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미한 정세

무너져 내리고 있다. 기존의 지배체제가, 기존의 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무너져 내리고 있고, 국내의 반쯤은 파쇼적인 극우적 지배체제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체제 자체의 격화된 적대적ㆍ계급적 모순과 그에 따른 노동자ㆍ인민의 여러 형태의 저항과 투쟁으로, 그리고 자본과 자본 간의, 자본가 집단과 자본가 집단 간의, 지배계급 내 분파와 분파 간의, 자본가 국가와 자본가 국가 간의 갈등과 투쟁으로 체제 그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런데, 이 붕괴과정을 장악하여 그것을 목적의식적으로 주도ㆍ주관하고, 이후의 과정을 창조적으로 인도할 사상ㆍ이론적, 조직적, 정치적 능력과 역량, 권위를 가진 대안적ㆍ혁명적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에는 물론이고,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도, 그리스 등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노동자계급의 그러한 혁명적 주체가 일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 이것이 오늘날의 혼미한 정세(情勢)이다.

2.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

돌이켜 보면, 20여 년 전, 20세기 마지막 10년을 남겨두고 동유럽과 쏘련에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ㆍ붕괴되자 자본과 자본의 이데올로그들은 득의만면하여 날뛰며 외쳤다. 역사는 끝났노라고. 즉,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은 영원할 것이라고. 20세기 사회주의의 중심, 그 보루인 쏘련이 해체ㆍ붕괴된 마당에 이제 더 이상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다며, 저들 자본은, 제국주의는 거침없이 내달았다. ‘새로운 세계질서’로, 신자유주의로.

당연히 수많은 투사와 이론가ㆍ사상가들이 역사와 노동자ㆍ민중에 대한 신뢰를 잃고 좌절해 갔다. 그리고 그 중의 기회주의적이고 야심만만한 분자들, 소부르주아적 민주주의자들은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개선ㆍ개량하겠다며 출세의 길로 나섰고, 그 중의 어떤 자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파쇼의 편에 섰다.

그러나 자본의 그 난폭한 내달음은 의기양양 그것을 본격화ㆍ가속화 한 지 채 20년도 못되어, 2007년 하반기 이후의 대공황으로 그 파탄이 명백해졌고, 그 파탄의 상태가 더욱 심화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자유주의란, 그리고 미 제국주의를 일극(一極)으로 하는 이른바 ‘새로운 세계질서’와 그것을 강화하려는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 침략이나 발칸반도의 재분할, 잔존 사회주의 국가들 및 기타 반제(反帝) 국가들에 대한 제국주의적 압력과 위협의 강화 등은, 그 이데올로그들과 정책의 기획ㆍ담당자들이 그것을 의식했든 못했든, 사실은 전반적 위기의 재격화로 인한 자본의 이판사판의 몸부림이자 행패이고, 그 모순과 위기를 더욱 격화시킬 수밖에 없는 반동적 기구ㆍ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왜 아니 그러하겠는가?!

재격화된 전반적 위기의 본질은 다름 아니라 항상적ㆍ만성적 과잉생산 그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적 과잉생산!

그런데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렇게 전반적 위기가 재격화되었기 때문에 자본이 벌이는,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자본이 벌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전반적인 공격이다.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투쟁을 통해서 획득한, 노동자계급의 그러한 혁명 지향적 투쟁을 체제 내로 포섭하기 위해서 자본이 어쩔 수 없이 내줄 수밖에 없었던 제반의 노동조건과 사회보장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다. 그것은 노동자 대중을 극한의 빈곤으로 내몰아 생산과 소비 간의 모순, 자본주의적 과잉생산을 격화시키는 기구이자 과정이고, 그리하여 그들에게 투쟁을 강제하는 기구이자 과정인 것이다.

이른바 ‘새로운 세계질서’를 내세운 제국주의적 침략전쟁과 책동은 어떤가?

금 1온스=$35.-라는 가치로의 미국 ‘달러화와 금의 교환’ 보증에 기초하여 작동하던 이른바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체제’, 즉 구(舊) IMF체제가 1971년 8월에 그 수명을 다할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인 원인은 미 제국주의의 세계경영에 따른 달러 살포, 즉 미 제국주의의 세계지배를 위한 거대한 군사비=재정의 지출과 그에 따른 미국의 누적적인 국제수지 적자였다. 그런데, 이른바 ‘새로운 세계질서’를 내세운 1990년대 이후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책동은 그러한 군사비=재정 지출을 미국의 ‘동맹국가들’, 특히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 침략과 노획물 분배에 동참하는 NATO 국가들이 분담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 왔다. 이들 ‘동맹국가들’은 물론 각자의 제국주의적, 그리고 계급적 이해에 따라 그러한 침략과 책동에 적극적ㆍ능동적으로 참여해 왔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들 국가의 재정적자의 증대라는 대가를 수반하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3. 재정위기, 그리고 폰지 사기

여러 번 얘기한 것처럼, 그리고 물론 주지하는 것처럼, 전반적 위기 시대에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는 경제적 재생산과정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에 의해서만, 즉 재정투융자의 확대에 의해서만 존립할 수 있었고, 특히 주기적으로 공황이 엄습할 때마다 거액의 공황구제 자금을 쏟아부음으로써만 그것은 존립할 수 있었다. 2007년 가을에 영국의 노던록(Northern Rock) 은행에서 발생한 뱅크런(bank run; 예금인출소동)이 새로운 대공황의 발생을 고한 이후, 특히 2008년에 리만부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위기가 급격히 격화ㆍ확산된 이후 수천억ㆍ수조 달러, 수천억ㆍ수조 유로라는, 말 그대로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퍼부음으로써만 자본주의적 생산체제가 연명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사실상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바로 그 거대한 공황구제 때문에, 당장 IMF 등의 국제기구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사실상 자본주의 선진국가들 모두가 재정위기를 겪고 있거나 그에 임박해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를 떠받쳐온 핵심적인 기구가 기능불능 상태에 빠져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사실상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바이다.

그런데 부르주아 국가의 이 재정위기라는 사태는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과연 가까운 시일 내에 수속(收束)될 전망은 있는 것인가?

모두(冒頭)에서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할 수 있었던 주요 근거이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게는, 즉 가까운 시일 내에 수속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더욱 확산ㆍ악화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견해만이 아니다. 부르주아적 관찰자들의 대체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예컨대, 독일의 시사주간지 ≪쉬피겔(Der Spiegel)≫ 신년호(1/2012)의 “부채의 덫에 걸린 국가재정”이라는 기사¹⁾는 현재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들(Industrienationen)’에서 전개되고 있는 부채문제를 아래와 같이 단도직입적으로 ‘폰지 사기(Ponzi scheme, Ponzi-Spiel)’, 즉 뒷돈을 빌려 먼저 번 부채의 원금과 고율의 이자를 갚는 방식의 사기, 그리하여 갈수록 그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다단계 사기인 ‘피라밋 사기(pyramid scheme)’에 비유하고 있다. 아니, “오늘날의 세계는 폰지 사기세상이나 마찬가지다(Die Welt von heute gleicht einem Ponzi-Planeten)”²⁾며, 사실은 폰지 사기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적(私的)인 폰지 사기와 국가 부채 간의 “차이는, [사적인 폰지 사기가 불법임에 비해서] 국가 부채의 경우 완전히 합법적이라는 점[뿐]이다”³⁾라고 쓰고 있다.

문제의 기사를 찾아 읽어볼지도 모를 독자들을 위하여 참고로 말하자면, 국가 부채가 그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원인의 ‘분석’에 들어가면 이 기사는, “이른바 5현인(五賢人[=독일경제전문가위원회])의 가장 젊은 위원”까지 동원하며, 그 주요 원인을 ‘과대한’ 공무원 연금이나 의료보험, “선심사업 정치(Pork barrel politics)”⁴⁾ 등등과 같은 이른바 “정책 실패(Politisches Versagen)”⁵⁾에서 찾고 있다. 같은 기사 속에서 자신이 제시하고 있는 통계적 사실, 즉 2007년 하반기에 대공황이 발생한 이후 그 부채가 특히 가파르게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정면으로 모순되는 헛소리, 극히 천박하고 백치적인 부르주아지의 판에 박힌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바로 그 부르주아적 백치증 때문에 과잉생산 공황으로서의 공황의 원인과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예컨대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부채”는 “좋은 부채” 따위의 헛소리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기사는 1990년대 이후, 특히 2007년 이후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국가부채가 가파르게 증대하는 모습을 막대 그래프를 통해서 아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는데,⁶⁾ 그것을 표로 정리하면 이렇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국가부채 및 국내총생산 (단위: 10억 달러, %)

다만, 위 표는 그래프상에 절대액과 1991년도와의 차이가 수치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연도별 자세한 증감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2000년 이후의 변화를 그래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대략적일 수밖에 없지만, 설명하자면 이렇다.

국내총생산은, 1991년도의 그것에 비해서 2000년도에는 +14%였고, 2002년까지 대략 답보하다가 2005년도에는 +40%만큼 급격히 증대하고, 2008년도에는 +60%만큼 매년 대략 같은 비율로 완만하게 증대한다. 그랬다가 2009년도에는 1991년도 대비 대략 +50% 정도까지 상당히 급격히 감소하고, 이후 2010년도에는 +54%, 2011년도에는 +65%로 증대한다. 그에 비해서, 국가부채는, 1991년도에 비해서 2000년도에는 +37%였고, 역시 2002년도까지는 대략 답보하다가 이후 급격히 증대하여 2005년도에는 +81%가 된다. 그런데 2005년도에서 2007년도까지는 (국내총생산이 같은 기간에 대략 같은 비율로 증대했음에 비해서) 대략 답보하고, 2007년 이후 2011년도까지 전혀 답보하거나 감소하지 않은 채 일직선으로 급격히 증대한다. 즉, 2007년 하반기에 대공황이 발발한 이후 급격히 증대일로에 있고, 그리하여 2011년 한 해에만도 그 부채는 급격히 증대하여, 2011년 초에 45조7270억 달러, 1991년도 대비 +183%였던 것이 “2011년 말에는 약 55조 달러[1991년도 대비 +240%]까지 치솟은 것으로 보인다.”⁷⁾

국가부채의 이러한 급격한 증대는 “겉보기에는 견실한 독일에도 역시 해당”되는데, 그러나 국가의 이러한 지출초과는 당연히 “장기간 아무 일 없이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고, 언젠가는 “끝을 보게 된다.”⁸⁾ 그리고,

눈덩이들은 일단 구르기 시작하면 갈수록 커진다. 그리고 그것들은, 최악의 경우에는, 모든 것들을 휩쓸어가 버리는 눈사태로 끝난다.⁹⁾

 결국, 이미 거대해질 대로 거대해졌고, 더욱더 급격히 거대해지고 있는 이 눈덩이들, 즉 부르주아 국가들의 국가부채를, 그것들이 “모든 것들을 휩쓸어가 버리는 눈사태로 끝나기” 전에 멈추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 부르주아 국가는, 인민에 대한 공격 외에는, 사실상 아무런 유효한 수단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껏 추진하는 것이, 그리고 더욱 옥죄겠다고 하는 것이 긴축, 즉 재정지출의 삭감인데, 그 내용이란 퇴직연금이나 실업수당 같은 각종 사회보장의 파괴ㆍ삭감, 공무원을 포함한 공공부문 노동자수의 감축, 임금삭감 등등, 악명 높은 통화주의적 신자유주의, 즉 노동자ㆍ인민에 대한 공격의 강화뿐이다. 군비의 확충ㆍ강화도, 파산하는 독점자본을 위한 공황구제도, 그리고 눈덩이처럼 증대하고 있는 국채의 원리금 상환, 즉 바로 그 폰지 사기도 부르주아 국가로서는 결코 긴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들은 결국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재정위기에 대한 대책이랍시고 노동자ㆍ인민 대중에 대한 공격, 즉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유럽 각국에서 노동자ㆍ인민이 ‘긴축정책’에 반대하여 투쟁에 나서고 있고, 선진 자본주의 각국의 노동자ㆍ인민이 “(월가를) 점령하라”며 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대립과 투쟁이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 세계경제의 정세이다. 최근 언론에 아마겟돈(Armageddon, 최후의 대결전)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렇게 결정적 파국을 향해 내닫고 있는 정세 때문일 것이다.

4. 제국주의의 침략과 전쟁 가능성

   ― 그리고, ‘반핵’과 ‘인권ㆍ민주주의’ 운동의 아리가타(有り方)

지금 대공황의 위기에 처해 있는 자본주의 선진국들은, 남부 유럽 국가들뿐만이 아니라, 사실은 모두가 다 심각한 재정위기의 상태에 이미 처해 있거나 그러한 상태에 임박해 있다. 그리고 이른바 ‘새로운 세계질서’를 향한 제국주의적 침략과 책동은, 현재 갈수록 거대해지고 있는 공황구제와 더불어, 바로 그 재정위기를 창출하고 격화시켜온 주요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 제국주의 ‘동맹국가들’은 그들이 제국주의로, 즉 자본주의 국가로 남아 있는 한, 물론 그러한 출혈적 침략전쟁을 결코 멈출 수 없다. 피억압 민족과 국가의 반(反)제국주의 전선 일반을 분쇄해나가야 할 뿐 아니라,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최근의 리비아 침략전쟁에서 보듯이 현대 산업의 핵심적 에너지원(源)인 석유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관련 지역과 국가의 반제(反帝) 권력과 세력을, 경쟁적인 제국주의 동맹관계 속에서, 즉 노획물의 분배에서 제외되지 않기 위한 동맹관계 속에서, 계속 압살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과 긴장 조성을 통해서 군수독점자본의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제국주의가 제국주의로서 존명할 수 있는 조건의 하나이자 그 국가의 주요 책무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실상 모든 제국주의 국가 내부에 노동자 국제주의에 투철한 혁명적 노동자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조건 속에서는, 전쟁과 국제적 긴장 조성이야말로 노동자ㆍ인민 대중을 계급투쟁 대신에 부르주아 국가주의로, 부르주아 애국주의로 동원ㆍ조직하는 최선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재정적자ㆍ재정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도 저들 제국주의자들은 세계 도처에서 그 적자ㆍ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여러 형태의 전쟁을 도발하거나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이라크나 리비아에서 보듯이 ‘핵 억지력’을 갖지 못한 반제 국가와 지역들은 지금도 저들에 의해서 철저히 파괴ㆍ유린되고 있는 중이며, 이제 시리아와 이란이 새로운 목표로 되면서 중동에는 또 한번 전쟁의 위기가 긴박하게 조성되고 있다. 주지하는 것처럼, 시리아의 경우, 리비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내부의 친제국주의 세력들을 고무ㆍ동원하여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파렴치한 미명 하에 침략의 구실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란의 경우, 이란의 ‘핵 개발’을 이유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를 조장하고 있는데, 만일 이란이 ‘핵 억지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판명된다면, 보다 정확히는 만일 이란이 ‘핵 억지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고 제국주의 국가들이 확신하기에 이른다면, 바로 이라크의 경우에 그랬던 것처럼, 저들은 분명 이란 침략을 감행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인류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류가 “핵무기 없는 세상에 살아야 한다”는 ‘비핵’ 혹은 ‘반핵’의 원칙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그러한 ‘비핵’ 혹은 ‘반핵’의 원칙이라는 미명 하에 현실적으로는 이른바 ‘핵 보유국’의 핵무기 독점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실제적으로 지지하면서 반제(反帝) 핵 억지력에 대해서만 소동을 떠는 비뚤어진 ‘반핵운동’, 핵무기의 독점과 그 위협을 통한 제국주의의 항구적 지배를 실질적으로 지지하는 그러한 제국주의 앞잡이적 ‘반핵운동’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반핵운동은, 제국주의의 핵 위협에 대항하고자 하는 반제 국가들의 ‘핵 개발’을 반대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우선 이른바 ‘핵 보유국들’, 특히 제국주의 열강과 그 중동의 보루 이스라엘이 그 보유 핵무기를 전면 폐기하도록 촉구ㆍ압박하는 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우리는 제국주의가 예컨대 이라크를, 그리고 리비아를 침략할 때, 국제적으로도 국내에서도 ‘좌파’ 혹은 ‘좌익’, ‘민주화 옹호’를 자처하는 일부 인사와 단체들이 제국주의 선전기구에 의한 후세인(정권) 악마화나 가다피(정권) 악마화에 ‘놀아나’ “독재”, “인권”, “민주화” 운운하는 어릿광대춤을 추는 것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러한 어릿광대춤은, 그것이 아무리 ‘선의’에 의한 것일지라도, 객관적ㆍ현실적으로는 저들 제국주의의 침략을 지지ㆍ은폐하는 것에 불과하다.

저들 제국주의는 인권이나 민주주의 따위에는 어떤 관심도 없다. 저들은 결코 20세기의 악명 높은 독재자ㆍ학살자들을, 예컨대, 장개석이나 이승만, 막사이사이, 수하르토, 피노체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마르코스 등등을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압박한 적이 없다. 제국주의자들 자신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압살자일 뿐 아니라, 저들 독재자ㆍ학살자들의 후원자였고, 조종자였다. 저들 제국주의자들은 심지어 이딸리아의 무쏠리니 정권이나 독일의 히틀러 정권조차, 그들이 자신들에 대항하여 제국주의 전쟁을 벌이고 나서기 전까지는, 지지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도 “평화”ㆍ“인권”ㆍ“인도주의”ㆍ“민주주의” 등등 온갖 화려한 미명과 구실을 내건 저들 제국주의의 침략전쟁과 긴장조성을 강력히 반대해야 하고, 그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민족자결을 지지해야 하고, 그것을 옹호하여 싸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국주의적 조건 속에서의 인권운동, 민주주의 운동이기도 하다.

5. 격동할 수밖에 없는 2012년의 국내정세

한편, 총선과 대선이라는 양대 선거를 치르게 되는 2012년 한국의 정세야말로 아마겟돈일 수밖에 없는 그것이다.

대공황과 한나라당ㆍ이명박 정권의 비정(秕政)이 겹치면서 지난 4년 동안 노동자ㆍ인민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졌기 때문이고, 이에 따라 빈부의 양극화와 계급대립이, 특히 노동자ㆍ인민에 대한 자본과 국가, 극우세력의 공세ㆍ공격이 더욱 격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 주요 인사들이, 그리고 그들의 주구노릇을 해온 권력기관들이 파렴치하게 저질러온 일련의 불법과 부정부패가 폭로되면서, 한편에서는 한나라당ㆍ이명박 정권이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그 자체로서 붕괴ㆍ해체돼가는 형국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에는 노동자ㆍ인민 대중이 그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전망하는 대로라면, ‘결전’은 양대 선거를 중심으로, 그 양대 선거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통합당 같이 직접적으로 정권을 다투는 부르주아 정당들은 물론 ‘진보정당들’까지 공식적인 정치조직들은 모두 다 그렇게 전망하고 있고, 또 실제로 그러한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또 대중의 정치적 열정과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기를 갈망하는 민주통합당이나 ‘진보정당들’도 그 열정과 에너지가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만 분출되기를 바라고 있고, 그리하여 그러한 방식과 한계 내에 그것을 가두고 제한하려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정세가 반드시 저들이 예상하는 대로, 저들이 바라는 대로만 전개될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형태든 노동자ㆍ인민 대중의 정치적 열정과 에너지가 활발히 분출되는 시기는 동시에 그들의 생존권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히 터져 나오는 시기일 것이기 때문에 그렇고, 지금까지는 은폐되어 왔으나 앞으로 어떤 예기치 않은 계기에 폭로돼 나올지 모를 저들 지배계급, 지배집단의 어떤 악정이나 범죄가, 혹은 분출돼 나오는 노동자ㆍ인민 대중의 정치적 투쟁, 생존권 투쟁을 억압하고 왜곡하려는 저들 지배집단과 국가의 무리수가 어떻게 노동자ㆍ인민 대중의 대대적이고 가히 폭발적인 투쟁을 촉발하고 강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예기치 않게 폭발한 대대적인 대중투쟁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공황이 지속ㆍ심화 중에 있는 현재의 세계적인 경제정세나 그 동안 한나라당ㆍ이명박 정권이 강화해온 반(反)노동자ㆍ인민적 정책들과 그들이 알게 모르게 저질러온 각종의 범죄들, 그리고 그에 대한 노동자ㆍ인민 대중의 부글거리는 분노를 고려하면, 가까운 장래에 그러한 투쟁이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력히 분출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6. 노동자계급 운동의 현실과 과제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이렇게 격동하는, 그리고 더욱 격동할 수밖에 없는 정세의 주요한 구성요소이고 추동요소이다. 아니, 노동자계급 운동은, 정세의 단지 주요한 구성요소, 주요한 추동요소일 뿐 아니라, 그것이 혁명적으로 정세를 주도할 때에만 그 정세가 끝없는 혼란에 빠지거나 반동적으로 귀결되지 않고 창조적으로 전진하는 역사ㆍ결정적 요소이다.

그런데 노동자계급 운동 그것이 정세를 혁명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과학적 이론과 실천으로 무장된 전위들로 구성된 정치조직을 가졌을 때뿐이고, 그 정치조직이 헌신적ㆍ목적의식적 활동과 투쟁을 통해서 전국적으로 대중적 지지와 권위를 확보했을 때뿐이다. 이러한 역량과 권위를 확보한 전위적 정치조직,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정당이 존재하지 못할 때, 격동하는 정세, 폭발적 대중투쟁은,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여러 차례 경험한 것처럼, 결국, 다시 반동적으로 귀결되거나, 기껏해야 자유주의적 (소)부르주아지 정치세력이 그 정치적 성과를 가로채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바로 그 때문에, 과학적 이론으로 무장된 혁명적 전위조직이 존재하지 못할 때 노동자계급 운동의 최대의, 최우선적 전략적 과제는 바로 그러한 정치조직을 획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의 투쟁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획득하지 못했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주체적ㆍ객관적 원인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최대의 객관적 원인은 물론 국가보안법이고, 국가와 독점자본의 파쇼적 억압과 매수ㆍ회유이다. 그리고 쏘련과 동유럽에서의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ㆍ붕괴에 따른 이데올로기의 일반적인 반동화, 좌절, 혼란도 주요하게 작용해 왔다.

그러나 이 소위 ‘객관적인 원인들’은 우리가 혁명적인 노동자 정치조직을 획득하지 못한 원인들이 결코 아니다. 그것들은 단지 노동자계급 운동이 자신의 혁명적 정치조직을 획득해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정치조직의 지도와 주도 하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객관적 조건들에 불과하다.

결국 문제와 원인은 노동자계급 운동의 내부에, 특히 선진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전위를 형성해야 할 선진 노동자들 사이에 만연한 정치적ㆍ이론적 혼란, 난맥상이야말로 노동자계급 운동이 정체하고, 후퇴하고 있는 원인인 것이다.

‘진보정치’란 이름으로 이미 소부르주아화한, 이미 혁명적 사회주의를 포기한 ‘정치세력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가장 전투적이고자 하고, 가장 혁명적이고자 하는 선진 노동자들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가장 전투적이고자 하고, 가장 혁명적이고자 하는 선진 노동자들 사이에, 그러한 투사들 사이에 만연한 사상적 혼란, 특히 협소한 노동자주의야말로 무엇보다도 문제인 것이다. 가장 급진적이고 가장 원칙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리고 그렇게 주장하는 이 협소한 노동자주의, 그것은 사실은 노동자계급의 사상과 정치가 아니라 소부르주아 급진주의자들, 소부르주아 망동주의자들의 사상과 정치이고, 기껏해야 쌩디칼리즘, 즉 아나키즘에 오염된 급진적ㆍ전투적 노동조합주의일 뿐이다.

‘좌파’를 자임하는 이들 협소한 노동자주의자들, 소부르주아 급진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시대의 계급적 억압과 대립의 주요한 현상형태의 하나인 피억압 민족문제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넘어, 이 문제와 대결하는 노동자계급 운동 내의 거대한 조류, 거대할 수밖에 없는 조류를 가리켜 ‘우파’로,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민족주의자들’로 매도하면서 노동자계급 운동을 분열ㆍ타락시키고 있다. 저 화려한 혁명적 상투어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그러한 협소한 노동자주의가 객관적으로 봉사하는 바는 제국주의의 이익이고, 선진 노동자들의 노동자 대중으로부터의 고립이다.

저들의 협소한 노동자주의가 제국주의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고 하는 데에 대하여 많은 반론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선 저들이, 혹은 백보 양보하여 저들의 일부가, 예컨대, 이라크나 리비아 등을 제국주의가 침략할 때에 취한 행동을 상기해보라. 엄연한 제국주의적 현실 하에서 그들은 그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앙상한 ‘계급’과 ‘민주주의’라는 추상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후세인 정권이나 가다피 정권을 타도되어 마땅한 ‘독재정권’으로 규탄하고 선전했다. 그렇게 악마화했다. 그들의 심판대로 후세인 정권과 가다피 정권은 타도되었지만, 지금 이라크와 리비아의 노동자ㆍ인민이 처한 현실은 가히 지옥 그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상황에 비하면, 이 지옥 같은 현실도 필시 최악은 아닐 것이다!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저들의 태도는 어떤가? 저들 사이에는 그 국가들은 “사회주의가 아니었다”는 주장, 혹은 “타락한 노동자 국가에 불과했다”는 주장, 그리하여 “타도되어 마땅했다”는, 그리고 “마땅하다”는 주장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저들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를 자처하면서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하여 그렇게 적대하고 있고, 그러한 적대를 대중 속에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어떤 제국주의 선전기구들보다도 더욱 효과적으로, 더욱 악질적으로 제국주의의 반공정책에 봉사하고 있다. 사실 저들은 독점자본의 막강하기 그지없는 교육과 선전이 낳은,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는 (과거의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이 낳은 교활하고 끔찍한 괴물이다!

지금 노동자계급 운동에게 부여되어 있는 최대의, 최우선적인 전략적 과제는 과학적 이론과 실천으로 무장된 전위적 정치조직을 획득하는 것이다.

선진 노동자들이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좌파’를 자임하는 소부르주아적 망동주의자들의 화려하지만 협소한 노동자주의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가 처한 역사적ㆍ현실적 조건을, 있는 그대로의 조건을 과학적으로 파악하고 그들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협소한 노동자주의를 벗어나 직접적인 노동과 자본 간의 억압과 대립뿐 아니라 그것의 제국주의적 표현으로서의 피억압 민족문제, 제국주의 및 그와 동맹하고 있는 독점자본과 피억압 인민 간의 모순을 종합적ㆍ전체적으로, 즉 과학적으로 파악하고, 그와 대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계급 운동 내부의 소위 ‘좌ㆍ우’의 대립, 소위 ‘NL과 PD’의 뿌리 깊은 대립을, 한국 사회,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처한 역사적ㆍ현실적 조건에 기초하여 과학적으로 지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협소한 노동자주의를 극복하는 것, 그리고 그 반대 편향으로서의 (소)부르주아적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것, 이것이 한국의 선진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현시기의 전략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나아가야 할 출발점이다.

그리고 수공업적, 협소한 써클주의적 공작과 선전을 극복하고 전국적이고 대중적인 선전 수단과 방법을,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강구ㆍ획득하는 것도 선진 노동자들에게 닥쳐 있는 주요한 과제이다.

노동자계급이 그 혁명적인 정치적 참모부를 가지고 있지 못한 현재의 정치적ㆍ사회적 조건 속에서 격동하는 정세, 그 투쟁의 성과가 당장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것으로 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그리고 노동자계급 운동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다는 식으로 행동해서는 당연히 절대로 안 되는 것이지만, 정세에 대한 그 모든 대응과정, 투쟁과정 속에서 선진 노동자들이 목적의식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혁명적ㆍ전위적 정치조직의 획득이라는 그 당장의 전략적 과제의 수행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전략과 과제의 수행은 선진 노동자들의 헌신적이고 목적의식적인 활동과 투쟁이, 주관적인 소망이나 앙상한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가장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정세 분석에 기초했을 때에만, 그리고 당연히 가장 과학적이고 구체적이며 대중적인 전술에 입각했을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노사과연>

1) Alexander Jung, “Staatsfinanzen: In der Schuldenfalle”, Der Spiegel, 1/2012, SS. 62-68.; “http://wissen.spiegel.de/wissen/image/show.html?did=83422513&aref=image051/2011/12/30/CO-SP-2012-001-0062-0068.PDF&thumb=false”에서 이 기사의 PDF판을 내려 받을 수 있고, “http://www.spiegel.de/spiegel/print/d-83422513.html”에서 그 영어 번역판을 내려 받을 수 있는데, 이 영어 번역판의 기사 제목은 아예 “폰지 사기세상: 부채가 서방 세계에 야기하고 있는 위험(Ponzi Planet: The Danger Debt Poses to the Western World)”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