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다른 주요 대도시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최근 들어 서울 시내의 도로교통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짜증나게 막히던 출퇴근길도, 상습적인 정체구간도 대개가 다 뻥뻥 뚫려서 운전자들마다 한껏 달린다.

그런데 그 운전자들, 도로마다 차가 꽉 들이차서 거북이걸음을 했던 때를 생각하면 밝은 얼굴로 달릴 만도 한데, 대개는 도무지 즐거운 낯꽃이 아니다.

도로가 뻥뻥 뚫리고 교통 상황이 좋아진 것이, 도로가 확장되어서도 아니고, 도로 시설이 개선되어서도 아니고, 오로지 지난 수개월 동안 기름 값이 지속적으로 치솟은 탓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개의 사람들이 차를 몰고 나올 수 없어서이고, 어쩔 수 없이 차를 몰고 나오면 기름 값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 기름 값 등귀가 오죽했으면, 연초에 대통령 각하께서 “기름 값이 묘하다”는 참으로 묘한 발언을 하시고, 그 말씀을 받들어서 정부가 ‘석유가격TF(태스크포스)’를 만들고 “공정위의 담합 조사와 국세청의 세무조사 등을 통해 전방위로 정유사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소문이 언론에 돌더니, 드디어 4월 4일엔 최대 정유사 SK에너지가―본래는 대한석유공사(유공)라는 국영기업이었는데 노태우 정권 때든가 전두환 정권 때든가 SK 재벌(당시는 선경 재벌)이 신자유주의적으로 선구적으로 삼켜버린 그 SK에너지가― 7일부터 3개월간 한시적으로 기름 값을 리터당 100원을 환불해주겠다는 ‘고육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을까?

언론은, SK에너지의 이번 기름 값 인하는 “가격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정부의 ‘팔 비틀기’”(<<조선일보>>)에, 혹은 “정부의 찍어누르기 압박”(<<viewsnnews.com>>)에 굴복한 것으로서, 이렇게 되면 SK에너지가 “입게 될 손실액[?]은 매달 1천 억 내지 1천 500억 원씩 총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GS칼텍스 등 다른 정유업계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들 하고 있다. 실제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도 “이날 즉각 논평을 통해 ‘고유가로 인한 국민들의 부담을 나눠지겠다는 SK에너지의 가격인하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며 ‘모든 경제주체들이 고통분담과 상생의 정신으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다른 정유사들도 신속히 SK 뒤를 따를 것을 압박했다”(<<viewsnnews.com>>)고 한다.

그런데 장관님 왈, “모든 경제주체들이 고통분담과 상생의 정신으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할 것”이라!?

이 말의 진의는, “다른 정유사들도 신속히 SK 뒤를 따를 것을 압박”한 데 있기보다는, ‘정유사들도 이렇게 손실을 감수하고(?) 가격을 인하하고 있으니, 백성들이야말로 “고통분담과 상생의 정신으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는 데에 있을 것이다. 정유사들이야, 정부가 “공정위의 담합 조사와 국세청의 세무조사 등을 통해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는 마당에, 장관님의 그런 말씀이 계시든 안 계시든 뒤가 켕겨서 ‘동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무리 여러 보도를 훑어봐도 리터당 100원씩 환불하겠다는 그 리터당 가격이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그것은 여전히 ‘국제 원유가의 변동에 따라서’(?) 오르내릴 것이기 때문이고, 그렇다면, 지금까지 저들이 해온 행태로 미루어, 혹은 해왔을 것으로 짐작되는 행태로 미루어―대통령 각하께서 ‘묘하다’고 하셨을 때, 바로 그러한 행태를 지적하신 게 아니겠는가―앞으로 기름 값은, 깎아준다는 리터당 100원을 ‘보상’하고도 훨씬 더 오르고, 그리하여 정유사들은 더욱더 폭리를 취하고, 또 그 돈의 일부가 누군가 ‘묘한’ 사람들의 금고 속으로 흘러들어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II

사실 그 ‘가격이 묘하다’며, 그 가격을 내리겠다는 정부의 기름 값 정책은 무엇보다도 그 자체가 묘해서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정부가 말하는 대로 정말로 ‘서민’의 부담이 걱정돼서 그 가격을 내리겠다고 작정을 했다면, 정부는 리터당 100원이 아니라 지금의 주요 기름 값을 그 절반으로 내릴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수단이란 다름 아니라 환율과 특히 무엇보다도 유류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본의 이익, 그리고 누구보다도 독점자본의 이익에 봉사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환율과 유류세 그 어느 수단도 선뜻 동원하기가 어렵다.

주지하듯이, 고환율 정책의 경우 그것을 포기하게 되면 수출 기업들이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이고, 전체 세수(稅收)에서 그 비중이 20%에 가까운 고(高)유류세 정책의 경우 그것을 포기하게 되면 바로 세수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가의 측면에서 보면, 따라서 소비자 대중의 처지에서 보면, 유류세의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2011년 4월 초 현재 예컨대 휘발유 1리터의 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유류세는 물경 900원을 훨씬 넘기 때문이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100원이 아니라 900원 이상까지, 요컨대 현재의 절반으로, 혹은 그 이하로까지 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는, 물가 인상을 억제하겠다고, ‘묘한’ 기름 값을 내리겠다고 떠들어대면서도, 유류세 인하 정책은 취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물가가 더욱 치솟으면서 정치적으로 몰리게 되면 결국 그것을 인하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대폭 인하는 물론 기대 밖에 있다.

왜일까?

세수(稅收)의 문제나 소위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 등등 여러 필요와 구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유류세를 대폭 인하 ‘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은 세수(稅收) 일반이 감소하기 때문이거나 ‘에너지를 절약’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 아니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유류세 그것이 바로 소비자 누구에게나 그 소득의 크기에도, 그 소비량에도 세율의 어떤 누진(累進)이 없는 ‘평등한’ 소비세, 소비자 누구나 평등한 율로, 오직 그 소비량에 따라서만 부담하는 그러한 ‘평등한’ 소비세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국가들은 개인의 소득세에서도, 기업의 법인(소득)세에서도, 고소득자, 고소득 기업의 세율을 낮추는 데에는 발 벗고 나서왔고,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부가가치세나 유류세 같은 ‘평등한’ 소비세율들이 ‘너무나 낮은 것’을 한탄하면서 그것들을 인상하는 데에 발 벗고 나서왔고, 그렇게 나서고 있다. 신자유주의 국가로서는 정치적 부담, 즉 대중의 커다란 정치적 저항만 없다면, 지금보다도 몇 배고, 몇 십 배고 올리고 싶은 것이 바로 그러한 소비세율들이다. 그래야 고소득자, 고소득 기업의 소득세, 법인세를 더 많이 낮춰줄 수 있을 터이니까 말이다.

‘절약’이라는 좋은 구실도 있고, ‘기업과 기업가들을 지원해야 그들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좋은 구실도 있겠다!

III

언론은 기름 값이 폭등하고 있는 원인을 국제 원유가의 폭등에서 찾고, 다시 그 원인을 주요 산유 지역인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치적 불안정, 특히 리비아의 내전과 그에 대한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 국가들의 ‘개입’, 즉 침공에서 찾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보도들은 부분적으로는 진실이지만, 나머지 진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고, 그리하여 사실상 그것들을 은폐하고 있다.

지금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폭등하고 있는 것은 유가만이 아니다. 그 주요 산지(産地)라고 하는 측면에서만 보면 중동 지역이나 북부 아프리카, 그러니까 지금 그 정치정세와 전쟁이 그 생산에 장애로 등장해 있는 지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여러 상품들의 가격들 역시 폭등하고 있다. 주요 식료품이나 철강, 철광석 등등의 가격폭등이 뉴스거리로 되고 있지만, 부동산 등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사실상 물가 일반이 폭등하고 있는 것이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다음 보도와 같은 발언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야말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물가 폭등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잘 말해줄 것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4일 “물가고에 시름하는 서민들의 고통을 어루만지지 못한 데 대해 집권 여당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사과했다.

안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물가관리에 심각한 구멍이 난 것은 정부의 실책”이라며 “정부는 지난날의 물가관리 정책을 답습하는 안이한 태도를 단호하게 버리고,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결연한 각오로 서민물가를 잡는 데 모든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우리 서민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견줄 만큼 지금 위급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서 “거시경제지표가 많이 호전됐지만 물가고에 허리가 휘는 서민들에게는 단지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는 따끔한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안 대표는 이어 “현재는 성장과 물가 안정을 저울질하는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정부가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면서 △공공요금인상 억제 △유류세 인하 검토 △독과점 시장구조 개선 △물가지수 산정 현실화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이용욱 기자, “안상수 ‘물가관리 구멍, 정부 실책’”, <<경향신문>>(인터넷판), 2011. 4. 4.)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자면, 안상수 대표님께서는 여기까지만 말씀하셨더라면 부르주아적 관점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는 적어도 비아냥거림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래도 무언가 면피의 구실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긴 나머지 보온병을 포탄으로 보는 그 편리한 혜안이 또 발동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최근의 물가 인상 요인을 살펴보면, 경기회복 등에 따른 수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가 “보온병 발언 이후 ... 새로운 경제학이론이 탄생할 것”(김유진 기자, “민주당 ‘안상수, 경기가 회복돼 물가 올랐다?’―안상수 ‘최근 물가상승, 경기회복 따른 수요측면’”, <<viewsnnews.com>>, 2011. 4. 4.)이라는 빈축을 샀던 모양이다.

금년에 들어서만도 여러 은행들, 저축은행들이 파산해가고 있고, 효성이나 LIG 같은 거대 재벌 그룹 소속의 건설사들까지 파산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황의 한복판에서 ‘수요 증대로’ 물가가 오르고 있다고 얘기한 것은 분명 그가 연평도에서 벌였던 치졸한 반공극(反共劇)만큼이나, 즉 양손에 보온병을 들고 그것이 북이 쏜 포탄의 탄피(―그나저나 탄피도 탄알과 함께 날아간다는 걸 사람들은 그를 통해서, 그리고 그 보온병들이 몇 미리 몇 미리 포탄이라고 알랑방귀를 뀐 장군 출신의 국회의원, 그것도 쓰리스타 출신의 국회의원을 통해서 비로소 알았을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만큼이나 뛰어난 코메디다.

그러나 코메디는 사실 거기에 그치는 게 아니다. 실은, 위의 <<경향신문>> 기사에서 인용하고 있는, 물가 관련 그의 모든 발언들, 즉 “물가고에 시름하는 서민들의 고통을 어루만지지 못한 데 대해 집권 여당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에서부터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물가관리에 심각한 구멍이 난 것은 정부의 실책”이라든가, “현재는 성장과 물가 안정을 저울질하는 한가한 상황이 아니”며 “정부가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발언까지 그의 발언들은 모두가 코메디이고, 그러한 코메디를 코메디로 알아듣지 못하고 진지하게 보도하고 있는 이 사회 언론의 풍토가 모두 코메디이기 때문이다.

안상수 대표는 짐짓, 그리고 그의 발언을 받아 보도하고 있는 언론들은 진지하게, 아무튼 모두가 현재의 물가폭등을, 혹은 인플레이션을 적어도 그 상당 부분은 임의의 정책 실패 탓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공황의 원인은 정책실패 탓’이라고 떠들어대는 현대 부르주아 경제학의 싸구려 코메디일 뿐이다.

IV

현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구동성 공황은 정부의 정책실패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이번의 대공황이 발발했을 때에도 영미식의 자본주의 모델이 어떻고, 즉 영국이나 미국 식의 정책 모델이 어떻고, 신자유주의적 금융정책이 어떻고 하며 호들갑들을 떨었다.

그러나 공황은, 결코 임의의 정책실패 탓이 아니라, 발달한 자본주의에 필연적이며, 필경에는 그 죽음을 불러올 병증이다. 즉, 그것은 발달한 자본주의적 생산에 철(鐵)의 필연성으로 관철되는 운동법칙의 관철이다. 이는, 다름 아니라, 바로 저 기라성 같은 명성의 경제학자들이, 그리고 그들을 망라하고 있는 부르주아 국가들이 온갖 기를 다 써가면서 그것을 모면하려고 발버둥치지만, 공황은 어김없이 주기적으로, 그것도 갈수록 증폭된 형태로 반복되어왔고,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주지하는 것처럼, 공황 그것은 마침내 1930년대 이후에는 국가가 소위 자유주의적 태도를 포기하고, 즉 국가가 더 이상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 재생산 과정의 외부에 머무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재생산과정에 직접적ㆍ전면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자체가 지탱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사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국가의 그런 전면적 개입으로도 극복할 수 없었고, 제2차 대전이라고 하는 엄청난 파괴와 살육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었지만!) 바로 국가독점자본주의이다!

그리고 부르주아 국가의 그러한 직접적ㆍ전면적 개입의 하나가, 특히 공황 국면에서의 그것의 하나가, 부르주아 경제학의 용어를 빌리면, 소위 ‘관리통화제’를 통한, 정확히 말하자면, 통화의 금태환 정지를 통한 국가지폐(=불환의 은행권)의 증발이고, 파산해가는 독점자본의 그를 통한 구제, 한마디로 공황구제이다. 지난 1990년대 후반에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외환ㆍ금융위기’가 폭발했을 때부터 ‘공적자금’의 투입이라고 불렸고, 이번의 대공황에서는 ‘양적 완화’라고도 불리는 것으로서, 거액의 불환통화의 투입을 통한 파산 기업들의 구제가 그것이다.

이번 대공황을 맞아 세계적으로, 특히 미국이나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선도하여 퍼붓고 있는 이러한 구제자금의 규모는, 문자 그대로 가히 천문학적이어서, 수조 달러, 수조 유로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사실은 이렇게 천문학적 규모로 퍼부어졌고, 퍼부어지고 있는 공황구제 자금, 그러한 규모의 불환통화의 투입이, 사실상 그 규모에 비례한 통화가치의 하락을 가져오면서, 그 규모에 비례한 인플레이션, 즉 물가의 명목상의 인상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그리고 부르주아 국가와 그 정치인들, 그 관료들이 아무리 천박하다고 하더라도, 그들도 역시 불환통화의 이러한 남발은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즉 물가폭등을 유발하고,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을 유발한다는 것은 명백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법정관리’니, ‘기업회생 절차’니, ‘공적자금 투입’이니, ‘양적 완화’니 하며, 공황으로 파산해가는 독점자본의 구제에 나서지 않을 수 없고, 그리하여 천문학적 규모의 불환통화를 시장에 투입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특히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즉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파탄이 명확히 보여주는 것처럼, 그러한 공황구제가 궁극적으로는, 아니 사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도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를 파멸로부터 구제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공황구제에 나서지 않으면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그 자체가 당장 파멸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발달한 자본주의에 공황이 필연적인 것처럼, 말하자면,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있어서 인플레이션은, 그리고 특히 공황에 처한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있어서 악성 인플레이션은 필연적이다. 임의의 정책실패 탓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를 연명시키려는 필연적 정책 탓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짐짓 진지한 물가 관련 발언이, 그리고 그것을 정말 진지하게 보도하고 있는 언론의 태도가 코메디인 이유이다. 불환통화의 남발은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사실도, 동시에 불환통화를 남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도 충분히 알면서도, 저들은 짐짓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결연한 각오로”, 즉 죽을 각오로 “서민물가를 잡는 데 모든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짐짓 다짐하고 있고, 비록 신뢰는 안 갈지 모르지만 그 다짐만큼은 높이 살 만하다는 듯이 보도하고 있으니, 어찌 이것이 코메디가 아니겠는가?

V

지난해 초부터 프랑스와 영국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 특히 남부 유럽 국가들에서, 그리고 금년 초부터는 북부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중동 국가들에서 심각한 정치적 불안정, 노동자ㆍ민중의 봉기가 전개되고 있고, 특히 리비아에서는 내전과 그것을 빌미로 한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 지역과 국가들에서 이렇게 노동자ㆍ민중이 봉기하고 나서고 있는 이유에 대한 언론의 설명은, 물론 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무척 피상적이고, 사실상 근본적 원인을 은폐하고 있다.

유럽에서의 그것에 대해서는 대개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긴축정책’ 때문으로 설명하면서도, 그 ‘긴축정책’이 사실은 필연적인 공황과 그 공황에 따른 공황구제 때문임은, 나아가서는 그 공황구제를 위한 것임은 애써 침묵하려 든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그것에 대해서도, ‘민주화 투쟁’, ‘민주화 혁명’임을 부각시키면서, 사실은 그 동안 자본주의적 생산 속에서 누적되어 왔고 공황국면 속에서 특히 악화된 실업과 인플레이션, 특히 식료품 가격의 폭등 때문임은 역시 애써 침묵하려 든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이 리비아 침공에 나서고 있는 주요한 동기 중의 하나가 “국내문제에서 국외문제로 사회의 관심을 돌”려 공황국면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계급투쟁의 충격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데에 있다는 점은 대개가 침묵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아래에 실례를 무릅쓰고 길게 인용하는 박노자 교수의 글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서방의 아프간·이라크 침략이 오로지 흉악한 통치집단으로부터의 민간인 보호를 목적으로 했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 순진한 사람을 한 명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리비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서방이 진정으로 독재 종식과 민주화를 원했다면, 평화적 시위를 무력으로 짓밟아 수백 명의 재야인사를 죽이거나 불법 납치ㆍ감금ㆍ학대한 바레인이나 그 후견인 격의 사우디 왕국부터 제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쪽에서 비폭력 시위에 대한 유혈진압을 방관하는 열강이 다른 쪽에서 내전에 개입했다면 여기엔 “민주화”와 무관한 저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유전 장악이 목표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만도 하지만, 이번 사태를 그렇게 단순하게만 보기도 힘들다. 물론 서방이 지원의 대가로 “반군”이 집권한 뒤에 유전개발 이권을 더 많이 나누어줄 것이라고 기대를 하겠지만, 카다피 정권만 해도 열강의 석유업체에 전혀 비협조적이지 않았다. 스페인, 프랑스, 노르웨이, 영국의 석유회사들은 벌써 몇 년 동안 “흉악한 독재자”와 공생하면서 리비아 석유산업에 참여해왔다. 리비아에 유전이 없었다면 작금과 같은 서방의 적극 개입도 없었겠지만, 이 개입을 유전만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먼저 주목을 끄는 것은, 미국 위주의 아프간ㆍ이라크 침략과 달리 이번 무력간섭은 프랑스와 영국의 보수정권이 주도한다는 점이다.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세계공황으로 인한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과정에서 우파정권이 정치적 난관에 봉착했다. 한 예로 2014년까지 고등교육 예산을 40% 삭감하겠다는 정권에 맞서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시위와 파업으로 대응하고 있다. 프랑스의 우파정권도 지속적으로 학생ㆍ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쳐왔다. 이와 같은 유럽 우파정권들의 정치적인 난맥을 고려한다면, 그들이 주도하는 리비아 공습은 어떤 면에서 국내문제에서 국외문제로 사회의 관심을 돌리고, “독재자 제거” 명분으로 인기를 노려보려는 정치공학적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크게 봐서는 남한의 보수정권들이 초강경 대북정책으로 북한을 먼저 자극한 뒤에 북한의 강경대응을 “도발”로 규정하고 반북주의적 광풍을 일으키면서 표심을 잡아보려는 것과 구조적으로 같은 것이다. (“[박노자 칼럼] 리비아 공습의 진정한 이유”, <<한겨레>>(인터넷판), 2011. 3. 27.)

박노자 교수는 이 글에서, “세계공황으로 인한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과정에서” “정치적 난관에 봉착”한 “우파정권이” “국내문제에서 국외문제로 사회의 관심을 돌”려 그 난관을 돌파하려는 정치공학이 영국과 프랑스로 하여금 리비아 침공에 적극적이게끔 하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 영국과 프랑스 뿐이겠는가? 여러 사정 때문에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경우처럼 적극적이지는 못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일 터이다. 그리고 사실은 이탈리아의 무쏠리니 정권이나 독일의 히틀러 정권으로 하여금,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자들로 하여금 제2차 대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게끔 했던 것도 바로 그렇게 “세계공황으로 인한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과정에서” “봉착”한 “정치적 난관”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바로 여기에,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이지만, 다시금 대공황을 맞은 우리가 1930년대의 대공황이 어떻게 귀결되었는가를, 즉 5천만 명 이상을 살육하고 세계의 주요 생산기지들을 파괴ㆍ초토화시키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가 상기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 유럽 국가들이나 북부 아프리카,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결코 그들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며, 남의 문제도 아니라는 점이다.

기왕 박노자 교수의 글을 길게 실례를 무릅쓰고 인용했는데, 거기에서 그치면 박 교수의 글들이 자칫 일방적으로만 읽힐 염려도 없지 않겠다! 다시 한 번 실례를 범해보자. 그것도 이번엔 좀 더 진하게 실례를! ― 아예 글 전체를 사실상 모두 다 인용하다시피 한다는 면에서도, 거기에 주제넘게 비판적 논평을 가한다는 면에서도...

산불처럼 퍼지는 이 동시다발적이고 연속적인 민중봉기를 무엇이 촉발했으며, 그 본질은 무엇인가? 빈곤에 대한 절망인가, 아니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인가?

만성적 빈곤에 대한 절망에서 우러나오는 저항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이번 혁명들이 가장 치열하게 일어나는 나라들 중에는 전형적 “빈국”이 전혀 아닌 곳들도 있다. ...

물론 혁명이 일어난 나라들 중에는 이집트처럼 빈곤율이 40%에 이르는 곳들도 있지만, 혁명 가담자들은 꼭 빈민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지 기준으로 봤을 때는 빈민이라고 할 수 없는 20-30대 고학력 직장인들의 열성적 참여가 눈에 띄었다. 세계적 흉작과 러시아로부터의 값싼 곡물 수입 중단 등이 중동의 빵 값을 폭등시켜 혁명을 촉발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중동 혁명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식량 가격 상승은 중동뿐만 아니라 남미부터 동유럽까지 준주변부 지역들을 다 강타했는데, 왜 하필이면 중동부터 민중봉기가 일어나게 됐는가?

“경제”도 봉기를 촉발하는 데 한몫을 했지만, 일차적으로 민중의 분노는 공공성이라곤 한 치도 없는 정권을 향한 것이었다. 물론 중동 정권들의 비민주성부터 문제가 됐지만, 민중들이 “민주주의 박탈”에만 화난 것도 결코 아니었다. 분노의 표적이 된 무바라크 정권 같으면 그 비민주적 탄생보다도 극소수만을 살찌우고 다수를 소외시키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민중의 분노를 자아냈다. ...

한국은 어떤가? 우리에게 제도적 민주주의는 비록 있지만, 과연 공공성이 강한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 비록 1인당 명목 국민총생산은 이집트보다 약 9배나 높지만, 국민총생산에서 국가지출의 비중은 한국이나 이집트나 똑같이 매우 낮은 33%에 불과하다. 즉 한국은 이집트만큼이나 소수 부유층에게 제대로 세금을 거두지도 못하고, 그 세금을 복지를 통해서 재분배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집트나 튀니지처럼 영세업자들이 한국에서도 줄도산하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챙겨주고 보살필 아무런 복지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북한이나 중국에서 중동과 같은 형태의 혁명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눈치지만, 한국 지배자에게는 오늘날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같은 복지망 확충에 대한 열성도 보이지 않는다. 또 한편으로는 북한과 같은 강력한 반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다수 주민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이야말로 노후가 불안한 정규직,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부터 비정규직조차 되기 어려운 청년들까지 노동자와 영세민들이 “자유무역”의 망상을 버리고 복지망을 튼튼히 만들 “공공성이 강한 국가” 건설을 큰 소리로 요구해야 할 때인지 모른다. (“[박노자 칼럼] 중동 혁명의 본질”, <<한겨레>>(인터넷판), 2011. 2. 27.)

보다시피, “노동자와 영세민들이 ‘자유무역’의 망상을 버리고 복지망을 튼튼히 만들 ‘공공성이 강한 국가’ 건설을 큰 소리로 요구해야 할 때인지 모른다”는 것이 박 교수의 결론이다. 박 교수가 ‘식견이 넓은 뛰어난 진보적 지식인’임에는 틀림없지만, 동시에 ‘사민주의자’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바로 이런 식의 주장, 이런 식의 결론에 있을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와 영세민들이 ‘자유무역’의 망상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도 잘못된 진단이려니와, “복지망을 튼튼히 만들 ‘공공성이 강한 국가’ 건설을 큰 소리로 요구해야 할 때”라고 주장할 때, 그는 그가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서유럽이나 북부 유럽 국가들의 ‘복지제도’가 어떤 배경에서 확립되었고, 오늘날 왜 파괴돼가고 있는지를 그는 못 보고 있거나 잊고 있다. 그것들은 바로 사회주의 혁명의 직접적 위협 하에서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확립된 것이고, 또 당시 그들 국가들이 그만한 것을 감당할 만한 조건에 있었기 때문에 확립된 것이나, 현재는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더 이상 그러한 조건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못 보거나 잊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민주의적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경제’도 봉기를 촉발하는 데 한몫을 했지만, 일차적으로 민중의 분노는 공공성이라곤 한 치도 없는 정권을 향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빵 값을 폭등시켜 혁명을 촉발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중동 혁명을 설명하기가 어렵다”며, “식량 가격 상승은 중동뿐만 아니라 남미부터 동유럽까지 준주변부 지역들을 다 강타했는데, 왜 하필이면 중동부터 민중봉기가 일어나게 됐는가”라고 묻고 있다. 그런데 이는, 무엇보다도, 이들 국가에서의 대중 투쟁이 왜 이 시점에서 폭발하고 있는가를 설명할 수 없게끔 하거나 잘못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한편에서는 빵 값의 폭등 등 식량 가격의 상승을 순전히 “세계적 흉작과 러시아로부터의 값싼 곡물 수입 중단 등”으로, 즉 순전히 자연주의적으로, 그리고 일종의 국제정치적 우연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잘못된 설명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지적했던 공황구제를 위한 천문학적 규모의 불환통화의 투입에 침묵하면서 그야말로 “이것만으로는” 그 폭등을 다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가, 그와 연관된 것이지만, 이 정정(政情)의 불안, 민중봉기와 전쟁의 밑바탕에 있는 공황에 대해서, 앞에서 인용했던 3월의 칼럼에서와는 달리, 이 칼럼에서는 “이집트나 튀니지처럼 영세업자들이 한국에서도 줄도산하고 있다”는 말 이외에는 한 마디로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적, 국제정치적 정세를 규정하는 데에 있어서,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자체의 명운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공황은 그렇게 가벼이 보아 넘겨도 그만인 현상이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 국가들에서의 혁명적 대중 투쟁들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공황에 있고, 공황구제를 위해 퍼부은 지폐가 유발하고 있는 악성 인플레이션에 있다.

그런데도 박노자 교수는 사민주의적 열정 때문에 최근 사태의 직접적 원인으로서의 빈곤과 인플레이션에 따른 그 악화를 애써 과소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역시 그러한 경제적 요인이 진정한 원인임을 직감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바로 그 때문에, 글 전체의 흐름에서는 분명 매끄럽지 않은데도 “왜 하필이면 중동부터 민중봉기가 일어나게 됐는가” 하고 묻고 있을 터이다. 즉, 공황이 더욱 장기화되고 인플레이션이 악화됨에 따라 다른 지역과 국가들에서도 유사한 민중봉기가 일어나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터일 것이다.

실제로 유럽이나 중동 국가들의 사태는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한나라당의 안상수 대표가 물가 폭등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마치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듯이 소극(笑劇)을 벌이고 있는 것도 모두 다 그 때문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