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심화되는 경제공황의 성격

2008년 발발한 세계대공황이 고비를 맞고 있다. 리먼 쇼크 후에 세계 각국에서 긴급하게 구제금융을 투입하여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의 세계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고 다시 세계경제가 회복되는 듯했으나 작년부터 본격화되는 세계 각국의 재정위기로 인해 세계대공황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재정위기는 단지 국가의 빚이 늘어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재정위기는 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최후의 보루인 국가의 기능이 급격히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에서 재정위기가 심화되자 그리스 정부는 자국의 독점자본들을 살리기 위해 구제금융을 신청하며 그 대가로 가혹한 긴축정책, 즉, 노동자, 민중에 대한 수탈정책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그리스 사회는 격렬한 계급투쟁의 과정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단지 그리스만이 아니라 스페인에서도 나타나고 있고 나아가 이탈리아, 프랑스 등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모든 나라에 예고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과 세계 각국에서 심화되는 재정위기는 세계대공황에서 일정한 질적인 전환을 야기하고 있다. 재정위기가 단지 금융상의 위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물경제, 즉, 상품의 생산과 교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경제에서 동아시아 경제는 중국을 선두로 제조업의 강화를 기초로 수출을 증대시키는 것을 통해 발전해왔고 그에 따라 세계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왔는데 이러한 세계경제 질서 자체가 대공황의 발전에 따라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즉, 재정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세계의 무역이 정체 혹은 축소되고 있고 이에 따라 동아시아의 제조업이 위기에 처하고 있는 것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중국경제가 급격히 위축되어 소위 ‘경착륙’이 회자되고 있고 일본경제도 무역적자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이다. 중국경제의 급격한 하강은 단지 동아시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경제의 버팀목이 무너진다는 것으로서 이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질서를 급격히 교란시킬 것이다. 일본경제의 위기는 한국경제에 대해 치명적인데 즉, 일본의 무역적자로 인한 일본 엔화의 약세기조는 한국의 수출을 크게 잠식할 수밖에 없어서 경제 전체에서 수출의존도가 극단적으로 높은 한국경제를 심대하게 압박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가 본격적으로 대공황의 파고에 휩쓸리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은 한국의 상황을 극도로 긴장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4분기 한국의 경제는 매우 위축된 상황을 보였다. 수출증가율이 3%에 머물러서 극히 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고 내수는 사실상 마이너스 상태이다. 내수가 이렇게 부진한 것은 한국경제의 구조 자체에서 비롯되는 면도 있지만 최근에는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증가로 인한 탓이 크다. 이렇게 내수와 수출 양 부분에서 부진한 양상을 보이는 데다가 세계의 무역 자체가 부진하고 나아가 한국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중국과 일본 경제가 위기상황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 한국경제를 사면초가로 몰고 있는 것이다.

4.11총선에서 성립한 체제의 모순

이러한 한국경제의 상황은 일정한 시점에 이르면 위기의 폭발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97년 외환위기는 자본자유화로 인한 외자도입의 급격한 증대를 기초로 독점재벌들이 과잉투자를 하고 일본의 엔화가 평가절하되자 한국의 수출이 급격히 약화되는 상황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폭발했던 것이다. 이는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적 성격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인데 한국경제의 이러한 대외의존적 성격은 10여년이 지난 지금 더욱 더 심화되었고 나아가 지금의 위기는 세계경제 전체의 위기라는 점에서 한국경제의 위기의 폭발은 더욱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현재의 한국의 상황은 서서히 위기의 대폭발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4.11 총선은 이러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점증하는 대중의 불만을 보여주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그에 대한 지배계급, 부르주아지들의 대응능력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먼저 대중들의 불만의 증가는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경향의 심화를 보여주었다. 새누리당의 의석수가 지난 총선에 비해 줄어들었으며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의석수가 증가하였다. 이에 대해 야권연대에 목매었던 사람들은 새누리당의 승리라 평가하지만 그것은 부정확한 것이며 선거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점증하는 대중의 불만을 뚜렷이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이 과반의 의석을 확보한 것은 한국사회에서 반동의 경향이 아직도 공고하며 이를 극복할 변혁세력의 힘이 미약하다는 것을 말한다. 반면 지배계급의 일분파로서 독점자본가계급의 좌익을 형성하는 민주통합당의 경우 반새누리당의 반사이익은 얻었지만 민중의 대안으로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한 민주통합당과 연대하여 반MB를 내세우며 야권연대를 주도한 통합진보당의 경우 진보민중진영을 분열시키는 대가로 약간의 의석수를 얻었지만 반MB도 실현시키지 못하고 대안적 세력으로 부각되지도 못했다. 특히 울산과 마산, 창원 등지의 노동자 지구에서 통합진보당이 전패한 것은 이들의 노동자 대표성이 매우 약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태생 자체가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한 것으로서 진보성, 운동성, 노동자성을 크게 약화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총선 결과는 부르주아지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관점에서는 황금비율의 배분이다. 새누리당이라는 반동부르주아 세력이 불안정하지만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자유주의 세력인 민주통합당이 상당한 힘을 확보하여 변혁세력의 대두를 제어하고 개량주의 세력인 통합진보당이 진보민중진영의 성장을 왜곡하고 대중에게 개량의 환상을 불어넣는 체제가 성립한 것이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국가보안법을 유지한 상태에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라는 한국의 정치지형의 순수한 모습이 이번 총선에서 확인된 것이다. 이렇게 4.11총선에서 성립한 체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봉쇄하는데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완벽한 듯이 보이는 이러한 체제는 그 자체의 고유한 모순을 갖고 있다. 먼저 이번 총선에서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50%를 약간 넘는 투표율은 점증하는 대중의 불만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통합진보당이 노동자 지구에서 전패한 것은 노동자계급,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어떤 희망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이번에 성립한 체제는 한국 사회에서 현재의 쟁점을 전혀 해결할 수 없는 체제이다. 한-미 FTA,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 등 쟁점이 되었던 사안들은 이번 총선 결과에 의해 짓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셋째, 이번 총선은 야권연대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지난 10여년간 대중에게 헤게모니를 행사한 자유주의세력과 개량주의 세력이 전면적으로 연합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반동적 질서가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대중들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변혁세력이 성장할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넷째, 이번 총선은 한국사회에서 개량주의 세력의 취약성을 보여주었다. 의석 20석을 확보하여 원내교섭단체를 확보할 것이라는 호언장담과 달리 통합진보당은 13석에 머물렀다. 이는 대중의 상당부분이 아직 개량주의에 환상을 갖고 있지만 개량주의가 한국사회에서 지배적이 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우며 변혁세력의 성장에 의해 얼마든지 개량주의가 분쇄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개량주의는 자본가계급의 물질적 양보라는 물적토대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모순들, 4.11총선의 결과 성립한 체제의 이러한 모순은 향후 대중의 불만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경우 그 체제가 급속히 균열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제는 지난 10여년의 관성을 깨고 조합주의, 실리주의, 개량주의를 넘어서는 노동운동의 급진화, 대안적인 변혁세력의 대두가 요청되는 때라 할 수 있다.

쌍용차 동지들에 대한 슬픔의 감정을 넘어서자.

지난 4월 21일 쌍용차 정리해고 희생자를 위한 범국민 추모제가 평택 쌍용차 공장에서 열렸다. 슬픔의 감정이 집회를 감싸고 있는 가운데 내리는 빗속에서도 많은 참가자들이 끝까지 집회를 지켰다. 지난 3차례에 걸친 쌍용차 포위의 날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투쟁이 쌍용차 정리해고자 동지들의 고통과 절망감을 씻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22번째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쌍용차 자본은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비웃으며 정리해고자를 복직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입사원 채용공고를 내고 있다.

정리해고는 그리고 비정규직은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의 결과이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야 자본의 이윤의 증가속도가 커진다는 것인데 끊임없는 해고의 위협으로써 노동자 투쟁을 무력화시키고 또 비정규직을 양산하여 착취를 극대화하는 것이 그 본질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체제, 착취를 극대화하는 이러한 체제의 모순이 바로 현재의 세계대공황의 진정한 원인인 것이다. 세계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자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에 대해 역관계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그에 따라 그동안 노동자계급에게 양보했던 정책을 철회하고 전면적으로 노동자계급을 공격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이고 노동시장 유연화였던 것이다. 현재의 대공황은 바로 이러한 체제의 모순으로 세계적 차원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소비능력이 급격히 약화된 결과 발생한 과잉생산으로 인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의 심화, 다가오는 한국경제의 위기의 폭발은 이러한 반동적 질서 자체가 위기에 처한다는 것이고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전면적이고 필연적인 격돌을 예고하는 것이다.

죽음의 사슬을 끊어내고 노동자계급의 전진의 시대를 열어가자.

쌍용차 동지들의 죽음은 이 시대의 아픔이다. 자본가들의 이윤추구는 이제는 가히 살인경영의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쌍용차 동지들만이 아니다. KT에서는 구조조정으로 인해 벌써 50명이 넘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번 총선의 결과 자본가들은 이러한 살인경영체제를 개량할 기회를 놓쳤다. 지금은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화장칠을 한 것처럼 단지 찐한 화장으로 대중을 기만하는 것 이상은 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합진보당으로 대표되는 개량주의 세력은 자신들을 믿어달라는 것 이상 하는 것이 없다. 이들은 대중투쟁을 풀무질하는 세력이 아니라 대중투쟁을 잠재우는 세력이다. 

그럼에도 희망은 자라나고 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전환은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도처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는 대중투쟁의 성장, 한국에서 깊어만 가는 대중들의 분노는 이제는 슬픔을 투쟁의 불길로 전화시켜낼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반동의 시대는 이제 막바지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죽음의 사슬을 끊어내고 반동의 어둠을 사르고 일체의 환상을 깨부수고 다시 전진하자!

일체의 거짓된 껍데기를 깨부수고 노동, 연대, 해방을 기치로 새로운 전진의 시대를 열어제끼자!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