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1권 해제 (11)

에르네스트 만델

번역: 강성윤 (회원)

11. [자본론]과 자본주의의 운명

맑스주의가 경제 분야에서 고전학파와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우월함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론과 역사를 통합시킨다는 점이다. [자본론]이 친구와 적 모두를 끊임없이 매혹시키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적 발전의 장기적 추세―이 장기적 발전을 추진시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주요한 내적 모순들을 포함하여―를 올바르게 예견하는 능력 때문이다. 세대를 거듭하여 끊임없이, 맑스를 ‘비과학적인’ 선입견 혹은 예언의 왕국에나 속하는 순수공론적 일탈이라고 비난하는 자들은¹⁾ 증명의 부담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은, 그들에 따르면 분석적 도구를 전혀 갖지 못했던 한 사상가가 한 세기 반 동안 자본주의의 발전을 결정해 온 장기적 운동법칙을 확실하게 밝혀낼 수 있었다는 수수께끼 같은 사실을 설명해야만 한다.

맑스의 것으로 잘못 간주되었던 이른바 노동계급의 절대적 궁핍의 증가 법칙 외에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관한 맑스의 이론적 결론 중에서 [자본론] 제1권이 처음 출간된 이래 가장 지속적으로 공격받아 온 측면이 이른바 ‘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이론’(Zusammenbruchstheorie)이다.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 베른슈타인적 ‘수정주의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강력하게 도전받았고, 당대의 가장 정통적인 맑스주의자들에 의해 단지 약하게만 방어되었던²⁾ 이 이론은 지난 수십 년 간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저자들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들 모두는 다음과 같은 수사적 질문만을 관례적으로 되풀이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맑스가 예견한 바를 훨씬 넘어서는 적응과 자기개혁의 능력을 보여주지 않았는가?³⁾

이런 식의 주장들은 대체로 한 가지 기본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즉 너무 많은 것을 증명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수많은 공황들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누구도 자본주의가 미래의 공황들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또한 서방의 현재 경제체제를 더 이상 ‘자본주의’로 특징지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를 파멸시키는 공황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기개혁과 적응을 해 온 결과, 자본주의는 새로운 사회적 경제조직으로 자기자신을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관리자본주의’, ‘조직자본주의’, ‘관리사회’, ‘테크노스트럭쳐 지배(technostructure rule)’ 등 이것을 묘사하기 위해 많은 표현들이 그때그때 고안되었지만, ‘혼합경제’라는 용어가 이것을 특징짓는 용어로 가장 빈번히 사용된다.⁴⁾

그러나 [자본론]이 단지 산업혁명 이후 세계 발전의 장기적 경향을 이해하는 데 강력한 도구인 것만은 아니다. [자본론]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본질적으로 대표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정의를 제공한다. 자본주의는 ‘완전경쟁’의 사회가 아닐 뿐 아니라, ‘증대하는 빈궁’의 사회도, ‘사적 기업가들이 공장을 지배하는’ 사회도 아니며, ‘오직 화폐만이 유일한 지배자’인 사회 또한 아니다. 이런 식의 모호하고 부정확한 정의들은, 기본적 문제들을 회피할 수 있게 하며, 오늘날의 서방 경제체제와 [자본론]에서 분석된 경제체제 사이의 관계에 대한 끝없는 혼동을 낳는다.⁵⁾ [자본론]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근본적으로 오직 세 가지 조건들에 의해서만 규정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 생산자 대중이 생산수단의 소유자(이 단어의 경제적 의미에서)가 아니며, 그 소유자들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한다는 사실; (2) 이 소유자들이 상품판매시장에서의 점유율, 수익성 있는 자본투자영역, 원료의 공급원 등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독립된 기업들로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 (3) 따라서 바로 이 생산수단(서로 다른 기업들)의 소유자들이 점점 더 많은 자본의 축적을 위해 생산자들로부터 최대한의 잉여가치를 착취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것은, 일반화된 상품생산과 일반화된 소외라는 조건 하에서, 노동 기계화의 끊임없는 증대, 자본의 집적과 집중,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그리고 주기적으로 재발하는 과잉생산공황을 낳는다는 사실.

이러한 기준에서 본다면, 서방 사회가 여전히 자본주의라는 것, 임금노동과 자본이 여전히 사회의 두 적대적 계급이라는 것, 자본축적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사회의 기본적 추동력이라는 것, 사적 이윤의 착취와 실현이 독립된 기업들의 기본 추진력을 규정한다는 것에 대한 어떠한 의문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서구 사회가 갖는 다음과 같은 측면들, 즉 이 기업들 중 몇몇이 국유화되어 있으며,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경쟁은 ‘불완전’하게 되었으며(본질적으로 더 이상 가격을 낮춤으로써 경쟁하지 않고, 생산비용을 감축하고 분배와 판매망을 확장함으로써 싸우며), 노동자들은 강력한 노동조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폭력적인 사회적 위기 하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자유가 폐지되는 때를 제외하고는)―이 모든 것들은 어떤 식으로도 [자본론]에서 규정된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구조적 특징들의 타당성을 없애거나 감소시키지 않으며, 이 특징들로부터 체제의 모든 기본적 운동법칙들이 나오게 된다. 이 기본적 운동법칙들은 따라서 여전히 유효하다.

구조적 관점에서 본다면, 20세기 마지막 사반세기의 ‘구체적’ 자본주의가 맑스가 [자본론] 제1권의 교정을 마무리했던 1867년의 ‘구체적’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자본론]의 ‘추상적’ 모델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것이 전혀 역설적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자기 자신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독립적인 소생산자들로 이루어진 중간계급은 한 세기 전에는 여전히 중요한 사회계층의 하나였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소멸된 반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종속적인 임금 또는 봉급 소득자들은 현재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에서 경제활동인구의 80퍼센트 이상에 이르며 대여섯 국가들에서는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200개 정도의 거대기업들이 각 제국주의 국가의 경제를 지배할 뿐 아니라, 몇 백 개의 다국적 기업들이 또한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모든 부 중 3분의 1을 자신의 수중에 집중시키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노동생산성과 노동의 객관적 사회화가 증대됨으로써 사적 치부를 위한 가치생산이라는 것이 맑스가 한 세기 전에 예견했던 이상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이 되었으며, 의식적이고 민주적으로 선정된 우선순위에 기반을 둔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원을 계획적으로 절약하여 사용할 것을 세계가, 사회주의의 반대자들까지도 그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실패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⁶⁾

그렇다면 왜 수탈자들은 아직 수탈당하지 않았으며, 왜 자본주의는 고도로 산업화된 나라들에서 여전히 살아남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20세기의 정치사와 사회사에 대한 상세한 비판적 평가를 포함할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맑스는 결코 단일한 경제적 ‘원인’에 따른 한 차례의 ‘마지막’ 공황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어떤 식으로든 급작스럽고 자동적으로 붕괴하리라고 예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명한 [자본론] 제1권의 제32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에서 맑스는 사회 세력들로부터 반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경제적 경향들을 묘사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증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의 증대, 그리고 그 착취에 대항한 조직된 반란의 증대는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는 주요한 지렛대들이다.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객관적 사회화는 집단적 소유와 결합된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협업에 기반한 사회의 경제적 전제조건을 창조한다. 그러나 그 조건들이 자동적으로 어떤 전면적 승리의 날에 그와 같은 사회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사회적 위기의 특별한(privileged) 순간에 체제의 혁명적 전복을 가져오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맑스는 경제적 결정론의 자동적 효과에 대한 환상적 믿음으로부터 어떤 사회사상가보다도 더 멀리 벗어나 있었다. 그는 인간은 거의 제멋대로 그들이 처해 있는 물질적 조건과는 독립적으로 자기 스스로의 역사를 만들었으며 만들어야만 한다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했다.⁷⁾ 따라서 자본주의의 붕괴에 대한 어떤 이론이라도 그것이 맑스주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그 이론은 자본주의의 의식적 전복, 즉 사회혁명의 이론이어야 한다.⁸⁾

[자본론] 제1권의 말미에 있는 제32장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객관적인 내적 모순들이 이 전복을 어떻게 그리고 왜 가능한 동시에 필연적인 것으로 만드는가를 매우 일반적인 용어들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 나머지는, 맑스의 말을 빌어 말하자면, ‘그 수가 계속 증가하며, 또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메커니즘 그 자체에 의해 훈련되고 통일되며 조직되는 계급인 노동자 계급의 반란’이 증대(김수행 역, [자본론] I, 비봉출판사, 2001, p. 1049)한 결과여야만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경제적 모순이 증대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것 사이에는 필수적인 매개, 즉 노동자 계급의 계급의식, 조직력과 혁명적 운동을 수행할 능력(혁명적 지도력을 포함한)의 발전이 있어야 한다. [자본론]에는 맑스주의 이론의 그 부분에 관한 장이 들어있지 않다. 아마도 맑스는 이것을 그가 쓰고자 했으나 결국 초고조차 집필하지 못한 국가에 관한 책에서 논하고자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비록 이 주제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들을 그의 글과 편지들에서 찾아볼 수 있기는 하지만, 맑스는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지 않았다. 이 ‘주관적 요소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일은 그의 가장 재능 있는 추종자들, 그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레닌,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맡겨졌다.

가장 산업화된 나라들에서 오늘날까지 자본주의가 살아남았다는 것은 확실히 자본주의가 맑스가 예상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수명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체제가 [자본론]이 예견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그 체제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폭발적인 사회적 위기들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 반대로, 1905년의 러시아 혁명 이래,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래 확실히, 그러한 위기들은 현대 역사의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특징이 되어 왔다.

이러한 위기들의 와중에 자본주의는 실제로 많은 나라들에서 전복되었고, 러시아와 중국이 그 중 가장 중요한 나라들이다. 그러나 맑스가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이 전복은 자본주의적 공업이 가능한 가장 거대하게 확장된 결과 프롤레타리아트가 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강하게 발전한 나라들, 즉 부르주아 계급 또한 강력한 나라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전복은 오히려 부르주아지가 가장 취약하고, 따라서 사회 세력들의 정치적 관계가 신생 프롤레타리아트가 매우 혁명적인 빈농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우호적인 나라들에서 일어났다. 이 역사적 우회는 두 가지 핵심적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다. 즉 한편으로 제국주의의 발전과 그것이 사회적이나 경제적으로 저발전된 사회에 살고 있는 인류의 대부분에게 미친 효과(불균등 결합 발전의 법칙)와 다른 한편으로 제국주의의 긴 ‘유기적 성장’ 기간(1890-1914) 동안 서방 노동자 계급에게 혁명적 경험이 결여되었던 것과, 이것과 상호연관된 것으로써 개량주의가 성장하고 사회민주주의가 부르주아 사회와 부르주아 국가에 통합됨으로써 1918-23년에 서방에서 최초의 대규모 혁명적 위기가 실패로 끝난 것(무엇보다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이다. 이 실패의 결과, 승리한 러시아 혁명은 고립되었고, 국제노동자계급운동은 스탈린주의로 인한 어두운 단절을 겪어야 했으며, 1950년대에야 느리게 다시 등장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주관적 요소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이라고 부른 것을 상기시키는 한편, 왜 1895-1930년 사이의 기간에 맑스주의 경제이론이 만개한 이후 사반세기에 걸쳐 그 영역에서 거의 완전한 정체가 발생했는지를 또한 설명해준다.

붕괴이론을 둘러싼 논쟁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문제를 혼동함으로써 난항을 겪어왔다. 즉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필연적인가(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적인 경제적 모순들의 필연적 결과인가)라는 문제와 사회주의 혁명이 없다면 자본주의는 영원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한 부정적 대답이 결코 두 번째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고전적 맑스주의자들은, 젊은 시절의 맑스를 따라, 자신들의 예측을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socialism or barbarism)라는 딜레마의 형태로 정식화했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이래 인류가 목격한 사회적 대재앙들은 그러한 예측이 전혀 ‘낭만적인’ 것일 수 없으며, 교환가치 생산, 자본축적, 개인적 치부를 그 자체의 목적으로 하는 투쟁이 갖는 끔찍한 파괴적 잠재력에 대한 명확한 통찰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자본주의 경제의 경제적 붕괴에 관한 구체적 역학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가치생산의 쇠퇴(반(半)자동화의 결과로 생산된 총노동시간이 감소하는 것), 잉여가치 실현에서 곤란의 증대, 재생산과정에 다시 들어가지 않는 폐기물의 증대, 국가적 자원의 고갈 증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 이들 사이의 상호관계는 아직 전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⁹⁾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적응능력에는 명확한 한계들이 있으며, 자본주의가 점차 여러 영역에서 이 한계들에 도달하고 있다는 주장에는 강력한 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1914년 이래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위기들(군사적, 정치적, 사회적, 화폐적, 문화적)로부터 또 다른 반세기 동안 살아남는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론]과 [자본론]이 대표하는 것―즉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식의 가장 높은 수준을 대표하는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결국에는 자본주의를 결합된 생산자들의 계급없는 사회로 대체하는 것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사실이 증명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노사과연》

[편집자 주: [정세와 노동]은 펭귄 판 [자본론]에 실린 에르네스트 만델의 해제(Introduction)를 번역․연재 중이다. 이번 호에는 제1권 해제의 마지막으로 “11. [자본론]과 자본주의의 운명”(Capital, Volume 1, Penguin Books, 1976, pp. 80~86)을 번역하여 싣는다.]

― 다음호부터는 [자본론] 2권 해제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