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목요일) 아침 8시경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엔진1부 화장실에서 노동조합 붉은 머리띠로 목을 맨 채 숨진 박종길 열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44시간 후 11일(토요일) 새벽 4시경 현차노조의 ‘대책위’는 회사와 합의했고 13일(월요일) 오전 10시 30분 아산공장에서 노동조합 장이 치러졌다. 박일수 열사의 죽음 후 현대자동차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여러 각도에서 많은 평가지점이 있겠지만 공식적으로 발표된 요구와 합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위의 유서와 함께 열사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 오전 8시경. 아산공장 현장은 오후 12시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열사의 시신이 발견된 경위와 함께 유서가 있네, 없네, 경찰이 가져가서 없네 등등 혼란스러웠다. 노동조합의 공식발표가 없는 채, 당일 오후 2시 25분경 라인가동 중단 지침이 확대간부를 비롯한 주요간부들에게 문자메세지로 전달된다.

‘박종길 노안위원 사망 관련 지금 즉시 전 공장 라인정지’

그리고 오후 4시경 언론에 유가족의 요구가 공개된다.

박종길열사의 죽음으로 인해 조성된 국면 내내 유가족은 단 한번도 직접 언론에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 다만 열사의 죽음이 확인된 오후 불과 8시간 만에 현차지부 아산위원회를 통해 유가족이 했다는 요구가 공개된다.

유가족이 고인을 열사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면 노동조합이 마땅히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면 된다. 실명 거론된 회사 관리자를 처벌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산업재해에 준하는 대우’와 ‘고인의 아내 현대차 정규직 채용’이다. 산업재해로 죽은 사람이 아닌데 왜 산업재해에 준하는 대우를 요구했을까. 오전에 목 메달고 죽은 남편이 다니던 공장에 남편 대신 내가 다니겠다고 오후에 요구하는 아내의 생각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9일 오전 고인의 죽음을 확인한 유가족은 13일 장례가 끝날 때까지 정신이 없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병이 나서 아프던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고, 교통사고로 죽은 것도 아닌데 어느날 갑자기 멀쩡히 출근한 사람이 공장에서 죽었는데 그 가족이 무슨 정신이 있겠는가. 아마도 노동조합에 장례절차를 위임하고 노동조합이 시키는 대로 모두 했을 거라는 판단을 한다. 

그러나 최종합의하는 마지막까지 유가족의 요구는 하나의 기준점이 되어 박종길열사의 유서에 밝혀진 타임오프, 혹은 노동탄압에 대한 문제제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근거가 된다.

타임오프로 인한 노조탄압에 항거해 죽은 열사의 염원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아내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기 위한 유가족의 요구가 막는 기가 막힌 지경이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유가족의 요구가 발표된 후 저녁 무렵 공개된 대책위의 요구는 위와 같다. 그리고는 9일밤부터 다음날 아침 10시 30분까지 장시간 논의 끝에 6월10일 공장장의 공개사과를 비롯한 세가지 요구를 덧붙인다.

백번 양보해 유가족이 정말로 위의 정리내용처럼 요구했다해도 이 요구를 발표하는 노동조합을 나는 용서할 수 없다. 명백히 유서에 타임오프로 인한 현장탄압이 표현되어 있는데 ‘산재에 준하는 대우’와 ‘고인의 아내 현대차 정규직 채용’ 이라니. 박종길 열사가 자기 아내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라고 요구하며 죽었단 말인가. 열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요구의 근거가 유가족이라고 말하며 열사를 조롱하는 현차지부 대책위의 뻔뻔함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

한가지 더 짚어야 할 것이 ‘비상 대책위’다. 그냥 ‘비상 대책위’다. 세상에 이런 대책위가 어디있나. 열사정신 계승을 위한 대책위도 아니고 타임오프 분쇄, 현장탄압 분쇄를 위한 대책위도 아니고 그냥 ‘비상 대책위’다. 무엇이 비상이고 무엇을 위한 대책위인가. 타임오프로 인한 노조탄압에 항거해 죽은 열사의 죽음을 아내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기 위한 산재노동자의 사망으로 만들기 위한 비상대책위란 말인가.

비상대책위는 10일 오전 요구가 정리된 후 오후 2시부터 회사와 협상을 한다. 밤이고 낮이고 쉬지 않고 협상을 하는 사이 현대자동차 사측은 언론에 고인의 죽음은 “타임오프제와 노조탄압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개인적인 일신상의 이유가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고 입장을 밝혔다. 비상대책위의 요구와 그다지 배치되지 않는 입장으로 보인다.

결국 11일 토요일 새벽 비상대책위와 회사는 ‘고 박종길 조합원 사망관련 합의’를 위와 같이 한다. 난데없는 조합원의 죽음으로 인해 벌어질지도 모르는 투쟁을 잠재우기 위한 비상대책위는 제 역할을 다했다. 

15만 금속노조 중 가장 큰 규모의 4만5천 조합원을 거느린 현차지부에서 노안위원이 타임오프로 인한 노조탄압에 항거해 유서를 쓰고 자결을 했는데 이경훈 집행부는 44시간 만에 합의하고 후다닥 마무리 했다.

산자들은 궁금하다. 박종길 동지는 왜 죽었는가? 이경훈 집행부가 유가족의 요구를 앞세워 투쟁을 회피하고 열사를 조롱하는 어용짓을 할 때 대자보를 통해 피를 토하며 열사정신 계승해서 타임오프 분쇄하자고 주장하던 현장조직들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부 선거를 위해 분투하는 것 말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44시간 만에 지나간 열사국면을 눈뜨고 바라본 4만 5천 조합원들 중에 산 자는 누구인가?

죽어서도 노동조합을 사랑한다는 박종길 열사의 염원을 짓밟고 24년 현차노조는 이제 어디로 가는가. 여전히 열사는 우리에게 답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