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에게 쫓겨난 호랑이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

뭐 다들 아시듯 숲속 최강자는 호랑이인데, 이 호랑이에게 토끼가 진정한 최강자는 자신이라며 결투장을 내민다.

결과는 모두들 생각하시는 바와 다르게 숲에서 호랑이가 쫓겨나게 된다는 것인데, 그 사연은 이렇다.

자신의 강함을 의심해 본적 없는 호랑이였지만 아직 한 번도 토끼의 실체를 직접 본 적이 없다는 것. 토끼는 결투를 앞두고 주변 동물들을 포섭해 소문을 퍼뜨리고 그 소문이 호랑이의 귀에 들어가게 한 거야.

“야. 토끼는 말야 덩치는 산만하고 머리엔 무시무시한 뿔이 두 개나 달려 있고 송곳니는 호랑이인 너보다 두 배는 길고 날카롭거든. 뿐만 아니라 성정이 포악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한번 결투가 붙으면 상대방을 살려서 돌려보낸 적이 없대. 정말 무시무시한 놈이야.”

처음엔 호랑이도 그저 코웃음을 치며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해버리지.

하지만 밤에 잠들기 전 계속 그 소문의 이야기들이 귀에서 왱왱 거리게 되고, ‘에이 그럴 리 없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정말 그럴까?’하는 의심들이 쉬 가시지 않게 되는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심은 점점 공포가 되고 왠지 주변 동물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과거와 다르게 느껴지는 거야... 결투를 앞두고 밤마다 불안에 잠 못 이루다 결국 그 소문을 모두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지. 초조함과 공포에 잠 못 들고 제대로 먹지도 못해 시름시름 앓다가는 급기야 결투를 앞둔 전 날 밤에 꽁지가 빠지게 그 숲을 도망쳐 나오게 된다는 이야기거든. 당연히 결투는 호랑이의 기권으로 인한 토끼의 승리가 되는 거고...

머...사실 이 이야기는 힘만 믿고 난폭하게 행동하는 호랑이를 쫓아내기 위한 토끼의 지혜에서 교훈을 얻으라는 이야기이긴 한 듯한데... 흠... 개인적으론 영 뒷맛이 개운치 못한 이야기다...

물리적으로만 따진다면 호랑이와 토끼의 실질적 힘 차이는 한 99대 1 정도 될라나?

뒷맛이 개운치 못했던 이유...

뉴욕 월가 점령시위 이후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유행어처럼 번졌던 “우리가 99%다”라는 말. 그 매력적이고 위력적인 말이 가진 진실과 관계없이 오히려 그 말 때문에 더 슬펐던 까닭.

“그래. 우리가 99%인데 당최 왜 1%를 못 이기는 거냐?”

뭐... 우리가 99%가 된 게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은 아니다.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고 맑스가 말했다는데, 계급지배사회에선 언제나 지배하는 이들은 소수였고 지배당하는 이들은 절대 다수였다. 깊이 생각 할 것 없이 당연한 노릇 아닌가? 노예제 사회에 노예가 많았겠나? 노예주가 많았겠나? 봉건제 시대에 영주가 많았겠나? 농노가 많았겠나?

한 놈에게 여럿이 달려들면 여럿이 이긴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당연한 이치인데... 그런 계급지배 사회의 지배자들이 모두 일당 천의 전투력과 힘을 가진 자들이었을   리도 없을 테고... 뭐... 현재도 그저 17대 1이라는 싸움의 로망은 전설처럼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일 뿐 40평생 내 눈으로 확인한 적은 없으니...

여하튼 물리법칙에 대한 상식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이런 지배와 피지배의 역사가 어찌 그토록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며 현재도 지속될 수 있는 건지... 어쩌면 저 토끼와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가 그 답의 일부를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토끼가 부린 술수를 ‘지혜’라고 말한다면, 물리법칙을 거스르고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소수는 그런 토끼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겠지...

생각해보자. 자신의 주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던 노예가 어느날 우연히 자신의 주인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가만... 아무리 봐도 내가 쟤보다 못한 게 없는데 왜 내가 제 말에 복종을 해야 하는 거지? 내가 쟤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거 같은데... 머리도 내가 더 좋아 보이고 심지어 생긴 것도 내가 더 잘 생긴 거 같은데 왜 내가 저 자를 주인이라고 부르며 굴종해야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한둘이 아니라 다수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들 소수의 지배는 더 이상 불가능해지게 된다.

해서 저들은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실체에 대한 인식상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플라톤이라는 자가 그러지 않았나.

“야. 니들이 눈으로 보는 건 다 허상이야. ‘이데아’의 세계에 진짜가 있는 거야.”

암튼 플라톤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나 지배자들은 그들이 신과 사돈의 8촌, 혹은 동기동창 정도 된다는 식의 뻥으로 그들 지배를 유지해왔는데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해 궁극적으로 물리적으로도 지배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들어 퍼뜨린 것을 지배이데올로기라고들 한다. 객관적 실체를 인식하지 못 하게 토끼가 퍼뜨린 허위적, 관념적 이데올로기처럼.

그리고 그 지배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그 바탕에 인간이 가진 가장 약한 부분을 장악하는 장치를 탑재해 위력을 발휘한다.

바로... 공포심.

그리고 아무리 발버둥 처도 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현실의 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절망...

그건 이 계급지배 역사의 종결자가 될 것임이 분명한 자본주의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이 자본가계급이고 피지배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다수 근로인민이라는데 태클 걸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이는데...

우리가 99%라고 아무리 외쳐대도 그 99%가 여전히 1%를 이기고 있지 못하는 것 또한 저들 자본가 계급이 그들의 지배도구 ― 예를 들어 국가기구, 언론 등 ― 를 이용해 만들어 퍼뜨려 놓은 지배이데올로기가 99%의 머리 속 깊은 곳에 굳건히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일 게다. 그리고 여전히 그 바탕엔 그들이 초강력 순간접착제로 우리 뇌 곳곳에 덕지덕지 붙여 놓은 것 같은 공포와 절망이 있다.

“에휴... 임투 파업은 무슨... 언제 물량 끊길지 모르는 판에 회사에 붙어 있는 게 어디냐고, 붙어 있을 수만 있으면 임금 동결이나 자진 삭감도 동의하겠다는 조합원들에게 임투하자고? 파업하자고? 택도 없는 소리여...”

공포... 

몇 년 사이 노동조합 현장 활동가들로부터 들은 말 중 빈도수로 베스트 5에 드는 말이다. 아침 조회 때마다 저들 토끼들은 호랑이에게 언제 밥줄 끊길지 모른다는 공포를 쉼 없이 심어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해고, 즉 밥줄 끊기는 것 만한 공포는 없다. 안타깝게도 호랑이들은 그 물량이 끊긴다는 말의 실체를 직접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토끼의 말에, 그리고 토끼의 친구인 국가기구와 언론이 들이미는 데이터에 의존해 생각할 수밖에...

“회사가 현장노동자들 중국 연수를 보내거든. 그러면서 중국이 얼마나 무섭게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지 계속 주입을 시키는 거야. 정신 똑바로 안 차리면 쟤네한테 니네 밥줄 다 뺏긴다는 거지. 그러다가 그 넓은 땅덩이에서 가끔 한국제품 같은 거 보이면 그게 그나마 뿌듯하거든. 갔다와서 조합원들이 회사에 써내는 평가서 같은 거 보면... 가관이야... 국제사회 속에 우리가 얼마나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지 절감했다는 거야. 파업 같은 거 하면 안 되겠다. 열심히 일해야겠다. 이런 내용들이 주를 이루거든... 참 답답해..”

얼마전 어느 노동조합 활동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공포...

저들 토끼들이 끊임없이 심어대고 있는 무한경쟁, 승자독식, 적자생존의 공포심.

생산 현장에서 심어대는 공포심이데올로기의 메커니즘은 그대로 국가적 차원의 정치동학으로 옮겨가 이데올로기적 원투펀치를 날린다.

어느 활동가 동지로부터는 이런 말도 들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급하게 집에 한번 꼭 내려오라 하더라구. 그래서 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이번 선거에서 엄마 얼굴 봐서라도 꼭 박근혜를 찍으라는 거야. 그러면서 동네 노인분들에게 인사를 시키는데 노인분들이 나한테 박수를 쳐주더라구. 아마 엄마 말 듣고 박근혜 찍는 훌륭한 아들이라는 의미겠지. 그리고 나서 엄마에게 난 박근혜 찍기 싫다고 왜 찍으라고 하냐고 물으니까. 정말 진지하게 너희들이 몰라서 그렇지 이번에 박근혜 안 되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거야...할 말이 없더라구.”

공포... 전쟁...

지배이데올로기가 감기라도 걸릴라치면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북핵 미사일, 일본 독도 망언, 공포공장이라고 불리는 헐리우드가 쏟아내는 숱한 전쟁, 테러에 관한 영화들...

확실히 이 보다 더 강력한 이데올로기 통제장치를 찾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이 숲 저 숲을 넘어 저들 토끼들의 공포를 통한 지배이데올로기 조장연대의 메커니즘은 거의 나노급 정밀함이지 싶다.

머... 새누리당 같은 수구 보수꼴통들이 만들어내는 공포이데올로기 따위 이제 안 먹힌다고 여기는 호랑이들도 많이들 계시다.

근데... 저들 지배계급의 분파들은 서로 권력을 놓고 경쟁은 할지라도 지배라는 공통의 이해를 지켜내기 위해선 동일한 이데올로기를 작동시킨다.

“민주당이 좋은 건 아니지만 박근혜가 되면 정말 우리 노동자들 다 죽는 거야. 절대 박근혜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지”

‘우리 노동자들 다 죽는 거야.... 박근혜가 되면....’

그들 호랑이들이 가진 이 지독한 공포심의 이데올로기... 실제로 그랬다. 저들 소위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이라 불리는 민주당세력이 우리 노동자들, 우리 호랑이들에게 심어댄 공포심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너희 노동자들. 우리 말 안 들으면 저 무시무시한 수구보수꼴통들이 권력 잡는데, 그럼 니네 다 죽는 거야. 그러니 있을 때 잘해. 우리에게 대들 생각하지 말구”

김대중 때도, 노무현 때도. 유신과 피비린내 나는 독재의 적자들이 뒤에 버티고 있다는 공포심을 이용해 저들은 그렇게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지배, 통제하고, 탄압하고 죽였었다. 어느 정권보다 많은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어느 정권 보다 많은 열사가 생기고 어느 정권보다 많은 노동법이 개악되고, 용역깡패들 천국이 되었어도 심지어 그런 정권의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깃발 들고 나서는 일까지 벌어지며...

정작 그들은 노무현 때도 그랬고 문재인 역시 저들 새누리당 세력과의 통합을 주야장창 떠들고 있는데도...

박근혜가 되면 우리 노동자들 다 죽는다던 그 노동자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실제로 대선이 끝나자마자 우린 또다시 숨돌릴 틈도 없이 우리 동지들을 죽음으로 떠나보내고 있다. 이 죽음의 행렬이...그리고 지금 수많은 활동가들에게서 느껴지는 그 깊은 절망이 정말 박근혜 혹은 새누리당 정권이라는 그 객관적 실체가 우리에게 가한 결과물일까?... 물론 이명박정권 그 치떨리는 5년의 세월을 보냈던 노동자들이 느낄 그 처절함이 얼마나 끔찍할지는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냉정하게 보자. 새누리당 민주당 할 것 없이 저들 지배계급이 쌍을 이루어 벌이는 한바탕 공포심 지배이데올로기 앙상블에 우리가 이토록 시름시름 앓고 있음을...

밑도 끝도 없는 공포와 절망...그것은...

호랑이가 그 실체를 인식하는 순간 한 주먹거리도 안 될 저 토끼들이 만들어놓은 교활한 권모술수임을.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