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 동의도 합의도 없이 1분만에 '국립대 포기'

작년 12월 8일 서울대학교 법인화법안이 새해 예산안과 함께 날치기 처리되었다. 전 학내 구성원과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합의도, 구성원의 의견 수렴도 없이 법인화 법안을 날치기 처리한 한나라당과 정부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학내 구성원들은 지금껏 수많은 토론회와 세미나를 개최하며 법인화에 대한 입장을 정하고 법인화에 대해 수차례 문제제기를 해 왔다. 학생들은 2009년 총투표를 통해 반대율 80%로 법인화 반대라는 학생 의사를 분명히 했으며 교수-직원-학생 3주체는 서울대 법인화 반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법인화가 낳을 폐단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법인화 통과 저지를 위한 행동들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하지만 본부와 한나라당은 이를 묵살한 체 "구성원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며 국회에 법안을 올려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1분만에 통과시켰다.

서울대가 이제 공공기관이 아니라 '법인자본'?

'법인화'란 무엇인가. 국가 기관으로 운영되던 서울대학교가 하나의 자체적인 법인자본을 설립해 재단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법인자본에 의해 운영될 때 나타나는 가장 특징적인 변화가 바로 이사회 설치다. 법인화법 12조에 따르면 이사회는 총장선임, 예산 및 결산, 중요 재산 취득/처분 및 관리 등 학교 주요 사안에 대해 심의 및 의결권을 가진다. 또 법인화법 28조에서 명기했듯 서울대가 직접적으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이것이 '법인' 서울대학교가 갖게 되는 주요한 특징이다.

법인화를 추진하는 이들은 이같은 변화를 통해 이사회와 총장의 강력한 리더십과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고 수익사업을 통해 재정적으로 독립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서울대 법인화는 그리 간단하게, 누군가 학문에 대한 고매한 열정으로 발전 방향을 고민하다가 갑자기 떠올린 아이디어가 아니다. 서울대 법인화는 국립대 법인화, 나아가 대학기업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추진되었다. 법인화의 이면에 있는 대학기업화의 흐름을 보면 법인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법인화 추진 세력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추악한 진실을 알 수 있다.

침체된 경제, 자본의 이윤을 위해 "이제 대학도 기업이 되어야 한다"

이미 미국에서는 1970년대 경제위기 이후 기업들이 하나 둘 자체적인 연구시설을 줄이고, 대학 내부 연구실과 연계해서 비용을 줄이며 연구를 하려고 시도하기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산학협동’이 활발하게 진행된 이유다.

남한 사회도 1990년 이후 경기 침체와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교육 개혁’ 압박이 더욱 심하게 가해진다. 경기침체로 기업의 수익이 줄어들어 신규채용 규모를 축소했고, 기업 자체 연구 역시 축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에 정부는 수월성, 특성화를 기준으로 대학을 평가하고 재정을 차등지원함으로써 대학 간의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연구중심 엘리트대학을 선별 육성하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1995년 5.31교육개혁을 통해 대학지원금을 볼모로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1999년에는 BK21 사업을 시작해 산학협동을 강화하며 학과 별로 성과를 판단해 지원금을 차등지급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대학경쟁력 강화방안 발표, 대학구조개혁안 발표 등 ‘수익’을 내는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단행한다. 2008년 발표된 국립대 재정회계법안은 국가 차원의 재정지원을 감축해 학교와 각 학과가 연구비와 재정을 자체 조달해야만 하게 만들었고, 따라서 기업의 자본유치와 수익사업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 만들어 사실상 '재정 부문 법인화'로 불리기도 한다. 2006년에는 국공립대 법인화 방안을 발표했고, 각 국공립대의 반발에 부딪히자 서울대부터 나눠서 법인화를 진행하는 서울대 법인화법을 2009년부터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서울대 법인화 법안은 대학 역시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여기며 ‘수익’을 기준으로 하는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하나의 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법인화 추진세력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수익사업 확대, 학과 간 성과경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서울대가 국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가지고 강력한 CEO형 총장과 전략가들이 이끄는 대학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사회를 꾸리고 총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자율성'은 대체 누구의, 누구를 위한 자율성인가

결국 그들이 주장하는 것, 세계 10위권 대학에 진입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하며, 이를 위해 공공기관으로서의 의무를 벗어던지고 강력한 총장과 이사회가 '자율성'을 확보해 CEO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명백하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교육공공성을 포기해야 한다. 대학은 하나의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그들이 말하는 자율성에 학내 구성원의 자율성은 간 데 없다. 이사회에는 외부인사가 1/2이상 포함되어야 하며, 교육과학기술부와 기획재정부 차관이 당연직으로 이사가 된다. 정부로부터 자율성? 그건 단지 '교육공공성'으로부터의 탈피에 지나지 않음을 법안 스스로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단과대 학장단이 행사하던 교수 임용권을 죄다 통합해 총장이 서울대 전 교원/직원의 임면권을 행사하게 된다. 더군다나 초대 이사장은, 무려 총장이 겸임하기까지 한다.

과연 구성원을 배제한 채 총장과 이사회, 총자본 국가가 운영하는 학교는 누구를 위한 학교인가.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자율성이란, 경쟁력이란 어떠한 것인가. 결국 자본의 입맛에 맞게 가공하며 이윤의 잣대로 학문과 연구를 재단하고 구성원을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겠다는 말 아닌가.

거세지는 대학기업화. 서울대법인화 그 이후

결국 법인화 이후 직격탄을 맞게 되는 이들은 바로 학내 노동자들이다. 공무원, 기성회 직원, 시설관리노동자 이렇게 세 가지 형태의 고용형태가 존재하는데, 이들의 고용형태와 안정성은 법인화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고 말 것이다. 공무원과 기성회 직원은 사립학교 직원으로 대우받게 되며 이를 거부하는 공무원은 이직을 강요받는다. 재정이 독립되고 대학이 하나의 자본으로 작용한다면 간접고용이라는 가장 취약한 고용형태를 가진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고용승계는 더 이상 장담할 수 없다. 이미 서울대 법인화 법안을 작성하면서 작성된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수 천만원에 달하는 '퇴직금'을 책정해 놓고 있어 법인자본 서울대가 벌여나갈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위협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다음으로 타격을 입을 대상은 학생이다. 그것도 전국 국공립대 중 가장 비싼 등록금을 자랑하는 서울대는, 이제 법인화를 계기로 등록금을 더 올려야겠다고 벼르고 있다. 사실 등록금 문제는 학생대중에게 가장 민감한 사안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본부는 법인화가 되어도 등록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며 큰소리를 쳤다. 재정이 국가로부터 독립되더라도 수익사업과 기부금으로 안정적인 재정 확보를 할 수 있을 것이며, 등록금 인상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익사업과 기부금이 언제부터 그토록 안정적인 재정 확보원이 되었단 말인가. 오연천 총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2002~2006년 기부금 증가율이 평균 10%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2002, 2003년 감소하다가 2005년 무려 70.5%가 증가한 증가율을 평균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작년에는 감소, 올해는 폭증이나 평균만 내면 된다니. 참으로 안정적인 재원 마련책이며 계획적인 예산 수립이다!

수익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서울대는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해 특허를 판매하고 있으며, 자회사들을 설립해 코스닥에 상장하며 코스닥 상장 이후 매출액을 500억에서 4500억원까지 늘리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쥐어짜낼 대로 짜내고 있는 특허 판매를 조금 더 자유롭게 해서 지금보다 월등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이들이 세우고 있는 계획은 기껏해야 수익성이 뛰어난 학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코스닥 상장 후 금융투기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대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투기 결과 엄청난 손실을 입고서 아직도 금융투기 전략이나 세우고 있다.

그렇다. 법인자본 서울대의 재정 마련책은 이토록 부실하다. 그렇다면 결국 대학 재원 마련 비용은 학생 등록금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실제 2007년 3월 서울대 본부가 발간한 「2007~2025 서울대학교 장기발전 계획」에 따르면 '서울대가 법인화 체제가 되는 경우 저렴한 등록금은 지속가능한 원칙일 수 없음/등록금의 큰 수준으로 인상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와 학내의 합의를 이루기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등록금 폭등이 필연적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이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절대 등록금 인상 없다'던 법인화 법안 뒤에 딸린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 비용 추계서」(이하 비용 추계서)에서는 앞으로 5년 간 학생 등록금을 13%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것도 정부가 5년간 지원금을 50%나 증가시켜 준다는 낙관적인 계획 하에서!

서울대 본부가 법인화를 추진하면서 약속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기초학문 고사는 없다'는 것이었다. 기업이 되고자 하는 대학이 수익이 나지 않는 기초학문을 지켜주겠다니. 얼마나 유치한 거짓말인가. 앞서 언급했듯 결국 수익이 나지 않는 학문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2007년 서울대는 "내년 2학기부터 학과별 종합평가를 통해 재정을 차등분배하기로"했다. 이에 따라 서울대 본부가 설치한 법인화위원회는 "학문분야의 변화에 따라 단과대학(원)의 조직과 편제를 자율적이며 유연하게 설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심지어 이장무 전 총장은 평가위원회 구성을 "경제5단체와 공동으로 기업계 인사 중심으로" 꾸리겠다고 덧붙였다.

법인화 법안에 기초학문 육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기되어 있으나 정작 그들이 작성한 비용 추계서에선 기초학문 육성을 위한 재정지원 규모를 추계할 수 없어 예산 계획을 세울 수 없다고 말하며, 단 한 푼도 계획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서울대 법인화 이후, 다른 국공립대로 이러한 광풍이 확산될 예정이다. 애초에 서울대 법인화가 전국 국공립대 일괄 법인화가 강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자 하나씩 법인화하겠다는 심산에서 나온만큼 이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실제로 이미 부산대가 법인화 추진에 들어갔다. 지방 국공립대에서 기업화의 바람은 더욱 노골적이며 잔인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서울대에 비해 수익사업이나 기부금마저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유연화와 등록금 인상, 기초학문 고사는 더욱 잔혹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전국 국공립대 구성원의 연대투쟁으로 법인화를 저지하자!

많은 이들이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권 하에서, 그것도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폐기할 수 있겠냐는 데 회의를 가지곤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학기업화를 눈앞에 두고 뻔히 놔 둘 것인가? 다른 '만만한' 대학기업화 투쟁을 기다리며? 대학기업화의 광풍을 막지 않는다면 그 바람은 더욱 기세등등하게, 강하게 불어올 것이 뻔하다. 그리고 날치기된 법인화 법안마저,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도 무시한 법인화 법안에 대해서도 침묵한다면 앞으로 어떤 사안으로 대학기업화 저지를 위한 대중 투쟁을 이어나갈 수 있단 말인가.

법인화 법안 날치기 통과는 충분히 많은 이들의 공분을 야기했으며 법인화 법안은 노골적으로 대학기업화를 천명하고 있다. 이에 맞선 대중투쟁을 형성한다면 대학기업화 저지 투쟁을 형성하는 의미있는 첫 걸음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법인화 법안이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학내 구성원들의 투쟁을 조직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학내 구조조정, 등록금 인상, 기초학문 고사에 반대하는 노동자-학생-교수들의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잇따라 법인화가 진행될 각 국공립대 노동자-학생-교수들을 투쟁으로 조직해야 한다. 남은 2월 기간 법인화 선전과 대중 조직화에 총력을 기울여 3월 말 서울대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대중투쟁을 벌여나가자. 노동자-학생-교수가 동맹휴업에 돌입해 본부와 국회를 압박하고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물론 나아가 국공립대 법인화 저지를 시작으로 '교육공공성'을 의제화해 이미 자본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립대학에서의 투쟁으로 확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국공립대 법인화를 저지하고, 사립대 소유구조를 재편하는 투쟁으로.

이번 법인화 투쟁을 교육공공성을 전면에 내세운 전국적인 투쟁 전선으로 확장해 나가자. 이미 기업이 된 대학자본을 해체하고 소유구조와 운영원리를 개편하자. 고등교육 예산을 국가 책임으로 확충하고 구성원의 민주적 의사결정에 따라 운영하는, 그리고 비판적인 지식과 교육의 기회를 철저히 보장하는 형태로 대학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대학기업화 저지/교육공공성 쟁취를 위한 투쟁의 첫 걸음으로 법인화 투쟁을 강력한 대중투쟁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