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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음악의 반란자 (5)
글쓴이 한스 아이슬러 E-mail send mail 번호 135
날짜 2009-09-18 조회수 3451 추천수 128
파일  1253202234_노동계급 음악의 문제들.hwp

  

























노동계급 음악의 문제들





—한스 아이슬러와의 인터뷰





1935















[역자주: 





이하에 소개하는 아이슬러의 인터뷰는 이미 최승운의 번역으로 ��음악의 혁명, 혁명의 음악—한스 아이슬러의 생애와 음악��, 동녘, 1987, pp. 254-260.에 소개된 바 있다. 재번역을 하면서 많은 표현을 수정하였고, 드러나는 오역을 정정했다. 또 한 가지 누락된 항목을 추가했으며, 역주를 달았다. 인터뷰 내용 중에 음악가의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서양 클래식 음악에 어느정도 지식이 있는 이들에게도 생소한 작곡가들이 대부분이기에 주석이 없다면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글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단 번역자는 음악전공자도 아니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도 그리 깊지 않다. 대다수의 항목은 서적과 인터넷을 통해 찾아본 것이다. 때문에 주석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독자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다.). 노동자계급 음악운동의 좌표를 제시하고 있는 작곡가로 아이슬러가 언급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 한국의 노동자계급에게 알려진 바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앞으로 이러한 작곡가들의 유산에 대해 널리 소개하고, 그들로부터 배운 바를 한국의 노동자계급운동의 창조적인 성과로 이끌어 내는 것은 또 다른 운동의 과제가 될 것이다.





이 인터뷰는 70년도 지난 것이지만 여러 논점을 제기하고 있다. 아이슬러는 아도르노와 함께 쇤베르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또 공동의 작업을 남기기도 했지만 본문에서 드러난 그의 음악관은 아도르노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아도르노는 1949년에 발표한 ��신음악의 철학��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전체 사회의 지배대상에 지나지 않는 프롤레타리아는 억압이라는 말 한마디로 요약되는 그들의 상황이나 사회 내에서의 위치 때문에 음악활동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것은 지배가 소멸되고 자유가 실현될 때에는 가능할 것이다. (중략) 한편 작곡가가 어떤 계급에 속하는가, 그를 부르주아로 분류하느냐 쁘띠부르주아로 분류하느냐의 문제는 사회적 수용의 관점에서 신음악의 본질을 파악하려 하는 것처럼 별로 중요한 것이 못 된다. (중략) 게다가 작곡가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작품내용 간에는 극히 우연하고도 하찮은 연관성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급진적인 신음악이 연주회에서 발표되는 것으로 끝나는 식의 수용에서 부정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내용의 변화는 신음악이 어느 한 계급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관점에서 탐구될 수는 없다. 오히려 적대로 가득 찬 제도 속에서 꽉 짜인 소우주로 나타나는 신음악은 오늘날 미적 자율성에 의해 구축된 장벽을 박차고 나온다.” 아도르노, ��신음악의 철학��, 까치, 1986, pp. 121-122.










아도르노는 신음악의 기수로서 혁신적인 시도로 현대음악에 내적 혁명을 몰고 온 쇤베르크에 찬사를 바친다. 그리고 그의 음악을 구조적으로 독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의식적인 청중에게 지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이는 대중들은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외면에 길들여진 수동적인 대중들이다. 이 둘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혁신적인 음악을 강조하면 엘리트주의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고, 또 대중성을 강조하다보면 소비자본주의의 굴레를 갇히게 된다. 아도르노는 스스로 설정한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결국 그는 둘 중에 전자에 지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엘리트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에게 엘리트주의라는 혐의가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이유는 그가 수동적이며 감각적인 소비의 주체만을 바라보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을 애써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똑같이 쇤베르크에게 지대한 영감을 부여받았고, 한때는 서로 교우하며 공동작업을 하기도 했던 아도르노와 아이슬러의 차이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을 자신의 이론적・실천적 작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 본 인터뷰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슬러는 아도르노가 절대로 풀지 못한 난제에 대한 해결책을 아주 간결한 형태로 명확하게 제시한다. “음악지식인은 노동자계급에게서 정치적으로 사고하는 방법과 혁명적인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은 음악지식인들로부터 새롭고 현대적인 음악의 방법과 함께 위대한 고전음악의 전통을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동맹이 실제로 일어날 때에 우리는 운동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변증법의 힘이다!





당시의 아이슬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활동하며 자라나는 새로운 혁명적인 음악활동의 정당성과 의의를 설파하고 있었다. 그의 음악관은 쏘련에서 주되게 강조했던 음악 창작에 대한 태도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를 다소 도식적으로 살펴보자면, 쏘련에서는 베토벤과 같은 모범적인 고전음악가나 민족음악의 전통들, 이를테면 차이콥스키와 5인조(발라키레프, 큐이, 무쏘르그스키, 보로딘, 림스키코르싸코프) 같은 과거의 음악가들의 유산을 계승하여 인민들이 쉽게 받아들을 수 있는 형식으로 계급투쟁과 인민들의 여러 문제들을 다루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반면에 아이슬러는 당대의 혁신적인 작곡가들의 출현에 주목하였고, 노동자계급을 위한 노래는 새로운 형식에 담겨야 함을 역설하면서 이를 실제 작곡에 반영하였다. 만약 오늘날 아이슬러와 쏘비에트 음악에서 차이에 대해, 어느 한쪽만을 절대화하는 식으로 수용한다면 곤란할 것이다. 그것은 아이슬러가 본문에서 강조한 미에 있어 ‘질문’하는 태도나 ‘비판적인 사고’와도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아이슬러가 본 인터뷰에서 언급하고 있는 아론 코플랜드 같은 작곡가를 살펴보자. 그가 1942년에 작곡한 관현악곡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레(Fanfare for the Common Man)>는 2차대전 중에 파시즘에 맞선 싸움에서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작곡한 곡인데, 오늘날까지 미국의 축제나 체육행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곡이 되었다. 유럽에 비해 빈약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등감에 젖어 있던 미국인에게 코플랜드는 미국의 20세기 클래식을 개척한 인기있는 작곡가이다. 때문에 오늘날 미국에서 애국주의를 불러일으키는데 적합한 작곡가로 코플랜드를 꼽는 미국인이 많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는 기존의 노동자노래패 등의 노동자계급의 음악운동이 상당히 위축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또 노동자 문예활동은 아니지만 장애인 노래모임 ‘시선’이라는 모임이 있는데, 기본적인 가창이 가능한 장애인이 주체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 ‘시선’과 같은 노래모임 동지들이나 다수의 노동자 노래패가 아이슬러가 요구하는 수준대로 다성음악 합창곡을 당장 무리하게 연습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전 7월 ‘나라오페라합창단’으로 다시 무대에 서게 되어 ‘절반의 승리’를 거둔 국립오페라합창단 동지들 투쟁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국립오페라합창단 동지들이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담은 내용의 곡들을 부를 수 있다면, 아니면 현재 어려운 여건에서 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노동자노래패 동지들의 실력이 저 정도에 이르렀다면...”. 이 양쪽의 간극을 극복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노동자계급 음악운동이 처한 과제가 아닐까 한다. 아이슬러는 독일 노동자 합창단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바탕으로 실천하였다. 노동자들과 함께 하며 작곡하고 지휘하며 합창단의 가창을 열정적으로 지도하였다. 아쉽게도 아직 한국에서는 아이슬러와 같은 뛰어난 작곡가가 노동자계급 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슬러가 요청하고 있는 높은 수준의 요구를 한국의 음악운동에 당장 그대로 이식하는 것은 한국운동의 구체적인 상황에 어긋난 발상일 것이다. 아이슬러의 본 인터뷰는 더욱 오늘날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비판적으로 독해해야 하며, 그리한다면 오늘날의 노동자계급의 예술운동과 진보적 예술운동에 있어서도 충분한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슬러씨, 거대한 사태와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 시기에, 그리고 인민과 이념에 대한 재평가 일어나는 이곳에서 노동자계급 음악운동이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까?










노동자계급 음악운동은 프롤레타리아의 문화생활에 있어 실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그것이 일반 노동운동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많은 노동계급 음악 조직과 합창단은 고루하며 오늘날의 정치투쟁에 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거나 심지어 모순되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근로인민의 진보적인 부위의 계급의식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상한(wonderful) 조직을 종종 발견하곤 합니다.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새로운 혁명적인 음악이 있는가요?










널리 알려진 것보단 많습니다. 부르주아 음악산업의 태업 때문에 그것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죠. 우리의 과제는 현대의 혁명적인 음악을 대중화하여 뒤쳐진 세력들이 전위를 따라잡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현대 혁명적 음악의 대표자들에 대해 조금 언급해주실 수 있다면 음악운동 단체들에게 유용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의 자콥 셰퍼(Jacob Schaeffer)1)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목수였는데, 작곡가와 지휘자로써 자신을 계발하였습니다. 특출난 재능을 지녔지요. 쉬운 군중가요에서 대편성 오라트리오까지 수많은 작곡을 했습니다. 덧붙여서 미국에는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작곡가들이 있지요. 코플랜드2), 리거3), 씨거4), 스위프트5), 카웰6)과 많은 다른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현대 부르주아 음악 집단 출신입니다만 노동계급 운동에 있어 대단히 귀중하고 흥미로운 작품들을 썼습니다. 영국에는 왕립음악원의 교수인 알런 부시(Alan Bush)7)가 매우 유명합니다. 그는 노동자합창단을 지휘합니다. 운동에 있어 뛰어난 작품들을 다소 작곡했으며, 젊은 영국 음악의 가장 중요한 대표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다리우스 미요8)와 오네게르9)도 우리 운동의 지지자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알로하스 하버10)와 에르빈 슐호프11)는 우리 운동의 가장 중요한 대표자들입니다. 예를 들어 슐호프는 대규모의 대편성 합창곡 <단결하라!>를 작곡했습니다. 이 곡의 가사는 ��공산당 선언��12)을 발췌한 것입니다. 덴마크 출신 젊은 작곡가 모르텐쓴13),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며 쏘련에서 대단히 대중적인 모스크바의 헝가리인 페렌스 싸보14)도 또한 노동자 음악의 주요한 국제적인 대표자입니다. 쏘련의 작곡가들 중에서는 맨 먼저 쇼스타코비치15)를 언급해야 합니다. 그는 동년배의 작곡가 중 가장 뛰어난 작곡가 중 한 사람이며, 세계적으로 거대한 흥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여전히 아주 젊으며 위대한 작품을 기대하게 합니다. 아직도 젊고 운동을 촉진하는 데 기여할 수많은 이들을 언급할 수도 있습니다만, 불행하게도 다수의 근로인민 대중들이 이들을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합니다.










기술적인 어려움도 현대의 혁명적인 음악을 알리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네. 다음과 같은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의 가수와 음악인들은 후기낭만주의 전통으로부터 집중적으로 훈련을 해왔기에 특정한 음악적 선호와 버릇이 있습니다. 현대적인 작품의 연주를 위해서 이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될뿐입니다. 이를테면 수년간 <자유여 우리 그대를 기다리리(Freiheit, wir warten dein)>16)나 <창백한 수련꽃(Die  Blasse Wasserlilie)>과 같은 노래를 부른 합창단은 단성음악에만 익숙해져 다성음악17)으로 변화가 필요할 때 매우 곤란에 빠지게 됩니다. 현대 노동자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노동계급 가수와 음악인들만이 아닙니다. 합창지휘자(choir master)와 지휘자(conductor)의 역할에 대한 이해의 전적으로 결핍되어 현대 합창곡 연주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는 자주 있습니다. 그것 역시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만, 현대의 혁명적 노동계급의 음악을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하는 일은 이러한 음악 감독자에 대한 교육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음악이 노동자계급의 정치투쟁에 적합하며 유용합니다.










합창 지휘자와 지휘자를 교육・개발하는 것이 지극히 필요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만, 이는 노동계급 가수와 음악인의 태도에도 달려 있는 문제가 아닙니까?










그 역시 주요한 문제입니다. 우선 혁명적인 노동자계급 가수나 음악인을 예술의 문제에 있어 단지 찬양하거나 숭배하지 않고 비판적일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미(美)’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계급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쓸모없거나 해를 끼치는 것인지 말입니다. 우리가 정치적 활동에 있어 동지들의 비판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처럼, 예술에 있어서도 똑같이 비판적인 사고를 요구해야만 합니다.










고루한 음악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알자스 로렌이나 스위스의 합창단과 음악 단체의 연주목록에서 이를테면 어떤 것이 낡은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에는, 그러한 연주목록을 살펴보면 아주 나쁘며 고루한 곡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컨대 괴이할 정도로 지루한 여러 군대풍의 행진곡18)이나, 열등한 작곡가들의 낡은 서곡19)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든 측면에서 음악적인 안목20)을 해칠 수 있습니다. 합창문헌21)은 더욱더 나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런 진저리나는 가사들로 인해 허풍스럽고 위선에 찬 음악이 시작된 것입니다! 제게 있어서 80인조 합창단22)이 무대에 올라서서 감상적으로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Ich warte dein)>를 부르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악몽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간단히 말해서 이러한 “자연스런 기분”, 이러한 잘못된 민요들은 저속한23), 나쁜 음악이며 잘못된 가사인 것입니다.










그렇게 답변하신다면 누군가는 당신이 민요를 반대한다고 단정할 수도 있겠습니다!










민요를 뭉뚱그려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민요에는 진실한(genuine) 민요와 그릇된 민요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진실한 민요는 오래전에 인민들 자신으로부터 기원하였습니다. 그릇된 민요는 퇴폐적이며 탐욕스러운 오락산업의 생산물인데, 그것은 진실한 민요의 관용구들을 더욱 조잡하고 왜곡된 형태로 ‘빌어오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지독히도 저속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그릇된 민요와 싸워야 합니다. 반면에, 진실한 민요는 가사와 음악 모두 매우 가치있는 것이며 그것은 진실한 민속문화(genuine folk culture)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도 또한 비판적이어야 합니다. 노동자계급의 가수들은 부르주아 연구자들이 이러한 노래를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전하는지에 대해서 너무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모든 노래집의 기초인 어어크(Erk)24)가 출간한 가장 중요한 민요모음집의 출판자 서문에는 정치적으로 부적절하고 도덕적으로 비위에 거슬리는 모든 노래들을 삭제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곧 여러 노동자계급 대중이 가장 가치있는 민요들을 모르고 있음을 뜻합니다. 부르주아는 그들이 공격적이라 간주하는 모든 것을 말살하는 일종의 검열을 자행하였습니다. 하지만 부르주아는 무엇을 정치적으로 공격적이라고 간주합니까? 이를테면 그것은 농민전쟁 시대의 훌륭한 노래들은 진실한 혁명적인 민속예술입니다. 독창적인25) 노동요나 연가들은, 그것이 2류 독일 교사의 덕목에 어긋났기에 삭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요 중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혁명적인 민요를 조사하는 이들은 겨에서 낟알을 골라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와는 별도로, 진실한 민요 중에서 어떤 것은  좋으며 어떤 것은 나쁩니다!










현대의 민요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요?










민요가 어디서나 불리는 노래를 뜻하는 것이라면,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인민이 만든 노래를 뜻한다면, 없습니다. 민요는 원시적 경제조건, 특히 농업경제에서 발생하였습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민요가 자라나기에 적합한 토대가 아닙니다. 민속문화는 수공예처럼 소멸하고 있습니다.26) 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것이 있는데, 바로 군중 가요(the mass song)입니다. 군중 가요는 현대 노동계급의 투쟁가요이며,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로는 과거보다 높은 차원의 민요인데, 왜냐하면 국제적이기 때문입니다.










투쟁가요는 혁명적 음악의 유일한 형식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군중 가요, 다성 합창곡 작품, 교육적인 곡27)들, 그리고 그 이외에도 다양한 수많은 형식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노동자계급의 연주단을 위해 특별한 관현악 음악을 작곡하는 것28)은 이제 현대 혁명적 작곡가들의 임무입니다. 여기서 현대의 작곡가들은 각각의 단체가 처한 구체적인 정세와 기술적 수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현대 혁명음악이 우리가 기대하는 대중적 기반을 얻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부분적으로는 작곡가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현대의 작곡가들은 스스로를 대중운동으로부터 고립시켜서는 안됩니다. 방에 앉아서 노동운동을 위한 음악을 쓰는 것으로는 아직 충분치 않습니다. 작곡가는 사회활동 속에서,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투쟁 속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음악지식인(music intellectual)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연대를 맺어야 합니다. 음악지식인은 노동자계급에게서 정치적으로 사고하는 방법과 혁명적인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은 음악지식인들로부터 새롭고 현대적인 음악의 방법과 함께 위대한 고전음악의 전통을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동맹이 실제로 일어날 때에 우리는 운동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출처: L'Humanité d'Alsace(알사스 루마니떼), 스트라스부르크, 1935년 6월, 표제는 「L'Humanite ineterviewt Hanns Eisler(루마니떼 한스 아이슬러와 인터뷰했다」





EGW Ⅲ/8 (준비중)





이 대담은 베르네(Berne)에서 발간되는 ��스위스 가수 신문(Schweizerische Sänger-Zeitung」에 다시 게재되었다(1935년 6월, 13호, 14호). 머릿글은 다음과 같다. “본지 기자는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역자: 프랑스 북동부 도시로 알자스주 청사 소재지. 국경지대의 도시로 문화의 점이지대임.) 음악 올림피아드 기간 중에 한스 아이슬러와 노동자계급 음악의 몇몇 긴급한(burning) 문제에 관하여 대담할 기회가 있었다. 뉴욕의 신사회 연구대학(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in New York)의 교수인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는 국제 노동운동계에서 유명하다.” 이 기사의 끝에 달린 편집자주에서는 자신들이 아이슬러의 의견을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에게 생각하게끔 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번역: 최상철(운영위원)















독자 의견이 있었습니다. 내용을 정리해서 소개합니다.





��정세와 노동��, 2009년 5월호, 「음악의 반란자 (3)」 중에서

















'그는(베토벤)...대편성곡을 쓸데도 세세한 것 하나하나 면밀하게 작업하였다. 그는 알프레스코 음악가가 아니다...'(p.88) 이 문장에서 '알프레스코'에 단 주석 13번에 대해 이견이 있다. ‘알프레스코(al fresco)’는 ‘프레스코(회벽을 바르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물에 안료가루를 개어서 그리는 벽화) 풍의’라는 의미로 쓰였을 것이다. 프레스코는 벽화이기에 멀리서 보면 그럴싸한데 거칠고 성긴 특성상 가까이서 보면 허접한 특징이 있다. 그래서 알프레스코는 문맥상 전고전주의((前古典主義) 시대 작품들, 특히 만하임악파(18세기 중엽에서 말엽에 걸쳐 만하임의 궁정에서 활약한 음악가를 통틀어 이르는 말. 전고전 악파에 속하며, 특히 바이올린 따위의 각종 악기의 정확한 주법을 발달시켜 빈 고전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 인물로는 작곡가 슈타미츠(Johann Wenzel Anton Stamitz) 등이 있다.)를 가리킬 때 주로 쓰이는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전고전주의 작품들은 굉장히 단순화된 단성음악적인 성격인데 구조는 그렇게 치밀하지가 않다. 베토벤의 시기에 완성된 고전음악도 단성음악이지만 화성적으로 상당히 치밀하게 짜여진 음악이며, 전체적인 완성도는 만하임 악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마도 아이슬러의 ‘알프레스코’라는 표현은 이러한 점을 고려한 비유일 것이다.







지적을 받고 보니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독자 의견을 주신 avant-garde69님께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부족한 번역자에게 많은 조언과 지적이 있기를 바란다. <노사과연>






1) 이하에서 아이슬러가 소개하고 있는 작곡가 중에는 자료를 찾기가 힘든 이들이 있다. 또 원문에 성(姓)만으로 언급된 이들이 많아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 지 애매한 경우도 있다. 간단한 소개글을 찾는 데에도 제법 시간이 걸렸는데, 음악을 감상하려 한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자콥 셰퍼의 경우에는 심지어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음악사전이라는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에도 소개되고 있지 않다. 단 역자가 현재 참조 가능한 것이 2001년도 이후의 판본이 아니라 1980년도 판이기에  그 이후에 항목이 추가되었는지 여부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쟈콥 셰퍼는 노련한 급진적 운동의 합창 지휘자이자 작곡가이다. <굶주림의 행진곡(Hunger march)>, <투쟁의 노래(Strife song)>, <레닌, 우리의 지도자(Lenin, our leader>와 같은 곡을 남겼다. Richard Kostelanetz, Aaron Copland, Steve Silverman, Aaron Copland: A Reader: Selected Writings 1923-1972, Routledge, 2004, p. 90.






2) Aaron Copland. (1900-1990) 유명한 미국의 작곡가. 1920년대에는 재즈에 영향을 받은 음악들을 1930-40년대에는 대중들이 접근하기 쉬운 작품들을 작곡했으며, 오늘날 미국 음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작곡가이다. 아론 코플랜드의 작품 중 노동계급과 관련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은 거의 없지만, 그는 아이슬러의 미국 망명생활 중의 주요한 조력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또한 매카시즘의 광기에 맞서 아이슬러를 변호했던 미국의 양심적인 예술가 중 하나였다.






3) 월링포드 리거, Wallingford Riegger. [1885-1961] 미국 현대음악계의 개척자 중의 한 사람, 무용음악을 많이 작곡했으며, 쇤베르크의 영향을 받아 12음 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이를 그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대위법에도 상당히 능통했다. 본문에서 아이슬러가 왜 리어거를 주목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16, Macmillan publishers, 1980. pp. 1-3.






4) Charles (Louis) Seeger. (1886-1979) 최승운의 번역에는 누락되어 있다. 그는 미국의 음악학자, 작곡가, 지휘자, 비평가이자 음악철학자이다. 피트 씨거(Pete Seeger)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의 아들 피트 씨거는 미국의 진보적인 포크(아이슬러가 본 인터뷰에서 언급하고 있는 민요가 아니라 통기타로 연주하는 모던 포크를 말한다. 물론 그의 음악에는 미국의 민요에서 채집한 내용이 많이 담겨있다.) 음악인이다. 참고로 쿠바 혁명 음악의 기수인 실비오 로드리게즈는 2009년 피트 씨거의 90회 생일 축하 공연에 비자문제로 연주자로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대단히 실망했다고 한다. 챨스 씨거는 1930년대에는 ��일간 노동자(Daily worker)��지의 음악 비평가로 활동했으며 범아메리카주연합(Pan-American Union)의 음악분과장(1941-1953)을 역임하였다. 민족음악학(ethnomusicology)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민속음악에 대해 많은 애정을 보였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자식들에게 계승되었다.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17, Macmillan publishers, 1980. pp. 101-102.






5) 누구를 말하는 지 불명확하다. 리차드 스위프트(Richard Swift)라면 1927년생이므로 정황상 맞지가 않는다. 아이슬러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스위프트라는 성을 지닌 미국 작곡가로는 케이 스위프트(Kay Swift 1897-1993)가 있다.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1980년판에는 그녀에 관한 항목이 없다. 케이 스위프트는 대중음악과 클래식 양쪽에 걸쳐 활동하였고, 뮤지컬을 완성한 최초의 여성 작곡가이며, 조지 거쉰과 활발히 교류하였다. http://en.wikipedia.org/wiki/Kay_Swift






6) Henry Cowell. (1897-1965) 미국의 작곡가. 20세기 아방가르드 음악의 선구자이며 유명한 존 케이지(John Cage)의 스승이다. 혁신적인 실험정신으로 현대 음악이 진일보하는데 기여 했으며, 자국의 전통민요와 비서구적인 음악의 요소를 원용하는 등 다른 작곡가들에게 여러 영향을 주었다. 가장 미국적인 동시에 가장 세계적인 작곡가로 꼽힌다. 더 자세한 내용은 20세기 작곡가 연구회, ��20세기 작곡가 연구 Ⅱ��, 음악세계, 2001, pp. 322-354.






7) Alan (Dudley) Bush. (1900–1995) 영국의 작곡가이자 피아노연주자이며 음악지도자이다. 1929년에서 40년까지 런던노동자합창단(London Labour Choral Union)을 지휘했다. 1935년에는 공산당에 가입하였고, 1936년에는 노동자음악연합(Worker's music association)을 설립하였고 1941년 동단체의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작품에 강하게 투영하였다.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3, Macmillan publishers, 1980. pp. 502-503.






8) Darius Milhaud. (1892-1974) 프랑스의 작곡가, 피아노연주자. 조르쥬 오릭(Georges Auric), 루이 뒤레(Louis Durey), 아리튀르 오네게르(Arthur Honegger), 프랑시스 풀랑크(Francis Poulenc), 제르멘느 타유페르(Germaine Tailleferre)와 함께 6인조로 꼽힌다. 그는 인상주의의 모호한 선과 예민한 화성에 반발하고, 전형적인 독일 전통으로 생각했던 반음계 사용을 거부하였다. 그 대신 복조(複調, Bitonality. 두 가지 조성이 동시에 결합된 음악.)와 다조(多調, Polytonality. 복조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며, 1개가 넘는 조성을 동시에 사용하는 음악을 통칭한다. 좁은 의미로는 3개 이상의 조성을 사용하는 음악을 가리키기도 하고, 합창곡에서는 성부마다 다른 조성을 사용하는 경우를 지칭하기도 한다. 미요 외에도 홀스트(Gustav Holst)와 바르톸같은 이들이 잘 사용했다.) 기법을 발전시켜 자신의 어법으로 수용하였다. 현학적인 음악에 과감하게 대중선율을 사용하여 대중 문화와 순수예술 사이의 벽을 성공적으로 허물었다. 20세기 작곡가 연구회, ��20세기 작곡가 연구 Ⅱ��, 음악세계, 2001, p. 449.






9) Arthur Honegger. (1892-1955) 프랑스 출생이나 스위스 국적의 작곡가. 미요와 함께 6인조의 일원. 독일 낭만파 영향 하에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하였다. 영화음악과 방송음악 등 새로운 매체를 위한 음악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하였다. 그레고리안 성가, 프로테스트 찬송가, 재즈, 12음기법(단 무조기법은 거부하였음) 등 과거와 동시대의 작법에 대해 탐구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는 ‘정직한 노동자로서 정직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같은 책, p. 436. 






10) Alois Hába (1893,-1973) 체코의 작곡가, 음악 이론자이자 교육자. 스메타나와 요제프 쑤크(Josef Suk. 작곡가. 클래식 애호가들에 잘 알려진 동명의 바이올린 주자는 그의 손자이다.)에게 영향을 받았다. 모라비아 지역의 민요(체코의 아방가르드 바이올린 주자 이바 비또바(Iva Bittová)의 작품에도 모라비아 민요로부터의 영향을 볼 수 있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미분음을 이용한 작곡으로 유명하다. 1927-29년에 작곡한 ≪어머니(Matka)≫(사회주의 시절 헝가리의 수프라폰 레코드에서 2장의 엘피로 발매된 것을 확인했으나 구하지 못하였다. 또 고리끼의 소설을 각색한 것인지 여부도 확인하지 못하였다.)는 4분음(quater-tone)을 ≪나라가 임하옵소서(실업자)(Přijď Království Tvé(Nezaměstnani))≫는 6분음을 사용한 곡이다. 진보적인 활동으로 인해 2차대전 시기에 나치의 박해를 받았으나 전후 다시 음악계로 돌아왔다.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8, Macmillan publishers, 1980. pp. 5-7.





*참고: 미분음(microtone)이란 반음보다 더 좁은 음정(이를테면 3분음 4분음 6분음 8분음...)을 가리킨다. 넓은 의미로 한 옥타브 안에 있는 모든 음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쓰는 이들도 있다. 서양음악에서는 18세기 이래 평균율 12음계를 사용했었기에, 근래에 와서야 미분음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인도와 아시아 음악에서 미분음 사용의 역사는 길다. 하버 외에도 스톡하우젠(Stockhausen) 같은 이들이 미분음을 이용한 작곡을 남겼다.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12, Macmillan publishers, 1980. pp. 279-280.)






11) Ervín Schulhoff. (1894-1942) 체코의 작곡자, 피아노연주자. 1차대전 이후 독일에 체류하면서 다다이스트(다다이즘은 한 가지 경향성으로 환원되지 않지만 대체로, 20세기 초반에 정통주의와 부르주아적 가치에 반기를 드는 반전(反戰)주의 예술가들이 펼친 허무주의적 예술운동을 가리킨다.) 및 젊은 예술가들과 교류한다. 1930년대 들어서면서 공산주의자가 되었는데, 1932년 모스크바 방문이 “그의 눈을 열었다”고 한다, 그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자신의 작품에 본격적으로 받아들인다. 1939년 나치의 체코 점령으로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1941년 4월에 쏘련 시민권을 얻지만 쏘련으로의 이주를 미루던 와중에 6월 22일 히틀러가 쏘련을 침공한다. 나치의 체코 점령기에 정치적 사상과 유태인 혈통 때문에 수용소에 갇혔고, 거기에서 죽음을 맡게 되었다. 죽기 직전에 완성한 교향곡 6번 ≪해방(Svobody. 영어로 liberty에 해당)≫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당대의 조류에 대해 널리 수용하는 다재다능한 작곡가였다. 그것은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에서 인상주의, 표현주의, 재즈, 신고전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바르톸의 민속주의(folklorism)에 이르기까지 광범하다.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16, Macmillan publishers, 1980. pp. 816-817. http://cs.wikipedia.org/wiki/Erwin_Schulhoff, 및 이경분, “음악적 다다이스트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스트로-수용소의 음악가 E. Schulhoff에 관한 소고”, 『음악학』, 제 11호, 한국음악학학회, 2004, pp. 163-188.를 참고하여 요약. 국내에도 슐호프의 작품을 연주한 CD가 일부 수입되었지만, 탱고와 같은 감각적인 곡들이 주를 이루고, 그의 사상적 측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유럽의 연주단이 내한 할 때 간혹 슐호프의 작품을 연주하는 경우가 있지만 다수의 대중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12) 합창곡 <단결하라>는 아마도 1933년작 칸타타 <공산당 선언(Komunistický manifest)>, 작품번호 82에 포함된 곡인 것 같다. 슐호프는 1920년대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아 파격적인 형식실험을 하였지만, 이 작품은 노동자 투쟁가에서 영향을 받은 행진곡풍의 곡이며 화성적으로도 단순하다. “음악적 다다이스트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스트로-수용소의 음악가 E. Schulhoff에 관한 소고”, 『음악학』, 제 11호, 한국음악학학회, 2004, pp. 175-176.






13) Otto (Jacob Hübertz) Mortensen. (1907-1986) 덴마크의 작곡가, 피아노와 오르간 연주자, 지휘자이며 음악교육자. 덴마크에서 낭만주의적 전통이 피해야 할 유산이라고 간주되던 시기에 니엘쓴(Carl August Nielsen. 덴마크의 작곡가.)의 낭만주의를 독자적, 서정적으로 계승하여 그의 세대에서 두각을 나타났다. 성악곡에서 그의 뛰어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1930년 이래로 대중적인 음악작업을 하였다. 교육적인 작품들 뿐만아니라, 독자적인 작품 및 덴마크 민요를 훌륭하게 구성한 합창으로 편곡하여 작곡하였다.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12, Macmillan publishers, 1980. pp. 594-595. http://da.wikipedia.org/wiki/Otto_Mortensen






14) Ferenc Szabó(z는 묵음). (1902-1969) 헝가리의 작곡가. 1921년에서 1926년에 레오 바이너(Léo Weiner), 졸탄 코다이(Zoltán Kodály)와 함께 작곡을 배웠다. 청년 시절부터 좌익 정치활동을 했으며, 1927년에 당시에 불법이었던 공산당에 가입했다. 고급예술과 대중문화 사이의 새로운 형태의 매개를 찾으면서, 노동자 합창단을 열정적으로 참여했고, 군중을 위한 투쟁가를 작곡했다. 1932년 쏘련으로 이주하였고, 존경받는 인사가 되었다. 쏘련에서 콘써트 홀 음악과 집단 창작 음악 사이의 공통 지반을 높은 수준에서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다. 1934년에는 피스카토르(Erwin Piscator)의 영화 ≪어부의 반란(Der Aufstand der Fischer)≫의 음악을 작곡하였다. 1944년에 쏘련에서 헝가리로 돌아와 붉은 군대의 장교로 복무했다. 1945년에는 부다페스트 음악대학(Budapest Academy of Music)의 작곡과 교수로 임명되었고, 죽기 전까지 음악활동을 지속하였다.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18, Macmillan publishers, 1980. pp. 483-484. http://hu.wikipedia.org/wiki/Szab%C3%B3_Ferenc_%28zeneszerz%C5%91%29






15) 너무도 유명하니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졸고 「쇼스타코비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정세와 노동��, 2006년 12월호, pp. 57-71.을 참조하길 바란다.






16) 19세기 파르티잔의 노래로 아이슬러는 이를 고루하며 일반적인 감정에서 머물러 정치적으로 명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1920년대 후반 아이슬러는 19세기 파르티잔 노래를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투쟁가를 작곡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대도시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곡들을 작곡했다. 이 시기 만들어진 곡들이 오늘날까지도 널리 부르고 있는 <통일전선의 노래>, <연대의 노래> <비밀스러운 행진(‘투쟁의 물결’로 번안됨)>과 같은 곡들이다. 알브레히트 베츠, ��음악의 혁명, 혁명의 음악—한스 아이슬러의 생애와 음악��, 동녘, 1987, pp. 100-102. 영문판은 Hans Eisler Political Musicia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2, pp. 84-85.






17) 단성음악(Homophony)은 단선음악(Monophony. 대표적인 예는 그레고리안 평성가(Gregorian plainchant).)을 기초로 하여 발생한 것으로 주선율이 한 성부에만 나오고 다른 성부는 다만 이에 화성적 반주로 된 음악이다. 흔히 들을 수 있는 교회 합창곡과 전기 바로크 음악을 예로 들 수 있으며, 고전파 음악은 대체적으로 화성적 단성음악으로 규정할 수 있다. 우리 귀에 익숙한 베토벤의 피아노 쏘나타들은 단성음악이라고 보면 된다.





다성음악(Polyphony)은 단성음악과 같이 단선 음악에서 발생하였으나 주선율이 각 성부에 골고루 나오고 이것이 대 선율로 엮어진 음악으로 푸가, 인벤션(invention. 바흐가 명명하였음.) 등의 음악이다. 서양에서 9세기 이후 종교음악에서 다성음악이 도입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합창곡들은 대체로 전형적인 다성음악이다. 바흐의 칸타타(cantata. 레치타티보, 아리아, 중창, 합창 등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성악곡의 하나. 어원은 ‘노래하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cantare이며, 기악곡의 쏘나타와 대응되는 말. 가사의 내용에서 세속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으로 나뉜다.)도 다성음악인데, 후기 바로크 음악은 대체로 다성음악으로 보면 된다.





아이슬러의 합창곡에서 예를 들자면 익히 알려진 투쟁가 <통일전선의 노래>, <연대의 노래>, <비밀스러운 행진> 같은 곡은 전형적인 단성음악이다. 그리고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반에 아이슬러가 노동자합창단이 소부르주아 합창 방식에 경도되는 것에 분개하면서, 노동자계급의 발언을 새로운 음악형식에 담아 작곡한 일련의 정치적인 합창곡들은 대체로 다성음악적이다. 그 중에서 전형적인 다성음악의 예로는 ≪네 개의 혼성합창곡(Vier Stücke für gemischten Chor)≫ 작품번호 13 중에 빈 노동자의 1927년 7월 봉기를 기리며 죽어간 투사 동지를 위한 내용을 담은 <패배자의 노래(Gesang der Besiegten)> 그리고 ≪두 개의 혼성합창곡(Zwei Stücke für gemischten Chor)≫ 작품번호 21 중에 no. 2 아이슬러가 작사도 한 더 이상의 유혈 희생을 막기 위한 내용을 담은 <살인에 관하여(Über das Töten>를 들 수 있다. 이 곡들은 CD화 되었다. ≪Hanns Eisler: Chöre≫, Berlin Classics 0092362BC, Germany, 1997. 이 음반의 합창곡들은 후반부에 실려있는 투쟁가들을 제외하고 단성음악과 다성음악의 요소가 정교하게 혼재되어 있다. 그것은 당시 일반적인 노동자 합창단이 부를 수 있는 수준보다 복잡한 합창곡이었지만, 독일 노동자계급에게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지면을 빌어 이해에 도움을 주신 avant-garde69님에게 감사를 표한다. 






18) 여기서 아이슬러는 행진곡풍의 투쟁가 일반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9) overture. 독립적으로 작곡하기도 하지만 주로 오페라와 같은 극음악과 같은 악곡에 붙인 관현악의 도입부를 가리킨다.






20) musical taste. 최승운의 번역에서는 ‘음악적 기호’라고 옮겼는데 여기서 taste는 사람마다 각자 다른 취향이나 기호라기보다는 심미안을 뜻하는 개념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단 원문은 확인하지 못했는데, 최승운의 번역도 영어판에서 중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21) choral literature. 최승운의 번역에서는 ‘합창곡의 노래말’로 옮겼는데, 아이슬러는 여기서 포괄적인 의미로 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내 음악학계에서 choral literature를 대체로 합창문헌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의미전달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니 굳이 새로운 용어로 번역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22) 최승운의 번역에는 ‘여덟 사람의 합창단’이라고 옮기는 실수가 드러난다.






23) kitsch. 키치란 ‘통속 취미에 영합하는 예술 작품’을 가리킨다. '잡동사니', '천박한' 이라는 의미를 지닌 키치라는 용어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으로 애초에 미적인 안목이나 경험을 거의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통속적인 싸구려 그림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최근에는 일부러 유치하고 천박한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기성 예술의 엄숙주의를 조롱하고 야유하는 예술의 한 형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한국 민요의 사례를 바탕으로 이해를 해보자면, 일제시대와 파쇼군사정권이 주되게 퍼뜨린 ‘권농가’, ‘교훈가’ 내지는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의 속류화된 민요를 떠올리면 적절할 것이다. 과거 운동진영에서 ‘민중예술’을 고민하면서 민요에 대해서 계승할 유산과 버려야 할 것에 대한 고민을 진행하였고, 실제 작품창작에 있어서도 그러한 고민이 반영하였다. 이는 아이슬러의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이슬러는 노동자 게급의 혁명적인 투쟁을 담아내는 음악은 에술적으로 충분히 완성된 형식에 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열한 혁명적 투쟁의 성과를 담아내는 에술이 통속성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자본주의 대중문화가 인민대중을 끊임없이 우민화(愚民化)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24) 원주: 루드비히 크리스챤 어어크(Ludwig Christian Erk: 1807-1883). 19세기의 위대한 독일 민요 채록자로서, 2만여 곡이 실린 모음집을 펴냈다. 그의 ��독일 노래의 보고(Deutscher Liderhort)��의 개정판은 독일 민요를 가장 포괄적으로 모아놓았으며, 프란츠 마구누스 뵈메(Franz Magnus Böhme. 역자: 1827-1898. 민요와 음악사를 연구한 드레스덴의 음악교육자.)가 이를 1893년과 1894년에 걸쳐 편집하였다.






25) original. 오리지널의 어원은 기원, 시초의 뜻을 지닌 origin에서 비롯한 것이다. 즉 독창적(original)이라는 것은 그 뿌리를 공고하게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26) 더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다면 아르놀트 하우저, ��예술사의 철학��, 돌베개, 1983.의 5장 “민중예술과 대중예술”을 보라.






27) didactic pieces. 브레히트와 아이슬러가 함께 한 교육극과 이에 기반한 음악작업을 고려하면 될 것이다.






28) 아이슬러의 고민과 실천은 알브레히트 베츠, ��음악의 혁명, 혁명의 음악—한스 아이슬러의 생애와 음악��, 동녘, 1987, pp. 152-161. 영문판은 Hans Eisler Political Musicia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2, pp. 149-160.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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