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공장 앞 천막농성투쟁이 122일째 진행 중이던 10월6일, 또다시 희망버스가 부산을 향했다. 이번 희망버스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기간 중에 ‘영화인’들이 주체가 되어 시동을 다시 건 것이며, 지난해 국제영화제기간 중에 한진중공업을 방문했었던 것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난해 방문 시에는 김진숙 동지의 크레인 농성이 진행 중이던 때였으며, 올해는 금속노조 한진지회 조합원들의 천막농성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치열했던 투쟁의 결과로 한진중공업은 올해 11월까지 정리해고자들을 복직시키기로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러나 한진 현장의 현재 상황은 이러한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까 하는 불신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러한 불신이 노동자들을 천막농성투쟁으로 나서게 한 것이다. 2012년 6월 8일 금속노조부양지부 한진지회가 천막농성투쟁에 돌입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그러나 지회집행부 출범 8개월째 노사 간의 진지한 교섭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형식적으로 교섭에 임하며 복수노조를 배후조종하여 조합원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부당노동행위를 수없이 자행했습니다. 그래도 지회는 인내하며 물량수주와 공장정상화를 기대하며 힘든 시기를 묵묵히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초에 집행된 강제휴업발령자에 대해 어떤 협의나 복귀계획도 없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기약 없는 휴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장직 대다수 직원 휴업에 이어서 사무기술직 또한 대량휴업발령으로 이미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고 남아 있는 직원들조차 회사의 전망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상선부분 생산직 전 사원을 방산부분으로 강제발령내고 상선의 모든 물량들을 필리핀 수빅 조선소로 보내고 수주노력 또한 수빅 조선소만 진행될 뿐 영도조선소에 대해서는 어떠한 계획도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 정리해고 합의 후 회사 정상화와 현안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자며 진행된 성실교섭시기에 복수노조를 배후조종하여 노노갈등을 조장하고 단협 일방해지와 정리해고 투쟁과정을 불법으로 몰아 지회에 대하여 158억 손배소를 제기하여 민주노조를 무너뜨리고 협력적인 어용노동조합을 이용하여 노조무력화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진중공업지회는 영도조선소 정상화와 1차 휴업종료 및 업무복귀 약속이행촉구, 158억 손배소 철회, 성실교섭 촉구, 단협해지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정문 천막농성에 돌입합니다....”<한진중공업지회 현장의힘. 477호>

복직을 약속한 11월이 코앞에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한진 자본은 복직을 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는커녕 여전히 수주물량을 필리핀의 수빅 공장으로 빼돌리고 있었으며 부산공장의 수주물량은 제로상태이다. 또한 한진 자본은 민주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공장 안에 복수노조(어용)를 만들었고 노동자들 간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켰다. 한진 자본의 이러한 태도는 또다시 갈등과 긴장을 높여가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 발맞춰 정리해고투쟁을 장기간 펼치고 있는 한진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고 한진 자본에 대해서는 약속한 11월까지 해고자들의 복직을 반드시 이행하라는 압력을 가하기 위하여 ‘나는 네가 지난 가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슬로건으로 희망버스를 조직한 것이다. 

희망버스는 이날 오후 3시에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해운대 ‘영화의 전당’앞에서 영화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집회를 펼쳤다. 집회에서는 박준, 선언, 우창수 등의 공연과 변영주, 김조광수 감독 등의 발언이 있었다. 최진욱 영화산업노조위원장은 “영화진흥회 등의 공공기관이 부산으로 이전되는 등 영화산업을 부산으로 집중하고 있는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우리 스텝들이 영화제를 보이콧할 수도 있다. 스텝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영화제도 못한다”며 한진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저녁 7시, 희망버스는 영도 한진중공업 앞에서 투쟁문화제를 가졌다. 금속노조 차해도 한진 지회장은 발언에서 “사 측이 약속이행에는 관심 없고 158억 3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노조에 청구를 하고 복수노조를 앞세워 한진중공업을 정상화했다고 언론플레이를 하며 정리해고자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고 분노하였다.

 희망버스참가자가 많은 인원은 아니었으나 국제적 관심이 집중되는 영화제기간에 영화인들이 중심이 되어 한진중공업의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주목하게 만들고 오랜 세월 투쟁으로 지친 노동자들을 격려하며, 한진 자본에게는 복직약속을 이행하도록 여론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도 장기간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었다는 점이다.

한편, 지난해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투쟁에 5차례에 걸쳐 참여하였으며,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현차 비정규노동자투쟁 등에 참여하여 무기력에 빠진 노동조합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었다. 이에 대한 정부의 탄압 또한 대단했고 아직도 많은 동지들이 기소되어 재판 중에 있다. 김진숙, 송경동을 포함한 정식 기소자들은 15명이며, 150여명이 약식기소 되었고 벌금 액수만도 1억 8천만 원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으며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송경동, 박래군, 정진우씨의 공판이 헌법재판소에 ‘야간시위 위헌제청’ 건으로 계류 중이어서 재판은 중단된 상태이며 나머지 기소자들도 야간시위 위헌제청건의 판결이 나와야만 재판이 속개될 전망이다. ¹⁾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진중공업 내에는 두 개의 노동조합이 있다. 지난해 정리해고반대투쟁이후 회사 측의 사주로 새로운 ‘한진중공업노조(김상욱 위원장. 이하 어용노조)’가 독립적인 기업별노조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어용노조는 노사상생의 기치를 전면에 내걸며 기존의 산별노조와 대립하고 있다. 한진자본의 협박과 회유가 작용한 결과 어용노조의 조합원수도 전체 701명 중 571명의 가입으로 80%를 넘겨 교섭대표권을 가져갔고 민주노조는 교섭권마저 박탈당한 채 천막농성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회사는 교섭진행 중에도  어용노조가 대표권을 가지게 하기 위해 관리자들을 동원하여 조합원들을 금전적 회유와 휴업협박으로 일주일 만에 과반수 노조가 되었다. 그리고 교섭권이 넘어간 9월 초부터 단 20일 만에 4년 동안 풀지 못했던 임단협을 해결하였고 이를 마치 금속노조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대대적으로 언론에 선전해 대고 있다.”<한진중공업지회 현장의 힘 479호>

“...올해 초 복수노조(어용)가 들어서면서 조합가입을 위해 휴업제외, 빠른 휴업복귀 그리고 1,000만원의 생활안정자금을 이용하여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합원들을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한진중공업지회 현장의 힘. 478호>

그러나 생활고에 직면한 민주노조조합원들을 어용노조로 회유하기 위해 사용한 수법은 사기였음이 곧 폭로된다. 조합원을 어용노조로 회유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생계지원금 1천만 원은 어용노조가 말했던 ‘공돈’이 아니라 이후 갚아나가야 할 대출금이었던 것이다.

“...드디어 복수노조가 말한 그 공돈의 실체가 드러났다. 얼마 전 퇴사한 조합원의 말에 의하면 ‘사기 당했다. 완전히 속았다’라며 분해하였다. 설마 퇴직금에서 현재까지 지급받은 생계지원금 600만원을 공제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한진중공업지회 현장의 힘. 478호>

어용노조는 교섭대표권을 주장하며 사 측과 교섭에 나섰고 지난 9월 27일 임단협을 체결(82.7%인 422명의 찬성)했다.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동의도 묻기 전에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한진중공업 노사가 4년 만에 극적으로 임단협을 타결했다”라는 속보를 쏟아내는 언론플레이를 펼치는 치밀함도 보였다. 합의내용은 ‘기본급 15%인상, 생활안정지원금 1,200만원 지급, 공휴일 축소, 경조사지원금 인상’ 등이며, 합의서 조인식에서 한진 자본과 어용노조는 “노사 힘을 합쳐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력 하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기존의 산별노조(민주노총금속노조 한진지회; 차해도 지회장)는 어용노조의 합의내용이 “김주익열사의 목숨과 맞바꾼 단협을 후퇴시킨”것이라고 비판하며 이번 교섭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잠정합의안을 자세히 보면 어용노조를 만들고 힘을 실어주기 위한 회사의 눈물 나는 노력들이 곳곳에 보인다. 조합원들의 기대에 부흥하는 것처럼 임금인상이나 고용협약서를 완성시켰다. 지금 어용노조는 4년간의 임금인상안으로 기본급 15%라는 파격적인 인상안을 받아들이고, 열사들의 목숨으로 지켜왔던 단체협약을 포기하였다. 징계위원 노사동수(삭제), 휴일축소, 장해보상 삭제 및 의료비 축소라는 결과물을 받아들고 조합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 또한 작년 11월 정리해고 합의당시 손해배상 158억 원의 문제는 임단협에서 별도로 논의하게 되어있었으나 논의가 되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는 분명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말살하려는 정책이다“<한진중공업지회 현장의 힘.479호>

“회사는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 공동선언문을 통해 어용노조로부터 무파업 선언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어용노조는 무파업 선언으로 노동조합의 기본권조차 포기한 협약임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무파업을 회사에 선사하면서 회사로부터 받은 건 없다”<한진중공업지회 현장의 힘.479호>

어용노조의 배신적 행위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번 영화인의 희망버스에 대해서도 “쟁의권이 없는 한진중공업 금속지회가 영화인들까지 끌어 들여 집회를 여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성명을 내었다. 또한 어용노조는 10월 9일 민주노조의 투쟁거점인 ‘천막’을 철거하라고 경고장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서 출근선전전시간에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며 투쟁을 방해하고 천막철거를 위한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다. 한진자본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이러한 어용노조집행부의 반동적 행동은 자기조합원들로부터도 비난받고 있다. 

“...회사정상화 및 조합원 고용보장에 아무런 실익이 없는 천막농성을‘쟁의권이 없는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가 계속하는 것은 한진중공업 지회 스스로가 난관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 노동조합은 교섭대표노동조합으로서 한진중공업 지회에 조속히 천막농성을 중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만약, 한진중공업 지회가 이를 무시하고 지속적으로 무책임한 행동을 한다면, 조합원(575명)의 이름으로 모든 권한을 동원하여 천막을 철거 할 수밖에 없음을 정중히 경고하오니 이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어용노조가 민주노조에 보낸 10월 9일자 공문>

한진자본에 모든 것을 위임하고 앞장서 반동적 실천을 행하고 있는 어용노조의 존재기반은 자본이 던져주는 떡고물일 수밖에 없다. 그 떡고물의 출처가 필리핀 수빅공장으로부터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으나 깊어만 가는 세계공황 속에서 조선업계 또한  침체로 빠져들고 있으니 수빅공장이라고 이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한진자본은 영도공장을 폐쇄하는 것이 최종목표이다. 이러한 사정들은 어용노조를 위한 물적 기반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어용노조에 몸담을 수밖에 없던 조합원들의 불만도 집행부의 노골적인 어용행각 때문에 점점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어용노조와 한진자본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다.

달라진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1차 희망버스투쟁 시 공장담장을 넘어 진입하였던 연대단위가 무서웠던 모양인지 공장을 둘러싼 담벼락의 높이가 훨씬 더 높아졌고 담장 위로는 철조망까지 견고하게 둘러쳐졌다. 공장정문은 감옥 문을 연상케 하는 육중한 철문의 요상스런 출입 장치로 인해 살벌함이 가득하다. 한진자본이 어용노조까지 동원하면서 공격적 탄압을 지속하는 한 측면에는 이렇게 끈질기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하여 방어벽을 쌓아야만 할 정도로 두려움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세계공황의 깊이가 더해만 가 계급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현 정세에서 한진자본이 느끼는 위기감 역시 여타의 자본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자본의 위기감의 노출이 곧 노동자계급의 희망의 전조임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구조조정과 노조탄압의 근본에 생산력 발전이 초래한 과잉생산공황의 모순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이러한 자본의 모순은 노동자계급의 권력에 기반한 생산수단의 사회화만이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해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을 갖지 못한다면, 지금껏 그래왔듯 임금노예의 족쇄를 끊어내기엔 더 많은 시행착오와 고통이 연장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해 11월까지 해고자를 복직시키기로 합의한 내용을 한진자본이 이행할 것인지의 여부는 이제 코앞에 닥쳤으니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합의내용을 무시한다면 투쟁은 더욱 확대되고 강도 높게 전개되어야만 할 것이다. 대선정국의 한복판에서 한진노동자들의 투쟁이 다시 한번 전국을 흔들 가능성은 열려 있다. 투쟁하는 현장을 중심으로 대선투쟁을 돌파해 나가자는 결의들이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염원하는 활동가들에 의해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선정국의 투쟁기조와 맞물려 지난해 치열했던 희망버스와 같은 투쟁이 새로운 계급적 변혁적인 질로써 재조직되어 한진노동자들의 투쟁, 풍산마이크로텍²⁾ 정리해고노동자들의 투쟁 등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12. 10. 14)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