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 정세의 기본성격

* 4.11총선은 현상적으로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으나 실은 경제위기 속에서 점증하는 대중의 불만을 보여주었다. 이는 새누리당의 의석 수 감소로 나타났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의석 수의 증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4.11총선은 야권연대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었는데 자유주의세력과 개량주의세력이 전면적으로 연합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반동적 질서가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심화되는 경제위기를 기초로 대중의 불만이 지속적 성장할 때, 그것은 변혁적 세력의 성장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 한국경제는 현재 위기의 폭발을 향해 다가서고 있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은행위기로 확산되고 나아가 동아시아의 제조업이 세계무역의 정체 혹은 감소로 인해 위기에 처해 있다. 즉, 세계대공황이 금융상의 위기를 넘어 실물경제로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 경제는 이렇게 수출입의 감소, 내수의 위축, 한국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중국경제와 일본 경제의 위기상황으로 인해 사면초가에 몰려 있고 이러한 상황은 일정한 시점이 되면 한국경제의 위기의 폭발을 불러올 것이다.

* 한국 경제의 위기의 폭발은 97년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반동적 질서, 정리해고,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유연화정책 등 기존의 질서가 위기에 처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지배질서의 위기를 뚫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이 폭발할 가능성을 말한다.

2. 그간의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평가

*최근의 통합진보당 사태는 그간의 진보정당운동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말한다. 의석수의 증가를 위해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연합도 마다하지 않았던 통합진보당의 내적인 모순으로 말미암아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 출발하여 진보신당의 분당,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결성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의 역사는 일차적으로 한국의 진보역량의 성장의 표현이었다. 80년대의 변혁운동과 노동자투쟁의 성장이 90년대의 쏘련 붕괴라는 세계사적 격동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질서에서 일정하게 영향을 미치며 진보정당의 결성으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 그러나 민주노동당 등으로 대표되는 진보정당운동은 동시에 진보운동의 한계를 보여주었는데 진보정당은 의회주의 노선을 걷고 민주노총은 조합주의 정치를 하는 두 축노선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운동진영이 변혁의 전망을 점차 상실하는 가운데 진보정당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과 투쟁을 보여주지 못하고 의석수에 목매는 양상이 빚어졌던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진보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며 자신의 조합주의 정치를 합리화했던 것이 그간의 역사였다. 이로 인해 현장이 무너지고 대중운동이 쇠퇴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운동의 쇠퇴는 이명박의 집권, 4.11총선에서 박근혜의 승리라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개량주의 노선, 의회주의 노선을 걷는 진보정당에서 조직적 패권의 대두는 필연이었다. 이념적 헤게모니를 갖지 못하고 변혁의 전망을 상실하면서 개량주의적 흐름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조직적 패권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던 것이다. 조직적 패권으로 인한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의 분리, 최근의 통합진보당의 사태는 이러한 모순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정당운동의 한계 봉착은 단지 통합진보당의 문제만이 아니라 운동진영 전체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최근의 종북논란, 통합진보당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회의가 운동 전체에 대한 불신과 회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따라서 통합진보당을 비판하면서도 전체 운동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4.11총선 후 다양한 당건설 논의의 분출은 이러한 점에서 필연적인 것이다.

3. 4.11총선 후 현재의 당건설 논의

*총선 후 일차적인 반응 혹은 대응은 진보정치와 노동정치의 복원에 대한 모색이었다. 그러나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를 계기로 다양한 당건설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진보신당은 현재 당의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를 제외하고도 노동전선 주도의 당건설 논의, 최근의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 활동가 모임’이 제기되고 있고 사노위, 노동해방실천연대 등도 당건설 노선을 갖고 있다.

*이러한 당건설 논의의 공통점은 그간의 진보정당운동을 비판하면서 의회주의, 개량주의를 넘어서는 변혁적인 계급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은 그간의 운동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단지 진보정당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까지 포함하고 있다. 쌍용차노동자의 77일 파업, 현대비정규직 투쟁, 김진숙 동지의 크레인 농성 투쟁에 있어서 민주노총이 연대파업을 조직하지 못하고 구경꾼으로 머물렀다는 사실 등에 대한 비판은 민주노총의 현재의 모습이 조합주의정치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노동전선의 경우 변혁적 노동자계급 정당을 현장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서 건설하자는 입장을 제출하고 있다. 2012년 말까지 토론회 등으로 흐름을 만들고 2013년에 당건설 주체를 만들자는 입장이며 현재 이러한 대오가 전국에 걸쳐 잠재적으로 1000-2000 명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노위와 노동해방실천연대 등의 사회주의 조직은 당건설을 표방하고 있는데 추상적인 변혁적 당을 넘어서 사회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당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현재 크게 힘을 받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이는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통일성의 부족,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의 대중적 기반의 부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4. 노동자계급이 지향해야할 당의 성격

*통합진보당의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진보정당운동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전개되는 당건설 논의는 정세의 요구, 대중의 요구에 기반하는 것이다. 노동전선의 논의나, 최근 제기된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 활동가 모임’의 경우 모두 대중운동에 기초한 논의이다. 이러한 흐름이 당건설의 성격의 측면에서 제기하는 것은 향후 건설될 노동자계급의 당의 성격은 일차적으로 대중운동에 뿌리박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의 현실적 투쟁에서 성장해온 선진 대중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조합주의 정치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는 것인데 조합주의정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변혁적 성격, 변혁에서의 주도적 성격을 발전시켜야 함을 말한다.

*둘째, 그간 진보정당운동의 한계 혹은 문제로 지적되었던 의회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의회를 활용하자는 것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회주의의 본질이 대중을 표 찍는 기계로 전락시키는 것을 통해 운동 전체를 체제내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변혁의 전망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혁의 전망의 수립은 전투적 조합주의를 넘어서는 것을 요구하는데 투쟁에서는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정치적 성과는 개량주의와 자유주의세력이 차지하는 양상을 끝내기 위해서는 전투적 조합주의를 넘어서는 변혁의 전망을 확보해야 하고 그럴 때만 현실적으로 의회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가능하다.

*세째, 향후 건설될 노동자계급의 정당은 이념의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당이 대안적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명확한 전망, 대안적인 이념의 제시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념을 명확히 할 때만 노동자계급의 당의 정치적 힘이 솟아나올 수 있다. 그러나 대안적 전망과 이념은 한 순간에 만들어질 수는 없고 따라서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는 세심하고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네째, 향후 건설될 노동자계급의 당은 기존의 정파적 질서를 극복해야만 한다. 한국의 운동에서 기존의 정파는 많은 역할을 해왔다. 반동의 시기에 사회주의의 기치를 고수하고 운동의 선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이러한 모습이 현재의 정파적 질서에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운동에서 정파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분열되어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대중적 접근이 봉쇄되어 있어서 사회주의 기치를 내건 활동의 전면화가 어렵고 따라서 고립적인 실천이 강제된다는 것 때문이다. 이차적으로는 사회주의 사상의 대중화가 미약하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사회의 운동의 역사가 진보정당의 경험을 제외하고 당적으로 통일된 실천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의 당건설은 이러한 정파적 질서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하고 대안사회를 지향하는 모든 세력은 서로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당의 울타리에 포괄되도록 지향하는 것이 필요하다.

5. 당건설의 조건에 대하여

*노동자계급의 변혁적 운동은 사상, 정치, 조직을 요소로 한다. 향후 건설될 당 또한 사상, 정치, 조직에서 노선을 확고히 세울 때만 현실화될 수 있다.

*먼저, 사상적 측면을 보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일 수밖에 없는 사회주의 사상의 대중적 권위가 크게 무너져 있다. 이것이 현재 노동자계급의 변혁적 당건설에 있어서 어려움을 가져오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사상을 대중화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경주될 때 노동자계급의 변혁적 당은 힘을 받을 수 있다.

*한편 한국에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혹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지향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사상적 통일성은 매우 취약하다. 쏘련이 사회주의였는지, 아니면 자본주의였는지에 대해서도 공통된 인식이 없다. 이는 ‘사회주의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통일된 인식이 없다는 것으로서 현재 우리 운동진영의 사상적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이다.

*둘째 정치적 조건을 보면 현재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국가보안법이 유지되는 상태에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한국의 정치지형이 4.11총선에서 확인되었는데 최근의 종북논란에서 보이듯 반동적인 이념공세가 심하고 또 해방연대에 대한 탄압에서도 보이듯 최소한의 사상의 자유마저 억압하려 한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변혁적인 당건설은 의회주의적인 진보정당과 달리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탄압을 뚫어야만 한다. 국가보안법을 위시한 제반의 악법에 의한 탄압을 뚫을 때 변혁적 당건설은 가능할 것이고 또 그러한 투쟁은 변혁적 당에 대한 대중적 기반을 확장시켜 줄 것이다.

*세째, 현재 당건설에 합류할 수 있는 조직적 대오는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사회주의 혹은 적어도 반자본주의 지향의 선진노동자의 대오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숫자가 당건설의 핵심적 관건은 아니며 반대로 무리하게 조직적 대오를 확대하는 것은 당적 통일성의 제고에 해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 당적 통일성을 끊임없이 제고하면서 그를 기초로 서서히 조직적 대오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6. 당건설의 방법론

*당건설이 힘있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현실의 투쟁전선과 당건설 운동이 통일되어야 한다. 당이 현실화하고 또 대중적 기반을 갖기 위해서는 현실의 제반의 투쟁전선에 헌신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현실의 투쟁전선이 강화되지 않는 상태에서 당건설 논의는 탁상공론이다. 20세기 노동자계급 운동의 역사는 당은 사상의 통일을 핵으로 하지만 오직 현실 전선과 결합될 때만 힘을 받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즉, 전선과 당의 변증법적 관계를 구체화하는 것이 당건설에서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향후 건설될 당이 변혁적 당이 되기 위해서는 전투적 조합주의를 넘어서는 변혁의 전망을 가져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요구는 있지만 변혁의 전망을 가지지 못한다면 다른 여타 계급들을 동맹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 오직 변혁의 전망을 가질 때만 당의 성립이 가능하고 부르주아지를 제외한 여타 계급을 자신의 주위로 끌어들일 수 있다.

*2012년의 정세에서 노동자계급의 당건설 전망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8월 민주노총 총파업 등 현실의 대중투쟁을 성공시키고 상승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선진 노동자의 전투성을 고취하고 현재의 반동세력의 이념적, 정치적 공세를 극복하는 것은 오직 대중투쟁의 성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특히 8월 총파업은 그간 10여년의 대중운동의 쇠퇴에 반전을 이루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현재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정세에서 반동에 의한 질식인가, 아니면 노동자계급의 전진인가를 가름하는 것이 8월 총파업이다.

*현재의 정파적 질서에서 당건설은 양날개의 전략을 가져야 한다. 먼저, 기존의 정파, 정치조직들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의 본질, 역사에 대한 탐구, 사회주의 사상의 대중화, 필수적인 정치적 실천 등을 정파들은 지속적으로 강화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파적 실천을 강화한다고 저절로 당건설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동 진영 전체의 차원에서 당건설의 전망을 세워나가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사상, 정치, 조직의 차원에서 어떻게 노선을 수립해야만 당건설이 현실화될 수 있는지 공통분모를 세워나가야만 당건설에 접근할 수 있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