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CM이 마음에 들어서 재능교육에 입사를 했습니다

경기도 수원에서 왔습니다. 여민희라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서 만나지 않고 5년 전 쯤에 수원에서 만났다면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안녕하세요, 아버님. 우리 서희 참 예쁘네요. 저는 재능 스스로 선생님입니다. 혹시 우리 아이 집에서 학습지 하는 거 있나요?” 이렇게 인사를 했을 겁니다. (울먹임)

명랑한 톤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여민희 씨가 금새 울먹인다. 2012년 5월 13일, 쌍용자동차 분향소가 있는 대한문 앞에서 ‘노동이 연대에게, 연대가 노동에게’라는 거리 강연이 열렸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고동민 씨에 이어 두 번째 강사로 마이크를 잡은 여민희 씨는 재능교육 해고노동자(전국학습지 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조합원)이다.

그 전날 여민희 씨는 운전 중에 뒤에서 트럭이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명백한 뒤  차의 잘못이었다. 흔히 말하는 ‘드러누워도’ 될 만한 사고였건만, 차에서 내린 여민희 씨는 그 트럭의 기사를 보더니 그냥 가시라고 했

           5월 13일 대한문 앞 거리 강연 중인 여민희 조합원

단다. 나중에 그 얘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이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힘들어 보여서 가시라고 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니가 더 힘들다”며 어이없어 했다. 이 날 사회를 맡은 손선생님(닉네임)은 이런 여민희 씨를 두고 “그 트럭 기사의 힘듦과 자기의 힘듦을 저울질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아까 사회자랑 어떤 컨셉으로 할까 의논 하다가 학습지 선생님이었을 때 얘기를 하자고 했어요. “잘난 척도 하고 그래.” 저는 속으로 ‘잘난 척이 아니라 난 학습지 선생님일 때, 재능선생님일 때, 꽤 잘나갔거든. 할 말이 참 많을 거야.’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재능 교육~”

이 CM 많이 들어보셨죠? 제가  ‘눈높이를 갈까? 재능을 갈까?’ 고민을 하다가 이 CM을 듣고 단지 이 CM이 마음에 들어서 1998년 2월에 재능교육에 입사를 했습니다. 입사를 하고 9박 10일 연수를 받는데, 재능 시스템이 너무 완벽한 거에요. 이렇게 좋은 시스템이 있을 수가 없어요. 교재도 너무 좋아요. 9박 10일 동안 갇혀서 그 교육만 받다보면 그렇게 되는 거 아시죠? 나와서 그 시스템대로만 하면 정말 잘할 거 같은 거예요. ‘4대보험이 안 된다는데, 그거쯤이야. 교재가 이렇게 좋은데, 나만 열심히 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 했어요. 크게 그거에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그리고 계약서를 쓰는데, 150만원의 예치금을 내야 된대요. 피라미드 회사 같긴 했어요. 하지만, 그래도 시스템이 워낙 좋다고 하니까, 내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니까, 선생님 소리도 듣고 그러면 좋겠다 해서 재능교육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영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늘어나는 교재 만큼 유령 회원들을 키우고 있던 거였어요

제가 그런 마인드로 일을 했으니까 얼마나 일을 잘 했겠습니까? 일 아주 잘했어요. 일을 잘하던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내가 잘하기 때문에 일 잘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학습지에 보면 허수 영업이 굉장히 많거든요. 유령회원이라고 해서 실적을 맞추려고 자기 돈을 내는 겁니다. 저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던 거죠. 저는 입사를 해서 주구장창 잘 나가니까 중간에 제 선배들이 6개월 다니다 그만두고, 3개월째 가방 놓고 나가고 하는 걸 몰랐습니다. ‘좋은 회산데 왜 적응을 못하지?’ 그랬어요. 그러다가 8개월 차 정도에 작은 조직 관리를 하는 계장을 맡게 돼요. 같이 계원으로 있는 선배들의 실적관리를 하다보니까 뭔가 이상한 거예요. 그동안 나는 이분들이 다 일을 잘 하는 줄 알았는데, 감추고 있던 것들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의 책상 밑을 보니까 교재가 굉장히 많이 쌓여 있어요. ‘재능 스스로’ 시스템 상 교재가 쌓일 수가 없거든요. 알고 봤더니 점점 늘어나는 교재 만큼 유령 회원들을 키우고 있던 거였어요. 그러면서 저는 하나 둘씩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게 문제가 있구나.’ 그러면서 일 년이 지났어요.

단체협약 체결하니 단기 순이익 15% 분배해 주고 휴가비도 주는 거에요

1999년 11월에 정사원들이 파업을 하고, 재능교육 교사노동조합이 출범을 합니다. 그러면서 ‘맞아. 노동조합이 있어야 돼.’ 라고 하면서 저희도 33일간 파업을 해요. 그리고 2000년 1월에 단체협약 체결을 하고 현장에 들어갑니다. 현장에 들어가서 저희가 단기 순이익을 분배 받았어요. 15%의 단기 순이익을 선생님들이 나눠 갖는데, ‘과연 우리가 이걸 받아도 되나?’ 믿기지가 않는 거예요. 여태까지 한 번도 회사에서 공짜 돈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하물며 내가 휴회를 하게 되면 내 급여에서 2만 7천 원씩 회비가 깎였거든요. 내가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되거나 해서 10명 15명 그만두게 되면 30만원 60만원 깎이는 거는 일도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실질적으로 급여에 마이너스가 찍히는 사람도 있었어요. 근데 노동조합과 단체협약 체결하고 나니까 단기 순이익 15% 분배를 해주고, 휴가비도 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만두는 회원이 발생하면 그 회비를 제외하는 월별정산이라는 제도도 사라져 버렸어요. 박수 쳐주셔야죠.

그 당시 열악한 근무조건 때문에 선생님들이 평균 근속연수가 7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2년으로 늘었어요. 제가 학습지 교사를 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노동조합 조합원으로 지냈던 그 시기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한번은 저희 혜화동 본사 앞에 ‘몸짓패 선언’이 오기로 해서 저희가 열심히 조직을 했어요. 그땐 저희 조합원이 3800명까지 갔을 땐데요. 천 명을 목표로 조직을 했는데, ‘선언’이 오는데 7백 명 밖에 안 모인 거예요. 너무 속상해가지고 지부장들 다 불러 모아서 조직을 이거밖에 못했냐고 했어요. “‘선언’이 오는데, 어떻게 천 명도 안 올 수가 있냐?”고 했어요. 저희가 그랬던 때가 있었습니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그랬다는 게 굉장히 큰 상처로 남아요

저는 행복했던 반면에 회사는 굉장히 싫었겠죠. 그래서 노동조합 탄압을 하고 힘든 과정을 겪게 됩니다. 회사에서는 정사원들의 고과를 실적 우선이 아니라 노동조합 탈퇴한 인원을 갖고 프로테지를 매기고, 그런 지국장한테 고과 일순위를 줍니다. 밤 12시에 집에 찾아와서 “우리 집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나 이번에 고과 받아야 되니까 제발 탈퇴 좀 해줘.” 그러면서 탈퇴자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조직이 많이 힘들어지고 2007년 12월 21일부터 농성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제가 마지막 수업을 한 게 2007년 12월 21일인데, 제가 마지막 수업을 한 날짜와 저희 농성 일자가 같아요. 그 날, 같이 일했던 관리자들이 와서 저희 천막을 부수고 싸우면서 제가 상해를 입고 그 이후로 수업을 못 가게 된 거에요.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그랬다는 게 굉장히 큰 상처로 남아요. 재능에는 6개월 간 휴직제도가 있어서 휴직을 하고 복귀를 하려고 했더니 새로 바뀐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수업을 줄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계속 수업을 못 받다가 2010년도에 재능교육이 정식으로 해직 통보를 날렸습니다.

2005년 대법원이 ‘학습지교사는 근로자가 아니며, 학습지노동조합은 노조법상 노동조합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이후 재능교육 사 측은 학습지노동조합을 ‘불법임의단체’로 규정하여 노조 탄압을 해왔다. 2007년 12월, 재능교육지부는 학습지 교사들의 임금삭감을 야기하는 신수수료제도에 반대하고 재교섭을 요구하며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하였고, 사 측은 구사대와 용역들의 폭력적인 조합원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2008년, 재능교육 사측은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파기하기에 이른다. 그 사이 단식투쟁 후유증으로 위암에 걸린 정종태 전 위원장이 2005년 조합원 곁을 떠나고, 부당영업 강요와 위약금 문제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한 교사가 투신자살 하는 일이 있었다. 또, 올해 초에는 이지현 조합원이 암투병 중에 조합원들 곁을 떠났다.

정말 힘든 거는 그 다음날 또 그 자리에 가는 거예요

저희가 용역깡패들 얘기를 많이 해요. 사실 용역깡패들 때문에 힘들었고, 구사대들 때문에 힘들었고, 그때마다 달려와 주신 연대단위 정말 고맙죠. 저희가 제일 힘든 건 뭐였냐면요. 용역깡패 관련해서 우리 조합원들 사이에도 서로 감추는 것들이 있어요. 차마 조합원들끼리도 얘기 못하는 부분들... (울음) 음... 폭행을 당하고 쓴 소리를 하는 그거는 견딜 수 있어요. 그 자리만 모면하면 되니까. 근데 정말 힘든 거는 그 다음날 그 시간에 또 그 자리에 가는 거예요. 그 자리로 가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용역들을 대해야 되는 거죠. 왜냐면 제가 절대로 질 수 없으니까. 내가 이겨야 되는 자리기 때문에, 내가 물러설 수 없는 자리기 때문에. 어제 무슨 일이 있었고, 어제 이 사람이 나를 때리고, 이 사람한테 내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고, ‘칼 들고 어쩌고 밤길 조심해라’ 이런 거 수차례 듣고 했어도 그 다음날 가서 그 다음 타임에 가서 선전전을 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래. 니네 해봐. 나는 계속 이 자리에 올 거고, 매일매일 이 자리를 지킬 거야.’ 하는 거죠.

지금 생각하면 그랬던 게 너무 힘들었던 거 같아요. 저희가 혜화동 그 외진 곳에서 일대일로 용역과 붙고 싸우고 했던 시기를 지나고 시청에 나오니까 숨을 쉴 수가 있는 거예요. 이제 그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혜화동에 가서 다시 한판 붙고 싶고 마음은 항상 있습니다.

서울시청 재능교육 사옥 앞 재능교육지부 천막농성장 

연대란 그 자리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제가 쌍용차에 오는 이유는 그런 거 같아요. 어떤 아픔들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같이 있어주고 하지만, 사람들이 가고 난 빈자리를 지켜보는 동지들의 마음이 어떠할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 이곳에 안 올 수가 없어요.

저희 투쟁에 연대했던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는데, 성균관대 학생행진 동지들한테 참 감사하는 게요. 옆에 있으면 오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거든요. 저희가 침탈을 당하거나 용역깡패들한테 맞거나 하면 문자를 막 날리잖아요. 하지만, 여러분들도 그런 일 많이 겪으셔서 알다시피 막상 달려오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상황이 다 종료된 상태잖아요. 근데 행진 동지들은 항상 와요. 자기들이 아무것도 할 게 없는데도 그 자리에 항상 와서 ‘무엇을 할까?’ 고민해요. 누군가에게 또 전화를 해요. “가서 매직 가져와. 가서 화이트보드 가져와. 뭐 가져와.” 해서 뭐든지 만들어서 이 상황을 알리려고 해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저희 농성장에 오고 있어요. 저는 그 동지들한테 연대를 배웠어요. ‘아, 연대를 이렇게 하는 거구나. 그래 맞아. 내가 어찌됐건 그 자리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이 사람들한테 필요한 걸 찾아서 해주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그것만큼은 내가 꼭 해야 되겠다.’ 그래서 저도 연대를 하고 있어요.

8월 23일 태풍 볼라벤이 오던 날 재능교육 농성장에서 함께 하고 있는 재능교육지부

노동조합 없이 현장에 돌아가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여러분들한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저희가 농성이 길어지잖아요. 저도 그러고, 저희 지부장님도 발언하면서 잘 울잖아요. 그걸 불쌍하다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다음 설에는 재능 동지들이 집에서 따뜻하게 지냈으면 좋겠고, 다음 명절은 이곳에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 많이 하세요. 저는 그렇게 얘기해주시는 거 별로 반갑지 않아요. 저희는 싸울 만큼 싸웠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분명히 해야 될 게 있어요. 복직도 해야 하고, 단체협약 원상회복도 해야 합니다. 제가 아까 노동조합이 있었을 때, 재능교육 선생님으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했잖아요. 저한테 노동조합 없이 현장에 돌아가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복직은 시켜줄게” 라는 유혹이 있잖아요. 그러면 “그거 가지고 안 된다”고 옆에서 같이 채찍질 해주셔야 해요. “제대로 싸워서 너희들이 들어갈 수 있게끔, 너희들이 만족할 만한 안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게끔 해라. 지금까지 버텼는데, 앞으로도 버티고 더 열심히 싸워라.” 여러분들이 그렇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 항상 같이 하겠다. 그 자리에 내가 있어줄게.” 라고 해주시는 게 가장 최고의 연대 같습니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요. 제가 여러분들께 잘하는 것만 말씀드린 것 같은데, 저도 항상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이름을 가지고 현장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민희 씨를 포함한 12명의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은 단체협약 원상회복과 해고자 전원복직을 요구하며 서울시청 재능교육 사옥 앞에서 11월 6일 현재 1783일째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1월 1일, 여민희 씨는 그동안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 학습지노조와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8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이 ‘학습지교사들은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한 것이다. 이는 재능교육이 이들 노동자들을 정당한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한 것이 부당노동행위임을 인정한 판결인 동시에, 그동안 부정해왔던 ‘특수고용 노동자’라 불리우는 학습지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판결이다. 비록,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여민희 씨는 ‘불법단체의 회원’이 아닌 당당한 ‘노동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 너무도 반가웠다. 250만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되는 판결이었다. 자신과 타인의 힘듦을 저울질 하지 못했던, 노동조합 없이 현장에 돌아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던 바보스러울 만큼 착하고 우직했던 그녀가 옳았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