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먼저 이 토론회에 연단의 발제․토론자로서, 그리고 청중석의 청중 그리고 토론자로서 참석해주신 여러 노동자 동지들, 활동가 동지들에게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특히 4월혁명의 선배동지들께서 영광스럽게도 이 자리에 함께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970년대 초에 중국의 주은래 수상이 썼던 표현으로 기억합니다만, 이제야말로 세계는 문자 그대로 ‘천하대란의 시대’에 들어서 있습니다. 전반적인 격동․격변의 시대, 대혁명 아니면 인류 절멸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뜻입니다.

주지하는 것처럼, 지난 2007년 하반기, 그러니까 근 3년 반 전에 폭발하기 시작한 새로운 세계대공황은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물론 각 지역과 국가마다 그들이 작금의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에서 노는 역할과 조건의 특수성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당장 상황이 다소 낫다고 해서 그들 국가나 지역이 대공황의 소용돌이를 벗어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물며 이 대공황이 그들에게 결국 강요하게 될 파멸의 운명을 벗어난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시켜온 국가독점자본주의적 수단들이 그 수명을 다했음을 연이은 재정위기로서 표출하고 있는 남부유럽의 국가들이건, 앞선 경쟁력 때문에 상황이 다소 낫지만 바로 그 앞선 경쟁력을 유지․강화하기 위해서 과학기술혁명을 가속화하면서 노동자․민중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국가들이건, 그들 자본주의체제들이 조만간에 맞을 운명은 결국 동일한 것, 파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조만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현재의 이 위기는 자신의 수명을 ‘웃살은’ 자본주의 때문, 그 초고도의 발전과 그에 따른 모순, 수습할 수 없는 과잉생산의 모순 때문이고, 특히 20여 년 전부터 ‘세계화’란 말이 유행해왔지만,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세계체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체제가 조만간 맞을 이 파멸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는, 그것이 인류 공영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힐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계대전과 그에 의한 인류의 사실상의 절멸로 귀결될 것인가는 당연히 전적으로 전 세계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역량, 그 투쟁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노동자계급, 그리고 그 전위의 정치적 역량과 투쟁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역량은 우선 그들이 발딛고 있는 사회의 구조와 구성, 운동법칙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에 기초할 수밖에 없습니다. ― 저희가 이번에 이 토론회를 기획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특정 종교의 경전으로부터의 인용이어서 유감이고, 또 그들에 의해서는 필시 다른 의미와 의도로 쓰(書)였고 이용되는 것이겠지만, “진리가 너희를 해방하리라”(요한, 8:32)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사회과학 일반, 따라서 한국 사회의 구조, 구성과 그 운동법칙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적어도 1948년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는 사실상 전무상태였습니다. 정부수립과 사실상 더불어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전쟁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으로 이어지는 역대의 파쇼정권이 그것을 압살했기 때문입니다. 1960년 4월 혁명 이후 그 재생을 위한 노력과 투쟁이 활달했지만, 1961년 5월 박정희․김종필 일당의 반혁명이, 반공법이 그것을 다시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착취와 억압은 저항을 낳는 법. 저들의 파쇼적 억압과 착취는 노동자․민중의 저항도, 그들의 사회과학도 근절할 수 없었고, 끈질긴 투쟁을 통해서 1980년대 중반에 사회과학은 마침내 부활했습니다. 혹은, 부활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름 아니라 당시 치열하게 전개된 ‘사회구성체 논쟁’, ‘한국 사회성격 논쟁’을 통해서입니다.

주지하는 사실이지만, 당시 논쟁의 최대의 성과는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의 ‘재발견’, 보다 적절하게 말하자면, 그 공공연한 담론화, 그 담론의 대중화, 계급․착취․미제․종속․신식민지 등등 금지․금기시되어 있던 언어들의 해방입니다. 인민이라는 말은 아직도 반쯤밖에는 해방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1980년대 사회과학의 부활은 사실은 미완성의 그것, 부활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저항의식 속에 미분화된 채 뒤엉켜 있던 계급과 민족의 문제를 분석해낸 것은 혁명적 진전이었지만, 그것들은 다시 통일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동유럽과 쏘련에서 발생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 그로 인한 정치적․사상적 혼란과 대반동은 그 진전, 사회과학 부활의 완성을 저지했습니다. 저항운동 진영은 이른바 NL과 PD로 분단된 채 혼미와 갈등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급기야는 반쏘 등을 내세우는 자칭 ‘맑스주의자들’, 그러한 ‘사회주의자들’, 그러한 ‘코뮌주의자들’, 그러한 ‘혁명가들’, 그러한 ‘진보적 지식인들’, 한 마디로 노동자계급운동․민중운동 내부의 몰역사적 반동․반공주의도 팽배해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기본소득’ 운운하며 사회주의를 과학에서 몽상으로 역전시키고 있는 지식인 활동가들도 떼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오늘 이 토론회가 어느 만큼의 과학적 성과를 보여주고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서 자신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당연히 객관적 평가에 맡겨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토론회가 적지 않은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로 근 20년이나 지체된 사회과학의 부활을 다시 진전시키려는 노력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렇고, 무엇보다도 부르주아 강단 지식인들의 강단스러운 연구와 논의가 아니라 노동자․민중 지식인들의 노동자적․민중적 연구와 논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토론회에서는 필시 여러 이견이 표출되어 대립할 것이고, 또 많은 점에서 당장 합의에 도달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민족문제’를 둘러싸고는 더욱 그러할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는, 토론에 참여하는 우리 자신의 학문적 깊이의 한계 때문이기도 할 것이지만, 특히 파쇼 국가보안법이 강제하는 토론의 제약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쳇말로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의 토론이 흡족할 만한 수준, 만족할 만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위한 노력, 그것을 위한 투쟁을 시작하고 있다는 데에 의의를 둡시다. 그리하여 앞으로 그 노력, 그 투쟁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삼읍시다. 미래는 노동자․민중의 것,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노예의 언어’로밖에는 인사할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