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칼바람은 조금씩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꽃샘추위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3월의 어느 하루, 서울역에서 추위를 잊은 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많은 유동인구로 북적이는 서울역에서 몸자보를 한 채 선전전을 진행 중이었다. 신기한 듯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인사를 계속해서 밝게 건넸고, 종종 무시한 채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로 인해 “이것 좀 읽어보세요.”라며 조심스레 내밀었던 손을 머쓱하게 거두기도 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 틈 사이로 보인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아픈 문구가 눈에 박혀서 눈을 뗄 수 없었다.

Q. 2009년 파업 이후 시간이 꽤 흘렀는데,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A. 죽지 못해 살고 있습니다, 정말로. 사람이 죽으니까 이제 플래시가 막 터지고 정치인들이 막 입을 열기 시작했단 말이죠. 이 상황이 희망으로 가야되는데 사실은 절망감이 더 크거든요. 분노감이 더 크고, 배신감도 크고, 불신감도 크고. 그래서 사람 조직이 안 돼요. 옆에서 동료가 죽어나가는 데도 잘 안 모여지는 것이죠. [시사in]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10명 중에 3~4명은 자살을 생각하고 있고, 자살을 경험하고. 그리고 10명 중에 최소 2~3명은 가정불화를 겪고 있고, 이혼 위기까지 가고 있고. 그러니까 지금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못 살고 있는 거죠. 제일 중요한 것은 복직인데, 복직이 안 된다고 하면 지방자치단체든, 경기도든, 아니면 정부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제반 여건들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요. 지금 닥친 여러 문제들이 있는데,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다가, 사람이 죽으니까. 사람이 자꾸 죽으니까. 이제야 얘기가 나오는 것에 대한 배신감이 사실 커요. 하지만 어쨌든 진정성 있게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단체나 개인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을 위한 대책위를, 공대위를 꾸렸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가장 급한 것은 이제 논의하고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행동이나 실천으로 나가야 하는 거죠. 그리고 이제는 그런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이라는 것은, 그리고 가족들의 죽음이라는 것은 쉽게 사회적 타살이라고 얘기되잖아요? 그런데 그 사회적 타살이라는 의미가, 그 혐의가, 정말 자본과 정권에게만 있는 것인지. 우리 내부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지 생각을 해봐야 해요. 지금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 얼마나 진정성 있게 나서고 있는 것인지를 보면,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저도 2009년 옥쇄 파업할 때 상집 간부를 했던 사람으로서 그런 커다란 죄책감과 책임감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느끼고 있고. 아무튼,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고. 왜냐하면 사람이 희망이 있고 전망이 있어야 사람이 살아갈 만한 마음들을 가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진 개인이 되다보니까, 누구랑 의논할 상대도 없고, 기댈 데도 없는 이런 상황이다 보니까. 어찌되었든 쌍용자동차지부가 그런 정신적으로 기댈 만한, 그럴 수 있는 투쟁의 주체가 되어서, 더 이상 살인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정말 싸워보겠다, 이런 마음이 있는 거죠.

Q. 현재 보신각에서 한진중공업, 대우자판지회와 함께 상경투쟁을 진행 중이시죠? 현재 투쟁 계획은 어떻게 잡혀있나요?

A. 15일 14시에 평택역에서 3사(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대우자판지회)가 함께 집회를 할 거예요. 그리고 평택역에서 평택시청까지, 1시간 정도 선전전을 하면서 행진하고. 평택 시청에서 16시부터 돌아가신 분들 위령제를, 정리해고 희생자 분들 위령제를 지냅니다. 이건 예정인데, 23일에는 공장 앞에서 교섭요구 촉구 결의대회를 하려고 해요.

Q. 쌍용자동차지부에서는 어느 정도의 인원이 결합을 하고 있죠?

A. 솔직하게 우리는 소수로 싸우고 있어요. 열다섯에서 스무명. 그 정도가 결합하고 있어요.

Q.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에 재취업도 되지 않고, 쌍용자동차 출신이라고 하면 이력서도 받아주지 않는, 소위 ‘주홍 글씨’ 얘기가 많이 다뤄지던데요. 어떤가요?

A. 사실 저는 이력서를 내본 적이 없어요. 구치소에서 나와서 뭐 쭉 그냥 활동만 해왔으니까.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면 농담이 아니고, 100군데를 이력서를 넣으면 100군데가 하나도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이 문제는, 사회적 타살의 의미가 뭐냐면. 다른 나라 같으면 해고가 되더라도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쉽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받는 데미지가 적은데, 우리나라는 안전망이라고는 눈곱 만큼도 없고, 정규직 노동자가 나락으로 떨어지면 다시는 발붙일 수 도 없을 만큼, 그런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있는 거죠. 그래도 그 해고된 노동자들이 자책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어요. 비정규직으로 가서 일도 하고, 공장에서 임금 얼마 안 돼도 일하고.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제 그런 일자리도 없다는 거예요. 정말 할 수 있는 일자리는 날품팔이, 일용직, 그리고 파견업체에서, 인력시장에서 구인하는 것. 그리고 정말 하루 13시간, 14시간을 일하고 150만원도 못 받는 그런 일자리. 뭐 그런 것밖에 없는 거죠. 이게 왜 문제냐 하면, 우리는 이제 대부분 40대가 많아요. 그런데 40대는 아이들이 이제 커나가는 시기라서, 돈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는 시기잖아요. 내가 안 입고, 안 먹고, 안 쓰더라도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가장들은 이제 전혀 감당을 못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보니 이런 부채들, 마이너스 통장은 연일 늘어나고 있는데, 사실 해고자도 그렇지만 무급 휴직자는 더더욱 심해요. 실업수당도 받지 못하니 지금 1년 6개월을 그냥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그 분들이 갖고 있는 정신적 고통이 정말 큰데, 이 문제를 지금처럼 이렇게 방치하거나, 사태가 어떻게 해결되겠지, 하는 무대응으로 대응한다면 이런 끔찍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겠죠.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 내지 간부들 그리고 대의원 동지들을 보면 손해배상, 가압류, 보상권 이게 총 합쳐서 200억 들어왔거든요, 200억. 매번 얘기하는 것이지만 해고자들한테 천만 원 이상은 그냥 숫자예요, 그냥 숫자. 뭐 돈이 아니죠, 없는데 뭐. 우리한테 천만 원 이상은 숫자라서, 천만 원까지는 어떻게 빚을 내서 갚을 텐데 천만 원 이상은 못 내는 거지. 뭐, 이걸 15년, 20년 동안 일해서 집하나. 단칸방을 하나 구했는데, 그걸 뺏긴다? 목매지 않을 가장이 어디 있겠어요. 거기에 약 먹지 않을 가장이 어디 있겠어요. 아파트 베란다에서,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않을 가장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관심해요. 우리가 제대로 못 싸운 것도 있고. 어쨌든 지방자치단체나 쌍용자동차가 가장 큰 주요 원인이긴 하지만, 어쨌든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지 않으면, 이건 정부가 살인을 계속 저지르는 만행인 거죠. 쌍용자동차에서 일어난 죽음이, 우리 14명의 죽음이, 용산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는 거. 사회적 타살이라는 의미 규정 때문에도 똑같은 것이고, 지금 함께 싸우고 있는 한진중공업이나 대우자판지회도, 그리고 발레오 공조 코리아도, KEC도, 현대자동차 울산 비정규직지회도, 전부 다 지금 진행형인 거죠. 우리는 이제 정리해고 완결이 돼서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고 있는 거고, 이곳들도 앞으로 우리처럼 죽어나갈 거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해고를 해서는 안 되고, 상생을 해야 하는 거죠. 기업이나 정부가. 강성노조가 문제가 아니라 강성회사, 강성정부가 문제 아니겠냐는 거고, 어쨌든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들이 책임 있게 나서야 되는 것이고, 정리해고법 자체를 이제는 폐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이 자꾸 죽는 문제에 대해서. 이런 문제까지 논의를 발전시키고, 이런 것들을 논의에만 머물지 말고 직접적인 실제 행동으로 나서야한다는 거죠. 비단 쌍용자동차의 문제로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정리해고가 지금 남한사회에서 상시화 되고 전 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직장폐쇄하고 정리해고 하고, 그런데도 아무도 자본을 탓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풍토가 문제라는 거죠, 지금. 이명박 정부가 친기업적인 정부인 것은 뭐 이미 여러 가지 행위들로 경험했는데, 만날 말로는 공정사회를 얘기하시잖아요, 이명박 대통령이. 웃기는 거예요, 정말. 어쨌든 이런 문제에서 소외된 약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책임들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비단 국가의 책임뿐만 아니라 쌍용자동차는 정리해고 자체가 무효인 거예요. 왜냐하면 정리해고를 하려면 몇 개의 조항이 있잖아요?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 회피노력이라든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라든지. 근데 뭐 없는 거예요. 우리가 자료를 찾아봤는데 없어요. 민사 들어갔는데, 법적으로 가려질지 안 가려질지, 법원이 정의의 손을 들지 안 들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에선 분명 없는 거죠. 법원에 냈던 자료들도 조사해보니 다 조작이었고. 회계조작, 기획 파산이죠. 이걸 산업은행 관계자들조차도 인정해요. 물론 비공식적인 얘기지만 그들도 인정해요. 마힌드라가 넘어온다, 마힌드라가 이제 쌍용자동차를 정상화시킨다, 아무도 안 믿죠. 정부도 안 믿는 거고. 그런데 정부가 그걸 안 믿으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는 거지. 왜? 쌍용자동차? 그 점유율 4%밖에 안 되는 회사? 뭐 없어지면 그만이지. 잘린 사람들은 안됐지만, 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 아니냐, 이런 논리로 지금 국민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거, 책임자 처벌하고,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명예회복 하고, 그리고 유가족들 대책 마련하고. 손배가압류 처리하고. 이런 일들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단 먼저, 지금 사람이 14명이 죽었는데 여당, 그리고 정부의 입장표명이 하나도 없거든요. 한 회사에 다니던 사람들이, 노동자들의 가족들이, 연이어 죽는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것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표명도 없다? 쌍용자동차도 마찬가지예요. 유감 표명도 없었어요. 복직 계획도 없는 것이고, 계속 전처럼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이고. 그런데 쌍용자동차가 신차가 나오고, 잘 팔린다? 그건 어불성설인 거죠. 잘못된 길을 바로잡지 않고 계속 구불구불한 길을 가다보면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고, 지금 남아있는 생산직 노동자 2500명도 결국 다 잘리고 공중분해 되겠죠. 그러지 않기 위해선, 더 많은 눈물과 더 많은 아픔을 탄생시키지 말고, 지금이라도 기존에 무급 휴직자들 복직시키기로 약속한 거. 이건 약속을 한 거니까. 이걸 이행하고, 해고자 복직에 대한 계획도. 당장 복직은 어렵더라도 ‘계획’이라도 내놔야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거 아니에요? 희망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는 거죠. 투쟁하는 사람은 신념이 있기 때문에 투쟁해요. 무급 휴직자도 사실, 언젠가는 현장에 복귀하겠지, 하는 희망으로 죽을 결심을 하지 못해요. 단, 희망퇴직자는. 아니, 절망퇴직자는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이죠. 복귀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희망퇴직자 중에 자살자가 굉장히 많은 거예요. 14명 중에 9명이 자살을 했잖아요, 9명이. 연탄가스를 세 명이 마셨어요. 베란다에서 둘이 뛰어내렸어요. 화장실에서 두 명이 목을 맸어요. 심장마비로 쓰러지신 분들도 부지기수고.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급사로 쓰러져서 돌아가시고. 이런 문제에 대해서 쌍용자동차가 입장표명을 안 하는 문제만 봐도 정말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회사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어쨌든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합의하고, 상생하고, 이런 것들을 논의한다면. 쌍용자동차지부도 적극적으로 만남을 갖고 얘기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제 정말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죽을 각오로 투쟁해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들이 있어요.

Q. 13번째 죽음이다, 14번째 죽음이다, 언론마다 다른 숫자를 얘기하던데요.

A. '해고는 살인이다'를 외치고 여섯 번째 죽음을 맞이하면서 공장점거파업이 끝났어요. 그 뒤로 계속 돌아가신 거죠, 1년 3개월 정도 동안. 처음의 6명 죽음은, 유산한 아이를 두 명 확인했던 거였는데,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확인해보니까 유산 된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조합원들이랑 그 가족들 돌아가신 건 13명이고, 유산한 아이를 상징적으로 1명을 뒀어요. 그래서 14명, 이렇게 된 거죠. 언론사마다 인원을 세는 수가 달라서 그렇게 정리를 했어요. 잉태 되었지만 태어나지 못한 생명도 ‘한 명의 존중되어야 할 생명’이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아들이 자살하고, 이런 일들도 있지만.. 우리가 밝혀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하니까요. 다 알 수 없는 것이고, 희생자 수를 논하는 것 자체가 사실 우습고 슬픈 것이고요, 지금. 몇 명이 죽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정리하기도 난망한 일이죠, 수를 세는 것이.

Q. 독자들에게 전하실 말씀이나 당부의 말씀이 있나요?

A. 우리가 단일 사업장 투쟁은 잘해요. 남한에서 단사투쟁은 휘황찬란한 투쟁이 많았어요. 근데 우리가 ‘함께’하는 계급투쟁은 87년 이후로는 한 번도 못 만들어낸 것 같아요. 현대자동차가 공장 점거 파업을 했을 때, KEC가 공장 점거 파업을 했을 때. 우리가 금속노조, 민주노총의 미약한 힘들에 실망할 것이 아니라. 그런 걸 한탄할 것이 아니라. 이제 정말 내 일처럼 집중해서 밀어붙이고 승리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해고 없는 세상, 하청 없는 세상,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당부의 말씀은 아니고, 그냥 제 개인적으로 바라는 희망? 전망? 이런 것이에요.

그들은 내내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정말로 사회적으로 살해되었다. 개인이 개인에게 해를 가한 일에는 사회적인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사회가 개인을 죽음으로 내몬 일에, 어째서 사회적인 책임이 따르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계획되고 예고된 살인을 제재하지 않았고, 그 결과 열네 명의 사람이 죽었지 않은가. 게다가 범인조차 검거되지 않은 연쇄살인이니 현재 진행형이다. 당장 오늘이라도 피해자가 더 발생할 수도 있다. 가해자를 현상수배 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나? ‘해고는 살인이다.’ 짧은 일곱 글자의 문장이 이제는 너무나 견딜 수 없게 아파서, 분노가 인다. 이제는 더 이상 아프고 외로운 죽음이 없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며 글을 마친다. 해고는 살인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