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세
현장
이론
기타
 
지난호보기
월간지/단행물
구독신청
세미나신청
토요노동대학신청
1
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케인즈주의는 왜 인기가 있는가 (1)
글쓴이 예프게니이 바르가 E-mail send mail 번호 112
날짜 2009-02-25 조회수 2880 추천수 127
파일  1235488795_케인즈.hwp

  













예프게니이 바르가











I










이 논문의 목적은 케인즈 학설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동지들이 이미 하고 있다.1)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 하나의 문제, 즉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에서 케인즈주의가 지배적 지위를 점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독점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정치가들도, 자본주의 국가들의 대학교수들도, 그리고 노동운동의 개량주의적 지도자들도 하나 같이 케인즈의 신봉자로 되어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증명을 요하지 않는다. 케네디는 케인즈의 처방에 따라서 약 100억 달러나 되는 막대한 예산적자를 내면서 미합중국 경제의 발전을 ‘자극’하려고 시도했다. 미합중국의 독점자본의 대표자도, 노동조합의 지도자도, 국가예산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감세를 요구하고, 그것을 실현시켰다. 1960년대 초 이후 ‘적자재정’은 통칙(通則)이 되고, 균형예산은 드문 예외가 되어 버렸다. 무릇 자본주의 대국들 가운데 세출과 세입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서독과 프랑스뿐이고, 그 외에 멕시코와 아랍연합공화국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미합중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영국의 보수당, 그리고 노동당의 이론가 스트레이치도, 또한 일찍이 파씨스트 독일의 경제문제 전문가의 제1인자였던 샤흐트(H. H. G. Schacht, 1877-1970)도, 케인즈의 경제이론을 지침으로 삼고 있다.





이 점에는 전혀 어떤 문제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가도, 개량주의적 지도자도, 또 부르주아적인 경제학 교수들도 자본주의 체제를 영구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변화해가는 조건에 자본주의 체제를 적응시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피하려고 애쓰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동일한 하나의 이론의 신봉자라고 하는 것은 조금도 불가사의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최근 50년 동안 수백 개의 부르주아 경제이론이 출현했는데, 그것들은 모두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면, 다름 아닌 케인즈 이론이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지배적 지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도대체 왜인가?





아마 자본주의에 대해서 다른 이론보다도 깊고 날카로운 분석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결코 그렇지 않다.





케인즈는 자본주의 경제의 표면적 현상만을 문제로 삼았다. 맑스의 말을 흉내 내어 말하자면, 그는 부르주아 사회의 표면, 외관을 마구 주물러대는 천재라고 할 수 있다.2) 고전파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그토록 많은 지면을 써서 설명한 (그리고 나중에 맑스가 남김없이 해명한)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적 카테고리에 케인즈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는 상품과 화폐, 가치와 잉여가치, 이자와 기업자이득에 관해서 어떤 분석도 하고 있지 않다. 그는 개별자본의 운동법칙과 사회적 총자본의 운동법칙을 구별하고 있지 않다, 등등. 그에게 있어서는 만사가 명확하고, 만사가 표면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토지가 ‘저절로’ 지대를 가져다주는 것처럼, 자본은 ‘저절로’ 이자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둘 다 모두 ‘희소’하기 때문이란다. “자본의 소유자는, 토지의 소유자가 토지가 희소하기 때문에 지대를 취득할 수 있는 것과 전혀 마찬가지로, 자본이 희소하기 때문에 이자를 취득할 수 있다.”3) 이자와 지대는 어떠한 경제적 원천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인가, 양자는 자본주의 경제의 전체 체계 속에서 어떠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 것인가―케인즈는 이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려고 하지 않는다.





덧붙여 말해두자면, 이자와 지대의 발생을 자본의 ‘희소성’으로 설명하는 것은, 설령 표면적인 분석일 경우에도 올바르지 않다. 불황기에는 거액의 화폐자본이 이용되고 있지 않는데,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무상으로 타인에게 제공하지는 않는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등에서는 대토지소유자는 ‘희소’하게 만들어 농민들에게 지대를 강요하기 위해서 광대한 면적의 경작을 방해하고 있다. 토지의 이 ‘희소성’은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토지독점의 결과로서, 인위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기타의 경제적 카테고리도 마찬가지로 표면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윤은 기업가의 ‘노동’과, 그가 스스로 부담하는 리스크[위험]에 대한 보수이며,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상품에 대하여 제공되는 화폐다라는 식으로 속류경제학의 설명과 동일하다.





케인즈는 그 자신의 경제이론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는 전형적인 절충주의자이다. 그에게는 맑스가 맥클라우드(Macleod)에 관해서 했던 말이 바로 그대로 해당된다. “스코틀란드인(人) 맥클라우드는 롬바르드가(Lombardstreet, [런던의 금융 중심지])의 극히 혼란스러운 관념들을 가능한 한 학문답게 분식한다고 하는 그의 기능에서, 미신적인 중상주의자들과 개화된 자유무역 행상인들의 근사한 종합을 이루고 있다.”4)





케인즈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학설을 공공연히 부정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설명하는 바를 이론적으로 더듬어 올라가면, 마침내는 맑스주의에 도달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성격의 것임을 승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독점자본의 이익의 대변자인 케인즈에게 있어서는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론적’ 견해를 실로 잡다한 출처로부터 끄집어내고 있다. 가격, 이윤 및 이자에 관한 그의 설명은 본질적으로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한계효용설로부터 차용한 것이고, 빈곤의 설명은 맬더스(Malthus)로부터, 이윤의 정당화는 ‘제욕설(制欲說)’로부터 차용한 것이다. 많은 경우에 케인즈는 중상주의자에게까지 후퇴한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질비오 게젤(Silvio Gesell, 1862 -1930)를 높이 평가하며, 이 인물을 맬더스나 맑스(!)와 동렬(同列)에 두고 있다.





케인즈의 이 절충주의는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사회계층 사이에서 그가 인기가 있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이다. 누구나 이 혼합물 속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인즈 ‘독자’의 분석은, 고전파가 이해한, 또한 우리 맑스주의자가 이해하고 있는 경제학과는 어떤 관계도 없다. 그것은 경제에 적용된 가짜 심리학이다.





케인즈는 이것을 공공연히 선언하고 있다. “이리하여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궁극적인 독립변수가 다음과 같은 것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1) 3개의 기본적인 심리적 요인들, 즉 심리적 소비성향, 유동성에 대한 심리적 태도, 그리고 자본자산으로부터의 장래의 수익에 관한 심리적 기대, (2)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맺는 계약에 의해서 결정되는 임금 단위, 및 (3) 중앙은행의 행동에 의해서 결정되는 화폐의 수량. 따라서 위에서 열거한 요인들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면, 이들 변수가 국민소득(또는 분배분)과 고용량을 결정한다.”5)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전체의 원동력인 이윤에 관해서는 한마디 언급조차 하고 있지 않다.6) 이윤을 획득하려고 하는 자본가의 노력을 그는 부차적인 현상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만일 인간의 본성이 요행을 얻는 것에 어떤 유혹도 느끼지 않고, 공장이나 철도나 광산이나 농장을 건설하는 것에 (이윤을 떠나) 어떤 만족도 느끼지 않았다면, 단지 냉정한 계산의 결과로서의 투자는 그다지 많이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7)





케인즈의 심리주의는 마침내는 우스꽝스러운 곳으로까지 가버린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따라서 투자 전망을 추정함에 있어서는 우리는 그 자발적인 활동에 의해서 투자를 크게 좌우하는 사람들의 신경과민성이라든가, 히스테리성이라든가, 나아가서는 소화력(消化力)이라든가, 날씨에 대한 반응이라든가 하는 것과 같은 것들까지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8)





경쟁에 쫒겨 개별자본가는 파멸하지 않기 위해서 이윤 획득에 광분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철저하게 망각하고 있다.





케인즈는 계급적 분석을 인정하지 않고, 계급을 언급하는 일조차 전혀 없기9) 때문에 그의 경우 경제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추상적 인간이고, 그의 심리적 분석은 이 추상적 인간에 관한 것인데, 그러나 그의 심리적 ‘법칙’은 현실의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어떤 의의가 없는 법칙이다. 이것을 하나의 예를 통해 보여주자.





케인즈는 어떤 사람의 소득이 증가하는 경우에는 그의 소비도 또 증가하지만, 소득의 일부는 저축되기 때문에 소비는 소득의 증가 만큼은 증가하지 않는다고 하는 ‘법칙’을 내세운다.10)





이 법칙이라고 자칭하는 것을 사회의 계급들에 적용하여 조사해보면, 그것이 결코 어디에도 작용하는 법칙이 아님이 명백해진다.





자본주의 세계에는 배고픔을 채우기에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10억 명은 있다. 가장 풍요로운 자본주의 국가인 미합중국에조차 정상적인 영양을 취하기에는 소득이 부족한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나 있다.11) 주민의 가장 가난한 부분에 속하는 이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도 그 증가분은 대개는 완전히 소비지출의 증대로 소비되고,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저축으로 돌려지는 부분 등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것은 명백하다. 저축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저축성향’이라는 법칙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한 그와는 반대로 고도로 발전한 나라들, 특히 미합중국과 영국에는 소득이 늘어나면 그 증가분 이상으로 소비를 늘리는 관리, 직원, 숙련노동자의 넓은 층이 있다. 그것은 주택, 자동차, 가구, 텔레비전 등의 내구소비재를 보통 월부로 구입하는 주민층이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장래의 소득을 지출하는 것이다.





소득이 늘어나면 그들은 곧 그 소득의 증가를 몇 배나 상회할 정도로 월부 구입액을 늘리는 것이다. 이 과정은 월부판매 금액과 그에 알맞은 임금액을 비교한 미합중국의 통계자료에 의해서 확인할 수 있다[표1].










[표1] 미합중국에서의 임금, 저축 및 소비자 신용1) (단위 억 달러)















































연도





노동자ㆍ직원의 임금





개인저축





소비자 신용





1958





      2490





 244





  408





1959





      2680





 234





  490



1) United States. 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1961, pp. 141, 145, 180 (��미합중국 대통령 보고서��, pp. 141, 145, 180) 여기에 든 숫자는 약간 부정확하지만, 우리의 목적에는 충분히 도움이 될 정도의 정확성은 가지고 있다.










숫자는 케인즈의 주장과는 반대를 얘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에는 소비재의 구입만으로는 전혀 다 사용해버릴 수 없을 정도로 거액의 소득을 얻고 있는 층―당연히 극히 협소한 층―이 있고, 독점부르주아지의 상층이 이에 속한다. 연간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소득을 어떻게 다 소비재에 쓸 수 있겠는가?





수년 전 미국의 어떤 대형 백화점이 크리스마스 대목 때에 낸 광고는 이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무 것도 부족한 게 없는 분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드리면 좋을까?” “남편은 아내에게 4만5천 달러짜리 최신형의 멋진 4인승 비행기를 선물하면 어떨까? 혹은 반대로, 아내가 남편에게 6만 달러의 신형 비행기를 선물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근사한 것은 남편이 아내에게 15만 달러짜리 다이아몬드를 박은 커피포트(!)를 선물한다면 좋을 것이다”라고.





이러한 무리의 소득이 더 늘어나도 소비지출이 확대될 리가 없는 것은 명백하다.





케인즈가 보편적인 심리적 ‘법칙’이라고 칭하는 것은 특정한 사회층에 속하는 사람들, 즉 그다지 고액이라고 할 수 없는 정도의 소득을 얻고 있는 금리생활자에 관해서만 유효하다.





이상에서 말한 바로부터 자본주의 시장의 협소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케인즈가 제안한 대책, 즉 일찍이 맬더스도 제안한 적이 있는 비근로계급의 사치품 소비를 늘린다고 하는 수단은 오늘날의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 하에서는 무의미하다고 하는 것으로 된다.12)





케인즈의 다른 심리적 ‘법칙들’도 모두 오늘날의 현실적인 자본주의의 문제로 되면, 마찬가지로 도식적이고 무내용(無內容)한 것으로 돼버린다.





그러나 사치품의 소비 확대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유익하다고 하는 명백한 잠꼬대도 충분히 현실적인 계급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독점자본에게 있어서 거대한 돈벌이 거리인 군비확장과 전쟁을 위한 지출을 정당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피라밋의 건설도, 지진도, 전쟁조차도 ... 부의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13)





케인즈 이론의 세 번째의, 아마 가장 커다란 결함은, 자본주의의 문제들에 대한 역사적인 취급 방식이 전혀 없는 것이다. 어떤 역사적 단계로부터 다른 역사적 단계로의 자본주의의 발전을 그는 절대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축적 및 집중의 과정은 매년 수백만의 ‘소생산자들’―농민, 수공업자, 상인, 소자본가―을 무산의 프롤레타리아트로 바꾸는 것인데, 이 과정의 결과로서의 자본의 집적이라고 하는 자본주의 발전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법칙에 관해서 그는 전혀 일언반구도 말하고 있지 않다. 또한 마찬가지로, 자유경쟁의 자본주의가 독점체가 지배하는 현대의 독점자본주의로 성장ㆍ전화하는 것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지 않다. 쏘련의 존재나 2개의 체제의 투쟁은 무시되고 있다.14)





역사적 분석이 없기 때문에 그 필연적인 결과로서 그는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들을 전혀 잘못된, 비구체적인 방식으로 고찰하여,15) 그 특질들을 혼동하고 있다. 그리하여 추상적=이론적으로는 올바르더라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조건들 하에서는 올바르지 않은 명제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 실례를 조금만 들어 보자.





케인즈는 자본주의 하에서는 수십만 노동자가 깊은 지하에서 금을 캐내는 작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애써 캐내더라도 그 금은 나중에 중앙은행의 지하실에 다시 간직돼버린다고 하는 것에 관해서 자주 빈정대고 있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물론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금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관해서 레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알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금의 채굴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것 따위는 레닌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독립적인 국가들이 존재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상품생산과 세계무역 위에 성립되어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세계화폐는 절대로 필요하다. 현재 세계화폐로서의 금의 역할을 제한하려고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그를 위해서 국제통화기금[IMF]이 설립되고,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중앙은행 사이에서 통화 면에서의 상호협력에 관한 다수의 협정이 맺어져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국제수지의 지불초과(일시적인 우연적 지불초과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를 결제하는 수단으로서는 오늘날까지 세계화폐인 금 이외의 수단은 존재하고 있지 않다.





오늘날에는 어떤 나라나 금준비의 상태에 끊임없이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미합중국으로부터의 금 유출의 위협은 경제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미합중국의 요로(要路)의 정치가들의 가장 커다란 고통거리이다. 금의 채굴과 각국에서의 금준비의 축적이 “그것 자체로서는” 아무리 무의미하더라도, 자본주의 하에서는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의 금 채굴의 필요성에 의문을 품는다든지 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발전도 현대 자본주의의 구체적 조건들도 모두 무시하고, 일삼아서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법칙을 머릿속에서 만들어내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노사과연>















예프게니이 바르가





번역: 편집부















[역자 주: 이 글은 옛 쏘련의 헝가리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였던 E. 바르가(Evgenii S. Varga, 1879-1964.10.8.)의 저서 ��자본주의 경제학의 제문제��(1965) 가운데 “케인즈주의는 왜 인기가 있는가”를 일본어 번역판(1966)으로부터 번역한 것이다. 최근 발발한 대공황을 계기로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에 의해서까지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케인즈주의 그것의 독점자본의 탐욕ㆍ착취를 영구화하기 위한 이론으로서의 천박한 진면목을 이해하는 데에, 따라서 그것은 결코 진보적인 이론이 아니라 반동적인 이론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간접적이지만, 특히 신자유주의적 이론ㆍ정책이 결코 신자유주의자 자신들의 주장처럼 케인즈주의와 다른 것이 아니며, 케인즈주의 (극)우파의 이론ㆍ정책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집필된 지 40년이 훨씬 넘은 글이기 때문에 특히 미 달러화의 가치 등에서는 시대적 상황의 차이를 감안하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2회로 나누어 연재한다.]











1) W. 포스터, 이.브류민, 아. 트라하텐베르크 등의 저작을 참조하라.






2) “자기자신의 분석으로부터 생기는 이 결론을 의식하지 않은 것...은, ... 고전파 경제학을 해결할 수 없는 혼란과 모순에 빠뜨렸는데, 그것이 또한 속류경제학에는 원칙적으로 외관에만 열중하는 그 천박한 방식을 위한 확실한 작업기반을 제공했다.” (MEW, Bd. 23, [��자본론�� 제1권,] S. 561.)






3) J. Keynes,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Macmillan & Co., London, 1936, p. 376. 앞으로 우리는 케인즈의 이 주저(主著)를 참조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케인즈가 그 전에 쓴 ‘이론적’ 저작 ��화폐론�� 속에서 말했던 많은 명제는 그 스스로 방기해버렸기 때문이다.






4) MEW, Bd. 23, S. 75.






5) J. Keynes, 같은 책, pp. 246-247.






6) 뒤쪽에서 뒤늦게나마 기업자이득이라는 형태로 이윤을 그의 이론에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7) 같은 책, p. 150.






8) 같은 책, p. 162.






9) 그의 저서에서는 단지 한 곳에만 “저축계급”이라고 하는 참으로 절로 웃음이 나오는 표현이 나온다(같은 책, p. 123). [바르가의 이 지적은 반드시 정확한 것은 아니다. 케인즈의 위 주저(主著)의 3페이지에는 “지배계급 및 학자계급”이라고 하는 표현이 있다.―일본어 역자 주.]






10) 같은 책, p. 29.






11)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의 제3차 보고서에는 “미합중국의 가정의 4분의 1은 식량농업기구가 계산한 기준에서 볼 수 있는 만큼의 칼로리를 섭취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The Economist, 7월 29일. 1963, p. 1348.)






12) 케인즈는 멜더스가 리카도에게 썼던 편지를 인용하여 동의를 표하고 있다. 맬더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 생산 동기가 없는 사태에 대하여 지주나 자본가라는 비생산적 소비의 증가가 적당한 대책으로 될 수 없는 경우도 때로는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J, Keynes, 같은 책, p. 363).






13) 같은 책, p. 129.






14) [역자 주] 정성진 교수 같은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이러한 역사적 발전 단계를 무시할 뿐 아니라 그렇게 역사적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논하는 것조차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있으며, 또한 과거 쏘련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것을 ‘타도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하고, 또 실제로 쌍수를 들어 쏘련의 해체를 환영했다는 점도 여기에 명기해야 할 것이다.






15) 케인즈가 현대 자본주의의 독점적 성격을 전혀 무시하고 있는 것은 특징적이다. 그의 주저(主著)에는 ‘독점’이라고 하는 말은 단지 한번 “독점가격”이라고 하는 형태로 나올 뿐이다.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110 케인즈주의는 왜 인기가 있는가 (1)[3] 예프게니이 바르가 2009-02-25 2880 127


우 156-060)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435번지 진안상가 나동 2층 (신주소: 노량진로 22길 33) 
(전화) 02-790-1917 / (팩스) 02-790-1918 / (이메일) wissk@lodong.org
Copyright 2005~2022 노동사회과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