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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사회주의에 관한 테제 ―제18회 대회에서의 그리스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테제―
글쓴이 그리스공산당 중앙위원회 E-mail send mail 번호 125
날짜 2009-05-06 조회수 3307 추천수 130
파일  1241618022_테제.hwp

  













힘있는 그리스공산당
















[역자주 : 이하에서 소개하는 글은 그리스공산당중앙위원회가 제18당대회(2009년2월18일˜22일, 아테네)를 맞이하여 당내논의를 벌이기 위해서 발표하였던 “사회주의에 관한 테제”(영문으로의 발표는 2008년12월29일)의 전문이다. 이 “테제”는 다음과 같은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A. 사회주의 체제의 공헌





B. 공산주의의 최초의 낮은 단계로서의 사회주의에 관한 이론적 입장





C. 쏘비에트연방에서의 사회주의―반혁명의 승리의 요인들





      쏘비에트연방에서의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의 경제의 평가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의 공산당의 역할에 관한 결론





      쏘비에트권력의 전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전개와 그 전략





      그리스공산당의 입장에 관한 평가





D. 사회주의의 필연성과 적합성, 우리당 강령에서의 사회주의 개념의        강화





      사회주의의 필연성과 적합성





      우리당 강령에서의 사회주의 개념의 강화





결론










 “사회주의에 관한 테제”의 영문은 http://inter.kke.gr/에 올라와 있다. 많이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이번호에서는 A와 B항을 번역해서 소개하고 다음호에서는 나머지 전부를 번역해서 게재할 것이다. 그리고 이 “테제”를 소개하고는 그 다음 맑스의 “자유의 왕국”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잘 소개해주고 있다고 하는 마끼노 히로요시(牧野廣義) “맑스에게서의 자유, 평등, 협동”이라는 글을 번역해서 소개할 것이다.





오늘 금융-경제공황을 통해서 보면 자본주의는 그것이 어떠한 형용사를 달고 있다고 해도 노동자의 세상이 아님을, 민중의 세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본가계급은 이러한  금융-경제공황의 책임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면서 노동자들의 생존권마저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노동자들을 비롯한 민중들이 싸워서 성취해낸 사회보장제도조차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들어갈 돈을 갈취하여 자본가계급과 그 정권은 자신의 생존 보존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비롯한 민중은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기가 너무나 힘들다. 그들의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노동자들이 세워야 하고,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은 어떤 사회인가?





이러한 질문과 함께 오늘날 사회주의라는 개념이 많은 노동자들의 화두가 되고 있다. 사회주의는 어떤 사회인가?  이미 반혁명에 의해서 무너져버린 현실사회주의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그러한 현실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사 및 인류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글은 이런 질문들과 함께 사고하는 노동자들과 청년학생들에게 조그마한 사고재료가 될 것이다.]




















A. 사회주의체제의 공헌










1. 19세기 중반에 걸쳐서,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의 전개는 필연적으로 공산주의에 역사적인스포트라이트를 터뜨렸다. 최초의 과학적 공산주의 강령은 160년 전인 1848년에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작성했던 ��공산당선언��이었다. 최초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은 1871년의 파리 코뮨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 1917년 러시아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이 성공하였다. 그것은 인류사에서의 문명의 최대 성과 중 하나이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폐지하는 데로 향하는 출발점이었다. 계속해서 제2차세계대전 후, 사회주의 건설로 향하는 국가권력의 탈취가 유럽, 아시아의 일련의 나라들에서, 또  아메리카 대륙 쿠바에서 이루어졌다.





사회주의 나라들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20세기의 사회주의체제는 자본주의에 대해 자기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면서 인민의 생활과 노동조건에 거대한 진보를 가져다주었다.





쏘비에트연방과 사회주의 세계체제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유일한 그리고 진정한 대항세력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중, 인민이 파시스트에 승리함에 있어 쏘비에트연방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쏘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은 쏘비에트연방을 침략하였던 독일과 동맹국의 무력기구를 분쇄하였다. 쏘비에트연방은 유렵의 일련의 나라들을 독일의 점령군으로부터 해방시켰다. 2천만 명 이상의 쏘비에트시민이 사회주의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고 1천만 명이 부상을 당해 신체장애로 인해 고통 받았다. 쏘비에트연방에서의 물질적 황폐의 확대는 심각한 것이었다. 





붉은 군대의 승리는 민족해방운동과 반파시스트운동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들 운동의 선두에는 공산주의당들이 서 있었다. 중부유럽과 동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반파시스트투쟁이 붉은 군대의 결정적인 지원을 받아 부르주아지배의 전복을 이끌었다.





사회주의 체제는 착취와 외국의 점령 및 제국주의의 개입에 저항하여 싸웠던 인민들에게 국제연대의 역사적인 모범을 보였다. 사회주의 체제는 식민지체제를 해체함과 군사적인 대립 및 충돌을 억지함에 있어 결정적으로 공헌하였다.





사회주의 나라들에서의 노동자의 성과는 몇 십 년이 흘렀어도 평가의 기준이 되었고,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계급과 인민의 운동이 성과를 획득하는 데에 공헌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후에 형성되었던 국제적인 힘 관계로 인해 자본주의 나라들은 투쟁의 혁명적 방침을 억압하고 노동자계급의 운동을 흡수ㆍ동화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일정 정도의 양보를 하고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적인 착취관계의 폐지는 인류를 임노동의 “멍에”로부터 해방하고 인민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일을 목적으로 하였던 생산과 과학의 발전으로의 길을 열었다. 이렇게 하여 만인이 보장된 노동과 무상의 공적 의료와 교육, 국가로부터의 값싼 공익서비스의 제공, 주택, 지적이고 문화적인 것들을 획득하여 왔다.





1913년에는 러시아 제국의 농민, 노동자, 피고용자들은 국민 소득의 53%를 취득하고 있었으나 착취계급은 그것의 47%, 거의 절반을 얻고 있었다. 10월 사회주의대혁명 이후에는 노동에서 유래하지 않는 소득의 비율은 대폭 감소하였으나, 1927년부터 1928년까지 착취계급은 여전히 국민소득의 8.1%를 갈취하고 있었다. 1930년대 중반에는 전국가 수입이 완전히 노동자의 것으로 되었다.1)





문맹이라는 엄청난 유물을 완전히 청산하고 교육수준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키고 전문화하였으며 실업을 없앴던 일은 사회주의의 독자적인 성과이다. 쏘비에트연방에서는 1970년의 나라정세조사에 따르면 도시의 노동자인구 4분의 3이상과 지방노동자 50%가 중등 내지는 고등교육을 수료하여 왔다.2)





쏘비에트 연방은 나치의 공격을 받기 전의 24년 동안에 공업 및 경제의 발전에서 중요한 전진을 실현했으며 자본주의가 남겨주었던 후진성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사회주의 건설에서 불가피한 요소로서의 문화혁명은 근로인민에게 인간 문화의 성과를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다.





쏘비에트연방에서는 1975년에 노동시간은 주 41시간을 넘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는 것이 법률로 보장되었다.3)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노동시간 중 하나이다. 모든 노동자가 휴양을 위한 날을 보장받고 연차유급휴가를 보장받았다.





자유시간이 확대되고 그 내용이 변했다. 자유시간은 급기야 자본가의 착취에 적합하도록 노동력상품을 재생산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게 되었다. 노동자는 자유시간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문화ㆍ교육수준을 향상시켰으며 노동자의 권력이나 생산의 관리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근로인민에게의 사회보장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최대의 우선사항이었다. 중요한 성과로서는 퇴직연령을 낮게 제한하였던(여성은 55세, 남성은 60세) 포괄적인 퇴직연금제도가 창설되었다. 나라의 퇴직기금을 위한 자금이 국가예산의 재정지출과 기업체・재단으로부터의 보험기부금에 의해서 보장되었다. 같은 제도가 유럽의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에도 실시되었다.





사회주의 정권은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폐지하고 객관적으로 존재해왔던 커다란 곤란을 극복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하였다. 사회주의는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의 남녀 간의 동등권을 제도화하였다. 물론 오랜 기간에 걸쳐 존재했던 남녀 간의 불평등한 관계 모두를 단번에 제거할 수는 없었다.





소수의 착취자가 아니라 사회적인 다수파인 피착취인민의 이해를 대표하는 국가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집권(dictatorship), 혁명적인 노동자의 권력은 그것 자체 민주주의의 보다 나은 형태임을 증명하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생산단위가 민주주의의 핵이 될 수 있었다. 근로인민의 대표가 권력과 행정부에 참가하고 더 고차적인 권력에 참가하는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하고 파면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노동자의 권력은 인민대중을 결집하고 많은 대중조직이 발전하였다. 노동조합이나 문화・교육기관에 인민의 다수가 조직되었다.





자유의 결여나 비민주적인 체제에 대해서 말하는 부르주아나 기회주의의 선전은 그들의 부르주아적인 의미내용에서의 “민주주의”및 “자유”라는 개념을 표명하고 있으며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란 부르주아 의회주의, 자유란 부르주아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적인 사적 소유를 말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근간은 사회전반, 특히 자본주의 기업 내부에서 경제상 강력해진 임금노예상태와 자본의 독재이다. 노동자와 인민의 지배와 참가에 관한 우리의 비판적 견해와 쏘비에트연방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부르주아적・기회주의적인 견해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10월 혁명은 거대한 다민족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라들 간의, 민족들 간의 평등화과정을 개시하고 모든 형태의 민족적 억압을 폐지함으로써 민족문제는 점차 해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공산주의적인 관계가 쇠약해지는 과정에서 침식당했고 1980년대의 반혁명의 진전에서 완전히 정지되었다.





사회주의 나라들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원칙에 의거하고 여러 가지 형태의 협력과 경제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였다. 1949년의 경제상호원조회의(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 CMEA)를 창설함으로써 사회주의의 건설도상에 있는 나라들 간의 평등, 호혜, 상호지원의 원칙에 기초하는 새로운, 선례가 없는 국제관계를 만들었다. 더 깊은 연구를 요하는 주제는 코메콘 가맹 나라들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고 더욱이 코메콘 가맹 나라와 자본주의 나라 사이의 경제관계, 특히 사회주의 건설이 후퇴하기 시작했던 시기의 그것에 대해서이다.





사회주의 나라들에서 확실히 획득되었던 성과는 그들 나라들의 출발점과 비교해 보아도, 또 자본주의 세계의 근로인민의 생활수준과 비교해 보아도 인류의 생활과 인간 개성의 발전에 관해서 극적이고 계속적인 전진을 가져올 수 있는 고유한 잠재력을 사회주의가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개개의 혁명적 노동자 국가에서의 사회주의의 발전 수준은 다 같은 정도는 아니고 권력을 탈취하였던 시점에서 존재했던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 것은 평가와 비교를 함에 있어 고려되어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출발점으로서의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에 의해서 시도되었고 성취되었던 역사적 대약진이다. 그것은 과학과 기술의 성과에서 또 인류의 생활수준, 교육과 문화의 향상 수준에서, 또 주요한 생산력으로서의 인류의 발전에 중요한 추진력을 주었다.





역사적으로 새로웠던 것은 착취와 사회적 불평등이 함께 어우러져서 대규모의 황폐를 수반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발전과는 대조적으로, 발전이 인민대중전체에게 고루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의 황폐는 아메리카대륙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에게, 지난 세기의 아메리카 합중국의 대규모 노예제도에, 식민지 착취에, 생산의 무정부성과 쭉 계속해서 발생하는 큰 경제위기에 의한 파괴에, 제국주의 전쟁에, 아동노동에, 그밖에 여러 가지에도 나타나고 있다. 쏘비에트연방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의 공헌과 우월성은 참혹한 파괴와 계속적인 방해 및 협박을 수반했던 제국주의자들의 전략 및 포위와 관련해서 판단해야 한다. 제국주의자들의 전략은 혁명적 노동자정권의 여러 시기에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면서 나타났다(1918년과 1941년에는 제국주의들의 직접 공격, 1946년에는 냉전의 선언, 중부유럽 및 동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관한 개개 차별화된 정치외교관계).





그러나 이런 사실에 의해서 이 새로운 사회관계의 우세, 발전, 우월성에 관한 주체적 요인의 결정적 역할과 아울러 국내 상황과 경제정치관계에 대해서 우리의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B. 공산주의의 최초의 낮은 단계로서의 사회주의에 관한 이론적 입장










2. 사회주의는 공산주의 사회 경제구조의 최초 단계이다. 그것은 독립된 사회경제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미숙한, 미발달한 공산주의이다.





공산주의적인 관계를 완전히 확립하기 위해서는 그 낮은 단계인 사회주의의 미성숙이라는 요소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미숙한 공산주의는 생산과 분배에서의 공산주의적 관계가 아직 전면적으로 우세하게 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사회적 필요를 광범위하게 만족시키기 위한 생산”이라는 공산주의 생산방식의 기본법칙은 유효하다.





집중화된 생산수단은 사회화되었으나, 최초에는 아직 상품-화폐관계가 존재하기 위한 기반을 이루는 그런 개인 및 소집단의 소유형태가 잔존해 있다.





개인적 소비를 위한 사회적 생산물의 대부분은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한다”라는 원칙에 따라, 필요가 아니라 노동에 의거해서 분배된다. 발달한 공산주의의 조건에서 지배하는 원칙은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사회적 생산물의 총계를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라는 것이다.





사회주의 아래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한다. 즉 여러 가지 사회계층이 존재하고 도시와 지방, 지적 노동자와 육체노동자, 전문적인 노동자와 전문적이지 않은 노동자라는 큰 차이, 혹은 모순조차 존재한다. 이들 불평등은 모두 서서히 계획적으로 완전히 극복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의 발달이 미숙하면 미숙할수록 노동자 전체의 교육 및 과학기술의 수준은 노동의 조직화, 생산과정의 여러 부문에 관한 이해, 관리 작업이라는 것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아직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조건에서는 관리적 지위에 있는 노동자는 개인적 이해 및 생산단위의 이해를 사회적 이해로부터 따로 떼어놓는 경향을 지니고, 한편 지적 노동에 종사하고 고도의 과학적 전문성을 지닌 노동자는 사회적 생산물 전체 중에서 큰 몫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경향을 지닌다. 노동에 관한 “공산주의적 태도”가 아직 전반적으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생산양식이 확대되고 발전하며 전면적으로 우세하게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은 새로운 조건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도 자본주의 아래에서 수행되었던 투쟁과는 다른 형태와 수단에 의해서 혁명 권력의 최초의, 자본주의적 관계가 폐기되어가고 있는 시기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모든 형태의 소집단과 개인의 소유를 폐지하고 역사적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는 소부르주아 의식을 폐기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꾸려가야 하는 투쟁이다.  그것은 노동의 사회적 성격에 대응하는 사회적 의식과 태도를 형성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런 까닭에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권력이자 프롤레타리아트의 집권(dictatorship)으서의 국가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자본주의 단계로부터 발달한 공산주의 단계로의 이행이라는 혁명적 시기에 생겨나는 대약진은 종래의 어떠한 것보다도 질적으로 우월하다. 착취를 본질로 하지 않는 공산주의적 관계는 자본주의 안에서는 미리 형성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생활의 모든 국면에 있는 낡은 제도의 “잔재”(찌꺼기)에 대항하는 새로운 제도의 “종자”의 투쟁이다. 모든 경제적 관계를 변혁하고 그리고 모든 사회관계를 변혁하여 공산주의적 관계이게 하기 위한 투쟁이 의미하는 바는 사회혁명이 권력의 탈취 내지는 초기의 경제기반의 형성에만 한정할 수 없고 사회주의 시대 전체에 걸쳐서 확장되어야 함이다.










3. 사회주의 건설은 연속되는 과정이고 노동자계급의 권력탈취로 개시된다. 새로운 생산양식이 최초로 형성되고 그것은 자본주의적 관계, 즉 임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완전히 폐지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우세하게 된다. 그 결과 공산주의적 관계와 새로운 인간이 더욱 더 발전하고 그 뒤집을 수 없는 지배를 보장하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된다.





사회주의 건설은 진로의 역전과 자본주의로의 후퇴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그것은 낡은 자본주의적 관계의 잔재에 대항하여 새로운 공산주의적 관계의 전면적 발달을 둘러싼 싸움의 패배이다. 그와 같은 후퇴는 사회의 발전에서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모든 경우 그 역사상 일시적인 현상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곧바로 강고한 것으로 된 그런 사회구성체는 없었다는 것은 반박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로의 이행이라는 발전과정은 곧 바로 진행하는 상승과정은 아니다. 이런 것은 자본주의의 보급 역사 그 자체에서도 보여 진다.4)










4. 우리는 “과도기의 사회”라는 이름을 붙여 그것의 자율적인 성격과 그것의 장기적인 존재에 대해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새로운 사회경제구조의 기초의 건설)의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그런 견해에는 결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견해에서 출발하면, 중국과 베트남의 현재 체제는 과도적인 “복수부문사회(multi-sectoral societies)”로 이해된다. 거기에서는 몇 십 년에 걸쳐서 공산주의적 관계가 착취적인 생산관계와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맑스주의 문헌에서 “과도기”로 알려진 시기의 특수한 성격을 무시할 의도는 없다. 그 기간에는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를 추구하고 내전의 가능성이 생기고 자본주의적 착취관계―그것은 아직 폐지되지 않고 있다―에 대항하는 막 발달하기 시작한 공산주의적 관계의 격렬한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 기간이 얼마 동안 지속되는가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부터 이어받은 후진성에 의해서 좌우된다. 역사적 경험은 이 기간이 장기간에 걸쳐서 지속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쏘비에트연방에서는 이 기간은 1930년대 중반에 종료되었다. 자본주의적 관계와의 투쟁, 사회주의의 기반을 건설함에 있어 야기되는 곤란은 제정러시아의 구식민지에서의 봉건적인 가부장제의 잔재로 인해서 격렬하게 되었다. 당시 레닌은 강조하였다. 공업의 발달이 이루어진 나라들에서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조치는 제한되어 있든가 어떤 경우에는 전혀 필요 없게 된다고.





이른바 과도기는 사회주의 건설의 과정과 떼어질 수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 건설의 과정에서 바로 공산주의 사회의 최초 단계의 발전을 위한 기반이 확립된다.





 





5. 공산주의 생산양식의 형성은 집중된 생산수단의 사회화, 중앙에서의 계획, 경제의 여러 부문으로의 노동력의 배치, 사회적인 생산물의 계획적 분배와 함께 시작된다.





이 같은 새로운 경제관계에 의거하여 생산력이 인간과 생산수단을, 생산의 조직화와 경제 전체를 급속하게 발전시킨다. 사회주의적 축적이 실현된다. 새로운 단계의 사회적 번영도 성취된다. 이런 새로운 단계는 그때까지는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생산에 포함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해 있지 못했던 생산력 분야에서 새로운 관계의 점진적인 확대를 가능하게 한다. 





더욱이 국가(사회) 부문의 노동자들 사이에 사회적 생산물을 분배함에 있어 생기는 격차를 폐지하기 위한 물질적 전제조건이 형성된다. 





공산주의적 관계가 완전히 지배하고 새로운 사회경제구조가 고차적인 단계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과 사회적 생산물의 자본주의적 소유의 근절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모든 형태의 사적・소집단적 소유의 근절도 요구된다. 도시와 지방의 격차를 완전히 근절하는 것,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계급을 완전히 근절하는 것, 육체노동과 지적 노동의 차별을 근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불평등의 가장 중대한 근원 중 하나5)가 폐지되어야 하고 민족 분쟁의 완전한 근절도 요구된다.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단계에 조응한다고 하는 일반적인 사회법칙에 따라서 사회주의 건설에 의해서 최초로 달성되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생산력의 발전단계 각각이 혁명적인 방침에 의한 공산주의적 관계로의 완전한 변혁이라는 방향으로 생산관계와 모든 경제관계를 더욱 “혁명화”함을 요구한다. 실제로 보여 진 바로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이 늦어진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후퇴하게 되는 일이 생기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첨예화된다. 이것에 기초하여 앞서 기술했던  사회적인 모순과 격차가 사회적인 대립을 야기하고 계급투쟁의 첨예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사회주의에서는 1980년대의 쏘비에트연방에서 보여주듯이 일정한 조건에서 사회세력이 착취관계의 잠재적인 담당자로 행동하도록 허락하는 객관적 조건이 존재한다.










6. 공산주의적 생산양식의 최초 단계로서의 사회주의의 발전은 사회적 생산물이 화폐형태로 분배되는 일이 폐지되어가는 과정이다. 공산주의적 생산은 그 미성숙한 단계에서도 직접적인 사회적 생산이다. 즉 교환을 위해서 노동의 분업이 생기는 일은 없다. 그것은 시장에 의해서 초래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소비되는 노동의 생산물은 상품이 아니다.





사회화된 생산수단에서의 노동의 분업은 생산을 조직하고 그 비율을 결정하는 계획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생산의 목적은 사회적 필요를 만족시키고 물품(사용가치)을 분배하는 일이 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것은 중앙에서 계획되는 사회적 분업이고 전체적인 사회적 노동의 일부로서의 개인의 노동을, 시장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집약한다. 중앙의 계획은 전체적인 사회적 노동시간을 할당하여 여러 가지 사회적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한다.





계획이라는 개념은 기술­경제적인 도구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적인 생산관계로서, 그리고 노동자를 생산수단에, 사회주의의 기구에 결부시키는 배분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의식적으로 계획되는, 생산을 위한 동인과 목표의 선택이 포함된다. 그것의 목적은 상품교환이 아니라 사회적인 필요를 계획적으로 폭넓게 만족시키는 일이다(공산주의적 생산양식의 기본법칙).





중앙에서의 계획의 기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특히 국제적인 조건에서 “사회적 필요”를  결정해야 한다고 하는 복잡한 문제이다. 거기에서는 원래 사회적 필요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관해서 자본주의가 대단히 왜곡된 개념을 형성하고 있다.





사회적인 필요물은 특정한 역사적 시대에 성취하여 왔던 생산력의 발전단계에 기초하여 결정된다. 이 같은 필요물은 그것의 역사적인 문맥에서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의 기본법칙을 인식하는 방법은 사회적 필요물을 다룰 때에 존재하고 있는 불충분함과 불평등을 극복함을 긴급한 목표로 삼아 발전시켜져야 한다.










7. 공산주의적 관계의 최초 단계의 기본적 특징 중 하나는 생산된 물품의 일부를 “노동에 따라”분배하는 일이다. 노동의 “척도”가 이론적・정치적인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노동에 따라” 사회주의적 생산물의 일부를 분배함(그것은 형식적으로는 상품교환과 유사하다)은 자본주의의 흔적이다. 새로운 생산양식은 아직 그것을 감히 버릴 수가 없다. 그것을 버린다면 새로운 기술의 이용을 확대시켜 필요한 인간의 노동력 모두와 생산수단 모두를 적절한 규모로까지 발전시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생산성은 노동시간의 대폭적인 삭감이나 중노동의 폐지, 불공정한 노동의 폐지를 실현하여 강제노동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을 아직 폐기할 정도는 아니다.





노동력과 생산수단의 계획적 분배는 사회적 생산물의 계획적 분배를 수반한다. 사회적 생산물의 분배가 시장을 통해서 상품교환의 법칙과 범주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맑스에 따르면, 분배의 양식이 변하는 것은 사회적 생산기구의 특정한 양식, 및 그에 상응하는 역사적인 생산력의 발전단계가 변화를 가져올 때이다6) (예를 들면 1930년대의 쏘비에트연방에서는 일정한 단계에 있고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쏘비에트연방에서는 다른 단계에 있었다).





맑스주의는 노동시간을 공동 노동으로의 생산자들의 개인적 참가의 척도로 명확히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생산자의 노동시간도 생산물로부터 그가 당연히 나누어 받아야 할 몫의 척도로 정의되며, 그 생산물로부터 나눈 몫은 개인의 소비를 위해서 미리 정해져 있고 노동에 기초해서 분배된다7). 다른 부분(교육, 의료 등)은 이미 필요에 의거해서 분배되고 있다.





사회주의의 생산에서 노동의 척도로 “시간”을 상정하는 것은 “단지 상품생산과 대비하기 위해서만”이다8).





사회주의 아래에서의 “노동시간”은 상품생산에서 상품교환을 위한 가치 척도로서의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은 아니다. “노동시간”은 생산물 전체의 생산을 위한 사회적 노동으로의 개인의 공헌을 재는 척도이다. 그런 것은 ��자본론��에서 특징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회화된 생산에서는 화폐자본이 사라진다. 사회는 생산력과 생산수단을 여러 가지 생산부문에 할당한다. 생산자들은 그들이 그러기를 바란다면, 바우처(paper voucher)를 수취하고 그 바우처로 소비제품의 저장고로부터 자기가 노동한 시간에 대응하는 양을 받는다. 이와 같은 바우처는 화폐가 아니다. 그것은 교환되지 않는다”9).





“노동에 따라” 분배되는 사회적 생산물의 일부를 수취하는 방식은 그 노동이 복잡한가, 단순한가, 육체노동인가 그렇지 않는가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의 총량 중에서 각 개인이 노동을 통해서 공헌한 기여에 따라서 결정된다. 개인의 공헌의 척도는 노동시간이고 계획은 이하의 사실에 기초하여 노동시간을 결정한다. 사회적 생산물의 전체적인 필요 및 “개인의”노동이 포함되는 생산과정의 물질적 조건. 특정한 분야, 부문 등에 노동력을 집중하는 사회적 생산의 특별한 필요. 모성, 특별한 필요가 있는 사람들 등의 특별한 사회적 필요. 생산과정의 조직화와 수행에 관한 각 개인의 태도. 바꾸어 말하면, 노동시간은 재료의 보호, 생산성을 높이는 과학기술의 이용, 노동의 보다 합리적인 조직화, 관리운영의 노동자지배라는 그러한 목표와 결부되어야 한다.





공산주의 생산양식에서의 생산력의 계획적 발전은 노동시간을 서서히 단축시켜야 할 것이고, 그 단축시켜 절약한 시간은 근로인민의 교육문화수준을 향상시키고 노동자의 권력이나 생산의 관리 등에 관한 노동자의 임무 수행에 노동자가 참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때 생산력으로서의 인간의 포괄적인 발전과 공산주의적 관계(직접적인 사회적 노동에 관한 공산주의적인 태도를 포함하는)의 발전은 상호적인 관계이다. 역사적인 단계에 의존해서 양자의 어느 것이든 우선권을 갖게 된다.





중앙에서의 계획의 발전과 그 전 분야에서의 사회적 소유로의 확대는 화폐를 서서히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고 가치형태로서의 그 의미내용을 상실하게 된다.










8. 개인 및 협동적 생산에 의한 생산물은―그 대부분은 농업에서 유래한다―상품ㆍ화폐 관계에 의해서 사회주의적인 생산물과 교환된다. 협동적 생산은 어느 정도는 중앙의 계획에 종속되고 중앙의 계획이 생산의 일부 계획을 결정하며, 고정가격을 결정한다.





도시와 지방, 공업생산과 농업생산의 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성은 광대한 토지의 공동이용에 농민・생산자를 꾸려나가는 일이고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근대적인 수법과 과학-기술의 진보에 의한 수법을 이용하는 사회적 생산물의 생산,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로부터 생산물을 지키기 위한 강고한 사회적 기반의 창조, 농업원재료의 생산과 그 공업적 가공을 위한 사회적 노동이 통합된 사회주의적 조직들에 종속하는 일이다. 이런 방향성은 농업생산 전체를 사회적인 생산의 일부로 바꾸는 일에 봉사한다.















C. 쏘비에트연방에서의 사회주의―반혁명의 승리의 요인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노사과연>










<힘있는 그리스공산당, 반격의 18회 대회>





사회주의에 관한 테제 ―제18회 대회에서의 그리스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테제―










번역 : 김성칠(편집위원)






1) 로모노소프 기념 모스크바대학경제학부��정치경제�� 제5권, 구텐베르크 출판, 1980년, p. 604-605.






2) 로모노소프 기념 모스크바대학경제학부��정치경제�� 제4권, 구텐베르크 출판, 1980년, p. 604-605.






3) ��쏘비에트대백과사전�� 제31권, p. 340, “쏘비에트연방과 통일공화국에서의 노동현장법제의 원칙”이라는 항목에서 이런 법률을 언급하고 있다.






4) 임노동과 자본의 관계라고 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의 역사적으로 새로운 형태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14세기 후반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들(제노바, 베네치아 등)에서 등장하였고 확대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그것들은 더 고차적인 발전단계로 이행하여, 지배적으로 될 수 없었고 그 결과 봉건관계로 후퇴하게 되었다. 그 후 16세기에 영국과 홀랜드(Holland)에서 자본주의적 관계가 발달하고 부르주아지가 제1선에 등장하여 일련의 부르주아 혁명에 이르게 되고 봉건계급과의 대립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서 결국 부르주아 계급은 19세기에 와서 지위를 확립하게 되었다. 쏘비에트연방과학아카데미의 ��세계의 역사�� C2권, p. 943-983에는, 이탈리아북부의 도시들에서의 자본주의적 관계의 확대과정이 상술되고 봉건관계의 회복과 지배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쇠퇴와 전복의 과정에 대해서도 서술되어 있다. 이탈리아의 도시들에서 자본주의적 관계가 도달해 있던 정도를 나타내는 특징은 고용되는 육체노동자와 부르주아 숙련공이나 상인, 은행가 사이에서 봉기나 공격을 포함한 격렬한 계급대립이 일어났다고 하는 점이다. 특징적인 사건은 1343년에 필레체(Florence)의 직물제조작업장에서 4000명의 노동자가 일으켰던 봉기에 관한 것이다. 15세기에는 제조업은 제한되어 있어 부유한 도시주민은 자금을 농업활동에 투자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적 관계의 후퇴를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13세기에 일부의 도시에서 농노제가 폐지되든가 완화되든가 하였으나, 15세기 후반에는 농노제로의 회복이 생겨났다는 점이다.(C 2권, p. 962-964.)






5) V.I. 레닌, 전집, SE, 아테네, 제39권, p. 15.






6) K. 맑스 ��자본론��제1권 pp. 91-92.






7) K. 맑스 ��고타강령비판�� 신크로니 에포치출판, pp. 21, 22, 23 및  F. 엥겔스��반듀링론��, 신크로니 에포치출판, 2006년, pp. 328, 323, 330.






8) K. 맑스 ��자본론��신크로니 에포치출판, 제1권, pp. 91-92.






9) K. 맑스 ��고타강령비판�� 신크로니 에포치출판 제2권, 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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