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김수남 동지 최후진술서

최후 진술서

서울지방법원 제27형사부

재판장(주심판사) 김형두, 판사 염경호, 판사 박승혜

사건번호 : 2010 고합1015 (병합 2010 고합 1102)

국가보안법위반(이적단체구성등)등 (찬양고무등) (회합 통신등)

피고인, 김 수남(41****-*******) 69세(010-3185-4949)

(중략 —주거, 거소)

적용법조,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제3항, 제5항, 제8조 제1항, 제14조 형법 제30조 제37조 제38조

구속, 2010.6.14.05시45분 서울지방경찰청보안수사대원 10명에 의하여 체포되었음.

서울지방경찰청 옥인동 수사대에서 국정원 포함 4팀에 의하여 17일 동안 21회 조사받았고 2010.7.2 검찰로 송치되어 917호 검사 이재영로부터 7회 조사받았음.

영장실질심사 국선변호사 권태섭

재판국선변호인 남현우 선임변호사, 이덕우 本人(본인)은 신라말 마의태자 33世(세) 孫(손)으로 평소 그의 지조를 존경하였고 그의 부친 경순왕 삶은 경멸, 세궁역진하여 항복했으면 자결해야 하거늘 왕건의 딸과 호의호식 얼마나 추한 삶인가.

나는 경순왕의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1) 이 나라와 미국관계를 살펴보면 1847년 미국 제네럴셔먼 선장이 배에 포를 장착하고 대동강에 정박, 평양 입성하려 하자 평양주민들이 감당할 수 없어 여러 척의 배에 짚단을 실어 불을 질러 제네럴셔먼호를 물리쳤고, 1875년 미국은 또 군함에 신무기로 무장하고 강화도 바다로 와 상륙하려 하였으나 조선조정에서 힘겹게 물리친 바 있은 뒤에, 1892년 인천 제물포에서 조미 조약을 맺었으나 미국은 이를 헌신짝 버리듯 하고, 1905년 일본과 태프트-가스라 밀약을 맺어 일본으로 하여금 동북아 침략을 방조하여 일본식민통치 36년 1945. 8.10 맥아더 지시에 의하여 작전성 작전과장 찰스 본스틸 대령, 딘 러스크 중령에 의하여 30분만에 38선 분단이 결정되었고, 8.13일 일본이 포스담선언을 수락하자 14일 쏘련에 38선 분할을 통지하니 쏘련이 이를 묵인함으로 이 나라 남쪽은 1945. 9.8 맥아더가 점령군으로 들어와 서울중앙청 일장기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미국기를 꽂고 미군정통치를 시작, 1948.7월 맥아더는 하수인 리승만에 남쪽관리를 맡긴 후 65개년이 되도록 용산을 비롯 이 나라 요소요소를 점령. 이 나라 국민혈세를 매년 15억불 주둔비로 받으며 지금도 점령군 해지를 하지 않고 민중의 고혈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2) 맥아더 하수인 쓸개 빠진 리승만은 북진통일 광기가 발동하여 개성 송악산, 해주, 옹진 등에서 약 700-800여회 전투를 벌려 김일성의 1950.6.25 민족자주 통일 전쟁 빌미를 제공하였던 사실 또한 맥아더 승인없이 리승만의 단독행위는 아닐 것이다.

1950. 6.25후 맥아더는 6.27 리승만으로부터 (이 나라 통치자의 고유 권한) 전시작전권을 탈취해 당시 이 민족 3000만 10% 300여만명 목숨을 희생시켰고 중공군 90여만명 연합군 5-6만명 합하여 400여만명 목숨이 희생되었고 1000만 이산가족이 발생하여 한평생 60여 성상을 통한의 세월을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던가. 이 또한 누가 보상할 것인가

3) 1953년 7월 조미 정전 후 미국은 공동관리구역 내 미루나무 도끼사건, 뉴트기사건, 푸에불로호선박 월경사건 등 무려 8차례나 전쟁노름을 시도하며 남쪽 국민을 기만하고 천문학적인 무기를 우리에 강매하는 현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4) 이러한 치욕적 준식민지가 반백년 넘게 지속되는 상황을 보면서 민족혼이 살아있는 자 민족주의 의인으로 어찌 가만 있겠는가.

미국, 영국은 2003년 이라크 유전 석유를 뺏기 위하여 이라크에 있지도 않은 무기가 있다고 허위조작하여 이라크를 침공하는 데 우리가 파병한다는 것이 부당하여 2003.10.10-10.31까지 목포-서울 도보행진 파병반대 투쟁(지금 그 침략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 2005.5.10-7.17(69일간)인천자유공원 점령군 괴수 맥아더 동상철거 투쟁(이 지구상 점령군 동상을 세워 지키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임), 2007.3.1-2009.12.23까지 52회 용산미8군 5호 문앞-광화문 미대사관 앞 점령군추방 집회 투쟁한 것

(합법적 집회신고서 득한 후 집회).

친일매국사대주의 후손들이 양키추종신봉세력으로 변신하여 권력선두에서 민족반역행위는 천벌이 두렵지 않은가. 민족주의 의인이라면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목숨을 걸고 正義行動(정의행동)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전봉준 장군, 안중근 장군, 이재영 의사처럼 민족주의 의인들의 正義(정의)로운 죽음은 100년여 세월이 지나도 지금 살아 빛나고 있지 않은가.

1) 이적단체구성(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

이 나라는 1910.8.29 한일(조선, 일본) 병합식민지 36년 1945. 8.15 후 9.8 맥아더(점령군 괴수)가 점령군으로 들어와 중앙청 일장기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미국기로 교체하면서부터 (준식민지 65개년)용산, 오산, 평택, 군산 등 이 국토 요소 요소 양키점령군이 주둔 매년 주둔비로 미화 15억불 국민혈세를 탈취해가며 지금까지 점령군 해지한 사실이 없지 않은가? 이 나라 강토 허리를 갈라 미ㆍ쏘 분할 통치, 반세기전 쏘련 군대는 38 이북에서 철수하였지만 38이남 양키점령군대는 조국분단을 빌미로 삼아 무기강매, 자기들 패권유지 침략전쟁에 이 나라 젊은이 목숨을 담보로 파병을 강요. 우리 남쪽 사람들은 양키군대 요원에 맞아 죽고 찢겨 죽어도 가해자가 미국으로 가버리면 끝나는 현실.

이러한 불평등관계를 청산하는 길은 이 땅에서 점령군 양키군 추방하고 무혈자주평화통일 뿐인 것이다. 남북 분단 65개년 지금까지 상호 다른 체제에서 련방에 의한 통일 말고, 전쟁으로 또 동족상잔 혈전을 하자는 것인가. 련방제통일단체 만들어 평화통일 남북공존 공생 하자는 데 이적단체 운운하며 보안법을 올가미로 민족주의 의인 통일운동 세력을 옥살이 시키는 자에게 련방제통일 방안 말고 무혈평화통일 방안제시를 요구하는 바이다. 무혈 평화 상생, 공존 방법 통일안을 제시하면 나도 따를 것이다.

2) 련방제통일 방안을 1970년대 초에 북쪽 김일성이 제시했다고 남쪽에서 련방제통일 방안 제시하는 인사들에 보안법 올가미를 씌울려면 김일성이 정장에 넥타이 했으니 남쪽에서 정장, 넥타이 한 자 보안법위반, 김일성이 쌀밥 먹었으면 남쪽 쌀밥 먹는 자 보안법 올가미 씌워 잡아들이는 것이 형평에 맞는 것일 터인데 공안당국과 종사자들은 답을 해보라. 법은 국민에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물 흐르듯 편백됨이 없어야 민족주의라 할 것이다.

3) 또한 우리 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는 2004.4 결성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성원 누구 한사람 북쪽에 간 일이 없고 북쪽 사람 누구도 만난 사실이 없으며 오직 민족 정기를 바로 잡고 분단 조국통일을 위하여 자주적으로 점령군추방투쟁 52회(용산미8군5호문, 광화문미대사관앞) 모두 당국에 집회 신고를 하고 신고증을 득하여 합법적으로 집회한 련방통추가 이적단체인가?

4) 2005. 5.10-7.17 (69일간) 인천자유공원 맥아더동상 철거 투쟁 역시 평화적으로 비폭력 투쟁 모두 인천 중부 경찰서에서 집회 신고서를 득한 후 투쟁한 바, 7.15 예비역 3군 대령연합회 회장 서정갑 일당이 맥아더 동상 앞 헌화 후 저희들 농성장에 와 욕설을 하여도 저희들은 참았으며, 7.17 황해도민회 인천회장 유청영이 성우회, 제향군인회 등 보수 단체 천사오백명을 동원 저희들 집회를 방해하여 7.17 마무리 집회를 제대로 못한 지라 내가 서정갑과 유청영을 집회 방해 고소한 바 서정갑은 증거불충분 처리됐고, 유청영은 벌금 1백만원형이 선고된 바 있으나 련방통추나 맥아더 동상타도 특위는 비폭력 평화주의자들입니다. 이명박 정부 검찰, 경찰, 국정원에서 本人이 북쪽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점령군 괴수 맥아더 동상 철거 반미투쟁하였다는 자들은 양키놈들 개가 아니고야 우리나라 사람 민족의식이 있다면 감히 북쪽지령 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나라가 1945. 9.8 양키점령군 주둔 후 양키놈들로부터 평등하며 자유로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本人의 양키군 추방 파병반대 투쟁 등이 잘못되었다면 노무현 정부가 왜 보안법을 씌우지 않았으며 이명박 정부 등장 2년여 되도록 잡아 가두지 않고 있다가 이제와서 썩은 보안법 올가미를 억지로 씌우는 지 통치자 이명박 수장에 묻노니 이에 답변하기 바람.

련방통추결성 7년 현재까지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 받은 사실이 없는 순수한 단체를 이적단체로 몰아 세우는 것은 법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불법 폭압 행위가 아니던가. 련방통추는 분단된 조국 통일을 하기 위하여 민족주의 의인들이 결성한 단체이지 친북단체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 찬양 고무 등

1) 本人은 북쪽을 70평생 1번도 가본 일도 없고 또한 누구에게도 북쪽에 대한 관계는 찬양이고 비평이고 한 사실이 없는 데도 수사 기관은 억지허위 사실을 조작 뒤집어 씌우는 작태 천벌이 두렵지 않은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직무라도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줄 모르고 날뛰면 재앙이 뒤따른다는 철칙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회합통신

본인이 중국을 처음 간 것은 1992.2. 한중수교전 국정원 허가를 얻어 사업차 드나들기 시작하였고 1996. 중국요녕성 영구 신개발구 빠이촌에 신발공장을 하기 위하여 마포구 노고산동 유일제화 사장 ○○○과 동업으로 신아피혁제품 유한공사를 설립하고 ○○○동사장 본인 부동사장 및 총경리 신발제조 자동기계와 피혁미싱을 현지에 갖다 놓고 개업 전 ○○○이 상처를 하여 중국사업이 실패하였으나 중국에서 통역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정도였음.

2002년 강희남 의장님, 청주도시산업 선교회 정진동 목사 모시고 중국동북 3성 우리 민족 옛 역사 유적지탐방차 방중 첫 날, 심양 서탑소재 북측 경영식당에서 정진동 목사 교인이 석식을 대접한다고 안내하여 식사 중 식당지배인 소개로 범민련 중국 측 의장 양영동을 처음 만나게 되었고 그 후 금년 4월 9일 강의장님 유골 북쪽 매장관계로 다섯 번째 만난 것은 사실이나 유골 북 매장이 불가능 할 것이란 답을 듣고 다음날 오전에 돌아온 사실은 국정원이 상세히 아는 사실. 남북 관련 사안에 대한 이야기는 상호 간 한마디도 한 사실이 없는 것을 국정원이 파악하고 있는 사실 아니던가. 본인 생질 결혼문제로 방중 시 잠깐 만나 술을 마신 사실도 정보기관에서 파악하고 있는 사실.

나는 몇 번 만난 것도 모르는데 이번 조사과정에서 다섯 번 만났다고 들어서 아는 사실. 그렇다면 내가 종북 이야기를 했는지 친북 이야기를 했는지 양영동이 나에 어떠한 말을 했는지 정보당국이 더 잘 아는 사실인 데도 불구하고 사실무근한 북쪽지령 운 언론에 보도토록 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명박 수장이 내가 양영동으로부터 북쪽지령을 받았다면 지령받은 근거를 나에게 종목 제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있지도 않은 사실을 조작 뒤집어 씌우는 행위는 매국노 리승만이나 민족반역자 박정희보다 이명박 정부가 더 못된 짓을 하여 생사람 잡아 고통주면 하늘이 용서치 않을 것이며 와식종신이 가능할지?

나는 양영동을 범민련 중국의장 그리고 조선족동포를 친구로 상호 간 만나면 술 한 잔 같이 하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란 사실을 정보기관이 다 아는 사실인데 보안법 올가미가 타당한지 묻는 바이다. 또한 양영동이 범민련 중국 측 의장(겸임, 여중총련의장) 재임 당시 본인, 강희남 의장, 정진동 목사, 정진동 목사 교회 성도(당시 심양 거주) 처음 만났으며 2차 만난 것은 강의장님과 본인 두 번째 중국 역사 탐방 산동성곡부공자묘, 사당, 남왕진 소재 배달제국(환웅시절) 16대 치우천왕묘소 참배, 서예가 안진경, 시인 두보 묘소, 황하유역, 낙양, 제남 등 7일간 2차 중국역사탐방 시기였고 3차, 4차 상면은 나의 생질 정병관 중국조선족 여인과 결혼관계로 방중 시 잠깐 만나 고향주 한잔씩 하였으며, 호상간 안부정도의 어떠한 이야기도 나눈 적이 없고, 2003년10월 10일-10월 31일까지 이라크 파병반대 목포-서울 도보행진 투쟁 당시 서경원 전국회의원(당시 집행위원장) 제의로 북쪽주민에 밀가루 보내기 성금 미화 1900불 북쪽 전달 영수증 받고 술 한잔씩 한 것이 전부인 것이다.

금년 2010.4.9 강의장님 납골 북쪽 매장관계로 5차 만날 때는 양영동이 범민련 중국 측 의장과 여중총련의장직을 2009년 가을에 사임하였다는 말을 들었으며 정보기관이 더 잘 아는 사실이 아니던가. 현직 당시 4차례 만날 때는 보안법이 적용되지 않고 조선족 자연인으로 만난 것은 보안법 올가미가 씌워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의장 일본 곽동의 의장님 상면관련 본인이 련방통추 공동의장으로 사무실 운영사정이 어려워 강희남 상임의장님 서예전을 일본에서 열까하여 강의장님 친서를 휘대하고 1998.7.16 동경 메가서 곽동의 의장님을 만나 강의장님 친서 전달하고 일본에서 서예전 하는 문제를 논의한 바 그 곳 사정도 어렵다하여 18일 귀국하였는데 90세 가차운 노인 전에 김대중이 일본망명 시절 한국민주회복을 위하여 만든 단체 한통련 전직의장, 만날 당시 6.15공동선언실천해외의장 곽동의 선생 만난 것이 보안법 위반죄라니 개가 웃을 일이 아니던가. 아무리 민족의식이 결여된 자들이라도 양키놈들 개가 아니고야 민족주의 의인들에게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늘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2010.10

6.15공동선언실천남측공동의장

진보연대 공동의장

미군추방공대위 사무총장

부설, 맥아더동상타도특위위원장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 상임대표의장

金壽南(김수남)

한상렬 동지의 편지

존경하고 사랑하는 채소장님

감사드립니다.

��정세와 노동�� 잘 받아보고 있습니다. <노사과연>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와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채소장님 언제나 한결같이 여기 산처럼 지켜오고 계시는군요. 지난 날 채소장님을 처음 뵈올 무렵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는군요. 과연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군요.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궁금하군요. 이곳 저는 ‘내집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일편단심 6․15 살라기 북녘조국 순례사건 모두 진술서｣로 함께 그 진정성을 나누고 싶군요.

채소장님 부디 행복하소서.

지금여기 채만수님

한몸평화 통일평화

한몸이니 한몸으로 한몸되게 하옵소서!

2010. 11 청계산 국립수도원에서

어느 한 사람 올림

이병진ㆍ최상철 동지 편지들

최상철 동지께

저는 동지라는 말이 무척 어색합니다. 그런데 최 동지라는 말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분일까? 나에 대해서 얼마 만큼 알고 계실까? 단지 수인(囚人)이라는 이유 때문일까 그래서 관심을 갖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질문의 답은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를 읽고 해명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 내내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동과 시원한 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인도에서 지켜보고 고민했던 문제의식과 경험들이 책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이제야 진실이 드러나는구나. 이미 인도에서 목격했던 진실을, 한국에서 또 다시—그것도 감옥에서—생동하게 느끼면서 20년 전 델리에서 고뇌하던 제가 생각나네요.

보내주신 책과 잡지를 받고 너무나 마음 든든하고 기뻤습니다. 요즘은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보내주신 책을 읽다보면 밤이 되네요.

오늘 등기 우편으로 10월 23일 소인이 찍힌 ��정세와 노동�� 2009년 3월호 받으면서 최동지의 자상하고 세심한 배려에 감동 받았습니다. 인도 핵 관련 글이 빠져서 아쉬웠는데 오늘 3월호 받고 무척 기뻤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기쁜 이유는 인도와 미국의 핵협정은 인도의 현정세를 이해하는 본질적인 문제임에도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1차적으로 인도 연구자인 제 책임이 큽니다. 깊이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습니다. 연구소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확하게 국제정세를 읽고 있다는 신뢰를 갖게 합니다.

최 동지의 편지를 책상 한 곳에 두었다 가끔씩 꺼내어 읽곤 합니다. 진심이 담긴 편지의 호소력과 감동이 저에게 울림으로 느껴집니다.

번역자의 정성스러운 각주를 읽고 열정이 있으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되면 같은 인도 연구자로서 뜻을 나누고 싶습니다. 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는 인도관련 책들도 무척 궁금합니다.

(중략)

최 동지! 내 사건을 객관화시키고 알려가는 일이 나 혼자만의 의지와 힘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갈지 도움도 받고 조언도 듣고 싶습니다. 자서전과 수기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맥락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보수 언론에서는 단편적인 시각에서 보고있는데 진실과는 다릅니다. 제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어떠한지 객관적인 사실을 알고 싶습니다. 그래야 진실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제가 반박하고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밖의 상황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저의 객관적인 상황이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학자로서의 명예와 자존감을 찾기 위해서 싸워나갈 생각입니다. 자백하고 용서를 빌면 관용을 베풀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합니다. 특히 이데올로기적인 비방과 비난, 인격적 파괴는 가족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주고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이것을 지켜보는 저는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교훈은 명백합니다. 타협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지키기 위해서는 철저히 무장하고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우칩니다. 최 동지가 연대의 힘을 만드는데 끈이 되어주고, 제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2008년 8월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민주평통 자문위원 대표로 발제자로 참석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준비가 부족하다며 지적을 하였습니다. 수사기록에는 정부정책을 비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부터 저에 대한 수사가 전방위로 진행되었음을 재판과정에서 일관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학자로서 일관되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공개적으로 주장했습니다. 학술자료, 군부대 강연, 통일부 전문위원으로서 진정성을 가지고 정부의 정책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무시하거나 생략한 채 몇 가지의 사실들을 재구성하여 목적수행을 한 사람으로 몰아세워서 인격파탄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에 따른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이 여전히 큽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가 되겠지만 제 개인적인 명예회복과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서 꼭 “진정성”이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북한 측 사람을 만난 이유는 북핵문제가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입니다. 9.19 공동선언 이후 북 측은 핵 폐기에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6자회담 2단계가 마무리 되면서 3단계 회담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저의 정세판단은 핵 문제 보다는 미사일 통제가 더욱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북의 핵 물질 폐기에 대해서 낙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제 사건을 계기로 완벽한 국면전환을 했고 천안함 사건으로 동북아 전체의 역학 구도에 퇴행이 발생했습니다. 원정화 사건은 논란이 많았지만, 저는 완벽한 간첩이 되어 국면 전환의 계기를 주었습니다. 저는 흐름을 읽고 있었지만 무섭고 위축되었습니다. 그냥 자포자기 했죠. 수사과정에서 진정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오히려 너무 자세히 말해서 지금은 저의 가족들이나 아내까지도 저를 진짜 ‘간첩’인지 혼동할 정도지요.

이제는 드러난 사건들을 역사적 흐름과 함께 재구성해서 “진정성”을 찾고 싶습니다. 아빠를 믿고 기다리고 있는 딸과 아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혼자라서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최 동지의 편지 받고 제 스스로 반성하였습니다. 두려움에 놀랐고, 움추렸던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차츰 차츰 정신적 후유증에서 회복하고 있습니다. 학자로서의 높은 꿈과 이상을 가지고 열심히 살았던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두렵고 걱정이 앞서지만, 아이들에게 꿈과 미래가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노력했던 아빠의 모습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저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과 진실이 드러나면 날수록 저의 진정성이 더욱 진실되게 드러날 거라 믿습니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 동지의 삶과 저의 삶에는 “진실”을 추구하는 공통점과 믿음이 있습니다. 서로를 알아가면서 신뢰를 쌓아가면 좋겠습니다. 또 편지드리겠습니다.

이병진 올림.

2010년 11월 2일

최상철 동지께

최동지와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외로운 감옥생활이지만 최 동지와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기쁨입니다.

아시는 분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주에는 노정협의 백철현 동지로부터 연대와 지지의 가슴벅찬 편지를 받았습니다.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밖에서 누군가 나를 지지하고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고 하니 용기가 생기고 힘도 납니다. 저를 객관화시켜서 더 개방하고 소통을 진전시켜서 국보법 폐지에 뜻을 모으고 싶습니다.

어제 편지를 보내고 오늘 편지 보내는 이유는 남북관계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징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변화) 오늘 언론보도에 의하면 미국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한다면 북영토를 공격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미국이 김정은의 체제를 간접적으로 승인하면서 6자 회담 복귀의 수순과 명분을 쌓기 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는 “미사일”이 정식 의제로 제기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미국은 9.19 공동성명 수준(즉 6자회담 2단계 회담)으로 북미 관계를 되돌릴 수 있다는 의사를 북쪽에 보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미국의 공식적인 발표는 매우 중요한 (향후 동북아 정세에) 발표입니다. 어제 그저께 클린턴 국무장관이 중국에게 G20 회담기간에 북한이 도발하지 않도록 북에 압력을 넣어 달라고 했다는 언론보도를 듣고 좀 의아했습니다. 미 국무장관이라는 사람이 한가하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는데 무언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결국 중국에게 미국의 입장을 북에 잘 전해 달라는 것이었구나라는 점을 오늘 분명히 파악했습니다.

이제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대응인데 지난 주 원세훈 국정원장이 정보위에서 큰 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최소한 “통미봉남”의 쓰라린 아픔은 반복하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판단 같습니다. 아직은 정부 내에서도 입장 정리가 안되어 통일부 장관이 50만톤 지원을 정치적 사안과 연계시키고 있지만 변화의 징후는 느껴지네요.

��정세와 노동�� 9월호에 실린 ｢‘북 세습 논쟁’과 ‘진보적 지식인들’의 부박함에 대해｣ 읽고 느낀 점이 진보적 지식인들의 수준이 참 유치하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글이 좀 거시기 했지만 (문체가 생활글 같아서) 논지는 정확했습니다. 저는 논쟁에 가담하고 싶지 않지만 (너무 한심해서) 제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열병식에 김정은이 나타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사일”을 등장시켰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 동안 공개하지 않은 것을 50명 가량의 외신 기자들을 불러 놓고 공개한 사실입니다. 오늘 미국의 공식 반응이 이 미사일에 대한 답인 것입니다.

미국은 9.19 합의를 통해서 (양보) 북의 미사일을 통제하고자 했습니다. 앞으로 동북아 정세에서 역학 관계는 핵이 아닌 미사일에 의해서 규정되고 미국에게 직접적인 위기와 위협을 주기 때문입니다. 북한도 미사일 카드가 있기 때문에 과감히 영변탑을 폭파시켰지요. 이는 핵을 포기하겠다는 상징적 표시였지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선핵포기라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저는 2008년 8월 미국 휴스턴에서 이를 비판했고 1년 후 간첩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방치하며 (소위 전략적 인내) 재미 좀 볼려구 했지만 땅꼬마 같은 김정은이 미사일을 가지고 나오자 아차 싶은 거지요. 미국이 얼마나 황당했으면 “리얼리티 쇼를 보는 것 같다”고 했겠습니까. 결국 28살 먹은 땅꼬마하고 협상을 하게 생겼으니 …… 젊은 애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지요. 이는 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였습니다.

오늘 언론보도에 2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중첩되는데 미국이 북에서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하면 영내를 공격하겠다고 했는데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1950선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국내의 보수언론과 지배세력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객관적 사실을 왜곡축소하여 본질을 가리고 있습니다. 이념을 떠나서 최소한 객관적인 진실을 알게 하는 게 파국을 막는 지름길 아니겠습니까?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생겼습니다. 정세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파악해서 대응하고 전진해갈 시기입니다.

최 동지! 인도 미국 핵협정에 관한 글은 잘 읽었습니다. 인도 정치는 이해하기 복잡하고 세속주의(힌두-무슬림 갈등), 카스트 정치, 지역 독립운동이 정치에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어서 단순하게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인도 공산당의 시각에서 인도-미국의 핵협정을 이해하는 것의 본질은 왜 미국이 인도와 협정을 하려고 하는지, 왜 인도국민회의는(Indian National Congress) 연정을 깨겠다는 인도 공산당의 압박에도 미국과 핵협정을 하고자 하는지 좀 더 깊이 있는 후속 연구가 필요한데 번역으로 그친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최 동지께서 저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면 글을 써보고 싶군요.

저의 기본 시각도 번역자의 입장과 같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미국의 남아시아 전략의 내용과 인도의 전략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보충자료가 있지만 번역 수준이라서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합니다. 천안함 사태 이후 급변하는 동북아 질서와 인도와 미국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최 동지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여담이지만 …… 연구소 입장에서는 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하네요. (저야말로 소시민이고 소부르주아인데 ……) 그러나 정의와 진리를 향한 열정과 믿음은 같을 거라 생각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2010년 11월 3일

이병진 올림.

안녕하세요 이병진 동지.

편지가 늦어졌습니다. 어제 G20 반대 집회를 마치고 이제야 편지드립니다.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습니다. 힘겨운 투쟁의 결과로 이젠 감옥의 겨울도 예전 만큼은 싸늘하지는 않다고 합니다만 그곳의 상황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혹시라도 부당하게 대우받으시는 것은 없으신지요? 그쪽에서의 일상적인 관행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다면 부단하게 바꾸어 가도록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만약 혼자의 힘으로 어려우시다면 <양심수 후원회>나 <구속노동자 후원회>와 같은 단체들에 알리면 많은 도움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동지에 대한 관심은 연구소가 맑스-레닌주의를 계승할 것임을 표명하고 있기에 사상의 자유라는 문제에 대해 어느 단체보다도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이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다면 언제 누가, 어느 단체가 국가보안법 때문에 학문과 사상의 자유조차도 탄압받을 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도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라는 단체에 공안탄압이 가해진 것이 알려졌으며 한총련 간부 출신의 한 여성이 간첩혐의로 잡혔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하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 10월 22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는 한나라당 신영수 의원이 ‘혁명적노동자당건설 현장투쟁위원회’(노건투)를 언급하며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는 집단” 운운하며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을 질책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만들어진 간첩과 조작된 혐의는 언제 어디서든 재생산 될 수 있는 구조는 깨어져야 합니다.

또한 동지는 현재 어떠한 단체나 조직과도 연계가 없어 보입니다. 감옥에 계시는 양심수들을 후원하고 있는 단체와 몇 몇 양심적인 개인들이 동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집단적인 뒷받침이 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는 작은 단체이며 연구소 내에서 제 역할은 극히 미미한 것입니다만 저 하나의 노력으로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양심수 출신 인사 중에 청송감호소에서 오랜 기간 수감하고 나오시고 그곳의 인권 유린을 폭로한 윤치고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의 이야기는 보내드린 ��정세와 노동��에도 실려 있습니다. 이분은 고아로 자랐고 ‘일반수’ 출신이라 양심수 관련 단체에서도 거의 이분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인권단체들에 대해 크나 큰 불신을 갖고 계십니다. 어떻게 보면 학자 출신인 동지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나은 처지에 있는 것은 분명하겠습니다만 국가보안법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 혼자의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동지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조력이 아니라 함께 국가보안법을 폐지시키는 길로 나아가기 위함임을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동지와 나눈 서신을 ��정세와 노동�� 11월호에 소개하였습니다. 또 연구소 홈페이지와 회원들의 인터넷 소통 공간에도 알렸습니다. 또 구속노동자 후원회 다음 카페에도 동지의 소식이 올라와 있습니다. 아직 많이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동지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분들은 늘어날 겁니다. 연대와 지지의 편지를 보내는 분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신호일 것입니다.

인도 관련 영문 서적들을 우여곡절 끝에 보내드렸습니다. 잘 받으셨는지요? 기증자 분과는 건너 건너 연락을 해야 해서 어려웠는데 이제야 완료를 했습니다. 책을 사전에 제본하지는 못했습니다. 더 기다리게 하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구요. 혹시라도 반입에 문제가 있을까 싶어서 목록 보내드립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E.M.S. Namboodiripad, A history of indian freedom struggle, Social Scientist press (1986)

Bipan Chandra, India since indepence, penguin (2008)

C. C. Biswas, Bengal's response to Gandhi, Minerva Association (publication) PVT.LTD (2004)

Samit Kar, Panchayat Raj and Rural Development in Modern India, Unique book International 350rps (2009)

Without fear.

Samit Kar, sociology in 21st century, PPH (2009)

Samit Kar, Marx's legacy in 21st century, PPH (2010) 

책은 지난 월요일인 11월 8일에 택배로 발송하였습니다. 책 중에 Samit Kar, Sociology in 21st century, PPH (2009) Samit Kar, Marx's legacy in 21st century, PPH (2010) 이 두 권은 연구소에 복본이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 상황을 반영한 책이기도 하니 혹 여건이 되신다면 번역을 해보시는 것은 어떠하실런지요? 우선은 다른 책들과 함께 천천히 살펴보시고 답변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이병진 동지. 자신을 소시민, 소부르주아로 칭하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왜 이리 자신에 갖힌 ‘소인’들이 넘쳐나는 것일까요? 제가 학생시절 좋아하던 비주류 음악가가 있었는데 그 분이 예전에 제게 이런 메모를 건내더군요.

“최상철님, 가슴 속의 거인이 되십시오.”

누구나 거인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거인이란 존재는 가슴 속만의 관념적인 존재도 아닙니다. 그러나 동지께서 싸워야하실 목표가 분명하시다면 스스로의 자존감을 회복하시는 것이 가장 우선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미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소부르주아는 객관적․경제적 용어입니다. 제가 이병진님에 대해서는 정확히 잘 모릅니다만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그 대가인 임금을 받아 전적으로 생활해야 하는 처지였다면, 님은 소부르주아 계급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입니다. 지식인이라는 처지 때문에 양쪽으로 동요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소부르주아라는 규정으로 스스로를 중립지대에 가두어 두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러한 중립은 ‘입장 없음’의 다른 말입니다.

동지와 관련한 기사가 궁금하다고 하셨는데 아직 많이 찾아보진 않았습니다만 당시에 보도되던 기사는 짤막한 단편 기사들 위주였습니다. 이른 바 ‘원정화 사건’ 때에는 선정적이지만 보도가 넘쳤는데 동지 사건과 관련해서는 그쪽에서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없었는지 그정도로 보도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동지의 내용을 자세하게 다루었던 매체라면 완전히 극우적인 색채의 언론일텐데 거기야 3류 소설가들의 밥그릇을 제공하는 곳이니 크게 개의치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진실은 하나 하나의 세부적인 거짓과 모두 1:1로 싸워서 얻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집중적으로 싸워야할 대상을 명확하게 설정하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비핵화는 참으로 길고 어려운 경로를 거쳐야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북측의 ‘비핵화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잠깐 옆으로 샙니다만 연구소 편집부에서는 ‘북한’이라는 단어는 거의 쓰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러한 국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썰렁한 농담입니다만 ‘북한’은 ‘한강 이북’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저보다 훨씬 더 잘 아시겠습니다만 과거 한반도에 실제로 미군의 핵이 배치되었었다는 폭로는 여기저기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미국은 NCND(Neither Conform Nor Deny) 정책을 유지해왔죠. (미국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NCND를 하지 않았던 것은 광주학살 당시 신군부와 미국의 연계에 대해 이를 부정했던 것인데 이것은 철저하게 거짓임이 이미 밝혀진 바 있죠.) 노태우 정권의 기만적인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에도 실제로 한국에 핵이 있는지 없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주한 미군에 관한 정보는 우리가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또 한미일 군사동맹과 미제의 핵우산은 영구히 변할 수 없는 전제로 상정하고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 땅의 비핵화 나아가 전세계에서 핵무기를 추방하고 그리고 우주의 평화적인 이용의 시대에까지 나아가는 것은 순전한 의지만으로 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인도 관련 연구자들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동지께서 주로 언급하시는 핵 문제도 그렇습니다만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러합니다. 이 양자는 서로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1월 1일 인도와 한국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이 발효되면서 자유무역협정의 파고가 한-인도 관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또 이번에 쌍용자동차 매각의 우선 협상대상자로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이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중국 상하이 자동차의 쌍용자동차 인수 후에 ‘먹튀’, 쌍용자동차 노동자 2646인에 대한 정리해고 대상 통보 그리고 77일간 이어졌던 파업투쟁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또다시 인도 기업에게 매각을 시도하며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짓밟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세계화가 갈 데까지 진행된 지금에는 일국의 사안은 더 이상 일국의 문제로 그치지 않습니다. 더구나 BRICs 국가 중 중국 다음의 경제 규모를 갖춘 인도와 같은 거대한 나라의 문제는 이제는 바로 한국과 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중국 다음인 인도의 인구는 말할 것도 없으며 미국과의 교역 규모만 해도 연간 400억 달러를 훌쩍 넘기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오바마는 G20과 한미 FTA 문제로 방한을 하기 전인 지난 5일 인도를 방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오바마는 “미국 제품의 수출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비즈니스적인 내용을 언론에 흘렸습니다만 비즈니스에는 무기가 포함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도가 보잉사와 록히드 마틴과 같은 군산복합체의 주요한 판매처로 떠오르는 것은 이병진 동지가 지적하시는 바대로 대중 포위망 구축을 위한 것입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남사군도 문제와 관련해서 중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베트남까지 포섭하여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미국의 영향력을 더욱 더 확대하려 하고 있습니다. 향후 세계정세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 예측하는데 있어 인도는 더없이 중요한 분석 대상 국가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도를 연구하시는 학자와 연구자들의 역할이 더없이 소중하며 절실히 필요합니다.

동지께서는 간디를 존경한다 하였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시절에 간디의 전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은 바 있습니다. 간디의 비폭력무저항주의는 어린 시절 제게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간디의 저항 방식이 자신의 계급성에 기인한 것이며 그가 불가촉천민을 비롯한 하층 카스트의 노동운동에 대해 적대적이었음을 알게 되며 제 생각은 바뀌어가게 되었습니다. 폭력적인 세계는 우리에게 비폭력을 강요합니다. 국가기구를 통해 무산계급을 억압하는 이들이 가장 폭력적인 이들이 아닌지요. 우리의 길은 비폭력이 아니라 폭력의 근원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닐까요?

앞으로도 동지와 서신을 통해 많은 의견 교환이 있길 바랍니다. 이번엔 중국 시인의 시로 마치려 합니다. 다이왕수(대망서)의 시는 ��정세와 노동�� 2008년 3월호의 시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만...

단지(斷指)

다이왕수 [戴望舒, 1905~1950]

오래된, 먼지 풀풀나는 책 궤 속에,

나는 알콜병에 담겨진 잘려진 손가락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무료하여 고서들을 뒤적일 때마다,

그것은 근심스럽게 나의 슬픈 기억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것은 이미 희생된 어느 한 친구의 잘려진 손가락,

창백하고, 바싹 마른 것이 꼭 내 친구 같습니다.

이따금씩 날 옭아매는 건, 너무나 선명한,

잘려진 손가락을 건네줄 때의 그의 모습입니다.

'나 대신 이 우습고도 가련한 사랑의 기념을 간직해주게나,

보잘 것 없는 삶에서, 그 손가락은 불행만을 보태줄 뿐이야.'

그의 말은 차분하면서도, 탄식 마냥, 푹 가라앉았고,

미소 띤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엔 눈물이 맺혀 보였습니다.

그의 '우습고도 가련한 사랑'에 관해 난 정말 모릅니다,

내가 아는 거라곤 그가 한 노동자의 집에서 잡혀갔다는 사실 뿐,

그 후 가혹한 고문, 비참한 감옥살이를 거쳐,

사형,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는 사형을 받았겠지요

그의 '우습고도 가련한 사랑'에 관해 난 정말 모릅니다.

술에 취했을 때조차, 그는 말한 적이 없었지만,

분명 슬픈 이야기일 겁니다, 그는 감추며,

잘려진 손가락과 함께 잊혀졌을 거라고 생각할 테지만,

잘려진 손가락 위에 아직도 배어 있는 이 잉크 자국,

붉은 빛, 사랑스럽게 눈부신 붉은 빛,

그 흔적이 잘려진 손가락 위에 찬란히 남아 있습니다.

타인의 비겁을 질책하는 그의 눈빛이 내 마음에 있는 것처럼

이 잘려진 손가락은 늘 살포시 묻어나는 비애를 안겨 주지만,

나에겐 매우 유용한 귀중품입니다.

사소한 일로 실망할 때마다,

난 말할 겁니다. '좋아, 그 유리병을 꺼내오자.'

2010년 11월 12일

최상철 드림.

최상철 동지께

최동지 반갑습니다. 11월 5일자 소인이 찍힌 편지 잘 받았습니다. (11월 8일 받음). 제 편지에 답장 보내주시는 깊은 애정과 마음에 커다란 용기를 얻습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최동지를 통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각도 하고 제 한계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습니다. 스스로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저는 지난 10년간의 민주주의 성과와 제도화에 자신감과 체제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제 자신이 혁명가이거나 진보적인 사람은 아닌 소심한 소시민이었습니다. 학자적 양심으로 진리와 정의(正義)를 탐구하고 연구한다는 신념을 갖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간첩”이 되어 언론에 오르내리고 저를 낙인찍는 사회에 절망감과 좌절을 넘어 그냥 포기하게 되더군요. 30일 동안 매일 국정원에서 조사 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정신과 육체가 파괴된 것 같아요. 도무지 제 말은 믿어주지 않고 단편적인 사실들을 재구성해서 저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게 아니라고 외치고 싶어도 저 혼자 뿐이었습니다.

최동지와 대화를 시작하면서 차츰 제 자신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최동지에게는 깊은 연민과 인간적인 고뇌에서 진리를 찾고자하는 울림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순결하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오해 안 하셨으면 해요. 저 역시 동지라는 말이 서먹하지만 최 동지에게서는 정말 동지애를 느끼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서 부담 갖지 마시고 편안하게 대해 주세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는 날까지 동지로서 아니 평생 동지로서 최동지를 잊지 않겠습니다.

감옥에 와서야 나의 무지함과 부박함을 깨달았습니다. 저 역시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최 동지에게 많이 배우겠습니다.

연구소에서 보내주신 책은 모두 잘 받았습니다. ��정세와 노동��(32권) 도서 5권입니다. 연구소의 재정이 넉넉하지도 않을 텐데 어찌 고마움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독자투고해서 감사한 마음을 전해도 좋다면 그렇게라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인도 관련 원서를 기다리겠습니다. 번역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우선 급한 것이 인도의 정치를 이해하는 개론서조차 없습니다. 초보적인 인도정치 개론서를 구상하고 있는데 최 동지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중략)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보내주시면 읽고 반납하겠습니다. 정수일 교수의 다른 책은 읽었습니다. 그분도 ‘간첩’ 혐의로 7년을 복역하고 출소하셨습니다. 제 수사기록에 그분의 판결문이 있어서 읽어보았습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중국에 대한 “제국주의” 논쟁은 제가 오해를 했습니다. 최 동지의 생각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특히 2010년 2월호에 실린 글을 읽고 나니 저자의 시각과 문제의식에 공감을 하게 되네요. 글의 단편적인 내용을 보고 제가 오해했습니다. 중국의 변절에 대해서는 저 역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석사논문은 인도의 낙살라이트에 관한 것인데 (｢인도의 급진적인 농민운동에 관한 연구, 1998, 경희대 석사) 중국의 모택동에 깊은 영향을 받아 농민들이 일으킨 무장 게릴라 운동입니다. 지금 네팔의 마오주의자(네팔 공산당)들도 낙살라이트 운동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 중국이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social-market)”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혼동스러웠습니다. 1993년 평양에 가면서 북경에 잠시 있었는데 천안문 광장을 택시로 지나는데 자갈밭을 지나는 것 같았습니다. 탱크들이 지나간 자국이죠. 그 때 북측 사람들과 논쟁을 했지요. 중-소 분쟁 당시 북한의 입장과 왜 북한이 중국과 거리를 두고 자주외교 노선을 걷고 심지어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고 주한 미군 주둔까지 인정하는지 이해를 하게 되었죠. 그때 이미 저는 중국은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가 아니구나 알았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북한도 사회주의 국가인지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민족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라고 해야 될까요? (나중에 논쟁을 깊이 해보죠.)

아무튼 중-소 분쟁의 앙금이 깊었고 북한도 그때부터 자주노선을 걸어갔다고 하더군요. 이미 물건너간 일이지만 북한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미국과 진심으로 관계개선을 원했죠. 나는 미국이 정세를 잘못 판단했다고 봐요.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과 관계 개선이 오히려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일 텐데 우물쭈물하다 다 놓쳐 버린 거죠. 이런 상황에서 대북 압박정책에 매달리는 이명박 정부는 사상과 이념을 떠나 객관적인 정세 파악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나 같은 사람 “간첩” 만들어서 여론을 호도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얼마나 진실을 가리울 수 있을까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일이지요.

저도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가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습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너무 많고 내가 왜곡된 사실들을 알고 있다는 점을 인식했습니다. 이 분야는 저도 잘 모르지만 중국과 베트남 전쟁,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등 70년대 이후 상황에 대해서 면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 동지와 저의 문제의식에서 공통점을 발견해서 기쁩니다. 저는 인도에 대한 연구를 더욱 발전시켜야겠다는 사명감이 불끈 생기네요.

｢음악의 반란자｣라는 최 동지의 글(글이 아니라 번역임―편집자)을 읽으면서 어떤 분일까 상상을 합니다. 저 역시 음악을 좋아하고 한 때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고 싶었죠. ‘파가니니’를 좋아했습니다. <지고이네르 바이젠>을 듣고 집시들의 슬픔과 그러면서 이겨내고자 하는 역동성을 좋아했습니다.

고 2때(1988년) 노동은 교수님에게 김순남의 <산유화>라는 곡을 소개 받고 너무나 놀랐죠. 월북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좋은 곡을 오랜 기간 금지했다는 것을…… 서울대 이강숙 교수님, 이건용 교수님의 글을 많이 읽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에 이건용 교수님의 문제의식이 작용했지요. 그래서 요즘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위기에 대해서 가슴이 아파요. ��낭만음악��이란 잡지가 있어요. 음악학을 지향해서 만든 잡지인데…… 아쉬운 것은 아직까지 가극 <금강>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혹시 최동지께서 진보적 음악인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아신다면 근황을 듣고 싶네요.

제가 출소하면 최 동지와 함께 제가 인도 유학 시절 소장하고 있던 쏘련의 멜로이아 음반사의 LP판 음반을 함께 듣고 싶어요. 민요도 있고, 레닌 연설도 있고, 교향곡 30~40장 있는데… 듣고 싶군요. 상업적인 음반하고 다른 순수함과 예술에 대한 진지함이 참 좋았어요. 그때는 내가 어려서 잘 몰랐지만 쏘련의 해체는 잘못이라고 직감했죠. 당시 뉴델리에는 Progress 출판사 지점이 있었는데 수준 높은 책과 음반 등이 가득했어요. 쏘련의 문화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갑자기 해체되어 아쉬었죠. ��정세와 노동��을 읽으면서 “아! 그랬었구나!” 자연스럽게 와 닿네요.

제가 러시아어를 몰라서 늘 궁금했는데 연구소에 기증해서 함께 공유자산으로 나누는 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기증할 의향있습니다. 연구소에서 나를 이렇게 도와주는데 저도 당연히 작은 기여를 해야겠죠. 제가 출소할 때 쯤이면 연구소가 더 대중화되었으면 소망합니다.

편지 말미에 가족들을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자신을 굳건히 세워야 가족들이 용기를 갖고 세상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조언은 저에게 꼭 필요하고 귀담아 듣겠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는 것이 가족들을 도와주는 거라고 잘못 생각했어요. 악의적인 선전, 모략, 비방이 가족들을 더욱 힘들고 지치게 한다는 사실을 몰랐죠. 그래서 이제부터는 제 사건을 적극적으로 공론화시키고 ‘진정성’을 알려나갈 생각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최 동지께서 조언해주시고 함께 고민도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부탁인데…… 아내가 많이 힘들어하고 저에 대해서 실망하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싶습니다. 사상적으로 감화를 주면서 깨어 있는 음악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예술 작품을 통해서 아내에게 진보적 삶과 아름다운 희망을 보여주고 싶어요. 자료를 소개해주시면 동생에게 부탁해서 보낼 수 있습니다. 혹시 기분이 언짢으시면 용서해 주세요. 최 동지를 믿고 한 말이니 기분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 동지께서 보내주시는 시(詩)는 저의 심경을 그대로 표현해 줍니다. 그래서 더욱 절실히 가슴에 와 닿습니다. 최 동지의 예술적 감수성을 보면 예술을 하시는 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도, 증오할 수도 없는

비장한 현실

가슴에 무엇인가를 비장하게 결의하며

전선에 나서는 심경입니다.

수인(囚人)도 좋았는데 이번 시(詩)도 가슴에 와닿습니다. 좋은 선물 감사합니다.

최 동지의 깊은 배려 잊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올림

2010년 11월 8일

안녕하세요 이병진 동지.

매번 동지의 편지를 따라 잡지 못하고 늦게 답장 보내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연구소가 상근자가 저 하나 뿐인지라 다른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됩니다.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태일을따르는민주노동운동연구소> 사무실에 회의차 들렀는데 거기서 ��르몽드 디쁠로마띠끄(Le Monde diplomatique)�� 한국어 판을 구독하고 있더군요. 읽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기에 출력해서 보내드립니다. 제목은 ｢인도의 이상한 새 친구, 이스라엘｣입니다. 편지에 동봉합니다. ��르몽드 디쁠로마띠끄��는 (중도)우파지입니다만 영미권 언론 기사를 축약해서 보도하는 여타 한국의 언론들에 비해서는 풍부한 세계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프랑스 제국주의가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자행한 지금도 자행하고 있는 만행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에까지 눈을 감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병진 동지는 혹시 일어를 하시는지요? 만약 일본어가 가능하시다면 연구소에 있는 일본어 자료들도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감옥에서 어학을 공부를 시작하여,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게 되신 동지들도 있었습니다만...

음악 이야기를 하시니 제 마음이 감상적으로 되는 것 같아서 붙잡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감옥에 계신 동지와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제 감정을 완전히 추스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서구의 감옥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비들의 반입을 허용하고 있는 곳이 많고 심지어 북유럽 같은 곳에서는 감옥에서 음악가들이 음악을 녹음해서 발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의 감옥에서는 이는 먼 이야기이며 동지께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오로지 음악을 상상으로만 들으셔야 하는 처지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음악의 반란자｣는 제 글이 아니라 동독 음악가 한스 아이슬러의 영어판 선집을 조금씩 나누어 번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번역업계에서는 잘하지 못하는 번역을 속칭 ‘발번역’이라고 하는데 제 번역이 딱 그 모양입니다. 초역이라고 생각하시고 이해하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술가는 그에 적합한 기예(技藝)를 갖추어야하기에 저는 예술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하늘이 내린 천재라는 관점을 거부하며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술도 노동과 긴밀히 결합해야 참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예술이 혁명에 있어 주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저는 학교 교육이외에 음악을 공부한 것이라면 초등학교 1학년 때 근처의 음대 학생부부 집(아마도 하숙방)에서 아주 잠깐 피아노 바이엘을 공부한 것이 다입니다. 당시 단칸 방에서 살던 처지에 오래 배울 만한 여건이 안 되어서 금방 끝나버렸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들은 당시 경희대 음대생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중 남자 분께서는 열심히 하면 슈만과 같은 음악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었죠. 피아노 배우는 것을 그만두기로 하자 그분이 집으로 찾아와서 카세트 하나를 선물해 주기도 했습니다만. 그 이후엔 대학 입학 이후 기타를 잠시 다루어 본 것을 제외하고는 음악은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노동은 선생의 글은 저도 많이 참고하고 있습니다. 한스 아이슬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는 이경분 선생과 같은 분의 글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낭만 음악��이나 ��민족과 음악��과 같은 책은 정독하고 있지는 못합니다만 참고용 도서로 쓰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New Grove사에서 나온 음악 백과사전을 최신판으로 갖추고 싶습니다만 사치스러운 것 같아서 그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김순남은 저도 좋아하는 음악가입니다. 성음사에서 1990년 월북(혹은 탈남?) 작가들에 대한 해금조치 이후에 ��김순남의 가곡집��이 발매가 되어 저도 그 음반으로 김순남의 음악을 접하였습니다. 한국의 가곡들은 잠이 오게하는 곡 아니면 일제를 찬양하는 현제명의 <희망의 나라로>나 반공 가곡 <그리운 금강산> 같은 것들이 대부분인지라 김순남의 음악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철공소>와 같은 곡은 인텔리 특유의 생경한 가사가 단점이긴 합니다만 강한 공격성 때문에 큰 충격을 주었죠. 동지께서 언급하신 <자장가> 같은 곡은 ��겨레의 노래��(서울음반, 1990)에 장필순이 부른 곡도 아주 맘에 듭니다. 80년대 운동의 성과로 대중 가수도 이런 곡을 부를 수 있도록 했고 음반이 나왔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노동자문화예술연합(노문연)>에서 같은 해에 발행한 ��노동자문화통신�� 제3호에 당시 노문연 의장이던 김정환이 ‘계레의 노래’ 사업에 대해 노동자 계급이 주체로 서지 못한 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조언을 합니다. “겨레에 대한 몰계급적 시각은 ‘통일’에 대한 몰계급적 시각에 다름아니다. 내년도 ‘겨레의 노래’ 사업이 진정한 겨레의 노래 사업으로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는 원칙적으로 올바른 비판입니다. 그러나 김정환은 쏘련 붕괴를 바라보며 청산주의의 길로 그리고 노동자 계급을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길로 돌아섰습니다.

김순남은 1948년에 발표한 글 ｢나의 음악수업｣에서 ‘정치에 치우치는 음악’이라는 잘못된 비판을 아래와 같이 훌륭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현실은 나의 창작의욕을 북돋아 주는 유일한 대상이다. 보라! 피와 땀으로서 조국의 참된 자유를 위하여 어제도 오늘도 거리에서, 혹은 직장에서 쓰러지는 수많은 민족들을! … 우리는 위대한 베토벤이 그 시대의 대중들과 어는 만큼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또한 어떠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역력히 기억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창작의욕에 대한 파토스는 이러한 현실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뮤즈 신을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참됨에 있어서만 최미의 전당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예술평론��, 3․4월 합본호, 예술평론사, 1948. 4, pp. 76-79. 노동은: ��노동은의 두번째 음악상자��, 한국학술정보(주), 2004. p. 339에서 재인용.)

노동은 선생이 저술한 ��김순남: 그 삶과 예술��에는 북에서의 숙청이후에 김순남이 직접 쓴 ‘자아 비판문’이 실려있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북에서 김순남에 대한 비판과 숙청은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될 오류였다고 봅니다. 특히 6도 음정과 같은 비약을 쓰는 것에 대해 비판한 것은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김순남의 숙청과 관련한 자세한 정황과 숙청이후 김순남의 행보에 대해서는 정보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향후 궁금증이 해결될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한편으로 노동은 선생은 ��노동은의 두번째 음악상자��에서 이건우와 같은 또 다른 월북(혹은 탈남) 음악가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또 1990년 <범민족 통일음악회>와 1998년 <윤이상통일음악회>대한 소개를 아주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이러한 음악적 교류를 ‘민족음악’의 차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투쟁하는 근로인민 전체의 계급적인 음악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랄 뿐입니다.

북에 대한 언급과 사회성격에 대한 논쟁에 있어 전제되어야 할 것은 ��정세와 노동�� 11월호 고 타케이 테루오 선생이 언급하고 있는 것이 기본적으로 전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 문제를 자본주의와의 관계에서 세계적인 관점에서 볼 것,

둘째, 문제를 자본주의의 역사와 사회주의의 역사, 그 상호 대립과 항쟁 속에서 파악할 것,

셋째, 문제를 노동자계급과 인민의 입장에서 파악할 것.

또 제가 개인적으로 추가하고 싶은 것은 하나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 둘 사회성격을 판단함에 있어 토대에 대한 분석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국가보안법 철폐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논쟁에 있어서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당연한 전제를 재론해야 하는 현실이 상당히 유감스럽습니다만 현재 한국사회의 지형에서는 이 ‘당연한 전제’가 출처도 밝히지 못하는 내용을 근거로 제시하는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무시되고 있더군요. 현재의 조건에서 동지와 제가 이 문제에 대해서 학술적으로 의미있는 대화를 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배우자 분 이야기를 하시니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다만 제가 어떤 음악을 추천드려야 할 지는 좀 막막합니다. 제가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는 데다가 얼마 만큼 음악을 좋아하시고 들으셨는지도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음악을 많이 들으시는 분이라면 이미 저의 추천이 필요가 없기도 하고 말입니다. 또 혹시나 제가 간접적이나마 개입하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래도 소개를 해보자면 그리스의 미키스 데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와 같은 작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미 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데오도라키스는 그리스 군사 파쇼 정권에 싸운 양심적인 음악가입니다. 그의 구명을 위해서 쏘련의 쇼스따꼬비치와 같은 작곡가들도 힘을 썼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 중에 빠블로 네루다의 시를 가사로 한 ��Canto General(모두를 위한 노래)��(알레스 뮤직 라이선스 발매) 같은 작품을 추천드려 봅니다. 그리고 라이선스 발매되지 않은 수입음반입니다만 나치 독일 시절 수용소에서 죽어가던 이들을 위한 진혼곡인 ��Mauthausen trilogy(마우타우젠 삼부작)��과 같은 음반을 추천 드려봅니다. 그리스 음악을 추천하는 것은 상당히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투쟁이 그리스에서 지속되고 있고 그것이 향후의 세계 정세를 바꾸게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음악 또 하나 추천하자면 사비나 야나투(Savina Yannatou)와 건반주자 레나 플라토노스(Lena Platonos)가 함께한 마노스 하지다키스 작품집(��To '62 Manos Hadjidaki��, 시완 레코드 발매)와 같은 작품을 추천드립니다. 음반 중에 3번 째 곡 <우체부의 죽음(Ο Ταχυδρόμος Πεθανε)>과 같은 곡을 추천드립니다. 특별히 진보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곡은 아닙니다만 음악의 힘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하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겨울에 잘 어울리리라 생각합니다. 이 모두는 아마도 현재 입수가 가능한 작품들일 겁니다. 혹시라도 입수가 불가능하게 되신다면 말씀해주세요.

음반 기증은 저로써는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또 멜로지야 음반사에서는 상당히 귀중한 음원들이 많이 나온 터라 기대되는 바도 많습니다. 제 러시아 실력은 아주 기초적인 것에 국한됩니다만 연구소에 오시는 분 중에는 러시아어를 잘하시는 분도 있고 하니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귀하게 모으신 음반 생각하면 대단히 송구스럽기도 합니다만. 다만 현재 연구소 공간이 상당히 비좁습니다. 그래서 음반을 제대로 보관하고 관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지라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연구소 이사 이후로 미루어 볼까 합니다.

편지를 마무리하려 할 때 울산 현대 자동차 공장에서 34세의 비정규직 노동자 황인화 동지가 분신을 하신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화기를 흡입하시지는 않으셨다고 합니다만 3도 화상을 입으신 상황이라 상황이 걱정됩니다. 얼마 전에는 한 네티즌이 북을 찬양 고무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국가보안법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 북과 무관함을 밝히고 있으며 또 스스로 반북임을 분명히 표방하고 있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더 이상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해서 분신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자신이 가진 사상 때문에 또 그것을 표현했다는 이유 때문에 처벌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도달할 그날은 언제쯤일지 막막합니다만, 한 걸음 씩 전진하는 발걸음을 동지와 함께 가길 희망합니다.

동지께서 시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이번엔 비전향장기수로써 오랜 기간 옥고를 치르셨던 신현칠 선생의 시입니다. 시집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이��의 서시로 같은 제목의 시입니다.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이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이 썩지 않으려면

바다를 향한

한 찰나 쉬지 않는 의지가

스스로

샘물을 솟아 내어야

샘물이 피가 되면

물은 바다로의 기적을 흐르고 있다

최상철 동지께

잘 지내시죠? 오늘 편지 받고 반가웠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관심과 깊은 배려 감사합니다.

오늘 도서 담당 직원이 책이 도착했다고 알려주더군요. 2~3일 후에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인도 관련 책을 받아보게 되니 무척 기쁩니다. 연구소에 인도 관련 책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A history of Indian freedom struggle과 India since independence는 저에게 유익한 책입니다. Bipin Chandra는 인도에서 권위있으신 역사학자이십니다. 나머지 책은 모두 귀중한 책입니다. 책을 읽고 서평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래간만에 People's Publishing House (PPH) 출판사 책을 만나니 반갑네요. PPH는 인도공산당 계열의 출판사이지요. 델리에서 공부할 때 자주 갔었지요. 책들이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출판사가 서점도 운영합니다. 연구소에서 보내주신 책들 아직 다 못 읽었는데 분발해야 겠습니다. 책을 읽고 감상문을 꼭 보내드릴 생각입니다. 책을 보내주신 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지금 저의 현실이 말해주듯 폐지시켜야 할 법입니다. 국정원에서 조사 받을 때 처음으로 묻는 질문이 ‘누구를 존경하느냐?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는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국보법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였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지요. 자유로운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폐지시켜야 될 법입니다.

최동지 편지 읽고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공안탄압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군요. 국정원에서 조사받을 때, 말도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억지로 꿰맞추려고 해요. 이 과정이 참 힘들어요. 나는 혼자고 수사관은 2인 1조로 5~6개조가 들어와서 조사합니다. 설명하고 반박하는 가운데 진이 다 빠지고 정신도 혼미해집니다.

멀쩡한 사람도 4~5년 동안 뒷조사해서 특정한 행동을 추려서 꿰맞추면 “간첩”이 될 수 있죠.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수인이 되면 밖의 사람들이 색안경끼고 봅니다. “설마”하면서도 나중에는 믿어버리죠.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런 상황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진실”이 밝혀져도 이미 피해자는 고통을 치렀고 그 시간을 치유하거나 보상받을 수 없죠. 제가 크게 착각을 하였습니다.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자만이었습니다. 국보법이 살아 있느 한 민주주의는 별 의미가 없다는 점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맑스-레닌주의를 연구하면서 국보법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참 서글프네요. 델리대학교 1학년 첫 강의가(정치학과) 레닌의 ��제국주의론��입니다. 이론을 토대로 영국제국주의가 인도에 끼친 영향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합니다. 1차 대전에 대한 레닌의 분석은 과학적이었기 때문에 1학년 첫 시간에 배우는 것입니다.

최 동지! 저는 복합한 이론보다는 1차대전이 왜 발생했고 레닌에 의해서 러시아가 전쟁에서 빠진 이유와 평화를 위한 노력이 어떠했는지 역사적 흐름만 정확히 이해시켜도 맑스-레닌주의 본질을 쉽게 대중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파시즘의 성격과 본질을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쏘련과 독일의 불가침 조약을 전체주의 독재국가끼리 동맹이라고 하는데 정세를 왜곡시킨 주장입니다. 시급한 문제도 많겠지만 청소년과 대중들이 쉽게 맑스-레닌을 접할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 대한 소식이 홈페이지와 카페에 소개되었다고 하니 기대도 되고 궁금합니다. 정말로 저를 지지해주고 연대해 주시는 분들께 편지도 받고 싶고 소통을 나누고 싶네요. 최 동지께서 말씀하셨듯이 제 개인이 아닌 국가보안법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고민을 확산시키는 촉매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 동지와 함께 고민하면서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은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최 동지를 믿고 앞으로 저에 대한 많은 부분을 개방하고 공유하면서 연대와 지지의 힘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가슴 속의 거인이 되십시오”

네 잘 간직하겠습니다. 저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싸울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싸워야 할 대상을 명확하게 한다. 이 문제는 앞으로 최 동지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비핵지대화는 의자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최종 결론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이상적으로만 바라보았습니다. 남‧북을 오가며 비핵지대화를 소망하였지만 결국 “간첩”이라는 오명만 쓰고 아무 성과도 없네요. 그 가능성을 보았지만 결정적으로 미국이 틀어버렸습니다. 저는 미국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문제를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당장 죽음 앞에 놓여 제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국을 믿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게 저의 가장 큰 오류였습니다. 대안은? 우리 내부의 힘인데…… 사회가 파편화되어 있고 개인주의가 강해서 회의적 생각이었습니다. 최 동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포기하고 절망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나는 더 이상 힘도 없고 능력도 없다. 내 말을 믿지 않았던 너희들의 문제다. 나는 이제 너희들의 세상에 관심도 없고 미련도 없다. 그래서 홀가분하게 산으로 간다. 지금 광란의 밤 속에 국민소득 2만불의 향연을 즐기며 욕망과 욕정의 도가니에서 탐욕에 눈이 먼 그대들이여 (머지않아) 이제 곧 노예된 삶의 가혹한 시련이 몰아칠 것이다. 그때 나는 그대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당신들의 욕망이 파 놓은 덧이었으니까……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떠나고 싶었지요. 그런데 최 동지가 저의 영혼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최 동지의 편지에서 “진심”이 느껴졌어요. 그게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편하고, 느껴지네요.

“단지”라는 시가 비장합니다. 제가 요즘 품고 사는 마음 같군요. 저를 가둔 세상이 야박해서 비장해 집니다. 오늘은 반가운 편지에 두서없이 길게 썼습니다. 정성 없이 편지 보냈다고 화내지 마세요. 다음 편지는 차분한 마음으로 정리해서 보내겠습니다.

차츰 변화하는 내 자신도 두렵고 과거의 끈을 놓아야하는 것도 두렵고 내가 믿었고 의지했던 것들이 신기루에 불과했구나라는 것이 허무합니다. 내 스스로 나를 부정해야 하는 현실이 고통스럽네요.

최동지의 편지가 나에게 많은 질문과 고민을 던져주는군요. 오늘은 좀 쉬어야겠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 2시네요. 10시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럼 편히 주무세요.

이병진 올림

새벽 2시에 2010. 11. 16.

최상철 동지께

최상철 동지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책 잘 받았습니다. 7권의 인도 관련 원서와 5권의 단행본입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인도 관련 원서를 받고 너무나 기뻐서 잠을 설치며 머리 위에 놓아 두고 첫 날을 보냈습니다. 제본해서 보내주시는 줄 알았는데 원본을 보내주시다니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소중하고 귀중한 연구소의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소에서 필요하면 반납하도록 하겠습니다. 보내주신 인도 원서들은 현재의 인도를 이해하는데 기본적인 이해를 도와주는 책들입니다. 욕심을 내면 모두 번역해서 소개하고 싶은 책들입니다. 책들은 역사서(2권), 무장독립운동(2권), 이론서(3권)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역사서 (History)

① A Histor of Indian Freedom Struggle

이 책의 저자인 남부디리파드(E. M. S. Namboodiripad)는 인도공산당(맑스)¹⁾ 지도자이며 께랄라 주 수상(Chief Minister)를 지냈습니다. 인도의 독립운동은 ‘인도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 주도의 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 중심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인도의 독립운동은 인도 공산당과 좌익 세력들에 의해 비타협적으로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영국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인도의 독립운동을 균형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좌파세력에 의한 독립운동에 대해서 이해해야 됩니다. 이 책은 좌파적 시각에서 인도의 독립운동 이해를 도와 줍니다.

② India Since Independence

대표저자인 찬드라(Bipan Chandra) 교수는 네루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이며 인도 역사학계의 권위자입니다. 이 분은 민족주의 시각에서 반제국주의에 대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독립 이후 특히 1991년 인도가 자본주의의 길로 빠르게 전향하면서 반제국주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인도의 정체성에 혼란이 나타났습니다. 힌두와 무슬림 간의 갈등과 대립, 카스트 간의 갈등은 인도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원인의 분석은 다양하겠지만 제 생각은 불평등한 사회‧경제의 모순이 근본적 요인이고 경제자유화(시장)가 이와 같은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역사적 시각에서 독립 이후 인도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거시적 흐름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현재 인도의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2) 급진적 독립운동 (Radical Movement)

인도에서는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성공 이후 급진적인 무장 독립운동이 급속히 펼쳐집니다. 국내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소개가 미미합니다.

① Without Fear  ② Bengal's Response to Gandhi

위의 두 권의 책은 사회주의 혁명 이후 급진적인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심층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 Without Fear (두려움이 없다)의 주인공인 바가트 싱(Bhagat Singh)은 23살의 어린 나이에 영국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사형이 됩니다. 이에 분노한 인도인들이 거세게 투쟁하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위 군중에게 무차별 총을 난사하는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본성이 드러납니다. 이 젊은 영웅의 죽음은 무장독립운동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② Bengal's Response to Gandhi는 영국과 타협을 했던 인도 부르주아지 특히 간디에 대한 한계를 급진주의 시각에서 서술한 책입니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콜카다(서벵갈)를 근거지로 인도 내륙을 지배하였습니다. 그래서 벵갈 지역은 역사적으로 반영의식이 높았습니다. 이 책은 벵갈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무장 독립운동의 역사를 서술합니다.

3) 이론서 (저자: Samit Kar)

① Marx's Legacy in 21st Century

② Sociology in 21st Century

③ Panchayati Raj and Rural Development in Modern India

위의 책은 사미트 카르(Samit Kar)가 쓴 책들인데 서벵갈의 좌파 지식인의 문제의식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빤쨔야티는 제 박사 연구주제이어서 내용이 기대되고 흥미있습니다. 서벵갈의 인도 공산당이 빤쨔야티 라즈를 어떠한 방식과 내용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겠군요. 나머지 두 권은 직접 책을 읽어 보아야 저자의 논지를 알 수 있겠습니다.

보내주신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였습니다. 최 동지의 제안에 따라 Marx's Legacy in 21st Century라는 책을 읽고 요약본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함께 요약본을 보고 저자의 논지를 이해한 후 세부번역에 대해서 정리하면 어떨까요?

최 동지, 책을 받고 연구소에서 저에게 갖는 배려와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온전히 느끼고 있습니다. 최 동지께서 말씀하셨지만,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변혁과 진보를 위한 정의의 길을 위해서 함께 투쟁한다는 지지와 연대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동지! 핵무기를 추방하는 문제는 의지와 정당성만 가지고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실천적인 힘이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외면했습니다. 스스로 중립지대에 갇혀 살았습니다. 최 동지의 지적이 맞습니다. 그러한 중립은 ‘입장 없음’이라는 최 동지의 말에 제가 할 말이 없어지네요.

최상철 동지! 저는 지금 힘 없는 수인(囚人)이지만 이제부터는 동지들과 힘을 합쳐 아주 작은 실천,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일들을 해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서슬퍼런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고 많은 사람들이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의(正義)를 위해 헌신하는 최상철 동지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동지의 열정과 깨어있는 의식이 저를 감옥에서 꺼내어 “자유”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혼자라고 생각했을 때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용기도 없었고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제 역할은 극히 미미한 것입니다만 저 하나의 노력으로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습니다”라는 최상철 동지의 말씀 듣고 이런 동지들이 있는데 더욱 굳게 마음을 다잡고 싸워나가야겠구나 생각합니다.

최 동지, 저야말로 능력이 없고 미미한 존재입니다. 최 동지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 더 많이 대화하고 소통을 하면 의미 있는 일을 함께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기는군요.

2009년 5월 인도 체나이의 현대자동차 법인장, 오리샤에 있는 포스코 법인장을 만났습니다. 이때 느낀 소감은 대단히 용감하구나. “하면 된다”는 무대포 정신을 가지고 밀어 붙이기 식이었습니다. 이분들은 인도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우리 기업들과 인도 노동자 간의 갈등을 예상하게 되더군요. 인도 현대자동차에서 “한국에서 라인을 세우면 다 뜯어다가 인도에서 생산할 수도 있다”는 말 듣고 놀랐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아니라 아예 생산시설을 옮긴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니 파업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응하려면 노동자들도 국제적으로 단결을 해야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포스코 문제는 다음 편지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에 두드러지는 현상은 우리 기업들의 인도 진출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 기업들의 중국 진출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 생각은 앞으로 한국에서 제조업 기반은 점점 약화될 것 같습니다. 이는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최 동지께서 인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국제 정세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많이 모르지만 함께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부족한 제 편지를 ��정세와 노동�� 11월호에 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지와 연대의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귀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연구소에 감사드립니다. 네 저 역시 동지와 서신으로 많은 교류와 대화가 있길 바랍니다. 보내주신 시(詩) “단지” 잘 읽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2010. 11. 21.

이병진 동지께

안녕하세요. 연구소에서 보낸 원서들이 무사히 도착했다니 다행입니다. 또 정성스럽게 보내주신 소개글도 감사합니다. 연구소에서 있었다면 자칫 먼지만 쌓여있었을 수도 있었던 책들이 제 주인을 만난 것 같아 정말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책은 기증자 분과 연락하면 다시 구할 수 있을 지도 모르니 당분간 이병진 동지께서 편하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수일 교수의 역서와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궁금합니다. 그 책들은 보낸 지가 제법 되었는데 이미 받아서 읽어보실 수 있어야 할 텐데... 또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한국어판 기사를 인쇄해 첨부한 지난 번 편지도 도착했는지 궁금합니다.

이병진 동지께서 Samit Kar의 책을 번역을 해주시기로 허락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동지께서 제안해주신 대로 요약본을 만들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덕분에 저도 인도 문제에 대해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도 문제와 관련해서 제 사전 지식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많은 지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 번 편지에서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관련한 일화를 읽고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한국 기업이 세계 각지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만 최근 들어서는 상당히 가속도가 붙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방식이 상당히 공격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G20 반대 집회에서 한 필리핀 활동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다른 필리핀 동지들과는 달리 한국에 입국이 가능했는데 아버지가 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만연한 인종주의(racism)를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지의 말에 따르자면 대한항공과 한진과 같은 기업이 필리핀 현지에서 상당히 폭력적으로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했던 것을 그대로 아니 더 노골적인 형태로 한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눈앞에서 그림이 펼쳐지는 것 같이 폭력의 장면이 떠오르게 되더군요. 아마 자세한 상황이 공개된다면 인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산업공동화’ 운운하며 노동자들이 생존권 투쟁을 하면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간다고 협박을 합니다만 현실은 그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산업공동화’는 ��정세와 노동�� 지난 호에 연구소 채만수 소장님의 표현대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법칙 그 자체, 과잉생산 공황의 필연성과 자본주의적 생산의 불균등 발전 법칙 그것의 관철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화학섬유 산업의 많은 시설은 해외로 빠져나갔죠.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다른 제조업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병진 동지의 표현대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단결과 연대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감옥에서도 바깥 소식을 접하고 계시겠습니다만 최근 정세는 11월 23일에 있었던 연평도에 대한 북의 포격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과 대포폰을 이용한 민간인 도청‧불법사찰과 같은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거의 묻혀져 가고 있습니다. 포격  전에 한미연합 ‘호국훈련’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자세한 훈련 내용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또 상황 전에 어떠한 전통문이 남북 양측에서 오간 것인지 정확하게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일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포격에 대한 대응을 명목으로 서해상에서는 미국의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포함한 대규모의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 군사적 긴장이 심각하게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지적인 소규모의 충돌도 자칫 전면전으로 점화될 수 있기에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정전체제가 규정하고 있는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고도의 의식성과 조직적이며 구체적인 실천을 전제로 합니다. 아직 그러한 투쟁을 시작할 주체들의 역량은 상당히 미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것이라 생각합니다. 동지께서 감옥에서 하고 있는 실천도 또한 평화체제 실현의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최근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집회에 사측 관리자와 용역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내용의 기사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울산 현장에 가야하는데 하고 있지만 연구소 일정을 핑계로 그러고 있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활동가가 아니라 자칫 ‘평론’이나 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됩니다. 동지께서 보내시는 ‘존경’과 같은 찬사는 마땅히 지금도 몸으로 자본의 폭력을 받아내고 있는 노동자, 빈민, 농민을 비롯한 투쟁하는 인민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시청 재능교육 건물에서 생존권을 위해 농성하고 있는 재능교육 동지들의 투쟁 현장을 지나가면서 난방기구도 없이 조그만 천막(천막도 아니고 1인용 텐트)에 의존해 농성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직접 몸으로 싸우시는 동지들이 없었다면 지금 노동사회과학연구소가 운영하고 있는 조그마한 공간도 결코 현실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저에게는 더 이상의 찬사를 보내주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시가 아니라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보내드립니다. 기층 노동자에서 투사가 된 활동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김미영의 1992년작 ��마침내 전선에 서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내용은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법정 공방 중 일부입니다. 군부독재만 빼고 지금과 무엇이 다른지... 내용 중에 헌법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걸리긴 합니다. 부르주아 국가의 헌법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개량의 길로 빠지게 될 것이라 점에서 그 점은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부르주아 헌법학자 중에도 헌법에 위헌적인 조항이 있다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동지께서 지난 편지에서 국가의 보안을 위해서는 필요한 법이라고 국가보안법을 언급하셨는데 저는 그 국가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국가는 계급 적대와 지배의 역사적 산물이며 최종적으로 폐지되어야 합니다.

검사: 노동자가 해방되려면 단결하여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종속과 분단을 극복하기 위하여 미국을 몰아내야 하는 것 아니냐?

노동자: 물론이다.

검사: 결국 그런 생각을 갖고 서노련을 결성한 것 아니냐?

노동자: 7천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던 노동운동사에 길이 남을 구로동맹파업의 결과 2천여명의 노동자가 해고되거나 강제사직, 구속된 상태에서 노동자들에게 단결의 구심체가 필요했다. 우리만 단결하는 것이 아니라 일천만 노동자가 함께 뭉칠 수 있는 단결의 씨앗으로서 서노련은 태어난 것이다.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서노련을 결성했다’는 한 마디가 이 땅의 노동운동을 좌지우지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고 생각할 때 이는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이다. 검사는 이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밝히고 기소 내용을 명확히 하라.

판사: 지금은 검사가 심문하는 시간이니 피고인의 주장은 변호사 심문할 때 하도록 하라.

검사: 심문 내용이 피고인의 마음에 안 들어도 심문해야겠다.

노동자: 앞의 ‘북괴를 이롭게 할……’ 부분을 공소장에 써 놓고도 왜 심문을 안하나? 삭제를 할 것인가? 아직 유효한가?

검사: 유효하다.

노동자: 수사도 안하고 시인도 하지 않는 내용이 왜 나를 따라 다니느냐, 왜! 확실히 해라!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구호 외치자 교도관이 입을 틀어막음)

판사: 이왕 재판받는 것 좀 조용히 받으면 안되나?

노동자: 구호는 나의 진술을 요약한 것이다. 내가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폭력을 쓴 것도 아니고 좀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고 법정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완력을 써서 제지할 필요까지 없지 않는가?

판사: 공소장 내용은 검사가 주관적으로 적은 것이 아니라 증거물로 뒷받침하는 것이니 증거조사 때 공소사실의 진위 여부는 밝혀질 것이다.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다.

노동자: 노동자가 조직적으로 단결하기 위한 서노련을 이적단체로 몰아붙이는 것은 일천만 노동자를 일천만 개로 뿔뿔이 나누어 놓는, 정당한 단결권 방해로 헌법에 위배된다. 이성을 잃은 무분별한 탄압이다. 그렇지 않으면 왜 검사는 서노련이 이적단체임을 소신있게 밝히지 못하는가? (노동자의 목소리가 당당해질 때마다 판사, 검사는 할 말이 없어져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곤 했다.)

최상철 동지께

보내주신 책과 편지 잘 받았습니다. 도서를 30권까지 소유하는 제한 때문에 일부 다 읽은 책은 집으로 보내고 하느라 책 수령이 늦었습니다. 최 동지께서 보내주신 책들을 읽으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책이 저에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최 동지와 연구소 분들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로 받은 책은 ��진실이 밝혀지다��,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2��, ��교수를 위한 학생들의 수다�� 4권입니다. 책을 읽고 감상문을 보내드린다고 약속해 놓고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읽고 감상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연구소에서 보내주신 책들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저에게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합니다. 신중하게 책을 읽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각과 학문적 입장을 정립하고 있습니다. 저도 점점 ML주의자가 되는가봅니다.

��진실이 밝혀지다—쏘련 역사에 대한 거짓말�� 이 책은 단숨에 읽었습니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하는 일도 힘들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가는 일은 더욱 힘들고 어려운 길이구나 새삼 느낍니다. 다시 한번 경건한 마음으로 역사(歷史)를 뒤돌아 보게 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제 자신의 이야기도 투영되기 때문에 하나 하나의 사건과 이야기들이 살아서 제 가슴을 깊이 흔들고 있습니다. 그 힘들고 아픈 상처들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의 의식과 사고를 왜곡하고 거짓을 강요하는지 이 책이 증언해주고 있군요.

정치학 개론 시간에 강의하다보면, 자유주의, 파시즘, 사회주의에 대해서 학생들이 늘 혼동을 겪는 모습을 보았어요. 2차 세계대전의 흐름과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냉전 이후의 국제질서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운 인식을 하게 되어 현재의 정세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게 되죠.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들을 알게 되면 학생들이 놀라기도 하지만, 스스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의식을 갖습니다. 그 때 선생으로서 보람을 느끼죠. 이 책이 학생들에게 많이 읽혀졌으면 좋겠습니다.

디쁠로마띠끄 자료 잘 읽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도와 이스라엘 관계가 궁금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사 내용 중에 “2008년 인도는 이스라엘이 발주한, 이란의 전략 시설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최신 정찰위성을 발사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제가 좀 알고 있습니다.

2007년 11월에 인도 펀잡주(state)에 있는 농촌과 산업발전중앙연구소(Center for Research in Rural and Industrial Development)에서 국제학술대회가 있었습니다. 이 연구소는 인도의 현재 수상인 싱이 소장으로 있던 곳입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대사를 만났는데 위성이야기를 들었어요. 아주 작은 소형 위성이라면서 자랑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발사체 기술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인도와 협력하기로 했다면서 과시하더군요. 인도가 친서방으로 기울고 있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감옥 안에서 음악은 듣지 못하지만 최 동지와 음악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음악과 예술에 대한 최 동지의 열정을 느끼겠습니다. 음악에 대해서까지 최 동지와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예술도 노동과 긴밀히 결합해야 참된 것”이라는 생각에 등의합니다. 음악 이야기 듣고 있으니 빨리 출소해서 최 동지와 함께 음악도 듣고, 대화도 나누고 싶어지네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노문연의 김정환씨가 청산주의로 돌아선 이야기 듣고 화가 나네요. 그렇게 “계급적 시각”을 강조하신 분이… 씁쓸합니다.

저 역시 남과 북의 음악 교류가 이루어지길 바래요. 북쪽의 음악은 깊이가 있고 진정성이 있습니다. 우리처럼 기술적이고 보여주기(이벤트)식이 아니라 감정과 느낌을 음악에 표현합니다. 음악적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영재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기량도 뛰어납니다. 1993년에 만경대 학생소년 궁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학생의 음악적 기량에 감탄했습니다. 잠시 대화를 나누었는데 참 순진했습니다. 아버지는 일반 노동자였습니다. 우리 같으면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제가 본 사례만 가지고 보편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저에게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북의 사회성격에 대한 논쟁에서 전제되어야 할 3가지 원칙과 최 동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대화하고 싶은데 최 동지께서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말씀했듯이 제약이 있습니다. 저도 이해합니다. 자신이 가진 사상과 그것을 표현했다고 국가보안법 재판을 받는 네티즌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 상처와 아픔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정세에 연평도 포격까지 일어났습니다. 이곳에서 조마조마하게 지냈습니다. 다행히 전쟁까지 이어지지 않고 한‧미 연합훈련도 사고없이 끝나는 것 같아 참 다행입니다.

올 1월에 1심선고에서 10년 징역 형을 받았습니다. 수원구치소에 면회온 아내가 울면서 “왜 그랬느냐… 나와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라고……” 울기만 했습니다. “여보 나는 전쟁이 무섭소. 나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소” 이때 아내는 참 어처구니 없게 생각하면서 비현실적인 말로 받아들이더군요. 그런데 연평도 포격을 보면서 두려움이 현실화될까봐 긴장했습니다. 이번 일로 국제정세가 크게 요동쳤습니다. 신냉전의 국면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서 국내정세도 크게 영향을 받겠지요.

우울하지만 함께 한 걸음씩 전진하자는 말에 용기가 생깁니다. 그래요. 우리 저 역시 최 동지와 함께 가길 희망합니다.

연구소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많은 것을 새롭게 정립시키고 있습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정세와 노동�� 11월호에 권정기 편집출판위원장님이 감옥에 있는 독자들에게까지 따뜻한 안부인사를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Marx's Legacy in 21st Century를 읽었습니다. 저자인 Samit Kar의 책에 의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기술의 발전으로 육체 노동계급이 약화되어 노동자들이 소부르주아지화되었다. 즉 중산층화 되었다. 노동자들의 사회적 내용이 변화했음에도 공산당이 노동자들을 올바로 지도하지 못했다. 따라서 공산당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pp. 29-34) 맑스의 “계급적 관점(class view point)”은 여전히 유효하며(p. 24), 이런 관점에서 노동자들이 중산층이 되어도 즉 생활수준이 향상되었어도, 부르주아지화 되는 것이 아니다. (p. 35-36)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으로써의 사회학을 재정립하자는 것이 저자의 논지입니다.

이 책은 사회학이라는 학문적 틀에 맑스의 계급적 관점과 공산당의 역할 즉 전위당의 중요성을 담아 내고자 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혼동스럽습니다. 사회학자로서 노동계급의 중산층화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맑스의 계급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노동계급을 이끌 공산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인도의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분석에서는 저자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최 동지는 Samit Kar 교수의 논지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군요. 이 책의 번역에 대해서 최 동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기적 관점에서 A history of Indian Freedom Struggle은 꼭 번역해보고 싶어요. 인도의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될 책입니다.

최 동지의 편지에는 깊은 애정과 동지애가 있습니다. 제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지난 번에 보내 준 신현칠님의 시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이｣ 잘 읽었습니다. 좁은 독방에서 고인 물이 되지 않기 위해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투쟁하는 강한 의지를 느낍니다. 저 역시 아침마다 찬 물을 쏟아 부으며 자신과의 싸움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김혁 동지가(금속노조 비정규직 국장) ��정세와 노동�� 11월호에 실린 제 편지글을 보고 좋아하시며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을 하고 지지와 연대를 주신다니 정말 힘이 나더군요. 귀한 지면에 글을 실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무거운 책임감도 갖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저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에게 저를 적극 알리고 지지와 연대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 동지! 나와 최 동지 사이의 편지 대화가 우리 둘 뿐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최 동지가 저에게 던지는 질문은 저뿐만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절실한 질문입니다. 최 동지의 편지에는 많은 고민과 희망이 함께 있습니다. 매우 소중한 편지입니다.

최 동지 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세요. 또 편지 드리지요.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올림. 2010. 11. 30.

추신: 11월호 ��정세와 노동�� 1권 더 받아볼 수 있을까요?

이병진 동지 안녕하세요.

11월 30일자 편지도 잘 받았습니다. 12월 4일 연구소 토론회가 있었는데 어느 정도 뒷정리가 되고 나니 이제야 답장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편지에서 권정기 편집출판위원장 동지에 대한 언급을 하셨는데 안 그래도 이병진님의 안부를 궁금해 하십니다. 동지께서 귀중한 지면을 할애해주어 감사하시다는 말씀을 전하기 전에는 자칫 연구소 책자에 소개가 나가는 것이 동지에게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걱정해주셨습니다.

얼마전 12월 3일에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약칭 사노련) 사건 관련자들의 검사 구형 공판이 있었습니다. 관련 동지 8인에 대해서 검사는 총합 48년을 구형하더군요. 실제 실형을 10년 선고받으신 이병진 동지와 달리 아직 선고공판이 남았습니다만 최근의 분위기는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같은 날 <연방통추> 사건의 공판도 있었는데 아직 관련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연구소에 편지주셨던 김수남 의장님도 재판을 받으셨을 텐데 결과가 어떠하신지 아직 확인 못했습니다.

검사는 북에 대해 노동자 투쟁으로 타도되어야 할 체제라고 표현하는 사노련에 대해 ‘이적단체’라는 규정을 할 수가 없기에 ‘국가변론 선전‧선동 단체’라는 식의 논리를 펼치더군요. 그리고 맑스, 레닌사상 자체에 대한 문제를 걸면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습니다. 판사의 선고를 기다려봐야 하겠습니다만 사회 전체적인 공안정국이 조성되고 있으며 다시금 막걸리 보안법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8인에 대해 48년이면 주요 강력범죄에 적용되는 형량보다 더욱 심각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사노련 동지들은 폭력을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것은 사노련 동지들을 연행하고, 기소하고 재판받게 하는 검‧경, 사법부를 비롯한 국가기구입니다.

연구소 토론회가 있던 날에는 국가보안법 구속자 윤기진, 문경환 동지의 후원주점도 있었습니다. 문경환 동지는 얼마 전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건으로 구속되셨고, 윤기진 동지는 한총련‧범청학련 관련 사건으로 오랜 기간 수배‧수감생활을 겪고 있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감옥에서 보내온 윤기진 동지의 편지 내용을 문제 삼아 그것을 ‘이적표현물’로 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기진 동지의 편지를 소개한 분까지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병진 동지의 바로 저번 서신을 보면서 국가보안법이 강제하는 자기검열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스스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북측의 학생이 바이올린 연주 실력이 뛰어났다는 정도의 내용에 대해서도 스스로 이것이 ‘찬양고무’는 아닌지 잠시 고민했던 것에서 내 스스로 국가보안법이 강요하는 논리를 체화하고 있음에 섬찟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정도 수준의 내용에도 고민하게 하며 자기검열을 강요하는 국가보안법이 빨리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연평도 해전은 다행스럽게도 확전이 되지 않고 끝났습니다만 그 이후 급속히 한국 사회의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상당히 개탄스럽습니다. 김관진 신임 국방부장관은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사회전체적으로 호전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습니다. 또 조갑제는 이제는 한‧미 동맹에만 의지할 때가 아니고 독자적인 핵개발이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떠들고 있습니다. 또 지만원은 보도연맹 사건을 언급하며 전쟁 때 전면전이 나면 “친북종자”들에 대해 “보도연맹이 당했던 것처럼” “처리”될 것이라는 망언을 하고 있습니다. 일제의 망언보다 더한 발언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형국에 변혁운동 진영이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이 와중에도 감옥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농성투쟁하고 있는 천일이 넘게 농성투쟁하고 있는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의 김동애, 김영곤 동지와 재능교육 동지들을 비롯한 노동자 동지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농성투쟁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 동지들의 투쟁이 더할 수 없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편지를 쓰는 중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동지들이 점거 농성을 해제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편지에 “점거농성을 끝까지 진행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동지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썼다가 지웠습니다. 노동자 계급이 단결하여 현자 비정규직 동지들의 점거 투쟁을 엄호했다면 더욱 더 강력하게 정규직화의 요구를 내걸고 싸울 수 있었을텐데… 연구소도 현자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에 많이 힘을 싫어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책망하며 반성하게 됩니다. 점거 농성은 해제했지만 불법파견 전원 정규직화라는 요구를 끝까지 내걸고 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편지 쓰는 중에 계속해서 속보가 터져나오고 있네요. 강정구 교수의 발언과 집필에 대해 재판부가 ‘찬양고무’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해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찬양고무 조항은 국가보안법을 인정하는 무리 중에서도 여럿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독소조항인데 아직도 버젓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연평도 사건 이후 범민련의 성명과 발언을 문제 삼아 소환조사를 강요하더니, 인터넷 언론 ��통일뉴스��와 ��자주민보��의 기사들에 대해서도 극우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최초에는 이른바 자민통 계열을 중심으로 저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습니다만 공세가 확장될 것이 자명합니다. 사노련, <사회주의노동자신문(약칭 사노신)> 그리고 지금은 해산한 <진보와 연대를 위한 보건의료운동연합(약칭 진보의련)> 같은 단체들에 대한 탄압에서 드러나듯, 국가보안법은 이북이 아니라 바로 이남의 계급투쟁을 짓누르기 위한 부르주아 정권의 보루라는 것은 더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Samit Kar의 책 Marx's Legacy in 21st Century은 아직 제가 내용을 꼼꼼히 검토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대략 보니 아무래도 맑스주의 관점에서의 사회학 개설서 정도의 위상인 것 같습니다. 인도 공산당은 크게 3개의 분파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의 노선과 Samit Kar의 입장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텐데 아직 제 작업이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동지께서는 아무래도 인도에 관한 구체적인 분석을 중심으로 작업을 하시고 싶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대한 동지의사를 존중하겠습니다. 단 Samit Kar의 책은 저작권을 크게 개의치 않아도 상관없으리라 생각합니다만, A history of Indian Freedom Struggle과 같은 책은 저작권 문제가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적재산권이라는 부르주아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현행 규범을 무조건 어길 수만도 없는 상황이네요. Marx's Legacy in 21st Century의 후반부는 비교적 인도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것 같은데 선별해서 번역해보시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우자 분 말씀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이해해주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던 배우자 분께 다소 아쉬우시겠습니다만, 누구보다도 바깥에서 마음 졸이며 고생하실 분은 바로 그 분이십니다. 두 분 사이의 신뢰는 차근차근 회복해 가면 됩니다. 그리고 안에 계실 때 다시 조급해지시더라도 또 감정적으로 힘드신 점이 많을 지라도 최대한 차분하게 가족들을 대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서로 간의 믿음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회복해가실 수 있습니다.

��교수를 위한 학생들의 수다��는 연구소에서 보낸 책이 아닙니다. 아마도 이병진 동지를 지지하는 다른 단체나 개인이 보내지 않았을까요? 김혁 동지를 비롯해 동지에게 편지를 보내는 분들이 늘어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간첩’이라는 저들이 새긴 주홍글씨 때문에 많은 이들이 떠나가서 외로우시겠습니다만 새로운 동지들이 다가오고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한 줌의 지배계급은 호의호식할 수 있지만 착취받는 근로인민 대중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한 사회입니다. 그러함에도 누가 물어보면 저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세상을 바꿔나가는 동지들의 투쟁이 그리고 그러한 동지들이 건설할 새 세계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다면 무엇이 아름답겠습니까?

마야꼬프스끼의 시 ｢뻬쩨르부르그의 마지막 동화｣는 이렇게 끝납니다.

그리고 황제는 또다시

홀(笏)도 없이 서 있다.

뱀.

말주둥이에 서린 고독.

뾰뜨르의 고뇌를 그 누가 이해하리—

자기가 만든 도시에

유폐당한 

수인의 고뇌를

1917년을 일년 앞둔 1916년 작품으로 시의 밑바닥에는 몰려오는 1917년 혁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그것은 바로 지배계급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파쇼화되는 국가권력을 보며 짜르의 최후가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날이 멀지 않은 것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2010. 12. 9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