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2권 해제(1)

[편집자 주: [정세와 노동]은 펭귄 판 [자본론]에 실린 에르네스트 만델의 해제(Introduction)를 번역․연재 중이다. 이번 호에는 제2권 해제의 1절(Capital, Volume 2, Penguin Books, 1978, pp. 11~17)을 번역하여 싣는다.]

에르네스트 만델

번역: 장시복 (자료회원, 경제학 박사수료)

1. 맑스의 자본주의 일반분석에서 제2권이 차지하는 지위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84년 2월 5일자로 러시아 인민주의자 라브로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2권은 순수하게 과학적이며, 부르주아들간의(from one bourgeois to another) 문제만을 다루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17개월 후 조르게에게 보낸 편지[1885년 6월 3일자-역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2권은 순수하게 과학적이며 선동을 위한 재료를 많이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큰 실망을 안겨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885년 11월 13일, 그는 다니엘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저는 제2권이 당신이나 저에게 똑같은 즐거움을 안겨주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제2권에 전개되어 있는 내용들은 실로 매우 수준이 높기 때문에 저속한 독자라면 그것들을 완전히 숙고하고 끝까지 추적하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경제학을 포함한 모든 역사과학이 더 이상 침체할 수 없을 정도로 침체해 있는 독일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강단사회주의자들(Kathedersozialisten)은 이론적으로 박애주의 속류경제학자들(Vulgärökonomen)보다 결코 조금이라도 나았던 적이 없으며, 지금은 비스마르크의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단순한 변호론자 수준으로까지 타락했습니다. 이들에게 제2권은 언제나 봉인된 책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 . . 공식적인 경제학 문헌은 제2권에 대해 조심스러운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¹⁾

이 예상들은 엥겔스가 염려한 이상으로 적중하였다. 실제로 제2권 출판 후 10년이 지나서야 두 명의 젊은 러시아 맑스주의자들―투간-바라노프스키와 뒤이은 S. 불가코프―이 제2권의 주요한 개념상의 혁신들을 처음으로 적용한 저작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국제적인 논쟁―이 논쟁에서 투간-바라노프스키는, 비록 당시에는 여전히 맑스주의자로 자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맑스의 핵심적 이론들 중 몇몇을 수정하기 시작하였다―을 통해 이 개념들이 마침내 독일과 서유럽에까지 퍼지는 데 거의 또다른 십년이 걸렸다.²⁾ [자본론] 제2권은 실로 ‘봉인된 책’이었을 뿐만 아니라 잊혀진 책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대체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만일 불멸의 이론적 작업인 제2권의 중요한 지위를 과소평가하고 제1권에서 제3권으로 바로 넘어가려 한다면, [[자본론]에 대한-역자] 심각한 오해가 발생할 것이다. 맑스 자신은 1868년 4월 30일자로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2권의 지위를 매우 분명하게 해명하였다. ‘제1권에서 . . . 우리는 자기증식과정에서 100파운드 스털링이 110파운드 스털링으로 되면, 이 110은 자신이 다시 새롭게 전환될 요소들이 시장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한다고 가정하는 것으로 만족하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요소들이 즉시 전환가능한 상태로 발견되는 조건들을, 즉 상이한 자본들, 자본의 구성부분들, 수입(＝s)의 사회적 뒤얽힘을 연구하네.’³⁾ 맑스는 이 뒤얽힘을 상품과 화폐의 운동으로 인식하였으며, 그럼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공급과 수요 사이의 주기적 불균형의 필연성에 기초한 일관된 산업순환 이론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비록 그 이론의 완성된 형태로는 아니지만, 정립할 수 있었다. 제2권의 이러한 역할을 망각하고 제3권으로 건너뛰는 것은, 비록 제1권에서 간단히 다루어졌지만 오직 제2권에서만 완전하게 전개된 상품의 내적 모순들에 고유한 모든 문제들―시장의 문제, 가치와 잉여가치의 실현문제 등―을 제거해버릴 위험을 수반한다. 심지어 맑스가 자본주의적 부의 기본 세포인 개별 상품의 필연적 모순들을 그 복잡한 형태 그대로 완벽하게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자본의 재생산을 총체적으로 취급함으로써만 가능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또한 맑스는 ‘상이한 자본들, 자본의 구성부분들, 수입의 사회적 뒤얽힘’―즉 특정한 사용가치들과 교환가치들의, 공급과 수요의 이중운동―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와 부르주아 사회의 재생산에 대한 총체적 분석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물론, 사회과학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이 분석을 맑스가 맨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케네의 선구적인 저작, [경제표](Tableau économique)⁴⁾를 바탕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또한 맑스가 재생산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특히, 그는 확대재생산에 관한 절에는 미완성 초고만을 남겨놓았고, 유명한 자본의 ‘운동법칙’(특히 제3권에 개괄되어 있는 법칙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잉여가치율의 증대; 이윤율의 평균화 경향에도 불구하고 집적과 집중, 새로운 경쟁을 야기하는 경쟁; 평균이윤율의 저하 경향)을 완성하는 와중에 확대재생산이 어떻게 우연적인 균형에 도달할 수 있는가라는 곤란한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권은 매우 실질적인 의미에서 현대적인 집계기법들(aggregation techniques)의 선행자이자 창시자로 볼 수 있는데, 이 기법들은 때때로 제2권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기까지 했다. 케네로부터 맑스, 왈라스, 레온티에프와 케인즈에 이르는 도정(道程)에서, 맑스가 이룩한 도약은 명백하다. 그리고 맑스로부터 벗어나려는 신고전학파와 속류 ‘거시-경제학’의 동향은 대규모 회귀분석(regression)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이 지금에서야 겨우 서서히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⁵⁾

[자본론] 제1권의 부제가 자본의 생산과정이었던 반면, 제2권은 자본의 유통과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차이는 분명하다. 제1권은 공장, 작업장이 중심이다. 제1권은 자본주의 하에서 상품생산의 특징을 물질적 생산과정이자 가치증식(즉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으로 설명한다.⁶⁾ 반면에 제2권은 시장을 중심에 두고 있다. 제2권은 가치와 잉여가치가 어떻게 생산되는가가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설명한다. 제2권의 등장인물은 노동자와 산업자본가가 아니라 화폐소유자(와 화폐대부자), 도매상인, 무역업자와 기업가 즉 ‘기능자본가’이다. 단순한 산업자본가(industrialist)보다 더 넓은 정의인 기업가(entrepreneur)는, 자신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일정량의 자본을 가지고 (그들이 자본을 소유하고 있든 대출하였든 여기서는 상관이 없다)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구매하고, 상품을 생산하고 생산된 상품을 판매하며, 실현된 이윤의 일부를 추가적인 기계, 원료, 노동력에 재투자하고,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하는 것을 통해 자본을 증대시키려는 자본가들이다.

제2권에서 노동자의 역할은 맑스를 ‘시대에 뒤떨어진 전형적인 19세기 경제학자’로 취급하는 요즈음의 강단학문적 편견으로 중무장한 비맑스주의 독자들과 원문보다는 속류화된 이차 문헌들에 기초하여 맑스를 이해하고 있는 교조적인 사이비 맑스주의자들(pseudo-Marxists) 모두를 다소 놀라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제2권에 노동자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가치와 잉여가치의 생산자로서가 아니라(물론 제1권에서 확립된 이 특징이 전개된 분석 전체의 근간이 되는 견고한 기초로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소비재의 구매자이자, 따라서 노동력 상품의 판매자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의 유통과정’이라는 개념의 심오한 중요성, 뿐만 아니라 맑스가 그의 세 권짜리 대작[[자본론]을 가리킴-역자]에서 시도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한 전면적 분석에서 제2권이 차지하는 정확한 지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가치의 생산과 그 실현 사이의 내적 연관을 이해해야만 한다. 상품생산은 특정한 사회조직형태의 표현인데, 이 형태는 기본적인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으로 인간의 생산은 다소 고립적인 생산자-소비자 공동체들에서 지배적이었던 생계농업(subsistence-farming)과 수공업의 원시적 형태를 벗어났다. 분업과 노동생산성의 발전, 뿐만 아니라 교통과 통신의 성장은 인간의 상호의존의 범위와 깊이를 꾸준히 증가시켜 왔다. 지방, 지역, 심지어 국가와 대륙 공동체들까지도 원료, 노동도구, 인간 생산자 자신의 공급과 결합을 위해 점점 더 서로 의존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노동과정은 더 큰 정도로 객관적으로 사회화되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생산수단과 유통수단의 사적 소유는 (화폐)자본의 출현 및 성장과 결합하여 사적 전유를 모든 생산적 노력의 출발점이자 목적으로 만든다. 따라서 노동은 객관적으로 점점 더 사회화되지만, 이전보다 훨씬 고도로 사적 생산에 기초하여 조직된다.

맑스가 제1권 첫머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품생산, 가치생산, ‘가치형태’는 이러한 기본적인 모순에 근거하고 있다.⁷⁾ 생산은 사회적 노동 없이는, 즉 특정한 상품의 생산을 위해 최적의 노동 생산성을 갖춘 수천이(어떤 경우에는 수십만이) 행하는 협업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생산이 사적 전유에 기초하고 그에 맞추어 조절되기 때문에, 사회적 노동은 그 자체로 직접적으로 조직되지 않는다. 즉 사회적 노동이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것은 사회 전체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며, 그것은 사적 노동으로 지출된다. 그것의 사회적 성질은 상품의 판매를 통해서, 그 가치의 실현을 통해서, 그리고 자본주의 하에서는 생산적 노동자 전체가 창출한 총잉여가치의 일정한 부분을 자본 소유자가 이윤의 형태로 전유함으로써, 단지 사후적으로만 승인될 수 있다. 따라서 가치생산 혹은 상품생산은 재화가 사회적 노동의 생산물이자 동시에 사적 노동의 생산물이며, 그것의 생산에 지출된 사적 노동의 사회적 성격은 당장 직접적으로 입증될 수 없고, 그것의 생산에 지출된 사적 노동 중 사회적 노동으로 승인되는 비율이 얼마인지 알기 전에 상품들은 유통되어야만 하고, 그 가치는 실현되어야만 한다는 모순적 사실을 표현한다.

따라서 한편으로 가치와 잉여가치의 생산, 다른 한편으로 상품들의 유통(판매), 가치의 실현 사이에 분리시킬 수 없는 통일이 존재한다. 상품생산에서는, 그리고 그것의 자본주의적 형태에서는 더더욱, 후자는 전자 없이 일어날 수 없다. 이는 잠정적으로 경쟁과 ‘다수자본’을 추상하고 있는 ‘자본일반’에 대한 연구가 왜 상품의 생산과정과 유통과정 양자를 포함하는지를 설명해 준다.⁸⁾

그러나 일단 자본주의 하에서의 상품유통(무엇보다도 우선, 그 가치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상품의 판매)을 검토하기 시작한다면, 단순상품유통을 훨씬 넘어서는 것을 고찰하게 된다. 우리는 사실상 자본으로서의 상품유통, 즉 자본의 유통을 다루게 되는 것이다. 유통과정에 대한 혁신적인 분석을 진행하면서 맑스는 새롭고 열정적인 흥미를 자아내는 연구대상, 즉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회전’)을 도입한다. 이것은 공식적으로는 단지 제2권 제3편의 제목일 뿐이지만, 제2권 전체에 깔려 있는 기본주제를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맑스 자신은, 제2권의 첫 절에서 분석이 시작되는 각 개별 자본의 유통과 재생산을 보다 일반적인 유통과 재생산, 즉 사회적 자본의 총합의 유통과 재생산의 일부분으로 이해해야만 한다고 설명한다.⁹⁾ 이것은 단지 이러한 연구가 다양한 자본주의 기업들간의 잉여가치 분할을 둘러싼 경쟁이 미치는 효과를 검토하기에 앞서 방법론적으로 선행해야 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광범위한 문제가 여전히 답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투자, ‘요소결합’, 산출에 대한 사적 결정에 기초한 무정부적 사회체제가 더 많은 생산과 성장에 필요한 객관적, 물질적 요소들의 존재를 보장할 수 있는가? 그와 같은 성장의 절대적 전제조건들은 무엇인가? 이 지극히 ‘현대적인’ 문제들에 답하기 위해서 맑스는 그의 유명한 재생산표식을 발전시켰고 경제성장을 그의 자본주의 이론 내에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윤을 위한 생산(가치증식을 지향하는 가치생산)이기 때문에 성장은 언제나 자본축적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미 [자본론] 제1권(23장과 24장)에서 분명하게 밝혀졌지만, 제2권에 와서야 상세한 설명이 완전하게 전개된다. 중요한 개념은 잉여가치의 (일부의) 자본화와 확대재생산이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노동계급이 생산하고 자본가들이 전유한 잉여가치의 일부가 생산적으로 지출되어야만 하고 지배계급과 그들의 가신들, 식객들의 소비재(와 사치재)를 위해 비생산적으로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달리 말하자면, 잉여가치의 일부는 추가적인 불변자본(건물, 생산설비, 에너지, 원료, 보조생산물 등)과 추가적인 가변자본(증대된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는 화폐자본)으로 전환되어야만 한다. 자본축적은 이 잉여가치의 (부분적) 자본화, 즉 이윤의 추가자본으로의 (부분적) 전환에 다름 아니다.¹⁰⁾

확대재생산은 자본의 회전(개별자본들의 회전과 사회적 총자본의 회전 둘 다, 후자는 반드시 모든 개별자본들의 회전인 것은 아니다; 경쟁을 고려한다면, 장기적으로는 결코 모든 자본일 수 없을 것이다)이 제2권에서 상세히 연구된 많은 매개단계를 거친 후에 점점 더 큰 규모로 생산활동을 유발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더 많은 원료가 더 많은 기계를 사용하는 더 많은 노동자들에 의해 이전의 회전주기에서보다 더 큰 전체 가치를 갖는 더 많은 최종 생산물로 전환된다. 이 결과 더 큰 총판매고와 최종이윤이 발생하며, 이것은 다시 절대적으로 더 큰 이윤량(반드시 더 높은 비율은 아니라고 하더라도)이 자본에 추가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나선형적 성장이 계속된다 . . .

상품유통, 자본의 재생산(과 축적), 자본의 총체적 순환에 대한 연구는 상품생산형태에 내재된 대립물의 변증법적 통일과 모순, 이른바 [상품과 화폐의 모순적 통일에서 중첩되어 나타나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모순적 통일을 지속적으로 포함한다. 강단학자들과 맑스주의 비평가들 모두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자본론] 제2권의 뛰어난 특징 중 하나는¹¹⁾ 바로 맑스가 [자본론] 제1권의 이 최초의 주제를 유통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발전시킨 대가다운 방식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시 검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 (다음호에 계속)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