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변방에 위치한 성공회대학교에는 항상 인권과 평화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 성공회대학교’. 그러나 나는 지금 인권과 평화의 대학에서 짓밟혀 사라진 인권과 평화가 되돌아오기를, 혹 애초에 이름뿐이었을지 모를 인권과 평화가 진정 이곳에서 실현되기를 애타게 희망하며 이 글을 쓴다.

1. 조교라는 이름의 노동자로 살아가기.

대학에는 교수와 학생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물론 여기에도 비정규직은 존재하며, 그들이 견뎌야 할 핍박과 설움도 여전하다. 청소 및 경비를 담당하시는 분들을 떠올려보면 되는데, 재밌는 것(?)은 상대적으로 청소 및 경비를 담당하시는 분들에 비해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이지만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한참 길어질 테니 거두절미하고 인권과 평화의 대학 성공회대학교에서 조교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고통 받고 버림받았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취지는 좋았다. 졸업생들이 취업준비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희망자를 선발하여 학과 업무를 ‘보조’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해야 하는 업무가 단순 보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조교라는 이름의 그들은 실질적인 학과 업무 전반을 책임졌는데, 입학부터 졸업에 이르기까지 학생들과 교수들을 대면하며 일의 내용과 시간을 고려해볼 때 정규직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노동을 하였다. 차이가 있다면 극도로 낮은 임금과 정규직원이 아닌 조교이기에 받을 수밖에 없는 차별 뿐. 하지만 행정조교들은 본교의 졸업생이기 때문에 또 좋은 취지를 보고 자신이 지원해서 온 것이기에 학교에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년 ‘행정조교 처우개선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된 것은 아무리 조교라고는 하지만 또 아무리 본교를 졸업한 학생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학교에 채찍질을 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인권과 평화를 부르짖는 대학인데. 그래서 그들은 학내 행정조교들의 실태를 조사하여 “성공회대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은 ...” 이름의 백서를 발간하였다. 여기에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조교는 연구에 참여하면서 연구와 관련된 사무처리 등을 보조하는 직책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대학원생이 장학금을 지급받으면서 교수의 연구과제에 참여하면서 조교 직을 수행하기 마련이다. 성공회대학교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연구참여, 보조와는 전혀 관계없고 고용조건이 다른 ‘직원’을 부르는 말일 뿐이다. (...) 조교는 열악한 고용조건을 가리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다.”

“우리대학의 조교를 한번 들여다 보자. 본교를 졸업한 신체 건강하나 아직 사회진출을 하지 못한자 중 학교에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특별히 근무조건이 계약서 없이 구두로 이야기해서 채용가능한 자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나오라면 군소리 없이 나와서 교수 업무도 보조하고 행정업무도 보조할 수 있는 능력있는 자 뭐 대충 이정도가 학교에서 생각하는 조교가 아닐까 한다.”

“임금은 당연히 적다. 이번에 올라서 그나마 실제급여 85만원 받는 건데 어디 가서 이 월급 받는다고 얘기할 수 있겠냐. 학교가 웃긴 게 모교생들을 이렇게 취급하는데 밖에 나가서 어디 더 많이 받고 일할 수 있겠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추천할 의사가 있는냐는 질문에)

“추천해줬다가 욕 얻어먹을 것 같다. 월급도 많지도 않고 대우도 잘 받는 것도 아니고. 여기 처음 들어올 때는 공부하려고 들어오는 경우는 많은데 그렇지 않으니까 누군가도 그렇게 말한다면 추천해주기 어렵다.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고 대접 못 받고...”

(강조 필자)

그렇다면 8년 가까이 지난 2011년의 지금 무엇이 변했을까. 그러나 (바뀐 것이라고는 오직 그들에게 계약직 행정직원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부여되었다는 것 뿐.) 여전히 계약직 행정직원들은 학사행정 전반을 책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여 그들이 없이는 실질적으로 학과 운영이 전혀 안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계약환경 속에서 저임금과 비정규직에 대한 멸시들을 감내하고 있었다.

2. 비정규직 문제해결? 비정규직 쫒아내기!

그러나 그런 그들이 지난 2011년 2월 28일 계약만료를 이유로 퇴사하게 되었다. 이별을 알리는 짧은 편지 한통과 함께.(이 편지가 전달된 것은 계약 만료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였다.) 그리고 계약기간이 남은 몇 명에 대해서도 학교는 계약연장 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밝혔다. 계약 연장을 할 경우 소위 비정규직법에 의하여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기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러하듯) 학교는 계약만료를 이유로 그들을 더 이상 고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학교는 이에 대하여 이것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내쫒는다? 뭔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의 설명은 이렇다. 그동안 비정규직을 통해 처리되었던 학사행정업무가 학과별로 어떠한 매뉴얼도 없이 운영되고 있어 학교 차원에서 일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사행정을 전반적으로 개편하여 또 정규직이 그것을 안정적으로 맡아 처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취지에는 일부 동감한다. 그런데 정말이지 이상한 것은 업무개편에만 신경쓰다보니 실제 그 업무를 그동안 담당해왔고 또 담당해야할 사람들은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한다는 방식이 비정규직 ‘자리’를 (소수의) 정규직 ‘자리’로 만들기만 하고 기존의 일하던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계약 만료되었으니 나가라고 하는 게 맞나? 어떠한 예고도 없이 달랑 편지 한통과 함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일련의 학사행정개편이 학내의 어느 누구와도 공유되지 않고 급격하게 시행(학교는 5년 전부터 준비하였다고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단지 5년의 역사가 있는 것 뿐이다.)됨에 따라 학생들을 비롯하여 정규직원들 역시 대단히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제한수업신청과 같은 중요한 학사시스템의 변화(제한수업신청 변경 역시 사전에 충분히 공지되지 않았다.)에 있어서도 그것을 설명해주고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줄 담당직원들이 갑작스럽게 바뀌며 학생들이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소수의 정규직을 업무보조하기 위해 등장한 각종 근로장학생들에게는 장학의 취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과중한 업무가 부여되기도 하였다. 공식적인 이름의 비정규직은 없앴으나 변종의 비정규직들이 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졸업생들과 학생들을 인권과 평화의 대학 성공회대학교에서 이렇게 취급하고 있으니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3. 자위에 빠진 인권과 평화의 대학, 그래! 한번 해보자.

사람 냄새 쫙 뺀, 차디찬 법과 경영의 논리만을 내세우는 학교에 대하여 2004년 당시의 조교들이 그러했듯 이번에도 우리의 목소리를 내보고자 ‘성공회대학교 계약직 행정직원 정규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¹⁾가 구성되었다. 학교가 진심으로 그 동안의 비정규직 고용에 있어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면 그들을 ‘배제’하는 방식이 아닌 그들과 ‘함께’ 가려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또 그것이 학교가 내세우는 교육이념과 다르지 않다고.

그런데 학교는 이러한 우리의 문제제기에 끊임없이 자신들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서울의 변방에 위치한 작은 학교이기에 재정이 심히 열악하다는 것. 그리하여 학교는 등록금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등록금 의존율이 80%를 훨씬 웃돈다!) 만약 계약직 행정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 할 경우 등록금이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등록금을 적게 내는 것도 아니고 또 우리가 내는 등록금 만큼 우리에게 학교의 여러 가지 사안들에 대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통로나 결정권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열악한 재정을 탓하며 우리에게 돈을 더 내야할 것이라고 협박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산의 문제는 그 절대적 액수도 문제이겠지만 그 한정된 예산을 언제, 어디에 또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 하는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교직원 임금은 5%나 인상하면서 비정규직은 계약만료로 내보내고 또 정규직화 해달라고 요구하면 등록금 올려야 된다고 하는 것. 과연 학생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늘날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일말의 고민이나 해봤는지 의문이다. 

학교가 자주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법적으로 문제없음이다. 계약직의 경우 계약서에 분명히 계약기간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계약서를 작성한 본인들이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으며 학교 역시 그것을 전제하여 모든 것을 계획, 실행(?) 했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비정규직 자체가 계약의 기간이 정해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계약기간을 모르고 계약하는 비정규직도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업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에 새로이 정규직을 뽑는 수고를 덜고 기존에 업무를 담당해왔던 사람들의 전문성을 인정하여 정규직화하라고 하는 것이다.(법적으로도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5조에 이점이 명시되어있다.)

이 밖에도 학교는 ‘진보’의 대학이라고 이상적인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이것도 너무 웃기다. 학사행정개편 과정에서 비정규직들을 편지 한통으로 보내버리고 학생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사과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자는 것이 도대체 뭐가 그렇게 이상적인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우리가 수 백, 수 천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며, 학교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학사행정개편 한다고 해서 그렇다면 해당하는 약간 명을 정규직화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 뿐인데 그것마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토록 대내외적으로 학교를 홍보할 때 사용하는 진보고 인권이고 평화이고 뭐고 간에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라고 밝히는 것이 솔직한 태도일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들을 좁혀보고자 또 학교가 말하는 대로 사람냄새 풀풀 나는 학교가 되기 위해 비대위는 학교 측에 적극적으로 면담을 제기하고 있으며 한 차례의 면담을 성사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논의할 수 있는 것들은 대단히 제약되어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학교 측과 논의 할 수 있는 테이블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역시 학교 측은 지난 면담 때 충분히 이야기 되었다며 다시 만날 필요가 있냐는 식의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계약기간이 6월, 8월이면 만료되는 이들이 있어 이들의 계약만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방학이 되면 잠잠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도대체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 투쟁을 시작한 지도 100일이 넘어간다. 앞으로 200일을 또 300일을 기념(?)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며칠이라도 상관없다. 다만 우리는 학교가 우리에게 가르친 바대로 선량하나 결코 무력하지 않게 행동할 것임을 이 자리를 통해 밝혀둔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