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공화국’ 한국”, “자살대국 한국”, “자살 왕국 한국” ― 너무나도 악의적으로 비하했다며 혹시라도 발끈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 밝혀두는 바이지만, 뭐라고 형용해야 좋을지 모를 이 월계관들은 결코 내가 작명한 게 아니다. 가장 애국주의적이고 가장 극우적인 ��조선일보��의 기사 제목들 속의 명칭들이다.

��연합뉴스��를 빌린 ��조선일보��의 기사¹⁾에 의하면, 지난 7월 22일에는 한 연예인의 자살을 계기로 일본의 유명 신문인 ��마이니치신문��이, 한국의 자살률이 “2003년에는 일본이나 헝가리를 웃돌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며, “자살대국 한국”이라는 특집기사까지 낸 모양이다.

상황과 추세

인구 10만 명 당 자살 사망자수인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2003년 이후 한국이 반드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자본주의 도입 후 청년실업에 물가 치솟고 복지 개념마저 무너져” 있는 헝가리와 “자살률 1위 놓고 ‘슬픈 경쟁’”을 벌이고 있는 모양인데,²⁾ 오락가락하는 보도지만, 모양새는 대략 이렇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매년 급증하면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가운데 헝가리, 핀란드, 일본에 이어 4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10년간 연평균 자살 증가율에선 우리나라가 1%로 단연 최고 수준이었다.

4일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OECD 보건 통계자료 등을 비교 분석한 ‘OECD 국가의 자살사망율 및 변화추이’에 따르면 터키를 제외한 OECD 29개국 가운데 헝가리가 인구 10만명당 자살자수(24.3명)에서 최고를 기록했고 다음은 핀란드(20.4명), 일본(20명), 한국(18.1명)의 순이었다. ...

1982년에만 해도 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 당 자살자가 6.8명에 그쳐 29개국 가운데 멕시코(2.3), 그리스(3.3명), 스페인(4.8명)에 이은 저(低) 자살국이었다.

그만큼 최근 20여년간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급증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고 우리사회의 생존 조건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음을 여실이 보여주는 대목이다.³⁾

 지난 2005년 한국인이 사망하는 원인 중 자살이 4위를 차지, 10년 전의 9위에서 5계단 뛰어 올랐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어서 국제적으로도 ‘자살대국(大國)’이라는 오명을 들을 처지다.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살 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8년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는 24.3명으로,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한국에 이어 헝가리 21명, 일본 19.4명, 핀란드 16.7명, 벨기에 15.5명, 프랑스 14.2명, 뉴질랜드 12.1명, 미국 10.1명 순이었다.⁵⁾

1990년대 이래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자살률이 꾸준히 감소한 반면 우리나라만 자살률이 급격히 늘고 있다.

특히 노인의 자살률 급증이 두드러지며 자살 요인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커서 경제적 여유 등 사회경제적인 조건의 충족이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주고 있다. ...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남자는 인구 10만명당 32.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헝가리(36.3명)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였으며 여자는 13.2명으로 가장 높았다. ...

2005년의 경우 초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의 자살률이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들에 비해 남자의 경우 8배나 높아 사회적 불평등이 자살의 요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줬다.⁶⁾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인한 사망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사망원인 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만5413명, 하루 평균 42.2명(34분에 1명꼴)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자살률)는 31명으로 전년의 26명보다 19.3% 증가했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10년 전인 1999년과 비교해서 107.5%나 늘었다.

우리나라의 자살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OECD의 평균 자살률이 11.2명임을 감안하면 해마다 늘고 있는 자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⁷⁾

10일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다. ... 하지만 자살예방의 날을 정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자살률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 평균 자살자가 35명으로, OECD 국가 중 자살률 부문에서 헝가리 다음인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에서 40여분마다 한 명씩 사살을 한다고 보면 되는 셈이다. ...

... 전문가들은 현재의 ‘자살공화국’을 벗어나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울증’을 극복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한다.⁸⁾

이렇게 자살률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고, “40여 분”마다, 보다 정확하게는 “‘‘34분에 1명’꼴로 자살”하는 게 이 나라, 이 사회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사실은 바로 그 때문에, ‘스타 연예인들’이나 기타 유명인들의 ‘충격적 자살’, 인터넷 ‘자살 싸이트’를 통한 ‘동반 자살’ 같은 조금은 ‘특이한 자살’을 제외하면, 그 많은 자살들은 사실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 밖에 있다. 예전에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있던 얘기, 즉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거리가 되지만,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뉴스거리가 아닌 것처럼, 자살이 그렇게 뉴스거리가 아니게 된 것이다. 방금 “‘스타 연예인들’이나 기타 유명인들의 ‘충격적 자살’, 인터넷 ‘자살 싸이트’를 통한 ‘동반 자살’ 같은 조금은 ‘특이한 자살’”이라고 썼지만, 실제로 연간 1만 수천 명에 이르는 자살 사망의 99.9% 가량은 조금도 충격적이지도 조금도 특이하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나라, 그렇게 자살이 만연하고 급증해가고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자살 증가의 원인 (1)

한국에서 최근에 자살이 이렇게 급증하는 주요 원인에 대해서는 대략이지만 이미 위 인용문들에, 어떤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사실 그대로 정직하게, 어떤 경우엔 참으로 희화적(戱畵的)으로, 지적이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리사회의 생존 조건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음을 여실이 보여주는 대목”이라거나 “자살 요인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커서 경제적 여유 등 사회경제적인 조건의 충족이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 “초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의 자살률이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들에 비해 남자의 경우 8배나 높아 사회적 불평등이 자살의 요인” 등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 전자의 유형이다. 경제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경제적 조건의 악화, 빈곤의 심화가 자살과 그 급증의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은 특히 다음과 같은 보도로도 그 자체로서 명확하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IMF 외환위기 당시 크게 증가한 후 감소세를 보이다가 2000년 이후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자살률이 급등한 것으로 보였다.⁹⁾

이에 비해서, “자살예방의 날”을 지정하고 그것이 자살을 줄일 것처럼 기대한다든가, “‘자살공화국’을 벗어나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울증’을 극복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 등은 바로 후자적 유형, 즉 그 원인을 희화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다. “주요 자살 원인으로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병이나 ...” 운운이 만일 정신과 의사의 발언이었다면, 그는 물론 무엇이 그 우울증의 원인인가를 밝히지 않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저 ‘의사니까 그러려니’ 하고 들어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발언이 논리적, 사회과학적 사고를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직분의 사람의 그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보도에 부딪힌다.

통계청 인구동향과 김동희 과장은 “주요 자살 원인으로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병이나 경제 사정 악화 등이 있다”며 “지난해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청년실업도 늘어나면서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유명인사가 자살하면 이를 보고 쫓아 자살하는 사람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¹⁰⁾

이렇게 되면,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병”은 “경제 사정 악화 등”과 대등한, 따라서 상호 간에 전혀 인과관계가 없는 “주요 자살 원인”이 된다. 발언자인 ‘통계청 과장’도, 기자도 참으로 천연덕스럽게 그렇게 얘기하고 쓰고 있다. 하기야 “전문가들은 현재의 ‘자살공화국’을 벗어나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울증’을 극복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한다”지 않았던가!

“‘자살 공화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 종교지도자들이 나섰다”¹¹⁾니, 그들의 관점 역시 지적해두지 않는다면, 예의가 아닐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보건복지부와 한국종교지도자협회는 지난 3월 24일에 발표한 “자살없는 건강사회 구현! 종교지도자 대국민 성명”에서 이렇게 대갈하셨다고 한다.

자살을 미화하거나 동정어린 시선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¹²⁾

그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사회에 자살이 만연하고 급증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사람들이 “자살을 미화하거나 동정어린 시선의 대상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자살을 미화하거나 동정어린 시선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말지어다!

자살 증가의 원인 (2)

제객담(除客談)하고, 오늘날 이 나라, 이 사회에서, 그리고 사실은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 대부분에서, 그리고 ‘체제전환국들’에서 왜 자살이 만연하고 증대하는가를, 극우 ��조선일보��의 한 기사를 통해서 알아보자.

우선, 헝가리가 공산주의로부터 자본주의로 ‘체제전환’한 국가요 사회라고 하면, 더구나 극우 ��조선일보��와 함께 그렇게 말한다면, 자칭 ‘국제사회주의자들’을 포함한 절대 대부분의 뜨로츠키주의자들이나 ‘좌익공산주의들’, 그리고 소위 ‘자율주의자들’ 등이야 길길이 뛰며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그거야 그들의 못 말리는 혁명의 열정이고, 우리는 우리 길을 가자면, ��조선일보��의 오윤희 기자는 그 제목부터 명확하게 “헝가리는 체제전환, 한국은 IMF이후 취약한 안전망·양극화가 자살 불러”(��www.chosun.com��, 2010. 9. 4.)라는 기사에서 “한국과 헝가리는 최근 10여년간 각종 자살률 통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슬픈 1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그 원인 등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헝가리, 자본주의 도입 후 청년실업에 물가 치솟고 복지 개념마저 무너져

한국도 IMF 위기 겪으며 빈부격차로 박탈감 커져 10년 새 노인자살 3배 증가 (강조는 인용자)

보다 자세하게는 이렇게 쓰고 있다.

왜 우리와 헝가리는 이런 [‘자살률 세계 1위’, ‘자살률 세계 2위’라는: 인용자] 오명을 나눠 가지게 됐을까. 기자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1년 특파원 생활을 한 경험을 토대로 보면, 두 나라의 자살 원인은 놀랄 만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치솟는 실업률

... 공산주의 시절, 동구권에서 가장 잘 살았던 헝가리는 1989년 자본주의·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한 이후 빈부격차와 고실업이라는 새로운 병을 앓고 있다.

헝가리 통계청(KSH)에 따르면, 지난해 헝가리의 취업률은 55.4%로, EU(유럽연합) 27개국 중 몰타를 제외하고는 취업률이 가장 낮다. 특히 청년(15~24세) 실업률이 심각해, 지난해 4분기에는 무려 27.8%에 달했다. 헝가리 사회에 만연한 실업자·구직자들이 패배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고등교육을 받은 실업자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런 좌절감이 높은 자살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

한국 역시 조기퇴직·명예퇴직 등으로 일자리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특히 청년실업은 위험한 수준이다. 지난 7월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상반기 청년층 '체감(體感)' 실업률은 무려 23%로, 공식적인 청년 실업률 8.6%의 세 배에 육박하며, 15-29세 청년층 4분의 1이 사실상 실업 상태라고 분석했다.

◆깊어진 빈부 격차

자본주의 도입 이후 헝가리 사회는 부유해졌지만, 개개인의 삶의 질이 더 높아졌다고는 보기 힘들다. 소득 증가폭 이상으로 물가가 올랐고, 2004년 헝가리의 EU 가입 이후 물가의 고공행진 속도는 한층 빨라졌다.

기자는 여기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과 계급의 관행과 무비판적인 사고․언어 습관에 따라서 “자본주의 도입 이후 헝가리 사회는 부유해졌[다]” 운운하고 있다. 이는 물론 자신이 경험하고 사실로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과도 모순되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소득 증가폭 이상으로 물가가 올랐”다면, 더구나 “EU 가입 이후 물가의 고공행진 속도는 한층 빨라졌다”면, 실제로는 부유해진 게 아니라 빈곤해진 것이고 더욱 빈곤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답게 엄청나게 부유해졌고 더욱더 부유해지고 있는 한 줌의 사람들, 그러한 계급의 존재야 당연한 것이지만 말이다. 보다 상세한 예를 들어[聽]보자.

한국의 서울대에 해당하는 국립 엘테대학에서 취재 중 만난 이 학교 학생 라브리누크(Lavrinuk) 레벤테의 설명이 실감 난다.

“20년 전 내 아버지는 한 달에 4000포린트(약 2만2000원)를 벌었고, 지금 나는 아르바이트로 월 12만포린트(약 70만원)를 번다. 그때 아버지는 고급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해도 약 3포린트, 월급의 1000분의 1만 쓰면 됐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맥도널드 햄버거로 점심 한 끼를 때우려면 1500포린트, 소득의 90분의 1이 들어간다.”

“월급의 1000분의 1만 쓰면” “고급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더구나 다음에 인용하는 내용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은 사회. 그런 사회는, (‘20세기 사회주의’를 부정하고 헐뜯는 자칭 혁명가들, 자칭 사회주의자들, 자칭 꼬뮌주의자들 등이 하도 많아서 하는 소리지만)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혹은 적어도 식생활에서는, 낙원과 가까운 사회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자본주의로 바뀌고,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 된 지금은 “맥도널드 햄버거로 점심 한 끼를 때우려면 1500포린트, 소득의 90분의 1이 들어간”단다.

“20년 전 내 아버지는 한 달에 4000포린트(약 2만2000원)를 벌었고, 지금 나는 아르바이트로 월 12만포린트(약 70만원)를 번다”고 해서 “부유해졌다”고 말한다면, 혹시라도 “월 약2만2000원”, “월 약 70만원”이란 절대수치에 현혹되어 “애걔 겨우?” 한다면, 영락없이 바보일 것이다.

아무튼 체제전환 이후 헝거리 사회가 어떻게 부유해졌는지 더 들어보자.

빈부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도 커졌다. OECD에 따르면, 체제 전환 직후인 1990년 헝가리는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273이었지만, 2005년에는 0.291로 높아졌다. 부다페스트 서부 기차역에는 늘 노숙자들이 10여명씩 모여 있지만, 그곳에서 10여분만 나가면 구찌·루이비통 등 명품 매장이 모여 있는 바치(Vaci) 거리가 나온다.

“부다페스트 서부 기차역에는 늘 노숙자들이 10여명씩 모여 있지만, 그곳에서 10여분만 나가면 구찌·루이비통 등 명품 매장이 모여 있는 바치(Vaci) 거리가 나온다”? ― 서울역이나 영등포역, 청량리역 등에는 늘 노숙자들이 수십 명에서 1백여 명씩 모여 있지만, 그곳들은 동시에 구찌·루이비통 등 명품 매장이 모여 있는 초호화 백화점들이기도 하다! 헝가리보다 한국은 자본주의가 더 발달했기 때문에!

그리하여 오윤희 기자의 기사도 이렇게 계속된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지난 7월 '자살대국 한국'이라는 특집 기사에서 IMF 이후 한층 심해진 한국의 빈부격차를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은 1997년 9109명이던 자살자가 IMF 이후 1만2458명으로 크게 늘었고,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역시 97년 19.8명에서 이듬해 26.9명으로 급증한 이후 줄곧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기자는 “보호 못 받는 노후”라는 소제목 하에 이렇게 쓰고 있다.

헝가리는 연령층 중에서도 노인층 자살이 유독 높다. 사회주의 체제에 기반을 둔 국립병원은 여전히 무상 의료를 원칙으로 하지만, 정부 재정 지원 부족으로 간호 인원은 부족한 반면, 환자들은 비싼 사립병원 대신 국립 병원으로 몰려 치료를 받기 위해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체제 전환 후 ‘국가가 보호해 준다’는 복지 개념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연금은 턱없이 오른 물가 수준에 훨씬 못 미쳐 먹고살기가 빠듯하고, 체제 전환 이후 해고된 사람도 많아 노후를 제대로 대비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헝가리는 연령층 중에서도 노인층 자살이 유독 높다. 사회주의 체제에 기반을 둔 국립병원은 여전히 무상 의료를 원칙으로 하지만, ...” 운운. 체제전환 후 ‘서서히’ (―실제로는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그 운영실태야 어떻든, “여전히 무상 의료를 원칙으로 하[는]” “사회주의 체제에 기반을 둔 국립병원”은 과연, 기사가 의뭉스럽게 내비치고 있는 것처럼 ‘노인층’만을 대상으로 한 것인가? 또 “‘국가가 보호해 준다’는 복지”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토록 노인들의 자살이 증대할까?

아무튼 기자는 한국의 노인 자살에 대해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한국 역시 취약한 사회 안전망과 경제난, 가족 해체 등으로 인해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65세 미만 연령층보다 약 4배나 높고, 지난 10년 사이 노인 자살이 3배 증가했다.

그러면서 기자는 다시 한국과 헝가리의 공통점을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헝가리와 한국은 공적(公的) 자살방지 대책이 미흡하다는 점마저 닮았다. 지난해 한국 자살예방협회가 미국·영국·호주 등과 한국의 우울증·자살 상담과 예방 프로그램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가 자살을 시도한 사람에 대한 관리 수준이 꼴찌인 것으로 평가됐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기자가 주요한 자살방지 대책으로 제시하는 “공적(公的) 자살방지 대책”이란 “자살을 시도한 사람에 대한 관리”를 포함한 “우울증·자살 상담”과 같은 “예방 프로그램”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것이 정신과 의사의 소견이라면,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정신건강센터가 우울증 환자나 자살 사고가 있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관리하자 자살자가 40%까지 감소했다”며 “우리도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우울증 관리를 치밀하게 해야 한다”는 “고려대 의대 정신과 이민수 교수”의 말도, 그것이 문제의 기사를 결론적으로 끝맺음하는 대목이 아니었다면, 예로 들고 있는 일본의 ‘통계’의 신빙성이 의심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기사의 결론적 끝맺음 대목이다.

그러나 그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극우 ��조선일보��의 오윤희 기자의 이 기사는 체제전환국 헝가리의 상황을 소재로 자살 증대의 원인을 훌륭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20세기 사회주의’를 타도해야 할 자본주의였다고 떠드는 자칭 사회주의 혁명가들이야 길길이 뛰든 말든!

자살 증가의 원인 (3) ― 그럼 노동운동,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들은?

위 오윤희 기자의 기사에는 “헝가리 사회에 만연한 실업자·구직자들이 패배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 이런 좌절감이 높은 자살률로 이어진다”는 구절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한국 역시 조기퇴직·명예퇴직 등으로 일자리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특히 청년실업은 위험한 수준이다”는 구절이 이어지고 있다.

빈곤이 깊어지는 가운데 취업의 전망이 보이지 않고, 여기에서 오는 ‘패배감’, 그리고 “이런 좌절감이 높은 자살률로 이어진다.”(!) 그리고 “한국 역시 조기퇴직·명예퇴직 등으로 일자리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특히 청년실업은 위험한 수준”이 되면서 거기에서 오는 ‘패배감’, “이런 좌절감이 높은 자살률로 이어”지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운동, 혹은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들은 이렇게 만연한, 그리고 갈수록 급격히 만연해가는 노동자 대중의 그 하층부의 ‘패배감’, ‘좌절감’, 절망감에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일까?

노동운동이,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들이 자살을 강요하는 이 체제와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어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패배감과 좌절감, 절망감에 자살의 길을 갈까? 체제 자체를 문제 삼는 투쟁은 차치하고, 치열한 생존권 투쟁, 임금을 인상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고용을 확대․보장하려는 투쟁만이라도 치열히 전개하고 있다면, “34분에 1명꼴로 자살”이라는 이토록 엄청난 비극이 벌어질까?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사회의 노동운동은, 소위 ‘진보진영’의 운동은, 민주노총은, 수많은 ‘혁명가’․활동가들은 어떤가?

패배감, 좌절감, 절망감이 만연하고, 그리하여 자살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노동운동,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들의 동태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정부가 발표한 ‘출산 장려책’에 이 모든 동태를 아주 상징적으로, 그리고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 있다.

공무원들에게 자녀의 수가 많을수록 그에 비례하여 ‘정년을 연장’하는 특혜를 주겠다!

실제로 수년 전부터 여러 곳에서, 조직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정년을 연장해달라는 요구가 강하게 있어 왔다. 노동시간의 대폭적인 단축이 없이는 실업 그것, 특히 ‘청년실업’을 악화시킬 정년연장인데, 모순되고 위선적인 머리로는 ‘청년실업’을 걱정하면서도 말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정년연장에 반대하여, ‘개혁’이라는 이름의 사회보장 파괴에 대항하여 대대적인 파업투쟁이라는 내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번연히 목격하면서도 말이다.

일찍이 은퇴하여 안락한 노후를 보낼 권리를 요구하고, 그렇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쟁취․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대신에 ‘정년 연장’을 구걸하고, ‘정년 연장’이 특전이 되는 사회 상태. 이것은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들의 상태와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러니 노동자계급 일부의 패배감과 좌절감, 절망감이, 자살이 만연하고 급증할 수밖에!

일부의 ‘진보적 지식인들’, ‘진보적 활동가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노동을 하든 않든 국가가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대중을 기만하지 마라! 기만하지 마라!

그나마 무너져가는 것이라도 지키려고 오늘날 서유럽 노동자들이 몸부림치며 싸우는 그 사회의 저 ‘사회보장제도’, ‘사회복지제도’는 결코 ‘기본소득론자들’이 오늘날 벌이고 있는 식으로, 아니 벌이겠다고 허풍치고 있는 식으로, ‘사회보장제도’, ‘사회복지제도’ 그것을 요구하며 그것을 위해서 싸웠기 때문에 획득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특히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제2차 대전을 맞아 착취와 억압체제 그 자체를 폐기하려 들었기 때문에 획득된 게 아니었던가?! 그리고 거기에 안주하면서 그것은 약화되고 파괴되어 왔던 것이 그 역사 아니었던가?! 근대 사회보장제도의 효시라는 비스마르크 시대의 그것도, 87년 대투쟁 이후 한국 노동자계급의 그나마의 ‘복지’ 혹은 노동조건의 개선도 모두가 다 혁명적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서 저들이 ‘물러난’ 결과였다. 그것들이 왜 약화되고 파괴되는지는 따라서 그 자체로 명확하다. 그런데도 저들 지식인들은 ‘기본소득’을 요구하면 부르주아 국가가 그것을 보장해줄 것처럼 떼를 지어 떠들고 있다. (부르주아 국가, 파쇼적인 정권과 한패가 되어 ‘사회적 기업’ 운운하는 자들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하랴! 사실 ‘기본소득’과 기본적으로 별반 다를 바 없지만 말이다.)

이 사회의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어떤 기대를 걸기엔 그들은 이 사회에 너무나 커다랗고 깊숙한 기득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들의 다수는 너무나 멀리, 멀리 가버린 것 같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다르고, 다를 수 있다. 그간의 투쟁의 성과에 일부 대기업 조직노동자들이 안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들의 계급적 처지는, 그리고 노쇠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경쟁과 위기는 그들에게 노예적 굴종과 투쟁 사이의 선택을 갈수록 강하게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 미조직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그 강요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민주노총은 자신들이 과연 이 사회 노동자계급운동의 버팀목, 디딤돌, 선도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 혹시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측면은 없는지, 혹시 많은 선진노동자들에게 계륵 같은 존재로 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솔하게 성찰하고, 혁신․분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진노동자들은, 혹시 기대와 단념 사이를 오가고 있다면, 이 모두가 ‘우리’의 과업임을 다시 상기하고, 다시 다잡아가자. <노사과연>

1) 일본 언론 ‘자살대국’ 한국 특집, 박용하 계기“, <www.chosun.com>, 2010. 7. 22.

2) 오윤희 기자, “헝가리는 체제전환, 한국은 IMF 이후 취약한 안전망․양극화가 자살 불러”, ��www.chosun.com��, 2010. 9. 4.

3) 연합뉴스, “한국 자살증가율 OECD 회원국 중 최고”, ��www.chosun.com��, 2004. 6. 4.

4) 박용근 기자, “‘자살대국 한국’ 2005년 사망원인 4위 차지 10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어”, ��www.chosun.com��, 2007. 1. 29.

5) “우리나라 자살률 OECD 국가 중 가장 높아”, ��www.chosun.com��, 2010. 3. 24.

6) 연합뉴스, “사회불안에 40분마다 한 명씩 자살”, ��www.chosun.com��, 2010. 8. 18.

7) 뉴시스, “‘자살 공화국’ 한국…지난해 ‘34분에 1명’꼴로 자살”, ��www.chosun.com��, 2010. 9. 9.

8) 연합뉴스, “자살공화국 탈출...우울증 극복이 관건”, ��www.chosun.com��, 2010. 9. 10.

9) 박의례 기자, “자살률 10만명당 31명...사상 최고치”, ��www.chosun.com��, 2010. 9. 9.

11) 김경화 기자, “종교지도자 ‘자살예방 대국민 성명’ 발표”, ��www.chosun.com��, 2010.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