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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공산당 선언 160주년: 현대 혁명 전략에서 이 선언의 중요성
글쓴이 D. 코숌빠스 (D. Koutsoumpas)|그리스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E-mail send mail 번호 108
날짜 2008-12-26 조회수 2851 추천수 128
파일  1230300175_160.hwp

  













“공산당 선언”은 160년 전인 1848년 2
















“공산당 선언”은 160년 전인 1848년 2,3월 무렵에 런던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그것은, 제2차 공산주의자 동맹 회의1) 에서 강령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칼 맑스와 엥엘스에게 위임되었던 것이다.





“공산당 선언”에서 맑스와 엥엘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사에서 자본주의의 형성과 그것의 필연적인 전복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였다. “공산당 선언”에서 맑스와 엥엘스는, 부르주아 사회의 화해 불가능한 내부 모순을 폭로하였는데, 그것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대립하는 두 개의 주요한 계급이 끊임없이 비(非)타협적인 투쟁을 벌인다는 것이었다. 자본과 노동의 모순은 자본주의의 주된 모순이다. 사회발전은 이것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모든 박해받는 이들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끝까지 지속적인 투쟁을 하는 유일한 계급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의 무덤을 파고,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시대적 사명이, 이곳에 드러나 있고 이론적으로 구체화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생산 수단에서 자본가계급의 재산을 폐지하고, 이것을 사회적, 공산주의자의 재산으로 대체함으로써 자본가계급의 억압으로부터 사회를 구할 것이다.





선언의 이 근본적인 테제는 지난 160년 내내 노동운동 내에서 투쟁을 유발시켰다. 부르주아지들은, 이 선언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권력을 위협하는 어떤 존재로서, 역사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주된 적수로서 선언에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이론과 무자비한 싸움을 벌여왔다. 이 이론은 또한, 노동운동 내부의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르주아지들과 소부르주아지들의 이데올로기의 심부름꾼인 기회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한 견해를 채택한 이들은, 부르주아들에게 굴복하고 각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혁명적 투쟁을 포기하였다.





선언이 출판되고, 파리꼬뮨의 교훈들을 바탕으로 해서, 맑스와 엥엘스는, 계급투쟁의 법칙,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선도적 역할, 그리고 혁명당의 전위로써의 지도적인 역할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었다.





부르주아혁명들은 자본주의 관계들이 발전하는 추진력이 되었다. 1850년에서 1870년 사이에 노동 계급이 크게 발전했다. 모든 자본주의 선도국가(영국, 독일, 미국 등)에서 노동자계급의 전투적인 노동조합조직들은 노동운동을 한층 더 고양시키는 토대로서의 역할을 하며 등장하였다. 1864년에, 이론과 정치면에서 계급투쟁을 고양시키고 단결된 행동을 수행하기 위한 필요성에 따라, 국제노동자협회가 창설되었다.(제1 인터내셔널)2)





자본주의 발전과 노동운동의 진전으로, 1871년 파리꼬뮨 기간 동안 노동자 계급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그 당시, 노동자계급은 권력을 획득하고, 노동자계급의 정부,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세웠다. 비록 노동자계급이 승리를 지속시키는 데에는 실패하였지만, 모든 압제받는 계층들을 대변하는 지도적인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역할이 증명되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파리에서 대포소리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가장 후미진 부분을 깊은 잠에서 깨웠다. 그리고 모든 곳에서 혁명적인 사회주의 선전을 발전시키도록 자극하였다. 이것이 바로 꼬뮨의 명분이 죽지않은 이유이다.”





공산당 선언의 저자들은, 노동자계급이 오직 부르주아지에 대한 폭력적인 혁명으로, 즉 프롤레타리아트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서만 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물론, 상황은 지속적으로 변한다. 19세기말 무렵에 독점이 등장하여 나중에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유 경쟁은 독점 경쟁으로 대체되었다. 부르주아 혁명의 시대는 유럽에서 종말을 고하였다. 계급투쟁은, 프랑스, 벨기에, 영국, 미국에서 총파업으로 나타난 것처럼 더 격심해 졌다.





최초의 노동자 계급정당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이제 노동자계급을 “그 자체를 위한 계급”으로 변화시키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또 다른 전진이었다.





제국주의인 독점 자본주의 시대에, 노동자계급은,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을 시작으로 대략적으로 다음 50년 동안 계속하여, 사회주의 혁명에서 승리를 거두며 전 세계의 혁명을 이끌었다.





노동자계급은 전 세계의 약 1/3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국가를 수립했고, 그들 국가들 뿐만 아니라 외국의 인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상당한 업적과 증진을 이룩했다. 노동자계급은 대중의 저항 운동과 혁명을 이끌었다. 그러나 적대적인 군사협력, 한계, 전략적 오류 때문에, 그것이 항상 성공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맑스와 엥엘스는 프롤레타리아트 정당을 결성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그 정당의 임무와 노동자계급과의 관계에 대하여 정의하였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권력에 대한 구체적 내용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이념을 정립하고 이론적으로 뒷받침하였다.










“노동자계급에 의한 혁명의 첫 걸음은 프로레타리아트의 지배 계급으로의 고양, 민주주의의 쟁취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프로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차례 빼앗고, 모든 생산도구들을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로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가능한 한 신속히 생산력들의 양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3)










맑스와 엥엘스는, 공산주의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의 국제적인 성격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원리의 근본은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이고, 이것은 공산당 선언의 전문에 걸쳐서 나타나 있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정당의 전략과 전술의 논쟁에 대해 주목했다. 선언은 공산주의자들이 그것의 일관성으로 우뚝 서 있는 혁명 정당의 일원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이 직접 당면한 목적들과 이익들의 달성을 위해 투쟁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운동 속에서 운동의 미래를 대변한다.” 4)










이 주제는 국제적인 정치적 노동운동에서 시종일관된 혁명세력들과 다양한 기회주의적인 경향과 견해들 사이에서,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논쟁의 중요한 주제였고 현재도 그렇다.





이미 19세기말 무렵에 베른슈타인(E.Bernstein)은, 의회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의 주요 수단인 자본주의 구조틀 안에서, 경제와 정치의 개량에 관한 그의 유명한 개량론자의 견해를 밝혔다. 오늘날 이 이론들은, 필요한 수정을 가하면서, 혁명적 고양기나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이 뒤따르지 않고는 자본주의의 시대, 즉 계급의 이해관계들이 조화를 이루는 그러한 자본주의 시대를 제안한다. 이 이론들은, 혁명 투쟁은 역사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고, 사회주의로 가는 평화적인 발전의 길이 있으며, 그에 따라 맑스주의는 낡은 방식이 되었고 수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한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20세기 초반에 독점 제국주의 시대로 변해 나가는 객관적인 사실은, 맑스주의의 수정이 아닌, 새로운 사실에 부합하는 혁명세력들에 의한 맑스주의의 발전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임무는, 기회주의의 사회적 근원을 분석하는, 레닌의 일련의 저작들에서 완성되었다.





이 “이론들”(베른슈타인주의, 개량주의)은, 사회주의 10월 혁명이라는 위대한 승리 이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에, 즉 20세기 전반에 걸친 공산주의 운동에서, 지속적으로 되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이 견해들에 따르면, 노동자 계급의 경제투쟁은 정치투쟁, 즉 노동자계급의 권력,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목표로 하는 투쟁과 분리되어야 한다.





맑스주의자와 맑스주의를 왜곡하기 위하여 공산당 선언을 종종 인용하는 기회주의자들 사이에, 이러한 결정적인 전략상의 문제와 관련한, 격렬한 이데올로기 투쟁과 논쟁이 발전해 왔다.





예를 들어, 레닌은 당시에 횡행하던 맑스주의가 정치적 투쟁이 경제적 투쟁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는 관점의 이론적 표현이었다는 틀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사실은 그 반대였다. 맑스주의는 “비정치적 사회주의”가 우세하던 시기에 등장하였고, “공산당 선언”은 즉시 그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비록 맑스주의가 (맑스의 ��자본론��으로) 이론적으로 완전히 무장하였고 “국제 노동자 협회5)”가 조직되었지만, 정치적 투쟁은 우세한 것이 아니었다.(영국에는 노동조합이, 라틴 국가들에는 아나키즘과 푸르동주의가 있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독일에서 라쌀에 의하여 수행된 위대한 역사적 공헌은, 노동자계급을 자유주의 부르주아 계급의 부속물에서 독립적인 정치정당으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맑스주의는, 노동계급을 단일한 통일체로 바꾸기 위한 경제적, 정치적 투쟁과 관련되어 있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견을 진술하였다.





“오직 노동자 개개인이 그가 전체 노동자계급의 일원임을 깨달을 때만이, 오직 그가 개개의 고용주들과 개개의 정부 관리들에 대한 그의 일상적인 소규모 투쟁이, 전체 부르주아 계급과 전체 정부에 대한 투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만이, 그의 투쟁은 계급투쟁이 된다.” 맑스에 따르면,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적 투쟁이다.” 레닌은 고용주에 대한 모든 노동자들의 투쟁이 언제나 정치적 투쟁이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하였다. 우리는,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급투쟁이 되는 한에서만 정치적 색채를 띤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엄밀히 혁명 정당의 임무이다. 그것은,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고 전파하여, 노동자들을 조직함으로써, 압제자에 대한 자발적인 투쟁을 노동자 계급의 전체 투쟁으로 바꾸는 것이다.





공산주의 운동은 “사회주의 이론과 노동운동을 융합하는 것”이다. (레닌이 받아들인 카우츠키의 정의) 공산당의 주된 임무는, 자발적인 노동운동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자각을 확산시키고, 그 운동을 당대의 과학과 부합하는 사회주의의 신념과 결부시키며, 그 운동을 방법론적인 정치투쟁과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자발적인 운동과 혁명 정당의 행동 사이를 확고하게 결속 시킨다.





레닌 시대 이후로 전파된 한 “이론”은, 입으로는 노동운동의 임무를 정치투쟁, 즉 국가권력을 획득하려는 투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여전히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투쟁에 미숙하다고 주장하며, 이 투쟁을 즉각적이고 중간적인 목표로부터 분리시킨다.





이러한 논쟁에 대해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진정 사회민주주의자 (저자: 공산주의자를 의미)6) 들인 지가 의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논평을 덧붙였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전체적으로 아직 정치투쟁을 완성하지 못하였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반적으로 이것은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러시아 노동자들이 아직 전체적으로 사회민주주의에 필요한 성숙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 어디에서도, 정치투쟁과 밀접하고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되지 않은 사회민주주의는 결코 존재하지도 않았고 현재에도 없다. 정치투쟁이 결여된 사회민주주의는 물 없는 강과 같다. 그것은 엄청난 모순이다. 그것은 또한, “정치”를 경멸한 우리 선조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적인 사회주의로, 또는 무정부주의나 노동조합주의로 복귀하는 특징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세계 사회주의에 대한 최초의 신앙 고백인 공산당 선언은, 그 때 이후로 기초적인 진리가 된 하나의 진리 즉,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고, 노동자계급 운동은, 오직 그것이 정치투쟁으로 이행해 갈 때만, 태아기에서 그리고 유년기에서 성장하며, 계급운동이 된다는 것”을 확립했다.










1900년의 레닌의 글:










“우리의 견해는 맑스주의의 기본 사상과 완전히 일치한다. (공산당 선언에 나타난 것처럼, 그리고 서방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강령에 나타난 것처럼) 우리는, 맑스와 엥엘스의 정신이 담긴 이러한 사상의 지속적 발전을 지지하며, 지금 유행이 되어버린 모호하고 기회주의적인 베른슈타인의 수정된 사상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우리가 볼 때, 사회민주주의의 임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조직하고, 그러한 투쟁을 진전시키며, 그것의 본질적인 궁극의 목표를 지적하고, 이러한 투쟁을 수행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 계급 스스로가 획득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자계급 운동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의 임무가, 어떤 특정한 시기나 장소에서 그 운동의 어떤 특정한 국면을 맹목적으로 숭배해서는 안 되고, 전체로써 모든 국가에서 이 운동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현존하는 정치적, 사회적 체계에 맞선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하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그것의 목표는, 노동자계급에 의한 정치적 권력의 획득, 착취자들에게서 재산의 몰수,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현존하는 사회 체계를 지지하는 모든 계급에 적의를 가진 사회혁명정당인, 사회민주주의의 혁명적 특성을 약화시키는 모든 시도를 강력하게 거부한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또한 부정적인 경험이 쌓이게 되었다. 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많은 국가에서 공산당은, 제국주의 전쟁, 그들의 국가를 점령한 것에 맞선 투쟁,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자본주의 권력을 전복시켜 노동자와 인민의 정권을 얻기 위한 투쟁에서 필요한 시의적절한 전략을 수립하지 못했다.





우익 기회주의자 경향, 소위 말하는 유러코뮤니즘 주창자들7)이 서방 유럽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자, 그것은 훨씬 더 어려워졌다. “국가적 특성”이라는 이름 하에, 의회에서 정부 다수당은 공산주의자들과 협력하여, 수많은 개량을 통하여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사회로 이끌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전략은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부르주아 계급이 노동운동―정치적으로나 또는 노동조합 모두―의 동의에 의존하여 부르주아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 되어가고 있다. 몇몇 유럽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의 공산주의 운동이, 결국 스스로 공멸하고 혁명의 특성을 거부하며, 사회민주주의 방향으로 변질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비록 분명히 상황이 더 악화되었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공산주의 운동에서 비슷한 결과들을 목도하고 있다.





오늘날, 공산주의 운동의 대부분에서, 의회 투쟁을 통하여 사회주의로의 변환의 가능성을 지지하는 이론들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들은 독점자본, 제국주의 연방, 자본주의의 권력과 다방면에 걸쳐 맞서야할 필요성과, 무장 투쟁을 포함한 투쟁의 형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준비해야할 필요성도 부정한다. 이 이론들은 노동운동의 행동 범위를 자본주의 체제라는 틀 안으로 제한한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총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의회주의적 변화를 통하여 사회주의로 이행해 가는 어떠한 적절한 선례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현재 지배적인 견해들은 당대의 혁명 운동에 대한 불안 때문에 부르주아지의 제도, 부르주아지의 민주주의, 부르주아지의 의회를 찬양하면서, “부르주아지의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권력을 위협하지 않는 한 ‘평화’롭다. 점점 더 민주주의가 더 발전할수록, 학살이나 시민전쟁이 더 임박해진다.”고 한 레닌의 이론을 무시하고 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이, 독점자본들의 당대의 독재체제인 그 계급의 실체를 인민들에게 폭로하고, 노동운동을 궁극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들고 체제 내로의 동화를 유도하는 (의회)제도의 환상으로부터 인민들을 해방시켜, 인민들을 노동운동으로 이끌수 있도록, 각국의 실질적인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부르주아 의회에 참가하여 이익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오늘날―1989년에서 1991년에 반혁명의 승리 이후에 훨씬 더 강렬하게―노동자계급의 존재를 의문시하고, 그 결과로서 자본주의사회에서뿐 아니라 미래의 사회주의-공산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역할에 대한 기회주의 이론들이 활개치고 있다.





이러한 거짓 이론은 여러 형태로 등장한다. 보통, 노동자계급의 개념이나 범위를 정의하는 기준을 속되게 하려는 고의적인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들은, 제조분야나 몇몇 전통 산업 분야에서의 노동자 수의 감소를 언급하며, 단지 그 분야에서만 노동 계급을 확인함으로써, 노동 계급의 축소를 입증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들은 육체노동의 감소와, 자본주의 관계 속에서 숙련된 임금 고용의 확장을 유사하게 해석한다.





현실은 이 이론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들은, 중요하고 과학적인 맑스-레닌주의에 의거한 노동자계급을 정의하는 기준이 노동자들이 그들의 기술, 지식, 교육 수준과는 별개로 그들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대체로 자본가들은 어떠한 산업분야나 경제 분야에서든 무관하게 외부 노동력을 고용한다.





이러한 견해는 또한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서 나타나, 기회주의 세력과의 중요한 논쟁점을 형성한다. 가장 일반적인 이론들은, “노동과 노동자계급의 종말”,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적인 자본 소유의 폐지”, “후기산업 (post-industrial)과 무형자본의 사회 (immaterial society)” 등을 언급한다.





이러한 이론들에 따르면, “대중과 젊음의 반란”과 같은 새로운 “혁명적인 주제들”이 필요하다.





그리스에서 이러한 이론들은 시나스피스모스(SYNASPISMOS)8) 조직들에 의해서 제안되었다. 이와 비슷한 이론들이 때때로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전통적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연구가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지난 몇 년동안 시나스피스모스 조직은 “사회적 진보에 대한 새로운 주제를 찾는 것”에 대해 그들의 “관심사”를 표명하였다. 실제 그들의 업무는, 부르주아 가치관에 의해 조직화된 조작에 걸리기 쉬운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을 지지함으로써, 계급 운동에 등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 전형적인 예가 바로 다양한 사회적 배경의 세력들이 모인 “세계사회포럼 (World Social Forum)”의 사례인데, 여기에는 중산층과 소시민 지식인들, 노동귀족(세계 사회 포럼에 참가한 그리스의 노동조합 총동맹과 같은 타협주의적 지도부), 국가기구의 일부분인 조직화된 부르주아 세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와 다양한 비정부 조직과 같은 부르주아 협회들이 있다. 세계적 그리고 지역적인 사회포럼에 사민주주의자들, 기회주의자들, 개량주의자들과 사업체 협회의 대표자들이 협력하여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함께 계급투쟁을 분명히 반대한다. 그들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운동을 통제하고, 그들의 급진주의가 반제국주의와 반독점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을 방지하고자―재정적인 방법 외에도―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양한 조직들과 “운동들”을 지지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특히 급진 세력의 운동과 압제받는 인민들의 저항이 증가하여 제국주의의 정책을 위협하는 성향을 띠게 되는 시기에, 아주 위험하다.





현대 기회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전개를 신자유주의 지배의 결과로 여기며 반(反)자본주의 길이 아니라 반(反)신자유주의를 투쟁의 목표로 제시한다. 이러한 견해들은 진보적인 세력의 타협을 이끌어 낸다. 그것들은 또한 자본주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소위 전 세계 시장의 규제를 “대안 정책”으로 제안하고 있는 부르주아적 노동 정당 세력과 사민주주의 세력들의 변명거리로 사용된다.





그들은, 예를 들어 유럽 상품들은 언급하지 않고, 미국 상품들의 특정한 시장독점에 대항하여 시위한다. 그들은 “또 다른 유럽”을 언급함으로써 그들의 실체를 위장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제국주의 유럽 연합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볼 때, 전반적으로 비현실적인 목표이다. 실제로는 그들은, 세계화를 구실로 삼아 개별 국가 수준에서의 투쟁을 중단했다.





그리스 공산당9)은 이러한 태도와 투쟁 노선을 반대한다. 그러한 연유로 인해 그리스공산당은 분파적인 방침을 추구하고, 최대강령(maximalistic goals)을 채택하고, 좌익 세력의 정치적 연합을 타락시키고, 인민의 문제 해결을 사회주의의 도래 때까지 미루는 세력들에 의하여 비난받아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 권력과 경제에 맞선 지속적인 투쟁 없이는, 노동계급과 가난한 대중 계층에게는 대안적 해결방법에 대한 어떠한 전망도 없다.





지난 15년 동안 그리스에서 그리스 공산당의 시종일관된 투쟁의 결과로 반동적인 조치를 지연시켰고, 우익과 사민주의 세력의 정책에 대한 반대를 증가시켰던 것과 같은, 소기의 성과들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투쟁 노선으로서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의 반(反)신자유주의 지배를 목표로 하는 연합 정부에 참여하는 몇몇 세력의 전략에 대하여 완전히 반대한다.





우리 정당은, 노동자계급이 투쟁을 멈추어 수동적인 상태로 영원히 머물지 않도록, 그들의 가장 큰 부분, 특히 젊은 세대에서의 정치적 부활을 위해 애쓰고 있다. 물론 인민들은 자본주의가 전복되기 이전까지는 항상 수세적인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공산당과 계급의식화된 조직들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이러한 투쟁의 선봉에 설 것이다. 최근 그리스에서, 다국적 회사 까르푸의 슈퍼마켓, 르노사, 그리고 대형 여행사에서 노동조합의 투쟁에 의하여, 자본가들로 하여금 해고를 철회할 수밖에 없도록 궁지로 몰아넣었던 사건은, 노동자들이 성취할 수 있는 성과의 한 예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이끌고 있는 조선소와 건설 부문의 계급적 노동조합은 또한 노동조건과 관련된 중요한 성과를 이루었다.





노동자들은 계급적 힘의 강화에 의해 계급역관계를 변혁해 내어야만, 그리고, 공산당의 정치적 강화에 의해서만 성과를 이룰 수 있다. 최근의 전개들, 즉 인민의 권리와 이익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 자본가의 기업 구조조정들로부터 인민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유일한 가능성있는 길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 중앙 계획경제, 노동자의 지배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이것이야말로 노동자계급과 빈곤계층의 요구를 파악해서,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호의적인 생산을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스 공산당이 투쟁의 전선을 고무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국가권력을 획득하는 전략적 목표와 분리할 수 없으며, 또한 인민권력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인민의 의지와도 분리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 사회에서 성숙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전 세계의 자본주의의 발전이,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오늘날 사회의 모든 “창”을 통하여 스스로를 드러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17차 공산당 회의는 당 전체가 그것의 전략과 강령을 깊이 받아들여야 하고, 집단적인 경험과 그것을 증진시키는 방법에 근거해서, 공동의 시각을 지녀야 한다는 필요성을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우리의 목표는, 독점자본과 제국주의 연합체 그리고 부르주아 정당과 그들의 연합세력에 맞서서, 또한 인민의 힘과 인민의 경제를 위해 투쟁하는 반(反)제국주의와 반(反)독점의 사회ㆍ정치적 동맹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선에서 모든 세력들이 초기에 새로운 사회의 성격에 관련해 동일한 견해를 견지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더라도,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모든 행동에 사회주의가 반드시 필요하고 실현가능하다는 인식이 충만하게 해야 한다.





우리 정당은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이러한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계급의 의식있는 전위로써 당의 성격과 관련 있다. 우리 정당은 또한 젊은이들에게 관심이 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계급 운동의 에너지이자 보루이며, 1980년대 말과 1990년에 초반에 연령 구성에 있어 우리 정당이 타격을 받아 고통을 당했기 때문이다.





2007년 11월에 국제 혁명 운동은, 1917년의 위대한 10월 혁명의 90주년을 기념하였다.





우리 정당은, 중앙위원회의 선언서를 통하여, 그리스의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2008년 내내 우리 정당의 90주년을 기념하고, 우리나라의 노동 계급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맑스-레닌주의와 과학적 공산주의에 대한 세계관을 가질 것을 요구하였다. 물론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역할과 가장 중요한 공산당의 둘도 없는 역할을 위하여, 반(反)제국주의, 반(反)독점주의 방면에서 인민의 투쟁을 조직화 하는 것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이 이 유령의 성스러운 사냥을 위하여 동맹하였다.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자신의 적들로부터 공산주의적이라고 비방을 받지 않았을 반대당이 어디 있는가? 더 진보적인 반대파 인사나 자신의 반동적인 적들에 대하여 공산주의적이라고 낙인을 찍으며 비난을 되돌리지 않았을 반대당이 어디 있는가? 이러한 사실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공산주의는 이미 유럽의 모든 세력들로부터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공산주의자들이 전세계 앞에 공공연하게 자신의 견해와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지향을 표명하여 공산주의의 유령이라는 소문에다 당 자체의 선언을 대치시킬  절호의 시기이다.”10)










공산당 선언의 서문을 이루는 위 문장은, 진정으로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조직화를 위한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린다. 마치 바로 어제 작성한 글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진정으로 혁명적인 공산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살아서 흐르고 있으며, 매우 현대적이고 젊다. <노사과연>










2008년 4월 6일















번역 : 편집부















편집자 주: 본문은 “160 Years of the Communist Manifesto: Its Importance for the contemporary revolutionary strategy”를 번역한 것이다. 원문은 그리스어로 되어 있으나 그리스 공산당이 운영하고 있는 영어 사이트(http://inter.kke.gr/)에 영역이 올라와 있기에 그것을 대본으로 하였다.
















1) 2nd Congress of the Communist League






2) 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 (First International)






3) 역자주 :“공산당 선언”.






4) 역자주 :“공산당 선언”.






5) 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 (First International)






6) 역자 주: 레닌시대에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를 의미했고, 사회민주주의자는 공산주의자를 의미했다.






7) Eurocommunist.






8) 역자 주: Συνασπισμός. 그리스 신좌파정당으로 좌익운동과 생태주의의 연합을 표방하고 있다.






9) Communist Party of Greece (KKE)






10) 역자 주 : “공산당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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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공산당 선언 160주년: 현대 혁명 전략에서 이 선언의 ...[1] D. 코숌빠스 (D. Koutsoumpas)|그리스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2008-12-26 2851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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