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쏘련이 붕괴한 이후 아직까지 사회주의 운동은 시민권을 획득하고 있지 못하다. 쏘련의 붕괴는 수정주의 체제의 붕괴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과학적 사회주의의 원칙들도 함께 무너졌음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20세기 사회주의를 검토하면서 사회주의권에서 수정주의의 발생과 발전, 붕괴를 연구하는 것과 함께 무너진 과학적 사회주의의 원칙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주의 운동의 시민권은 부르주아지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운동 스스로의 힘에 의해 쟁취되어야 한다. 과학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담고 있는 이론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주의 건설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론이라는 점에서 그의 복원은 사회주의 운동에 사활적이다.

20세기 수정주의는 후르시쵸프의 스탈린 비판과 함께 발생했다. 후르시쵸프는 국제관계에서, 그리고 경제정책에서 수정주의를 심화시켰는데 이러한 경향은 드디어 세계관의 영역, 흔히 철학이라 불리는 영역에까지 파급되었다. 1960년대의 동독의 실천 논쟁은 세계관에까지 파급된 수정주의의 모습을 잘 드러내준다. 물질 개념을 초석으로 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공격이 그것인데 그 이유는 변증법적 유물론이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물질 개념을 공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체계를 공격하여 결국은 관념론을 유포하며 과학적 사회주의를 자연이론과 사회이론으로 분해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투쟁이 있었지만 논쟁의 총괄은 매우 부당하게 마무리되었다. 물질과 의식과 더불어 실천이 유물론의 체계규정적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코징의 논문으로 마무리된 이 논쟁은 철학에서 수정주의가 영향력을 획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논쟁을 올바르게 정리하고 평가하는 것은 20세기 수정주의에 대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고 또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의 복원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 세계가 물질에 의해 통일된, 모순에 가득차고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하는 하나의 전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은 노동자계급의 해방투쟁에 있어서 중요한 무기이다. 이제 이 무기를 다시 벼려내야 한다.

2. 논쟁의 발단

철학에서 수정주의 전개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체계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공격의 포문을 연 사람은 동독의 철학자 코징이었는데 코징은 스탈린에 의해 정립된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라는 체계가 스탈린적이라 비판하면서 그 변화를 시도한다. 코징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대상과 구조 및 서술’이라는 논문에서 교과서 개편을 위한 철학체계의 변화를 공식적으로 제기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코징 개인의 의도가 아니라 당시 수정주의에 오염되어 있었던 독일통일사회당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 시대의 과학과 실천의 발전에 대한 이러한 창조적 반작용은, 반마르크스주의적인 인격숭배가 존재하는 조건하에서는 불가능하였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는 반마르크스주의적 인격 숭배가 이론적 노동에 끼친 영향을 제거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대상에 관한 정의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을 공객적이고 사실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에서 우리의 본질적인 관심사는, 아직도 남아있는 독단주의의 찌꺼기를 극복하는 것임에 틀림없다.’¹⁾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코징이 스탈린 시대를 인격숭배와 독단주의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1950년대의 후르시쵸프 수정주의와 1960년대의 브레즈네프 수정주의의 영향이 지배적이었음을 볼 때 코징은 스탈린 비판이라는 명목하에 기존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체계를 독단주의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변경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코징은 이러한 목적하에 변증법적 유물론을 공격한다.

‘세계관의 포괄적 의미는 마르크스ㆍ레닌주의의 정당과 정책, 사회적 실천, 그리고 사회의식의 발전과 인간의 형성 및 인간의 태도 등과 관련을 맺는다. 따라서 세계관을 자연과학적으로 한정할 경우에는, 이러한 포괄적인 의미가 별로 주목되지 않는다. 이렇게 됨으로써, 이제 자연과 사회와 사유의 보편적인 법칙을 다루는 과학은 우리 시대의 인간의 삶의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맺지 못하게 되었으며, 인간의 세계관적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게 되었다.’²⁾

코징의 이러한 주장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자연과학적 내용으로 한정됨으로 인하여, 따라서 인간 문제, 사회문제를 총괄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따라서 세계관으로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코징의 주장은 철저히 잘못된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자연만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인간 현상을 포괄하며 그에 따라 비로소 총체적인 세계관으로서 성립했던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을 정초한 것은 기존에 자연에 한정되어 있던 유물론의 관점을 인간사회에 전면적으로 적용한 것을 통한 것이었다. 코징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자연이론으로 협소하게 해석하고 자신이 해석한 이 관점을 토대로 변증법적 유물론은 세계관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코징은 이러한 기본관점을 토대로 맑스주의 철학의 구성요소에 대한 변화를 시도한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결과적으로 밝혀진 것은 인간과, 세계 내에서의 인간의 위치는 본질적인 요소이며, 이 요소야말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대상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 그 자체를 사변적으로 규정한다는 의미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인간학적으로 완성하는 것이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인간학적인 완성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본질과는 일치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인간학적인 완성을 정당하게 거절한다. 그러나 인간학적 완성을 거절한다고 하여, 우리가 인간의(구체적, 역사적, 사회적) 본질과 우리 시대의 인간의 규정과 인간의 모습과 세계내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인간의 삶의 의미와 가치 등에 대하여 묻는 합당한 철학적 물음을 무대상적인 것으로서 거절하거나 혹은 관념론적인 탈선이라고 비방하면 안된다. 이와 같이 잘못된 경우는, 인격 숭배시대에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그 대상을 독단론적으로 협소하게 해석한 결과 종종 발생했다.’³⁾

여기서 코징이 말하는 것은 기존의 맑스주의 철학, 즉,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은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을 맑스주의 철학에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를 거부하는 것은 스탈린적 오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코징이 기존의 맑스주의 철학에 대해 중대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과연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은 인간을 다루지 않았는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것은 맑스주의적 인간학이 아닌가?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맑스주의적 규정은 스탈린적 독단주의인가? 이러한 점은 기존의 맑스주의 철학,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 코징의 말과는 반대로 인간에 대한 가장 깊은 통찰, 과학적 분석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독단론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코징의 분석을 정당하게 거절해야 한다. 그러면 코징이 맑스주의 철학,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체계를 공격하며 인간을 끌어들이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는 물질개념을 초석으로 하는 유물론을 공격하는 것이며 물질개념과 대등하게 인간을 규정적 개념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즉, 실천, 인간 등의 개념을 유물론의 규정적 개념으로 끌어들이고자 시도하는 것이며 이는 유물론과 관념론을 절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흔드는 것이며 노동자계급의 뇌리에 관념론의 싹을 키우는 것이다.

코징은 자신의 수정주의적 시도의 근거를 스탈린 비판에서 찾는다.

‘그런데 과거에 유행했던 표상에 따른다면, 유물론은 이론이며 변증법은 방법이며 사적 유물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사회에 적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표상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구조를 단순화시키고 통속화시켰으며, 또한 그것의 창조적 발전을 방해했으며 그것의 참된 사상적 풍부함을 은폐시켰으며,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 하여금 유치하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만들었다.’⁴⁾

1960년대 당시는 스탈린을 비판하면 어떤 것도 다 먹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코징이 자신의 수정주의적 시도의 근거를 스탈린 비판에서 찾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것이다. 그러나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공격은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코징의 이러한 규정은 엄밀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먼저, 유물론은 이론이며 변증법은 방법이라는 규정이 틀린 것인가? 이 규정은 스탈린의 논문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1938)’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변증법적 방법을 서술할 때 맑스와 엥겔스는 헤겔을 변증법의 주요한 특징들을 정식화한 철학자로 언급한다. 그러나 이것이 맑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이 헤겔의 변증법과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스탈린은 맑스의 ��자본론��에서 다음 내용을 인용한다 ― 인용자)... “나(맑스의 ― 인용자)의 변증법적 방법은 헤겔의 것과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정반대이다. 헤겔에게서는, 그가 ‘절대이성’이라는 이름아래 심지어 독립적인 주체로 변형시키기까지 하는 사유의 과정이 실재 세계의 형성자(창조자)이고 실제 세계는 단지 ‘절대이성’의 외적, 현상적 형태일 뿐이다.”’⁵⁾

이러한 스탈린의 언급을 보면 스탈린이 변증법을 방법이라고 규정한 것은 타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맑스가 헤겔철학에서 변증법적 방법을 취하여 자신의 유물론을 정립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코징이 스탈린의 언급을 꼬투리 잡기한 것이며 독단적 규정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사적 유물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사회에 적용한 것이라는 스탈린의 규정은 틀린 것인가? 스탈린은 위 논문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사적 유물론은 사회생활의 연구에 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칙들의 확장, 사회생활의 현상들, 사회와 그 역사의 연구에 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칙들의 적용이다.’⁶⁾

이러한 스탈린의 언급에서 확인되는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포괄범위가 사적 유물론보다 넓다는 것이다. 즉, 변증법적 유물론은 자연, 사회, 사유를 모두 포함하는 것인데 반해 사적 유물론은 인간사회의 발전 법칙에 관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과 원칙들은 인간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하루도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 수 없으며 그에 따라 변증법적 유물론의 물질 개념을 이해할 토대를 갖고 있다. 그리고 모순, 양질 전화, 부정의 부정 등 변증법의 법칙들은 인간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이 사적 유물론에 대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을 인간사회에 적용한 것이라는 언급은 타당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맑스와 엥겔스가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을 정립하는 역사적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을 섭렵하여 변증법을 체득한 후에 그들은 포이에르바하에게서 배우고 유물론자가 된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가 자연에 대해서는 유물론자이지만 인간사회에 대해서는 관념론자임을 비판하며 자신들의 독자적 길을 걷고 스스로 인간사회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을 정립한다. 즉, 사적 유물론을 정초하는 것이다. 이는 맑스와 엥겔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을 기초로 사적 유물론을 정립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아도 스탈린의 언급은 타당한 것이다.

셋째, 스탈린이 맑스주의 철학의 구조를 단순화하고 통속화시켰으며 맑스주의 철학이 유치하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했다는 코징의 주장은 타당한가? 스탈린의 논문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은 매우 간명하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기본 골간에 대해 맑스와 엥겔스를 인용하며 간단하게 그 원칙들을 적용한 것이다. 이 논문은 20세기 초중반 당시에 맑스주의 철학과 세계관에 대한 요약으로서 널리 읽혀졌다. 이 논문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이는 코징의 의문과 주장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을 주기위해서는 스탈린의 논문 자체에 대한 평가에 의해서는 불가능하다. 그에 대한 답은 맑스주의에서 철학이 차지하는 위치, 나아가 사회주의 운동에서 철학이 차지하는 위치,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서 철학이 차지하는 위치에서 찾아야 한다. 엥겔스는 ‘향후 철학은 세계관과 변증법이라는 논리학만 남고 소멸할 것이며 그 자리를 과학이 대체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엥겔스의 이 말에서 코징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철학은 세계관만 남고 매우 단순화될 것이며 인식론, 논리학 등은 모두 과학으로 정립될 것이며 더 이상 철학으로 불리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은 한 가지, 즉, 세계관은 더 이상 철학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이라는 정당한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이는 철학의 성립자체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에 기초한 사변철학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철학의 소멸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의 소멸과 함께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철학을 통속화하고 단순화하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불가피한 것이고 정당한 것이다.

코징은 자신의 논문의 마무리로 새로운 철학체계를 제시한다. ‘(종종 ‘자연변증법’이라 잘못 불리는) 변증법적ㆍ유물론적 자연이론과, 변증법적ㆍ유물론적 사회이론 및 사적 유물론, 그리고 변증법적ㆍ유물론적 인식론과 방법론이다.’⁷⁾ 이러한 코징의 체계에서 주목할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고유한 개념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코징의 숨겨진 의도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즉, 노동자계급의 세계관, 프롤레타리아 당의 세계관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자연이론으로 해체되는 것이다. 이는 의식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로서 물질이라는 개념, 온갖 모순으로 꿈틀대며 변화하는 총체적 세계관에 대한 부정이다. 이러한 코징의 맑스주의 철학의 체계에 대한 공격은 특이한 것이 아니다. 코징의 경우 사회주의 사회 내에서 수정주의라고 한다면 자본주의 세계, 제국주의 세계 내의 부르주아 철학자 중 자칭 맑스주의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변증법적 유물론이 형이상학이니, 물질 개념이 형이상학이니 하는 비판을 해왔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을 공격하여 무너뜨릴 때만 사회주의운동의 예봉을 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코징의 논문은 당시에 본격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는 코징이 당시 맑스주의 철학의 ‘거장’으로 불리고 있었고 코징의 이러한 맑스주의 철학의 체계에 대한 공격이 당의 결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코징의 논문을 배경으로 하여 자이델이라는 동독의 철학자가 본격적인 수정주의 이론을 전개한다. 그리고 자이델은 당시 많은 맑스주의 철학자들의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자이델은 1966년 ‘실재에 대한 인간의 실천적ㆍ이론적 관계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맑스와 엥겔스의 『독일이데올로기』 재출간에 즈음한 논문이었는데 여기서 자이델은 ‘실천’을 맑스주의 철학의 중심범주로 제기한다. 그리고 기존의 맑스주의 철학의 체계는 불완전하다는 주장을 한다. 1960년대의 동독의 철학논쟁이 ‘실천’ 논쟁이라 불리는 것도 자이델의 이러한 주장 때문이었다.

자이델은 그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지금까지의 체계적 서술에서는 인간이 자연 환경과 사회환경에 대하여 취하는 실천적ㆍ활동적 태도가 불충분하게 반성되었으며, 이에 비하여 실재에 대한 이론적 관계는 너무 강조되었다. 지금까지의 서술은 존재하는 것에 관한 설명을 특히 강조하였으며 실천적 변혁의 이론적 정초와 행위에 대한 지침 등은 강조되지 않았다. ... 인간과 실재의 이론적 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표현은 사적 유물론을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이끌어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인간의 사회와 인간의 역사로 확장시킨다는 것으로 정식화된다. 그런데 유물론을 사회에까지 확장시킨다는 정식은 단지 유물론의 역사와 관련해서만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정식이 마르크스주의 체계의 근저에 놓여진다면 이 정식은 무의미하게 된다. 이 정식이 표명하고 있듯이 이 정식은 이제 더 이상 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통일을 표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식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지와는 반대로 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분리를 표명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회로 확장되기에 앞서 서술된 변증법적 유물론은 결과적으로 자연에 한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은 자연철학적 특성을 지녔다는 인상을 풍기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상은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대상들이 오로지 객관의 형식하에서만 관조적으로 파악된다는 사실에 의하여 더욱 더 강화된다.’

길게 자이델의 서술을 인용했는데 여기서는 자이델의 기본관점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고 있다. 자이델이 여기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체계에서 인간의 실천적ㆍ활동적 태도가 불충분하게 반영되었으며 실재, 즉, 물질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강조되었고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라는 체계는 무의미하게 되었고, 변증법적 유물론은 자연을 관조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이델은 맑스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1번 즉, ‘감성적 인간의 활동으로서 실천’을 파악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면 자이델의 주장을 하나하나 검토해보자.

첫째, 지금까지 체계에서 인간의 실천적 태도가 불충분하게 반성되었다는 것은 맞는 것인가?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라는 체계에서는 인간의 실천이 반성되고 반영되지 않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맑스가 사적 유물론을 정립한 이래 인간사회와 인간의 실천은 하나의 과학적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인간사회에까지 전면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통해 가능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인간의 실천을 철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은 맑스와 엥겔스였다. 따라서 자이델의 주장은 현실을 지나치게 왜곡하는 것이었다. 계급투쟁의 과학으로서 맑스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관점만 있다 하더라도 자이델과 같은 주장은 불가능한 것이다. 계급사회에서 인간 실천의 최고형태가 계급투쟁이 아닌가? 

둘째,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라는 체계는 무의미하게 되었고 변증법적 유물론은 대상을 자연에 국한하고 자연을 관조적으로 파악한다는 주장은 올바른가? 자이델의 주장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통일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물론을 인간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유물론의 역사에는 맞지만 체계에서는 맞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와 논리를 분리시키는 방법론 상의 오류는 별도로 하더라도 사실과 맞지 않는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간사회까지 포함하는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이다. 인간사회도 물질에 의해 규정되며 수많은 모순들의 비약적 변화를 포함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유사 이래 인류 역사를 규정하는 계급투쟁의 역사는 인간사회에도 변증법적 유물론이 관철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따라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자연만을 대상으로 하고 그것도 관조적으로만 파악한다는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무지 혹은 악의적 왜곡의 소치이다. 이는 자이델이 변증법적 유물론을 부정하고 변증법적 유물론과 맑스 이전의 유물론을 동일시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그 이유는 변증법적 유물론이 인간의 실천을 포괄하지 못한다고 자이델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간의 실천을 포괄하고 있으며 특히 인식론에서 ‘실천’은 중요한 개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맑스 이후에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초석인 ‘물질’개념이 인간의 실천, 즉,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실천을 전면적으로 포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실천 또한 물질적으로, 즉, 인간의 의식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로 파악되는 것이다. 따라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자연만 대상으로 하고 관조적으로 자연을 파악한다는 자이델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변증법적 유물론에 실천 개념이 포괄된다는 것을 전제하면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통일성은 공고한 것이다. 그리고 사적 유물론은 인간사회의 발전법칙, 즉, 생산과 계급투쟁의 법칙에 대한 것으로 정립된다.

따라서 자이델이 포이에르바하의 테제 1번을 인용하며 변증법적 유물론이 실천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이 인간의 실천, 사회적 존재로서 실천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포이에르바하와 맑스주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이델의 주장은 우연이 아니라 수정주의에 오염된 당의 결정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독일 통일사회당 중앙위원회 제 11차 총회는 한편으로 이론적 지식과 다른 한편으로 실천적으로 생성되는 세계관적 신념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를 확인하였으며 이에 따라 철학적 연구의 효율성을 높여 달라는 요구를 제기하였다.’⁸⁾ 바로 이러한 수정주의적 요구가 있었기에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에 대한 자이델의 난폭한 공격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본관점을 배경으로 하여 자이델은 논쟁의 초점이 되는 주장을 전개한다.

‘그(맑스 ― 인용자)의 출발점은 인간의 감성적ㆍ대상적 활동성인 노동, 즉, 사회적 실천이다. 실천 범주는 대부분 그렇게 해석되어 왔듯이 단지 사적 유물론의 중심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더 나아가 실천 범주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중심범주가 된다.’⁹⁾

이러한 자이델의 주장은 기존의 맑스주의 철학과 세계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존의 맑스주의 철학과 세계관의 중심범주는 ‘실천’ 범주가 아니라 ‘물질’ 개념이었다. 따라서 ‘물질’개념에 대신하여 실천 범주가 자리잡는다면 이는 기존의 유물론 철학 전체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철학의 근본문제가 물질과 의식의 관계에서 어느 것이 선차적인가라고 한다면 실천 범주는 주관을 포함하는 것이고 이는 유물론에 대한 공격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1960년대에 격렬한 논쟁이 불붙게 되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자이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간과 분리된 자연은 단순한 추상’이라는 주장을 전개한다. ‘자연이 인간의 실천적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인간의 외부에 있는 자연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연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인간이 무대상적 존재자, 즉, 비존재자로 존재하듯이, 인간과 분리된 자연은 인간에 대하여 단순한 추상으로 존재한다.’¹⁰⁾

이는 전형적으로 자연, 즉, 물질에 대한 관념론적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과 분리된 자연이 객관적 실재, 즉, 물질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자이델이 말로는 유물론을 옹호하지만 실제로는 주관적 관념론으로 건너뛰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물질 개념에 대한 공격, 변증법적 유물론이 관조적이라는 공격이 결국은 관념론으로의 이행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골적인 자이델의 맑스주의 철학에 대한 공격은 곧이어 여러 철학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된다.

3. 비판의 전개

자이델에 대해 비판을 가한 철학자들은 여러 명이다. 그중에서 위르겐 페터즈와 베라 브로나는 ‘실천과 마르크스 레닌주의 철학의 체계’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군톨프 헤르츠베르크는 ‘유물론과 실천’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R. O. 그로프는 ‘유지될 수 없는 구상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각각 자이델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러면 간략하게 비판의 초점을 살펴보자.

페터즈와 브로나는 ‘실천과 마르크스 레닌주의 철학의 체계’라는 논문에서 자이델이 ��독일이데올로기�� 등 맑스의 초기저작을 근거로 실천개념을 끄집어내는 것을 비판한다.

‘��경제학ㆍ철학 초고��로부터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와 ��독일이데올로기��로의 발전은 커다란 진보를 가져왔는데, 그 진보의 본질적인 점은 바로 다음과 같다. 즉 이제는 소외된 노동이라는 범주가 중심적 위치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그 대신에 실천이 ‘중심범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적 유물론의 본질적으로 발전된 근본 범주들을 매개로 한 사회적 총체성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¹¹⁾

즉 자이델이 ��독일이데올로기��를 비롯한 맑스의 초기저작을 근거로 ‘실천’ 범주를 맑스주의 철학의 중심범주로 끌어낸 것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ㆍ철학 초고��에서는 소외가 맑스의 주된 관심사였지만 그 후 맑스는 발전을 거듭하여 사적 유물론을 정초한다. 특히 ��독일이데올로기��에서 물질적 생산의 규정적 의미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맑스가 여기서 ‘실천’범주를 철학적 중심범주로 끌어올리는 것은 전혀 아니다.

페터즈와 브로나는 자이델이 유물론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밝힌다.

‘자이델은 실천을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중심범주로 간주한다. ... 따라서 실천에 관한 그의 견해는 주관적·관념론적 의미에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 자이델의 철학사적 설명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스피노자의 ‘실체’, 피히테의 ‘자아’, 헤겔의 ‘이념’ 등에 대신해 실천을 정립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이델은 마르크스주의의 생성에 기여한 다른 여러 가지 중요한 출발점들을 필연적으로 간과한다. 또한 그뿐 아니라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철학사적 전제인 포이에르바하와 유물론을 배제한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는 철학적 범주인 실천을 경유하여 그의 새로운 세계관에 이르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인식함으로써 노동의 의미를 처음으로 철학과 관련시켰으며 또한 실천을 유물론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¹²⁾

즉, 맑스는 실천을 통하여 유물론을 정초한 것이 아니라 유물론에 기초하여 실천을 파악했던 것이다.

‘자이델은 중심범주인 실천을 경유하여 지금까지 이루어져 왔던 소위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분리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이델은 사실상 자연과 사회를 분리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또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본질적으로 사적 유물론으로 소급시켜 자연을 인간의 영향에 의하여 사회화된 자연으로 축소ㆍ한정하는 결과를 빚게 한다.’¹³⁾

이러한 페터즈와 브로나의 언급은 자이델이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체계에 대한 실천 개념을 매개로 공격을 가해 변증법적 유물론의 초석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점을 잘 폭로한다.

‘자이델은,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벗어나 있는 물질적 기체인 자연의 존재가 지니는 철학적 의미를 사실상 무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인 자연과 사회의 변증법적 매개성은 극복되지 않는다. 또한 자연의 변증법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그 외부에 존재하는 자연, 즉, 사회와 나란히 존재하며 무매개적인 자연, 다시 말해 일종의 ‘물자체’로서 우리가 그것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자연을 다루는 변증법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물론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제거된다.’¹⁴⁾

인간과 분리된 자연을 단순한 추상이라고 하는 자이델의 주장이 사실은 유물론적 자연 파악이 아니며 결국은 맑스주의에서 유물론을 제거한다는 것을 페터즈와 브로나는 훌륭히 폭로하고 있다.

헤르츠베르크도 ‘유물론과 실천’이라는 논문에서 자이델을 폭로한다.

‘실천은 마르크스에 있어서 무매개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룩한 발전의 결과를 의미한다. 이러한 발전이 절정에 이르게 되는 것은 바로 사회 안에서 유물론을 발견했을 때다. 따라서 실천은 애당초부터 유물론적으로 이해된 실천이다. 그러나 자이델이 알고 있는 한에서는, 오히려 실천이 유물론을 구성한다. 그러나 사실은 완전히 그 반대이다. 마르크스가 증명하고 있듯이, 현실적인 부르주아적 실천으로부터는 필연적으로 사적 관념론이 발생한다. 즉, 실천 범주는 유물론적으로도 이해될 수 있으며 또한 관념론적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¹⁵⁾

여기서 헤르츠베르크는 실천이 유물론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유물론이 실천을 포섭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실천 자체는 무당파적으로 부르주아적일 수도 있고 프롤레타리아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자이델의 혼돈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주는 것이다. 실천 개념이 아니라 철학의 최고물음을 구성하는 물질 개념으로부터 출발할 때만 우리는 철학적 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실존주의와 인간학은 물질과 의식의 모든 인식론적 구분을 우회한 채 물질적 외부세계를 우리에 대한 단순한 객관적 존재로 환원시키고자 한다. 또한 단지 주관과 객관의 통일에 불과한 실천을 그 체계적 규정들의 출발점으로 승인하고자 한다. 이때 실천 개념은 본질적으로 철학의 근본물음(물질과 의식 중 어느 것이 선차적인가? ― 인용자)을 말소시키는 데 기여하며 또한 관념론을 입으로 거부하는데 기여한다. 우리는 예를 들어 샤르트르의 이러한 프로그램을 알고 있다. 즉, 그는 실천 개념을 거의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이 실천 개념과 그의 기획투사를 동일시한다.’¹⁶⁾

이로부터 우리는 실천 개념이 자이델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유물론을 공격하기 위해 애용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물질과 의식 중 어느 것이 선차적인가라는 철학의 근본물음 앞에서 그 가운데에 실천, 즉, 주관과 객관의 통일을 끌어들이는 것은 바로 객관적 실재인 물질 개념을 공격하는 재료가 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헤르츠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자이델을 비판한다.

‘철학이 현실적인 사회적 실천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천 범주로부터 출발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실천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철학의 근본물음, 자연변증법, 반영론, 마르크스주의의 세계관적 기능 등 모든 것이 의심스럽게 되었다.’¹⁷⁾

이렇게 자이델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자이델에 대한 더욱 더 결정적인 비판이 가해졌다. 바로 그로프의 논문이 그것이다. ‘유지될 수 없는 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그로프는 자이델의 주장이 본질적으로 관념론적임을 밝혔다. ‘자이델의 이러한 설명은 결국 물질로부터 출발과 사회적 실천으로부터 출발을 대립시키는 것이다.'¹⁸⁾라는 그로프의 진단은 정확한 것이다. 물질로부터 출발할 것인가, 아니면 주관과 객관의 통일인 사회적 실천으로부터 출발할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다. 만약 이 문제가 철학의 근본물음과 전혀 무관하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실천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실천에 의해 이론이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이델이 주장한 것은 중심범주의 문제이고 이는 곧 체계의 문제이며 결국은 철학의 근본물음의 체계와 관련되는 것이다.

‘자이델의 주장과 그 밖의 설명들에서 미루어 볼 때, 그의 의도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사회철학의 형태로, 즉, 실천철학의 형태로 통일하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변증법적 유물론은 마르크스주의 철학 체계의 한 부분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며, 동시에 그것의 본질적 내용과 고찰방식에 따라서 포기되어야 한다. 단지 그 부분들 하나하나만이 사회 철학 안에 들어가 그 견해들 가운데 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일반적인 철학적 유물론을 제거함으로써 파괴되고 만다.’

이러한 그로프의 진단은 소위 실천 논쟁이 유물론을 수호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자이델은 이러한 비판들에 대하여 과학적 입장에서,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답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변호론으로 일관한다.

4. 반비판

자이델은 1967년에 ‘실천과 마르크스주의 철학’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자신에 대한 비판들에 답변한다. 그러나 이 논문은 학문적 가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에 대한 변호론으로 일관한다.

‘내가 헤르츠베르크를 이해하고 있는 한,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낡은 유물론을 역사에까지 확대 적용한다는 테제를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실천의 파악을, 철학의 근본물음을 과학적이며 구체적으로 해결할 근본적인 전제로 간주해야만 했었다. ... 철학의 근본물음을 과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도약점은 의식, 즉 인간의 주관성 일반이 생성되어 발전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감성적ㆍ대상적 활동이 차지하는 유의미한 역할을 파악하는 데 있으며 또한 이러한 활동의 사회적 본성을 파악하는 데 있다.’¹⁹⁾

이러한 자이델의 답변은 그가 중심범주라는 애매한 규정을 벗어던지고 ‘실천’이라는 개념을 철학의 근본물음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실천을 철학의 근본물음을 해결하는 도약점이라고 한 것은 더욱 더 그러하다. 이는 철학의 근본물음에 대한 레닌의 접근과 매우 다르다. 레닌은 물질과 의식 중 어느 것이 선차적인가라는 철학의 근본물음을 파악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식의 이러한 두 가지 최후의 개념에 관해서는 그 중 어느 한 쪽을 제 1차적인 것으로 취하는가를 지정하는 것 외에는 다른 규명을 할 수 없다. 그 외에는 실제로 가능하지 않는 것이다.’²⁰⁾

바로 이것이 레닌이 철학의 근본물음을 해결한 방식이다. 여기서는 물질과 의식이라는 두 극한적 개념 이외에 다른 개념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나아가 실천의 ‘실’자도 보이지 않는다. 물질과 의식이라는 극한적 개념의 경우 그에 대한 선택, 즉, 당파성의 문제만 남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철학이 발생한 이래 수많은 조류들이 그 선택을 둘러싸고 투쟁해 왔던 것이다. 여기서 철학의 근본물음에 대한 고전적 정식화인 엥겔스의 언급을 살펴보자.

‘존재에 대한 사유의 관계, 자연에 대한 정신의 관계에 관한 문제, 철학 전체의 최고의 문제는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야만적인 상태에서 나타난 편협하고 무지한 표상들에 그 뿌리를 가지고 있다. ... 이 문제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철학자들은 두 개의 큰 진영으로 갈라졌다. 자연에 대한 정신의 본원성을 주장하고, 따라서 어떤 종류이든 결국 세계의 창조를 받아들인 철학자들 ― 그런데 이 창조는 흔히 기독교의 경우보다 예컨대 헤겔 같은 철학자들의 경우 훨씬 더 복잡하고 허황되다 ― 은 관념론의 진영을 이루었다. 자연을 본원적인 것으로 여긴 그 밖의 철학자들은 유물론의 다양한 학파에 속한다.’²¹⁾

철학의 근본물음에 대한 이러한 고전적 정식화를 보더라도 자이델의 주장과 같이 실천이 철학의 근본물음을 해결하기 위한 도약점이라는 내용은 전혀 없다. 이는 맑스주의 철학의 체계 내에서 실천이 차지하는 위치를 자이델이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가 철학의 근본물음을 혼란시키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근본 범주는 철학의 근본물음인 물질과 의식이다. 그리고 사적 유물론의 근본범주는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이다. 여기서 사회적 실천은 사회적 존재의 운동을 의미한다. 즉, 실천이라는 개념은 철학적으로 사적 유물론의 범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실천 개념은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이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한 분과를 형성하는 인식론 상에서의 중요한 범주가 된다. 즉, 모든 이론은 실천의 결과라는 점에서 올바른 인식은 실천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식화될 수 있다. 즉, 주관과 객관의 통일인 실천이라는 범주는 인식론의 근본 범주가 되는 것이지 철학의 근본물음과 관련된 범주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이델은 바로 이 점을 혼동했던 것이다. 인식론에서 실천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모택동이 그의 ��실천론��에서 고전적으로 정식화한 바 있다.

‘마르크스 이전의 유물론은 인간의 사회성을 떠나서, 또 인간의 역사적 발전을 떠나서 인식 문제를 관찰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실천에 대한 인식의 의존관계, 즉 생산과 계급투쟁에 대한 인식의 의존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은 실천을 맨 앞에 내세우며, 인간의 인식은 실천과 조금도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천의 중요성을 부인하면서 인식을 실천과 분리시키려는 모든 그릇된 이론을 배척하는 것이다.’²²⁾

이러한 모택동의 언급은 실천과 이론, 인식의 정확한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맑스주의 철학에서 실천의 위치는 이렇게 자리매김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이델의 이러한 (좋게 말하면) 혼동, (정확히 말하면) 왜곡은 비단 자이델에게서 그친 것이 아니라 논쟁을 총괄하는 코징의 경우에도 정확히 해당된다. 즉, 소위 ‘실천’ 논쟁은 결말이 잘못된 것이다.

5. 논쟁의 총괄

코징은 1969년에 논문 ‘마르크스 레닌주의 세계관과 철학의 근본 물음’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소위 ‘실천’ 논쟁을 총괄한다. 그리고 이 논문 이후로 더 이상의 논쟁은 전개되지 않는다. 따라서 코징의 논문이 중요한데 그 내용을 보면 논쟁을 철저히 왜곡하고 잘못된 결론을 도출한 것을 알 수 있다.

코징은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오늘날,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상호관계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데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으며, 또한 상부구조가 토대의 배후에 불가피하게 지체되어 있다는 기계론적 표상이 생겨나고 있으며,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의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모순에 관한 수정주의적 이론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들의 궁극적인 이론적 원천은 철학의 근본물음을 단순하게 파악하였다는 것이다.’²³⁾

이러한 주장은 몇 년에 걸친 ‘실천’ 논쟁이 사실은 철학의 근본물음에 대한 논쟁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또한 코징은 문제의 원인이 철학의 근본물음이 단순하게 파악된 데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코징은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짚었다. 철학의 근본물음은 철학의 최고물음으로서 이 세계와 의식에 대한 극한적 추상화의 결과로서 제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의 근본물음은 그 성격에서 본질적으로 단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코징의 학자연하는 태도가 자신의 실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코징은 이어서 자신의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철학의 근본물음을 제거하고 가치절하하려는 모든 시도와 물질 범주를 실천 범주로 대체하려는 모든 시도는 거부되어야만 한다.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철학의 근본 물음을 사회적 실천과 아무런 관련없이 해결하려는 시도와 마르크스 레닌주의 철학의 구성적 연관인 물질, 의식, 실천의 연관을 무시하려는 시도들도 거부되어야 한다.’²⁴⁾

이러한 코징의 주장은 철학적으로는 절충주의,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기회주의이다. 물질 범주를 실천 범주로 대체하려는 시도, 즉 자이델의 시도를 비판하면서 그는 한편으로 실천과 무관하게 철학적 근본물음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엥겔스, 레닌은 모두 비판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천 범주와 무관하게 철학의 근본물음을 해결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코징이 한편으로 자이델의 결정적 오류를 무마하면서 실은 그 내용을 살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이델의 의도 또한 철학의 근본물음을 실천과 연관하여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징이 이러한 관점을 교묘하게 관철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코징만의 문제가 아니다.

‘1958년 5월에는 독일 통일사회당 중앙위원회 34차, 35차 회의를 평가하기 위하여 독일 통일사회당 정치의 이론적 토대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논의하는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철학적 연구를 위와 같은 의미에서 변혁하고 신속하게 발전시키자는 요구가 정초되었다.’²⁵⁾

코징의 이러한 언급은 자신의 주장이 결국은 수정주의화한 당의 요구에 따른 것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에 따라 코징은 자이델은 논문에서 스스로의 오류를 수정했다고 왜곡한다.

‘자이델은 실천이 마르크스 레닌주의 철학의 중심범주라고 주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물질과 의식이라는 근본 범주들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으며, 그와 더불어 철학의 근본물음을 가치절하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논쟁의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된 견해를 수정하였다.’²⁶⁾

이는 중대한 사실의 왜곡이다. 자이델은 사실상 지엽적인 몇 몇 문제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으나 철학의 근본물음과 실천의 관계에 대해서는 자신의 입장을 완강히 고수했다. 이에 대해 코징이 자이델이 자신의 잘못된 견해를 수정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가 수정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징은 이어서 거침없이 자신의 견해를 전개한다.

‘변증법적ㆍ사적 유물론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근본적인 실천적 문제거리이며 그것도 세 가지 관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물질과 의식의 관계라는 문제는 사회의 실천적 삶의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둘째 이 문제는 실천이 포함되는 경우에만 이론적으로 파악되고 해결될 수 있다. 셋째, 이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와 사유의 근본적인 방향을 정립하게 되므로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인간의 실천적ㆍ이론적 활동에 대하여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철학의 근본물음에 대하여 우선은 순수한 형식으로 즉, 사회 및 사회적 실천과는 무관하게 답변하고 나서 그 대답을 사회에 적용시키자는 요구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 그런데 나는 그와 같은 시도가 변증법적 유물론의 존재론적 견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존재론적 견해에 따르면 물질과 의식 그 자체는 사회적 실천 및 사회적 인식과는 무관하게 존재론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²⁷⁾

여기에 코징의 의도가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코징은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해 혼란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위에서 첫째의 물질과 의식의 관계가 실천적 삶의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당한 파악이다. 그러나 둘째로 실천이 포함되는 경우에만 이론적으로 파악되고 해결된다는 것은 철저하게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자이델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물질과 의식의 문제에 대한 파악은 실천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해결은 실천, 즉 주관의 개입과는 무관하게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유물론의 입장이다. 바로 이 점을 혼동함으로써 자이델은 유물론과 관념론을 뒤섞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공격에서 확인된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물질과 의식 자체를 실천과 무관하게 존재론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보는 것에서 틀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유물론 일반을 부정하는 것이다. 맑스 이전의 유물론을 거쳐서 맑스단계, 그리고 레닌의 단계를 거쳐서 비로서 인류는 ‘의식과 독립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라는 유물론적인 물질개념을 확립할 수 있었다. 따라서 물질과 의식의 문제를 실천과 분리되어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코징은 스스로 관념론자로 타락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코징의 주장이 당의 결정에 의해 뒷받침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수정주의에 오염된 당시의 동구 사회주의 당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코징은 이어서 주장한다.

‘철학의 근본물음을 더욱 상세하게 탐구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진다. 즉 만약 사회적 실천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변증법적ㆍ사적 유물론도 철학의 근본물음에 대하여 아무런 과학적 답변을 제공할 수 없을 것이다. ... 물질과 의식의 실제적이며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상호관계는 실천의 관점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다’²⁸⁾.

이와 같이 명확하게 철학의 근본물음을 실천, 즉, 주관과 객관의 통일과 연결지었다는 점에서 코징의 경우 근본물음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그가 자이델과 마찬가지로 실천이 맑스주의 철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적 유물론을 부정하고 물질 개념에 주관, 의식을 끌어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변증법적·사적 유물론의 이론적 체계에서 물질, 의식, 실천 등 세 가지 범주들의 관계를 탐구하여 왔다. 그러면 이러한 탐구로부터 어떠한 결론들이 밝혀졌는가? 우리들이 관련 범주들을 보다 상세하게 분석하지 않고 그것들을 파악할 경우에도, 이 세 가지 범주들이 마르크스ㆍ레닌주의 철학의 근본적ㆍ체계 규정적 범주들에 속한다는 사실은 매우 분명하게 밝혀질 수 있다.’²⁹⁾

이러한 결론은 실천 범주 없이는 물질과 의식의 선차성 문제, 철학의 근본물음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이델이 실천을 중심범주라 했다면 코징은 실천을 물질, 의식과 나란히 근본적ㆍ체계규정적 범주라 한 것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용어의 차이는 있지만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맑스주의 철학에서 실천이라는 범주는 결코 물질과 의식이라는 개념과 대등할 수 없다. 맑스주의 철학, 변증법적 유물론의 근본범주는 물질이라는 개념이고 의식은 그와 쌍을 이루는 개념이다. 실천이라는 개념은 그 아래에 있는 하위범주이다. 이 점을 혼동하면 주관적 의도와 무관하게 유물론을 부정하고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실천 개념은 결코 물질, 의식과 같이 체계규정적 개념이 될 수 없다. 체계를 규정하는 것은 물질을 우선할 것인가라는 유물론 진영과 의식, 정신을 우선할 것인가라는 관념론 진영을 규정하는 것 뿐이다. 이것이 바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파악이다.

6. 결론

1960년대의 동구의 실천 논쟁은 우리에게 스탈린 사후 발생한 수정주의가 정치와 경제의 영역만이 아니라 철학의 영역에서도 횡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철학에서 그러한 수정주의의 핵심은 바로 철학의 근본문제를 공격했다는 것, 물질 개념을 공격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을 부정하고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을 은폐하고 절충하고 타협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 논쟁의 발단이 철학의 체계에 대한 것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철학의 체계는 곧 유물론적 체계를 말하는데 이의 변경은 세계관의 변경을 말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과 프롤레타리아 당의 세계관이, 그리고 변증법적 유물론이 수정주의자들에게는 하나의 형이상학으로 다가왔고 나아가 자신들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세계가 하나로 즉, 물질로 통일되어 있다는 사상, 그리고 그 세계가 온갖 모순으로 꿈틀대며 역동한다는 사상, 계급투쟁이라는 모순의 운동이 사회발전의 원동력,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의 원동력이고 나아가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원동력이라는 사상이 수정주의자들은 두려웠던 것이다. 특권화한 관료들의 평온한 지배를 원하는 수정주의의 입장에서 노동자계급이 명확한 세계관을 갖고 투쟁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두려운 것이었다.

수정주의자들의 집중 공격을 받은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라는 맑스주의 철학의 체계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이었고 그 다음이 물질 개념이었다. 이에 대한 공격을 통해 수정주의자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해체시키고 사적 유물론도 계급투쟁의 과학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이론으로 격하시켜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소위 인간소외, 인간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강조해마지 않았던 실천이라는 것과도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은 실천과는 무관한 사변적 주제가 아니던가, 계급투쟁과 사회주의 건설의 실천에 나서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미 인간의 본질을 실천하고 있는데 다시금 철학자들이 인간의 본질을 따져보자는 요구가 의미가 있겠는가?

이러한 논쟁의 과정과 결론들은 우리로 하여금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쏘련 붕괴 이래로 무너진 과학적 사회주의, 그리고 그 하나로서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을 다시금 복원시키는 것은 21세기 초엽의 지금 시점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을 가질 때 이 사회의 주인이 노동자계급이라는 것, 노동자계급이야말로 착취사회를 평등한 인간 대 인간의 사회, 연대의 공동체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라는 것,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수정주의자와 부르주아지로 하여금 변증법적 유물론을 그토록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다시금 자신의 세계관을 회복해야 하며 과학적 사회주의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노사과연>

 동구 ‘실천’논쟁에 대한 평가

문영찬 ｜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