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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맑스, 다윈 그리고 생물학의 대격변
글쓴이 샘 마시 (Sam Marcy) E-mail send mail 번호 130
날짜 2009-08-07 조회수 3231 추천수 127
파일  1249648943_다윈.hwp

  

























 





이 글은 “노동자 세상 정당”1)의 창립자가 쓴 것인데, 원래 칼 맑스 서거 100주년인 1983년 3월 25일에 “노동자 세상”에 출판된 것이다2). 우리가 맑스주의와 다윈주의의 관계와 당대 서로 교신했던 맑스와 다윈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고, 맑스 서거 100주년을 논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적절하고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최근 생물학분야에서 대격변은 맑스주의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에 실로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만약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일찍이 제거되었더라면, 1982년과 1983년은 다윈과 맑스 모두에게 더욱 더 기념이 되는 해가 되었을 것이다.















과학계의 두 거장










클리멘트 타미라제프 (Kliment Timiriazev)는, 옛 러시아제국의 첫 번째로 위대한 다윈의 자연주의자였고, 맑스의 ��자본론�� 이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을 때 이에 정통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그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출판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 (1919년)에 즈음하여 이렇게 썼다. “우리가 이 두 서적의 출판 60주년을 기념하면서, 출판 60주년 기념을 맑스와 다윈의 공동기념으로 고려해 볼 때, 우리는 이 두 사람이 자연과학의 기치 아래 나란히 전진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 둘 다 자연과학을 그들의 혁명적인 관점의 견고한 토대로 여겼으며, 그러한 혁명적인 관점은 전 인류의 존재와 ‘의식’ 모두를 뒤흔들어 놓았다. 과학의 방법, 즉 과거의 신비스럽고 형이상학적인 공식을 폐기하는 자연과학의 방법이 부르주아 계급의 진부한 문화를 전복하기 위한 방법, 미래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문화를 세우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 명백하지 않은가?3)





맑스와 다윈은, 초기 다윈의 자연주의자인 타미라제프가 인식하기에, 둘 다 과학이라는 견고한 기초 위에 서 있었다. 타미라제프는, 다윈의��종의 기원��과 맑스의��정치 경제학 비판��이 같은 해에 출판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이 위대한 발견을 한 획기적 시대의 본질을 보여주는 놀라운 실례이기 때문에, 이 두 서적을 당연히 언급한다. 그 시대는 여전히 이른바 부르주아 계급의 진보의 시대였다. 다윈의 책은, 영국에서 순식간에 대성공을 거두었던 것처럼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맑스의 책에 대해서는 명백히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다윈주의가 다소 빠르게 수용된 이유는 다윈주의를 받아들였던 영국의 후커, 웰리스, 토마스 헉슬리4), 독일의 헤켈, 뮐러, 바이스맨5), 그리고 미국의 몇몇 인사들을 포함한 그 시대의 주도적인 생물학자들 때문이었다. 따라서 부르주아 계급은, 전체는 아니었지만, 수많은 신랄한 논의와 투쟁 이후에, 다윈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맑스에 대해서는 전혀 달랐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르주아 계급은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침묵의 음모가, 그 당시의 혁명적인 노동자 계급집단을 제외하고는, 맑스의 발견을 베일로 가렸다.























맑스와 엥겔스가 다윈을 환영하다










다윈의 획기적인 발견이 맑스와 엥겔스가 오랫동안 유지해왔고 주장해왔던 전반적인 세계전망에 대해 확신을 주었기 때문에, 그 침묵의 음모는 맑스와 엥겔스가 다윈의 신기원의 발견들을 환호하며 맞이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엥겔스가 ��종의 기원��이 발표된 1859년 11월 24일 즉각 책을 입수하여, 같은 해 1859년 12월 12일 맑스에게  "지금 내가 읽고 있는 다윈은 정말이지 굉장하다. 목적론의 한 측면6)은 아직 끝장나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다. 더욱이, 자연의 역사적인 발전을 논증하려는 이렇게 위대한 시도는 지금까지 결코 없었거나,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물론 조잡한 영국식 방법은 무시해야만 한다." 라고 글을 쓴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엥겔스가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해 열광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 역사 발전에 대한 엥겔스와 맑스의 고유한 견해를 확인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유기적인 자연을 변증법적이고 유물론적 시각으로 논증한 것으로써 유물론적 방법을 적용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맑스와 엥겔스가 사회의 발전, 사적 유물론, 특히 그들의 경제적인 학설 분야에 적용했던 방법이었다.





그 당시 맑스는 다른 일에 몰두했었기 때문에, 그는 얼마 지난 후에 이렇게 썼다. (1860년 12월 19일) "비록 거칠게 드러내는 영국식 방법이지만, 이 책은 우리 견해에 대한 자연사적인 근거가 포함된 책이다." 후에 그는 라쌀(Lassalle)에게 이렇게 썼다 (1861년 1월 16일). "다윈의 책은 아주 의의가 있으며, 나에게 역사에서 계급투쟁을 위한 자연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물론 거친 영국식 발전의 방식을 참아내야 한다.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자연과학에서 ‘목적론’에 대한 최초의 치명적인 타격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중요성을 경험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진화에 대한 다윈의 생각은 맑스와 엥겔스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진화론은 당연히 자연과학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진화론은 이전의 라마르크나 디드로, 돌바크, 모페르튀 그리고 뷔퐁7) 등에 의해 하나의 이론으로 연구되고 발표되어 대중적인 관심을 끌어왔으나,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광대한 경험적 자료 없이, 단지 엄밀하게 말하자면 추론적인 형태로만 존재했었다.





어떤 자연과학자들도 필수적인 경험적 자료 없이 전반적인 진화론적인 관점을 종합하여 다룰 수는 없었다.



















진화에 대한 레닌의 견해














당시 24살에 불과했던 레닌이 "‘인민의 벗’이란 누구인가?"라는 논쟁적인 제목의 글에서, 맑스주의와 다윈주의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 것에 대해서 주목해야 한다. “다윈은, 동물과 식물 종들이 연관이 없고, 우연적이며, ‘신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리고 불변이라는 견해를 종식시키고, 종의 연속성과 변이성을 확립하여 완전히 과학적 기초 위에 생물학을 세운 최초의 인물이었다. 마찬가지로 맑스는 사회를 권위의 (또는 사회와 정부의 의지) 의지에 대한 모든 종류의 변형을 허용하며 그리고 우연적으로 출현하고 변화하는 각 개인들의 기계적인 집합체로 바라보는 관점을 종식시키고, 주어진 생산 관계의 총합으로써 사회의 경제적 구조라는 개념을 확립함으로써, 또한 그러한 구조의 발전은 자연적인 역사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사회학을 과학적 토대 위에 세운 최초의 인물이었다 8).”





맑스는, 맑스의 견해와 다윈의 견해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과학계의 모든 이들을 위하여 ,��자본론��의 두 번째 판 서문에서 그의 견해를 서술하였다. "사회의 경제 구조의 진화는 자연사적인 과정으로서 여겨진다.“ 이러한 견해는 맑스주의와 다윈의 진화설 사이의 관련성을 명확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자신들의 과학적인 역사적 방식을 유기체의 진화에 대한 다윈의 방식에 비교하였고, 때때로 극단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곤 하였던 맑스와 엥겔스의 공통의 방법론이었다.





예를 들면, 맥클란의 ��칼 맑스��에서 그가 맑스의 조사(弔詞)를 했던 엥겔스를 비판한 점을 살펴보자. "다윈이 유기적 자연에서 진화의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맑스도 인간 역사에서 진화의 법칙을 발견했다. 그는 이념의 과도한 성장으로 인해 이제까지 감추어져 있던 단순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인류가 정치, 과학, 예술, 종교 등을 실행할 수 있기 전에 무엇보다도 반드시 먹고 마시고 쉴 곳과 의복이 필요하다는 사실, 따라서 삶의 당면한 물질적 수단으로서의 생산과 그 결과로서 어떤 주어진 시기나 그 시기의 사람들에 의해 획득된 경제 발전의 정도가 지금까지 발전되어 온 국가 제도, 법률 개념, 예술, 인민의 종교적인 사상의 토대를 형성하며,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지금까지의 사례와는 반대로, 이러한 견지에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맥클란은 이것을 마치 맑스와 엥겔스가 다윈에 대하여서는 어떠한 유보조항도 가지고 있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받아 들인 것처럼 설명한다. 물론, 맑스와 엥겔스는 다윈에 대해서 유보조항을 두었고, 다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특히, 다윈이 멜더스의 학설을 불필요하게 끌어오는 부분에서 그랬다.















멜더스의 반동적인 진화론










엥겔스는 반듀링론에서, 다윈이 멜더스 (Malthus)의 이론을 모조리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다윈의 생존을 위한 투쟁9) 이론을 그릇되게 공격한 듀링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다윈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론의 기원이 멜더스에 있다고 말하는 것을 꿈도 꾸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단지, 그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론이 멜더스가 전체적으로 동식물 세계에 적용한 이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윈은 멜더스의 이론을 순진하고 비판없이 받아들이게되는 큰 실수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언뜻 봐서 종종 극단적으로 잔인해 보이는 자연계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 -즉, 자연에서 너무 많이 생산되는 수 많은 생식세포들과 그들 중에서 완전한 발달단계에까지 도달하게 되는 소수 사이의 모순,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것의 해결책을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찾는다는 모순―을 받아들이는데 멜더스의 관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맑스는 1870년 6월에 쿠켈만(Kugelmann)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위대한 발견이었다. 전체 역사가 단 하나의 위대한 자연법칙 아래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자연의 법칙은 한마디로 (다윈의 표현을 여기에 적용해보자면 단지 하나의 관용구에 불과한 ‘생존을 위한 투쟁10)' 이다. 이 관용구의 내용은 멜더스의 인구의 법칙 또는 과잉인구법칙이다. 따라서 ‘생존을 위한 투쟁 11)’을 다양하고 명확한 형태의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출현한 것으로 분석하는 대신에, 모든 현실의 투쟁을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그리고 이 관용구 자체를 맬더스의 인구학적 환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매우 인상적인 방법이라고 인정해야만 한다 -즉, 비틀거리고 위선적으로 과장된 무지와 지적 게으름이라는 이유로...... 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와 다윈의 관계는 각자의 분야를 상호 존중하는 관계였다. 다윈은 1873년 10월 1일 맑스에게 이렇게 썼다. "친애하는 맑스, 나는 당신이 자본에 대한 당신의 위대한 저서를 나에게 보내준 것에 대해서 영광스럽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내가 그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기를, 그러나 정치 경제라는 심오하고 중요한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데 내가 적합한 인물이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우리가 하는 연구들이 매우 달랐지만, 나는, 우리 둘 다 진심으로 학문의 확장을 원하고 이것이 분명히 장기적으로는 인류의 행복에 보탬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내가 항상 존경하는 친애하는 선생님께. 충실한 찰스 다윈."





정말 그렇다. 1982-83년은 맑스와 다윈을 공동으로 기념하는 해가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근대 과학의 이러한 두 거장이 죽은 뒤 100년 후에, 부르주아 계급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다윈에 대한 찬사의 말을 줄이고 있으며, 이미 반세기 이상 심화된 자본주의 위기로 인해 그의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분석이 확증된, 맑스를 주목하지 않고 일부러 피하고 있다.















다윈에 대한 새로운 공격










다윈 서거 100주년인 1982년 4월 19일, 런던 타임즈는 "다윈의 몰락-100년"이라는 제목의 크리스토퍼 부커 (Christopher Booker)의 기념기사를 싣는다. 그것은 삽화에서 보여주듯이 졸렬하고 심지어 퉁명스러운 어투로 써졌고 명백히 악의적이었다. 그 만화는 다윈이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부커는 "다윈의 명성이 높다는 것"을 마지못해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제로 발견되지 않는 것이 많다는 이유로, 아직 생물학에 의해 완성될 것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이유로 그를 계속 공격한다. 부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진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는 믿음과 창세기는 문자 그대로 옳은 것이며 신은 세상과 그 속의 모든 종을 동시에 상당히 훌륭하게 창조하였다고 믿는, 오래된 성서근본주의의 상당한 부흥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분야에서 다윈에 대하여 몇 가지 새로운 수정을 요구하는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거의 공개적인 전투가 진행되어 왔다.” 이것은 반(反)진화론자들의 통상적인 책략으로써, 반동적인 "창조론자들"에 대치하고 있는 다윈주의 진화론자 진영 내부의 의견 차이를 부당하게 이용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지구에서의 생명체가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진화해 왔다는 주장은 단지 소수의 사람들 이상의 다수에게는 발생할 것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그리고 왜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조금도 알 수 없고, 아마 절대로 모를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신의 비밀로 남아있을 것이다."라고 부커는 말한다.















신을 몰래 들여오다










이것이 바로 신을 뒷문, 즉 "최후의" 해답이 되는 설계자와 함께 자연에서 목적과 설계에 대한 옛 목적론 13)의 좀 더 정교한 변형형태를 통해 몰래 들여오는 방법이다. 





예술, 과학, 기술 그리고 실질적으로 모든 것에 대해 확고한 낙관주의를 보이는 초기 발전적인 자본주의의 시대는 갔다!





이 낙관주의는 그 당시, 영국의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에서 발생하여 퍼져나갔다. 혹자는, 약간의 정당성을 가지고, 그 시기에 대영제국은 결코 해가 지지 않았고,  세계 무역의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며 자본 축적을 유지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윈의 진화 이론은, 비록 부르주아 계급의 발전과 성장을 반영하지는 않았더라도, 유사한 경향인 것처럼 보였다. 진보적인 발전이 주식시장의 가치가 증가하는 것과 일치하는 한, 다윈의 진화 이론은, 비록 전적으로 수용할 수 없더라도, 묵인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영국은 다르다. 오늘날 영국은 약탈적인 자본주의 위기뿐 아니라 세계 정세에서 매우 위축된 역할로 인하여 황폐화되고 암울한 상태이며, 미국 제국주의의 반(半)위성 국가로 전락하였다. 다윈의 혁명적인 유물론자의 변증법적 접근에 있어 오늘날 지배계급은 무엇을 원하는가?





식물체나 동물체의 모든 유기체의 변이성에 대한 다윈의 이론은, 자본주의체제가 “변이”되는것처럼 보일때, 즉 자본주의체제가 급격하게 상승고조를 타고 발전하고, 엄청난 이익을 획득하며, 자본주의 경쟁자들에 의한 어떠한 도전도 막아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일때처럼, 그들 지배계급이나 부르주아계급에게 동일한 호소력을 지니지 못한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부르주아 계급이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학분야에서 다윈의 이론만큼 상당한 위업이나 지속적인 효력을 갖는 강력한 도전은 없었다.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 시대인 지난 100년 동안 대서양의 반대편인 이곳에서, 부르주아 계급의 일부 인사들은 "적자생존14)"이라는 연설로 명성을 날린 허버트 스펜서의 반동적인 사회생물학적인 견지에 매혹되었다. 약탈적인 지배 계급이 억압받는 인민들을 정복하는 사실상 제한 없는 길로 전진함에 따라, 이것은 소위 진화설의 그러한 외관에 유혹되었다. 대법원까지도 포함해서, 연방 법원에서도 생존을 위한 투쟁 15)이라는 스펜서의 개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뉴욕의 노동 착취 공장들의 안전 수칙은, "모든 인류의 사회에 널리 퍼진 성공과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격찬하는 판결로 인하여 1885연방 법원에 의해 무효화되었다. 따라서 안전 수칙은 "적자 생존16)"을 무시했기 때문에 위헌이 되었다!





유기체 세상의 삶을 지배하는 이 법칙이 부르주아의 계급 투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이된 것은, 이 “적자”라는 말이 미국 제국주의를 확장시키는 한 상당히 적절하고 적합한 것처럼 보여졌다. 우리는, 미 제국주의의 쇠퇴기인 최근에는, 진화론의 이런 부패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부르주아 계급이 예전의 "창조론자" 학파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우익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다










생물학 분야가 밀물같이 밀려오는 성직자의 몽매와 정치적 반동의 홍수에 의해서 실제 포위당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윈이 죽은 후 한 세기 동안, 생물학자들은, 우익의 “창조론자” 진영에서 어떠한 큰 폭탄도 그들에게 내던져 지지 않자, 안도의 숨을 쉬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올해들어, 데릭 프리드먼(Derek Freeman)의 ��마가렛 미드―인류학적인 신화의 제작과 폐기17)��라는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출판으로 공격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인류학에서였다. 프리드먼의 정치적인 동기는 분명히 사회생물학이라는 반동적인 학파를 지지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에 맞선 투쟁에서, 반동적인 우익은 진화론을 폐지하고 "창조론"의 부정한 기초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일 먼저 과학계에서 증거물 1호로 내세우기 위해 적어도 한명의 배반자를 사로잡길 희망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완전히 반대였다. 자금이 풍부하고 잘 조직된 "창조론자"들의 맹공격은 생물학계에서 지지기반을 마련하지 못했다. 1982년의 사건을 취재한, 1983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18)은 생명 과학의 보고서에 이렇게 적고 있다. "창조론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 진화의 이론은, 찰스 다윈이 사망한지 100년이 지난 1982년에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으며 강력한 지적 자극으로서 존재한다." 계속해서 이렇게 쓰여 있다. "진화론적인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진행 중인 논쟁은 진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한 의문이 전혀 아니었고, 어떻게 그것이 진행 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세부사항과 관련되었다."





현재는, 그러한 문제들을 부당하게 이용하고 혼란시키기 위해 그러한 논쟁에 개입하는 창조론자들의 노력이, 진화론적인 이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찾으려고 하는 지속적인 투쟁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어떻게 진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해 논쟁하다










일찍이 1980년대 10월에, 시카고 자연사 박물관19)에서 4일 간의 회의 동안, 진화론 연구를 전공하는 150명의 과학자들이 모여 어떻게 진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하였다. 1980년 11월 4일 뉴욕 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고생물학20), 집단 유전학21), 분류학 (유기체의 과학)22) 그리고 관련 분야의 거의 모든 주요한 진화론자들이 참석했다. 물론 논쟁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은 없었으며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시카고 모임에서 논란이 된 것은 거시적 진화였는데, 이 용어는 그 자체가 논란거리이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종을 분류하는 것이나 대분류방법 등과 중요한 차이들의 진화를 일컫는 용어이다.





거시적 진화는, 예를 들면, 무엇이 갑각류와 연체류를 다르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다윈은 이런 진화의 주요한 산물이 매우 오랜 시간의 점진적인 자연 선택의 결과였다고 제안했고, 그 기전은 오늘날 사소한 적응들을 설명하는 데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작은 변이는 미시적 진화의 산물이라고 여겨진다.















점진성 대 급격한 도약










나일즈 엘드리지(Niles Eldridg)는 스티븐과 같이 뉴욕 자연사 박물관23)의 고생물학자이다. 하버드 대학의 고생물학자인 굴드(Gould)는, 새로운 종의 발생은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진화의 폭발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가설을 되풀이 한다. 그들이 보듯이, 종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걸쳐서 광범위하게 안정적으로 있다가 그런 다음 갑자기 극적으로 변화했다. 따라서 그들이 제안하듯이, 변천이 아주 빨리 일어나서 화석화되어 발견되는 중간체가 전무하다.





엘드리지와 굴드는 오늘날 그들의 이러한 견해로 유명하며 "정지된 평형(punctuated equilibriu)"이라고 불리는 사상의 학파를 대변한다. 다른 이들은 좀 더 전통적인 방식을 지지하며 그들 스스로를 점진주의자로 여기며 예전의 다윈의 틀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점진주의자의 학파의 지지자들 중에는 시카고 대학의 교수인 토마스 (Thomas J. M. Schopf)가 있다. 그의 주장은, 종들은 그들이 겉으로 보이듯이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주지하듯이, 화석은 유기체의 오직 단단한 부위만을 보여준다.





이것이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일반적인 이론의 지지자들 사이의 논쟁점이다. 이것은 과학적 논쟁이다. 반동적인 사회생물학자들과 근본주의적인 성직자들은, 오로지 혼란과 파괴의 목적으로 간섭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명의 저명한 과학자도 성직자적인 몽매함을 지지하여 과학적인 진화론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난처해 했다.





하버드 대학의 피터 윌리암스(Peter Williams)가 북쪽 케냐의 투르카나 호수24) 근처에서 두꺼운 화석층을 발견했다는 발표를, 굴드-엘드리지 학파가 의미 있는 것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어느 학파라 할지라도,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역사적 유물론자의 접근에 조금도 악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오히려 이를 심화시킬 것이다. 그것은 결코, 점진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도약적인 발전, 연속성의 중단, 반대로의 변화, 양질변화를 포함하는 변증법적 발전의 일반적인 법칙과 상충되지 않을 것이다 25).





굴드-엘드리지 이론도, 만약 경험적인 자료에 의해 증명된다면, 급격한 도약적인 발전과, 연속성의 중단이라는 진화의 원리에 포함될 것이다. 창조론자들의 공격과 레이건 정부에 의해 해방된 반동의 현재 시류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과학계와 특히 생물학자들에게 중요하고 근본적인 위험은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 군 산업 복합체, 거대한 다국적 기업의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지배력 속에 훨씬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쉬지않고 매일 매일 성장한다.





이것은 생명공학의 사례에서 가장 극적인 예로써, 1980년 6월 대법원은 과학자들이 유전자 조작 생명체에 대한 특허신청을 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지금까지 대학의 실험실에서 분자 생물학자들의 영역이었던 유전자 접합이, 특히 듀퐁, 다우, 기타 다른 제약 회사나 화학 회사와 같은 거대한 다국적 기업의 손아귀에 단단히 잡혀서 갑자기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되었다. 자본주의 정부와의 이러한 연관과 융합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따라서 생물과학에서의 격변은, 생명공학의 발전에서 미 대법원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되었다.





1981년 출판된 책은 그 표지에서 "생명공학은 의학, 농학, 에너지 생산, 화학 및 제약 산업의 가장 근본을 뒤흔들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 유전자를 이식한 박테리아가 엄청난 양의 인간 체내 화학물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다.” 인공 미생물은 무기물을 찾아내고, 현재 비용의 절반 가격의 화학물질을 생산하고, 식물들을 에너지로 변화시키고, 그리고 산업 오염물을 다음 단계의 공급 원료로 변화시킨다. 미래의 유전자 변형 작물들은 모두 사람의 도움 없이도 질병과 해충에 상하지 않고 그들의 비료를 스스로 만들며 사막과 소금 늪에서도 번성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를 파악함으로써, 과학자들은 이제 아주 정확하게 어떤 사람이 어떤 질병에 걸리기 쉬운지를 예측 할 수 있다...유전적인 결함을 가진 인간을 치료하려는 첫 번째 시도가 작년에 있었다. 인간 유전학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26).“





우리가 이 이상적인 모습에 추가해야 할 것은 바로, 인류의 유전 프로그래밍이 육식성의 약탈적인 독점 자본주의의 "인도주의적 이익"에 공헌하는 자유로운 기업 체계식으로 실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메사추세츠의 공학 연구소의 미생물학자27)인 데이비드 볼티모어(David Baltimor) 교수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산업은 이미 노동자들의 유전자 프로필을 얻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상황에서 하나의 프로필을 넣고 다른 설정에서는 다른 프로필을 집어넣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우리가 이 도전에 직면 할 것인가?28)"





유전 공학에 대한 맥컬리프 (McAuliffe)의 이상적인 견해가 모든 과학계의 인사들에게 공유되지는 않는다.















과학자가 위험에 대해 경고하다.










예를들면, 리베 카발레리(Liebe F. Cavalieri)의 견해들은, 현저히 다르고 중요했지만, 그러나 단지 생태학적이고 도덕적 견해에 불과했다. 그는 슬론-케터링 암 연구소의 연구원 29)이고, 커넬 의과 대학의 생화학 교수다 30). 그는 "양날의 나선―현실세계의 과학31)"의 저자이다.





1982년 5월 14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기사에서 "핵 과학과 유전공학 사이에는 엄청난 유사점이 있다."라고 카발레리는 말했다 32).





그는 "핵 물리학자와 같이 분자 생물학자들은 다른 자연의 비밀을 해독하는 그들의 성공으로 황홀한 상태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전 공학은 단순히 다른 과학적 성취와 다르다.핵물리학과 같이, 그것은 정신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그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다33).





"우리는, 지구가 유기체에 의해 생명이 없는 환경이 강력하게 조절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 육안으로는 안보이며 섬세하게 조정되는 기전과 같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적으로 각 부분의 영향을 해독하기 위해 시작했을 뿐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특정 미생물체가 유기적 쓰레기를 쓸 만한 영양분으로 바꾸는 것을 알고 있고, 이런 재활용 과정이 대기의 조성, 인류의 삶과 우리를 유지시키는 생태계에 우호적인 다른 조건들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에 의해 조작되어 진화가 가속화된 살아있는 미생물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를 예측할 수 없는데, 이러한 영향들은 대량의 화석 연료를 사용함으로 인해 이산화탄소가 생산되는 것, 지구 이곳저곳에 새로운 화학 오염물이 확산되는 것, 대규모의 삼림 훼손, 그리고 아주 소수의 재배종에 의해서 생물학적 다양성의 이동 등과 같이 인간 활동에 의한 가속적인 환경 변화와 결부되어 있다.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150개의 회사










그는 계속해서 상세하게 설명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배열된 DNA기술에 의해 미생물의 유전자 조작은 급속히 발전하여 오늘날 널리 상용화되고 있다. 작년 2년 동안에 산업상의 유용한 미생물의 조작을 주로 하는 150개 이상의 유전 공학 회사가 설립되었다. 그들의 실험실에서 더 고등한 형태의 생명체에서 취한 특성을 지닌 미생물은 불가피하게 자연의 생태계로 돌아갈 것이다. 또한 다른 조작된 생명체는 결국에는 의도적으로 환경으로 방출 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 종들에게 황폐한 환경을 만들지도 모르는 뜻하지 않은 진화적인 변화를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 있다. 인류는 현재의 생태 조건에 맞게 진화되어 왔다. 만약에 환경의 격렬한 변화가 있다면 몇몇 생명체는 분명히 적응 할 것이나, 인간은 엄격한 생물학적 요구사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기에 충분히 빨리 진화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유전자 풀(pool)은,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적 진화에 있어서 소중하고 대체할 수 없는 유산이다. 그것은 가장 믿을 수 있는 분별력으로 한번 일어나는 것이며, 우리가 우리자신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고 그것을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천진난만한 생각이 될 것이다." "지금이 역사의 중요한 국면이다" 그는 계속 말한다. "우리는 핵무기의 위협에 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위기가 우리에게 다다르기 전에 지금 행동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유전 공학의 단기적인 기대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 환경오염이나 환경에 해를 가하는 다른 것들과는 달리, 일단 새로운 유전자의 형태가 확립되면, 그들은 ‘퇴치’될 수 없다. 초기 진화 시대로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40년 전에 물리학자들은 원자핵에서 에너지가 발생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동시에 생물학자들은 세포핵의 물질들인 DNA가 생명체의 유전 물질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두개의 과학적 위업은 하나는 물질의 핵심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체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20세기의 가장 중대한 발견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첫 번째 발견을 잘못 적용했다. 이제 두 번째 발견이 잘못 이용되려하고 있다. 우리는 생물권이 실험 대상이 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현재 오직 하나의 지구 생물권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의 일부분이다. 거기에는 실수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카발레리는,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도덕적 기본원리에 호소하고, 그 자신을 근거로 하여 전체적인 생태계의 위험을 책임지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발달의 전체 흐름은, 지배계급의 초과 이윤을 위한 우리시대의 질주와도 같이, 물질적 이익을 위해 통제 할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힌 계급에게 도덕적 호소를 하는 것은, 폭풍을 상대로 거품을 부는 것과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이 매우 매우 중요한 질문을 다루는 데 고려해야 할 점이다. 이러한 역사적으로 특별한 순간에 노동자 계급과 진보운동진영의 상대적인 침묵으로 인하여, 생태계를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를 착취하는 데에 관심이 있는 대형금융거래업계와 산업계의 거물과 세력가에게 대한 탄원이나 경고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들로부터 억지로 얻어낼 수 있는 그러한 양보들은, 전반적으로 노동자들과 진보 진영의 광범위한 대중들에 기반을 둔 여론을 결집시킨 결과이다. 그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을 가장 잘 인식할 수 있으나, 그 다음에 그들은 물질적 이해의 대립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카발레리는 "우리"라는 관점에서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못 관리해 왔다", "우리는 안다", "우리는 인지한다", 혹은 "우리는 요구되어지는 무한한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가 과학자로서 말할 때, 그는 전 세계의 과학자가 아닌 단지 미국 과학자에 대해서만 말한다고 하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는, 특히 중국이나 쏘련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과학자들은 조금도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순전히 국가적 관점에서 그는 말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과학적인 지식인들은, 군산복합체 34) 및 다국적 기업에 아주 공고히 속박되어 있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토론장에서 요구되는 ‘물질적 이해로부터 초연’했던 과학적인 지식인들을 모아 놓고 토론회를 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듀퐁사는, 자사만이 유일하게 실험실에 천명이 넘는 박사들이 있음을 자랑한다.















대기업과 군에 속박된 과학계










미국 대법원이 유전공학에 특허를 허용함으로써 기업과 산업계를 위해 한 일은, 개별적인 과학자에게 이윤을 제공하여 과학자 개인, 그가 속한 실험실, 그리고 대학을 대기업과 자본주의 국가에 공고히 속박시키는 것이었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출원한 수백 개의 특허가 있다. 대기업들은 이 모든 특허권을 삼켜버리는 투자금과 다른 자금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과학계를 소위 이익 분배 계획 안에 묶어 두고 있다. 이것은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기업에서 나누어 받는 약간의 가공적인 몫에 현혹되어, 회사로부터 독립을 포기하고, 노동조합을 져버리도록 요구받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과학자들에게 특허권을 허용하는 사고는, 공정한 과학적 연구에 필수불가결한 자유로운 연구에 장애물을 만들어 왔다. 예를 들면, 어떤 한 변호사는 과학자집단에게 어떠한 회의라도 참석하기 전에 그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공증인에게 자신들의 논문을 승인 받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것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여 논의해야만 하는 과학자들 사이에 비밀주의를 한층 심화시키는 것이다.















흥분한 월가










월가는 대법원의 결정과 DNA 산업에 미칠 그것의 영향을 알리는 뉴스를 듣고 몹시 기뻐했다. "당신은 흥분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넬슨 슈나이더(Nelson Schneide)와 보안 회사의 투자 분석가 허튼(E.F. Hutto)은 외쳤다. "오늘날 우리는 전기, 원자 분할, 혹은 수레바퀴의 발견이나 불의 발견 만큼 중요할 수 있는 기술적 혁신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35).





생명공학회사들은 특허권을 획득하기 위해 맹렬하게 덤벼든다. 이 생명공학회사에는 크게 세 개―샌프란시코에 있는 진테크36),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있는 세투스37), 제네바에 있는 바이오젠38)―의 큰 회사들이 있다. 당분간 자본주의 국가의 위기로 인하여 그러한 경쟁은 잠잠해졌다. 하지만 다국적 제약, 생명의학, 생명농업 회사와의 협력과 자본주의 국가와의 융합,  특히 군산복합체와의 융합으로 인한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카발레리와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의 훌륭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생명과학에서 발전된 무기를 포함하여, 특히 우주 무기와도 같은 점점 더 고도의 기술과 무기들을 보유한 지배계급의 위험한 지배력으로 인하여, 독점 자본주의의 전체 체제에 맞선 투쟁이 어느 때보다도 더 절박하고 긴급하게 되었다.

























과학과 계급투쟁










인류의 생존은, 노동자 계급, 억압받는 인민, 그리고 과학계와 다른 산업계의 진보적인 인사들의 세력을 모으기 위한 의식의 발전에 달려있다. 자본주의의 위기와 그것이 인류에게 고통과 파괴를 준 참혹한 대가에 대한 보편적 원리는 일반 지식인들과 특히 과학계가 노동자들과 공동 투쟁을 위해 협력하는 추진력이 되어야 한다. 이 같은 동맹은 인류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유물론자의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정표에 따르면 그것이 위기에 대한 과학적인 해결책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두 번의 파괴적인 전쟁과 히로시마와 나가사끼로 이어지는, 그리고 MX 미사일의 제조, B-1 폭격기, 우주 무기를 만들기 위한 아주 정교한 기술로 이어지는 폭력적인 길이다.















요약 결론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기초과학으로서의 생물학은 급속히 응용과학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범주에 속하게 되었다.





유전자 조작의 가능성이 아직 원자력의 엄청난 위험과 같은 것으로 판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발레리가 말했듯이, 상황이 반대로 바뀌지 않는 한 그것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데이비드 볼티모어 (David Baltimor)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우리가 특정한 직업에 맞도록 사람들을 길러 내기 위해 우리의 사회를 조직하는 것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가 개를 키우는 것처럼, 우리는 사람을 키울 수 있다. 히틀러는 웅장하고 (원문 그대로) 매우 기초적인 규모에서 이러한 노선을 따라가는 첫 번째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적절하다고 느끼는 사회 조직의 유형 때문에 우리의 사회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러한 원칙을 고수하는 한, 현대 유전학의 등장은 두려운 존재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히틀러와는 다르다. 아주 칭찬할만하게도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산업에서 이미 노동자의 유전자 프로필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어떤 목적 때문인가?





우리는 히틀러와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적절하다고 느끼는 사회 조직의 유형 때문에 우리의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볼티모어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다면, 우리는 그가 “우리 사회”의 선하고 경이로운 본성을 이야기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이 이 사회에 대한 위안을 주는가? 우리가 적절하다고 느끼는 사회 조직의 유형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볼티모어 대 볼티모어










유전공학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대한 이런 평가는, 1982년 2월 28일 "삶: 특허 출원 39)"이란 제목의 노바 TV 프로그램에서 (907번) 동일한 인물인 볼티모어 교수가 밝힌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전 공학에서] 새로운 발전을 이용하는 유일한 방법은 표준 상업 분야를 통한 발전이었다. 이것은 몇몇 사람들, 즉 돈을 투자한 사람들, 벤처 자본가들, 기꺼이 자금을 제공한 기업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이런 회사들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개인 과학자들만이 이득을 본다는 의미이다. 오직 소수 사람들만이 이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부터 엄청난 이익을 얻는다는 것은 아주 불공평해 보인다. 자금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간에 상관없다. 다른 한편, 그 체계는 이미 그렇게 일어나도록 설정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는 적절하다고 느끼는 사회 조직의 종류 때문에 우리의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볼티모어 교수의 최근 발언과 전적으로 견해를 달리하는 것으로 들린다. 결국 사회 조직은 벤처 자본가들, 거대 기업, 소수의 부당 이득을 취하는 이들, 다국적 기업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들임이 밝혀졌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사회를 면밀히 분석한 대략적인 윤곽이다. 그가 말하듯이 "그 체계는 이미 그렇게 일어나도록 설정되어 있다."















과학자들을 위한 선택










그가 나중에 말하듯이, 따라서 과학자들은 두 가지 선택―즉 과학적 연구를 완전히 그만두거나, 당신의 연구가 잘못 오용될 수 있는 위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아니다, 세 번째 선택이 있다. 세 번째 선택은, 기업의 탐욕으로부터,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에, 그리고 그 자본주의 국가의 하부시설인 군산 복합체에 어느 때보다 공고하게 속박된  대학의 노예화로부터, 과학계의 완전하고 그리고 무조건적인 지적ㆍ정치적 독립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앞으로 갈 길은 매우 위험하다. 오직 지적이고 과학적인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조직화된 저항만이,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대중을 포함하는 사회를 지킬 수 있다. 계몽주의 시대나 그 이전 교회가 절대적이었을 때, 국가나 성직자의 권위에 의한 통제에 맞선 과학자들의 그러한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갈릴레오의 교훈을 기억해서는 안 되는가? 그의 사후 900년 이상 지난 후, 저명한 가톨릭 과학자들과 또한 이미 사망한 사람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판정은 뒤집혀지지 않고 있다. 과학은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감에 의해 찢겨진 계급 사회에서는 중립일 수 없다. 계급사회에서 탄원으로 현실을 도피하거나, 또는 히틀러의 사례를 생각하며 이러한 독점 자본주의 체계를 옹호하는 노력은, 과학자들에 의한 공적인 책임의 회피이다.





오늘날, 1976년 6월에 국립 보건 연구원에서 제정한 유전공학에 대한 약한 지침들조차, 이런 지침들이 실제로 강제적이지도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 효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약탈적인 다국적 기업은, 특히 레이건주의자들에 의해 느슨해진 정부 규제에 반대하는 그들의 병적 광란의 상태에서, 정말 실질적으로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우리 앞에 놓인 엄청난 위험을 생각해 볼 때, 어느 누구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노사과연>















 번역: 나승연(회원)






1) (역자주) 노동자세상정당 주소 및 인터넷 사이트는 다음과 같다.





   Workers World, 55 W. 17 St., NY, NY 10011





   Email ww@workers.org





   Support independent news  http://www.workers.org/orders/donate.php






2) (역자주) 이 글의 영문제목은 Marx, Darwin, and the upheaval in the biological sciences이고, 출판일은  2009.2.9 이다






3) (본문주) 출처: "칼 맑스 : 인간, 사상가, 그리고 혁명가" 데이비드 리아자노프가 편찬한 논문에서.(From "Karl Marx: Man, Thinker, and Revolutionist,"a symposium edited by David Riazanov.)






4) (역자주) J. Hooker, A. Wallace, and Thomas Huxley






5) (역자주) Haeckel, Muller, and Weisman






6) Teleology






7) (역자주) Lamarck, Diderot, Holbach, Maupertuis, and Buffo






8) (본문주) 레닌저작집 (From Lenin's Collected Works, Vol. 1, page 142.)






9) (역자주) The struggle for existence






10) (역자주) The struggle for life






11) (역자주) The struggle for life






12) (본문주) 맑스 엥겔스 선집 (Marx & Engels Selected Correspondence, pages 239-40)






13) Old teleological theory






14) (역자주) Survival of the fittest






15) (역자주) The struggle for existence






16) (역자주) Survival of the fittest






17) (역자주) Margaret Meadthe makingand unmaking of an anthropological myth






18) (역자주) Encyclopedia Britannic






19) (역자주) Chicago's 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






20) (역자주) paleontology






21) (역자주) Population genetic






22) (역자주) Taxonomy (the science of organisms)






23) (역자주) Museum of Natural History in New York






24) (역자주) Lake Turkana in northern Kenya






25) (본문주) 레닌의 변증법, 레닌저작선집 38권 358페이지를 보라. (Lenin's "On Dialectics," Collected Works, Vol. 38, page 358)






26) (본문주) "팔리기위한 인생" 샤론 맥컬리프와 캐틀린 맥컬리프 ("Life for Sale," by Sharon McAuliffe and Kathleen McAuliff)






27) A microbiologist at the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28) (본문주) 미국 뉴스 세계 보고, 1983년 3월 28일U.S. (News and World Report, March 28, 1983)






29) Sloan-Kettering Institute for Cancer Research






30) Biochemistry at Cornell Medical College.






31) The Double-edged Helix: Science in the Real World






32) (본문주) 실질적으로 같은 내용이 1982년 8월 1일자 뉴욕타임즈에 편지로 실렸다.






33) (본문주) 자본주의 사회에서 (S.Min a capitalist society-S.M.)






34) Military-industrial complex






35) (본문주) "팔리기 위한 인생" 에서 인용 (Quoted in "Life for Sale")






36) Genentech in San Francisc






37) Cetus in Berkeley, Cali






38) Biogen in Genev






39) Life: Patent Pen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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