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우리 시대는 벼랑 끝에 서있다. 사람이 죽어간다. 이러한 위기를 진단하는 말과 글이 흔하고, 아무도 위기를 부정하지 않는다. 위기는 이미 생활이요 상식이 된 듯하다. 예를 들어 고용불안과 청년실업, 고물가, 사교육과 입시지옥, 살인을 부르는 학교폭력, 서구 형 흉악범죄 따위가 우리가 일상으로 떠안고 있는 구체적 증상들이다.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른 까닭은 여러 가지지만 가장 밑바닥에는 권력형 부정의와 신자유주의에 따른 착취와 이윤추구가 놓여 있다. 정치와 경제와 사회, 문화예술 따위 우리 삶을 이루는 모든 곳과 때에서 권력을 거머쥔 소수가 자기 이익을 챙기려 법을 타넘어 부정을 일삼는다. 이런 자들이 마치 말기 암세포처럼 번져 사회 전체가 썩고 결국 다수가 돌이키기 힘든 파탄으로 몰린 것이다. 치유책은 찾기 어렵다.

‘전근대적 노동억압’은 예나 이제나 보이는 또 다른 증상이요 고통이다. 여기서 ‘전근대적 노동억압’이란 권력과 주도권을 쥔 사용자가 상식과 법을 무시하고 악용하여 힘없는 근로자를 억누르고 기본 권익을 해치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은 과거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 때 널리 퍼져 굳어진 인권유린 현상인데, 요즘 국민대학교에서 권력을 쥔 자들이 벌이고 있는 행태가 그 전형이다.

강사에게 불현듯 4개월짜리 계약서 강요……

대한민국 땅에서 대학 강사는 계약기간이 통상 6개월이다. 그래서 늘 불안하다. 재임용 여부가 불투명하니 6개월이 다 한 뒤 ‘목숨’이 어찌될까 모르기 때문이다. 대개 계약서 자체를 주고받지도 않는다. 대학 당국은 대학 강사를 대학 강사는 자기 자신을, 정식으로 계약서를 주고받을 계층으로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금(강사료)은 4개월 치만 준다. 설상가상이다. 이는 엄연히 위법이다. 그러나 마치 당연한 것처럼 관례로 굳었기에 아무도 이의를 내놓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방학이 되고 명절이 찾아오면 대학 강사는 거지 신세로 떨어진 가운데 생활고와 자괴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국민대학교 역시 1946년에 개교한 이래 ‘6개월 계약 4개월 임금’ 체제를 줄곧 이어왔고, 그 동안 단 한 번도 대학 강사에게 ‘계약서’라는 것을 견본으로라도 눈앞에 보여준 적조차 없었다. 그런데, 2010년 봄 학기부터 국민대학교 이성우 총장은 불현듯 각과 조교를 통해 계약서를 내놓으며 서명을 강요했고… 계약기간이 ‘4개월’이다. 2010년 이전에는 대학 행정이 6개월 단위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따라 예를 들어 ‘2009년 3월 1일-2009년 8월 31일’(1학기), ‘2009년 9월 1일-2010년 2월 28일’(2학기)로 계약 기간이 성립되었지만(이는 학교에서 떼 주는 경력증명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이후에는 ‘2010년 3월 1일-2010년 6월 30일’ ‘2010년 8월 30일-2011년 1월 7일’ 따위로 계약 기간이 4개월로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숨겨진 꼼수는 무엇인가?

최근 10여년 사이, 대학 강사가 떠안은 열악한 환경이 문제로 떠올랐고 정부와 국회에서도 이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개선을 촉구하는 사회분위기가 일었고, 4개월 치만 주던 임금을 6개월 치로 주어야 될 가능성이 나타났다. 이에 국민대학교 총장과 교무처장은 변화에 따른 재정손실(?)을 사전에 막고자 ‘4개월짜리 계약서’라는 것을 꺼내든 것이다. 또 정부에서 종용하여 대학 강사에게 들어주고 있는 고용보험기간을 4개월로 줄여 대학이 부담하는 비용을 조금이나마 아끼려는 계산도 여기에 숨어 있다.

국민대학교에서는 1,000여명 대학 강사가 학생을 가르친다. 4개월짜리 굴욕적인 계약서를 강요받으며 어떤 자부심과 긍지로써 대학 강사가 강단에 서란 말인지 자문한다. ‘4개월 계약서’는 첫째, 대학 강사가 마땅히 지녀야 할 최소 소속감과 존재감을 무시한다. 1학기를 기준으로 볼 때, 6월 30일이 되면 대학 강사는 더 이상 학교 성원이 아니다. 학생과 아무 연관이 없는 무적자가 되는 것이다. 둘째, 대학 강사가 방학 중에 성적을 처리 입력하고 강의계획서를 짜서 입력하며 이 때문에 다음 학기 강의를 연구 준비한다는 현실을 부정하는 악덕 계약 사례다. 셋째, 비록 불완전하고 오히려 강사 권익을 역으로 해칠 위험성이 다분하긴 하지만 정부와 국회가 '2013년부터 대학 강사 계약기간을 1년으로 한다는 법'을 엄연히 통과·확정한 마당에서 볼 때, 시대 흐름과 공동체 합의를 정면에서 우습게 여기는 처사다. 결국 대학 강사가 학생을 제대로 가르칠 여지를 해치므로 그 폐해가 고스란히 학생에게 떠넘겨진다.

2012년에 국민대학교 총장은 ‘4개월짜리’ 계약서를 강요하다 못해 한술 더 떴다. 그동안 ‘4개월짜리 계약서’를 거부해온 필자에게 ‘2012년 2월 15일까지 계약서 원본을 내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협박 메일을 보내왔다.

나랏법에 코웃음 치는 사학 권력…… 한 발 앞선 법 왜곡 행위

국민대학교에서 벌어진 ‘전근대적 노동억압행태’는 이것만이 아니다. 그 경력은 2010년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 알다시피, 비정규직 차별과 그에 따른 양극화 현상은 우리 시대가 떠안고 있는 가장 큰 사회병폐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한 직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여겨야 한다는’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을 1997년에 내놓았다.

그러자 국민대학교는 어느 대학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 2년째 근무한 강사들을 강제해고하거나 한 학기 휴직을 강요하여 대학 강사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상승(?)하는 것을 사전 차단했다. 약자를 보호하자는 법을 거꾸로 악용하는 데 국민대학교는 1997년부터 앞장서 온 것이다. 2007년과 2010년에 정부가 법을 고쳐 현재 대학 강사를 비정규직 보호법 보호 대상에서 뺐는데도 그러한 행태를 쉼 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2년 뒤 강제해직’ 악습은 저임금과 신분불안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교직에 임하여 대학을 지탱해온 강사들을 보호하기는커녕 강사 교육 환경을 생존권 차원에서 열악하게 하여 역시 학생 학습 환경을 근본에서 해치므로 심각한 반사회·반교육 행위다. 인권을 파리처럼 여기던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길들여 놓은 악습을 그대로 뒤따르는 행태다. 2012년 1월 31일자 ≪아시아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국민대학 당국은 이를 두고 ‘교수들도 안식년이 있는데 강사들이 4학기 동안 강의할 경우 한 학기 쉬라는 것으로 강제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월급을 꼬박꼬박 받아가며 쉬는 교수와 무일푼으로 강제로 쫓겨나 쉬어야만 하는 강사를 마치 같은 사례인양 가져다 붙인 것이다. 이는 사회 구성원 전체를 새빨간 거짓말로 서슴없이 속이려는, 속여도 괜찮다는 습관성 도덕불감증에 따른 허언이요 궁색하고 졸렬한 임기웅변이다.

필자는 계약 당사자인 총장에게 계약 내용을 토론·조정할 것을 2011년 봄 학기 초부터 네 차례나 요구했다. 그러나 총장은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왜 ‘4개월짜리 계약서’인지, 왜 ‘2년마다 강제해직’인지 부하 직원을 통해서라도 단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대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종합정보시스템 내 대량메일업무별 발송서비스 사이트’를 2012년 현재 완전히 폐쇄하여 앞뒤 상황을 국민대 전 성원에게 알릴 길을 원천봉쇄했다. 정당한 권리요구에 치졸한 비민주성 억압 태도로써 응대한 것이다.

생존을 위협하고도 남는 저임금 체계

현재 국민대학교에는 1000여명에 이르는 강사가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이들이 받는 강사료는 1993년 기준으로 3만5천원이고 2012년 현재 4만원이다. 이는 국립대 6만원, 경북대 6만5천5백 원, 대구대 6만3천원, 영남대 5만9천원, 고려대 5만1천8백 원인 것에 비해 퍽 낮은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대학교에서  3시간짜리 한 강좌를 맡아 강의하면 한 달 받는 임금은 48만 원이다.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강사 한 명이 배정받을 수 있는 최대 시간은 9시간이다. 운이 좋아 9시간 3강좌를 배정받아 강의해봐야 144만 원이다. 물론 방학이 되면이마저도 없다. 보너스도 없고, 연구비나 교재구입비 따위 강의를 위한 보조비는 개념도 명칭도 없다. 강의실에서 열과 성을 다해 강의를 하는 동안 대학 강사는 엄연히 대학교수지만, 강의가 끝나 문밖으로 나서면 연구실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최빈곤층일 뿐이다.

국민대학 경우에서 더 중요하여 주목해야 하는 점은 1993에서 2012년까지 오면서 약 20년 동안 강사 임금이 단 돈 만원도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년 동안 만원도 오르지 않은 임금’… 이는 물가상승을 생각하면 오히려 인하된 그래서 매우 놀라운 수준인데, 대한민국 노사관계사상 퍽 희귀한 경우일 것이다.

대학강사노조 자체를 무시·부정하는 전근대성

이러한 갖가지 억압을 딛고 불이익과 부당함을 걷어내고자 국민대학교 내 대학 강사들은 2011년 5월 17일에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위원장 김영곤) 국민대분회’를 세웠다. 세상을 한꺼번에 바꿔보자는 시도가 아니요, 대학 강사 지위와 복지를 한순간에 하늘 끝으로 밀어 올리자는 욕심은 더욱 아니었다. 합리와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기본 권리를 찾아 강사가 학생을 잘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점차 가꾸어나가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겸허한 자세와 마음으로 단체협상을 요구했으나 총장과 교무처장은 합법적인 노조를 전면으로 부인하고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교무처장이 보여준 언동은 강사노조에 대한 상식과 기본 예의를 모두 망각·무시하고 사태를 총장 고소로 몰아가는 데 결정된 작용을 했다.

2011년 7월 21일 일차 상견례를 하며 단체협약서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총장을 대리한 교무처장은“‘노조’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효일(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국민대분회장) 선생하고만 얘기하고 싶다."는 해괴한 요구와 논리를 펼치며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어 단체협상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2개월’이라는 충분한 여유를 두고 2011년 9월 21일 제1차 단체협상을 연 자리에서 교무처장은 "요구한 사항을 한 가지도 들어줄 수 없다."고 한 뒤 "우리로서는 단체협상을 교무처에서 해야 할지 총무처에서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알아본 뒤 다시 보자."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로써 단체협상 자체를 사실상 거부했다. 그날 노조는 협상 내용에 대해 말을 꺼내보지도 못했고,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절망을 느끼고 대화 불가능을 깨달아 2011년 10월 14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3호를 위반한 부당노동행위로 이성우 총장을 고소할 수밖에 없었다. 2012년 1월 노동부에서 이성우 총장에게 출두 요구서를 보냈고, 현재 고소인, 피고소인, 참고인 조사를 모두 마친 상태이며, 2012년 2월 중으로 총장고소 건은 검찰로 송치될 예정이다.

이러한 고소 사건은 그 처리 기간은 통상 ‘2개월’이다. 2011년 10월 14일 이후 약 4개월 동안, 사건을 담당한 근로감독관은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며 노사협상을 성실하게 재개할 것을 이성우 총장에게 여러 차례 권유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성우 총장은 한 번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2012년 1월 27일 결국 노동청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뒤에야 겨우 변화를 보여, 1월 31일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국민대분회와 노사협상을 진행하고자 함을 알린다.’는 벽보를 교내에 붙였다. 이것이 진정성 어린 문장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대학총장으로서는 최초로 검찰에 소환될 지경에 이르자 이제 부랴부랴 사태를 모면해보자고 내민 몸짓일 뿐인지 알 수 없다. 진정으로 노사협상을 이끌어갈 생각이 있었다면 노조에 직접 연락을 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사 처우 개선, 그 뜻과 목적은 올바른 학생 교육 그리고 사회 정의

교육자 의식은 비어있는 비뚤어진 권력자들이 국민대학교에서 벌인 악습을 해소해야 되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앞서 말했듯, 대학 강사가 강의환경과 처우를 개선하려는 것은 일신 영달이 아니라 학생을 잘 가르쳐보고자 하는 데 근본 된 뜻과 목적이 있다. 정체성과 소속감이 오그라들어 신분이 불안하고 지독한 저임금에 늘 시달려서야 대학 강사들이 능력과 성의를 한껏 기울여 올바른 스승으로 서기가 불가하거나 퍽 어렵다. 고달프다. 이 고달픔을 풀어야 대학이 좀 더 대학다울 수 있으며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 이것이 첫 번째 까닭이다. 오늘날 구태를 벗어 참된 새 틀을 짜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우리 사회가 자멸할 상황에 마주해 있다는 주장이 속속 나오고 있다. ‘참된 새 틀’이란 국민대학교 현상에 어린 것과 같은 ‘권력횡포형’ 부정의(不正義) 현상부터 바로 잡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기본 된 상식과 정의를 먼저 세우지 않으면 변화를 이룰 수 없거나 시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번째 까닭이다.    

국민대학교는 대한민국 하늘 아래 세워진 대학이요 교육기관이다. 자본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일상을 점령한 것이 대세라 할지라도 대학이 사회를 정화하고 도덕에서 이끌어가야 한다는 명제와 가치관은 여전히 또렷하다. 국민대학교 총장과 교무처장은 이 신성한 의무를 다하려 애쓰기는커녕 역으로 짓밟고 무시하여 시대를 거스르고 있다. 그들은 상아탑에 파묻혀 우리 사회와 시대가 병드는 데 은밀하게 그러나 적극적으로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 병원(病源)이 자기 이익에 사로잡혀 많은 이를 부당하게 권리 침해하고 사회를 일그러뜨린다면… 마땅히 이를 도려내야 한다. 불법과 부정을 바로잡고 탄압을 헤쳐내야 참답게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