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여 그대는

적막한 나의 거처를 찾고 싶다 했소

숙명적인 병고와 싸우느라

영혼이 지칠 대로 지쳐있는 이때에

그대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눈동자로

수난자에게 기운을 불어넣고 싶어하고

그대 마음의 평온을

착잡한 나의 혼에 심어주고 싶어하오

사랑하는 이여 그대 고운 동정심과

그대 고운 마음 씀씀이는

나의 행복을 되찾아 주고

나의 병을 고쳐줄지도 모르오

그러나 나는 그대 사랑을 바랄 수 없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대의 사랑에 보답할 수도 없소

나의 혼은 그대의 사랑을 받을 가치도 없소

그대의 혼은 언제나

아름다운 감각만으로 가득 차 있소

폭풍과 같은 나의 심정을 그대는 모르고 있소

과격한 나의 사상을 그대는 알지 못하고 있소

그대는 그대의 적을 용서하지만

나는 그대의 그 고운 마음을 알 수 없소

나는 나를 모욕한 자에게

피할 수 없는 복수로 답할 것이오

내가 심약해 보이고

혼의 기능이 정지하는 것은 오직 한순간일 뿐

기독교인도 아니고 노예도 아닌 나는

내가 받은 모욕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오

나에게 다른 할 일이 있소

나에게 즐거운 것은 오직 싸움

전투의 소용돌이가 있을 뿐이오

사랑은 결코 이성과는 어울리지 않소

아 나의 조국은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소

혼은 답답한 사색의 격동에 시달리며

오로지 자유만을 갈구하고 있소

해설: 르이레프(1795-1826)는 ‘12월당원(제까브리스뜨)’ 반란에 참가했다가 주모자로 몰려 처형당했다. 그는 짜르 체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정 수립을 주장하여 당시로서는 가장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변혁운동가였다. 많은 시인들이 12월당원에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참가하였지만 르이레프가 그들 중에서 가장 빼어난 시를 썼고, 작품 수도 많았다고 한다. 그의 시는 거의 전부가 전제군주에 대한 저주와 분노, 자유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조국과 인민에 대한 그의 사랑은 격렬한 혁명적 정열로 넘쳐 흐르고 있다.

출처: 김남주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 시와 사회사, 1993. pp. 4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