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희망버스와 대중투쟁의 양면성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문제와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을 사회적 이슈로 전면 부각시킨 희망버스가 4차에 다다랐다. 지난 3차까지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농성 중인 부산에 대오가 집결하는 형태였다면, 이번 4차는 서울에 대규모로 운집하여 가두행진을 벌이는 형태를 띠었다. 이는 희망버스의 의제가 일면 확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문제와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고공농성문제에서 전(全) 사회적인 정리해고문제, 비정규직의 문제를 남한의 중심부인 서울에서 더욱 상징적으로 알려내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집한 대규모의 대중들은 “정리해고 박살”을 외쳤다. 그 대중들 속에는 청소년도 있었고, 노동자도 있었고, 시민들도 있었다. 그들 각자의 분노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와 맞물려 거리에서 터져 나왔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투쟁의 새로운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어느 누가 희망버스 운동을 지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체계적인 계획과 전술로 이 운동을 지도하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분노는 그 자신들의 창발성과 맞물려 투쟁의 현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지도력의 부재라는 이유 때문에 희망버스 운동은 바로 지금 전진이냐, 패배냐의 기로에 서 있다. 현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희망버스 운동에 있어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어떤 운동세력도 희망버스에 참가하는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희망버스 일정에서 항상 벌어지고 있는 가두행진은 번번이 경찰에 막혀 패배감과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가두행진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 전투적으로 전진시켜 승리의 전망을 볼 수 있는 전술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희망버스 운동에서는 그것을 지도할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2008년 촛불투쟁은 100만 명에 달하는 대중을 서울 도심 한복판에 모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의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라인을 끊고, 즉 자본가들의 이윤의 핵심원천을 틀어쥐고 총파업을 일으켜 투쟁에 합세하는 형식을 띠지 못하게 되면서 체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한 채 허물어지고 말았다. 촛불투쟁 역시 그 누구도 격렬히 타오르는 대중투쟁을 지도하지 못했다. 뚜렷한 방향성과 명확한 전술로 승리를 향해 나아갈 방도를 아무도 제시하지 못했거나 제시했다고 하더라도 그 방향으로 대중을 이끌 정도로 조직력을 갖추지 못했다.

희망버스는 더욱 전진해야 한다. 희망버스를 일으킨 대중의 분노의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더욱 급진화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이 시점에서 필히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 자본주의의 위기와 노동자민중의 분노: 객관적 조건이 무르익다

2008년의 촛불, 2009년 용산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 2010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파업, 2011년 상반기의 대학생들의 교육투쟁과 희망버스. 그리고 이 사이 사이에는 여기에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노동자들과 민중의 투쟁이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것인가? 대규모 대중투쟁이 다시 점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8년 경제위기의 발발로부터 여전히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는 불황의 늪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금융자본의 위기는 상시적인 일이 되어버렸고, 주가가 100포인트씩 폭락하는 일도 보인다. 기업들은 ‘회사가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가계신용은 이미 900조 원에 다다랐다. 은행권의 가계대출중지사태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썩고 낡은 자본주의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정권과 자본이 기울이는 온갖 자구책은 ‘눈물겨울’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권과 자본이 ‘경제를 회복시킨다’는 명분으로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고통분담’이라는 미명 하에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미 1997년 경제공황 때부터 시작된 자본가계급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전면전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재편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서유럽, 미국, 일본 등 전세계적 자본주의의 현대적 특성이기도 하다. 어느 새 한국만 하더라도 전체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서고 있고, 이들은 체계적으로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고 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은 노동자들에게 있어 다름 아닌 생존권의 문제이다. 그야말로 ‘밥줄’이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물가는 상승하고 실질임금은 낮아지고 있는데, 그것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노동자들은 절대적인 생계의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개의치 않고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공격을 퍼붓고 있다. 이윤을 위한 생산은 자본가계급으로 하여금 노동자계급의 생존 따위는(그들이 생산에 기여할 수 없을 정도로 절멸되지 않는 이상) 무시해도 좋다고 여기게 한다. 국회 청문회에서 “정리해고 철회는 있을 수 없다”고 뻔뻔스럽게 주장하는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의 모습은 이 나라, 그리고 전 세계 자본가계급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생산의 현장, 바로 그곳에서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이 이윤이냐 생존이냐를 두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산의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자본가들로부터 공격받고 있다면, 자본주의의 위기로 인한 고통은 생산 이외의 방면에서 전방위적으로 민중에게 가해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각국의 자본가정부들은 ‘긴축’을 단행하고 있는데, 긴축정책이라 함은 간단히 말하자면 조세수입을 늘리고 조세지출은 줄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조세수입을 늘림에 있어 법인세나 기업세, 누진적 소득세 등 자본가들이나 부유층의 부담비중을 늘릴 수 있는 부분은 모조리 감세로 일관하면서, 물건을 살 때 자동적으로 내게 되어 있는 부가가치세나 공공요금 등을 인상하는 정책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물가인상은 필연적인데, 그 물가인상으로부터 고통받는 것은 당연히 노동자 서민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가 가계소득의 10% 이상을 가져가는 대학등록금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대학생들이나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근심 역시 날로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 조세지출의 경우, 복지지출은 대대적으로 삭감하면서도 기업들에 대한 지원은 절대 줄이지 않는 정책들로 일관하고 있어 이 경제위기의 고통이 ‘분담’ 수준도 아닌 ‘일방적 전가’임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얼마 전, 이제는 전임 서울시장이 된 오세훈이 주민투표를 통해 서울시 무상급식을 막으려고 온갖 발버둥을 친 것도 이 시도의 일환이다. 공공성의 영역, 즉 국가복지의 영역을 모조리 민영화하거나 축소하면서 지출을 줄이고, 경제위기로 인해 휘청거리는 자본가들에게는 돈을 퍼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긴축’의 진실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생활고는 날로 심해져가고, 가계대출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사적(私的) 계약을 통한 대출을 제외한 가계신용의 액수가 900조 원에 육박했다는 것은 이 위기의 뇌관이 곧 터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와 함께 노동자민중의 고통과 분노 역시 커질 대로 커졌다는 것이며, 그 속에서 투쟁이 터져나올 가능성은 상존한다.

실제로 대중들은 투쟁에 나서고 있고,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거나 파업을 벌이며 정리해고나 비정규직화 등의 고통전가에 맞서고 있다. 이미 작년 말, 올해 초에 걸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형적으로 그 사례를 보여주었으며 이제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대중들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투쟁의 슬로건 역시 급진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운동에 연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외치는 것은 아니지만, 비정규직 철폐와 정리해고 철회의 목소리는 더욱 강력해졌다. 소수의 사람들이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대중 속에서 이야기되는 슬로건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희망버스는 과연 이러한 대중의 투쟁적 열망을 오롯이 담아내고 그것을 더욱 더 전진시키는 대중투쟁으로서의 위상을 지키고 있는가?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희망버스 운동의 방향성과 지도력에 있어서 승리의 전망을 담보하는 전술은 제출되고 있는가? 그리고 제출된다면, 그것이 이행되도록 대중은 조직되어 있는가? 희망버스의 방향성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3. 지도력의 부재와 기회주의자들의 개입

애초에 희망버스는 체계적인 조직의 형태를 띠고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어떤 투쟁이라도 향후의 연대전술 모색 및 투쟁의 방향성 등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터져나온 이후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그 투쟁의 방향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무엇을 요구할 것이고, 누구와 함께할 것이며,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의 문제가 당장 코앞에 닥쳐오기 때문이다. 현재 희망버스를 기획하는 차원에서는 여러 운동단위들이 함께하고 있지만, 그것이 ‘대중투쟁’으로서의 철저한 조직과 전술제출, 기획이라기보다는 ‘행사’로서의 희망버스를 준비하는 차원을 제대로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문제로 제기되기는 했으나, 그것을 명확히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게 할 것인지 그 방향성이 확고하지 않은 상황에서 급속히 대중적 투쟁으로 나아가다 보니 스펙트럼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이 투쟁에 결합하게 되었고, 방향성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또한 문제인 것은 이것이 사회적인 이슈로 크게 부각되면서 선거에서의 표를 노리는 온갖 기회주의적 세력들이 결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심지어 부르주아적 분파인 민주당과 국민참여당까지 개입하고 있다.

운동 내 기회주의적 세력, 즉 개량주의자들은 희망버스라는 대중적 운동을 선거에서의 표를 장악하기 위한 운동으로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 이 투쟁을 공세적이고 전투적인 대중투쟁으로 전화시켜 격렬한 계급투쟁으로 발화시키려고 하기는커녕, 현장에서의 파업투쟁 등을 일으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이슈화’ 정도를 통해 내년 총선 및 대선을 기준으로 판을 짜려 하는 것이다. 이미 희망버스 운동 속에서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개량주의자들은 이것을 표를 통한 자신들의 정권 장악으로 몰고 가려 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보대통합의 정세 속에서 희망버스 운동을 하나의 ‘집권도구’ 정도로 여기고 있을 공산이 크다.

부르주아적 당들이 개입하려 하는 모습은 더 큰 문제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의 주범이었던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정리해고 철회’를 슬로건으로 투쟁해야 하는 이 운동에서 방향성을 흐리려 하고 있다. 이들은 대중의 분노가 크게 올라올 때에는 급진적 언사들을 내뱉으며 마치 그 뒤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정작 투쟁의 방향성을 결정하거나 전술을 결정하는 등 중요한 시점에 이르러서는 결코 자본주의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방향을 전적으로 거부한다. 민주노동당은 ‘진보대통합’의 일원으로 국민참여당까지 고려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내년 선거에서 민주당과의 공동전선(민주대연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노동자계급운동 내에 부르주아 분파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된다. 이것이 현재의 희망버스 운동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평화적 행진’을 제일의 기치로 내건다거나 정리해고 철회, 비정규직 철폐 등의 슬로건 등을 명확히 하지 않는 등의 태도가 그 징표다.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정리해고 철회’나 ‘비정규직 철폐’는 자본주의 하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회주의적 요구라고 제기하며 희망버스 운동의 슬로건을 ‘합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자고 하였다. 그렇다면 누구와 합의하자는 것인가? 그것은 곧 한진중공업 자본, 나아가 자본가계급과 합의하자는 것이다. 말이 좋아 ‘합의’이지, 결국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자본가들에게 넘겨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주저앉히자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4. 나가며: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투쟁이든, 패배한 뒤에는 반동적 탄압이 닥쳐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승리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승리는 자본가와의 타협을 통해서는 획득할 수 없다. 자본가와의 타협은 곧 노동자의 제 살 깎아먹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패배를 승리로 포장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승리는 오로지 힘의 집중과 집중된 힘의 올곧은 방향성을 통해 가능하다.

한편, 대중투쟁의 발생은 운동진영의 역량을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어떤 방향성과 전술을 제시하고 대중을 조직하여 승리로 나아갈 전망을 제시하는가의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기회주의적 세력, 심지어 부르주아 세력까지 개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쟁의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사회주의자의 임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방향성을 위해 투쟁하면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 역시 뗄 수 없는 임무이다.

그렇다!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자본주의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이윤을 빼앗길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대중들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냐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리고 그것이 사회주의적 요구인지의 문제와 상관없이, 대중의 요구와 슬로건은 전진하고 있다. 운동의 임무는 그 뒤꽁무니를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급진화하는 대중의 투쟁을 더욱 나아갈 수 있도록 전투적인 방향성과 전술을 제시하는 것이다.

방향성은 명확하다! 노동자계급의 총파업으로의 전진 없이 희망버스의 승리는 가늠할 수 없다. 선거에 얽매이는 기회주의적 관성, 부르주아 분파의 방해를 뚫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문제, 자본주의가 노동자계급에게 가하는 공격을 전면적으로 선전선동하며 각 사업장에서부터 노동자들을 조직, 파업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한편, 총파업 국면으로의 돌입을 통해 희망버스 운동을 질적으로 전화시켜야 한다. 정리해고 철회,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노동자계급의 총파업, 그것은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이자 지긋지긋한 자본주의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전투적으로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비참하게 패배할 것인가의 문제는 노동자계급 스스로가 쥐고 있다. 우리는 더욱 전진해야 한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