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5일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받았던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통합연대와 합당함으로써 역사적으로 사라졌다. 이로 인해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또한 역사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로 이어가려는 우파 집행부의 움직임으로 인해 민주노총 내부에는 지금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좌파연합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그동안 민주노총 내 좌파라고 분류할 수 있는 여러 정치적 경향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도 3파전을 치를 만큼 어느 순간 다수파가 되어버린 우파에 대응하는 데 있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오지 못했다.

이러한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반대 흐름이 형성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상황의 절박함에 있다.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 한국에서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비정규악법, 노조법 개악,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등을 도입하고 추진해왔던 국민참여당을 과거를 반성하는 개혁세력이라고 주장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성과가 통합진보당의 창당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우파에 직면하면서 더 이상 정파적 차이나 따지고 앉아있을 여유가 없음이다. 2008년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 경제위기로 인해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려는 자본의 공세 속에서 물가인상과 실업증가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엄중함이 또한 그 바탕에 있다. 자본의 전반적 위기에 대응한 독점자본의 대응형태인 신자유주의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전세계에서 공공부문의 시장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하여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함으로써 자본의 이윤율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한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 한 치도 어긋남 없이 행동해 왔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에 꽂혀 있는 민주노총 우파는 이러한 객관적 현실을 무시하고 과거를 반성했기에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5.31합의문과 8.28합의문보다 더욱 후퇴한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심지어 출범식에서 열사에 대한 묵념이 아니라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통합진보당을 어떻게 노동자중심의 정당이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성과로 볼 수 있다는 말인가?

민주노총 정치방침 토론 자료에 나와 있는 우파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진보정당의 개념에서 민주노총이 추구하는 진보정당은 어떤 모습인가?” 라는 부분의 글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민주노총이 추구하는 진보정당은 비합, 반합 정당이 아니라 합법정당이고, 순수계급정당이 아니라 계급연합정당이고 전위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이고 그래서 소수 활동가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이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의 실현을 강령으로 내걸 수 없다고.  아마 이 부분을 쟁점으로 하다보면 지금 만들어진 좌파연합전선은 흔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것은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민참여당에 대한 민주노총 평조합원의 반감과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의 분노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합법정당·계급연합정당·대중정당을 지향하고 사회주의를 전면적으로 내걸지 않는 정당을 지향하는 데 동의한다 하더라도 국민참여당은 그 통합대상이 될 수 없다로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좌파들이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다. 나 또한 사회주의를 전면적으로 내거는 노동자계급정당으로서 대중정당을 전위적 활동가들이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반대하는 흐름은 11월 25일 긴급토론회를 제안하면서 외화되었다. 이후로 12월, 1천인 선언운동은 민주노총의 각급 조직의 전·현직 간부와 현장활동가들의 적극적 참여로 1552명의 선언운동이 진행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3자통합당 배타적지지 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가 결성되고 1월 5일 기자회견을 가졌다. 선언운동본부는 1월 31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대응하기 위해 10만 조합원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1월 14일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선언자 대회를 개최했다. 선언자 대회는 결의 대회와 대토론회로 진행되었는데, 1월 31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배타적 지지를 막아내자는 결의를 하고 올바른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선언운동본부로 외화되는 토론회, 기자회견, 선언자 대회는 사실상 각 지역과 부문에서의 움직임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다. 전국의 10여개 지역에서 선언자모임을 진행하고 자체 토론회를 개최하고 지역선언운동본부를 구성했다. 부산에서도 12월부터 진행되던 선언자모임은 1월 4일 부산선언운동본부를 구성하고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일반노조 등 주요 산별대표자들이 공동 본부장을 맡고 집행팀으로 민주노총 부산본부의 몇몇 집행위원들과 현장조직의 활동가들이 결합하였다. 중앙 차원만이 아니라 지역차원에서도 좌파연합전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10년 이상 민주노총의 이런 저런 직책을 가지고 활동해온 내가 처음 보는 광경이다. 사실 흥분되기도 하고 우려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실험이기 때문이다. 공동의 적 앞에 단결하였으나 어디까지 같이 갈 수 있을까? 공동활동을 한 경험도 없고 사실상 그런 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도 없다. 그러나 2012년 선거주의에 매몰된 우파의 패권적 행보를 보며 우리 운동의 희망은 좌파연합전선에 있기에 지역의 활동가들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연합전선이 강고한 대오로 건설되어 올바른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통일된 흐름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나는 2월 9일이면 임기가 끝나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부본부장이고,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의 공동본부장이고, 부산선언운동본부의 공동본부장으로서 소집권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지금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정치적 경험 속에서 조금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민주노총 지역본부 임원의 한사람으로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에 겁도 없이 이 어마어마한 일에 깊숙이 발을 디디고 있는 셈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전노협, 그리고 민주노총. 출발하면서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유일한 노동자계급의 자주적 대중조직으로서 민주노총이 똑바로 서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민주노총은 자본의 논리에 포섭당하지 않고, 취업한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만의 조직으로 비춰지지 않아야 한다. 민주노총이 총선·대선 등 선거일정에 매몰되어 진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민주노총이 추구하는 진보정당은 계급연합정당이므로 몰락해가는 중간층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최저임금 투쟁을 하다보면 자본가들은 영세자본가들=몰락해가는 중간층의 지불능력을 운운하면서 최저임금인상 자제를 요구하는데 우리가 계급연합정당을 표방한다면 최저임금투쟁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든다)하기 전에 취업도 못하는 실업자,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연장수당·야간수당도 못 받는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를 끌어안고 그들을 중심에 세우는 민주노총을 추구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바로서야 민주노총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도 올바르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