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9월 11일 있었던 연구소의 월례연구토론회 발제문이다.]

3월, 한미독수리연습 기간 중 일어난 천안함 침몰 사건은 한반도와 동북아를 둘러싼 정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지난 해 하반기 다시 재개된 북미간 대화와 협상은 수면 아래로 침몰했고, 냉전형 군사동맹의 강화 움직임이 노골화되었다.

천안함 침몰 이후 진행된 일련의 움직임은 ‘평화’, ‘평화통일’이라는 최소한의 전제조차 전면적으로 부정되고, ‘북의 붕괴’를 의도하는 일련의 정책들이 전면화되고 있다고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1. 북미간 평화협정 관련 협상 외면하는 미국, 천안함 빌미로 시간끌기 계속

20년여간의 북미 핵공방 과정에서 합의된 2005년 9.19공동성명과 2007년 1,2단계 조치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큰 방향성과 초기 실행안이 마련되었다. 이미 90년대 후반, ‘북 붕괴론’의 비현실성이 확인되고 북미 협상과 남북대화가 본격 재개되던 시점부터 한반도 일대의 군사적 대결구조는 균열되기 시작¹⁾하였고, 특히 남측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제약하던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가 약화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지만, 2005년 이후의 합의들에 보다 주목하는 것은 쌍방의 안보위협 해소와 관계 정상화라는 해법이 필연적으로 군사적 대결구조의 해체와 연동된다는 점, 그리고 이 합의들이 관계정상화와 평화의 제도적 보장 -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 을 포괄적으로나마 명시하고 그 이행안을 담은 최초의 합의라는 점 때문이다.

9.19공동성명과 1,2단계 이행안은 우여곡절 속에서 영변 핵시설 불능화와 테러지원국 해제 까지 이행되었다. 2단계 이행조치가 마무리 된 다음단계에서는 본격적으로 핵무기-평화협정 문제 등을 다루게 되는데 핵무기 폐기에 상응하는 수준의 안보위협 해소 조치(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에 대한 미국의 미온적 태도와 네오콘식 ‘선핵폐기’를 전면에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제동으로 인해 3단계 협상은 지체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행정부 시기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 군사정책과 차별성을 두겠다고 언급하면서 이라크 철군, 아프간 전쟁의 종식, ‘핵없는 세계’ 등을 표방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패권주의적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북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관계정상화 방안을 내놓지 않은 채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대화를 회피²⁾하는 한편, 북, 이란에 대한 핵선제공격 옵션 유지를 거듭 천명하면서 9.19공동성명 합의를 무시하였다. 오바마 정부는 2009년 상반기, 북의 2차 핵시험에 직면하고서야,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포괄적으로 타결하는 ‘포괄적 협상안’을 거론하며 대화에 나섰는데, 2009년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물고를 튼 이래 12월 미 보즈워스 대북특사가 방북하여 초기 협상이 시작되었다. 보즈워스의 방북 이후 북측과 미국측은 공히 ‘6자회담 재개 필요성과 9.19 공동성명 이행 중요성과 관련해 일련의 공동인식이 이룩’되었고, 매우 실질적인 진전이 있다고 발표하였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의제의 하나로 공식 거론하기 시작³⁾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미 패권세력들은 동북아 일대에서의 패권 약화를 동반하게 될 평화협정 체결, 평화체제 구축 협상을 수용할 태세가 아니다. 보즈워스 방북 이후 미국은 추가회담을 회피하며 시간을 끌었고, 그 와중에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은 협상중단과 군사동맹 강화의 명분이 되었다. 오바마 정권은 북미 협상이 재개되지 않는 원인을 ‘천안함 사건으로 드러난 북의 호전성’에 돌리며 회담 재개에 관한 부담을 덜어냈고, 후텐마 기지⁴⁾를 오키나와현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했던 일본 민주당의 공약을 철회시킴으로서 그동안 미세하게 균열을 보여 왔던 미일 군사동맹을 추스렀다. 또한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을 연기해 주는 대가로 MD 구축, 최신 무기 판매, 아프간 파병 등 한미동맹에서도 성과를 챙겼다.

2. 북 정권 붕괴정책 제도화, 냉전체제 재구축을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특징은 ‘급변사태론’에 기초한 강도 높은 대북압박을 토대로 냉전대결구조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선 직후부터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며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 양자간 합의를 파기한 이명박 정권은 ‘건강이상설’(2008년 9월), ‘급변사태에 대한 대비’(2008.11, 국방부) 등을 언급하며 분위기를 띄우더니 ‘자유민주주의체제 통일’(2009.6 한미정상회담)을 공식화하고, ‘작전계획 5029 완성’(2009년 11월), ‘급변사태 대응계획-부흥’(2010년 1월) 등을 수립하며 북 정권 붕괴정책을 제도화, 전면화하였다.

남북관계는 악화될 수 밖에 없었다. ‘선핵폐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10년간의 협력사업이 ‘핵개발 비용으로 전용되었다는 의혹’이 있다고 떠들었던 만큼, 협력사업 중단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금강산 관광, 개성관광은 중단되었고, 개성공단 사업은 사실상 형식만 남아 있을 뿐이다. 대북압박의 기조아래 ‘인도적 지원도 전략적이어야 한다’면서 핵문제와 연계, 쌀 비료 지원은 전면 중단시켰고, 극히 제한된 단체, 제한된 물량에 한해서만 허용하고 있다. 사회문화교류도 사실상 차단하였으며, 국가보안법을 동원해 지난 정권 시절 합법적으로 진행되었던 교류, 협력사업에 참가한 사람들을 구속, 탄압하였다.

2009년 하반기 북미 대화가 재개될 무렵, 남북대화가 일시적으로 재개되었으나, 이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보다, 북미대화와 함께 남북관계를 관리하려 했던 북측의 대화제안에 힘입은 바 크다. 급변사태론에 경도되어 있던 이명박 정부는 ‘북이 대북압박에 굴복하여 대화에 나섰다’는 아전인수격 해석에 기초하여 대북압박 강화를 선택하였다.

천안함 사건은 조심스럽게 시작되고 있던 북미 협상의 가능성을 다시 완전히 차단하고 이명박 정권의 대북붕괴정책을 더욱 전면화하며, 냉전체제를 다시 확고히 구축할 수 있는 획기적 명분이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을 ‘북 호전성’, ‘비대칭적 위협’의 증거로 삼아 이명박 정부는 비대칭전력 대응 명목아래 무기 도입비 3조원을 편성하는 등 한미 연합전력을 증강하기로 하였고,  ‘주적’ 개념을 부활시키는 한편, 작전통제권 반환시점을 연기하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개성공단만을 제외한 모든 남북교류를 차단하고, 사과 및 책임자 처벌을 남북대화 뿐 아니라 6자회담 재개의 조건으로 삼아 관계 회복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한편, PSI 실전훈련, 한미연합 전쟁연습, 확성기 설치 및 삐라 살포 등 대북 무력시위를 전면화하였다. 8.15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3단계 통일구상, 통일세 등은 다분히 급변사태를 겨냥한 제도화, 물적토대 구축이다.

계속되는 군사훈련은 북을 겨냥한 ‘무력시위’ 성격을 갖고 있으며(2010.8.5 제프 모렐 미 국방부 대변인) 그 내용 또한 ‘평양 점령’, ‘북 최고위급 생포’, ‘유사사태 대비 상륙작전’ 등 다분히 ‘급변사태’를 겨냥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반도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해 북의 대비태세를 유도, 전시 대비 비축자원을 소진’시켜 자원고갈과 군부 동요 등을 유도해 북 정권을 붕괴시킨다는 ‘작전계획 5030’을 현실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을 갖게 하기 충분하다.

천안함 사건을 명분으로 진행되는 대북압박 한미공조 과정에서 한미FTA 조기 처리, 아프간 추가 파병, 이란 제재 동참, 미군기지 이전비용 추가 부담 등이 거론되는 것은, 평화를 파괴하고 증오와 대결을 증폭시키는 냉전구조의 강화를 위해 민중의 고혈까지 짜 바쳐야 하는 한미동맹의 패권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3. 천안함 관련 행보의 결과, 정권에 부메랑으로 돌아가

한미 양국의 군사동맹 강화 정책, 대북 무력시위 정책은 북의 반발을 불러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동북아 일대에서의 냉전적 패권동맹 강화라는 점에서 중국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북은 확성기 설치 등의 움직임에 대해 ‘보복타격’을 거론하는가 하면 계속되는 군사훈련에 대해 ‘핵억제력’, ‘보복성전’ 등을 언급하고, 해안포 사격훈련을 강행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표방하고 있는 북은 지속적으로 북미대화, 남북대화를 요구하고 있으나, 한미 양국의 군사적 압박에 대해서는 역시 군사적 대응으로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중국도 한미 양국의 대북압박 요구를 거부하고 대화를 촉구⁵⁾하고 있는데, 한미양국이 추진하고 있는 군사적 강경 조치들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는 한편, 대규모 군사훈련 등을 통한 압박을 병행하고 있다.

한반도 일대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한미(일)을 한축으로 하고, 북중(러)를 다른 축으로 하는 대결 양상도 격화되고 있다.

천안함 문제는 애초에 지자체 선거용이거나 소시기 국면을 전환하는 데에 그쳤던 문제가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과 오바마 정권은 동북아 일대에서 냉전패권을 공고히 유지, 강화하는 강력한 명분으로 천안함 문제를 다루어 왔고, 적어도 그 지점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미 양국의 전례없는 무력시위가 한반도 일대의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 있다는 현실적 가능성이 확인됨에 따라, 비록 양국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평화협정의 필요성, 대화재개의 절박함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군사적 긴장에 대한 해결 부담을 높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천안함 관련 대응으로 군사적 충돌 위험성이 현실화되자, 이명박 정부는 선거국면에서 기대한 만큼의 ‘북풍’ 효과를 만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어설픈 ‘조사결과’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확산되었을 뿐 아니라, 이를 토대로 하여 마구잡이식으로 긴장을 고조시킨 것이 오히려 정권에게는 악재로 돌아간 것이다. 미국정부로서도 지난 20년 동안 확인되어 온 것처럼 미국의 대북압박이 북의 핵능력 강화로 귀결되는 것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대북경제봉쇄가 중, 러의 외면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 반면, 북이 천명한 대로 핵능력을 강화한다면 미국으로써는 대북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과 대화재개의 압력이 가중됨과 동시에 비핵화에 대한 보상이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미국 경제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다.

4. 맺으며

최근 각국은 일정한 출구전략을 모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중재안을 들고 북, 남, 미, 일 등을 순방하였으며, 미국도 대화 재개 입장을 갖고 한, 중, 일 등을 순방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그레그 전 대사의 발언 등은 미국내 출구전략 모색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남북간에도 인도적 지원을 매개로 다소 긴장이 완화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설령 대화와 협상이 재개된다 해도 생산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대북협상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갖고 있다기보다⁶⁾ 현재 미국에게 가해지고 있는 경제적, 정치적 압박을 다소 완화시키는 수준에서 상황을 관리하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정도 정책으로 북의 핵무기를 포기시킬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쟁점은 계속 남아 있게 된다. 이명박 정권의 경우에도 외교통일안보 분야의 장관들을 재신임하며 반북대결기조를 고수하는 한편, 통일세 등 급변사태 관련 정책을 전진배치시키고 있는 양상이다. 수해 지원 등을 거론하고 있기는 하나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미국의 움직임에 따라가는 수준일 뿐, 대북정책의 전면적 변화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설령 대화가 재개된다 하더라도 현재의 군사적 긴장을 다소 완화하거나 조절하는 정도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으며, 현재 추진되고 있는 한미 양국의 패권정책이 다시 후퇴하거나 군사적 긴장이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현재 동북아 일대에서는 다자간 공존, 협력을 표방하는 세력과 일방적 굴복을 요구하는 세력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군사적 갈등이 파쇼적 군사체제 강화와 실질적 충돌로 비화되느냐 아니면 새로운 평화체제 건설의 계기가 되느냐 하는 것은 평화체제를 요구하는 이해집단의 역량에 달려 있다.

지난 지자체 선거 과정에서 ‘북풍’이 여지없이 무력화되고, 최근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소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천안함 조사를 신뢰한다’는 답변이 32%에 불과하다는 점 등은 민중의 의식이 맹목적 반북, 대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평화, 반제, 민주주의 등으로 강력히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제 진보적 단체 및 정당들이 이같은 토대를 실체화하고 동력화하여, 한반도 일대에서 관철되는 군사적 대결정책에 실질적인 타격을 가하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데에서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천안함 진상규명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한미양국이 최근 추진하는 패권정책의 명분을 없앤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투쟁 과제이다.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대북전쟁연습⁷⁾을 반대하는 평화실천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북압박 한미동맹을 위해 한미 FTA 추가 협상, 미군 기지 이전 비용 추가 부담, 이란 제재 동참 등 막대한 정치,경제적 손실을 불러오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을 확산시키고 실천을 조직하는 것도 광범위한 반이명박 투쟁 전선을 형성하는 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투쟁 현안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