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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기획번역> 한스 아이슬러 선집 : 음악의 반란자(3)
글쓴이 한스 아이슬러 E-mail send mail 번호 126
날짜 2009-05-06 조회수 3042 추천수 147
파일  1241618349_아이슬러.hwp

  













베토벤의 서거 기념일에 드는 생각
















베토벤의 서거 기념일에 드는 생각





19521)




















베토벤의 음악의 위대함은 그 표현의 특유함에 있다. 가식없는 파토스(pathos), 떠벌리지 않는 영웅성, 감상적이지 않은 격정, 자기탐닉에 빠지지 않는 측은지심, 교활하지 않은 해악, 흥분하지 않는 열정이 그것이다.





그는 모든 기준을 깨뜨려 버렸다. 그 자신이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기에 바로 이것으로써 그를 평가해야 한다.





베토벤의 인민성2)에 관해 말할 때, 그가 이 단어의 기준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는 매우 유명한 교향곡뿐만 아니라 대단히 복잡한 실내악3)도 작곡했기 때문이다. 그의 마지막 현악 4중주4), 피아노 쏘나타5), 변주곡6)(<에로이카 변주곡>7)과 <디아벨리 변주곡>8)) 그리고 끝으로 <현악 사중주 대푸가 내림나장조>9)는 당시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작품의 이해는 참된 음악 문화를 가늠하는 지표이다.





베토벤이 자신의 스승인 하이든과 알브레히츠베르거10)가 과제로 준 대위법11) 연습곡은 쉽게 완성해내지 못했다. 젊은 사자는 스스로 재능이 없었다고 느꼈던 것일까? 아니다. 여기에서 젊은 사자에 관해 아무것도 발견해내기 힘들다. 베토벤이 모든 전통적인 기법을 익히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근면성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모범이 될 것이다.12)





 그의 소품집을 보면 환상곡과 구성이 섞여 있다. 환상곡이 구성을 고무하였고, 구성이 환상곡을 고무하였다. 자발성과 예술가의 지성이 적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거드름을 피우는 부류의 음악가가 아니었다. 그는 양심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계획하고 구조해내었다. 그 안의 음악가는 제재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대편성 곡을 쓸 때도 세세한 것 하나 하나 면밀하게 작업하였다. 그는 “알 프레스코”13) 음악가가 아니다.





토벤의 음악을 용감한 음악이라고 특징지울 수 있을 것이다. 투쟁의 용기를 불러주는 특성을 그의 전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평민과 인민의 호민관은 배신자를 경멸하였다.





<<피델리오>>14)의 기원에 관하여: 프랑스 작가15)가 그의 혁명적 오페라 <<레노르>>를 비엔나에서 연출하였다. 베토벤은 그를 축하하며 말했다. “당신의 오페라는 훌륭하오. 그걸 작곡하겠소.”





 제 9번 교향곡16)에 관해: 작품의 긴 악절은 비탄과 절망, 고독을 나타낸다. 스케르쪼17) 필사적인 유쾌라는 점에서 철저하게 기발하며, 뒤이어 거대한 영웅적 피날레가 이어진다. 이건 싸구려 영웅주의가 아니다. 내용과 형식에 있어 이 교향곡은 전무한 것이었기에, 19세기 중반에도 여전히 작곡가 슈포어18) 같은 편협한 인간들은 이해할 수 없고 도무지 연주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피아노 쏘나타 작품번호 27, “환상곡 풍의(quasi una fantasia),”는 공교롭게도 “월광 쏘나타”19)로 불렸다. 내게 있어 이 장식적인 제목은 무의미하며, 오해를 사게 하는 것이다. 이 쏘나타는 달빛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기민한 미국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라디오 광고에서 이 쏘나타를 합창과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하여 이용했다. 베토벤이 피아노의 셋잇단음표 선율로 민첩하게 암시했던 것이 기름기흐르는 현악기와 과장된 표현으로 연주되고 있다.20) 이를 배경으로하여 싸구려 감상이 담긴 달의 합창이 나온다.





이것은 순전한 야만이며 특히 내 친구들이 베토벤의 교향곡은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아코디온 오케스트라로 연주되었다고 언급했기에 여기서 이를 언급해야만 하겠다.










출처: 타이프 원고, 한스 아이슬러 자료실.





이 글은 1952년 3월 23일 베를린의 주간 Sonntag(존탘, 일요일)에 베토벤의 서거일(Zu Beethoven's Todestag. 역자: 베토벤은 3월 26일에 죽었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EGW Ⅲ/2 (준비중에). <노사과연>















한스 아이슬러





번역: 최상철(운영위원)











1) 1952년은 베토벤의(1770-1827) 서거 1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이슬러는 1950년에 동독에 입국하였고, 1952년에는 영화 <<여인의 운명(Frauenschicksale)>> 중 <행복의 노래(Das Lied Vom Glück)>(브레히트의 가사), 소관현악 <전조(Das Vorbild)>와 같은 작품을 작곡하였다.






2) 원주: Volkstümlichkeit. (문자 그대로: 대중성, 역자: 한 편으로 이 단어는 ‘민족성’, ‘국민적임’과 같은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이는 예술의 특정한 성격 다시 말해 인민들이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아이슬러는 이를 과도한 표현으로 여겼다.,






3) chamber music. 각 파트를 단독연주자가 연주하는 기악 합주로써 교향악에 대비하여 사용한다. 연주 인원에 따라 이중주, 삼중주 ... 와 같은 방식으로 분류한다. 오늘날 주로 연주하는 실내악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후기 현악 4중주(1780년 이후에 쓰인) 이후의 것들이다. 4악장으로 된 쏘나타 형식(제시부-전개부-재현부로 구성되는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당대의 모든 실내악이 이 형식을 고수했다. 그런데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제14번 올림 다단조 작품번호 131은 극히 자유로운 형식을 지닌다. 이 곡은 대략 40분의 연주시간을 요하는 7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악장은 길고 느린 푸가, 론도, 레치타티보, 쏘나타 형식을 자유로이 활용하고 있다. 베토벤의 실내악 중 작품번호 100번 이전의 것들은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 그 고전적 형식을 공유하나 1824년에서 26년에 작곡한 후기 4중주는 고전파와 낭만파와 가교를 있는 고유한 유형을 창출해 내었다. 이상 Michael Kennedy, Concise Oxford Dictionary of music, Oxford Univercity Press 1980, p. 124. Willi Apel, Harvard Dictionary of Music, Second Edition, Revised and Enlarged, London, 1970. p. 143 및 위키페디아 백과사전을 참고하여 요약.






4) 베토벤 현악 4중주 제 16번 사장조 작품번호 135. 1826년 그가 죽기 한 해 전에 작곡한 곡으로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의 다른 후기 작품에 비한다면 비교적 작은 스케일의 곡이다. 






5) 피아노 쏘나타 제32번 다단주 작품번호 111. “이 베토벤의 마지막 쏘나타의 놀라움은, 가장 깊은 내용이 이만큼 조각적으로 완벽한 형식 속에 갇혀 있다는 점과, 그 형식이 거의 모든 곳에서 직접 귀로 잡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연주자 쪽에 궁극적인 헌신과 몰두와 곤란을 극복하는 구성력이 요구된다. 정녕 이러한 작품은 상상력을 통해 본 이상적인 연주 해석으로 한걸음 가까이 가는 것이 연주가에 있어서의 문제이다. 그것은 아마 지평선이 열려서, 그 결과 심원한 여러 관련을 인식하고, 점차로 투명해져 가는 전체 상 속에서 개개의 부분들을 직접 감지하여 바르게 배열할 능력을 몸에 익히기 위한 것에 있을 것이다.” 베토벤은 1822년에 마지막 피아노 쏘나타를 완성했다. 두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1악장은 쏘나타형식 속에 대위법적인 수법을 담고, 제 2악장에는 변주곡을 넣어 완숙된 후기 양식을 보여준다. 이상의 두 악장은 서로 날카롭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3악장이 없는 것에 대한 질문에 대해 베토벤은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라고만 대답했다고 하나 진위는 알 수 없다. 권기택, 김성남 공저, ��베에토벤 피아노 쏘나타 전집��, 서라벌레코드사, 1982. p. 106.





   베토벤이 1815년 이후 죽기 전까지 작곡한 피아노 쏘나타를 3기 쏘나타로 분류한다. 이들 작품들은 모두 개성적이며 독창적인 거장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흔히 3대 피아노 쏘나타로 불리는 작품에 비해 자주 연주되지 않으나 내면 깊은 곳의 감정과 환희를 표현하는 작품이다.






6) 쉽게 말하자면 작곡가가 마음에 드는 멜로디를 근거로 하여 갖가지 형태로 변형 전개하면서 기교, 음색, 분위기를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음악이다. 베토벤의 것 이외에도 모차르트의 <반짝 반짝 작은 별 변주곡>,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브람스의 <하이든 주제를 따른 변주곡> 등 주로 피아노용으로 작곡한 곡이 많다. 안동림, ��이 한 장의 명반��, 현암사, 2001, p. 256.






7) 정확한 작품명은 피아노를 위한 변주곡과 푸가 내림마장조 작품번호 35. 2년 뒤인 1804년에 완성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 3번 에로이카의 최종 주제와 같은 주제로 변주를 하고 있기에 흔히 영웅 변주곡이라고 부른다. 베토벤이 에로이카 교향곡을 나폴레옹에게 바치려고 표지에 “보나파르트 교향곡”이라 적었다가 스스로 황제에 오른 나폴레옹에 분개하며 표지를 찢어버렸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8) 안톤 디아벨리(Anton Diabelli. 1781-1858)가 작곡한 왈츠를 테마로 1823년에 작곡한 피아노 변주곡. 비교대상을 불허하는 독창성으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함께 변주곡의 최정점에 선 작품으로 꼽힌다. 






9) 작품번호 130. 앞서 언급한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 중 세 번째 작품. 1826년 초연. 총 7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전에는 제 6악장 ‘대 푸가’만을 따로 연주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최근에는 베토벤의 작곡 의도대로 죽기 전 해에 다시 작곡했던 마지막 악장을 제 7악장으로 삼아 전곡 연주 또는 녹음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안동림, ��이 한 장의 명반��, 현암사, 2001, pp. 318-322. 아마도 여기에서 아이슬러는 따로 떼어 연주하던 제 6악장만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 Johann Georg Albrechtsberger. 1736-1809.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11) 독립성이 강한 둘 이상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작곡기법. '음표 대 음표'를 뜻하는 라틴어 푼크투스 콘트라 푼크툼(punctus contra punctum)에서 유래하는 말로, 음악은 단선율의 경우를 제외하면, 음의 수직적 결합(화음·화성)과 수평적 결합(melody)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겸비하고 있는데, 어느 것이 우위에 있는가에 따라서 동성음악(homophony:호모포니)과 다성음악(polyphony:폴리포니)으로 대별된다. 그리고 전자의 기법이 화성법, 후자의 기법이 대위법이다. 두산 백과사전.





   대위법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예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혹은 동요를 부를 때 많이 했던 돌림노래를 들 수 있다.






12) 베토벤은 1792년 하이든을 사사하러 비엔나로 갔지만, 그의 작곡에 하이든이 주의를 기울이거나 교정을 해주지 않았기에 실망했다고 한다. 하이든은 대신에 자신의 친구 알브레히츠베르거를 베토벤에게 화성법과 대외법을 가르쳐줄 교사로 추천했다. 공부를 마치고 이렇게 공책에 적었다고 한다. “인내, 근면, 고집, 성실이 성공에 이르게 할 것이다” 위키페디아 백과사전.






13) al fresco. 이딸리아어로 ‘옥외에서’, ‘맑은 공기에서’ 정도의 의미를 지닌 단어다. 구어에서는 외식을 의미할 때 쓴다. 맥락상 가벼운 여흥음악을 만드는 음악가를 비난하기 위해 쓴 것으로 보인다.






14) 베토벤이 남긴 유일한 오페라이며 1805년 착수한지 10년 만에 3막극으로 완성되었다. 1806년 2막극으로 개작되었고, 1814년에 전면적인 수정이 가해졌다. 베토벤은 하룻밤 구경거리로 끝나는 이딸리아풍의 오페라 부파(Opera buffa)를 아주 싫어했다. 당대 이딸리아 작곡가들의 작품은 물론, 모차르트의 걸작 <<피가로의 결혼>>과 <<돈 지오반니>>에도 노골적인 혐오감을 드러내 보이며 비난했다. 정의, 용기, 숭고함, 엄숙함, 애정, 영웅성이 오페라에도 두루 포함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본은 프랑스의 쟝 니꼴라이 부이(Jean Nicolas Bouilly)의 Lénore, ou l'amour conjugal(레노르 또는 부부애)를 궁정 극장 비서였던 폰 존라이트너(Josef von Sonnleithner)가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다. 베토벤은 대본을 읽고 무고죄로 투옥되어 있는 남편을, 남장한 배우자가 구출한다는 이야기에서 정의와 부부애를 보고 감동하였다. 안동림, ��이 한 장의 명반��, 현암사, 2001, pp. 1236-1237.






15) 원주: 베토벤의 피델리오에 착상을 준 부이(J. N. Bouilly)의 Lénore, ou l'amour conjugal(레노르 또는 부부애)는 1798년 빠리에서 삐에르 가보(Pierre Gaveaux)에 의해 작곡되었다. (역자: 삐에르 가보의 작품은 연극을 위한 것이다.






16) CD라는 음악 저장매체는 베토벤의 제 9번 교향곡을 온전히 한 디스크에 담아내기 위해 고안되었다. LP시대에는 보통 2장의 레코드에 나뉘어 녹음되었다.






17) 원주: 베토벤의 제 9번 교향곡에서 2번 째 악장이 스케르쪼—스케르쪼라고 명기되어 있지는 않다—에 해당하는데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역자: 스케르쪼(Scherzo)는 이딸리아어로 유희, 익살이라는 뜻. 관현악의 악장을 이름짓기 위한 용어이나 17세기 성악곡에 처음 쓰인 용어이다. 베토벤은 스케르쪼를 창의적으로 활용했다. 보통 4분의 3박자의 두드러지는 리듬을 사용하여 악장에 거칠고 자연적인 유머를 더하였다. Michael Kennedy, Concise Oxford Dictionary of music, Oxford Univercity Press 1980, pp. 566-567.





   당대의 관례상 교향곡에서 2번째 악장은 서정악장이었다. 그런데 제 9번 교향곡에서는 속도가 빠른 스케르쪼 형식을 도입하는 파격을 감행했다. 질주하는 열광의 곡, 세상과 격리된 혼의 광란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서라벌 레코드 인터코드 클래식 전집 중, ��베토벤의 예술과 생애��, p. 26






18) 원주: Louis Spohr 1784-1859. 그의 시대에 유명한 작곡가이며 바이올린 연주가이며 지휘자. 그의 전기(1860년 출판됨)에서, 베토벤을 접한 후 그의 음악에서 받은 감상을 회상하고 있다. 그는 제 7번 교향곡 이하의 작품에서 “베토벤 창의력의 파탄”이 보인다고 믿었다. 그는 귀를 닫아두고 있었기에, 창작(originality)은 방향성을 상실하여 갈 수 밖에 없었다. 그 귀결은 이렇다. “더욱 더 괴상하고(baroque), 더 혼란스러우며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 그런 작품 존경받는 제 9번 교향곡도 문제 삼아야만 하겠다. 첫 세 악장은 각각의 천재적 번뜩임에도 불구하고 이전 8곡의 교향곡보다 나쁘게 보인다. 제 4악장은 더욱 끔찍하다. 그토록 심미안이 없어 쉴러의 송시(역자: 제 4악장을 장식하는 합창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는 쉴러의 시에서 가사를 빌어온 것이다.)를 차용하는 하찮은 착상에, 어떻게 베토벤 같은 천재가 이따위를 작곡하였는지가 여전히 의문거리다.”





   역자: 슈포어는 베토벤의 후기 작품 같은 진보적인 작품을 싫어했지만 바그너에는 찬사를 보내며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ander)>>과 <<탄호이저(Tannhäuser)>>를 지휘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9) 원주: 베토벤 피나오 쏘나타 올림다단조 작품번호 27 No. 2에 붙인 이름 “월광 쏘나타”는 베를린의 음악 비평가이자 작가인 루드비히 렐스탚(Ludwig Rellstab. 1799-1860)이 지은 것이다. 그는 제 1악장의 어두운 단조로 흐르는 셋잇단음표 선율이 밤에 비친 스위스 류체른(Lucerne) 호수의 달빛을 연상케 한다고 하였다.






20) 아이슬러가 당시 들었던 광고음악을 찾기는 힘들겠지만, 루이스 클락(Louis Clark)이 편곡한<<Hooked on Classics>>같은 작품들을 연상하게 한다. 단 루이스 클락의 것은 1981년도에 나온 것이고 아이슬러의 글은 1952년도의 것이니 대충 분위기만 파악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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