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과 격화되고 있는 계급투쟁

지난 2007년 하반기부터 전개되고 있는 거대한 경제위기,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하다는 새로운 대공황은 그 규모와 심도에 상응하는 정치적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위기의 부담을 더욱 더 가혹하게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려는 독점자본의 공세 강화와 그에 저항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의 격화, 곧 계급투쟁의 새로운 격화가 그것이다.

물론 이 계급투쟁,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정치적 위기는, 각 국가와 지역에서의 경제위기의 정도와 양상의 차이에 따라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국가와 지역에서의 계급 간 정치적 역관계(力關係) 및 계급투쟁의 전통의 차이에 따라서, 서로 그 규모와 양상, 강도를 달리하면서 전개되고 있다. 어떤 지역과 국가들에서는 독점자본, 독점부르주아 국가의 공세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대대적인 반격,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활성화로. 또 어떤 지역과 국가에서는,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독점자본과 독점부르주아 국가의 헤게모니의 강화, 나아가서는 국가주의․파시즘의 강화로.

자본주의 선진국들 중에서 예를 들자면,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미국일 것이다. ‘공식 실업률’이 10%대라고 할 만큼 수천만 명이 실업과 반실업 상태에 빠져 있고, 특히 소위 써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 사태로 수백만 가구가 살던 집의 차압과 경매로 길거리로 내쫓겨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일부 선진적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치적 기류는 지금 더욱 더 파시즘으로 내닫고 있다. 예컨대, 극우 티파티(Tea Party) 운동과 극우 공화당의 득세!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인구의 1% 이상이 감옥에 갇혀 있을 만큼 ‘민주적인’ 사회가 그렇게 더욱 더 파시즘으로 내닫고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주지하는 것처럼, 유럽, 특히 프랑스를 포함한 남부 유럽 국가들이다. 지난 봄 그리스에서 현재화(顯在化)된 재정위기를 계기로 이들 국가들은 공공부문 구조조정, 긴축재정, 연금개혁 등의 이름으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그에 대해서 특히 그리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노동자들이 대대적으로, 전투적으로 저항, 반격하고 있다.

파시즘인가 혁명인가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달렸다

유럽과 미국에서의 정세 전개의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물론, 여기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여러 수많은 현실적․역사적,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서의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정세 변화의 그 차이를 가져오는 주체적 요인, 즉 노동자계급의 투쟁 역량과 그 전통이다.

그 동안 여러 차례 강조한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 선진국들, 특히 유럽 국가들에 사민주의적 복지제도를 강제했던 것은, 1930년대의 대공황과 그 귀결로서의 전대미문의 대파괴와 대살육=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벌어진,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폐지하려는 노동자계급의 대대적인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 사민주의적 복지제도에의 노동자계급의 안주(安住)야말로 그 약화를, 특히 신자유주의의 발호와 때를 같이 한 그 복지제도의 그 파괴를 가져왔다.

그런데, 이렇게 약화되고 파괴된 지금의 복지제도에도 미국의 그것과 유럽 국가들의 그것 사이에는 물론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사실 그 차이는 애초 그것들이 도입되고 확립될 때부터의 현격했다. 유럽 국가들에서의 그것이 애초부터 상대적으로 전면적이고, 튼튼한 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상당 정도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면, 미국에서의 그것은 애초부터 빈약했고, 그 때문에 더욱 일찍이, 더욱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예컨대, 대도시마다 노숙자(homeless)가 득시글거리고, 수많은 사람이 한국에 ‘의료관광’을 올 만큼 병원비는 천정부지인데 수천만 명이 의료보험조차 없을 만큼!

그 차이를 규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물론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차이, 특히 대전을 겪으면서, 그리고 이웃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의 발전을 목도하면서 자본주의 체제 그것을 폐지하려는 결의가 보다 강했던 유럽의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자본주의 세계의 패권국가로 부상하면서 국가주의․애국주의에 침윤되었던 미국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차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대공황의 한복판에서 유럽과 미국에서 판이하게 전개되고 있는 계급투쟁 정세의 차이도 주로 두 지역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이러한 전통과 현실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의 노동자 대중의 상당 부분, 특히 노동조합운동의 상층부 대부분이, 미국의 노총 AFL-CIO(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가 일부에서 AFL-CIA로 조롱․비판받고 있는 현실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도 국가주의․애국주의에서 허우적대면서 독점자본의 공세에 무기력한 데 비해서, 유럽의 노동운동은, 말하자면, 썩어도 준치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노동운동도 물론, 나아가 지금 그 투쟁이 전투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그리스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그것도 물론, 그것이 변혁 지향적, 혁명 지향적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물론 그 안의 상당 수 선진적 분자들이야 당연히 변혁 지향적, 혁명 지향적이지만, 운동 그것의 일반적 지향은 아직 그렇지 못하고, 아직 체제 내 개량적, 아니 오히려 기존의 개량 수세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노동자들은 지금 복지 파괴와, 그리하여 파시즘, 인종주의, 국가주의와 대중적 규모의 투쟁으로 대결하고 있고, 그만큼, 아직 잠재적이지만, 변혁 지향성을 잉태해가고 있다.

이 점이, 물론 소수 선진분자들의 선도적인 변혁 지향적 투쟁은 있지만, 대중적으로는, 특히 노동조합운동 상층부가, 독점자본이 선동하는 애국주의 늪에서 허우적대면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과 다른 점이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다르게 전개되고 있는 계급투쟁은, 유럽에서의 노동자계급의 대중적․전투적 투쟁의 활성화도, 예컨대 티파티 운동이나 공화당의 득세로 표현되고 있는 미국에서의 파시즘의 심화도 모두 현재 전개되고 있는 대공황의 직접적 산물이고, 향후 세계정세, 나아가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주요한 변수이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의 노동자계급이 최근 수십 년 동안의 무기력, 체제내화, 체제내로의 피포섭(被包攝)을 극복하고 변혁 지향적으로 전진한다면, 인류는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상을 열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인류는 또 한 번의 대전쟁, 그러나 이번엔 사실상 인류의 절멸을 의미하는 대전쟁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것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대공황을 맞아, 우리가 지난 1930년대 대공황과 그 귀결을 되돌아보면서, 명심해야 할 바이다.

무기력과 노예적 안주를 극복하고 해방의 길로 전진하자

얼마 전 ‘조․중․동’ 등의 극우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선전한 바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한 대표적인 대공장 노조의 어용 간부가 디트로이트의 황폐를 ‘견학’하고 와서는, 그 황폐를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전투적 투쟁 탓으로 돌리면서, ‘고용 안정’이라는 미명 하에 노사협조의 어용노선을 재다짐했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노동자들이 노사협조주의에 빠져 전투적, 변혁 지향적으로 투쟁하지 않는다면, 디트로이트의 운명은, 혹은 그에 앞섰던 철강도시 피츠버그의 운명은 울산의, 부평이나 소하리의, 포항의, 서산의 ... 미구의 운명이다. 디트로이트의, 피츠버그의 황폐는, 미국의 조직노동자들의 전투적인 투쟁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의 법칙 그 자체, 과잉생산 공황의 필연성과 자본주의적 생산의 불균등 발전 법칙 그것의 관철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노동자들이 전투적이고 변혁 지향적이었더라도 과잉생산 공황과 자본주의적 생산의 불균등한 발전을 저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일 그렇게 전투적이고 변혁 지향적이었다면, 피츠버그나 디트로이트가 황폐해지기 전에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열었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G20 대응”이랍시고, “MB 정부는 G20 정상회의의 의장국으로서 자격이 없음을 폭로”하고, “위력적인 대중투쟁을 통해 ‘알맹이 없는 말잔치’에 불과한 G20을 규탄하고 MB 정부를 압박”(민주노총 제50차 대의원 대회 자료집, 83쪽)하겠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MB 정부는 G20 정상회의의 의장국으로서 자격이 없음을 폭로”한다니? “‘알맹이 없는 말잔치’에 불과한 G20을 규탄”한다니? 도대체 G20(정상회의)이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기구, 모임이기를 바라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그것은,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부르주아 국가는 바로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그들 간의 이해의 조정을 위한 것 아니던가?

G20 정상회의를 맞아, “MB 정부는 G20 정상회의의 의장국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싸운다면, “G20이 ‘알맹이 없는 말잔치’에 불과하다”고 싸운다면, 그것은 풍차에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싸움보다 더 희극적인 그것이다. 우리는 G20 그것이 (독점)자본의 지배의 강화․영속화를 꾀하는 기구이자 모임이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고, 그 본질을 폭로하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 분신 40주년을 맞아,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한다며, 여기저기에서 “근로기준법 준수!”, “노동기본권 보장!”을 외친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근로기준법 준수!”, “노동기본권 보장!”을 외치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게 아니라, 40년 전 전태일 열사의 외침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어이없는 일이다. 40년 전 전태일 열사의 외침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근로기준법 준수!”, “노동기본권 보장!”만을 외친다면, 그것은 결코 전태일 열사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태일 열사 정신을 화석화(化石化)시키는 것일 뿐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그 자체와 대결하는 것,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의 길로 떨쳐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리고 그것만이 이 대위기의 시대에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

50년대의 전쟁과 이후 지속된 수십 년 간의 파시즘 속에서 지난한 노력과 투쟁 끝에 지난 80년대에 화려하게 부활했던 한국의 노동운동 그것이 지금, 아니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의 중간 결실로서 민주노총이 결성된 90년대 중반 이후 이미 갈수록 정치 이데올로기적, 실천적 무기력과 노예적 안주(安住) 상태에 빠져왔고, 빠져 있다. 위에 예시한 몇 가지 어이없는 일들도 모두 이러한 무기력과 노예적 안주 상태의 표현이다.

그러나 거듭거듭 강조하는 바이지만, 1930년대 대공황과 그 귀결로서의 세계대전을 상기하면, 지금 다시금 전개되고 있는 대공황은 노동자계급의 분발, 분발을, 투쟁, 투쟁을 절실히,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무기력과 노예적 안주를 시급히 극복하고 떨쳐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