어나가자. 그래야만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주와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고, 그 대중의 세(勢)로 조합 관료들을 포위하고 그들의 배신을 제압할 수 있다.

물론, 활동가 모임을 해산하고 대중 속으로 산개(散開)하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대중 속에서의 활동을 개척하고 확대하여 운동을 보다 대중적으로 고양시키자는 뜻이다. 그래야만 그 활동가 모임 또한, 끼리끼리의 자위적(自慰的)인 조직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활동가 조직, 명실상부한 선진 노동자 조직, 명실상부한 정치조직이 될 것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