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C라는 회사가 있다. 구미 지역에 40년 동안 자리 잡은 전자회사로 현재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만들어 삼성 같은 대기업에 납품을 하고 있다. 전신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도시바 주식회사가 나오고 삼성 가문과도 얽혀 있다는데, 어찌되었든 확실한 것은 KEC가 경영이 탄탄한 구미지역 대표 중소업체라는 것이다. 이런 회사가 2010년 직장폐쇄를 했다. 주가가 바닥을 치고, 그 동안 생산과 납품이 이루어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공장 문을 다시 연 것은 그 다음해 2011년의 일이다. 하루 아침에 닫힌 공장에 대한 온갖 소문과 평이 난무했지만, 그 이야기는 뒤로 미루어 두겠다.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KEC에서 10년 넘게 일해 온 김순희라는 여자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KEC 사원 김순희

김순희는 99년 KEC에 입사했다. 고등학교 졸업은 그보다 더 빨랐다. 하지만 취업을 준비하던 때 IMF가 터졌다. 그 시기가 어땠는지는 모두 잘 안다. 취업이 될 리 없었다. 그녀는 구미의 작은 전자회사에 가까스로 취업을 한다. 심야수당으로 시급에 600원을 더 얹어주던 회사였다. 납도금 한 보드를 검사하는 일이었는데, 불량이 나면 보드를 공업용 아세톤에 담아 납을 지워야 했다. 아세톤에 손을 담그면 손이 하얗게 됐다. 장갑을 껴도, 곧 녹는 바람에 별 쓸모가 없었다. 납은 발암물질이고 공업용 아세톤 또한 몸에 좋을 것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달리 일자리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휴가를 쓴다고 하자 직장이 “너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때려 쳐”라고 했다. 정해진 휴가조차 마음 놓고 쓸 수 없었다. 스무 살 그녀는 그길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일 힘들고 돈 적게 받는 것은 참아도, 함부로 대해지는 것은 어린 나이에도 참지 못했다.

백수가 된 그녀는 친구를 통해 KEC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장 지원을 했고, 조립 공정에서 일하게 됐다. 이곳에서도 역시 제품 불량을 가리는 검사를 맡았다. 검사 업무는 노동강도가 셌다. 눈이 자주 피로했고, 불량을 잡지 못할까 늘 긴장해야 했다. 게다가 반도체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라 약품 사용이 많았다. 냄새가 역했고, 그 약품들이 유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순희가 KEC라는 회사를 10년 넘게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4조 3교대가 나름 엄격히 지켜지고, 노동환경이나 임금이 매년 나아지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1년도 다니지 못했던 전 회사와 10년을 다닌 KEC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입사한 지 3개월, 노동조합에 자동 가입되었다. 노동조합은 매년 회사와 교섭을 했다. 그 교섭에서 임금과 생산 환경 등이 결정되었다. 교섭이 끝나면 한층 살기가 나아졌다. 

그렇다고 그녀가 특별히 노동조합에 고마움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은 그저 필요한 것이고, 자동으로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조합비가 그녀가 조합원으로 하는 최선의 것이었다. 단체교섭을 앞두고 일 년에 한두 번 참가하는 집회 또한 그러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2010년 6월 그녀는 노동조합이 주최하는 집회에 참가했다. 하루나 이틀 가서 구호나 외치고 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뒤통수에 따라 붙는, 올해는 회사가 노동조합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관리자들의 말이 꺼림칙하긴 했다. 하지만 11년째 노사갈등이 없었던 회사였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9차례나 교섭은 성과 없이 끝났다. 회사가 자꾸 교섭에 불성실하게 임한다고 했다. 노동조합은 6월 중순 부분파업을, 6월 말 전면파업을 선언했다.

이에 회사는 용역깡패를 공장에 투입했다. 직원들을 내쫓고, 공장 문을 잠갔다. 직장폐쇄가 이뤄진 것이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녀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일이 돌아가던 그때, 7월 어느 날 새벽 2시에 회사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갑도 챙기기 못하고 핸드폰만 들고 한밤중 기숙사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동생의 이야기에 그녀는 회사로 달려갔다. 용역깡패들이 여자 기숙사에 쳐들어 온 것이다. 그것도 남성이 대다수인 용역깡패 300여명이 들이닥쳤다. 자고 있던 동생들은 사지가 들려 내팽겨졌다. 임신했으니 손대지 말라는 외침도 무참히 묻혔다.

놀라 뛰쳐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밤 공장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검은 차들이었다. 공장 정문에는 수백 명의 검은 용역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그녀는 지난 10년 동안 사원을 가족같이 생각한다던 회사를 떠올렸다. 세상을 살며 당연히 가졌던 믿음 하나가 잘려나갔다.

단 1초라도 회사는 우리를 가족이라 생각한 적이 있는가?

하루 이틀이면 될 줄 알았던 파업은 계절이 바뀌었는데도 끝날 줄을 몰랐다. 그녀는 조합원들과 폐쇄된 공장에 들어갔다. 길이 없었다. 이렇게 쫓겨날 수 없었다. 점거 파업에 참여한 이는 200여명이었다. 점거한 공장은 반도체 부품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생산에 쓰이는 약품은 대부분 위험 물질이다. 질식과 폭발의 위험이 있었다. 용역들은 그런 것을 개의치 않고 쳐들어왔다. 죽을까봐 겁이 났다. 그래서 아픈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두운 불빛에 의존해 씻다보니 몸이 노랗게 된 지도 몰랐다. 어느 날 눈 흰자위가 노랗게 변했다. 그녀는 응급실을 찾았고, 바로 입원을 해야 했다. 급성간염이었다. 

그즈음 9년 동안 한 방을 쓰던 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동생은 복귀를 한다고 했다. 복귀를 하려면 회사에 각서 한 장을 써야 했다. 파업에 관한 어떤 징계도 달게 받겠다는 각서였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파업 가담 정도에 따라 색을 달리 한 티셔츠를 입고 반성문을 써야 했다. 동생은 그것을 하더라도 돌아가겠다고 했다. 더 이상은 버틸 힘이 없었다. 언론은 자신들의 싸움을 불법파업이라 불렀다. 당시 정규직 노동조합은 무조건 귀족노조였다. 이명박 정부는 노동조합 씨를 말리겠다는 듯 굴었다. 한 해 전, 쌍용 자동차의 점거파업이 어떻게 끝났는지 다들 알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포기하기 시작했다. 파업 이탈자가 늘어갔다.

동생은 물었다.

“언니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녀는 망설이다 대답했다.

“나는 즐길 거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이 있잖아. 나는 이 상황 피하지 않을 거야.”

통화를 끝내고, 그녀는 많이 울었다. 왜 포기를 못할까.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이 꼴 저 꼴 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노동조합이 무조건 힘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당해도 싸다고 했다. 임금을 또 올리려고 저런다고 했다. 가까운 이들은 그녀에게는 그만 하라고 했다. 네 살길을 찾으라 했다.

긴 파업을 겪기 전까지 그녀도 다른 사람들처럼 생각했다. 몇 년 전 출퇴근 길, 코오롱 노동자들이 매일같이 공장 앞 거리에 나와 집회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원직복직 · 민주노조 사수’라 쓰인 벌건 글씨를 보며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있을까, 수군거렸다. 서로 양보를 하면 좀 좋아? 왜 자기들 욕심만 부린데? 했다. 자신에게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 상상조차 못 하던 시절이었다.

이제 다른 이들이 자신에게 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없었다. 이대로 끝내기는 너무 억울했다. 자신의 일터에 용역깡패를 밀어넣은 회사를 용서할 수 없었다.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파업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파업은 끝나지 않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은 점점 많아졌다. 용역들에 의해 부서진 천막에 임산부들이 깔렸다. 교섭을 하겠다고 노조 위원장을 불러 경찰연행을 시도했다. 도망친 위원장은 분신을 했다.

싸움을 포기하는 일은 나를 놓아버리는 일

KEC 회사와 노동조합이 교섭을 진행하던 2010년 여름은 타임오프제 시행을 앞 둔 때였다. 타임오프제는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을 회사가 지급하는 것을 법으로 금하는 제도였다. 노동조합을 무력하게 만드는 악법이라며 양대노총이 반대를 했지만, 어찌되었든 법안은 복수노조 설립안과 함께 통과됐다. 그해 KEC 노동조합은 타임오프제를 추가하여 단체협약을 진행했다. 몇 차례의 교섭이 있고, 노동조합은 타임오프제가 단지 전임자의 임금 지급만을 간섭하는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노동조합을 몰아내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회사는 교섭을 계속 파토 냈다. ‘안’조차 들고 오지 않았다. 타임오프제에 관한 내용이 교섭에 추가되었다는 이유로, 언론은 KEC 노동조합의 싸움을 타임오프제를 둘러싼 노사갈등이라 보도했다. 노동조합이 타임오프제를 거부하여 갈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같은 해 발레오만도, 대구 상신브레이크가 비슷한 이유로 직장폐쇄를 했다. 10년 20년 된 정규직 노동조합과 단체협약 맺기를 거부하고, 직장폐쇄를 하고,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하는 이들 회사의 모습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주요 언론은 못 본 척 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알았다. 자신들이 왜 교섭을 거부당하고 몰매를 맞는지. 구미 KEC 공장은 KEC 계열사 중 유일하게 노동자 모두가 정규직인 업체였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이윤을 내는 업체이기도 했다. 2007년에 KEC의 지주회사가 된 한국전자홀딩스는 구미KEC공장을 눈여겨 봤다. 매년 수십억대에 달하는 수입 중 많은 부분이 구미 공장에서 나왔다.

2교대를 하는 타공장들과 달리 4조 3교대를 하는 회사, 생산직 전원이 정규직인 회사, 그럼에도 알짜배기 이윤을 내는 회사. 지주회사는 생각했을 것이다. 저리 노동자들의 편의를 봐주는데도 수입이 높다니, 쥐어짠다면 얼마나 더 큰 돈을 벌어올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듯, 구미 KEC에 비정규직과 2조 2교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에 앞서 해결해야 할 일은 걸림돌인 노동조합을 없애는 것이었다. 때마침 단체협약 교섭 시기였고, 타임오프제라는 빌미가 있고, 새로 집권한 정권은 친기업 성향을 보였다. 언론은 한쪽 귀를 막았다. 노동조합은 수세에 몰렸다.  

결국 11월 노동조합은 공장점거를 푼다. 그럼에도 공장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음해 5월, 노동조합은 파업을 철회했다. 6월 회사는 직장폐쇄를 풀었다. 김순희는 자신이 그토록 거부하던 각서를 쓰고 회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많은 동료들이 회사를 떠났다. 희망퇴직을 하거나 해고를 당했다. 빈자리는 신입사원들로 채워졌다. 새로이 뽑힌 이들은 2조 2교대 근무를 하는 비정규직 직원이었다.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노동조합이 회사에 세워졌다. 복수노조 허용 이후, 최초로 KEC에서 복수노조가 나온 것이다.

88년 노동조합이 처음 세워졌을 때, KEC는 한국노총 소속이었다. 97년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으로 조합을 옮겨 민주노조를 세웠다. 그리고 2011년 KEC에는 2개의 노동조합이 있다. 신입사원 대부분은 새로운 노동조합 소속이다. 그들은 김순희가 복귀하기 전부터, 회사에 들어와 일했다. 자신이 없는 새 2조 2교대로 일했다는 스무살 초반의 신입사원들을 그녀는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2조 2교대라니, 그렇다고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었다. 각종 수당이 지급되지 않아 월급은 더 적었다.

하지만 신입들은 여기가 자신들의 마지막 직장이라고 했다. 옷가게, 마트 점원, 임시직 자리를 떠돌다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구미 지역 공단의 채용 인원이 줄어가니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곳을 떠돌다 겨우 KEC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언니 저는 여기에 어떻게든 붙어있어야 해요.”

그들은 이리 말했다. 10년 전 그녀가 일을 구하던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지난날 자신이 찾은 KEC라는 회사는 수십년 된 노동조합이 있어 노동자들이 도에 넘치는 부당함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직장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제 그런 회사는 사라졌다. KEC는 임시직 채용, 연장근로 위반으로 법적인 제재를 받는 회사가 되었다.

언니야 안 나가면 안 되나

2012년, 회사가 직원들을 해고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조합원들은 그 대상이 자신들임을 알았다. 해고 통지 며칠 전, 같은 라인 동생들이 김순희를 붙잡고 울먹였다.

“언니야, 안 나가면 안 되나. 언니 계속 있고, 우리는 3교대로 일하고, 이렇게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봤자 나는 나가게 돼 있다.”

“언니야는 왜 자꾸 나갈 생각을 하는데…”

“회사를 모르나? 회사는 자기 얻기 위해서는 뭐든지 한다. 해고 따위는 별 일도 아니다.”

그녀가 10년을 믿었던 회사는 이제 없다. 긴 싸움 후, 그녀는 자신이 회사에 무엇으로 비치는지 깨달았다. 자신들은 오직 돈이었다.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노동조합, 저들이 말하는 강성노조는 회사에 돈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없애려 했다.

KEC는 올해 2월 사원 75명을 해고했다. 해고자 전원은 파업에 가담한 조합원이다. 그녀 역시 해고 대상에 포함됐다. 

그 마음들을 끌어내기가...

정리해고 후, 한 달이 지난 3월 김순희 씨를 희망광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저 어렸을 때, 저희 사촌오빠가 선물을 들고 왔어요. KEC에서 전자악기를 만들었거든요, 그걸 선물로 들고 왔어요, 어떻게 보면 회사랑 굉장히 연이 많은 거 같아요.”

옛날을 회상하며 그녀는, 상처가 아물지 않은 얼굴을 종종 보였다. 잘 웃었지만 그 만큼 잘 울었다.

“이 싸움을 포기하는 건 나를 놓아버리는 거랑 같아요.”

그래서 긴 싸움을 했다. 2년간의 싸움은 지독히도 외로웠다. 자신의 기대와 상식을 배반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생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억울하고 당황스러워 고개를 들면 사람들은 등을 돌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기들을 노동자라 생각 안 해요. 그래서인가, 그 마음들을 끌어내기가 참 어려워요.”

이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희망광장은 한가로웠다. 사람들 대신 작은 꽃화분들이 빈자리를 메운 희망광장을 돌아보며, 그래도 그녀는 말했다.

“그래도 희망버스에서 희망광장까지 온 것을 보면, 대한민국이 너무 메마르진 않았구나 하는 걸 느껴요.”

그 이후 희망광장

3월 31일 희망광장에서 콜텍 노동자들의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문화제 순서 중 하나였다. 그들은 몇 번이나 ‘괜찮아’ 박수를 받고서야 완주를 끝냈다. 평생 기타만 만들었지 연주하는 법은 모른다던 노동자들이었다. 어느새 서툴지만 서너곡을 연주할 실력이 되었다. 희망광장에 모인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눈에 띄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공장으로 어렵게 돌아간 이들조차 각종 징계를 받고 다시금 내쫓겼다. 그럼에도 나는 콜텍 노동자들의 기타 연주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하나했다. 투쟁이란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에게 기타를 연주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투쟁의 참 큰 성과이지 않을까. 이 날의 문화제는 희망광장 해단식이기도 했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