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지난 3월의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고조되던 남북 간의 긴장이 11월 하순에는 연평도 부근에서 포격을 주고받는 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이후에도 거듭되는 상호비난과 군사훈련 속에서 긴장은 계속 고조되고 있다. 조ㆍ중ㆍ동 등의 파쇼언론과 극우세력들은 무책임하게도 전쟁과 확전을 선동하고 있고, 한국을 후견하고 있는 미국의 일부 고위 정치가와 군사책임자들 사이에서도 한국에서의 또 한번의 전쟁 가능성이 얘기되고 있다. 한 마디로, 전쟁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또 한번의 한국전쟁? 사실 그것은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한겨레�� 신문의 한 칼럼을 인용해보자.

1950년 한국전쟁 때 민간인 100만 명을 포함해 적어도 20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실종됐다. 그림자 죽음까지 합하면 1000만 가까운 숫자다. 이산가족 상봉 현장에서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 핏빛 후유증은 6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이들의 가슴 깊은 곳에 선연하게 남아 있다. 적어도 100년 정도 걸려야 치유가 가능한 한국 사회의 집단 트라우마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1994년 북핵 위기 때 한반도는 구체적으로 전쟁 직전 상황까지 갔다. 당시 미국의 전쟁 시뮬레이션 자료에 따르면 개전 일주일 안에 군병력 100만 명이 사망하고 민간인 사상자 수는 500만 명이었다.¹⁾

개전 일주일 안에 600만 명이 죽을 것이란 얘기다. ��오마이 뉴스��도 (―��시사인�� 제142호. 2010. 06. 03.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1994년 1차 북한 핵 위기 당시 클린턴 정부가 실시한 북미전쟁 시뮬레이션 결과는 경악할 만한 내용이었다.

 24시간 안에 군인 20만 명을 포함해 수도권 중심으로 약 150만 명의 사상이 예상되며, 개전 일주일 이내 남북한 군인과 미군을 포함한 100만 명 사망에 남한측 민간인 사상자도 500만 명이 나올 것이라 예측했다. 10년 후인, 2004년 합동참모본부에서 실시한 “남북군사력 평가 연구”에서는 전쟁 발발 24시간 이내에 수도권 시민, 국군, 주한미군을 포함해서 230만 명의 사상자가 나올 수 있다고 예측했다고 한다.²⁾

1994년에서 2004년까지 10년만에 개전 24시간 이내의 예상 사망자수가 약150만 명에서 230만 명으로 증대했다. 이들 수치는 모두 미국과 한국의 ‘책임 있는’ 정부측의 예상으로서 10년만에 예상 사망자 수가 53% 이상 증대하고 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러나 그 끔찍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립의 구도상 남북 간의 전쟁은 자칫 미ㆍ일 대 중국 간의 전쟁으로 비화할 것이고, 마침내는 또 한번의 세계대전으로, 전면적인 핵전쟁으로 비화하여 인류의 사실상의 절멸로 귀결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극우세력은 전쟁을 선동하고 있고, 극우 정부와 미국도 그 가능성을 운운하고 있다!

실제로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 참화는 이토록 끔찍할 것이고 저들 역시 그것을 모를 리 없기 때문에, 저들 극우의 미친 듯한 선동과 정부의 ‘응징’ 다짐은 물론 우선은 그리고 제1차적으로는 다분히 국내용, 국내 계급억압용, 국내 계급투쟁용일 것이다. 국가주의, 애국주의를 부추겨,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노동자ㆍ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고립시키고 억압하려는 속셈일 터이다.

II

그런데 전쟁의 유령은 현재 한반도만을 배회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지금 세계 도처를 배회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지금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그리고 가장 장기의 대공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고, 이 공황으로부터의 탈출 전망이, 확산되고 있는 남부유럽의 재정위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상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1930년대의 대공황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2차 대전 이후에도 1950년의 한국전쟁을 비롯하여 2001-2003년의 미군과 그 동맹군들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에 이르기까지 공황은 으레 전쟁으로 이어지곤 했다.

공황이 이렇게 전쟁으로 이어지곤 하는 것은 우선, 전쟁이야말로 공황의 원인인 과잉생산을, 물질적 과잉생산 그 자체도, 대량의 실업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인적 과잉생산도, 해소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그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월남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의 전시공황이라는 사태를 통해서 이미 국지전으로서는 고도로 발전한 현대 자본주의의 엄청난 과잉생산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황은 으레 전쟁으로 이어져오고 있는데, 이는 우선 과잉생산 공황에 시달리는 제국주의에 있어 전쟁은 아직도 과잉생산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은 강렬한 유혹이기 때문이고, 또 실제로도 부분적으로는 그 과잉생산을 완화하는 유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황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배 부르주아계급에게 있어서 전쟁은 계급투쟁이라는, 공황기에 특히 격렬해지는 내전을 대외전쟁으로, 국민과 국민 간의 전쟁,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노동자계급 대 노동자계급의 전쟁으로 돌리면서 이른바 ‘국민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는 최상의 수단, 즉 노동자ㆍ민중을 (독점)자본의 노예상태에 묶어두기 위한 최상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자본주의 각국은 바로 그 ‘국민통합’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히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 속에 있다. 신자유주의가, 공황이, 그리고 특히 그 속에서 재정위기라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파산이 ‘긴축재정’, ‘재정개혁’이라는 형태로 민생파탄을 강제하고 있고, 그 때문에 노동자ㆍ민중의 투쟁, 계급투쟁이 다시금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위험이 그만큼 높아져 있고, 그만큼 높아져 가고 있는 것이다.

III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물론 노동자ㆍ민중이다. 그리고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도 물론 노동자ㆍ민중뿐, 특히 노동자계급뿐이다. 노동자계급이야말로 각국에서 (독점)자본의 국가주의, 애국주의 선동의 주요 대상이지만, 동시에 이를 거부하고 국제주의를 관철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국의 노동자계급은 어느 곳에서나 자본에 의한 착취와 억압의 대상이며, 따라서 그 착취와 억압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있고, 투쟁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이해관계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이 동일한 계급적 이해관계야말로 노동자 국제주의의 기초이다. (독점)자본이 선동하는 국가주의ㆍ애국주의를 거부하고 이 노동자 국제주의를 관철함으로써만 노동자계급은 전쟁의 참화를 막을 수 있고, 피할 수 있는 것이며, 그 계급적 해방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각국의 (독점)자본은 노동자계급 대 (독점)자본가계급 간의 계급투쟁, 내전을 노동자계급 대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그 대립과 전쟁으로 전화시키려고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모든 선전수단을 동원하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을 계층으로 분단하고 그 최상층부와 최하 룸펜층의 일부를 매수하고 있다.

(독점)자본의 이러한 노동자계급 분단과 매수, 전쟁책동에 대항하여 노동자 국제주의를 관철하고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선진노동자들의 목적의식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임금과 고용을 둘러싼 생존권 투쟁을 적극 조직하고, 추동하고, 엄호ㆍ지원하면서도, 그 투쟁이 단순히 생존권 투쟁이라는 경제주의의 틀 속에 머물지 않고, 노동자 대중의 정치의식이 발전하고, 또 그들이 정치적으로 조직되는 계기가 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번에 현자 정규직 노조의 행태에서 특히 명백히 드러난 바이지만, 이른바 ‘실리주의’에 빠져 있는 일부 대기업 노동자들, 그리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영세ㆍ중소 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외면하고 있는 노동자들, 즉 독점자본의 노동자계급 분단과 매수에 놀아나고 있는 일부 대기업 노동자들을 적극 가차 없이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들 속에서 활동하면서 그들 속에 잠재해 있는 계급의식을 자극하고 일깨워내는 목적의식적 활동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선진 노동자들이 이러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우선 선진 노동자들 자신의 정치적, 정치의식상의 혁신이, 그 혁신을 위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자칭 좌파 혹은 평등파로 불리는 조류도, 우파 혹은 민족해방파로 불리는 조류도,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이 사실은 통일되어 있고 단지 그 발현형태만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서로 대립함으로써, 정세를 올바로 볼 수 없는 불구의 의식밖에는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평등파의 일반적 경향은 예컨대 반쏘적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노동자계급적 대의와 ‘과학’에 충실하다고 자부하지만 사실은 독점자본의 저열한 반공선전, 역사날조에 놀아나 자신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국가주의의 도구ㆍ포로가 되어 있고,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의 주요한 (역사적) 부분에 적대하고 있다. 또한 이른바 민족해방파의 일반적 경향은 제국주의의 억압, 민족적 피억압의 문제를 몰계급적으로,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적으로 이해하면서 노동자계급과 그 투쟁을 소부르주아적 민족주의 투쟁의 수단과 보조역량 정도로 치부하고 있고, 그 때문에 노동운동 내에서는 그 ‘우파’를 형성하여 갈등하고 있다. 평등파와 민족해방파라는 대립하는 이 양대 조류가 그 대립을 이론적으로, 조직적으로 말 그대로 지양하지 못한다면, 두 조류는 자신들이 아무리 주관적으로 국제주의를 다짐하더라도 객관적ㆍ실천적으로는 공히 노동자 국제주의에 해악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확고한 국제주의와 반전결의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선진 노동자 대열의 두 조류의 혁신, 그 대립의 이론적ㆍ조직적 지양, 발전적 통일이 절실하고 시급하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