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동지의 85호 크레인 고공농성에 대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의 태도에 관한 비판

천연옥｜부산 회원

2011년 2월 6일 오늘로, 김진숙 동지의 고공농성 32일차이다. 나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부본부장이라는 입장 때문에 그동안 발언을 자제해 왔다. 그러나 운동의 진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활동가로서의 양심을 걸고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기에 민주노총 부산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차이가 있는 나의 속내를 ��정세와 노동�� 독자들에게 드러내기로 결심했다. 이 글에 대한 책임 또한 나 개인이 질 것이다.

1월 6일 새벽, 김진숙 동지가 지회 집행부와 어떠한 논의도 없이 김주익 열사가 129일 동안 농성하다가 자결한 85호 크레인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1월 3일 솥발산에서 가진 부산, 울산, 경남의 민주노총 지역본부들의 합동시무식에 참여하고 열사묘역을 참배하던 김진숙 동지는 박창수 열사와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묘소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우는지 그 이유를 몰랐는데, 이미 그는 결단을 내리는 중이었다는 생각이 지나고 나서 든다. 1월 3일부터 한진지회는 부산시청 앞에서 48시간 공동행동을 선언하고 전조합원 철야노숙농성을 진행했다. 1월 5일, 정리해고자 명단을 발표하기로 한 시점에서 지회는 투쟁전술을 시청농성으로 정리한 것이다. 4일, 5일 이틀 동안 노사협의가 있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고 사측은 명단통보날짜를 연기했다. 그리고 6일 새벽, 김진숙 동지의 크레인 농성이 시작되었다.

김진숙 동지는 왜 크레인에 올라갔나?

2010년 2월 26일 합의 이후로 한진자본은 계속해서 인원감축과 단협개악안을 내놓고 지회를 압박했으나 지회는 2시간, 4시간 부분파업을 간간히 때리면서 전면적인 투쟁을 진행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설계부분 분사가 진행되었고, 울산공장이 폐쇄되었고, 300여명의 노동자가 강제휴직 당했다. 그러다가 12월 15일 400명 정리해고 방침을 발표했다. 지회는 20일 전면파업을 선언하고 28일부터 전조합원 생활관 철야농성을 진행했다. 그러나 지회는 쌍용차 투쟁을 평가하면서 강력한 옥쇄파업이 공권력 투입을 불렀고 공장점거파업이 국민과 쌍차조합원을 분리시켜서 투쟁을 패배로 만들었다며 국민과 함께하는 투쟁이 과학적인 투쟁이라며 여론전을 중심으로 놓는 투쟁전술을 선택했다. 야4당과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한진중공업과 부산경제살리기 부산시민대책위>와 민주노총 부산본부, 금속노조 부양지부, 한진중공업지회가 참여하는 <공동투쟁본부>가 공식적인 지도부였지만, 내용적으로는 한진지회와 민주노동당 부산시당이 주도하는 여론을 통해 부산시, 한나라당이 한진자본을 압박해서 정리해고방침을 철회시키겠다는 투쟁기조가 이 투쟁을 지도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정작 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영도공장은 매일 1500명에서 2000명 가까운 하청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고, 파업조합원들의 대시민선전전은 한진 자본의 생산에 전혀 타격을 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진숙 동지는 강력한 현장투쟁, 한진 자본에게 타격을 주는 생산을 정지시키는 투쟁을 조직해야 하고, 정리해고자 명단이 발표되고 난 뒤 산 자와 죽은 자가 분리되지 않고 싸우기 위해서 현장거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크레인을 선택한 것이다.

크레인에 대한 한진중공업지회의 태도

1월 6일 한진 지회는 크레인 밑에 자발적으로 친 조합원의 천막을 철거하고, 사측의 협조를 얻어 회사 CCTV를 분석하여 누가 김진숙 동지가 크레인에 올라가는 것을 도와주었는지를 색출하였고, 김진숙 동지의 크레인 농성을 개인적 영웅심으로 폄하하고 조직을 와해시키는 행위로 규정했다. 크레인 밑에 모인 전직간부들을 중심으로 하는 선거에서 현집행부의 반대파였던 조합원들이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지도위원의 고공농성 돌입에 따라 1월 6일 저녁에 긴급산별대표자회의를 열고, 1월 7일 오전에 예정되었던 집행위를 한진 지회 사무실로 장소를 옮겨서 진행하고, 1월 11일 긴급운영위를 소집했다. 1월 7일 크레인 앞에서의 첫 집회에서는 지회 지도부를 중심으로 하는 투쟁과 분열하지 말 것을 주문하는 발언들이 계속되었다.  사실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금속 부양지부는 투쟁기조에서 확고하게 한진 지회에 비판적 입장도 아니었기도 하고, 그동안 한진 지회의 눈치만 보면서 질질 끌려가고 있었던 측면이 강했으나, 김진숙 동지가 한진의 해고자이기도 하지만, 민주노총 부산본부의 지도위원이란 직책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마냥 한진 지회의 처분만 바랄 수는 없었고, 특히 1월 9일 민간서비스연맹 노보텔 노조의 자체적인 촛불집회는 해운대에서 영도까지 음향시스템을 싣고, 근무하지 않은 전조합원이 참여하는 그 열의 앞에 지역의 모든 노조간부와 활동가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크레인 앞의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지회도 적극 결합하지는 못하지만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고공농성 5일 만에 본부 천막이 설치되었으나 크레인 앞의 현수막은 지회의 승인이 날 때까지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화, 수, 목, 금 진행되는 촛불집회에도 지회의 음향시스템은 지원되지 않았고, 토, 일, 월에는 아무런 프로그램이 없는 것에 문제제기하면서 지역의 문화활동가들이 자체적으로 준비한 토요문화제는 조합원들에게 공지조차 되지 않았다. 시민대책위와 공동투쟁본부 상황실회의에서 정리된 투쟁일정도 지회장의 변덕에 의해 번복되었다. 2월 1일까지 모두가 알고 있던 한진 지회의 일정은 2월 2일 설 전날 부산시청 앞에서 설맞이 합동제사를, 2월 3일 설날 당일에는 한진 크레인 앞에서 설맞이 합동제사를 지내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2월 1일 갑자기 채길용 지회장이 2일 일정을 취소하고 3일 제사를 한진 크레인이 아니라 시청에서 지내기로 했다는 문자를 전조합원에게 날렸다. 이에 대해 김진숙 동지가 트위터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자 한진지회는 김진숙 동지가 조합원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누가 조합원을 분열시키고 있나?

지금도 민주노총 부산본부 조합원게시판에 2010년 3월 4일자로 부산민중연대 이름으로 올라온 <77일간의 전쟁에 대한 승리의 보고>를 읽어보면 현재 한진중공업지회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김진숙 동지의 24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과 이것이 연대의 도화선이 되고 여론의 중심이 되었던 측면은 아예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고, 지도부의 투쟁계획을 비판하고 “감놔라 배놔라” 행위들이 투쟁의 최대위기였고, 조합원들을 단결하지 못하게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2010년 2월 26일 총파업 돌입 하루 만에 이루어진 정리해고 중단 결정은 희망퇴직자, 정년퇴직자, 이런 저런 이유로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400명 이상이 되는, 회사의 목표가 거의 달성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여론전의 빛나는 승리였다고 포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지회 집행부의 투쟁계획에 찬성하지 않았음에도 김진숙 동지가 굶어 죽을까봐 열심히 투쟁했던 현장조합원들의 정서는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들은 이해할 수도 없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희망퇴직자와 정년퇴직자 110명을 제외한 290명에 대한 정리해고 예고 통보가 290명에게 날아간 1월 12일 이후, 한진 자본은 1월 30일까지 희망퇴직자 신청기간을 연장하고, 희망퇴직 시와 정리해고 시 받을 수 있는 위로금과 퇴직금의 차이를 비교표를 만들어서 개별 통지했다. 한진 자본의 악랄한 갈라치기와 흔들기에 대해 대부분 젊은 조합원들이 총을 맞은(한진에서는 정리해고대상자를 죽은 자로 표현하기보다 총맞은 자로 표현하고 있다) 상황에서, 산자보다 죽은 자들이 더 많이 투쟁의 대열에서 이탈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은 하나둘 자발적으로 크레인 아래로 모이고 있는데, 김진숙 동지를 살아서 크레인을 내려오게 하기 위해서라도 싸워야겠다고 결심하는 조합원들이 있는데, 지회는 오히려 크레인과 조합원을 분리시키고, 크레인이 여론의 중심이 되는 게 싫어서 설 제사지내는 장소마저도 엎어버리는 짓을 공공연하게 저지르고 있다. 절차를 무시하는 집행부가 민주노조라고 할 수 있는지, 설 연휴가 끝나는 내일, 공식적인 단위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래도 희망은 크레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기조의 문제이다. 그러나 한진의 선진적인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의 의식은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 대부분은 크레인과 지회의 관계에서 지회의 태도를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왜 지회가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지, 그 태도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있는 조합원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내가 1월 6일 이후 일주일에 두 세 번씩, 토요일은 반드시, 설 연휴인 2월 1일에서 5일까지는 거의 한진 크레인 농성장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만난 조합원들의 현실은 그러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용기를 내어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조합원들의 의식이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성장하고, 촛불집회에서의 발언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은 크레인이다. 부산지역에는 <자본의 위기전가에 맞서 싸우는 공동투쟁본부 부산준비모임>이 공투본 중앙이 해소되면서 이름을 바꾼 <부산반자본주의투쟁연대>가 크레인 농성에 지역연대의 한 꼭지를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 한진 투쟁은 어디로 갈 것인가? 2월 14일이 예정된 해고일이다. 14일이 지나면 우리가 원하든 아니든 상황은 급변할 것이다. ��정세와 노동�� 2월호가 출판되어 읽혀질 때 이 글이 정세에 뒤떨어진 것이 될까봐 걱정된다. 그러나 민주노총 부산본부 임원의 한 사람으로서 동시에 한 활동가로서 양심을 걸고 이 글을 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