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평가

지난 20년간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실패했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지를 바탕으로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분열과 분당 끝에 정파당으로 전락했다. 급기야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한다는 강령을 삭제하고 자유주의 정치세력인 국참당과 합당하여 노동자 계급의 대의를 배반함으로써 실패의 마침표를 찍었다.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실패에 이르게 된 원인을 올바르게 진단하는 것은 이후 올바른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모색하는 데 필수적이다.  

1) 탈변혁, 탈계급, 탈노동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변혁적 목표를 내걸고 계급운동을 발전시키지 못했으며, 기본권과 생존권 확보라는 노동자 계급의 절실한 요구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변혁 대신에 개혁노선을,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이해와 요구가 아닌 민주노총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 중심의 실천을 전개했다. 결국 대중의 삶을 개선하는 데 실패했고 조합원들로부터도 신뢰를 잃었다. 또 조합원들의 주체적인 정치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 결과 이천만 노동자 계급 중 노조조직률은 10% 이하로 떨어졌으며, 노동자 계급의 대다수는 비보장 노동자의 처지로 전락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대중의 지지와 기대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강령과 정책을 지속적으로 급진화하는 대신 계속 탈변혁, 탈계급, 탈노동의 방향으로 그릇된 혁신과 재구성을 추구함으로써, 더구나 고질적인 정파적 분열을 되풀이함으로써 노동자 대중의 지지와 기대를 상실했다. 노동운동이 변혁의 목표를 상실한 이념의 후퇴가 가장 선차적인 실패의 원인이다.

2) 조합원 수동화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운동은 조합원 대중을 정치의 주인이 아니라 고객으로 전락시켰다. 그리하여 노동자 자신은 정치의 주인이 아니었다. 정치활동은 엘리트와 일부 진성당원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조합원 대중은 대상화되어 더 이상 주체적으로 정치투쟁에 나서지 않게 되었다. 민주노동당 초기에 있던 현장분회는 없어졌고 진성당원들 대부분은 돈을 내고 선거에 표를 찍는 활동 정도에 머물렀다.

일부 평등파에서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을 정치세력화 실패의 주요한 문제로 제기하고 있는데, 문제는 ‘배타’적인 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비주체적 ‘지지’ 자체에 있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가 민주노총의 ‘배타’적인 지지에 그 원인이 있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당하여 실제적으로 ‘배타’적 지지가 무력화된 이후에 왜 정치세력화가 실패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지금이라도 ‘배타’적 지지가 아닌 ‘선택’적 지지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개방’적 지지를 하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배타’적이든, ‘선택’적이든, ‘개방’적이든 그 지지의 형태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정치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닌 다른 주체를 ‘지지’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민주노총 조합원 대중을 주체로 세워내지 못하고 대상화함으로써, 진성당원이나 간부 의원개인에게 해결을 대리하게 하는 대리주의, 의회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노동자 계급의 정치화가 아닌 몇몇 상층부의 부르주아 정치화로 귀결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는 패권을 휘두른 자주파 정파든 종북을 빌미로 분당을 한 평등파 정파든 모두가 동일하다. 이것이 정치세력화 실패에 대한 올바른 진단이다.

3) 정파적 분열

정파들이 노동자계급 대중을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의 지지부대로 유지, 온존시킨 것에는 대중을 신뢰하지 못하고 대중을 대상화하여 끊임없이 계급적 이해가 아닌 정파적 이해에 대중을 들러리 세우는 엘리트주의라는 반노동자적 사상이 뿌리 깊게 놓여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분당과 진성당원제 모두 좌․우파의 대중주체 관점이 결여된 엘리트주의의 동일한 행태의 결과일 뿐이다.

노동자 출신이라 해도 이러한 엘리트주의에 물들고 자본체제에 포섭된 관료들은 항상 계급적 이해와 대의가 아닌 이기주의적 분열과 배반으로 노동자 조합원 대중을 희생시켜왔다.

민주노동당은 간부당이든 진성당원 당이든 조합원 대중주체의 관점이 결여된 정치세력화를 한 결과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주체가 아닌 구경꾼으로 전락한 조합원 대중이 어떻게 정치세력화에 희생을 무릅쓰고 나서겠는가?

2.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반대 선언운동에 대한 약평

“3자 통합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 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이하 선언운동본부)”의 성과와 한계를 중심으로 약평하고자 한다. 선언운동본부는 조만간 그동안의 사업 평가와 이후 계획을 논의할 계획이다.

1) 성과적인 면 : 조합원 대중이 참가하는 운동을 통하여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① 선언운동본부의 그동안의 사업을 개괄하면

● 3자 통합당에 대한 입장과 노동운동의 대응방향 긴급토론회(2011년 11월 25일)

● 3자 통합당에 대한 입장과 올바른 노동자계급 정치를 위한 민주노총 각급조직 전현직 간부 및 현장 활동가 1445인 선언(2011년 12월 23일)

● 선언운동본부 구성 및 3자 통합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 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 시작(2012년 1월 6일)

● 선언자 대회 및 토론회(1월 14일)

●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 대응(1월 31일)

● 임시 대의원대회 소집 요구 운동과 임시 대대(3월 22일)

② 3자 통합당에 대한 문제제기, 활동가 선언과 조합원 선언운동이 전개되면서 민주노총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 민주노총 집행부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정치방침이 내외의 반대에 직면하자 정치방침 관철을 포기했다.

● 대신 총선방침에서 정당명부 비례대표에 1당 집중 투표를 통해 통합진보당 배타적 지지를 관철시키려 했다.

● 1월 31일의 정기 대의원대회의 무산 이후 중집에서의 총선방침 표결 강행(2월 8일)과 ARS 설문조사 등 파행적으로 운영하였다.

● 3월 22일의 임시 대의원대회는 집행부가 조직을 방기하고 자주파의 패권분파인 전국회의가 보이콧 하면서 열리지 못했다.

● 민주노총은 책임 있는 대의기구에서 정치방침, 총선방침은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 민주노총 집행부는 지난 2월 8일 중집 결정과 조합원 ARS 설문조사 결과를 가지고 총선방침이 있다고 강변할지 모르나 이미 무력화되었다. 지난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대대 무산 후  대의원들이 집행부를 규탄하고 물러가라는 요구까지 나올 정도였다.

③ 선언운동본부가 민주노총 집행부의 통합진보당 배타적 지지 방침을 무력화시킨 것은 노동조합을 중심에 세우려 노력한 성과이다.

● 선언운동본부에는 공공운수노조연맹, 금속노조, 대학노조, 사무금융연맹 등 거의 모든 산별조직의 전 현직 임원과 간부, 현장 활동가, 조합원이 참가했다. 지역별로도 편차는 있지만 선언운동본부를 구성하여 공동으로 사업을 전개했다.

●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대학노조 등 산별조직과 6개 지역본부의 현직 대표들이 공식성을 가지고 선언운동을 전개했고, 조직마다 편차는 있지만 노조의 현장 활동가들이 실천의 주체로 나섰다. 

● 지역에서 전개된 토론회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나오고, 현장에서 조합원 선언운동으로 진행되었다.

2) 한계적인 면 :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반대에서 나아가 올바른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에 실천적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선언운동본부는 올바른 노동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대안과 관련하여 “토론하자”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것은 선언운동본부 내부에 입장의 차이가 극복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① 3자 통합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반대 조합원 선언운동이 조합원을 올바른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주체를 세우는 과정으로 강조한 입장(대중 주체의 관점)과, 활동가들을 주체로 세우는 과정으로 보고 조합원을 대상화하여 조합원으로부터 3자 통합당을 차단시키거나 조합원들을 선언운동에 단순히 서명 또는 동참시키는 조합원 동원의 입장(활동가 중심의 관점)으로 구별되었다. 

② 지난 시기 민주노총 정치세력화 실패에 대한 평가에서도 배타적 지지 방침 자체를 폐기하자는 입장과 배타적 지지 방침은 배타가 문제가 아니라 조합원의 비주체적 지지가 문제였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③ 대안과 관련하여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아래로부터 현장 중심의 노동자의 정당을 건설하자는 입장과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해야 하지만 2012년에는 계급투쟁, 조합원의 정치투쟁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좌파연대체를 건설하자는 입장으로 갈리었다.

선언운동본부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3자 통합당 배타적 지지 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 정치 실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주력해 온 3자통합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반대 선언 등을 통해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무력화시켜냈다. 이제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올바른 노동자계급 정치 실현을 위한 실천으로 그 중심이 옮겨져야 한다. 

3. 올바른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방향과 실천

“착취와 더불어 무제한적인 탐욕에 기반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는 지금 그 시스템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신자유주의 축적 패러다임만이 아니라 현 단계의 자본주의인 제국주의 체제 그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그들은 반성하고 후퇴할 것인가? 천만에! 저들은 더 악랄하고 야만적으로 이 위기를 벗어나려 할 것이다. 그것은 파시즘과 전쟁의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역사에서 보았듯이 루즈벨트도 세계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2차 세계 대전에 돌입했다. 희망의 전도사를 자처한 오바마가 지금은 전쟁광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동향에서 남한 자본주의는 자유롭지 않다. 다만 선거에서는 이런 진실을 속이기 위해서 여야 보수 정당들을 앞세워 복지 운운하며 착한 인간의 얼굴을 하고 노동자․민중을 현혹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가계급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냉철한 과학적 인식과 강고한 주체의 단결․투쟁력으로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 2012년에는 세계대공황의 제2차 충격파가 예고되어 있다. 또 총선과 대선이 일정에 올라 있다. 노동자․민중의 역동적 진출이 예견되고 있다. 그러므로 1987년이 6월 민주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 및 민주 대통령을 세우기 위한 직선제 선거가 동시에 있었던 해였던 것처럼 2012년을 노동자 대투쟁과 이명박 정권 퇴진 민중총궐기 및 진보 대통령 쟁취를 위한 일전이 동시에 치러지는 한해, 진보변혁적 노동운동이 남한 사회․역사 무대에 다시 등장하는 한해로 만들어야 한다.<2012 진보변혁적 노동운동 출정 선언 중에서>“

총선까지의 대응은 주체의 준비 정도가 미흡해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지지를 무력화시키는 수준에서 대응했다. 그러나 세계대공황과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정세 하에서 그리고 대선에서도 계속 반대하는 수준에 머무를 것인가?

변혁운동이 다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것, 제국주의와 국내 지배세력에 맞서 노동자·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세력으로서 자기의 독자성을 분명히 드러내야 되지 않겠는가?

1) 방향과 목표

① 노동자가 지지하는 정당이 아니라 노동자의 정당 건설 : 진보 정당이 아니라 노동자 정당, 계급정당 건설

노동자의 정당의 상을 이야기하면 누구나 대중정당이고 계급정당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을 전체 당원으로 조직할 가능성과 목적의식성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처럼 대다수 조직 노동자가 당원으로 가입하고 활동하는 말 그대로의 노동자의 정당을 상으로 잡아야 한다.

② 변혁노선은 사회주의 이념 지향과 반제/반자본 민족적/사회적 변혁 노선

우리는 지난 시기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를 인정하고 계급적 해방, 민족적 해방 및 인간적 해방이 실현되는 사회변혁을 지향목표로 하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제국주의 세력의 세계적 지배체제에 맞선 반제/반자본 운동은 국내독점자본의 반민족적 이해에 맞서서 민족적/사회적 변혁운동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③ 노동자 대중이 주인, 주체가 되는 대중적 계급정당: 현장정치활동이 조직의 기초. 노조간부 중심의 진성당원제 폐기. 활동가 정당 지양.

우리는 정치인이나 간부 활동가, 진성당원 정당이 아니라 민주노총 조합원 대중이 직접적 주체가 되고, 노동현장이 활동의 기초가 되며, 투표를 통한 친자본 정권 심판과 더불어 MB 정권 퇴진이나 한미 FTA 무효화를 위한 정치총파업과 같은 대중정치행동을 적극 수행하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추진하여야 한다.

노동자 계급 정당이 아닌 친 노동자 정당에 불과한 이러저런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형태를 취해선 안 된다.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는 가운데 노동자 계급의 대의에 따르는 여러 다양한 운동세력이 함께 대중적 노동자 계급 정당, 투쟁하는 노동자 계급 정당 건설로 집약되어야 한다.

2) 당면 실천

정세가 요구하는 실천이 아무리 엄중해도 주체의 준비정도가 미흡한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급하다고 정파들의 소수화된 엘리트주의적인 운동으로는 안 된다. 현재로서는 선언운동본부가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대중적으로 정치실천을 적극화할 수 있을 것이다.

① 현장에서 아래로부터 대중적으로 정치실천대오를 구성하여 정치실천을 적극화, 일상화하자!

선언운동본부에는 산별조직과 지역본부가 참가하고 있다. 현장활동가, 열성조합원을 정치실천단으로 조직하여 일상적인 정치실천을 전개하자. 그동안 정치단체(조직)의 활동가 중심의 실천단은 있었지만 노동조합인 대중조직에서 정치실천대오를 조직하고 실천하는 것은 민주노총 시대에 오면서 실종되어 버렸다.

② 노동자 계급의 당면한 절실한 계급적 요구를 기반으로(절실한 계급적 요구로는 이천만 노동자 대다수가 비보장 노동자인 상태에서 ‘노동기본권 쟁취’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대대적으로 조합원까지 정치실천단으로 조직한다.

③ 정치실천단은 낮은 수준의 캠페인부터 집회, 총파업 조직과 실천 등 실천사업을 중심으로 실천한다. 

④ 정치실천단 활동은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주체를 세우는 과정이 될 것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