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

벨 훅스의 저서, ≪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를 읽다가 어떤 한 대목에 생각이 머물렀다. 일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경제 수준에 다다르기 위해서, 라고 한 대목이다. 하고 싶은 일=글쓰기, 경제수준=어느 정도???... 하고 싶은 일은 잘 알겠는데, 경제수준이야 개개인마다 기대하는 것이 천차만별이라... 의식주 문제나 치료 받는 행위 등은 당연 포함됐을 것이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경제력도 포함했겠거니, 생각한다.

그런데 내일을 위해 오늘의 욕망과 능력을 뒤로 미루고 오늘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기만 하면, 어느 정도 기대하는 경제수준에 도달하기는 하는 걸까. 한 가정의 부부노동력을 팔아도 모자라 노동력을 팔 수 있는 자녀들 모두 동원되고 있는 판인데 말이다. 더군다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기회만 준다면, 적은 품삯에도 허리 구부리고 머리 조아리며 입의 혀처럼 고맙다는 말을 연달아 해야 하는 현실인데 말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하고 또 개인의 품위도 빛날 터이건만, 그런 삶을 산다는 건, 정말 선택 받은 일이다. 현실은 돈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조금도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벨 훅스도 ‘어느 정도의 경제수준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벨 훅스의 경우는 강연과 강의, 그리고 저술행위 등으로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른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그녀의 말이 기득권층의 욕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단지 나의 비틀린 심사라면 좋겠다.

어쨌거나 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다. 뭐, 나만 그러랴.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돈 앞에서 좌절하고 꿈을 접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본가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세상에는, 다 돈 때문이라고, 돈이 있어야 한다고, 돈이 최고라고, 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어떤 때는 자본가들의 교활한 술책에 같은 노동자들끼리도 갈라져 싸우고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체제를 더욱 공고히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알게 모르게 착취당하고, 자신과 유리된 노동행위가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여지는데, 이러한 이 자본주의체제는 과연 영원무궁토록 지속가능한 것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단지 기득권층의 욕망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보편적 욕구로 인정되는 사회는 과연 없는 것일까.

지난 해 7월 중순부터 ≪자본론≫을 강독하고 있다. 인간의 노동이 노동과정에서 어떻게 소외되었는지, 날이 갈수록 교활해지는 자본가계급의 착취구조 등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인간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다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단지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그 사회는 노예에 가까운 오늘을 내일로 미룬다고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선적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수준을 도달해서 이루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경제수준에 다다르기 위해 피땀을 쏟아낼 것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무너뜨려야 가능하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무슨 일을 해야 하지? 너무나도 선명하다고 느껴지는 이 역사적 흐름 앞에 나는 여러 생각이 교차하면서 복잡하다. 허접한 아카데미즘의 하나로 ≪자본론≫을 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구체적인 노동현장의 일원도 아닌데 어떻게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가, 등등의 고민이다.

여물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리라. 그래. 조급해 하지 말고 시간을 성실히 아껴 쓰고 비판적으로 배우는 일에 집중하자. 지금은 그럴 때다. 그러다보면 분명 보다 더 선명하고 구체적인 길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걷자, 천천히, 뚜벅뚜벅!

남편, 미안하고 아쉽다

밤 11시 40분, 집 전화가 울린다. 이 시각에 집에 전화할 사람은 남편 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다. “이제야 출발해요.”... 오늘 남편은 아침 7시 반에 집을 나섰는데 이제야 퇴근한단다.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 1시간과 점심시간 1시간을 빼고도 그는 오늘 무려 14시간을 넘게 일을 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거의 매일, 때로는 휴일 출근도 더해 진다. 추가수당이나 야근수당도 없이 그는 매일 거의 이틀에 해당하는 노동을 하고 있다. 

과로로 그가 얻는 것은 만성피로다. 늦은 밤 귀갓길의 과속은 덤이다.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셈이다. 그의 초인적인 노동이 우리 식구 6명을 책임지고 있으니 오랜 동반자로서 함께 한 나는 가끔 미안하기도 하다. 뼈 빠지게 일하는 남편이 너무 애처롭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일하는 남편이 아쉽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 내려는 그의 성실함도 불편하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냐고. 누굴 위해서 그렇게 몸을 혹사하며 일을 하느냐고. 알량한 후생복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하루 24시간 기계 돌리듯 하는 자본에 왜 끽~소리 한 번 못 내고 사느냔 말이다. 왜 그런 노동현실을 아무런 비판 없이 아이들에게 대물림해 주느냔 말이다.

미안하다. 너무 열심히 일 한 당신이 안타까워서 그랬다. 잠시 후 들어오면 맥주나 한 잔 하면서 두런두런 얘기나 나눠야겠다. 젠장!

서울 심야버스 도입 유감

최근, 서울시가 심야버스를 5월 중에 시범 운행하겠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작년에 들은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들은 바에 의하면, 홍대입구역의 새벽 첫 지하철은 그야말로 진풍경이라 하겠다. 홍대입구역의 새벽 첫차는 출퇴근 시간대를 방불할 정도로 혼잡하다고 한다. 승객은 대체로 홍익대 부근에서 날밤을 샌 유흥객들이라 사람들의 옷매무새는 엉망이고 지하철 안은 술 냄새가 진동한다고 한다. 보통 새벽 일찍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이 첫차를 이용하는 반면 이곳에선 취객과 유흥객들로 가득 찬다고 하니 사실 적잖이 놀랐다.

이런 선경험 때문일까, 서울시의 심야버스 도입 정책을 환영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서울시는 시민의 편의를 돕겠다는데, 서울시가 고려한 그 시민이 누군지, 운행노선을 보면 더욱 아리송하다. 시범운행 2개 노선 중심에는 ‘---홍대-신촌-종로---’, ‘---종로-강남-송파---’등이 있다. 한 눈에 봐도 심야영업으로 불야성을 이루는 동네인데, 그렇다면 서울시가 초점을 맞춘 대부분의 ‘시민’은 취객, 유흥객인 건가?

박원순 시장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서울버스의 적자가 적지 않지만 시민의 편의가 우선이라 생각해서 결정했다며, “서울시민 여러분, 행복하시죠?”라고 명랑하게 마무리를 장식했다. 행복하냐고? 아니, 미안하지만, 난 안 행복하다. 심지어 묘한 의심까지도 든다. ‘혹시 이 분, 다음 대선에 젊은이들 표 노리고 이러는 거 아냐?’, 뭐 이런 유치한 생각 말이다.

야간노동의 위험성을 배제하고 굳이 심야버스를 도입하려는 서울시장의 처사를 보면 과연 그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짐작이 간다. 심야버스를 운행함으로써 야간근무를 하게 되는 노동자들을 과연 고려했을까, 라고 쓰다가, 산업예비군이 넘쳐나는 판국에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쩝, 씁쓸하군. 어쨌거나 그는 애초 노동자들의 현실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야간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조건을 만들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앞장서서 시대에 역행하는 노동조건을 조장하고 있단 말인가.

제발 밤에는 잠 좀 자자. 사람도 쉬고 기계도 좀 쉬게 하자. 그리고 당신, 박원순 시장님도 좀 쉬시라. 이런 정책 만들기 위해 골머리 싸매지 말고!!!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