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투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크레인 고공농성과 희망버스, 투쟁주체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 투쟁위원회(정투위)¹⁾를 중심으로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며, 혹여나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모든 책임은 나 개인에게 있음을 밝힌다.

8월 18일 국회 청문회가 열렸다. 자본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조남호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나?” 라는 질문에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에 영도조선소의 작은 규모로 많은 타격을 받았다. 전 세계적인 조선시황을 감안해서 최후의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진행된 일이다.”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2009년 3월부터 지금까지 주주에게는 440억 현금배당을, 직원들에게는 30% 임금삭감을 했다. 2009년 2,900명이던 직원들이 하청까지 포함하면 4,500명이 공장을 떠나야했다. 정리해고 170명 발표 다음날 174억의 주식배당, 52억의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조남호는 대답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이재용 사장은 회계전문가이니 답변을 대신하게 해달라며 대부분 이재용 사장에게 답변을 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재용은 “정상적인 주주의 경우 현금배당을 선호하며 64%가 외국인 투자자를 포함해서 소액주주라는 점에서 주주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을 한 것, 임금은 인상시킨 것이 아니라, 증액 집행되었다. 평균으로 나눈다면 그것도 아니다”라며, 수빅과 영도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필리핀 수빅에 조선소를 건설하지 않았다면 영도조선소는 철공소에 불과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Ⅰ

한진중공업과 노동조합(지회)의 약사(略史)

1. 한진중공업 약사(略史)

한진중공업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7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7년 7월 10일 기존의 ‘서조조선철공소’를 기반으로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 (주)조선중공업이 설립되었다. 1938년 11월 국내 최초로 390톤급 철강선을 제작했다. 1945년 8월에는 (주)대한조선공사로 변경되었다. 1969년에는 국내 최초로 수출선을 건조했으며, 1972년 국내 최초로 경비정(학생호)을 건조했다. 1977년 국내 최초로 석유시추선을 건조했으며, 1984년 국내 최초로 냉동선을 건조했다.

(주)대한조선공사는 1989년 5월 한진그룹에 인수되어 (주)한진중공업으로 상호가 변경되었다. 1995년 국내 최초로 LNG 멤브레인형을 건조했다. 1999년 한진건설과 한진종합건설을 합병한다. 2002년 해군대형수송함(LPX) 독도함을 수주하여, 2005년 7월 건조했다. 2004년에는 최초 수중용접 DAM 공법을 개발했고, 2005년 10월 한진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하여 한진중공업그룹으로 공식 출범하게 된다.

2006년 국내 최초의 쇄빙선을 수주했고, 필리핀에는 수빅조선소 건설을 추진한다. 2007년 3월 14일 국내수주량 3년 치 연속확보, 인위적 구조조정 금지 노사 특별교섭 합의를 한다. 2007년 8월 한진중공업 홀딩스와 한진중공업으로 인적 분할된다. 2007년 12월 수빅조선소 제5도크가 2009년 4월에는 제6도크가 완공된다.

2. 한진중공업노동조합(한진중공업지회) 약사(略史)

―노동조합 설립

1953년 6.25 동란 직후에 설립이 되었거나, 아니면 사변 전에 있었던 노동조합이 그 명맥을 이어 온 것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1961년 5월 8일 제6차 임시총회의 경과보고를 보면 “우리 백만 근로자들의 집결인 대한노총산하 전국 각 연합조직체로서 소위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했다는 4.19전의 일인독제체제하에서 천하공당 자유당의 어용노조운동과 아울러 일인정치자의 수족이 되어 이권운동이라고는 사실상 정치적 압력 하에서 가능하였던 것만은 우리 근로자들이 자각하리라고 믿는 오늘날 4.19 혁명을 계기로 악독한 일인독재의 무리는 경경(輕輕)이 허물어지고 젊은 학도들의 거룩한 피의 댓가로서 오늘날 우리 근로자들이 쟁취당하였던 권리를 찾게 되고 동시에 법에 규정된 노동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조공노동조합도 기(去) 1년간에 있어서도 4.19전의 형식이었으나 지난 6월 7일자 8차 정기총회에서 선출되어 현금에 이르기까지 경과를 보고하나이다”라고 적은 것을 볼 때, 단기 4293년(1960) 6월 7일에 제8차 정기총회라고 기술하였으며 조합원들의 조합가입 년도가 1953년인 것을 감안한다면 6.25사변 직후 휴전과 동시에 노동조합을 설립한 것으로 보인다(전국 해상노동조합 연맹 사단법인 대한조선공사 노동조합)

5.16 군사 쿠데타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전평²⁾조직원 검거 열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전평핵심사업장이었던 대한조선공사 노조의 전평관련 기록을 삭제하였다고 전해진다.

―대한조선공사 노조 민주화 추진을 위한 징검다리모임 발족

87년의 2년 전인 1985년도에 대한조선공사 현장조직인 징검다리모임³⁾이 결성되었다. 순수한 친목모임으로 시작되었지만, 내부구성원 대부분이 노동조합과 연관된 회원들이었으며, 회사 측의 관리대상이었다.

용두산공원에서 몇 번의 모임을 가지면서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동시출마논의 문제, 대한 조선공사 노조의 민주화”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또한 임금인상문제, 도시락문제, 두발문제, 구타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현실적 상황에 대한 불만에 대해 토론하였다.

1986년까지 운영위원회에서 안건을 검토하고 대안을 제시하여도 상집회의에서 무산되어 버리는 한계를 겪어 왔다. 그런 관계로 상무집행위원회에 진입하는 방안을 폭넓게 논의한 결과로 정상채 동지를 후생차장에 추천하였다. 이때 이정식 동지와 김진숙 동지도 대의원에 당선되어 첫 정기대회의원대회를 가졌다.

23년차 정기대의원대회를 마치고 나서 대의원으로써 정당한 활동인“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라는 유인물 배포는 김진숙 동지 해고의 단서가 되었다.

김진숙 동지는 회사가 직업훈련소로 인사명령을 낸 것에 대해 반발하였고, 명령불복종으로 해고되었다. 이후 해고자 3명(이정식, 박영제⁴⁾, 김진숙)을 중심으로 ‘조공노조 정상화 추진위’를 구성하였고, ≪조공노동자신문≫을 발행하여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 고무하면서 노동조합 민주화 투쟁의 밑거름이 되었다.

―87년 7.25 투쟁의 전개과정

87년 7월 25일, 이날 투쟁은 우연히 발생했다. 11시 50분경 3생활관 후문 쪽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서 12시가 되기 전에 올라갈 때“도시락을 거부하자”라고 쓴 벽보가 계단입구에 붙어있었다.

현장노동자들이 생활관 후문 쪽에서 웅성거리고 있을 때, 정부장(당시 기관부장)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 가까이 와서 보니 그런 벽보가 붙어 있었고, 정부장은 그 벽보를 아무런 생각없이 떼어내면서 “밥 먹으러 가라”고 했다. 이때 누군가가 항의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개밥(도시락을 빗대어서)을 먹든지 말든지 당신이 왜 상관하느냐?"는 항의와 함께, 밥 먹지 말자는 구호로 이어졌고, 벽보 찢어낸 것에 대해 거칠게 항의를 하게 되었다. 이때 결집된 노동자 약 500여명이 대오를 형성하게 되고 정문 쪽으로 대오가 이동하게 되었다. 생활관에서 도시락을 먹던 노동자까지 가세하게 되었다. 이때 특수선부 350여 노동자들도 조선부의 인원집결소식을 빠르게 전해 듣고 생활관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정문으로 이동한 대오는 일부가 빠지면서 특수선부로 가자고 외쳤고, 특수선부로 이동하였다. 당시 가장 강력한 조직력을 형성하고 있던 특수선부가 결합하면 이긴다는 여론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특수선부와 조선부는 자연스럽게 대오를 형성하여 정문 쪽으로 열을 맞추어 나가게 되었고, 이로써 대오는 600여대오로 모아졌고 정문 앞 광장까지 대오가 이어졌다.

이날 파업투쟁의 특이한 점은 현장의 모든 노동자가 정문주변으로 집결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조합원 약 2500여 명 중 약 1000여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대오였다.

이때 약 30분 정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으며 곧바로 정문 앞 거리를 점거하게 되었다. 정문 앞에서 조합원의 요구사항을 받았으며, 도로집회에서도 우리의 요구를 제시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용노조 퇴진, 임금인상 30%, 상여금100%인상(300%에서 400%인상), 퇴직금누진제, 해고자 복직, 직업훈련생 처우개선, 중식비 폐지, 가족수당 지급 등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이 바깥벽에 붙여졌고, 영도주민들에게 요구사항을 알렸다. (구)본관 통로 기둥에 요구사항이 붙여졌다. 요구관철에 집중한 투쟁이라기보다는 울분과 억압에 대한 분노의 함성이었다.

―7.25투쟁의 진행과정

14시경에는 비가 멈췄고, 정문 앞 도로를 점거하고 집회가 진행되었다. 16시경 김진숙 동지가 나타났고,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이 열렬히 환호하였다. 18시경 신관을 점거했다. 다음날 새벽 4시경, 경찰습격을 받아서 51명이 연행되었다. 

7월 27일은 숨 막히는 조직전선작업이 전개되었다. 조합원들이 연행된 사람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자발적 참여분위기가 현장분위기를 이끌어 낸 것이었다.

특수선부에서 배관공장으로 가면서 대오가 결합하고 선각공장에서 결합되었다. 이때 3생활관에서 천천히 조합원들이 다가서기 시작했다. 이날의 분위기는 연행된 51명의 조합원이 석방되지 않았다는 것이 쟁점이 되었다.

7.25투쟁 일지

―민주노조출범과 이후

2,500명 조합원의 불신임서명운동으로 김종래 집행부를 총사퇴시켰다. 9월 15일 위원장 직선제 선거로 이태득 집행부가 탄생되었다. 그러나 조합원의 의사를 무시하고 직권 조인한 이태득 위원장에게 반발하게 된다. 1990년 7월 조합원 총회에서 조합원들은 박창수 위원장을 선출함으로써 어용노조의 굴종과 침묵을 박살낸 민주노조를 건설하게 된다.

한진그룹,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한 뒤 노조탄압을 강행했다. 노조는 지도력 부족으로 당하기만 했다. 조합원도 노조를 신뢰하지 않았다. 90년 임투에서 9차까지 진행됐으나 지도력 부족으로 조합원 원성만 높아갔다. 조합원 열기에 밀려 쟁의돌입 결의하고 대의원 중심으로 싸웠으나 대의원마저 직권중재가 떨어지자 발을 빼고 말았다. 이태득 위원장의 직권조인을 거부하고 파업투쟁 시작했다. ․․․ 중략 ․․․ 박창수 후보가 조합원 90.85%로 새 위원장에 당선됐다.

7명의 후보가 경선한 1차 투표에서 과반수에 98표차로 1위를 달렸고 2차 투표에서 투표자 1,936(전체조합원 2,212명)명 중 1,759명의 찬성으로 당선 확정됐다. (85크레인 <김주익․곽재규열사 추모자료집> p. 512, “90년 임투패배를 딛고 민주집행부를 세우기까지” 中에서)

새 집행부는 10월에는 위원장이 대기업 연대회의에 참석하였고, 노조활동으로 구속, 수배, 해고된 조합원 생계비 지급관리 규정을 만들어 확정했다. 1991년 2월 회사는 석남사에서 대기업 연대회의 수련회를 마치고 귀가하던 노조간부를 무차별 연행하였고, 연행자 중 7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창수 위원장은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사측은 위원장 구속에 대한 항의로 조합원들이 2월 13일, 21일 집단 조퇴한 것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이정호 수석부위원장 등 30여명을 업무방해혐의로 고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김주익 노조 문화체육차장 등 2명에게 1개월 정직 처분을 내리는 등 임투를 앞두고 노조탄압을 시작했다. 부산시도 노조 측이 전노협, 부산노련이 상급단체로 규정된 것을 고치지 않으면 조치를 하겠다고 밝혀 탄압이 다각도로 진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창수 위원장이 안양병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바로 다음날 백골단이 투입되어 시신을 탈취하여 강제 부검을 실시하였다.

검찰은 오늘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의 유가족과 노동자 학생들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사체 부검을 강행했습니다. 경기도 안양병원 영안실을 지키던 노동자와 학생들의 저지로 벽을 뚫은 끝에 사체를 강제로 확보한 검찰은 오늘 오후 안양병원에서 부검을 실시했습니다.

부검에 앞서 검찰은 오늘 새벽 천여 명의 경찰을 투입해 사체 확보에 나섰으나 학생과 노동자 200여명이 화염병을 던지며 강력히 반발해 2차례 충돌을 빚었습니다.

검찰의 사체 확보 과정에서 안산지역 노동자협의회 소속 21살 노태환씨가 손목 동맥을 자르는 자해를 해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또 대림전문대 박충원 군이 경찰이 던진 돌에 이마를 맞아 부상하는 등 20여명의 노동자와 학생이 다쳤습니다.

부검이 끝난 뒤 유가족과 대책위원회는 사망 경위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는 한 부검된 사체를 인수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부산의 한진 중공업 근로자들은 오늘부터 조업을 거부한 채 박창수 노조위원장에 대한 추모행사를 가진 뒤 오후부터는 학생들과 함께 시내에서 노동악법 철폐와 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였습니다.

전노협 등 6개 단체로 구성된 박창수 위원장 대책회의도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사인규명과 구속 노동자 석방 등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오는 9일 전면 파업에 들어가 정권퇴진을 촉구하는 국민대회에 참여하겠다고 말했습니다.(1991년 5월 7일 MBC뉴스 中 에서)

박창수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노동자계급은 대정부 정치투쟁의 한 주체로 조직적으로 참여하였고, 이 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투쟁할 때만이 발전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통해 90년 현대중공업의 골리앗투쟁과 전국총파업으로 표현된 단결과 투쟁의 정신을 계승해나간다.

―LNG선상 파업

한진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조합원들의 평균 나이 38.4세 부양 가족 수 3.49명 통상임금 62만원으로 열악했다.

94년 임단협 최대 현안:

한진은 단협 5차 이상 진전 없으면 노사 일방이 노동위에 중재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중재 들어오면 더 이상 쟁의 못한다. 조합원들은 임단협에서 일방중재 철폐를 강력히 요구했다. 부당 해고된 12명 원직복직, 임금 86,050원(기본 14.9%), 월급제 실시, 전임 8명을 요구했다.

임단협 경과:

노사는 3월 29일 상견례 시작. 임단협 4차례, 실무교섭 15차례 석 달간 진행. 노조는 쟁발신고를 냈고, 회사는 전격적 일방중재 신청, 지노위는 수용 통보.

파업투쟁 전개:

노동자들은 6월 27일 투표에서 쟁의결의, 오후 3시 파업선포하고 전면파업 돌입(조합원 철농). 대검은 28일 노조간부 5명에게 사전영장 발부하고 경찰투입지시. 1,200여 조합원들은 저녁 9시부터 LNG선에 올라가 고공농성 시작

농성 해제:

7월 7일 오후, 노조 무파업 시 회사의 일방중재 신청 자제, 해고자 복직대책 마련, 고소고발 취하, 임금 및 상여금 인상에 전격 합의해 열흘의 농성 해제. 오후 3시30분 사장이 조합원 앞에서 위원장과 합의한 내용을 실천할 것임을 약속. 7월 22일 임단협 조인식. 조길표 위원장, 김주익 사무장, 박성호 조통차장 등 9명 구속. (85크레인<김주익․곽재규열사 추모자료집> p. 519~521, “LNG선상 파업” 中에서 요약)

점거파업은 노동자들의 위력적인 투쟁을 보여줬으나, 이 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에는 원하청 공동투쟁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부여되었다.

“한진중공업에서 LNG선을 점거하고 선상파업을 벌였다. 조합원 3,000명 중 강제명예퇴직 명단에 오른 1,200여 명이 배를 점거했다. 배를 인도하지 않으면 선주에게 지불해야 할 돈이 어마어마했다. 그러느니 임금인상 할 거라고 조합원들은 믿었다. 하지만 자본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2,000여 명의 비정규직들이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공장은 잘 굴러가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 파업의 패배부터 한진중공업은 어떤 투쟁도 되지 않았다. 이후 정규직들에게 명예퇴직 협박이 들어오고 정리해고가 단행됐다.”(2007년 7월 19일, <1987년 노동자대투쟁 기념 강연회>에서, 김진숙 동지)

―1994년 이후 노조(지회) 집행부

―김주익 지회장과 85크레인

한진자본은 2002년 3월 6일부터 시작된 사무관리직의 강제사직에 이어 3월 18일 생산현장직에 '인력체질개선'이라는 명목으로 희망퇴직자 모집 공문을 보냈다.   노사는 3월 28일 1차, 29일 2차 특별단체교섭을 열고 사측은 강제사직은 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다음날 노조간부 8명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하면서 노조탄압의 칼날을 세웠다. 4월에는 강제교육명령을 받은 유선동 조합원의 노모와 동생이 음독자살을 기도하는 일이 벌어졌다.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교육발령자에 대한 희망퇴직은 5월 2일까지만 실시하고 이후부터는 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는다. 직무향상교육을 마친 자에 대해서는 원직에 복직시킨다."는 5월 2일 잠정합의서내용을 공식 확인하고 투쟁을 일단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사측은 합의를 어겼고, 노조는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한편, 5월 29일 파업찬반투표(83% 찬성으로 파업결의), 6월 1일과 2일 총파업을 전개하였다. 4월 16일부터 시작된 교육, 자택 대기발령, 연월차 사용을 빙자한 노조탄압은 11월 11일 마지막 재교육자 17명이 복귀하여 출근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11월 13일 지회장 선거에서 김주익 지회장이 당선되었다.

2003년 새해가 밝았지만 회사는 여전히 임금동결을 주장하며, 손배가압류 철회, 징계철회, 해고자복직 등 현안문제에 대해서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월 17일부터 가대위는 투쟁의 전면에 나섰다.

2월부터 5월까지 5차례의 총력투쟁기간을 설정하고 조직하였으나 결정적인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었다.

6월 11일 밤11시경, 김주익 지회장이 홀로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다음날 오후 2시 본교섭이 열렸으나, 회사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6월 27일 금속노조는 부산역 광장에서 ‘2003년 중앙교섭승리 전간부결의대회’를 열었다. 영도공장으로 행진을 한 1천여 명의 대오는 담을 넘고, 수리선 철문을 열어 공장으로 진입하였다. 7월 4일부터 과천 3차례의 교섭이 있었고, 7월 15일까지 부산지방노동청 중재로 여전히 평행선을 그었다.

7월 18일 17시부터 19일 9시 30분까지 마라톤 교섭에서 잠정합의서 초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회사 임원회의에서 이를 거부하면서 합의가 무산되었다.

8월 19일 회사는 울산공장에 대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10월 14일 새벽 2시, 회사는 지회가 장악하고 있던 소형 유압고소차의 유압장치를 망가뜨려 조합원들이 배 위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했다. 회사는 84크레인을 이용하여 공중에서 배 측면에 묶어놓은 와이어로프를 절단하고 배를 진수시켰다.

10월 17일 아침 8시, 회사 측의 손배가압류, 징계 통보에도 굴하지 않고 200여 조합원들이 투쟁의 광장에 모였다. 그러나 김주익 지회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10월 21일 오후 2시 노사교섭이 시작되었다. 10월 22일 오후 2시 김주익 노동해방열사 추모 및 악질한진자본과 노무현정권 노동탄압 규탄 전국대회가 열렸다. 25일과 28일 상경투쟁단이 악질한진자본과 노무현정권 노동탄압정책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 10월 28일 2차 교섭에서 사측은 교섭원칙에 대해서는 합의했으나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에 대해서는 회피했다. 10월 30일 곽재규 동지가 깊이 11미터의 4도크 바닥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10월 31일 3차 교섭에서도 사측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11월 4일 4차교섭에서 책임자 처벌 문제를 차기 교섭에서 다루기로 했다.

11월 6일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가 전국 18개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11월 6일 3차 상경투쟁단이 투쟁을 시작했다.

11월 7일 5차 교섭에서 사측이 노조의 요구안을 검토해서 차기협상에서 유족문제를 제외한 일괄안을 제시하기로 하고 교섭을 마무리했다.

11월 11일 6차 교섭에서 사측은 “노동조합은 향후 5년간 무분규 보장”을 전제로 손배가압류 해제 등을 뼈대로 하는 소위 “2002년, 2003년 임․단협 회사일괄 제시 최종(안)”을 제시했고, 노조는 격렬히 항의했다.

11월 12일 민주노총 2차 총파업에는 현대자동차와 금속노조 등 금속산업연맹과 화학섬유연맹 100여개 사업장 10만여 명과 사회보험노조와 상용직노조, 경기도노조, 과기노조, 시설노조 등 공공부문 사업장들을 합쳐 총 15만 명이 참여했다.

11월 14일 밤샘교섭 끝에 노사 잠정합의에 도달했다. 손배가압류를 즉시 철회하고, 이후 노조활동을 이유로 손배가압류를 하지 않기로 하고, 부당노동행위 자행자 해임 등 책임자 처벌문제를 합의했다. 회사가 경영상의 이유로 일방적 인위적인 인원조정을 하지 않기로 했으며, 불가피한 인원조정이 있을 경우 노사합의를 분명히 했다. 임금은 기본급 10만원(2003년 1월 1일부로 소급), 생산장려금 100만원, 성과급 통상 100%로 합의하였다.

―2009년 12월부터 현재까지

한진중공업 사측은 2009년 12월 18일 352명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한진중공업 지회가 부분파업과 교섭을 진행하던 중 1월 13일 김진숙 동지가 회사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에 돌입했고, 1월 19일 부산지역의 노동, 시민사회단체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부산경제살리기 부산시민대책위>를 결성했다. 2009년 12월부터 2011년 2월 15일까지 희망퇴직으로 409명(1차 349명, 2차 60명)이 회사를 떠났다. 사측은 2010년 2월 부산지방노동청에 해고계획 신고서를 제출했고, 2월 25일까지 희망퇴직을 강행하면서 정리해고 예고자 600여명에 대한 명단을 개별 통보했다. 25일 노조는 이에 항의하는 농성 및 기자회견과 함께 2월 26일 총파업을 선포했다. 총파업 1일차에 사측은 긴급교섭을 요청해왔고, 조합원들이 생활관에 대기한 상태에서 교섭이 진행되었다. 저녁 8시에 열린 교섭 보고대회에서 사측이 정리해고를 중단하기로 했음을 보고했다.

그러나 합의 이후에도 사측은 또다시 인원감축과 단협개악 요구로 했고, 이에 대해 지회는 부분파업으로 투쟁을 이어나갔다. 이 과정에서 설계부분 분사와 울산공장 폐쇄가 진행되었고, 300여명이 강제휴직 당했다. 2010년 12월 15일 사측은 생산직 직원 400명 희망퇴직 계획서를 노조에 일방 통보했고, 노조는 12월 20일 정리해고 반대 총파업에 돌입한다.

<한진중공업과 부산경제살리기 부산시민대책위>와 <공동투쟁본부>가 결성되어 투쟁을 진행해나가지만, 지회와 민주노동당이 중심이 되어 수립하는 투쟁계획은 한진자본에 직접적 타격을 주는 투쟁이 아니라 선전전 중심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투쟁기조에 대해 1월 6일 새벽 5시 50분 김진숙 동지는 강력한 현장투쟁을 요구하며 35미터 높이의 85호크레인에 오르게 된다.

 1월 12일 사측은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290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통보하고, 1월 30일까지 희망퇴직 신청기한을 연장한다. 2월 14일 사측은 희망퇴직신청자를 제외한 172명 정리해고와 직장폐쇄를 실시한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7호 타워크레인에서 농성을 해왔던 문철상 금속노조 부양지부장과 채길용 한진중공업지회장이 5월 11일 저녁 고공농성 87일 만에 내려왔다. 12일 기자회견에서 "현장을 지키는 조합원들과 새로운 투쟁을 만들어 갈 것", "현장을 떠난 조합원들이 다시 투쟁에 결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또한 5월 6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구제신청 기각 판정에 항의, "민주노총 근로자위원 23명이 전원 사퇴한다."고 밝혔다.

6월 11일과 12일 김진숙 동지와 한진 조합원들과 연대하기 위해 전국에서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 담장을 넘어 진행되었다. '희망버스' 이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투쟁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6월 27일 용역을 동원한 행정대집행으로 조합원들이 다시 뭉쳐서 "정리해고가 철회되지 않은 노사합의 이행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6월 28일 오전 9시 85크레인 맞은 편 신도브레뉴 아파트 입구에서 집회를 가졌다. 6월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진중공업 청문회에는 조남호 회장이 출석거부를 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불참하였다. 7월 5일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최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와 해고 노동자를 위한 미사"가 열렸다.

7월 9일 '2차 희망버스'가 1만여 명이 참가하여 진행되었다. 차벽을 두고 경찰과 대치하면서 봉래동 로터리에서 1박2일 동안 진행되었다. 7월 13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등 노동계․야권에서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 촉구 희망단식에 돌입했고, 15일에는 윤택근 민주노총 부산본부장 등 부산지역 시민사회․야권․노동계가 희망단식에 돌입했다. 24일 시민사회․종교․학계․정당․법조․문화 등이 '희망 시국회의'를 개최했다.

7월 30일 '3차 희망버스'가 1만 5천여 명이 참가하여 진행되었다.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85호 크레인 인근 산업로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8월 10일 조남호 회장이 귀국 후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정리해고 철회는 끝내 거부했다. 8월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가 개최되었다. 8월 20일 민주노총 주최 전국노동자대회 및 희망시국대회가 개최되었다.

8월 27일에는 '4차 희망버스'가 서울 광화문 일대 등에서 진행되었다.

Ⅱ

한진중공업 경영위기의 실체와 구조조정 공세

1. 공황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4년 전 세계를 공포와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공황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부르주아 국가와 언론들은 최근 주가 폭락에 대해 아래 신문기사에서처럼‘실체가 불분명한’,‘더블딥’등 모호한 표현이긴 하지만 극복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 분명히 느끼고 있다.

실체가 불분명한 '제2의 리먼 사태 유령'이 세계 금융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열흘 전(7월31일ㆍ현지시간) 미국이 극적으로 부채상한 증액 협상을 이끌어낸 직후만 해도 글로벌 시장은 "불확실성이 걷히게 됐다"며 주가 상승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숨 돌릴 틈도 없이 불거진 미국 더블딥(이중침체) 우려와 신용등급 강등 조치(5일)에 시장은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모습이다. 각국 정부는 "실체가 없고 과장된 공포"라고 일축하면서 국제공조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패닉(공황상태)에 빠진 시장은 귀를 닫아 버렸다.⁵⁾

세계 주요 국가들이 공황의 영향으로 재정위기에 시달리면서 노동자ㆍ인민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노동자ㆍ인민은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에 처해져있고 실제로 곳곳에서 투쟁이 터져 나오고 있다.

2. 조선업종의 상황

2011년 조선업종의 판매ㆍ공급계약이 19조3731억 원을 기록해 지난해보다 115%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6월 27일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2011년 유가증권시장 단일판매ㆍ공급계약 공시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장사의 단일판매 및 공급계약총액은 40조2068억 원으로 전년 동기(36조7281억 원)보다 9.47%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조선업관련 계약총액은 19조3731억 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115.68% 급증했다. 기업별로는 삼성중공업이 LNG선 4척 등 8건의 공급계약을 통해 9조5376억 원의 계약실적을 올려 1위를 차지했다.

위 수치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업종은 이렇게 호황인데, 조선업종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과잉생산 공황 때문이다.

공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산능력(생산성)이 고도로 발전하여 상품이 너무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모든 현실적 공황의 궁극적인 원인은, 생산력을 발달시키려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충동에 대비한 대중(the masses)의 궁핍과 제한된 소비에 있다.(칼 맑스, ≪자본론≫3권, 김수행 역, p. 597)

‘부족’이 아니라 ‘과잉’되었기 때문에 경제가 위기를 맞은 공황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업은 원래 10년이 호황이면 다음 10년은 불황이라고 한다. 배의 수명이 10년이기 때문이며, 이것은 자본주의 하의 공황주기와도 일치한다.

3. 한진중공업 경영상황과 구조조정 공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투쟁의 과정과 최근 청문회까지 가장 큰 쟁점은 한진중공업이 대량해고를 해야 할 만큼 경영상태가 어려웠느냐는 것이었다.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은 “한진중공업은 유동자금이 1조원에 육박하고 2007~2010년 영업이익 4366억 원, 조선 분야 영업가치 13.7%로 기업가치가 A등급”이라며 “2010년 당기순손실이 517억 원이라는 이유로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하냐?”고 물었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도 “영도조선소는 2년간 한 척도 수주하지 못한 반면 (자회사인) 필리핀 수빅조선소는 31척을 수주했다”며 “수주는 같은 팀에서 관리하는데 기술력이 더 좋은 영도가 한 건도 수주하지 못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조 회장은 “2008년 경제위기 후 타격을 받아 성과가 30% 이상 다운됐다”며 “수빅에서 수주한 것은 선주가 가격 경쟁력을 고려해 (수빅에서 건조하라고) 지정해서 요청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수치에 대해 “저희가 확인한 숫자가 아니다”, “(적자 원인은)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등 모호한 답으로 일관했다.

그러면 모호한 답변으로 얼버무리고 있는 한진자본의 진짜 의도는 무엇인가?

식민지 등에 투하된 자본에 관하여 말한다면, 그 자본이 더 높은 이윤율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거기에서 발전수준이 낮아 일반적으로 이윤율이 높기 때문이고 노예와 쿨리(coolie: 하층노동자) 등을 사용하므로 노동착취도도 더 높기 때문이다.(칼 맑스, 자본론3권, 김수행 역, p285)

애초부터 필리핀 수빅에 대규모 조선소를 지은 이유는 ‘더 높은 이윤율’을 얻기 위함이었다. 현재 수빅조선소 노동자들의 노예와 같은 노동조건을 보라!

한진자본은 영도 공장의 축소ㆍ폐쇄과정을 통해 노동력의 재생산비용인 임금을 인하시켜,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한다.

생산의 정체는 노동자계급의 일부를 해고시키며, 그리하여 취업노동자로 하여금 임금의 인하, 심하게는 평균수준 이하로의 인하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한다.(칼 맑스, ≪자본론≫3권, 김수행 역, p. 305~306)

4. 노동조합의 대응 기조

2009년 11월 노조선거에서 채길용 집행부가 당선되었고, 12월 한진자본은 일방적으로 강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집행부는 부분파업과 선전전 중심의 투쟁을 진행했다. 지회 집행부는 김진숙 동지의 24일간의 천막단식농성에도 못마땅해 했다.

2010년 12월 한진자본은 다시 정리해고를 감행했다.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회는 선전전과 노숙농성 위주의 투쟁만 진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1월 6일 새벽에 김진숙 동지가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하지만 지회는 85호 크레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편함을 나타냈고, 이것은 집행부 스스로가 투쟁전선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2월 14일 문철상 금속노조 부산양산 지부장과 채길용 한진중공업지회장이 17호 타워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인지 87일째 되는 5월 11일 저녁에 농성을 풀고 내려왔다. 5월 6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구제신청 기각 판정으로 더 이상 투쟁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지회가 올바른 태도와 제대로 된 투쟁계획을 가지지 못하면서 많은 조합원이 이탈했고, 투쟁대오는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Ⅲ

85호 크레인 고공농성과 희망버스 연대의 확산

1. 85호 크레인 고공농성

2003년에 650명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었다. 김주익 지회장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가서 처절하게 투쟁했지만, 129일 만에 밥을 매달아 올렸던 밧줄에 목을 맸다. 지회장의 시신은 2주가 넘도록 이 크레인을 내려가지 못했다. 5일 만에 곽재규 동지가 또다시 목숨을 끊고 나서야 합의가 이루어졌고 한 사람의 시신은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또 한 사람의 시신은 도크바닥에서 끌어 올리는 기가 막힌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김진숙 동지는 그 두 사람을 한꺼번에 땅에 묻고 돌아온 날 밤, 보일러를 올리기 위해 무심코 스위치에 손을 대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묻은 손으로 저만 살겠다고 보일러를 켜는가. 차가운 땅바닥에 20년지기 두 사람들 묻고 저만 따뜻하게 살겠다고 보일러를 켜는 나도 인간인가. 그 후로 8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일러를 켜지 못했고 크레인에 올라오기 전날 밤 처음으로 따뜻한 방에서 잤습니다.”

2010년 12월, 연초의 구조조정 중단 노사합의가 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400명의 정리해고를 다시 통보했다. 정규직들은 희망퇴직으로, 하청노동자들은 제대로 저항 한번 하지 못한 채 3,000여명이 공장을 떠났다.

그런 85호 크레인에 김진숙 동지가 홀로 올랐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가 알았기에 모두가 걱정했다. 하지만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회집행부가 열성적인 조합원들을 통제(실제로 지회는 ‘크레인사수대’외에는 85호 크레인에 가는 것을 통제했다)하고, 투쟁을 적절한 수준내로 가두려고 했지만 85호 크레인을 중심으로 한 비타협적 투쟁기조에 대해 조합원들의 신뢰가 쌓여가고 있었다.

지회 집행부가 제대로 투쟁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지도력은 조합원들의 신뢰를 받는 85호 크레인으로 넘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측은 즉각 김진숙 지도위원을 상대로 크레인에서 퇴거할 것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고, 부산지법은 김진숙 동지에게 하루 100만원씩 한진중공업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오늘부터 저는 하루 100만 원짜리 인간이 됐습니다.

징역 살 땐 하루에 4만5220원씩 밖에 안 쳐주더니, 제 가치를 이제야 인정받는 거 같습니다.

근데 이 투쟁 깨지면 저는 진짜 거시기 됩니다.

한진 자본은 2003년 시나리오와 똑같이 가고 있는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 크레인으로 하루 100만원을 벌어서

이 크레인을 운전했던 하청노동자에겐 얼마의 월급을 줬습니까?(2011년 1월 19일 편지)

김진숙 동지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진정성 때문이다.

다음은 4차 희망버스 연설문이다.

이 크레인에 올라와 두달째가 된 박성호 동지의 아들 박슬옹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슬옹아, 니가 태어날 때 아빠는 감옥에 있었다.

만삭이 된 아내를 두고 징역을 살면서 슬기롭고 옹골차게 자라라고 니 이름을 지어줬던 아빠는 니가 돌이 될 무렵에야 비로소 너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해고자 복직투쟁을 하다 세 번째 징역을 갔고 그땐 주익이 아저씨도 재규 아저씨도 아빠의 곁에서 함께 싸웠다.

박창수 아저씨의 죽음으로 해고됐던 아빠는 주익이 아저씨의 죽음으로 13년 만에 복직을 했다.

생목숨을 차례차례 묻은 댓가였던 복직은 5년 만에 다시 해고로 되돌아왔고, 이 85호 크레인까지 오른 니 애비의 삶이 한진 노동조합의 피눈물 나는 역사이고 피맺힌 한이다.

슬옹아, 아침부터 밤중까지 크레인 주변을 맴도는 슬옹아.

열 다섯살 니가 이해하기에도 짊어지기에도 크레인은 참 무겁다.

2차 희망버스 때 쏟아지는 물대포를 피하다보니 엄마와 누나를 잃어버렸고, 엄마와 누나가 연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너의 비겁함 때문에 부끄러웠다 했느냐.

비겁한 건 니가 아니라 자신의 탐욕을 위해 니 애비를 짜른 재벌이다.

부끄러운 건 니가 아니라 애비는 크레인에 올라와 있고, 엄마와 누나는 잡혀가고 열다섯 살 너를 길바닥에 혼자 남겨뒀던 부당한 권력이다.

네 아빠가 너보다 조금 컸던 나이에 이 회사에 취직하던 날.

네 할머니는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를 만큼 기뻐하셨다더구나.

그러나 할머니는 아들이 고향에 찾아오는 것 보다 더 자주 아들의 면회를 다녀야 했고, 공장에 있는 시간보다 쫓겨나 싸우는 세월이 길었던 아들을 지켜보셔야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빈소에 엎드려 울던 네 아빠의 모습을 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슬옹아, 아빠는 혼자서도 집 한 채를 뚝딱 지을 만큼 못하는 게 없는 일류 기술자다.

그런 뛰어난 기술로 배를 만들어 왔고 그렇게 배만 만들고 살았으면 좋으련만 아빠는 배 만드는 일보다 노동자들 장례 치르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살았던 사람이다.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할 만큼 사람 좋고 그러면서도 원칙 앞에선 절대 타협하지 않았던 네 아빠는 진짜 노동자다.

슬옹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아빠를 만나 이제 같이 늙어간다.

슬옹아, 난 네 아빠가 다시 공장에 들어가 기름때 묻히며 작업복에 소금꽃 허옇게 피우며 일하는 걸 꼭 다시 보고 싶다.

그 꿈을 지켜주겠다고 여길 올라왔는데 이젠 네 아빠가 날 지켜주기 위해 여길 올라와 있구나.

다음주 개학해서 학교로 돌아가더라도 네 마음은 저 길 건너편 네가 온종일 앉아 크레인을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아빠를 지켜보고 있겠지.

그런 너에게 공부 열심히 하란 말을 나는 할 수가 없구나.

니가 좀 더 자라 내가 니 애비를 만났던 나이쯤 되면 꼭 대학에 안가더라도 노동자가 대우받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비정규직이라고 설움받고 차별받는 이런 세상이 아니면 좋겠다.

슬옹아, 아빠랑 목욕 가는 게 소원이라던 슬옹아.

그 평범한 일상이 소원이 돼버린 슬옹아.

이번 추석엔 부디 그 소원이 이루어져서 아빠랑 같이 목욕가고 할머니 산소에 같이 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래본다. 박슬옹 파이팅!

희망버스 여러분, 크레인의 계절은 어느새 늦가을입니다.

4계절을 다 살게 됐군요.

암흑천지 크레인에 부분적이나마 전기가 들어왔고 어제는 책이 올라왔습니다.

그 당연한 일들이 기적이 되는 곳, 85호 크레인입니다.

234일을 꿈쩍 않던 무쇠덩어리 크레인에도 서서히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발자욱을 남긴 희망버스 여러분들의 힘입니다.

어떤 탄압에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멀리서 모여주신 여러분들, 여러 어르신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여기 다섯명의 형제들 건강하게 잘 견뎌 내겠습니다.

단식 13일차 신동순 동지도 잘 견디고 있습니다.

반드시 여러분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4차희망버스 연설문-평범한 일상이 소원이 돼버린 슬옹에게)

김진숙 동지의 투쟁은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2011년 8월 28일 오늘, 크레인에 오른 지 235일차이다.

2. 지회 집행부(채길용)의 배신행위

조합원들과 85크레인의 김진숙 동지가 투쟁을 지속하고 있음에도, 6월 27일 채길용 집행부는 투쟁하는 동지들의 등에 배신의 칼을 꽃았다. 투쟁에 지지ㆍ연대하기 위한 ‘2차 희망버스’가 조직되고 있던 상황에서 한진자본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노조지도부 스스로 차단하려는 배신행위를 하고야 말았다. 집행부는 해고없는 원직복직을 협상조건에서 일방적으로 철회하고 조합원들의 의향을 묻는 절차를 생략한 채 밀실에서 업무복귀를 결정하였고, 노사간 형사고소·고발을 쌍방이 취소하기로 하는 등 4개 항을 회사와 합의했다.

3. 희망버스

김진숙 동지가 크레인에 오른 지 157일째 되던 날 희망버스가 왔다. 김진숙 동지는 희망버스가 오기 전까지 고립된 채 절망했고 그때마다 죽음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립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호소했던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집회에서, 편지로, 트위터를 통해 투쟁의 정당성과 이 땅의 불합리함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이러한 진정성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닫힌 공장 담벼락을 넘게 했다. 85호 크레인은 고립에서 벗어나 드디어 해방되었다.

희망버스가 3차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고 마침내 국회청문회까지 열리게 되었다. 희망버스는 분명히 대중의 자발적인 연대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운동이다. 4차까지 진행된 희망버스에서 경찰은 국가권력의 조직된 폭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이고, 누구를 위한 경찰인가? 이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희망버스의 가장 긍정적인 면은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이 지회 집행부가 말리는 바람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용역들에게 무릎을 꿇었을 때, 희망버스는 용역들과 경찰들에게 장악당한 현장을 조합원들과 함께 준비하여 뚫어냈다. 그런 의미에서 희망버스는 한진지회, 금속노조, 민주노총의 무기력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하다면 저항하고 투쟁하는 직접행동, 가두투쟁, 현장투쟁이었다.

집회대오가 물리력으로 국가의 조직된 폭력으로서의 경찰병력을 넘어서지 못한다하더라도 그것이 희망버스의 한계는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이러한 대중투쟁에 활발히 참가하고, 그 과정에서 연대와 투쟁을 확산시켜 나가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그 동안 다양한 원인으로 무기력함에 빠져 있는 민주노조운동 진영에 요구되는 부분이다.

4.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 투쟁위원회(정투위)

6월 27일 한진 사측과 지회의 굴욕적 합의에 대해, 끝까지 싸우고자 하는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철회'가 빠진 노사합의는 의미가 없다며 '해고자 복직 투쟁위'를 만들어 계속 농성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 투쟁위원회(정투위)’를 결성해 85호 크레인 인근을 중심으로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정투위는 유성기업, 쌍용자동차, 발레오공조코리아, 콜트콜텍, 재능교육 노동자들과 함께 8월 16일 오후 2시, 광화문 KT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공동투쟁단’ 구성과 ‘광화문의 소금꽃밭’ 투쟁을 알렸다. ‘소금꽃 공동투쟁단’은 8월 26일 오전 11시 30분부터 혜화동 재능교육 사옥 앞에서 희망걷기 발대식 및 집회 개최 등 투쟁사업장들이 함께 투쟁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장투쟁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정투위는 한편으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리해고철회 투쟁을 지속해나가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장에 복귀한 조합원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할 것이다.

Ⅳ

투쟁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1. 부산지역의 연대 흐름

부산지역에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투쟁에 노동조합 등 다양한 단체가 연대를 해왔다. 특히, 부산반자본주의투쟁연대가 한진투쟁 시작부터 정문 앞에 천막을 설치하여 투쟁했고, 1~4차 희망버스 뿐만 아니라 자체 집회를 개최하여 진행했다. 8월 22일부터 26일까지 한진 정문 선전전에 주변 동지들을 조직하여 참여하는 등 지역연대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2. 국가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대중투쟁을 조직해야

민주노총과 소위 진보정당들이 야권단일화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희망버스는 최선을 다해 투쟁했고, 현재도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권력과 자본은 정리해고철회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기 위해서는, 희망버스의 자발적 투쟁과 노동자들의 집단적이고 조직된 투쟁이 결합되어야 한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투쟁과 희망버스는 분명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대립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고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와 그것에 봉사하는 국가권력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한걸음씩 전진하게 될 것이다.

투쟁은 끊임없이 증대되고 확대되며 발발할 것이 틀림없으며, 종국에 가서 누가 승리자가 될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전유하는 소수인가, 아니면 노동하는 엄청난 다수인가. 그런데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현대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전위일 뿐이다.(≪맑스ㆍ엥겔스 저작선집≫, 박종철출판사, <프랑스에서의 내전>, p. 88)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