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 전후보수정치의 궤적 속에서의 아베정권

전후보수정치를 이끌어 낸 아베

아베정권이 자신의 임기 중에 헌법 개정을 실행한다는 공약을 내걸고 등장한 ‘획기적’ 내각이라는 것은 제1부에서도 검증했다. 그런데 아베수상은 스스로의 정치자세와 정책을 말할 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과거 자민당정치 50년과 스스로와의 관계를 언급하며, 그 계승을 주장해왔다. 아베가 보수정치의 발자취 속에서 자신을 위치지우고 자기 정책의 정당화를 가늠하려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아베는 스스로의 정책을 말할 때, 항상 과거 자민당정치가 내세워왔던 두 가지 목표를 이끌어내고 있다. 하나는 경제성장에 의한 풍요로움의 실현이고, 또 하나는 점령체제로부터의 탈각이다. 자민당정치는 제1의 목표는 달성했으나, 제2의 목표는 뒤로 미루었다. 이러한 제2의 과제를 완성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제2의 목표의 중심이 헌법 개정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아베는 이렇게 말했다. 보수합동의 “이유는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경제력의 회복’입니다....두번째는 ‘일본의 진정한 독립’입니다...전후 일본의 체제는 점령 하에서 만들어진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의해 그 골격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당시 지도자도 일본의 국가체제가 자국민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해왔습니다. 자민당의 선배들은 그 골격을 한 번 더 만드는 것에 의해, 진짜 독립을 회복하고, 처음으로 국가목표를 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그런데 ‘첫번째의 경제력’에 대해서는 자민당은 모든 정책의 초점을 그 한 곳에 두고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의 ‘일본의 진정한 독립’ (이라는 목표를 보면 ― 편집자) 일본은 미국에게 자국의 안전보장을 맡기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목표가 ‘경제력’이라는 목표에서 뒤로 미루어진 채로 50년을 지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에 2부에서는 아베정권이 새삼스럽게 전후보수정치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규정지으려는데, 그것이 도대체 어떤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인가, 아베정권이 목표로 하는 보수정치는 전후 보수정치의 형태를 어떻게 변화시키려고 하는가를 드러내고자 한다. 또한 2부에서는 아베의 정치가로서의 경력에 초점을 맞추고, 전후보수정치를 담당해온 정치가 중 아베와 같은 조류에 위치하는 정치가와 비교하면서, 그 정치, 정치사상을 검증하고자 한다. 아베신조가 전후에 어떤 정치가의 계보를 계승하고 있는가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전후보수정치의 지그재그 궤적

아베는 전후 특히 50년 남짓한 보수정치가 오직 경제성장을 우선하고 점령체제타파의 시도를 회피해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를 부정하고 극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로 전후보수정치는 결코 아베가 말했듯이 그렇게만 순탄히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의 방향전환이 지그재그로 반복되어왔다.

게다가 이러한 방향전환의 반복은 아베가 자민당정치의 2가지 목표로서 들고 있는 그 두 가지의 목표 사이에서의 대립, 즉 ‘일본의 진짜 독립’을 목표로 하는 것과 ‘경제력 회복’을 추구하는 것 사이의 심각한 대립의 소산이었다.

사실 이 두 가지가 말 그대로 단순히 대립되는 목표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는 전후 일본의 진로와 국가구상을 둘러싼 두 가지 노선의 대립이라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일본의 진정한 독립’이라는 말에 포함된 의미는, 일본의 약화를 위해 점령권력에 의해 강제된 헌법을 개정하고 군사력을 정비해서 미국에 종속된 대국으로서의 부활을 목표로 하는 대국주의(大國主義)의 구상이다. 이에 비해 ‘경제력의 회복’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의 군사적 우산 아래서 방위비를 절약하면서 경제성장에 전념하자라는 이른바 소국주의(小國主義)국가의 구상이다. 역대 정권은 이 양 노선 중에 한쪽 입장을 취해왔었고 그 결과 전후보수정치는 크게 우에서 좌로 지그재그를 반복해왔다.

강화후의 보수정치를 이끌었던 요시다(吉田)정권은 정중앙보다 약간 왼쪽에서 헌법9조를 유지하고 그 틀 내에서 점진적인 재군비를 추구해 재정을 경제재건에 충당한다는 방향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이러한 방향은 이어지는 하토야마(鳩山)정권의 다음 정권인 기시노부스케(岸信介)정권에서 크게 오른쪽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기시정권은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며 안보개정에 의한 대국으로서의 부활을 목표로 가속도를 밟았다. 헌법 개정도 차츰 다음 차례로 시야에 넣기 시작했다. 이러한 우전환의 정치가 1950년대 후반의 한 시대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은 오랫동안 이어지지는 못했다. 국민운동에 의해 급브레이크가 걸려 기시의 이후를 계승한 이케다하야토(池田勇人)정권은 다시 핸들을 크게 왼쪽으로 틀어서 거의 유턴하는 것처럼 방향전환을 했다. 이어지는 모든 정권들은 그 후 30여년 걸쳐 그 방향을 이어나갔다. 도중에 나카소네(中曽根)정권이 다시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이러한 30년이 한마디로 소국주의 정치의 시대이다.

자민당 정치에서 오른쪽으로 핸들을 크게 돌리게 된 것은 1990년의 카이후(海部)정권에서였다. 카이후 본인은 이러한 방향전환에 반대했으나, 주변에 핸들을 붙잡혀서 오른쪽으로 돌아 그 후 15년간 운전수(수상)가 바뀔 때마다 핸들은 좌우로 흔들리면서도 크게는 오른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아베정권은 이른바 최후의 운전수로서 기대를 모으며 등장했다. 90년대 이후의 정권들이 모두 확신을 가지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베정권은 처음부터 자각적으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며 우경화로의 전환을 완성해야 한다며 기세를 떨치고 있다.

시각 ― 기시노부스케, 나카소네야스히로, 그리고 아베신조

이러한 아베정권의 전후정치에서의 위치를 규정짓기 위해서 여기에서는 아베정권은 아베가 모델로 하고 있다고 공언하는 기시노부스케정권, 특히 1982년에 성립한 나카소네야스히로 정권과의 대비 속에서 검토한다. 전후보수정치는 대국주의와 소국주의 속에서 지그재그로 반복해왔으나, 이 3인의 정치가는 모두 핸들을 우로 돌려 정치의 방향을 대국주의의 방향으로 변화하려고 시도한, 혹은 시도하려 한 정치가이기 때문이다. 이 3인의 공통성과 차이를 분명히 하는 것에 의해 아베정권의 위치가 한층 분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여 아베신조를 기시, 나카소네와 비교하는 것은 별반 놀랄 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부해 보이기도 한다. 3인이 함께 타카파(タカ派)¹⁾로 이름을 날렸거나 날리고 있는 정치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3인의 정치가의 차이점에 관심이 있다. 아울러 아베신조라는 정치가의 ‘새로움’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점에 주목해 검토하고자 한다.

가설을 미리 살펴보자. 기시정권기의 정치, 나카소네정권기의 정치, 아베정권이 목표로 한 정치는 모두 대국화를 추구하며 기존 정치를 바꾸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러나 각각의 당시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 성격은 적지 않게 차이가 있었다.

첫 번째 기시정권은 전전형의 ‘제국’의 부활을 목표로 했다. 그에 군사적, 정치적으로 적합한 세력권의 재건이 진행되었으며 군사력도 철저히 일본을 중심으로 한 세력권을 유지하기위한 것으로 기대되었다. 또한 이러한 제국으로의 국민통합을 행하기 위해 깊고 넓은 통합, 복지국가형의 통합과 안정된 정치운영을 행하기 위한 보혁2대정당제를 지향했다. 제2의 대국화를 목표로 한 나카소네정권은 위와 같은 제국부활의 구상은 당분간 폐기하고, 미국을 맹주로 하는 서방제국주의 진영 내에서 지위상승과 발언력 강화를 목표로 했다. 나카소네에게 있어 두드러지는 점은 다른 2명과 비교해서 그가 전후사회에 정착된 보수정치라고 해도 항상 국민의 평화의식을 전제로 고려해 대국화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제3의 대국화의 완성을 목표로 한 아베정권이 지향한 대국화는 확대된 경제 세계화 속에서 시장질서 유지를 위한 미제국의 활동을 보완하고 분담하면서 아시아에서의 활동이 강화되고 있는 일본 기업 활동의 안전과 특권을 옹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현대제국주의화를 목표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국화는 동시에 대국화를 재촉한 거대기업간의 세계적 규모의 경쟁에 있어 자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신자유주의개혁을 동반하고 있다. 그를 위해 현대의 대국화는 제국주의로의 국민을 동원하기 위해 각국이 경쟁해온 노동자에 대한 이익공여와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권리확대와 같은 국민통합을 수행할 여유가 없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베정권의 대국화는 기존의 정치체제가 가진 복지적, 이익유도적인 제도와 정책을 버리는 것도 병행하고 있다. 그 결과 아베정권은 제국주의국가가 가졌던 강고한 국민통합의 기반을 이미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3인의 대국정치의 공통성과 차이점을 드러내면서 아베정권의 역사적 위치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제1장. ‘제국’ 일본의 부활을 목표로

       ― 기시정권에 의한 대국화의 시도와 좌절

헌법 틀 내에서의 점진적 재군비노선의 시대

1946년부터 1년 남짓한 카타야마테츠(片山哲), 아시다히토시(芦田均) 정권기를 제외하고는 계속적으로 정권을 장악하면서 전후보수정치의 조직을 형성한 요시다시게루(吉田茂)내각은²⁾ 일본제국주의의 패배, 미국에 의한 점령, 그리고 ‘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적 정세 속에서 일본이 군사대국으로 부활하는 것을 단념하고, 헌법 개정에도 소극주의를 취하고 안보와 헌법 아래에서 소국주의(小國主義)적 노선을 취했다. 이는 안보조약과 헌법 아래에서 미국에 종속되고 의존하면서 자위대의 증강을 9조에 제약된 ‘경무장’에 머물게 하고 대신, 이로 인해 재정을 절약하면서 미국에서 원조를 얻어 경제재건을 이룩하려는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요시다정권이 점령하에서 강제된 전후민주주의와 평화의 구조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흥미 깊다. 요시다는 ‘귀족적’ ‘고답적’인 자세로 유명했던 것과 달리 등 뒤에서는 전후의 국민의식에 민감했다. 그는 국민 중 많은 이들이 전쟁과 패전으로 인한 고통을 경험하여 전쟁에 강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으며 헌법이 설정한 평화와 민주주의, 시민적 자유의 구조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요시다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헌법 제9조에 있어 오늘날 이것을 개정할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부담이라는 점에서 생각해도....해외의 대일감정을 고려해도 조급하게 이것을 개정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유 없는 전쟁에 의한 상흔이 아직 치유되지 않은 국민의식의 실정에서 보아도 재군비의 기반이 되어야 할 심리적 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시기상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요시다는 숱하게 많은 한계가 있으면서도 명백히 ‘전후’가 낳은 정치가라고 말할 수 있다.

아베신조의 기시노부스케에 대한 숭배

이러한 요시다 노선을 부정한 이가 기시노부스케정권이었다. 전후보수정치에서 처음으로 대국일본의 부활을 목표로 하고, 그를 위해 ‘전후’를 만들어낸 제반 제도를 개정하고자 했던 이가 기시노부스케였다고 볼 수 있다. 군사대국화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아베정권이 기시노부스케에 대한 공감을 숨기지 않는 것도 이러한 정치적 배경에서이다.

  이러한 점은 이미 몇 개의 아베신조론에서도 언급되었으나 아베는 정치의 방향에서는 아버지 아베신타로(安部晋太郎)가 아니라 외조부인 기시노부스케를 계승한다는 것을 공언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꽤나 흥미 깊다. 아베신조에 있어 아버지는 오히려 탈각해야 하는 ‘전후’를 깊숙이 체득한 극복해야 할 노선의 담당자로 보는 반면에 기시노부스케는 전전의 ‘대국 일본’을 알고, 그 부활을 목표로 한 정치가로서 아베의 정치방향을 앞서 이끌었던 정치가라는 것이다.

“나의 보수주의에 대해서,.... 짚고 넘어간다면, 역시 조부의 영향일 것입니다. 조부는 완전히 명치에 태어나서, 완전히 전전에 성장했습니다. 나에게 있어 별세계의 소년기, 청년기를 보낸 사람입니다. 내가 청년시대에 조부에게 들었던 이야기의 많은 것은 나에게 있어 신선했으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아버지는 대학 이전의 교육은 전전이지만, 그 이후는 전후입니다. 따라서 전쟁이라는  극히 비극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 경험이 극히 크게 상상형성에 의해 그림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전쟁이 일어난 것인가라는 전쟁에 대한 세대적인 반성이라든지 그러한 회의적인 생각을 역시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먼저의 대전에 이르기 전에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이 매우 비약적인 전진을 수행한 ‘광영의 시대’가 청춘이었고, 젊은 날의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따라서 그것이 피와 살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차이가 매우 컸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아베는 명백하게 아버지보다도 어머니 쪽의 조부에게 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아베는 그 위대한 기시조차 손을 대지 못했던 헌법 개정을 스스로의 손으로 실행하는 획기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기시노부스케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44년 전의 미일안보조약 체결시에는 일본전체의 대부분에서 할아버지를 넘어뜨리려는 목소리가 있어,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으며 쫓겨나게 되었으나, 그때에도 40~50년이 지나면 반드시 새롭게 평가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만, 다행이 할아버지 생전에 상당히 재평가가 되었다는 점에 대해 본인은 대단히 만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하나의 큰 목표인 헌법 개정에 있어서는 그 위업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본인이 원통해하지 않을 수 없는 바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아베가 경애하는 기시노부스케는 어떤 정치가였으며, 또한 기시노부스케란 어떤 정권이었는가에 대해 검토해보자.

1. ‘제국’의 부활상상

보수합동에 의한 강력한 정치체제 구축

기시노부스케는 전범용의자로서 스가모(巣鴨)에 수감되었고, 그 후 정치가로서 출발하면서처음부터 몰락한 일본의 ‘제국’으로서의 부활, 그를 위한 헌법개정+군비확대+대미자립의 실현, 그것을 지지하는 강력한 정치체제 구축을 목표로 했다.

기시가 우선 착수한 것은 이러한 대국 부활을 위한 정치란 역으로 대미의존 아래에서 퇴영적인 정치를 계속하는 요시다정권을 무너뜨리고 강력한 정치체제를 만들기 위한 ‘보수합동’을 이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요시다 정치의 타파와 ‘보수합동’은 기시만의 주장이 아니라, 공직추방에서 돌아온 정치가들을 중심으로 당시 보수 세력 속에서 하나의 조류가 되었다. 그들은 요시다정권이 추구해온 개헌에 대한 소극적 태도, 대미종속 아래 점진적 재군비, 경제성장 선행노선에 대항해, 크게는 미국을 맹주로 하는 서방진영의 일원으로서 세계 속에서 일본이 부활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대미자립을 목표로 대국으로서의 부활을 지향했다. 헌법 개정과 자위대 재군비가 그들의 슬로건이었다.

그들은 요시다정권의 타파와 스스로의 정치세력에 의한 정권쟁취를 목표로 반(反)요시다세력으로서 결집을 추구하는 한편, 이러한 ‘강력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보수합동‘을 추구했다. 기시노부스케는 아시다히토시(芦田均), 미키부기치(三木武吉)등과 함께 이러한 보수합동을 목표로 하는 정치리더로서 정계에 진출했다.

요시다 정치의 타파와 보수합동을 내세운 세력은 반요시다파를 총결집시켜 보수합동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요시다파가 강력한 자유당을 완전히 합동에 참가시키는 것은 불가능했고 1954년 2월 당분간 자유당의 반요시다파의 일부와 개진당을 중핵으로 ‘일본민주당’이라는 보수신당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을 지렛대로 요시다 정권의 총사직과 하토야마이치로(鳩山一郎)정권의 수립을 달성했다.

기시는 새롭게 발족한 일본민주당의 간사장으로 취임해, 이후 요시다파까지도 규합한 ‘보수합동’에 의한 강력한 정치체제구축을 위해 매진했다.

1954년 12월에 발족한 하토야마정권은 요시다정권이 추구한 보수+대미의존+헌법 아래의 자위대라는 소국주의노선을 전환해, 새로운 정치의 방향을 내딛기 시작했다. 하토야마정권은 출발 당초, 그 정치의 방향을 헌법 개정에 의한 공공연한 재군비와 쏘련과의 국교회복을 추구했다. 그러나 헌법 개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참양원의 3분의 2의 다수의 의원의 결집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55년 2월에 행해진 총선거에서 민주당은 약진했으나 좌우사회당도 약진해 개헌저지에 필요한 3분의 1을 확보했다. 이에 개헌을 지향하는 자유당, 민주당의 합동은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었다. 결국 하토야마정권은 보수합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55년 11월 15일 하토야마정권하에서 민주당, 자유당의 합동에 의한 자유민주당의 결성이 실현되었다.

그러나 이후 하토야마정권은 소선거구제의 도입에 실패하고, 이어 56년 7월 참의원선거에서 사회당의 신장에 의해 3분의 2 다수 획득의 가능성을 잃어버렸다. 이에 하토야마정권은 개헌을 단념하고, 일쏘 국교 회복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보수합동을 실현한 정치세력이 목표로 한 ‘강한 정치’ 즉 대국일본의 부활을 추구하는 정치는, 기시노부스케정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기시내각의 제국부활구상의 전전(戰前)적 특징

기시노부스케는 1956년 12월 하토야마퇴진 이후에 행해진 총재선거에서 이시바시탄잔(石橋湛山)에게 패하고 총재의 자리를 놓쳤으나, 이시바시가 질병으로 사임하면서도 운 좋게 57년 2월 기시내각을 발족시켰다. 기시는 수년 이내의 구상인 ‘대일본제국’ 부활구상의 실현에 착수했다.

여기에 최초로 기시가 목표로 한 제국부활구상의 윤곽과 특징을 검토해보자. 한마디로 이 구상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 세계를 석권한 구열강제국주의의 구상을 부분 수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 구시대적 구상이었다.

기시는 대국일본 부활의 야망을 꽤 일찍부터 품고 있었다. 거기에서 모델이 된 것이 전전의 대일본제국이었고 이런 점에서 기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반식민지운동의 격화와 일본과 독일 등의 제국주의의 패배에 의해 이미 식민지와 세력권을 군사적으로 에워싼 전전형의 배타적인 제국주의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기시는 직감도 날카롭고 머리도 좋은 남자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지만, 이러한 역사의 큰 흐름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시에게 있어 일본의 세력권의 재건, 구축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은 전전과 같은 형태로 아시아지역을 놓치지 않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기시에게 있어 전전일본이 추구한 대동아공영권은 유지·계속 되어야 하는 모델이었다. 기시의 구상은 대동아공영권의 재건이 아닌가하는 비판이 일자, 이에 대해 기시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동아공영권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데, 근본적인 사고의 차이는 없습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해왔다고 볼 수 있지요.”

물론 기시도 전전 대일본제국의 부활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끝까지 전술적인 수정에 머물렀다.

반공제국주의와 헌법개정구상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수정이 필요했을까. 기시가 수정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은 우선, 전후 제국주의가 전전과 다른 것으로 어디까지나 친미반공진영의 일원으로서 가능하다는 점이다. 전후에 일어난 큰 변화는 냉전의 등장이고, 또한 제국주의진영의 내부에서 미국이 누구보다도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기시는 이러한 새로운 조건 아래에서 일본이 대국으로서 부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힘을 빌려,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며, 쏘련과 대립하는 미국의 요청에 응해야 아시아에서 다시 세력권을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시는 1958년 10월에 행해진 미국 NBC의 브라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반공동맹의 결의를 강조했다.

“일본은 대만과 조선이 공산주의자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행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사태는 일본의 안전을 위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기시가 헌법 개정 문제도 반공제국주의가 되기 위한 불가결한 전제로서 파악했다는 점에도 그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개헌은 미국과 함께 대만과 조선반도라는 극동의 반공진영을 지키는 군대의 재건을 위해 필요했다. 당시의 9조개정론이 한결같이 독립국을 위한 자위군건설을 주장했던 반면, 기시의 이러한 헌법 개정의 목표는 이례적이었다. 기시는 명확하게 헌법 개정의 목표를 제국주의부활을 위한 해외파병이 가능한 군대 만들기에 두었다.

브라운 기자와의 회견에서 기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일본이 헌법 제9조를 폐기할 때가 왔다. 제9조에 따르면 일본은 해외에 파병할 수 없고, 전쟁도 할 수 없으며 순전한 자위군만으로 한정되어 있다. 세계의 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일본은 자유세계를 지키는 역할을 할 용의가 있으나, 헌법을 바꾸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동남아시아 제국주의

기시가 수정해야 한다고 보았던 두 번째 수정 지점은 제국의 세력권을 동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로 이동하는 것이다. 패전에 의해 일본제국주의는 식민지를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냉전은 일본제국주의의 과거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북쪽과 중국을 사회주의권으로 변해버리게 만들었기 때문에, ‘대일본제국’ 세력권의 그 자체의 부활이 어렵다는 것은 기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기시는 동아시아 대신 동남아시아를 새로운 세력권으로 설정하고자 했다. ‘다행스럽게도’ 동남아시아는 미국과 공산권의 대치의 최전선으로 일본의 반공 국가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다. 이를 이용해 동남아시아에 진출한다는 것이 기시의 새로운 구상이었다.

기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남아시아는 현재 미쏘 양진영의 힘의 공백지대가 되었다. 일본은 자유주의진영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하려고 하든, 국제외교무대에 활약하기 위해서든, 부흥한 일본경제의 시장 확보를 위해서든 동남아시아는 일본에게 있어 그 중요성이 크다. 일본의 공업력과 기술을 가지고 동남아시아 각국의 경제적 기반확립을 원조하는 것과 함께 일본의 시장을 확대해 이를 통해 정치적으로도 긴밀히 연결되도록 힘써야 한다.”

참으로 자기 맘대로의 발상이었으나 기시로서는 이러한 수정을 통해 전후일본의 대국으로서의 부활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동남아시아가 아시아 태평양전쟁 때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에 의해 혹독한 피해를 받았다는 사실은 기시의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시는 동남아시의 방문에서 아시아 각국들이 일본에 감사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동남아시아는 일본 덕분에 독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동아공영권 속에서 일본이 전쟁에서 졌지만 이는 말레이시아나 미얀마, 인도 등이 아시아 민족독립이랄까, 식민지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돌려 말한다면 그에 대한 동남아시아 각국들의 감사의 마음이 있었다. ”

이러한 전후 정세 속에서는 기시는 전후일본의 제국주의부활은, 전전의 대일본제국이 다시 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미쏘의 틈새에 있는 존재로서 ‘중형제국주의’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과 싸움을 해서도 안 되고, 러시아와 그래서도 안 된다. 중국과도 되도록 대립해서는 안 된다.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나 타이나 말레이시아 등의 세력권에 들어가 중형제국주의가 되는 것 이외에는 이 일억 명의 인구가 먹고 살 방법이 없다”라고 했다.

 즉 제국주의의 발상자체에는 전혀 반성이 없었고 견고하게 기시구상을 관철시키려고 했다.

헌법 개정을 뒤로 미룬 전략 ― 개헌의 장애물

이러한 기시의 제국부활의 구상에서 본다면, 일본의 현재 상황은 너무 참혹했다. 제국에게 있어 최소한 필요한 독자의 군사력확보가 헌법에 의해 ‘해외파병이 금지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제국의 토대인 경제력의 부활도 요원한 상태였다. 제국의 운영에 필수적인 세력권은 패전에 의해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다. 제국의 안정된 운영을 지탱해야 할 정치체제도 국민적 응집력도 결여되어 있었다. 게다가 기존 보수 정치는 이러한 현상 극복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요시다의 정치를 통해 대미추종과 퇴영적 정치에 머물렀다. 이러한 현상의 타파를 위해 기시정권의 제국부활정책이 개시되었다.

제국부활정책의 첫 번째 목표는 기시가 제국부활구상의 최대이자 최초의 전제로서 집념을 태운 헌법 개정에 의해 자기부담의 군비를 충실히 하고 군사적 지위의 향상을 가져오는 것이다. 기시가 이러한 선택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최대의 이유는 제1부에서 이미 서술했듯이, 헌법96조에 기반을 둔 개헌의 장애가 높았으며, 기시가 정권을 차지했을 때에는 이 장애는 넘기 어려울 만큼 높아있었다. 이 장애는 헌법 개정 발의를 위한 중참양원의 3분의 2의 다수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시가 보수합동을 추진했을 당시에는 보수합동으로 보수가 대결집하면 그 벽은 용이하게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미 자유당도, 개진당도 당내에서 헌법조사회를 만들어 개헌검토를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은 개정에 긍정적이었다. 기시 노부스케 자신도 자유당의 헌법조사회장을 맡으며 개정안의 검토를 진행했다.

국민의 헌법의식의 급변과 소선거구제의 좌절

그런데 보수합동이 실현된 1955년경에 상황은 나쁘게 전개되었다. 보수 세력이 개헌을 정치과제로서 들었으나, 여론조사에서는 개헌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것을 반영하는 듯이 우선 55년 중의원선거에서 좌파, 우파사회당이 연이어 56년 참의원선거에서 사회당이 약진해 중참양의원에서 사회당은 3분의 1의 벽을 돌파했다.

보수 세력은 이러한 어려움을 타파하는 데에 2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그중 첫 번째는 중의원 중선거구 제도를 변화시켜 소선거구제를 도입해, 중의원에서 3분의 2를 확보하는 방도이다. 또한 이것만으로는 참의원의 3분의 2확보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에 참의원선거제도도 전국구를 폐지하고 기본적으로 소선거구제를 도입해 3분의2의 다수를 확보한다는 방안이다.

두 번째 방법은 개헌반대파인 사회당을 무너뜨려 적어도 그중 일부를 개헌찬성으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하토야마정권하에서 민주당의 간사장으로 취임한 기시는 이중에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하고 그를 실행하기 위해 매진했다.

그러나 보수합동이 아무리 힘을 가진다고 해도 소선거구제는 쉽게 통할 리 없었다. 소선거구제도입이 개헌과 다름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기시는 정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선거구제개혁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고 당시 중참양의원의 3분의2의 다수를 보수파가 차지하려는 전망은 점차 사라졌다.

안보개정 선행전략

이렇게 기시정권에 있어 개헌은 당장 이룰 수 있는 정권의 과제가 아니었다. 설령 추구한다고 해도 중참양의원의 선거제도를 변화시키고 헌법 개정까지 가져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기시는 기다릴 수 없었다. 이에 기시정권은 개헌을 대신해 혹은 그것에 병행하는 대국화를 위한 방법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그 한가지로 안보조약개정이라는 선행전략이며 또 하나는 해석개헌에 의한 헌법9조의 법적구속력의 완화, 자위대의 활동영역의 확장전략이었다.

우선 안보조약 개정부터 살펴보자. 개헌이 사실상 곤란한 중에, 기시는 그때까지 헌법개정이후에 시행하려고 했던 안보조약의 개정작업을 먼저 시행해 미일동맹의 대등화를 꾀하는 전략을 취했다. 오히려 미일동맹의 대등화를 통해, “미국과의 공동작전을 위해서라도 개헌을”이라는 형태의 개헌 움직임을 다시 북돋울 수 있다고도 보았다.

헌법개정 후의 안보개정이라면 대등한 정치동맹조약이 되는데, 개헌 전에 있기 때문에 미국 측을 설득하기는 어려웠다. 미국정부도 당초는 개정에 난색을 표시했다. 그러나 미국이 최종적으로 안보개정에 응한 것은 1950년대 후반에 일어난 전국의 기지반대운동의 고양으로 미군기지의 안정적 사용이 위협받게 되면서이다. 미국에 있어 이러한 기지반대운동의 고양은 극동전략의 전개에 있어 큰 위협이었다. 미국 측은 안보조약의 개정에 의한 불평등의 시정이 반미, 반기지운동을 잠잠하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시작했고, 일본 측도 이러한 점을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기시내각은 안보조약개정 실현을 위해 정권기반을 강화한 뒤에 개헌을 위해 전진하자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역으로 안보개정반대운동이 고양되면서 결국 이것이 기시내각의 수명을 단축시키게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해석개헌³⁾ 전략의 전망

기시정권은 안보조약 개정과 함께 해석개헌에 의한 자위대 활동영역을 확대하여, 대국화에 있어 장애를 완화하고자 했다.

기시정권이 행한 9조의 구속력을 완화하는 해석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로 기시내각 하에서는 안보개정에 의한 미일군사동맹의 실질화에 주목해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에 대한 수정이 진행되었다.

기시가 우선 해석개헌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의 수정을 택했다는 것은 기시가 현재의 헌법9조로는 자위대의 해외파병이 이루어져도 미군과 공동작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시를 존경하는 아베정권이 명문개헌과 나란히 진행하려 하는 해석개헌이 이러한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수정에 있다는 점도 흥미 깊은 유사점이다.

이때까지 정부는 외국과의 군사동맹에 기반을 둔 “집단적 자위권은 조약국과 특별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국가가 무력공격을 받았을 경우에 그 국가까지 해당하는 그 국가를 방위한다는 의미로 일본의 헌법상으로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기시는 해석을 재검토하여 헌법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과 행사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눌 것을 주장했다.

“일절 집단적 자위권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헌법상 가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는 지나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기시내각 하에서는 개별적 자위권의 확대도 시도되었다. 1956년 2월 정부는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에는 적기지를 공격하는 것도 합헌이라는 해석을 말했다.

“그런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 필요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는 것, 예를 들어 유도탄 등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에, 다른 수단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유도탄 등으로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법리적으로는 자위의 범위 내에 포함되는 것으로 가능하다.”

세 번째로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도 수정과 보유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자위를 위한 소형핵무기는 9조하에서는 보유 가능하다고, 장래의 핵보유가 헌법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확대는 당면한 군사적 필요성에서 행해졌다고 반드시 볼 수는 없다. 자위대의 해외파병이든지, 핵무기 보유든지 어디까지나 장래의 가능성이었다. 그런데도 기시의 머릿속에서는 일본이 대국으로서 부활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석개헌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시의 해석은 상당히 미래를 읽은 전략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개헌은 다음에 언급될 1960년대 이후 전환, 소국주의 시대에는 언급되기도 했지만(핵무기 보유, 적기지 공격) 크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특히 집단적자위권해석) 주지하다시피 아베정권하에서이다. 아베정권은 ‘제3의 대국화’라는 전략을 내세우고 미국의 강력한 압력과 절박한 필요성에 의해 헌법의 집단적 자위권 해석을 이루었다.

동남아시아 개발구상

기시정권의 제국부활 정책의 두번째는 기시가 새로운 세력권으로서 목표로 정한 동남아시아진출의 제반 방법을 정열적으로 전개한 것이다.

기시는 정권에 취임하기가 무섭게 우선 미국을 제쳐두고 동남아시아제국을 차례로 방문해 동남아시아개발기금구상을 시작했다. 기시는 방미보다도 동남아시아방문을 우선시 한 이유에 대해 우선 아시아를 확고히 하고, 그 리더로서 일본의 평판을 넓히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미 일본이란 아시아의 일본이고, 아시아가 곧 일본이기도 합니다. 진정 둘이 결합된 것이지요. 그렇게 하여 아시아의 대표로서 미국과 손을 잡는 것입니다. 이는 일본의 존립도 훌륭하게 되는 것이지요.”

덧붙여 말하자면 아베정권도 발족 후 최초의 방문지로 관례화된 미국을 선택하지 않고 중국, 한국을 선택했는데 이는 이러한 기시노부스케의 관행을 본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어찌되었든지 기시의 동남아시아개발기금구상은 동남아시아 각국의 개발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이 출자해 기금을 만들어, 공동으로 동남아시아 각국의 개발을 수행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기시의 두 가지 의도가 있었다. 하나는 일본이 아시아진출을 집단적으로 게다가 반공=개발을 기치로 행해, 아시아 진출에 대한 동남아시아 각국의 경계심을 완화시키려는 목표가 있었다. 기시의 두 번째 의도는 일본의 자본부족 문제를 미국을 끌어들여 해소하려는 것이었다. 일본은 당시까지는 피원조국이었고, 겨우 배상지불의 교섭이 진척된 단계로 아시아개발의 자금 등을 낼 수 있는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러한 구상은 극히 뻔뻔한 이야기였다. 당연하게도 미국은 이러한 기시구상에 대해 냉담했고 다른 곳의 동남아시아 각국도 극히 경계심을 가졌다. 결국 이 구상은 싱겁게 끝나버렸다.

또한 기시하에서 대아시아 각국의 배상도 진행되었다. 기시내각하에서는 배상문제는 일본의 경제협력의 일환으로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아 주로 인프라건설을 위한 자본재라는 형태로 배상이 전개되었다. 원래 요시다내각 시대부터 배상은 경제적 목적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기시내각하에서는 그것이 더욱 명확화 되어 기시의 대아시아 진출구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또한 이 시대에는 배상 이외에 처음으로 엔차관이 등장했다.

2. 강하게 안정된 국민통합의 실현

기시내각의 복지국가구상

기시내각이 목표로 한 정치과제의 두 번째는 이상과 같은 제국부활정책과 연동해 그것의 불가결한 전제로서 강하게 안정된 국민통합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원래 제국주의는 전쟁에 국민을 동원하기 위해 국책에 대한 국민의 통합이 중시되고, 국민통합정책은 일국 정책의 주요한 기둥의 하나가 된다. 제국주의 시대에 노동자의 참정권을 비롯한 산업상의 기본적 권리가 인정되어 여성의 지위와 권리가 증대하며 그것이 권리의 팽창을 추구하는 운동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제국주의전쟁에 국민을 동원하는 국민통합의 요청이 직접적인 추진요인이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제국주의 각국은 이러한 국민통합의 안정된 형태로서 <복지국가>를 채용했다. 기시노부스케도 이러한 제2차세계대전후의 선진국의 동향을 곁눈질해 전후의 제국부활의 전제로서 안정된 국민통합을 복지국가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다. 복지국가형통합에는 경제성장은 불가결한 전제가 된다. 이리하여 기시내각은 강력한 경제성장정책과 복지국가정책을 추구하게 되었다.

우선 경제성장정책이다. 기시정권하에서 ‘경제자립5개년계획’이 수립되어, 경제성장을 위한 국가개입이 시작되었다. 기시에게 있어 경제계획은 전전의 만주국의 5개년계획이래 친숙한 것이었다. 계획과 통제를 매우 싫어하는 요시다정권으로부터의 전환이 이런 면에서도 이루어졌다.

그와 병행해 기시는 국민통합의 강화를 위해 소득재분배에 의한 복지국가형통합을 추구했다. 국민통합 강화를 위한 특별한 방법을 가지지 못했던 요시다정권과 달리 기시는 국민통합을 위한 복지국가정책에 일찍이 흥미를 보였고, 정권을 수립하게 되자 즉시 그 실행에 착수했다.

기시내각 시대, 1959년에 국민연금법이 성립해 농민, 자영업자와 더불어 영세기업노동자도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되면서, 전국민연금이 실현되었다. 같은 59년에 최저임금법이 성립했다. 또한 전년 58년에는 신국민보험법이 제정되어, 전국민의료보험정책이 제도화되었다. 건강보험증 한 장으로 국민은 소득 여하에 관계없이 의료를 받을 수 있는 체제가 생긴 것이다. 실업보험도 같은 58년에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에게 그 적용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사회복지의 제도화의 배경에는 기업사회의 성립에 의한 과거의 총평을 중심으로 한 횡단적 노동자운동이 힘이 커진 것의 영향도 과소평가할 수 없으나, 이 시대의 일련의 복지제도의 정비는 그것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배경에는 기시정권의 복지국가구상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보혁의 2대정당제구조

동시에 기시내각이 안정된 통치를 지탱하는 정치체제로서 보혁의 2대정당제를 구상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2대정당제도 일찍이 기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가졌던 구상이었다. 요시다정권은 제2보수당과의 협조, 연대는 염두에 두었으나, 대두되는 사회당과의 협조, 연대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기시는 한편에서는 보수합동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온건한 사회당을 육성해, 그 사회당과의 사이에서 정권 교대에 의한 안정적인 정치운영을 구상했다. 이러한 발상의 배후에는 앞에서 말한 서독방문에 의한 유럽복지국가의 경험의 견문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그와 더불어 전전의 기시의 총동원체제만들기의 경험도 있었다. 당시 군부와 기시는 정당정치를 타파하고 총동원체제를 만들려고 하는 데에 노동자의 동원을 위해 우파사회민주주의자와의 협조가 불가결했고, 이러한 기시의 경험을 통해 사회당과의 연대도 그다지 위화감이 없었다.

이상과 같이 기시내각이 추구한 국가는 분명히 제2차세계대전후에 선진자본주의 각국에 보급된 복지국가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제2차세계대전후에 보급된 복지국가는 1990년대 이후 세계화에 동반한 세계적인 경쟁의 격화와 신자유주의정책에 의해 재편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후술할 아베내각은 기시정권을 크게 모델로 하면서도 결정적으로도 큰 차이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강한국가’ 정책

기시내각이 실행하고자 한 과제는 또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복지국가정책과 대칭을 이루는 ‘강한국가’ 정책이었다. 기시내각은 한편에서는 복지국가정책에 의한 강력한 통합을 목표로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대두되는 총평노동조합운동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하며 대치했다. 기시내각에 있어 복지와 치안은 메달의 양면과 같이 일체 불가분의 관계였다. 복지국가와 보수 혁신의 2대정당제로 노동자계급의 다수를 지배체제에 편입시키는 한편 반항하는 급진파에 대해서는 치안대책 강화를 꾀하는 것이 기시의 의도였다. 그러나 실제 정치운영에서는 운동에 대한 탄압과 규제가 우선했다.

게다가 ‘강한국가’ 정책은 기시정권이 안보개정을 실행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했기 때문에, 자연히 이러한 치안정책이 우선적으로 실시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극대화된 것이 노동조합운동과 대중운동에 대처하기 위한 경찰관권한의 확대를 목표로 하는 ‘경찰관직무집행법’의 개정이었다.⁴⁾ 교직원에 대해서도 근무평정을 실시한다는 근평제⁵⁾도입도 실제로는 활발한 일교조의 조합운동규제를 목표로 한 대단히 정치적 색채가 강한 것이었다. 이러한 ‘강한국가’정책이 기시내각의 대명사와 같이 된 것이다.

기시내각의 한계

이러한 기시내각의 정책과 구상은 직접적으로는 대중운동이 고양되면서 좌절당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기시의 제국부활정책을 좌절시킨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기시내각의 제국부활구상 좌절된 첫 번째 요인은 기시가 전후일본국민을 지배한 ‘전후’의식의 중대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시수상은 안보개정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의 마지막까지도 ‘폭력집단’ ‘공산주의자’라고 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개정안보조약비준의 강행채택에 반대해 국회주면을 둘러싼 군중은 기시노부스케가 생각한 정도로 소수도 또한 공산주의자들의 무리들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러한 대중은 기시의 안보개정, 헌법 개정에 대한 야망에 대해 일본이 다시 전제적이고 비참한 군국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감을 가졌고 이에 더욱 강하게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시는 이러한 전후민주주의의 경험을 가진 민중의 힘과 군국주의에 대한 혐오를 끝끝내 마지막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기시가 당초 추구한 2대정당제적 관행 만들기도 안보개정에 반대하는 사회당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강권적인 국회운영이 버젓이 행해졌다. 복지국가적 통합정책도 이러한 치안정책 앞에서는 빛이 바랬다.

기시의 제국부활정책을 좌절시킨 두 번째 요인은 기시의 부활구상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아시아 각국의 국민이, 반제국주의와 반식민지화를 지향한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시는 아시아 각국의 일본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일단 고려해, 반공ㆍ개발주의와 집단주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기시는 본질적으로 구식민지 각국이 가지고 있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노와 경계심을 몰랐다. 전후일본정부는 일본제국주의의 경험을 반성하는 것을 보여주는 정책을 일관되게 취해오지 않았다. 따라서 패전 후 10년도 안 되어 ‘개발’이라는 이름에 편승해 미국과 함께 개발기금구상을 내놓았을 때 아시아 각국 정부들은 일본이 다시 대동아공영권을 만들어보려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혹을 강하게 가졌는데, 기시는 이러한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러한 아시아 각국의 일본에 대한 경계심에 대한 몰이해는 기시만이 아니라 사실 국민의식에 더욱 민감했던 나카소네야스히로도, 또한 현대의 아베신조도 공통된 특징이다. 나카소네도 후에 보듯이 아시아 각국의 경계심을 과소평가하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감행해 뼈아픈 타격을 받았다. 전후보수정치의 타카파적 흐름의 공통된 것으로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안보투쟁 ― 전후보수정치의 좌전환을 강제하게 된 것

기시내각을 무너뜨린 직접적 원인이 된 안보개정반대운동⁶⁾에 대해 상세히 적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안보투쟁이 보수정치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그 의의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안보투쟁은 최초로 국민운동이 정치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안보조약을 둘러싸고 국민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대립되었다. 그러나 1960년 5월 19일 기시내각이 안보조약 개정을 강행채택 하자 보수정치가 전후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위기감을 가진 국민이 현저하게 증가해 기시내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져갔고 결국 기시내각의 총사퇴에 내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주목할 것은 이러한 국민의 목소리가 눈에 보일 정도로 운동이 된 주요한 힘은 총평노동조합운동과 사회당, 공산당 등의 정당, 지식인들의 공동투쟁이란 점이다. 안보투쟁은 종종 “소리 없는 소리 모임”으로 대표되는 시민운동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평가되어왔으나, 실제로 마지막까지 운동을 만들어낸 것은 총평에 결집된 노동조합이었다. 이러한 안정된 동원 하에서 시민과 학생대군이 궐기한 것이 안보투쟁의 구도였다. 노동운동은 정당 간의 통일에도 크게 영향력을 가졌다. 사회당과 공산당의 연대가 마지막까지 지켜진 것은 총평과 그들을 둘러싼 지식인들의 매개자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세 번째로 안부투쟁의 고양은 보수정치에 막대한 공격을 가해 그 변화의 방아쇠가 되었다. 보수정치가 기획한 구시대적 통치구상이 이미 전후민주주의를 체험한 국민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많은 보수정치가들도 구시대적 정치로는 정치의 안정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만약 이러한 구시대적 힘의 정치를 계속한다면 기시내각이 무너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보수정권 그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자민당의 젊은 정치가들은 상당부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앞으로 정권을 담당하고자 하는 정치가들에게 국민의 두려움을 절감한 것이 안보투쟁이었다.

이러한 안보투쟁을 계기로 보수정치는 다시 방향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각적인 소국주의(小國主義)정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개헌은 이 시기에는 정치과제로서는 멀어졌고 정부는 국민에게 개헌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약하면서 개헌론은 기세가 약해졌다.

이러한 정치의 방향전환은 기시의 뒤를 이은 이케다하야토(池田勇人)내각에서도, 얄궂게도 기시의 제자였던 사토우에이사쿠(佐藤英作)내각 하에서도 추진되었다. 이어 다나카(田中), 미키(三木), 후쿠다(福田), 오오히라(大平), 스즈키(鈴木), 나카소네(中曽根), 타케시타(竹下), 우노(宇野), 카이후(海部)내각은 모두 이러한 소국주의를 답습한 결과, 긴 소국주의의 시대가 이어졌다. 아베가 ‘경제력의 회복’에 전념해 ‘일본의 진정한 독립’을 뒤로 미룬 자민당 정치라고 비판했던 것은 사실 30년간 이어져온 정치의 흐름이었다.

제 2장 소국주의정치로의 방향전환 ― 소국주의와 개발주의정치

1. 전후보수정치의 방향전환

보수정치의 전환과 개헌정책의 포기

기시내각의 뒤를 이어받은 이케다하야토정권은 안보투쟁의 공격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했다. 보수정치가들은 한결같이 안보문제에 대한 공격을 받았다. 후에 전후정치의 우선회를 시험하는 나카소네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나카소네는 후에 헌법 개정이 좌절된 경위를 회고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안보투쟁에 의해 보수정치가 받은 타격이 비교적 솔직하게 표명되어있다.

“이만큼 열심히 했는데도 어떻게도 국민이 알아주지 않는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찬찬히 반성해보면 이는 인간의 벽이랄까, 시민사회의 기반이 이루어졌다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나는 해군사관때부터 정치가가 되어 그대로 쭉 어느 쪽이라고 한다면 국가 쪽, 다스리는 측에서 있었습니다만, 통치를 받는 국민 쪽에서 본다면 전전ㆍ전중에 걸친 여러 가지 통제가 있었고, 관료의 팽창에 의해 크게 고생을 했고, 이후 겨우 평화와 자유가 얻어졌는데, 이러한 평화와 자유에서 절대 손을 놓을 수 없다는 의사가 전후 일본인의 마음속에 있겠지요. 주어진 것이든, 이 자유와 평화를 놓아버릴 수 없다고 생각해, 또한 일국평화주의의 선동에 말려든 것이지요. 이러한 것을 통치하는 쪽에 쭉 있었던 우리들은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케다하야토는 기시정권 정치의 급격한 전환을 꾀하기 위해 핸들을 크게 왼쪽으로 돌렸다. 이케다는 첫 번째로 기시내각이 추구한 ‘제국’의 부활노선을 단념하고, 개헌정책을 정지, 포기했다. 이미 이케다는 개헌에 관심을 잃어버렸다. 안보개정반대운동의, 그러한 대대적인 국민운동을 경험한다면 이케다뿐만 아니라 어느 정치가도 헌법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케다의 브레인이었던 미야자와히기이치(宮澤喜一)도 오오히라마사요시(大平正芳)도 적극적으로 개헌소극론을 전개했다. 미야자와는 그러한 점을 반복해 말했다.

“지금의 헌법은 20년 가까이 계속되어왔고 앞으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신헌법하에서 교육받습니다만, 이와 다른 단계의 큰 불편함은 나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국민자신이 헌법을 개정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끄집어낼 필요가 없지요. 또한 국민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아닌가하고 나 자신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민당개헌파는 그때까지 헌법을 ‘강요된 헌법’이라고 비난해왔고 이에 비해 혁신파는 정부의 헌법개악에 경계심을 강하게 가진 상황이었다. 따라서 헌법에 대한 보수 측의 이러한 분명한 개헌소극론은 극히 참신한 것이었다.

정부의 헌법조사회와 개헌파 중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젊은 개헌파의 기수였던 나카소네야스히로는 국민의식에 맞는 ‘수상공선론⁷⁾’중심의 개헌론을 주장하며 개헌파를 당황하게 했다.

이러한 나카소네의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한 개헌주류파의 논진에도 크게 변화가 나타났다. 1950년대 개헌론의 하나의 간판이었던 ‘강요된 헌법론’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헌법이 점령군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 내용인 평화주의와 민주주의, 인권이 좋은 것이라면 된 것이 아닌가하는 논의가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개헌의 논거로 고려된 개헌파 중에는 “복지국가를 실현하기위한 개정”이라는 논의조차 생겨났다. 나카소네의 수상공선론적개헌론도 이러한 새로운 수법의 개헌론의 변종이었다.

이케다하야토는 이러한 개헌을 둘러싼 상황의 변화를 받아들여, 정권발족 당초부터 헌법개정소극론을 내세웠다. 안보투쟁직후의 1960년 11월 총선거를 앞에 두고 이케다는 이렇게 연설했다.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다수로 밀어 붙이는 것은 민주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당은 자민당이 3분의2의 다수를 차지하면 헌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지만 이는 기우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케다의 연설은 당초 액면 그대로는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이어지는 1962년의 참의원에 대해 이케다는 더욱 개헌소극론을 선명하게 했다. 1962년 5월28일의 3당수 입회 연설회에서 이케다는 ‘헌법조사회의 결론이 나올 때까지는 개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3분의2 이상이 되었다고 해서 즉시 개정하는 일은 없다고 다시 약속했다. 이어 1963년 11월의 총선거에서 이케다는 마침내 ‘재임 중에는 개헌은 하지 않는다’고 표명하기에 이른다. ‘재임 중에 개헌하지 않는다’는 그 후 역대수상이 헌법 개정에 대해 선언하는 일종의 정해진 문구가 되었다.

이러한 일본 측의 움직임에 미국정부도 동조했다. 안보투쟁의 고양으로 아이젠하워대통령의 방일계획이 저지된 미국정부는 미국이 개헌과 군사분담 압력을 정도 이상 가하면 일본의 보수정권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심각한 위기감을 가졌다. 미국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미군기지를 안정적이고 자유롭게 사용한다면 그것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미국정책전환을 받아들여 새로운 주일대사로서 부임한 라이샤워는 유연노선을 내세워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의 회복을 꾀했다.

경제성장과 개발주의적 통합노선

이케다정권도 안보문제로 분열된 국민의 재통합을 이룩하는 것을 중시했다. 그러나 기시정권이 추구한 복지국가적 통합과는 크게 다른, 국가 개입에 의한 경제성장과 파이의 확대, 공공사업투자와 보조금에 의한 파이의 지방으로의 분배라는 일본의 독특한 개발주의적노선이 채택되었다. 기시정권에서 취해진 복지국가정책은 일본과 같이 경제성장 중에 있는 국가는 오히려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국민의 도덕의 해이를 가져온다고 하여 명확하게 폐기되었고, 그를 대신하는 것으로 고도성장정책이 추진되었다. ‘소득배증계획’⁸⁾이 그것이다. 아베신조가 말하는 ‘경제력의 회복’을 목표로 한 정치와 비슷하다.

게다가 이케다내각은 당시 기업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던 노동자의 기업사회로의 편입을 배경으로 기시내각이 추구한 ‘강한국가’정책을 포기했다. 이케다내각이 들어선 이후에도 정폭법반대운동과 한일조약반대운동 등 대규모의 대중운동이 일어났으나 정부는 치안입법의 제정에는 소극적이었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공안조례 등의 치안입법은 60년대에 의연하게 시행되었으나 그것이 국회에서 법제정화 되지는 않았다.

또한 1950년대에는 기시정권하에서 과감하게 추구되어온 공무원노동조합운동에 대한 탄압정책은 후퇴하고, 역으로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용인하는 움직임이 정부내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강한국가’정책의 완화의 분위기를 배경으로 재판에서도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의 제한과 공무원 정치활동에 대한 금지, 집회와 데모행진의 자유의 규제에 대해, 헌법에 기초한 해석의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헌법정책뿐만 아니라 국민통합 면에서도 ‘좌’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2. 소국주의정치의 확립

정체된 해석개헌 ― 사토우내각의 정치

이케다 뒤를 이은 사토우에이사쿠정권은 이러한 정치의 좌로의 전환을 더욱 진행시켜 정착시켰다. 기시노부스케의 실질적 제자이자 기시와는 나란히 다카파로서 알려진 사토우의 수상취임에 의해 다시 대국주의로 방향이 되돌려지지 않을까 하고 많은 시민들은 경계했고 역으로 우익은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그러한 우익의 기대는 완전히 어긋나버렸다.

사토우는 다음과 같이 개헌의지가 없음을 명확히 밝혔다. “신헌법의 정신은 현재 국민의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나는 이러한 시기에 나 자신도 포함하여 국민이 헌법을 다시 읽어보기를 희망한다.”

개헌은 중의원, 참의원의 선거제도의 개혁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시의 정치상황으로서는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이 정치과제가 될 수 없는 게 분명했다. 사토우는 굳이 이를 분명하게 말함으로써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고자 했다.

사토우의 취임으로 개헌정책의 부활을 기대한 기시노부스케는 사토우의 그러한 정치방침에 격노해, 강한 실망을 표명했다.

동시에 그만큼 그 일가를 옹호하는 아베신조가 전후 최대의 정권을 담당한 ‘대재상’이자 대백부이기도한 사토우에이사쿠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러나 사토우에이사쿠가 가졌던 흐름에서 본다면 이는 당연한 것이다. 정치적 목표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강제된 소국주의*

정치의 전환은 단순히 개헌정책이 정지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토우에이사쿠정권하에서는 해석개헌의 움직임도 멈추지 않을 수 없었고 역으로 9조를 실체화하는 해석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좌로의 전환이 더욱 진행되었다.

우선 오키나와반환정책의 실행과정에서 “오키나와에 배치된 핵이 본토에 반입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야당의 추궁에 반론하는 중에 비핵3원칙이 언명되었다. 사토우수상이 1967년 국회에서 선언한 것이 처음이었고 다시 선언하기에 이르러 결국 1972년 국회결의가 이루어졌다. 이후 핵보유론은 자민당정치하에서는 봉인되게 되었다.

2006년 가을이 되어 북조선의 핵실험을 계기로 아베정권의 각료들이 일제히 핵보유논의를 시작했으나 이는 30여년이 넘는 원칙의 수정을 의미했다.

또한 야당이 추궁하던 중에 방위예산은 예산총액의 틀 내에서 상승을 억제하기로 되어, 방위비의 양적제한원칙이 확립되었다. 이러한 양적제한은 미키내각하에서의 1976년 이른바 GNP대비 1%틀로서 각의결정을 보게 되었다. 베트남전쟁에서 전쟁가담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무기수출금지3원칙'⁹⁾도 선언되어 국회에서 결의되어 일본의 방위생산에 큰 족쇄가 되었다.

이러한 정치 하에서는 일본의 ‘군사대국’으로서의 부활을 추구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정부가 대국으로서 부활할 수 있는 틀 구축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볼 수는 없다. 1966년에 축일법개정이라는 형태였으나 2월 11일을 건국기념일로 지정하는 것에 성공했고 동년에는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국가지원을 위한 법안이 제출되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강한 반대에 직면했고 또한 안정된 국회운영을 희망한 자민당정부의 의도도 있어 한 번도 심의되지 못한 채로 5번에 걸쳐 반려되어 결국 1974년에 폐안되었다. 야스쿠니신사를 국가적 시설로서 부활시키려는 야망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다.

지금 동아시아를 둘러싸고 크게 정치문제가 되는 8월 15일의 수상의 야스쿠니신사참배는 이러한 국가수호법안의 좌절을 대신한 것으로, 1975년 미키수상이 시작한 것이었다.

이렇게 자민당정부는 운동과 야당의 힘에 눌리면서 차례차례 소국주의의 외교, 안보원칙을 내놓게 되었다. 이는 문자 그대로 강제된 ‘소국주의’였다. 사토우정권이 끝난 1974년 ‘비핵3원칙’ 등의 성과를 이유로 사토우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보수정치의 좌선회의 아이러니한 상징이었다. 노벨상을 수여한 리오네스평화상위원장은 수상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전후 일본이 국가주의로 경사되는 것에 저항하여, 국제협력과 이해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행하고 분쟁해결을 도모하는 등 사토씨는 평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사토우씨는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 가지지 않고 반입하지 않는다’는 3원칙을 견지하는 결의를 3차례나 표명한 것에 대해, 노벨위원회는 이를 크게 중시하고자 합니다.”

제2부. 아베정권의 역사적 계보

와타나베 오사무 (渡辺治, 一橋대학 대학원 교수)

번역: 정혜윤(회원)

[역자 주: 이 글은 2007년 7월에 출판된 渡辺治(와타나베 오사무)의 『安倍政権論：新自主主義から新保守主義へ (아베정권론: 신자유주의에서 신보수주의로)』의 일부(제2부 : 아베정권의 역사적 계보)를 번역한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제1, 2장을 다음 호에서는 3, 4장을 번역하고자 한다. 저자인 와타나베씨는 일본의 대표적인 좌파학자로서 일본의 기업사회와 헌법문제에 대해 많은 저술활동을 하고 있으며 일본공산당 당원이기도 하다.

이 글은 아베총리가 물러나기 2달 전에 출판되었다. 얼마 전 아베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후쿠다 내각이 새롭게 성립되면서, 한국에서는 새로운 정권이 동북아시아 문제나 대북관계에 있어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이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아시아 국가들과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일본 국내에서도 뜨거운 감자인 ‘헌법개정’문제를 계속 제기하면서 우경화 되어가는 것은 단순히 수상의 특성이나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 자본주의의 변화 속에서 일본이 채택한 신자유주의적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되어있다는 점에서 아베정권의 행보는 곧 앞으로의 일본정치를 그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호와 다음 호의 번역문을 통해 일본의 전후 보수정치의 궤적을 살피어 아베정권이 탄생하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고 아베정권뿐만 아니라 현대일본 정치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