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언제나 그랬지만, 그리고 소위 자유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이 사회의 정치질서, 정치일정을 지배하는 한, 앞으로도 또한 그러할 것이지만, 이번 역시 또 한 마당의 거대한 야바위 정치놀음이 낭자하게 펼쳐졌다. 또 한 번 그러한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정치놀음이 질펀하게 벌어진 것이다.

국가(―그런데 누구의?)와 민족, 사회를 위해서 몸 바쳐 일하겠다는, 그것도 자신만이 잘 할 수 있고, 자신이 아니면 결코 안 된다고 왜장치며, 왜장치며 나서는 헌신적 지사(志士)들은, 그러한 흉물들은 어찌도 그리 많고 넘쳐나는지...? 가지각색의 유니폼을 차려 입고, 춤추고 노래하며, 코가 땅에 닿도록 굴신하는 그들의 종자(從者)ㆍ졸개들은 또 어찌도 그리 많고 넘쳐나는지...? 거리는 온통 온갖 어릿광대들, 잡놈들, 위선자들, 인간말종들, 잠재적ㆍ현재적 범죄자들, 과대자존망상증 환자들의 핏발 선 확성기 연설과 동서양의 풍악소리로 소란하고, 하늘을 향한 그들의 오른팔 삿대질로 어지럽다.

모두가 하나같이 ‘국가(―그런데 누구의?)와 민족, 사회를 위해서 몸 바쳐 일하겠노라’ 외쳐댈 뿐, 혹은 그 종자ㆍ졸개들은 ‘아무개야말로 바로 그러할 인물’이라고 외쳐댈 뿐, 어느 하나 권력을 좇아서, 그 권력이 보장할, 혹은 그 권력을 이용하여 누리려 하는 부귀영화를 좇아서, 하다못해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혹은 하다못해 무언가 떡고물을 노리고 나섰노라고 이실직고하며 나서는 놈[者]이 없다. 하기야 더러는, 적어도 잠재의식이 아닌 현재의식(顯在意識)ㆍ표면의식상으로는, ‘정말로 국가(―그런데 누구의?)와 민족, 사회를 위해서 몸 바쳐’ 뭔가를 해야겠다’는 사명감에, 그러한 망상에 충만한 돈키호테들[―‘돈키호테’의 이 ‘돈’은 혹시 이런저런 오카네(お金)의 ‘돈’]도 없지는 않을 터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특히 일당(日當)을 위해서 고용된 수많은 운동원들 중에는 음습한 골방이나 대폿집에서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하며 자조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을 터이지만 말이다. (이런 야바위판이 벌어질 때마다, 수많은 이권 사냥꾼들이 제철 만난 듯 활개 치고 야바위ㆍ어릿광대춤을 출 뿐 아니라, 수많은 궁민(窮民)ㆍ실업자들이 일당으로 고용되고, 또 은밀히 혹은 공공연히 오카네가 살포되기도 하며, 향응제공이라는 ‘적선(積善)’이 베풀어지기도 한다는 현실 앞에서, 혹시, 혹시 우리는 이 역시 ‘부르주아적 소득재분배’의 한 메커니즘, 그것도 그 정기적인 메커니즘의 하나라고 평가(評價)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국가(―그런데 누구의?)와 민족, 사회를 위해서 몸 바쳐 일하겠노라’고 나선 저들 군상이 현재의식상의 어떤 목표, 어떤 구실을 걸고 나섰든, 실제로는 저들이 왜 저토록 필사적으로 나서는 것일까 하는 진짜 이유, 진짜 동기, 진짜 목표ㆍ목적은, 독사보다도 악독했던(―아! 독사님들 죄송합니다. 당신네들의 독이야 그것이 아무리 맹독일지라도, 단지 당신들의 생존을 보장해온 진화의 결과일 뿐, ‘악독’한 것은 아니지요―) 한 독재자의 딸(들)이 그 집요한 권력욕으로 웅변하고 있다. 즈 어미ㆍ애비가 권력을 탐하다가, 권력을 탐했기 때문에 모두 흉탄에 비명횡사했는데도, 그것도 즈 애비는 사실상 그 얼굴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처참하게 횡사했는데도, 17년이었던가 18ㆍ19년이었던가의 청와대 세월이, 그 권력이 얼마나 그 유혹을 억제할 수 없을 만큼 안락한 것이었고, 얼마나 그 유혹을 억제할 수 없을 만큼 온갖 부귀와 특권을 보장하는 것이었으면, 그리고 이제껏 그 호가호위로 누려온 권력이 얼마나 그러한 것이었으면, 저토록 집요하게 전국을 누비며 나서겠는가?! 아! 노회한 야바위꾼의 약간은 합죽하면서도 야무진 저 미소의 요사함이여! 웃음 치는 듯하면서도 앙칼진 저 눈빛의 섬뜩함이여!

이 사회의 그 누구보다도 모가지가 뻣뻣한 자들, 그러한 거물 정객들이 늙은이나 덜 늙은이나 그녀 앞에만 서면 온갖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굴신하는 것도 바로 부르주아 권력의 그러한 매력 때문이고, 수많은 민주투사, 민주지사, 라만차의 신사ㆍ숙녀분들께서 민주주의와 민생의 깃발로 “2012년을 점령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그 화려하지만 한 꺼풀뿐인 명분을 걷어내고 나면, 바로 그러한 권력의 매력 아니겠는가?!

‘당선만 되면 그러한 권력이, 그러한 특권이 보장되는데, 기껏해야 보름 전후밖에 안 되는 선거운동 기간에 어떤 비굴하고 채신머리사나운 어릿광대짓인들 마다할쏘더냐?!’ ― 이것이 필경 선거전에 임하는 저들 흉물의 출사표, 결의의 말일 것이다.

II

한 10년쯤 전이던가? (알 이는 모두 알겠지만) 나는, 선거 때만 되면, 특히 총선 때만 되면 으레 ‘정치판을 개혁하겠다’며 소위 낙천운동ㆍ낙선운동이라는 어릿광대짓을 벌이곤 하는 이른바 시민운동가들, ‘진보적 지식인들’의 행태를 가리켜 불경(不敬)하게도 ‘조두(鳥頭) 증후군(症候群)’, 즉 ‘새대가리 증후군’이라고 규정ㆍ조롱하는 글을 쓴 적이 있고, 나는 지금도 그 불경함에 어떤 죄의식이나 미안함을 느끼고 있지 않다. (물론, 사실 아무런 까닭 없이 그런 비하적(卑下的) 은유의 소재가 된 애먼 새[鳥]님들한테는 그때나 지금이나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 때만 되면, 저들 시민운동단체들이나 ‘진보적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요구가 있든 없든, 정당들은 저마다 ‘정치개혁’을 한다며, ‘새로운 피를 수혈’한다며, ‘새로운 인물들’을 공천하고 의사당으로 보내왔으며, 특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前)대통령 김대중 씨에 의한 여러 차례의 ‘수혈’은 유명하다. 그리고 소위 시민운동단체들과 ‘진보적 지식인들’ 자신도 여러 차례 그렇게 ‘새로운 인물들’ㆍ‘개혁적 인물들’을 추천하여 정계로 들여보냈고, 또 더러는 자신들이 손수 나서시기도 했다. 그러나 이윽고 그 ‘새로운 인물들’, ‘개혁적 인물들’은 누구누구 할 것도 없이 하나같이 다 ‘낡은 인물’ㆍ‘개혁 대상’으로 ‘전락(?)’했고, 저들 시민운동단체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은 그때마다 ‘개혁’을 들먹이며, 같은 짓거리를 되풀이해왔으니, 그 행태를 가리켜 ‘조두 증후군’이라고 규정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고 적절한 진단이 있을 수 있겠는가? (혹시, 갈지(之)자를 그리며 전진하는 ‘금붕어 증후군’?)

그런데 아무튼 이번 선거에서는 바로 그 ‘조두 증후군’이, 분명 치유된 건 아니고, 약간 변형된 형태로 그 증상을 드러냈다. 이번 총선의 작은 특징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제 저들 시민운동단체들의 주요 간부들이나 ‘진보적 지식인들’이, 주로 ‘낙선ㆍ낙천운동’을 벌이면서 그 이면(裏面)으로서 ‘새롭고’ ‘개혁적인’ 인물들을 추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손수 개혁적 정치를 담당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겠노라며 대거 이 당 저 당의 후보자로 나서신 것이다. 방금도 말한 것처럼, 물론 과거에도 그렇게 손수 나서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상대적으로 소수가 기존의 정당에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수동적으로 끌려들어간 것’이라면,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도 많은 수의 투사ㆍ지사들이 표면상으로도 ‘자발적ㆍ적극적으로 뛰어 들어간 것’이다. 혹시 ‘연작(燕雀)의 대가리 증후군’에서 ‘홍곡(鴻鵠)의 대가리 증후군’으로 진행?!

아무튼, 그 존경해마지 않아야 할 사명감!

그런데, 그들 역시 선거운동이라고 벌이고 있는 행태를 보면, 기성의 정치인들과 사실상 똑같은 어릿광대짓을 벌이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바로 춤추고 노래하는, 그리하여 선거를 계급간의 일종의 내전이 아니라 ‘축제’로 만드는 저 ‘참신한’ 어릿광대짓을 선도하고 있고, 기성의 정치인들이 그들의 그 ‘참신한’ 운동방식을 모방해가고 있다. 저들의 행태가 바로 그러한데, 다음 총선이 되면, 그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오늘날 그들이 받고 있는 것과 같은 평가(―그것이 아무리 허위ㆍ과대 포장된 것일지라도―)를, 혹은 ‘때 묻지 않은(?) 개혁적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까? 몇 명이나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까? 자못 궁금하다.

III

저들 시민운동단체나 ‘진보적 지식인들’이 내세우는 소위 ‘정치개혁’이라는 저들의 ‘목적’, 명분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고 하더라도 저들 단체의 간부ㆍ구성원들이나 저 ‘진보적 지식인들’이 빠져 있는 함정은, 그리고 저들이 순진한 대중을 그 속으로 등 떠밀고 있는 함정은, 정치권력과 정치인들이 줄줄이 부패ㆍ타락해가고, 반민중적ㆍ반인민적으로 되어가는 원인을 저들은,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고유한 금권정치, 따라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 그 자체, 혹은 그 경제ㆍ사회적 기반인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에서 찾는 대신에, 기본적으로 정치인 개개인의 소위 도덕성, 혹은 정치도덕적 결단에서 찾는 데에 있다. 저들이 설령 그들 정치인들이 소속한, 혹은 선택한 ‘정당’을 문제 삼는 경우에도, 그리고 ‘금권정치’를 문제 삼는 경우에도, 그것은 결코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 그 자체나 그 경제ㆍ사회적 기반인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를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문제의 도덕성 혹은 그 도덕적 결단을 그들 개개 정치인들의 임의의, 혹은 사실은 극히 편의주의적인 결사로서의 ‘정당’에서 찾고, 묻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정치ㆍ정치인ㆍ정당ㆍ‘정치개혁’과 관련한 저들의 이러한 비과학적 관점은 근본적으로는 저들 부르주아지 및 소부르주아지에 고유한, 사회 및 역사에 대한 관념론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관점, 그러한 사상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문제를 이렇게 파악하면, 그리고 그러한 사고방식에서는, 거기에 대한 ‘논리적 해결책’(?)은 ‘투표를 통해서’(!) 저들 정치인들의 비도덕성을 응징하고, 그들의 도덕성을, 말하자면, 제어하는 것이다.

이 총선국면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인터넷의 ‘진보적’ 뉴스 싸이트들을 두루 ‘항해(navigation)’도 하고 ‘탐색(surfing)’도 하다가 발견한, 필시 스스로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자부할 것임에 틀림없는 한 (자칭) ‘사회과학자’(≪오마이뉴스≫ 미국통신원, 언론학(뉴미디어) 박사, 펜실베니아 주립대 베런드 칼리지 교수)의 칼럼을 보면, 우선 선거판의 풍경을 이렇게 신랄하게 그리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기묘한 일들이 벌어진다. 영국 작가 조지 엘리엇도 말했다.

 “선거가 다가온다. 우주의 평화가 선포되고, 여우들은 진지하게 닭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사람 사는 현실은 닭ㆍ여우 이야기보다 우습다. 기껏 뽑아 놨더니, 지난 4년간 뭐 하다가 이제 ‘앞으로 국민 마음을 헤아리겠다’느니, ‘환골탈태하겠다’느니 하는 것일까.

임기 다 끝난 마당에 ‘앞으로’ 잘하겠다니, 이런 코미디가 또 있을까. 지금까지 잘 해왔어도 또 뽑을지 말지 고민할 판에, 못했으니 뽑아 달라는 것이다. 앞으로는 잘 하도록.

‘뽑아주세요. 잘 할 때까지.’

― (강인규[foucault], “‘난 투표 안 해’...이거 보면 맘 바뀐다: [게릴라칼럼] 총선 기권,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올 ‘재앙’”,

www.ohmynews.com, 2012. 4. 10.)

이 정도면, 우리 사회의 선거판에 대한 스케치치고는 압권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진보적인 ‘사회과학자’께서는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 “이런 코미디”를 “몰염치”로 규정하면서 “정치인들의 [이런: 인용자] 몰염치가 되풀이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며, 개탄한다.

정치인들이 이런 몰염치를 되풀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이런 짓이 통하기 때문이다. 임기 중 유권자에게 코빼기 하나 안 비치고, 그들의 다급한 절규를 귀에서 윙윙거리는 ‘날파리’ 소리만큼도 안 여겨도, 선거에 임박해 비장하게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면 다시 표를 얻는 것이다.

이쯤 되면 처절한 참회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라도 임기 중 말아먹는 게 필수일 것 같다. 그래야 ‘환골탈태’의 기회를 얻을 테니 말이다. 해볼 만한 장사 아닌가. 몇 년간 배를 두드리다가 다음 선거가 다가오면 몇 주 납작 엎드려 읍소하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환골탈태’가 좀 간편한가. 홍보회사에 의뢰해 로고와 상징색을 바꾸고, 당 이름은 공개모집하면 된다. 돈이 좀 들지만, 자기 돈인가. 역시 ‘CEO 대통령’을 둔 여당답게 전략도 기업스럽다. 영국석유회사(British Petroleum)가 멕시코만 원유유출로 막대한 환경재앙을 입힌 후 회사 이름을 ‘비피(BP)’로 개명하고 상징을 녹색 꽃모양으로 바꿨듯.

차이가 있다면, 비피는 이름과 상징을 바꾼 후에도 계속해서 책임추궁을 당하고 있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기업 이미지 손실을 입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정당은 새 당명과 로고만 바꿨을 뿐인데, 책임을 면하고 다음 선거에서도 ‘제1당’이 유력시된다고 한다. 범법자가 개명하고 옷 바꿔 입었다고 죄를 용서받는 꼴이다. 이러니 누가 임기 중 유권자를 두려워하겠는가. 내가 당명 공모에 참여했다면 이런 이름을 제안했을 텐데.

‘수박에 줄 긋는당.’

전형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몰염치” 따위의 도덕성에서 찾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이 글은 그 외에도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다름 아니라, 말하자면, 공평성의 현저한 결여, 현실 왜곡이 그것이다. 그렇게 “몰염치”한 행태를 되풀이하면서 “홍보회사에 의뢰해 로고와 상징색을 바꾸고, 당 이름은 공개모집”하는 등의 “환골탈태”, “처절한 참회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것은 비단 현재의 여당만이 아니고, 이른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이 사회의 사실상 모든 정당의 행태인데도, “역시 ‘CEO 대통령’을 둔 여당답게 전략도 기업스럽다” 운운하는 말로, 은근슬쩍 마치 그것이 현 여당만의 행태인 것처럼 눙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칼럼의 필자 및 ≪오마이뉴스≫의 편집자가 그 공평성의 결여, 현실 왜곡을 인식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으나, 아무튼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독자 대중에게 투표를 권유하고 그것을 통한 응징 혹은 ‘권력의 교체’를 설파하기 위한 진하디 진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사회과학자’는 실제로 이렇게 얘기를 이어간다.

[독자들이: 인용자] 무슨 생각을 갖고 계신 줄 안다. ‘그 밥에 그 나물이어서 뽑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 말이다. 이런 분노가 제대로 작동해서 아무도 안 뽑히면 좋겠는데, 현실이 어디 그런가. 어느 경우든 ‘똑같은 놈들’ 가운데 하나가 뽑히니 문제다. 그래도 투표를 하면 내가 뽑은 사람이나 뽑지 않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선출되지만, 포기하면 항상 내가 안 뽑은 사람이 승리한다.

이 글은 ‘다 똑같다’고 믿는 분을 위한 것이다.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면 선택이 쉽지 않을 것이고, 이런 분들이 겪을 혼란을 다소나마 풀어주고 싶었다. 물론 기권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건 위에서 설명한 ‘안 뽑은 놈만 뽑히는’ 문제 이외에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잠시 이번 총선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투표를 망설이는 분들조차 느끼고 있듯, 현재 한국사회는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 나는 지난해 한국사회의 몰락(‘불행한 한국, 몰락하도록 놔둘 건가’)에 대해 썼다. 사회과학자로서 모국의 파멸을 예견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글에는 조금의 과장도 담겨있지 않다(이 판단에 동의했는지, 보수언론조차 같은 취지의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해 왔다). 그리고 그 우려는 나 자신도 놀랄 만큼 빠르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여기에서 이 재미 ‘사회과학자’가 지적ㆍ고발하고 논의하는, 그의 “모국” “한국” 혹은 “한국사회”를 “몰락”ㆍ“파멸”로 몰고 가고 있는, “한국사회[가]...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 혹은 “재앙”이란 대략 다음과 같다.

“최하위 행복지수에 최고의 자살률, 그리고 최저의 출산율”,

“공교육의 몰락이나 철도, 공항 등 공공시설의 영리화와 같은 공공서비스 붕괴의 맥락에서 파악해야” 하는, 그리고 “두드러지”고 있는 “‘치안 양극화’ 현상”과 “무서운 속도로 증가할” “범죄” ―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 사이에서 빈곤율이 늘고 있으며, 이들이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불법 사찰, 사회 양극화, 4대강 보와 다리의 안전, 식수원 오염, 고리 원자력 발전소 사고, 동시다발적 무역협정으로 인한 농업과 산업붕괴 대책, 막대한 국가부채와 가계부채”, 등등.

그런데 “이에 대한 정부여당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 “별문제 없다”고! 그리고 “이 문제들은 은폐될 때까지 은폐되다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가서 한국사회를 집어삼킬 것”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문제를 객관적으로 진단한 후 합리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때 그가 말하는 “합리적인 대책” 혹은 그것을 “세우는 것”은 다름 아니라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나아가 그의 형식상의 표현은 에두르고 있지만, 실제 그 속뜻은 사실상 ‘야당을 찍음으로써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며, 적어도 ‘야당을 찍음으로써 언제든 정권이 교체될 수 있다 는 두려움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두른 표현이지만 그는 이를 아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정말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다 똑같다면, ‘지난 번 뽑아준 놈’이 별로 잘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잘 하라고 뽑아놨는데, ‘뽑히지 않은 놈’과 별 차이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운운하는 문장들이 그 자체로서 논리적인지는 의문이지만, 여하튼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 똑같다고 믿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정말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다 똑같다면, ‘지난 번 뽑아준 놈’이 별로 잘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잘 하라고 뽑아놨는데, ‘뽑히지 않은 놈’과 별 차이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택은 정해져 있다. 둘 모두 긴장시키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뽑힌 놈이 확실히 낫지 않으면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벼룩잡기’까지 하면서 투표를 독려하는 것으로 자신의 칼럼을 끝맺고 있다.

투표를 하든 안 하든, 그들이 당신 주머니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빼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들에게 감사는 고사하고라도, 무시는 받지 말고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당신이 투표해야 할 이유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질문 하나! ― 투표를 하고, 야당을 찍어서 정권이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주”면, 아니, 나아가서 야당을 찍어서 정권을 교체하면,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 그 ‘재앙’은 과연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한국사회가 겪을지 모르는 재앙’이라고 하지만, 한국사회의 누가 겪을 어떤 재앙이며, 그 ‘재앙’은 과연 투표와 정권 교체를 통해서 피해갈 수 있단 말인가?

자칭 ‘사회과학자’라면서, 너무나도, 너무나도 순진한 사고, 순진한 주장 아닌가? 대중 기만 아닌가?

지금의 제1 야당, 글의 전후 맥락으로 봐서 그가 필시 지지를 요구하고 있는 게 분명한 그 당의 집권 시절, 그러니까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 때에는 어떤 정책들이 시행되었고, 어떤 상황들이 전개되었으며, 이명박 정권이 그토록 압도적인 득표로 등장할 수 있었던 직접적 배경은 무엇이었던가?

이들 문제에 대해서 그는, 그리고 ≪오마이뉴스≫는 짐짓 침묵함으로써 사실상 역사를 은폐ㆍ왜곡하고, 대중을 기만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역시 분명 야바위 놀음 아닌가?

이렇게 얘기하면 일종의 사족(蛇足)이 될지 모르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도 역사를, 현실을 왜곡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총선에서 문제를 덮을 사람을 뽑는다면 한국사회는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1997년 외환위기를 생각해 보라. 파국 직전까지도 여당과 주류언론 그 어디에서도 경고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대답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별문제 없다.’

“1997년 외환위기...파국 직전까지도 여당과 주류언론 그 어디에서도 경고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별문제 없다”고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대답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아무리 다급해도 이런 거짓말, 이런 역사 왜곡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한국경제가 한창 호황의 국면에 있던 1996년 여름부터 “여당과 주류언론”, 정부와 자본 측은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며, 노동법의 신자유주의적 개악을 위한 대(對) 노동자 공세 소동을 벌였고, 수많은 ‘진보적 지식인들’ 역시 자신들의 헛소리들이 어디에 봉사하는지도 모른 채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며 덩달아 어릿광대춤을 추었던 것이 기억도 생생한 역사적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그야말로 사족이 될지 모르나, 이 황폐한 (소)부르주아지적 지적 풍토 속에서 프랑스 등 서방의 이른바 진보적 혹은 비판적 ‘철학자’ㆍ‘사상가’들에 대해서 환상을 갖는 독자들이 꽤나 많기 때문에 언급해두는 바이지만, 문제의 칼럼의 필자는 자신을 “강인규 (foucault)”라고 밝히고 있다. 프랑스의 저 유명한 부르주아 ‘철학자’ 푸코인지 푸콜트인지를 존경하며, 그의 ‘경지’에 이르고 싶고, 그렇게 불리고 싶은 원망(願望)의 표현이리라.

그 자신이 자부심을 가지고 적시ㆍ언급하고 있는 “불행한 한국, 몰락하도록 놔둘 건가”를 포함하여 단 두 편의 짧은 글을 읽어보았을 뿐이지만, 그의 유려한 필력(筆力)으로 봐서도, ‘해박한 인용들’을 봐서도, 그의 사고의 방식과 경향으로 봐서도 그의 그러한 원망은 결코 우연한, 그리고 헛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몰염치한 정치인들이 무대에 올린다’는 “처절한 참회극”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사상과 사고방식을 발본적으로 재검토하고 교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실제로 푸코나 그 아류의 경지에 오르고, 굳이 자신이 청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불릴지도 모를 일이다.

앞에서 우리의 진보적 ‘사회과학자’께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 판단[―‘불행한 한국, 몰락하도록 놔둘 건가’라는 자신의 글에서 내린 판단: 인용자]에 동의했는지, 보수언론조차 같은 취지의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해 왔다”고 쓰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보수언론”이란 분명 ‘조중동문매’로 대표되는 극우언론이다. 그런데 그러한 극우언론이 그에게, 다른 주제도 아니고 “불행한 한국, 몰락하도록 놔둘 건가”와 같은 국가 정책 논의적 주제에 대해서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만일 그가 참으로 과학자다운 자질과 자세를 가진 사회과학자라면, 즉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을 고깝게만 생각하는 대신에 그것을 되씹어보면서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자신을 교정하려 하는 자질과 자세를 가진 학자라면, 지금 내가 가하는 이 곱지 않은 ‘비판’ 역시 그 자신에게도 결코 무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IV

사회의 구조, 그 계급적 이해는 첨예하게 대립적인데도 춤과 노래로, 그리고 핏발 선 감언이설로 낭자한 부르주아 선거판, 그것은 분명 거대한 야바위판이다. 그리고, 앞에서 한 ‘사회과학자’도 지적했던, 선거 때만 되면 이합집산하며 당명과 로고, 그 색깔들을 바꿔가며 과대ㆍ허위 포장하는, 일종의 ‘관행화’된 행태들 그것도 분명 거대한 야바위 놀음이다.

그런데, 그 포장 행태상의 야바위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선거 때가 되면 이 당에서 저 당으로, 저 당에서 이 당으로 맵시 있게 날아다니는 이른바 ‘철새 정치’, 혹은 ‘철새 정치인’의 문제는 이번 선거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앞에서 (이 사회의) 부르주아 정당들을 “개개 정치인들의 임의의, 혹은 사실은 극히 편의주의적인 결사”라고 규정했던 이유의 하나도 거기에 있는데, 극우 ≪조선일보≫조차 심심풀이 땅콩 삼아 보도했던 기사 한 편을 보자면, 이렇다.

강요식ㆍ민홍철 후보 ‘철새공천’ 논란 일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일부 공천자가 과거 상대 진영에서 활동한 이력 때문에 ‘철새 공천’ 논란이 일고 있다. 새누리당이 15일 서울 구로을에 공천한 강요식 후보는 2006년 지방선거 때 열린우리당 구로구청장 예비후보로 등록한 경력이 있다. 또 민주당 정대철 상임고문의 의원 시절 보좌관, 민주당 김한길 전 의원의 비서관도 지냈다고 한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의 서울 구로을 선대위에서 일했고,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강 후보는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부대변인에 임명됐었다. 강 후보는 공천 심사 과정에서 자신의 이력과 관련해 모두 소명했다고 했다.

민주당 경남 김해갑 공천자인 민홍철 후보는 지역 내 친박(親朴)계 모임인 ‘한국행복복지 김해포럼’의 고문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 후보는 작년 말 한나라당을 떠나 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 지난 8일 1차 경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결정됐고, 통합진보당 전진숙 후보와 야권 단일화 경선을 남겨둔 상태다. 민 후보는 “포럼 대표와 가까워 2차례 회의에 참석한 것뿐 친박 활동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 (김경화 기자, “[4·11 총선] 열린우리서 새누리로… 親朴모임 출신이 민주로”, ≪조선일보≫, 2012. 3. 12.)

이 기사에 거론된 인물들은 물론 내심 못내 앙앙불락할 것이다. “제기랄, 재수 없고 운수 사납기는! 어떤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그저 시쳇말로 ‘깃털’ 수준에 불과한데!” 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그렇다. 주지하는 것처럼, 한국의 정치사에서 수많은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이, 이 당에서 저 당으로, 그것도 속내 모르는 사람들이 겉으로만 보기에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는 당들을 넘나들었고, 그렇게 넘나들면서 이 당 저 당의 핵심간부를 역임했고, 심지어 당총재ㆍ당대표를 한 예도 결코 드물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만 하더라도, 예컨대, 신자유주의를 결단코 반대한다는, 명색이 진보정당이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권의 하나였던 노무현 정권의 담당자였던 자들의 정당과 통합하여 많은 아직까지도 적지 않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는데, 이러한 ‘통합’ 역시 소위 ‘철새 정치’와 몇 보(步)나 다르겠는가? 혹은, 소위 ‘야권 단일후보’니, ‘보수 단일후보’니 하는 발상과 그 실행은 또 그것과 과연 몇 보나 다르겠는가?

정치권에는, 그리고 그 정치권 일부 인사들을 가리켜, 혹은 그들의 일부 행보를 가리켜, ‘사꾸라’니, ‘왕사꾸라’니 하는 말들이 있지만, 이렇게 보면, 즉 이런 저런 ‘철새 정치’가 횡행하는 현실을 보면, ‘사꾸라’나 ‘왕사꾸라’는 그렇게 지목돼온 소수 정치인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한국 정치계에 만발해 있는 것 아닌가?

요즘 벚꽃 구경에 나선 사람들의 귀가 편의를 위해 여의도를 경유하는 버스의 심야 운행시간을 정책적으로 연장할 만큼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주위ㆍ인근에 벚나무가 즐비한 것도 혹시 어떤 섭리의 상징적 표현?

여기에서 문제는, 그러면 그러한 ‘철새 정치’는 그에 쏟아지는 눈총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왜 벌어지는 것이며, 어떻게 해서 벌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략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부르주아 정치에 고유한 금권정치, 특히 소위 ‘공천’을 둘러싼 돈거래와, 정당들의 극히 약간의 색조만 달리할 뿐인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계급성, 그리고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기 지배, 이 세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고유한 금권정치. 그것은 거만(鉅萬)의 돈이 지배하는 정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만대금(巨萬大金)이 필요한 정치이기도 하고, 거만대금을 거두어들이는 정치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선거에 필요한, 즉 직접적으로 돈봉투나 금품ㆍ향응을 살포ㆍ제공함으로써든, 아니면 여러 형태의 광고ㆍ선전을 요란하게 동원함으로써든, 무지하고 빈곤한 유권자들의 표를 매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주로 당의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정황상 당선이 확실시 되는 지역구나 전국 비례대표 순번의 공천을 둘러싸고 은밀히 거액의 자금이 오고 간다는 것은 사실상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천을 둘러싸고, 공천권을 쥐고 있는 거물들이 은밀히 거액의 사리(私利)를 취한다는 것 또한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들 정치 ‘보스들’에게 선거철은 일종의 수지맞는 대목인 셈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두 바로 정치 철새의 이동 통로이다. 고대 로마의 어느 폭군이, ‘측간세(厠間稅)로 거둔 돈이라고 해서 측간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던가?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인데, 돈이 필요한 정당에게, 돈을 탐하는 정치 ‘보스’에게, 어느 당에 속했던 인물의 돈, 어떤 경력을 가진 인물의 돈이든, 그것이 문제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그 액수뿐일 터이다.

어떤 철새도 그 생태에 적합하지 않은 곳으로는 이동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동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치 철새도 당연히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이 옮겨 날아다니는 이 당도, 저 당도 모두 그들이 서식하기에 적합한 풍토ㆍ토양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당도 저 당도 그 정치적 지향과 기반이, 즉 그 계급성이, 예컨대 청색과 남색의 차이 만큼의, 극히 약간의 색조만을 달리할 뿐, 사실상 동일 혹은 동조(同調)라는 뜻이다.

실제로 오늘날 부르주아 국가들의 지배적 정당들은 모두 동일한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소위 보수ㆍ진보 양당이라는 공화당과 민주당은 물론이고, 서유럽 국가들의 보수계열 정당들과 사민주의 계열의 정당들도 모두 각국의 독점자본의 이익을 대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애초에는 각각 북부의 산업 부르주아지의 이익과 남부의 대토지소유자들의 이익을 대표했고, 서유럽의 경우 각각 산업 부르주아지 및 전통적 대토지소유자 계급의 이익과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등, 애초의 뿌리는 상당히 달랐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오늘날에는 모두 독점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대표하는 당들로 그 계급성이 모두 수렴해 있는 것이다.

하물며, 일제로부터 ‘해방’ 후, 노동자ㆍ인민대중의 이익을 대표하는 세력들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폭력적으로, 잔혹하게 배제ㆍ제거된 가운데, 지주와 자본가, 그리고 제국주의 하수인들과 그 관료들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표하는 세력들로부터 출발한 한국의 지배적 정당들, 그렇게 동일한 계급적 뿌리로부터 출범하여 그러한 동일한 정치적 조건들, 즉 파쇼적 조건들에서 성장해온 양대 지배 정당들이 오늘날 독점 부르주아지라는 동일한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들 정당 간의 차이란 단지 임의적ㆍ편의주의적인 것일 뿐이고, 패거리주의적인 것일 뿐인데, 그러한 당을 구성ㆍ지배하는 자들이 이 당 저 당을 넘나들지 못할 이유란 사실상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한국의 정치계에 정치 철새들이 유난히 많이 서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 년간의 반파쇼ㆍ민주화 투쟁, 특히 1987년의 6월 항쟁과 7ㆍ8ㆍ9월 노동자 대투쟁에서 절정에 달했던 1970-80년대의 투쟁의 성과로 1980년대 말 이후 약간의 자유주의적 정치적 공간이 생겼고, 바로 그 공간을 비집고 ‘노동자ㆍ민중의 정치세력화’의 깃발을 든 몇몇 정당들이 결성되어 활동해오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러한 정당들이라고 해서 애초부터 ‘범지배계급적’ 사상ㆍ이론ㆍ이데올로기의 틀을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더구나 갈수록 탈(脫)노동자계급화ㆍ탈민중화의 색조, 즉 (소)부르주아지적 성격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오늘의 모습이다.

그들 정당들이 애초부터 그렇게 ‘범지배계급적’ 사상ㆍ이론ㆍ이데올로기의 틀 속에 갇혀 있었고, 갈수록 탈(脫)노동자계급화ㆍ탈민중화의 색조, 즉 (소)부르주아지적 성격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주로, 그들 당의 창당과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상층 지도부의, 파쇼 지배 하의 교육ㆍ문화ㆍ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에 의해서 형성ㆍ강화돼온 ‘합법주의’ㆍ편의주의 및 현대 사민주의 좌파적 사상ㆍ이론의 경향 때문이며, 그러한 바탕 위에서는 필연적으로 생장(生長)할 수밖에 없는 출세주의 때문이다. 그들에게 과학적 사상ㆍ이념으로 무장된 계급적 관점을 기대ㆍ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망(無望)한 것을 기대ㆍ요구하는 것이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 막 인터넷의 뉴스 싸이트에 뜬 한 기사를 예로 인용해보자.

경기 고양덕양갑에 출마한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12일 새벽 막판 극적인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

심 후보는 당선 확정 직후 트위터를 통해 “사랑하는 덕양갑 주민 여러분,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감사합니다. 덕양주민이 이겼습니다. 덕양 주민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이 새로운 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저의 진심에 따뜻하고 열정적인 사랑으로 화답해주신 주민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라며 당선 소감을 밝혔다.

― (최병성 기자, “심상정, 막판 대역전극! '170'표차 승리: 손범규측 요구로 재검표했으나 승리 확정”, www.viewsnnews.com, 2012. 4. 12.)

‘심상정’ 하면, 보다시피, 명색이 대표적 ‘진보정당’으로서의 통합진보당의 공동대표의 한 사람이다. 명색이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의 핵심적ㆍ대표적 인물ㆍ지도자이다. 그런데, 보라! “사랑하는 덕양갑 주민 여러분,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감사합니다”느니, “덕양주민이 이겼습니다”느니 하는 그의 감격에 벅찬 당선 인사말의 어디에서 계급적 관점의 희미한 냄새라도 맡을 수 있는지! 보수ㆍ극우 정객들의 당선 인사말과 추호의 차이라도 발견할 수 있는지!

이것이 바로 이 사회에서의 ‘진보정당 운동’의 전형적 혹은 상징적 모습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보정당’이 혹시 앞으로 더 그 세를 확장ㆍ강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금까지도 그래 왔던 것처럼, 그리고 서유럽 사민주의 정당들의 지배적 정당으로의 성장이 그랬듯이, 그 정당이 갈수록 가일층 탈노동자계급화ㆍ탈민중화하고, 가일층 (소)부르주아지 정당화하는 것과 궤를 나란히 하는 것에 의해서일 것이다. 이는 우경적 사민주의의 강화 과정, 즉, 저들 지도자 자신들의 주관과는 상관없이, 사실상 국가보안법과 저들 지도자의 기묘한 합작의 과정 그것이다.

한편, 무소속 후보들은 차치하더라도, 무려 20개라는 유난히 많은 정당들이 난립한 것도 이번 총선의 작은 특징의 하나라면 하나이다. 그러나 다수 정당들의 이러한 난립은, 결코 그 계급성상의, 그 사상ㆍ이론ㆍ이념상의 차이ㆍ그 다양성의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친화성, 그 근본적 동질성의 표현이다. 좀 심하다 싶게 말하자면, 단지 패거리주의적 이해관계의 표현일 뿐인 것이다.

한국의 현재의 정치적 조건 속에서는, 독점자본의 사상ㆍ이념적 헤게모니에 의해서뿐만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이라는 파쇼악법의 폭력에 의해서도 제도정치권에서의 유의미한 계급적 대립ㆍ차이는 폭력적으로 철저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철새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러한 ‘철새 정치’를 이른바 ‘후진국적 정치현상’으로 설명하고, 혹은 심지어 한국 정치에 고유한 현상으로 보는 사람들조차 있다. 그들은 심지어 미국이나 영국처럼 소위 ‘양당제’가 확고히 자리 잡고 있는 국가들에는 그러한 현상이 없는 듯이 얘기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물론 그들 국가에서는 그 지배적 정당들이 확립돼온 역사적 배경과 과정이 우리와 다르며, 또한 정치 영역에서도 소위 ‘부르주아적 합리성’이 보다 강하게 확립되어 있고, 보다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등 ‘정치 후진국’에 비해서는 상당히 소수의 현상에 그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히 예외적이거나 극히 드문 현상만은 아니다. 예컨대, 주지하는 사실이지만, 세계적으로 그 위명이 드높은 영국의 저 부르주아 정치 거물 처칠 또한 그러한 ‘정치 철새’의 하나였다.

V

우리는 앞에서 독점자본에 의한 이데올로기 지배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한국에서의 그것, 특히 사실상 헌법의 상위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의한 파쇼적 사상 통제는 이번 선거판에서도 역시 직접적으로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했다.

2010년 10월 9일에 지금은 진보신당과 통합해 사멸한 또 하나의 ‘진보정당’ 사회당의 당시 대표 최광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북한의 ‘3대 세습’, 진보는 침묵해야 하는가: 북한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는 글에서, “북한에 대해 태도를 표명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금기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북한에 대해 태도를 표명하...는 것이 금기가 될 수는 없다?

물론 극우로부터 당신들까지이다. 그리고 당신들보다 왼쪽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절대적인 금기이다! 국가보안법은 무엇이며, 그것은 왜 그토록 완강하게, ‘햇볕정책’을 펴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그토록 완강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이 사회에서 사상과 학문,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오직 극우에서 당신들 ‘진보적 지식인들’까지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 자유가 질식되어 있다. 그것이 이 사회의 정치적 현실이고, 이 사회의 사상, 학문, 언론의 ‘자유’의 실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과 실상이 당신들에게 얼마나 ‘최적의’ 환경이었으면, 그러한 객관적 사실도 채 인식하지 못한(?) 채, 거리낌 없이 “북한에 대해 태도를 표명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그토록 당연시 하면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잡도리하려드는가?!

― (“‘북 세습 논쟁’과 ‘진보적 지식인들’의 부박함에 대해 ― 특히, 손호철 교수의 선동을 중심으로”, ≪정세와 노동≫ 제61호, p. 15.)

그리고 분명 이 대꾸를 포함한 글이 이 사회 ‘진보적 지식인들’의, 말하자면, 역린을 건드린 덕분에 그 해 말에 나는 그들로부터 정말 기막힌, 그러나 그들로서야 내심 은밀히 통쾌해 했겠지만, 나로서야 ‘그래, 지금은 너희들의 세상이니 어디 한번 니들 놀고 싶은 대로 맘껏 놀아봐라’며 웃어넘겼을 뿐인 암묵의 비열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은 이렇게 소위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하물며 자칫하면 일종의 정치적 내전으로 비화할지도 모르는 선거판에서야 그 위력이 오죽하겠는가? 아니, 국가보안법 하의 선거는, 내전으로 비화하고 있지 않은 게 아니라, 지배 파쇼 세력이 노동자ㆍ민중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벌이는 내전이다. 이번 총선거에서도 국가보안법은 그러한 일방적 내전의 보루이자 무기였다!

‘조중동문매’의 지면, 특히 그 칼럼란과 광고란은 연일 “(사실상 민주당 등을 포함한) 종북빨갱이 박멸”을 선동하는, 극우논객들, 극우단체들, 극우교회ㆍ교단들의, 한 마디로 국가보안법의 자식들의 날선 성토장이었다. 이건 물론 누구의 눈에나 명백한 극우적 행태를 지적하는 것이지만, 극소수의 소위 진보매체들을 제외한, TV를 포함한 기타 대중매체들의 보도ㆍ논평들이라고 해서 사실 이들의 행태와 본질적으로 혹은 오히려 과히 다른 것도 아니다.

사실 허위사실들을 날조하고, 역사와 현실을 멋대로 해석하며, 작은 바늘을 커다란 몽둥이로 과장하며 극우를 비판ㆍ반대하거나 덜 극우적인 세력ㆍ경향에 대한 저들 극우세력들의 적대적ㆍ폭력적 선전ㆍ선동은,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의 노골적인 물리적 폭력까지도 부분적으로는 사실상 선거법이나 형법은 물론 헌법의 기본권 조항들보다도 훨씬 상위에 있고, 물론 국가보안법이 이를 보장하고 있다.

반면, 국가보안법에 주눅 들어 있는 이른바 진보정당, 진보후보들은, 할 말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짓눌려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ㆍ인민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폭로하며 도모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내는 능력 자체를 잃어버렸다. 그리고는 우스꽝스러운 분장에 춤추고 노래하는 것으로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아 표를 얻으려는 애처로운 삐에로들이 되었다. 그렇게 ‘참신한 선거판’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수십 년간의 반파쇼ㆍ민주화 투쟁으로 노동자ㆍ민중이 약간의 정치적 공간을 확보했다고는 하지만, 국가보안법 하에서의 제도권 정치는, 특히 선거판은 그렇게 한편에서의 일방적인 ‘빨갱이 섬멸전’과 다른 한편에서의 어릿광대극으로 펼쳐지고 있다.

VI

한국에서뿐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부르주아 선거판에서 공약(公約)이 빌 공(空)자 공약(空約)인 것은 사실상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공공연한 사실로 되어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자.

2008년 11월 16일의 일이다. “정세변화 못읽나, 외면하나 - 이 대통령, 워싱턴 간담회서 FTAㆍ북핵 ‘아전인수식’ 해석”(류재훈 특파원)이라는 제목의, 2008년 11월 18일자 ≪한겨레≫ 제1면의 머리기사인데, ― 방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워싱턴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는 중에 한 특파원이, 미국 선거에서 오바마 당선자가 자동차 산업과 관련하여 한미 FTA에 문제를 제기했던 것을 염두에 두고, “미국이 자동차 산업 때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요구하면 어떻게 대응하겠느냐”고 질문하자,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서는 이에 대답하면서 천연덕스럽게, 아니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나. 그렇지 않은가. 표가 나온다면 뭐든 얘기하는 것 아닌가. 세계 어느 나라든지.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각하의 이러한 말씀에 ≪한겨레≫의 같은 기사는 이런, 말하자면 논평을 달고 있다.

오바마의 발언을 ‘선거용’으로 치부한 것이다. 재협상이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한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참 편리하다.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서도, ≪한겨레≫도, “선거용” 발언이면 그것이 아무리 헛소리이고 기만적이라도 그저 그만, 대수롭지 않다는 뜻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야바위 놀음이 선거용 공약이고, 부르주아 선거이며, 부르주아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공약, 이쓔라는 측면에서 이번 총선은 또 하나의 부르주아 선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공약(公約)이든, 공약(空約)이든, 공약이란 것이 사실상 아예 사라지다시피 한 것이다. 그리고는 ‘불법사찰’, ‘막말’, ‘표절’, ‘성추행’, ‘개념 연예인’, 하다못해 ‘동생의 아내 성폭행 미수’ 등등까지, 주로 저질 황색언론의 기사거리나 될 것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트위터의 제왕’이라든가 무어라든가 하며 ‘비판적 지식인’의 씸볼로 추앙받는 소설가 이외수 씨는 문제의 트위터에 “제가 살고 있는 강원도 중에서도 낙후된 접경지역, 철원, 인제, 양구, 화천을 이끌어갈 새누리당 정치인. 한기호 후보를 응원합니다”라고, 그리고 “추진력이 있습니다. 결단력이 있습니다. 호탕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라고, 극우 새누리당의 후보를 추천ㆍ응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직 정치인도 아니고 대통령 출마를 표명하지도 않았는데도 한때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의, 대통령 후보로서의 지지를 받고 지금도 유력한 잠재 후보의 한 사람으로 통하고 있고, 또 그렇게 처신하고 있는 안철수 교수는, 자신의 현재 및 예상되는 처지를 반영ㆍ감안한 발언이겠지만, 젊은이들을 향해서 ‘정당이나 정파보다는 개인ㆍ사람을 보고 투표하라’고 연설하며 다니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이 사회, 어쩌면 이 시대 부르주아 사회 일반의 소위 비판적 지식인들의 정치의식의 수준인데, 쏟아진 비판에 대한 이외수 씨의 흥미로운 반응을 여기 소개해보자면,

[이외수 씨의 새누리당 후보 추천에: 인용자]  한 트위터리안은 “어떤 이유에서든 새누리당 인물들 응원 또는 추천 따위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취소하세요!”라고 비판했고, 이에 이외수씨는 “저도 소신이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취소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자기네 정당 후보 여러 명 추천해 드렸는데 그때는 가만히 계시다가 다른 정당 후보 딱 한 명 추천해 드리니까 불쾌감 드러내시는 분들. 저는 분명히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약이나 활동 검토한 다음 제 소신대로 소개하겠다고 미리 말씀드린 바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거부감에 대한 심경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사는 지역구 후보입니다. 제게도 소신과 신념이 있습니다”라며 거듭 추천 (취소: 인용자) 불가 입장을 밝힌 뒤, “아무튼 저는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투표율을 올리는 일에 매진하겠습니다. 저도 국민의 편”이라고 강조했다.

― (김혜영 기자, “이외수 ‘새누리 후보 한명 추천했다고 불쾌해 하다니’: 자신 거주 지역의 새누리당 후보 추천”, www.viewsnnews.com, 2012. 3. 9.)

“소신과 신념”? ― 그거 극우들이야말로 누구 못지않게 강하게 가지고 있다! “국민의 편”? ― 전형적인 몰계급적. 국가주의적인 사고ㆍ용어이고, 따라서 극우와 공유하는 것이다.

아무튼 ‘소신과 신념’의 사나이 이외수 씨가 사는 강원도는 필시 “추진력”도 있고, “결단력”도 있을 것이며, “호탕한 성품의 소유자”들일 새누리당의 극우 정치인들이 시쳇말로 싹쓸이를 했는데, 설마 이외수 씨의 위력 탓은 아닐 터이다.

VII

지금까지 나는 이번 4ㆍ11 총선을, 그리고 나아가서는 부르주아 선거, 부르주아 정치 일반을 극히 부정적으로, 극히 냉소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부르주아 선거, 부르주아 정치 일반이 아무런 긍정적 의미, 긍정적 작용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며, 특히 이번 4ㆍ11 총선과 그 결과가 이 사회와 그 정치에 어떤 긍정적 작용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여러 부정적 작용과 더불어, 동시에 많은 긍정적 작용을 미칠 것이다. 특히, 천하의 극우 독재자의 딸 극우 박근혜가 이끄는 새누리당이 ‘그녀의 저력에 힘입어’(?) 의석 과반을 넘기는 승리를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게다가 그와 더불어 극우적 색채가 더욱 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번 총선을 통해서 국회에서의 극우와 비극우 간의, 집권 여당과, 그와 권력을 다투는 야당 간의 일방적이고 절대적이었던 힘의 불균형은 깨졌다. 그만큼 여야 간의, 극우와 비극우 간의 정치적 파쟁, 투쟁은 더욱 빈번해지고 더욱 격렬해질 것이며, 그 여파는 당연히 정치권을 넘어서 관료사회 일반으로, 언론계 일반으로, 지식인 사회 일반으로, 그리고 더 넓게는 그야말로 사회 일반으로 미칠 것이다.

물론 정부와 여당은 그럴수록 필시, 어쩌면 이른바 공안사건을 날조하는 것까지를 포함하여 파쇼적 억압을 더욱 강화하려 들겠지만, 이 역시 물론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갈수록 스스로 조성하는 수렁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 것이다.

선거, 투표는 그것이 아무리 부르주아적이고, 야바위판이더라도 그 역시 부르주아지 지배라는 현재의 조건에서는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피해서도 안 되는 투쟁의 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그 투쟁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동시에 최근의 소위 진보정당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거기에 함몰되어 그것이 마치 최후의ㆍ결정적인 투쟁의 장인 것처럼 호도하면서, 노동자ㆍ인민 대중을 그렇게 오도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나 그것의 야바위판적 성격을, 나아가서 부르주아적 한계를 지적ㆍ폭로해야 하고, 노동자ㆍ인민 대중의 정치의식도, 그 정치적 행동도 탈(脫)부르주아적인 그것으로 안내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선거판도 그렇게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중의 소리≫ 싸이트에 보니까, “투표가 쥐약이다!”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농담처럼 얘기하자면, 여기에서 ‘쥐’는 어떤 인물, 어떤 세력을 의미하며, ‘쥐약’은, 위장약이 위장에 좋은 약인 것처럼 쥐에게 좋은 약이 아니라, 그 ‘쥐’를 잡는 약이라는 것도 누구나가 다 잘 알 것이다. 바로 그래서 ‘쥐떼’에 반대하는 세력ㆍ사람들은 투표할 것을 권려하고, 젊은 극우 논객 변희재는 “친노어용 논객, 어용매체, 어용연예인들이 친노포털 이용하여 나치 수준으로 닥치고 투표 선동해도, 꿋꿋이 투표하지 않는 60%의 2030세대 청년들이 대한민국의 기둥”이라느니, “투표율은 후진국이 높습니다”(박수진 기자, “변희재 ‘투표않는 청년들이 대한민국 기둥’ 궤변”, www.hani.co.kr, 2012. 3. 11.) 하는 궤변을 토해냈을 터이다.

하지만, 쥐약은 쥐만 잡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것을 자칫 잘못 다루면 사람이나 기타 가축도 잡게 되는 극독물이며, 따라서 그 판매ㆍ취급에는 상당한 관리ㆍ제약이 따르고 있다. 선거ㆍ투표 역시 그것이 쥐약이라면, 바로 그러한 쥐약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