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목 동지의 편지

채만수 소장님 그리고 노사과연 여러분

이제 지난 4년 4개월을 가슴에 묻고 하산인사 올립니다. 여러 어려움에도 변함없이 보내주신 귀한 책자는 험한 세월 이겨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산 하는 길 눈가에 주름은 더 늘고 가진 재주는 없습니다만 나라의 통일과 민중의 민주주의 실현에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노사과연의 회원도 되서 책도 계속 받아 보겠습니다.

항시 건강하시고 노사과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010. 10. 10. 대구교도소에서

손정목 올림.

이병진 동지의 편지와 답장

최상철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이병진입니다.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직접 답장까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편지를 소개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오히려 누를 끼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저와 가족들에게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너무나 갑자기 벌어진 일이고 예상치 못한 일이라 가족과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인도 전문 연구자로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지내던 제가 갑자기 “간첩”으로 구속되고 언론에 보도되자 가족들이 커다란 혼란에 빠졌습니다. 천안함 사건과 맞물리면서 제 사건 때문에 가족들이 겪는 심적 고통이 큽니다.

그래서 ‘진보적인 단체’에 알려지는 것을 자제하고자 했었습니다. 가족들을 배려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 사건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편견들이 오히려 가족들을 심각하게 압박하고 그로 인해서 가족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는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실”은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이미 모두 밝혀졌지만 흐름과 맥락은 전혀 다릅니다. 아내가 평생 따라 다닐 “꼬리표” 때문에 아이들 장래를 걱정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금 밖의 상황이 얼마나 부정적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들이 저에게 더 큰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 제 사건을 정리해 보고 싶군요.

가족들은 지금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조용히 순응하며 모범수로서 가석방이나 사면으로 빨리 집에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저 역시 빨리 석방되어서 순수한 학자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 사건의 성격상 예전처럼 돌아갈 수도 없고 징역을 살아야 할 입장에서 새로운 고민과 난관들을 풀어가야 될 상황입니다.

먼저 나 스스로 개방하고 잘못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성하고 책임을 지고 나에 대한 왜곡과 편견들은 바로 잡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에게도 떳떳하고 나 자신도 당당해 질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감옥생활이 저를 단련시키고 더 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최선생님!

솔직한 제 심경은 참 복잡하고 참담합니다. 현재의 국면을 어떻게 풀어가야 될지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최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그동안 많이 위축되었고 고립감이 컸습니다. 역사의 진리와 승리를 믿고 상처를 치유하면서 방향을 찾아 나아가겠습니다. 최선생님의 격려와 도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연구소에서 인도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서 기쁩니다. 인도와 관련해서는 저도 기꺼이 도움을 드리고 함께 학문적 성과나 자료들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인도-미국 핵협정” 관련 글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 문제는 인도의 정세를 분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또한 왜 부시가 그렇게 했는지 이유가 중요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싶군요. 큰 흐름은 북한의 NPT탈퇴로 인도가 가장 큰 이득을 보았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핵통제력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이지요.

참 흥미있는 주제입니다. 인도 관련 책들을 보내 주신다면 더 없이 기쁜 일입니다. 제본 비용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최선생님의 편지 받고, 인도 연구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됩니다. 제가 수감되면서 학자로서 연구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기존의 제도권 학자들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립감과 외로움이 컸는데 학문적 동지를 만난 것 같아 힘이 나고 용기가 생겼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학문적 교류를 하고 싶습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도록 제 사례가 알려지는 것은 동의합니다. 후배 학자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제가 먼저 열심히 싸워야겠지요.

최선생님께서 진보적인 연구자들과 학문적 교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 역시 제가 가지고 있는 자산과 경험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한계에 대해서 비판받고 깨지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저에 대한 연대와 지지의 인사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가슴 깊이 고마움을 느낍니다.

또 소식전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올림.

진주교도소에서 2010. 10. 11

이병진 동지 다시 인사 올립니다. 최상철입니다.

송구스럽지만 저는 선생이란 칭호를 들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국가보안법 철폐에 뜻을 같이 하고 함께 사회의 진보를 위해 싸워간다는 의미에서 동지로 불러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제 짧고 보잘 것 없는 서신이 동지에게 힘이 된 것 같아 저도 대단히 기쁩니다. 동지께서는 누가 될까 염려하십니다만 오히려 저 같은 사람과 서신을 나누는 것이 동지와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작년에 언론에서 ‘대학 강사 간첩’이라는 동지의 사건을 접했을 때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 갑자기 늘어나는 ‘간첩’ 사건에 뭔가 수상하다 싶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제 사건의 당사자이신 분과 서신을 나누니 형언하게 힘든 감정이 듭니다. ‘간첩’이라는 무시무시한 꼬리표와 국가보안법이라는 서슬퍼런 희대의 악법이 짓누르는 무게에 이병진 동지도 또 가족들도 얼마나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고 계실지 가슴이 아파옵니다. 동지의 편지를 받으니 이 사건은 정권에 의한 조작이라는 확신이 전해옵니다.

다만 동지께서는 ‘잘못’은 ‘철저히 반성한’다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현행법상 동지가 북쪽의 인사를 접촉한 것은 분명한 위법입니다. 그러나 그 법은 누구를 위한 법입니까? 동지가 학자적인 양심으로써 그쪽 사람과 접촉하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던 그것조차 ‘간첩’행위로 몰아가는 그 국가보안법은 도대체 어떤 법입니까? 감히 저는 말씀드립니다만 이병진 동지께서는 잘못하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못이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이며 사상과 양심의 자유, 자유로운 인적교류조차 보장하지 않는 지배계급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외람된 말씀이지만 동지가 잘못을 반성한다 하시는 것은 터럭 만큼도 용인할 수 없는 저들의 지배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옥에 가보지 않은 제가 감히 말씀드립니다. 제 말씀에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많은 국가보안법 사건의 경우 저들의 수사 과정에 일체의 협조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국가보안법 관련한 여러 양심수들은 처음 조사과정부터 아예 전면 묵비권을 행사합니다. “진실”을 가릴 것이 있다면 다만 법정에서 하면 됩니다. 그것도 안 된다면 피델 까스뜨로의 말처럼 “역사가 무죄로 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맞습니다. 저들은 인정하고 굴종한다고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받는 고통에 숨죽이면서 계셨지만 그것은 오히려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습니다. 동지께서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객관화하시고 자신의 사건을 알려가시기로 결심하셨다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부탁하신 인도 관련 책자들은 시일이 좀 걸리겠지만 정리해서 한꺼번에 보내드리겠습니다. 다만 감옥에 계신 분께 영치금을 보내드리지는 못할망정 제본비를 부담하게 하는 결례를 범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씀드렸던 글이 실렸던 ��정세와 노동�� 과월호들은 절판이 되었습니다만 일부가 남아 있을 수 있으니 찾아보겠습니다. 인도 문제와 관련한 동지의 고견을 기다리겠습니다.

러시아-쏘비에뜨 시인 알렉산드르 벨로제로프의 시로 편지를 줄이겠습니다.

수인(囚人)

문들은 철제 빗장으로 닫혀 있다 ;

재빠른 날개들이 굳게 족쇄로 채워져 있다 ;

도처에서 혹독한 울림소리를 가지고 짤그락 짤그락 울린다

        폭압의 쇠사슬은……

감옥의 천정들은 추위로 넘친다,

기분 나쁜 불안으로, 무덤같은 우수로;

그래도 역시 나는 자유에 관한 꿈들을 잊지 않았다,

        힘없는 수인(囚人)은……

나는 자랑스럽게 조그만 창의 격자(格子)를 바라본다;

하늘의 절벽들이 위협적으로 얼굴을 찌푸린다;

뜨거운 태양은 어둠 속에서 빛을 잃는다;

        먹구름이 모여든다……

만일에 사악한 배신이 아니라면,

희망의 횃불을 투쟁은 끄지 못하리라.

나는 알지―이 저주받을 벽들을

        폭풍우가 파괴하리란 걸!……

1905년

※동지의 편지가 하루만 빨랐으면 10월호에 소개되었을 텐데 아쉽게도 11월호로 또 다시 미루게 되었습니다. 너그럽게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상철 동지께

안녕하세요. 이병진입니다. 보내주신 편지와 책 잘 받았습니다. 책은 아직 받지 않고 목록만 받았습니다.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최동지의 편지를 읽으면서 가슴 깊이 전해지는 감동과 동지애를 느낍니다. 최동지를 비록 뵙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도 저를 잘 이해하고 뜻이 통합니다. 최 동지의 편지를 여러번 읽고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구속 이후 지난 1년 동안 혼돈과 방황과 번민의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스스로 객관화시키기보다는 갑자기 변화하는 환경에 두려움과 절망감에 지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관용과 자비는 없다”는 점을.

아내가 겁에 질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때, 이 사회의 뿌리 깊은 대북 적대감의 유령이 얼마나 무시무시¹⁾한 것인지 보았지요.

최 동지!

저는 사상가도, 혁명가도 아닌 평범한 소시민이었습니다. 진실을 탐구하는 열정을 갖고 인도를 연구한 학자입니다. 진리를 찾아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한 것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인도에서 유학 기간 동안 격변하는 세계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습니다. 91년 쏘련의 붕괴와 인도 정치체제의 변화, 걸프전쟁, 북핵위기, 팔레스타인 문제 등 델리대에서 이 모든 현상을 지켜보면서 미처 몰랐던 세계사의 큰 흐름과 모순과 갈등. 그 정점에 한반도의 분단 모순이 첨예하게 자리메김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경제발전의 이면에 언제 어느 한 순간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분단구조에 학자의 양심으로 모른 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댓가가 너무나 가혹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최동지!

나는 지금의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여 역사(歷史)의 정의와 양심적인 학자의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기회와 ‘희망’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의 ‘진정성’이 밝혀져서 국가보안법의 모순과 한계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동지가 어떤 분인지 앞으로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누었으면 기대합니다. 최동지의 글을 통해서 동시대에 사는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봅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제까지 제가 느끼지 못했던 지식인의 순결함을 보았습니다. 최동지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인도연구에 관해서 대화도 나누고 저의 고민도 함께 풀어갔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합니다. 수인이 된 이후 제도권 학자들과의 관계가 모두 끊겼습니다. 그래서 인도 연구에 대해서 포기하고 절망하고 있었는데 최동지의 편지가 제게 큰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다. 나와 최동지가 학문적 동지로까지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저 역시 최동지에게 많이 배우고 싶어요.

감옥 생활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인도연구자로서 실력을 유지하고 집필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최동지의 조언을 듣고 싶어요. 수인의 몸이다 보니 자료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인도와 남아시아 관련 자료를 보내주시면 제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되고 정세 분석에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국내정세는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세계의 경제위기가 지배적인 현상처럼 그 이면에 치열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치(정세)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동전의 앞, 뒤와 같은 것입니다. 인도는 새로운 시각에서 국제 정세를 분석하는 기회를 줍니다. 우리가 인도에 관심을 갖는 이유입니다.

물론 인도가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지만 남아시아 정세를 이해하면 중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헤게모니의 본질이 선명히 보입니다. 미국과 인도 관계, 인도와 중국, 인도와 일본, 인도와 이란, 터키 관계를 이해하면 지금 남한의 지배적인 국제 관계의 인식틀이 얼마나 편향적인지 알게 될거에요. 최동지께서도 남아시아 정치경제에 관심있다면 함께 공부하고 (세미나) 싶어요. 주변에 인도와 남아시아 정치에 관심있는 분이 계시면 함께 (비록 감옥안이지만) 인도연구에 활력을 갖고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발제문은 우편으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인도 관련 책자들이 오면 꼼꼼히 읽고 서평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민주당 정권의 원자력 추진정책을 규탄한다”(��정세와 노동�� 10월호, pp. 94-97.) 짭은 글이지만 일본과 인도의 관계를 추론할 수 있는 매우 시사적인 글이었습니다. 세계 평화와 군축의 입장에서 저자의 주장은 정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위성만 가지고 주창하다 보니 현실성과 구체성이 떨어집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미국의 모순적인 핵 통제 정책의 균열의 결과가 인도와 일본의 원자력 협정 추진의 공간을 준 것입니다.

이는—2012년 서울에서 NPT회의의 발목을 잡을 것이고—미국의 핵 통제력에 대한 의구심을 키워 핵갈등을 촉발시킬 것입니다. 또한 북핵문제와 한반도 정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인도와 일본의 핵협정 과정을 주시해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글을 읽고 깜짝놀랐습니다. 일본의 발 빠른 대응에……

미국이 중앙아시아를 장악해서 중국을 압박하자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 미국에 대응했고, 인도가 중국에 호응할 것처럼 반응하자, 부시가 급하게 뉴델리로 달려가 핵협정을 맺었습니다. 일본과 인도의 핵협정추진은 이런 맥락에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아프가니스칸 4월혁명”도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자의 문제의식과 아프가니스탄의 정세를 분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좀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p. 100쪽 둘째 줄 “특히 중국이었다”라는 부분은 심각한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자헤딘의 배경을 설명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500개의 왕국이 있었습니다. 카시미르 왕국 주민의 대부분이 무슬림인데 왕은 힌두였습니다. 주민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인도로 편입되면서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에 카시미르 분쟁이 배태되었습니다. 카시미르 주민들은 자치운동을 전개했고 인도 중앙정부가 무력 진압을 하자 무슬림 동포를 구하자는 급진세력이 등장합니다. 무자헤딘의 등장입니다. 파키스탄은 무자헤딘을 통해서 카시미르 분쟁에 개입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기 위해 무자헤딘을 더욱 극단적인 모험주의 세력으로 변화시킨 것은 미국이었고 파키스탄 군부정권은 이를 비호했지요. 바로 탈레반의 등장입니다. 탈레반은 미국과 파키스탄에 의해서 훈련 받고 무기도 공급받으면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여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을 무너뜨렸습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탈레반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이와 같은 근본적 모순이 있기 때문입니다. 파키스탄은 카시미르 분쟁과 관련해서는 탈레반을 지지하면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는 전쟁을 하는 모순된 입장입니다. 파키스탄에 잔존하는 탈레반을 소탕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점이고 이것이 미국과 파키스탄의 딜레마입니다.

인도는 9‧11 테러 이후 탈레반 세력을 박멸하여 카시미르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은 죽을 맛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이와 같은 이해관계의 충돌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지지부진한 것입니다.

재주는 파키스탄이 부리고 돈은 인도가 챙기는 묘한 상황이 된 거지요. 그러다 보니 지난번 파키스탄의 대홍수 피해를 겪으면서 내부적으로 민심의 큰 동요가 일어났고 이점을 기화로 군부세력이 또 다시 독재를 위한 기회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영국에 있는 무샤라프 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복귀하겠다고 하고 있음.) 미국으로서는 정말 골치 아픈 일입니다.

“아프가니스탄 4월혁명”을 단행본으로 출간계획이시라면 좀 더 참고 서적을 보충하여 보완한다면 저자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보여 줄 수 있고 남아시아 정세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최동지의 지적처럼 나는 가족들이 받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굴종과 참회로 마음을 다스리고 관용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오히려 더욱 고통받고 사회적 냉대와 멸시에 두려워하고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최동지의 말에 깊이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오직 “진리의 힘”입니다. 나는 학자적 양심으로 “진리”의 횃불을 들고 캄캄한 암흑을 헤메고 있습니다. 고독하고 외롭군요. 진리의 횃불이 올바른 방향으로 지향할 수 있도록 도움과 격려 바랍니다. 학자로서의 진정성이 짓밟히지 않고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최동지와 소통의 끈을 확장시켜서 의미있고 가치있는 학문적 성과를 만들어 보고 싶네요. 저는 진리와 진정성의 힘을 보여주어 인도의 독립을 이끈 간디를 존경합니다. 계급적 한계(힌두 상층 카스트) 때문에 비판 받는 측면도 있지만 그의 순수한 열정을 존경합니다. 지금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정의와 진리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 뿐입니다. 최동지가 저의 심정을 이해해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수인(囚人)을 읽고 마치 저를 위한 시인 것같이 공감하고 가슴으로 눈물 짓고 읽었습니다.

감옥의 천정들은 추위로 넘친다,

기분 나쁜 불안으로, 무덤같은 우수로;

그래도 역시 나는 자유에 관한 꿈들을 잊지 않았다,

힘없는 수인(囚人)은……

최동지 우리의 꿈을 잊지 맙시다. 안녕히 계세요.

2010년 10월 25일 이병진 올림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최상철입니다. 정성들여 써주신 편지 이번에도 잘 받았습니다. 제 편지가 늦어서 두 통이나 받았는데 이제야 보내게 되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짧은 글이 옥에 계신 분께 힘이 될 수 있음에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말 한 마디 한 마디 더욱 조심해서 하도록 스스로를 추스르게 됩니다.

책이 무사히 도착했다니 다행입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는데 목록만 받은 책들이 제대로 동지에게 도착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반입이 불허가 된다면 반드시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말도 안 되는 핑계에 불과할 겁니다. 그러니 반드시 책을 보실 수 있도록 싸우셔야 합니다. 연구소에서 보내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단체에서 온 자료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지라는 말 저도 처음에 상당히 어색했던 말입니다. 내가 감히 이 사람과 뜻이 같다고 할 수 있는지 이런 표현을 함에 있어 내가 스스로 떳떳한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또 때로는 동지라는 말이 그냥 상투적인 호칭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다만 제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실천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이병진 동지의 투쟁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동지라 부르며 연대할 뿐입니다.

이병진 동지, 저는 평범한 한 명의 활동가입니다. 그리고 ‘순결’하다는 표현은 제가 감히 들을 수 있는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표현은 현장에서 묵묵히 이름도 없이 싸우고 있는 동지들에게 돌려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 공부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은지라 동지와 대등한 입장에서 토론을 하기에는 많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특히 인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러합니다. 아무래도 대등한 입장에서 세미나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말씀드린 인도 관련 원서는 기증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약간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만 허락을 구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받아 보시고 가능하시다면 번역을 해주셔도 좋습니다. 그 외 연구소에 있는 아시아 정세 관련한 다른 책들은 아자르 나피시의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2권 같은 책이 있네요. 공교롭게도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정수일씨가 번역을 했군요 …. 이 책들이 필요하실지 모르겠는데 만약 필요하시다면 넣어드릴 수 있습니다. 다 보시면 돌려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동지께서 “아프가니스탄 4월 혁명” 연재분에서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동지는 중국의 책임 특히 ‘제국주의’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도 중국에 대해 제국주의라는 규정은 아직까지는 시기가 빠르다는 생각입니다. 중국이 세계 정세를 좌우하는 주요한 독점자본주의 국가로 부상한 것은 분명하지만 제국주의 규정을 내리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다만 제가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저자 사사끼 타츠오씨가 지적하는 맥락은 이러합니다. 중쏘 분쟁은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전기점이 되었습니다. 최초에 중국은 쏘련 흐루쇼프 노선으로 대표되는 수정주의에 대해 비판합니다. 이는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중국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군대의 체코 진주를 이유로 쏘련의 패권주의를 비난했고 이 역시 정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의 비판이 더 나아가 사회주의 진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으로 까지 간 것입니다. 그러면서 미국과 화해하는 정책을 취합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약소국가의 사회주의 민족해방 투쟁을 지원하던 중쏘의 연대에도 금이 갑니다. 상호 호혜적으로 지원하던 형태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중쏘가 각각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립합니다. 친쏘파와 친중파로 나뉜 분열은 민족해방 운동에 크나큰 부정적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프가니스탄 혁명 정부의 정식 요청에 의한 쏘련 인민군의 주둔에 대해 ‘침공’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필히 교정되어야 합니다. 중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문제가 된 것은 미국과 중국이 긴밀히 협조하며 반쏘 전선을 펼쳤다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 관련해서는 ��정세와 노동�� 올해 2월호 연재분에 나와 있습니다. 덩사오핑을 중심으로 쏘련의 패권주의에 대한 견제를 위해 제국주의와 협조해 무자헤딘을 지원하고 그것이 아프가니스탄 혁명 정부의 패배로 이어집니다. 저자 사사끼 타츠오는 이런 맥락에서 중국의 당시 행위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국주의’라는 표현은 지나친 것일 수 있습니다만 …

그 외 아프가니스탄 외에도 20세기 아시아 역사에서 제대로 규명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베트남 혁명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라오스 인민의 투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못합니다. 중국과 베트남의 전쟁 그리고 베트남―캄보디아 전쟁 같은 불행한 역사에 대해서도 그 원인에 대해서 차근차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서구 중심주의와 편향성이 저에게도 많이 있는 데 이를 극복하는 것은 우리 운동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중략)

스스로를 회복하고 계신 모습을 확인하여 상당히 다행스럽습니다. 동지께서 자신의 중심을 굳건히 세운다면 가족들도 용기를 갖고 세상에 맞서 싸우실 수 있을 겁니다. 시가 많은 것들을 함축해서 표현할 수 있기에 저의 부족한 글 솜씨를 이번에도 시로 메우겠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네끄라소프의 시입니다. 제목이 없는 시이기에 첫 행 구절이 제목을 대신합니다.

침묵하라, 복수와 슬픔의 시신(詩神)이여

침묵하라, 복수와 슬픔의 시신이여!

나는 타인의 꿈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고,

그대와 난 충분히 저주했다.

나 홀로 죽는다―그리고 침묵을 지킨다.

무엇 때문에 풀 죽어 있고, 상실을 슬퍼하는가?

그 때문에 만일 가슴이 가벼워진다 할지라도!

나 자신에게는, 감옥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처럼,

내 가슴의 신음소리가 혐오스럽다.

모든 것에는 최후가 있다.

까닭이 있어 내 어두운 길을 악천후와 뇌우로 음산하게 하면서,

하늘은 내 위에서 밝아지지 않고,

영혼 속에 따스한 빛줄기를 던지지도 않는다……

사랑과 부활의 매혹적인 빛줄기여!

나는 그대를 불렀다―꿈 속에서, 현실에서,

노동과 투쟁 속에서, 추락의 경계선에서

나는 그대를 불렀다―그러나 이제 부르지 않는다!

그대가 밝힐 수 있는,

그 심연을 나 자신은 보고 싶지 않으리라……

증오하기에 지쳐버린 가슴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리라.

―1855

김수남 동지의 편지

채만수 소장님 귀하.

名日(명일)이면 11월이 시작되는군요. 다음주면 立冬(입동) 겨울이 시작되는 환절기에 채소장님 건강조심하시고 ��정세와 노동�� 종사자 여러분 건강하시고 채소장님 가내 균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小生(소생) 김수남 채소장님을 비롯 밖에 계시는 원래 선배님들과 동지들 후배님들 염려 덕택으로 옥중생활 무탈합니다.

보내주신 ��정세와 노동�� 책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또한 9월호에 소생 두서없는 卒筆(졸필)을 실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6. 18, 7. 22 두 차례 등기로 청와대로 보냈더니 통일부와 법무부로 보냈다는 답서가 인권위원회로부터 오고 통일부 장관 명의로 회신이 왔더군요.

인간의 正義行動(정의행동)은 생즉사 사즉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후진술서²⁾를 별첨하오니 채소장님께서 검토해보시고 수정할 부분 수정해주시면, 염치없는 부탁드립니다. 10. 28 8번째 법원 출두 검찰증인 탈북자 증언끝났고 11. 4 오전 검찰 증인 1인 피고측 증인 오전 1인, 오후 3인이 끝나면 다음 재판 기일에는 최후진술하고 11월 중 판결하리라 생각합니다. 건강하십시오.

2010. 10. 31.

옥중. 김수남 (173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