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난히 자주 거듭되고 있는 유럽연합 정상회담과 그 ‘합의들’ 만큼 “소문난 잔치에 먹잘 것 없다”는 말이 어울리는 경우도 드물 성 싶다. 요란하게 포장되었던 지난 8-9일의 ‘브루쎌(Brussel)’ 정상회담과 거기에서의 ‘합의’도 그렇다. 오죽하면, 유서 깊은 부르주아 언론인 영국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2011. 12. 10.)조차 “규칙을 크게 개선하여 단일통화를 구하겠다고 거듭 약속하는, 일련의 요란한 야바위 정상회담들(a string of much-ballyhooed summits)”이라고 꼬집을까?

유럽연합의 여러 정상들이나 기타 정책 담당자들이 그렇게 자주 먹잘 것 없는 잔치를 벌이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지만, 유럽에 닥친 대공황, 특히 그 심각한 재정위기 때문이고, 바로 그 공황과 재정위기 때문에 지역 단일통화 유로(Euro)는 물론, 나아가서는 유럽연합 자체의 존속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그 자체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맞대고, 온갖 지혜를 다 짜내서 파멸을 막고 싶어서인데, 그러한 노력들이 먹잘 것 없는 잔치, “일련의 요란한 야바위 정상회담들”로 끝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다, 그렇게 끝나는 것은, 혹은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은.

왜냐? 

저들의 언동을 보면, 저들은 위기의 원인조차 실제로 전혀 모르고 있거나, 설령 그것을 미필적으로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 계급적 속성과 이해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고 인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경제과학의 대석학들이 대학에, 각국의 정부기관에, 국제기구에 기라성처럼 포진하고 있는데, 저들이 위기의 원인조차 모르고 있거나 기껏해야 그것을 미필적으로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을 뿐이라고? 게다가, 그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고, 인정할 수도 없다고?

과도한 농담(?) 아니냐고?

내 말이 그렇게 들린다면, 맑스에게 들어보자.

경제학이 부르주아적인 한, 즉 자본주의적 질서를 사회적 생산의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단계로서 파악하지 않고, 반대로 사회적 생산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모습으로 파악하는 한, 경제학이 과학일 수 있는 것은 단지 계급투쟁이 아직 잠재적이든가, 단지 개별적 현상으로서 나타나고 있음에 불과한 동안 뿐이다. ...

[1830년대가 되면] 부르주아지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이미 정권을 탈취한 상태였다. 그때부터 계급투쟁은 실천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더욱더 공공연하고 위협적인 형태를 띠어 왔다. 그것은 과학적인 부르주아 경제학의 조종(弔鐘)을 울렸다. 바야흐로 문제는 이미, 이 정리(定理)가 올바른가, 저 정리가 올바른가가 아니라, 그것이 자본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편리한가, 불편한가, 반(反)경찰적인가, 아닌가[즉, 실정법에 위반되는가,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사리(私利)를 떠난 연구를 대신하여 돈으로 고용된 논란 공격이 등장하고, 구애받지 않은 과학적 탐구를 대신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한] 변호론이라는 비양심과 악의가 등장했다. (이상, ≪자본론≫ 제1권 제2판 후기(1873).)

부르주아 경제학이란 것이 이미 19세기 중엽부터 그런 상태였으니. 그리고 그러한 비과학성과 변호론적 비양심과 악의를 더욱 심화시켜 왔으니, 오늘날 ‘경제학의 대석학들’이 아무리 기라성 같은들 무엇 하겠는가?

설마? 그렇다면, 실례를, 그것도 짐짓 ‘비판적인 자세’로 발언하고 있는 실례를 보자. 그 압도적 영향력으로 사실상 그 내용을 미리(2011. 12. 5.) 결정했던 독일 총리(Angela Merkel)와 프랑스 대통령(Nicolas Sarkozy)의 이름을 합성하여 저들 부르주아 언론이 “메르코지 처방(Merkozy recipe)”이라고 부르는 문제의 합의 내용에 대한, 다름 아니라, 앞서 언급했던 저 권위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논평도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그러한 개혁들은,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정치적 소란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엔 불충분할 것이다. [재정 규칙을 어긴 나라들에 대하여 벌금이] 아무리 반(半)자동적으로 부과된다고 하더라도, 벌금으로 규칙위반 국가를 방지할 공산은 적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정 규칙의 경시(輕視)가 문제의 유일한, 혹은 심지어 주요한, 원인이 아니었다. 오늘날 위기는 재정 방탕과 관련한 것이기보다는 유로화가 지속될 수 있는가에 대한 투자자들의 공포와 관련된 것이고, 파생자산으로부터의 그들의 도피와 관련된 문제이다. 단기적으로는 긴축에 대한 강박관념이 경기후퇴를 더욱 심화시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동의 자금조달을 위한 틀이 없이는 투자자들의 신뢰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The EU summit: Beware the Merkozy recipe ― The euro crisis cannot be solved by yet another one-sided solution”, The Economist, Dec 10th 2011. 강조는 인용자)

오늘날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유로화의 지속 가능성 여부에 대한 투자자들의 공포이고 파생상품으로부터의 그들 투자자의 도피다! ―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적 지혜, 그 ‘비판적’ 지혜이다! 그러니, ‘경제학의 대석학들’이 아무리 기라성처럼 반짝반짝 빛난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조선일보≫가 박정희 딸 박근혜를 찬양하듯,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로 빛난다 한들 도대체 어느 짝에 쓰겠는가?

그런데 사실은, 앞에서 내가 했던 발언의 주요한 부분을 여기에서 뒤집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저들의 소동이 먹잘 것 없는 잔치로 끝나는 것,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위기의 원인조차 모르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얘기했던 것 말이다.

왜냐? 실제로는 저들이 그 원인을 알았다고 한들, 저들이 성과 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동안 익어오고 증폭되어 온 거대한 자본주의적 과잉생산 공황 앞에서 부르주아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구제금융으로 응급지혈을 하고, 긴축으로 노동자계급과 인민 대중 일반을 상대로 대대적인 계급투쟁,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을 벌이는 것 말고 말이다.

‘브루쎌 합의’의 자세한 내용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혹은 각국 상호 간의 복잡한 이해의 대립으로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그 핵심 내용은 2012년 즉 내년 3월 말까지 유럽연합의 관련 조약을 개정하여 재정에 관한 규율과 제재를 강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최강대국인 독일조차 과거의 재정 안정 기준, 즉 연간 재정적자 GDP의 3% 이내, 누적 부채 GDP의 60% 이내라는 기준을 훨씬 넘기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상당 정도 그 기준의 조정은 불가피하겠지만, 아무튼 일정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위반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반자동적으로 제재를 가함으로써, 즉 대표적으로 벌금을 부과함으로써 재정위기를 수습해가고, 방지하겠다는 것이 저들이 표방하는 의도와 목표일 터이다.

아무튼 이러한 내용에, 영국을 제외하고는, 유로존 17개국과 기타 유럽연합 9개국이, 따라서 유럽연합 27개국 중 26개국이 합의하였다. 그리고 영국 정부가 이에 동의하지 않은 것을 두고, 유럽연합 차원에서뿐 아니라, 영국 내에서도 그 득실을 둘러싸고 논란과 갈등이 일고 있지만, 우리로서야 구경거리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저들이 때로는 ‘재정연합(fiscal union)’ 운운하고 과장하면서까지 강조하고 있는 소위 재정규율(fiscal discipline)의 강화인데, 이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부르주아지 자신들에 의한 냉소적 반응이다. 그 합의가 무언가 유효한 작용을 할 것이라고는 부르주아지들 스스로 기대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정상회담은 예산 문제에서의 주권[의 절대성: 인용자]을 제거하는 데에는 진전이 있지만, 부채위기의 해결책을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 지금 여기에서의 문제는 예산이 문제인 것이 아니고, 거시경제적 불균형이 엄청 크다는 것이며, 긴축 정책은, 유럽의 여타 지역으로부터 그 역효과를 보완함이 없이, 많은 나라의 성장을 불구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Royal bank of Scotland의 Harvinder Sian) (“The euro zone crisis: No rave reviews”, The Economist, Dec 9th 2011.)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예산 문제에서의 주권[의 절대성: 인용자]을 제거하는 데에는 진전이 있지만(even if there is progress to remove sovereignty in budget matters)” 운운하는 대목이다. 이제는 주지하는 바이지만, 애초 1999년에 지역 단일통화 유로를 출범시킬 때부터 유로존 내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재정 주권과 유럽중앙은행(ECB)이 갖는 통화 주권 사이의 모순이 지적되어 온 바이기 때문이다.

즉,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 생산체제는 항상적으로 전면적 위기의 상태에 처해 있고, 그 체제는 경제적 재생산과정에 대한 국가의 대대적인 개입과 공황구제에 의해서만이 한시적이나마 존립해올 수 있었다. 그리고 국가의 이 경제적 개입과 공황구제에서 주요한 수단은 당연히 재정 지출, 적자 재정이었고, 이를 장기간 가능하게 한 것이 소위 관리통화제도, 즉 국가의 통화 주권이었다. 그런데, 유로 체제는 적자 재정을 통한 개입과 공황구제는 개별 국가의 재정에 맡겨진 채 통화 주권은 ECB에 위임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었다. 그리고 재정위기가 유로존 국가들‘에서부터’ 터져 나온 것도 바로 그러한 모순의 폭발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브루쎌 합의’와 관련하여 우리는 우선 두 가지를 얘기할 수 있다.

하나는, 이번의 ‘합의’는 그것이 아무리 적극적인 방향으로 구체화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이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로존 국가 간의, 말 그대로의 ‘재정통합’ 혹은 하다못해 ‘재정연합’이 이루어져야만 이 모순은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재정통합이나 재정연합은 현재의 유럽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방금 말한 것처럼, 이번 합의의 효과도, 그것이 아무리 적극적으로 구체화된다 하더라도, 바로 그러한 한계 속에 갇혀 있다. 앞에서 문제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그 발언 그 자체는 “예산 문제에서의 주권을 제거하는 데에는 진전이 있지만(even if there is progress to remove sovereignty in budget matters)”이었지만, 그것을 “예산 문제에서의 주권[의 절대성: 인용자]을 제거하는 데에는 진전이 있지만”으로 번역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다른 하나는, 보다 근본적, 보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설령 재정통합이 이루어지고, 그리하여 재정 주권과 통화 주권 간의 모순이 해소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유로존을, 유럽을, 나아가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그것을 구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한 주권의 모순은 어디까지나 유로존의 모순, 단일통화 유로의 모순일 뿐, 그리하여 현 재정위기를 ‘촉발(促發)’한 모순일 뿐, 대공황의 원인이 아님은 물론 ‘재정위기’ 그 자체의 원인조차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재정위기에 처한 것은 남부유럽의 국가들만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실상 거의 모든 국가에서 그 폭발은 이미 초읽기에 들어가 있다.

꽤나 호들갑을 떤 그것이었지만, ‘브루쎌 합의’는 이렇게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를 위기로부터 구하는 데에도, 심지어 지역 단일통화 유로를 구하는 데에서도 별반 효능이 있을 수 없다. 바로 그 때문에 부르주아지들의 반응조차 그토록 냉소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앞에서 인용했던 ≪이코노미스트≫ 12월 10일자 논설은 이렇게 냉소적인 질문으로 시작된다.

역사책들이 씌어질 때, 12월 8-9일은 유로 위기에서 전환점으로 간주될까?

스스로 설정한 이 질문에 그 논설이 그 전체 내용으로 주는 대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왜냐?

그 ‘합의’ 그것은 문제를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내에서 해결하는 데에는 극히 무력하지만, 문제 그 자체의 진정한 해결에는, 즉 문제 자체를 진정으로 해소하는 데에는 모종의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모종의 영향?

그렇다. 그 합의는 다름 아니라 노동자계급을 위시한 인민대중 일반에 대한 유럽연합 각국의 집단 선전포고이고, 그러한 한에서 계급투쟁을 격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정규율을 강화하고, 반자동적인 제재, 벌금으로 그 규율의 이행을 강요하겠다는 저들의 의지는 바로 ‘재정긴축’을 강화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런데 저들은 직접적ㆍ간접적 공황구제를 위한 지출을 ‘긴축’할 의사가 없을 뿐 아니라, 관(棺)을 볼 때까지 그것을 ‘긴축’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재정긴축’을 강화하겠다는 다짐, 그것은 바로 그나마의 사회보장을 더욱 축소ㆍ파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공무원을 포함한 공공부문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즉 대대적인 해고를 단행하겠다는 집단적인 의지의 표명이다. 바로 이미 터져 나오고 있는 계급투쟁에 기름을 퍼붓겠다는 다짐이다.

상황은 이래저래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