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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여성 간병노동자의 정치경제학적 위치와 그 함의
글쓴이 손미아|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118
날짜 2009-03-25 조회수 2599 추천수 135
파일  1237937342_간병.hwp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생산력이 발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가장 힘든 일로만 응축되어있는 돌봄노동이 증가하는가? 이러한 ‘간병노동’을 왜 하필이면 여성이 해야 하는가? 병원자본가는 왜 간병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지 않고 환자를 통해서 계약하게 만드는가? 병원자본가는 왜 정규인력을 확충하거나 병원의 치료와 재활시설을 확충하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고용하지도 않는 간병노동자들에게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간병 노동자들은 병원에서 투명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병원에서 꼭 필요한 그들이 왜 존재감있게 존재해서는 안 되는가? 자본주의 사회는 왜 어머니로써의 여성은 존경하면서도, 간병노동하는 노동자로써의 여성은 하찮게 취급하는가? 이 글은 이렇게 충돌하는 모순들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마치 인간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의문에 답을 해보고자 시작되었다.















1. 공황과 간병노동자의 증대의 정치경제학적 배경










2006년 현재 간병노동자의 수는 전국 약 25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1). 2008년 노인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 요양보호사의 증대로 인하여 더욱 증대하게 되는데, 이렇게 간병노동자들이 증가하게 된 외관에는 크게 두가지, 첫째: 공황으로 인한 상대적 과잉인구증대와 이들의 간병노동시장으로의 진출, 둘째: 정부의 노인보험요양제도의 실질적인 민영화와 민간요양기관들의 값싼 노동력 수요에 따른 여성 노동자들의 간병노동시장으로의 진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병노동자의 본질적인 증대요인은 병원자본가들의 인건비의 절약, 불변자본의 절약, 인간재료인 간병노동자의 낭비 등 일 것이다.










(1) 공황과 상대적 과잉인구와 여성간병노동자의 증대의 배경










1997년말 공황 이후, 우리나라 여성노동자에게 가장 큰 특징적인 변화는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의 급격한 증가였다. 경제위기 이후에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상승하였지만, 이러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의 상승은 낮은 사회계급집단에서 주로 증가함으로써 불안정한 가계를 보완하기 위해서 여성이 노동시장에 진출한 결과이다 (정인수 2003). 특히, 경제위기로 중년기 이후에 생계를 위하여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여성들은 출산, 자녀교육, 가사부담으로 인해서 고용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어서, 대부분 미숙련노동자로 단순직, 비경력직에 편입되게 되었다.










간병노동시장이 1980년대부터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다고는 하나, 여성 간병노동자들은 1997년말 공황이후 여성 노동자들의 불안정노동으로의 편입의 흐름에 따라,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에 투입되었을 것이다. 시나리오는 이러하다.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경제위기 이후, 낮은 사회계급집단의 남성 노동자들이 대거 노동시장에서 쫒겨나고, 체면 때문에 차마 허드렛일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성들이 그들의 가족을 구출하고자 간병노동에 전격 투입되게 된 것이다 2). 그러므로, 여성 간병노동자의 증대는 경제위기로 인한 상대적 과잉인구의 증대와, 이들의 낮은 직업으로의 이동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의 생산력이 증대할수록,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 될수록, 궁극적으로 무인생산을 향해 달려갈수록, 자본은 상대적 과잉인구를 창출해내고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내몬다. 그리하여 이들 상대적 과잉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의 노동계약관계의 가장 낮은 단계로 계약을 맺거나 비정상적인 상태로 고용될 수 밖에 없다. 맑스가 이러한 경제공황시기에 상대적 과잉인구, 즉 “인구의 매우 큰 부분은 사실상 자본에 의해 고용될 수가 없어서 타인노동에 얹혀살거나, 비참한 생산방식 하에서만 노동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그러한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맑스 ��자론본��)3)고 말하고 있듯이, 경제공황의 시기와 그 이후 경제침체가 계속되던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상대적 과잉인구를 구성하고 있었던, 가장 낮은 사회적 계급군에 속해있던 여성노동자들이 맑스가 이야기했던 ‘가장 비참한 생산방식하에서만 노동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그러한 노동’, 즉 가장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이 열악한 간병노동시장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2) 한국정부에 의한 사회공공복지 감축과 노인요양보험제도의 민영화










1998년 공황의 시기에 여성노동자들이 대거 노동시장에 유입되어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집단을 형성하였고, 여성 간병노동자의 증가도 이러한 흐름 중의 하나였던 측면과 함께, 한국정부의 사회공공복지의 감소와 노인요양보험제도의 민영화가 요양보호사, 즉 간병노동자의 상대적 과잉을 초래하였다. 2008년 현재 요양보호사는 과잉공급4) 되어있는데, 이는 1998년 경제공황이 쉽사리 회복되지 못하자, 상대적으로 과잉되어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간병노동시장으로 대거 몰리고 있는 점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상대적 과잉인 여성노동자들을 “요양보호사”라는 명목 하에 개개인 돌봄노동을 통하여 가장 허드렛일을 하는 노동자로 전락시키려는 것이다.










정부는 사회공공복지를 감소시키고, 민간기관에게 이양시킴으로써 비용을 절감하려고 하였고, 이윤추구를 최대의 목적으로 하고 있는 민간병원들은 정부의 소망대로 비용을 감수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질 낮은 의료서비스와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이윤추구를 하고 있으며, 사회보험에서 지불되어야 할 의료서비스의 본인부담을 가중시키면서 환자 개개인에게로 그 비용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5). 이렇게 하여, 사회적으로 본다면, 사회복지와 같은 전 사회구성원의 사회적 필요가 개개인의 환자들에게 부담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노인요양보험제도의 민영화는 그 서비스를 수급받는 환자들이나 노인들의 본인부담금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그 서비스의 직접적인 수행자이며 이 서비스노동을 통하여 자신의 노동력을 유지해 나가는 간병노동자, 즉 요양보호사의 노동을 착취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2008년에 실시된 노인요양보험제도의 민간기관위탁제도, 즉 민영화 추세는 결국 “여성 간병노동자를 개인서비스에 복무하는 노동자”로 전락시켰다.










한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성 간병노동자의 개인서비스노동자화”의 추진과정을 살펴보자. 정부는 2002년 10월부터 “노인요양보호인프라 10개년 확충계획”, “노인요양시설 3개년 확충계획 (2006-2008)”, “노인수발보험제도 실시 (2008.7)” 등을 통하여 노인요양관련 시설과 제도를 기존의 임상병원과는 따로 독립하여 두면서 간병인을 “요양보호사”로 둔갑시켜 이들을 증가시켰다.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2008년 8월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6) 을 실시하였으나, 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공공서비스에 기반을 둔 요양서비스 공급이 아닌 민간경쟁을 통한 시장형성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되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7).










정부는 요양보험제도를 만들었으나, 그 실체 즉 노인요양시설과 인프라구축을 민간에게 넘김으로써 실제로 민영화시켰고, 이 불변자본에 투자하여야 할 비용을 절약하고, 값싼 인건비로 요양보호자들이 그 일을 대신하게 함으로써 노동자의 노동력을 값싸게 만들어버렸다. 즉 현재 요양시설에서는 기계설비시설을 갖추는 것보다 요양보호사를 고용하는 것이 더 비용이 절감되는 상황인 것이다. 2008년 10월 현재 재가급여요양기관은 8011개소, 장기요양기관은 1530개소 (64천671 병상) 로 전체 시설은 9541개소로 집계되었다. 정부는 난립하는 민간요양기관을 위하여 2008년 1353억원을 투입했고, 2009년 예산으로는 3270억원을 예산으로 편성하고 있다 8). 또한 민간중심의 요양서비스의 구축에는 민간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민간요양보호사 교육기관들에 의한 부실교육, 편법운영 등으로 돈벌이수단으로써 요양서비스가 전락되고 있다.










노인요양과 재가요양을 담당하는 요양보호사의 고용형태와 노동조건은 어떠한가? 요양보호사의 고용형태를 보면, 요양시설의 경우, 요양시설기관에서 직접고용을 하는 것이 원칙이나, 파행적으로 파견업체를 통한 위탁, 파견 등의 간접고용형태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위탁 고용된 요양보호사는 직접 고용된 요양보호사보다 임금도 더 낮아지고,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한편, 재가요양기관의 경우에는 2008년 현재 약 8011개의 민간기관이 설립되었고, 이 기관들이 요양보호사를 각 지역에서 재가요양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소개를 시켜주고, 소개료를 받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노인요양시설에서의 간병업무와 각 지역에서 노인들의 재가요양업무를 담당하는 요양보호사의 임금은 결국 국가의 사회보험에 속해있는 장기요양보험의 예산을 통하여 운영되고 있다. 현재 장기요양보험제도에서 요양급여는 포괄수가제로 재가급여는 시간별로 수가가 지급되고 있는데, 이 의미는 결국,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의 임금이 포괄수가제와 시간별 수가에 의해서 지급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민간요양시설이나 재가요양기관에서는 이 수가와는 별도로 개별 요양보호사로부터 소개비명목으로 임금의 일부를 착복하거나, 경쟁을 통하여 요양보호사의 과잉공급을 유발하여 요양보호사의 임금을 삭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장기요양보험재원에서 민간요양시설 및 재가요양기관을 통하여 요양보호사에게 전달되는 형식을 취하면서 중간착취고리에 있는 민간요양시설 및 재가요양기관이 요양보호사에게 가야할 인건비의 일부를 소개비라는 명목으로 착복하거나, 실제 경쟁을 유발하여 임금을 삭감하고 있다.










정부가 ‘요양보호사’제도를 두면서 재가나 요양시설에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간병노동자들이 고용되는데, 이들의 고용관계는 병원에서 일하는 간병노동자보다는 나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이들 노동자들의 노동력상품을 사용하는 방법은 인륜을 넘어서고 있다. “요양보호사”라는 용어가 무색하게도, 재가근무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공인된 파출부” 노릇을 해주고 있으며, 요양시설근무 노동자들도 결국 가장 허드렛일이 응축된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재가요양센터의 소개를 받고 재가노인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요양보호사의 경우, 빨래, 청소는 물론 음식준비 등과도 같은 파출부역할까지도 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이것이 “요양보호사”의 실태인 것이다. 말이 요양보호사이지, 이들이 병원에서 근무를 하면 “간병노동자”요, 노인요양시설이나 재가요양관련 근무를 하게 되면 “요양보호사”인 것이다. 한국정부는 이렇게 간교하게도 여성노동자로 하여금 현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값싼 노동력으로 가장 허드렛일을 수행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요양보호사”, 즉 간병노동자들이 증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간병노동자가 더욱 더 증대할수록 정부와 자본은 사회적으로 값싼 여성노동력을 더욱 더 갈취해간다. 이를 정부가 앞장서서 나서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요양보호사에 대한 성폭력마저 대두되고 있어 인권유린조차 자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9). 현재 요양보호사에게 닥친 문제는 노동권뿐 아니라, 인격모독, 인간으로써의 자존감의 상실과 황폐화이다.










한국정부는 공황과 실업으로 인한 상대적 과잉인구증대를 이유로 들어 이참에 아예 여성노동자들을 “돌봄노동”, “간병노동”, “수발노동”으로 재편시키려고 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다. 결국, 한국정부는 증가하는 노인요양서비스를 민간기관에 위탁하는 형식으로 민영화시켰으며, 민간위탁시설에서 요양서비스의 직접적인 제공자인 요양보호사를 불안정하게 고용함으로써 요양보호사의 노동권을 박탈하고,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










(3) 병원자본가들의 인건비절감과 그 비용의 환자에게로의 전가방법





―병원자본가들과 간병노동자와의 노동계약관계가 어떻게 환자와 간병노동자와의 고용계약관계로 탈바꿈했는가?―










공황이나 한국정부의 사회공공복지의 민영화 추구의 근본적인 배경에는 병원 자본가들의 이윤추구가 있다. 이제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병노동자들을 보자. 우리는 여기에서 병원자본가들이 인건비를 절감하고, 그 비용을 환자에게 전가하기 위해서, 병원자본가들과 간병노동자와의 노동계약관계를 환자와 간병노동자와의 고용계약관계로 탈바꿈시킨 것을 볼 수 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병노동자들의 노동고용관계에 주목하지 않고, 이들 노동력이 사용되는 현상을 본다면, 이들은 영락없이 병원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자본가들은 환자들의 치료와 재활을 위해 필요한 병원 내에서 꼭 필요한 필수노동인력인 간병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지 않고, 환자 개개인과 계약관계를 맺게함으로써 인건비를 절약하였다. 병원자본가들이 절감하는 인건비는 환자 개개인의 부담으로 지워지고 있으며, 간병노동자들에게는 자본주의하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노동계약관계조차 맺지 못하게 되는 “기형적인 노자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 병원간병노동자들의 고용계약관계에 의해서 이들을 굳이 분류한다면,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분류 중에 하나인 “특수고용노동자”에 해당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직접고용도 아니고, 간접고용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과 정부는 처음에는 간병노동자들을 “특수고용노동자”로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자영인”정도로 분류를 하면서 고용형태를 왜곡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이후, 정부는 간병노동자들의 고용계약관계가 “특수고용관계”라고 분류하기 시작했는데, 왜 특수고용인가하면,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사업주와 노동자 간의 임노동계약관계에 의한 고용계약이 형성되지 않고,  환자 개인들과 간병인과의 관계로 고용계약이 형성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고용관계”도 실제적인 간병노동자와 병원자본가와의 관계를 왜곡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간병노동자들은 환자의 돌봄에 필요한 어떠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하루 일당, 즉 하루 하루의 임금에 의해서 살아가야하는 노동자인 것이다.










병원자본가들과 정부는 간병노동자의 임금이 환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므로, 자본주의하에서 합리적인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임노동관계”가 아니라, “환자와 간병노동자 사이의 비정형적인 불안정 고용관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질은 병원자본가들이 간병서비스에 대해서 지불해야할 비용을 개개인의 환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즉, 병원자본가들의 인건비절감 요구에 의해서, 간병노동자와 병원자본가 간의 노동계약관계가 간병노동자와 환자와의 노동계약관계로 왜곡되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0).










이렇게 병원자본가와 간병노동자와의 본질적인 노동계약관계가 환자와 간병인과의 “고용관계”로 왜곡된 것임을 입증하는 한 사례는 바로 서울대 간병노동자들의 해고저지 투쟁의 역사 속에서 드러난, 한국에서 가장 권위가 높다는 서울대병원 자본가들이 자행했던 얄팍한 속셈에서 드러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1988년경 증가하는 환자들의 병원 내에 돌봄서비스의 요구에 대하여 병원인력을 확충하거나 직접고용을 늘리는 대신, 병원장의 이름으로 무료상담소를 개설했다. 그리고 마치 서울대 간호부가 직업소개소처럼 역할을 하면서 모든 직원의 채용관련 업무와 직원의 관리를 담당하면서, 고용계약관계만은 환자와 간병노동자 사이에 맺도록 하면서, 병원자본가들은 그 간병노동자에게 들어가는 인건비를 절약하고, 그 비용을 환자에게 부담시켰던 것이다. 병원자본가들은 그 후에 “환자에게 고용된 간병노동자들”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 최고의 국립대학교 병원 원장이 간병노동자들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무료소개소 소장”이라는 그들의 입장에서 매우 불명예스럽고 유쾌하지 않은 이 직책을 겸임할 정도로 인건비의 절약의 요구가 컸던 것이다. 2003년이후에는 서울대병원장이 “무료소개소 소장”역할도 안 하면서 노골적으로 유료소개소를 병원내에 영입을 했을 때, 간병노동자들의 분노는 투쟁을 통해 격화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에서도 보듯이, 간병인 노동자들에게 특수고용노동자니 하면서 일반 노동자와 다른 형태의 노동을 강조하면서 그들을 직접고용 노동계약관계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자본가계급에 의해 자행된 인위적인 조작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간병노동자들이 특수고용노동자라는 허구를 깰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이며, 또한 거의 대부분의 특수고용에 의한 노동계약관계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자본의 인건비 절약과 노동착취의 요구를 대변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4) 병원자본가들에 의한 생산시설 및 복지시설의 절약은 간병노동자들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① 병원불변자본의 절약과 인간재료의 낭비





병원자본가들이 간병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지 않으면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불변자본을 절약하기 위해서이다. 병원자본가들은 병원에서 환자의 치료 및 재활과정 동안에 필요한 제반 시설들을 절약하면서, 그 비용을 투자하는 대신, 간병노동자들의 노동착취를 통하여 이윤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병원자본가들에 의한 간병노동자의 노동착취는 간병노동자의 노동착취를 통한 노동자들의 개인의 발전을 저해할 뿐 아니라, 병원의 책임을 환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사회적인 발전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이렇게 불변자본의 절약을 통하여 시설설비와 원료보다 노동자들을 낭비해가는 정책을 쓰고 있으면서, 이것의 진실, 즉 병원에서 치료와 재활시설을 확대발전시키는 대신 간병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자본가계급의 불변자본의 절약에 그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② 휴식공간 및 제반 복지시설의 절약과 간병노동자들의 소외





한 인간이 자신의 하루 노동일 전체를 다른 한 인간의 회복을 위하여 사용한다는 것은 휴머니즘과 인류애적인 사랑에 바탕을 두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자본주의사회에서 이윤추구에 눈이 어두운 자본가들은, 불변자본의 절약과 인간재료의 낭비에만 몰입함으로써, 간병노동자들의 노동의 숭고함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즉, 병원자본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간병노동자들은 병원의 재활이나 치료시설등과 같이 환자의 치료에 필요한 설비를 절약하고, 간병노동자들의 노동을 통하여 해결하려고 하고 있으며, 간병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제반 복지제도와 시설을 절약함으로써 비용절감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병원에서 일하는 간병노동자들에게는 어떠한 휴식공간이나 제반 복지시설이 전혀 없다. 심지어 가장 규모가 큰 병원에서도 24시간 병원에서 일하는 간병노동자들을 위한 방이 한개도 없다. 150년전 맑스는 자본가계급의 불변자본 절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듯이, “노동자들을 위하여 생산과정을 인간다운 것으로, 쾌적한 것 또는 견딜만한 것으로 만드는 어떠한 설비도 없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설비는 자본가의 관점에서는 의미나 의의가 없는 낭비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면에서 인색하지만 인간재료에 대해서는 매우 낭비적이다 (맑스, ��자론본��)11).”










간병노동자들의 하루생활의 터전인 노동환경은, 과학기술혁명과 노동생산력의 발달로 인하여, 환경개선을 위한 시설설비도입과 낡은시설의 폐기 및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기기와 원료를 이용한 생산과정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과학기술혁명과 노동생산력의 발달, 그것이야말로 노동자의 사회적 노동에서부터 나온 인류 발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불변자본의 절약에서” 자본가가 얻는 이익도 역시 사회적 노동에 의해서 생산된 것이다. 이러한 생산성발전의 궁극적 원인은 언제나 노동의 사회적 성격, 사회 내부의 분업, 그리고 정신적 노동의 발전이다. 이 경우 자본가가 이용하는 것은 사회적 분업의 체제전체에서 나오는 이익이다 (맑스, ��자론본��) 12).“










불변자본의 절약이 가능하게 된 조건은 사회적 노동의 발전에 의한 노동생산성의 발전인데, 이것으로 인한 이익을 자본가가 전부 가져가므로 노동자계급은 이 관계에서조차 소외되어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모순적이고 대립적인 성격 때문에, 불변자본 사용의 절약과 따라서 이윤율의 증대수단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의 손상, 그의 생존조건의 악화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맑스, ��자론본��)13)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불변자본으로부터의 소외는 더 많은 노동자계급의 생명과 건강손상을 초래할 것이다.  










2. 간병노동자의 노동의 정치경제학적 의미: 저임금, 노동일의 연장으로 인한 잉여노동의 착취










(1) 간병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간병노동자들의 임노동-자본관계의 본질과 노동일의 연장―










한국정부와 자본가계급은 간병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에 의해 정의된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명칭마저 마치 “자영인”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간병인” 등으로 부르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더 이상의 본질이 탄로나는 것을 두려워한 자본가계급과 정부가 간병노동자들을 “특수고용노동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도 본질이 아니다. 한국정부와 자본가계급은, 간병노동자들의 고용형태를 국가나 병원자본가들이나 요양시설의 자본가들에게 직접 고용되는 형태가 아니라, 그들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환자"에게 고용되는 비정형적인 형태의 노동계약관계로 만들면서 본질인 임노동관계를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은 명확하게도 자본가계급과 간병노동자와의 임노동관계인 것이다.










정부와 자본가계급은 왜 그렇게도 간병노동자의 임노동관계의 본질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가? 이것은 자본주의의 합리적인 노동계약관계로써 자본주의 초기에 자본가계급이 만든 것이 아닌가? 현재의 자본주의가 자본-임노동관계조차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이윤추구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본-임노동관계마저 왜곡하여 비정형적인 불안정노동관계를 만들면서까지 간병노동자로부터 인건비의 절약, 불변자본의 절약, 노동일의 연장을 통한 노동착취강화를 통하여 잉여가치를 획득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제, 간병노동자들이 왜 노동자인가?에 대한 규명을 해보자. 간병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아서 하루하루 자신의 노동력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며, 자본주의하에서 자본의 가치증식에 기여하므로 노동자이다. 간병노동자들은 다른 여타의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며, 오직 자신의 신체, 즉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아서 자신의 노동력을 유지하는 노동자인 것이다 14). 자신의 노동력의 판매자인 간병노동자는 병원자본의 잉여가치증식에 기여한다. 병원자본가들이 의료서비스를 상품화하여 의료서비스를 환자에게 상품으로 제공함으로써 이윤을 추구하려고 할 때, 간병노동자들의 노동은 의료서비스를 상품으로 생산함으로써, 또 의료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잉여노동을 수행함으로써 병원자본가들에게 잉여가치를 증식시켜주고, 실현시켜주는 것이다. 이로써 병원자본가들은 이윤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5).  










이렇게 볼 때, 간병노동자는 사회적 노동이나 활동이 제한된 환자들이나 노인들의 치료와 재활을 도와서 그들이 사회적인 노동을 수행하거나 사회적 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게 도와줄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은 병원이나 요양시설의 자본가계급의 잉여가치취득에 기여하는 생산직 노동자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간병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하루 하루의 노동력 유지비인 임금으로 살아가야만 하고, 병원자본가들의 가치증식에 기여하므로 생산적 임금노동자인 것이다 16).










병원자본가들의 임노동관계의 왜곡은 간병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가중시키고, 저임금상태에서 노동일을 연장하게 만들어 노동강도강화를 증대시키고 있다.










(2) 하청구조와 같은 노동착취관계










간병노동자들은 법적으로 병원자본과 직접 고용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개개인의 환자와 고용관계를 체결하게 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민간직업소개소에 의해서 환자들과 고용관계 체결이 완성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개개의 간병노동자들이 3-4일 노동하면서 그 와중에 그 다음 환자를 찾아 다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민간직업소개소의 역할은 무엇인가? 민간직업소개소는 각 지역에서 일정한 수의 간병노동자들을 등록시키고, 간병노동자들로부터 1인당 한달에 5-6만원씩 회비를 받는다. 결국, 간병노동자의 임금부분을 미리 갈취하는 기관인 것이다. 이렇게 간병노동자들과 환자 사이의 매개체역할을 하는 민간소개소는 간병노동자에게 기생하여, 간병노동자의 노동력유지비의 일부를 갈취하며 살아가는 기생적인 기관인 것이다.










2006년 현재, 간병노동자의 취업을 알선해주는 민간직업소개소는 약 4988개소 (유료 4618개소, 무료 370개소)가 있다 17). 이들이 바로 병원자본가들과 간병노동자의 노동계약관계를 환자와 간병노동자의 계약관계로 탈바꿈하는 주체이며, 그 과정 속에서 간병노동자의 임금을 갈취하는 기생적인 하청업체인 것이다.










제조업체에서 하청업체 사업주들은 원청업체의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줄 임금을 먼저 “바겐세일”한 후, 그것을 노동자들 대신 받아서 그 중의 일부를 떼고 노동자에게 준다. 제조업체 하청업주들의 노동자 임금갈취방식이다. 그런데, 간병인들에게 소위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민간직업소개소는 간병인들이 임금을 받기도 전에 회비라는 명목으로 매달 일정액을 떼어가니, 하청업체 사업주보다 더 악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생적인 기관의 기생적인 역할은 간병노동의 사회적 역할과 위치가 새로 자리매김되고, 간병노동이 환자와 간병노동자와의 사적인 고용관계가 아닌, 사회적인 치료와 재활의 관계로 새로 태어날 때, 비로소 사라지게 될 것이다.










(3) 노동일의 연장과 저임금










간병노동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환자와 간병노동자 간의 특수한 계약관계, 민간직업소개소라는 하청업체를 통해야하는 고용의 불안정성, 병원자본가들의 불변자본의 절약과 인간재료의 낭비 등으로 인하여 현 자본주의사회가 이미 스스로 통제를 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저임금 상태에 있다.










간병노동자들의 저임금구조의 본질은 간병노동자들의 잉여노동착취구조라는데 있다. 간병노동자들은 하루 24시간 주 6일간을 병원에 상주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노동을 하고 있다. 현재 자본주의사회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8시간을 일하게 되어있다. 이 말의 뜻은 하루 8시간 노동의 댓가인 임금은 그날 노동력 회복과정을 통하여, 그 다음날 다시 일할 수 있도록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드는 유지비라는 의미인 것이다. 현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들이 노동력 재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하루임금으로 본다면, 이는 법적노동시간인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 24시간을 기준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간병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거동이 어려운 환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 때문에, 하루 24시간을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결국, 24시간 노동하고 있는 셈이므로, 문제는 간병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인 24시간 노동에 대한 적절한 임금이 주어져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간병노동자들은 스스로의 노동력재생산, 즉 노동력회복의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간병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하루 하루 노동력 회복시간을 빼앗기게 됨으로써, 그들의 불건강상태가 장기적으로 누적되고 있다.





간병노동자들은 하루 24시간을 병원에 거주해야하므로 장시간의 노동일의 연장 및 자본에 의한 이 잉여노동의 취득과정을 통하여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증대시키고 있으며, 여기에 더하여 불변자본부분에 새로운 투자없이 24시간 가동함으로써 불변자본의 가치를 가변자본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저하시키며 이에 따라 이윤율을 증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18).





(4) 간병노동자의 건강악화의 기전










① 간병노동자의 건강악화 이유





간병노동자들이 직업병과 재해에 걸릴 위험은 일반노동자들보다도 훨씬 높은데, 그 이유로는 간병노동자들의 왜곡된 노동계약관계로 인한 불안정노동과 직업적 스트레스, 24시간 노동으로 인한 수면장해 및 건강장해20) 21), 병원 시설설비의 취급과 환자를 들어 옮기는 데 소모되는 육체적 하중 22), 병원 내의 병원균과 오염물질에 의한 각종 감염 23), 병원에서 24시간 상주해야 하는 답답함과 스트레스 24), 그 외 여러 인간적인 모멸감 등에 의한 정신적 황폐화 등이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기계나 원료보다도 인간이 더 낭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루종일 노동을 해야하는 간병인 노동자들처럼 값싸게 낭비당하고 있는 곳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자본주의적 생산은 다른 어느 생산양식보다도 인간을, 살아있는 노동을 더욱 탕진하며, 피와 살 뿐만 아니라 신경과 뇌까지도 탕진한다. 사실상 인간사회의 의식적 건설에 직접적으로 선행하는 역사단계에서는 이처럼 개인의 발전을 엄청나게 저해함으로써만, 인류 일반의 발전이 확보되고 달성된다 (맑스 ��자론본��) 25)










② 병원 간병노동자들의 법으로부터의 소외: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재보상보험법 등등





병원 간병노동자들은 비정상적인 고용관계로 인하여 자본주의하에서 법적으로 규정해 놓은  최소한의 자본-임노동관계에도 편입되지 못하며, 그것보다도 낮은 계약관계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건강과 복지이다.










현재 간병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산업안전보건법도 적용을 받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간병노동자들은 그들이 질병이나 재해의 위험에 노출되거나 질병이나 재해를 당해도,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산재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5) 여성으로써 간병노동자의 사회적 위치와 그 정치경제학적 의미










① 어머니로써의 여성은 존엄한데, 노동하는 여성은 왜 하찮은가?





어머니로써의 여성은 존엄한데, 노동하는 여성은 왜 하찮은가?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아이낳기 장려운동”이 자본주의하에서 노동력감소에 따른 자본가계급의 위기의 표출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로써의 여성은 어느 생산양식의 사회를 불구하고 위대하다.










그러나,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를 잘 낳고, 또 낳은 아이를 잘 기르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하는 노동하는 여성은 하찮기 그지없다. 왜 그럴까? 왜 아이를 낳아 노동력을 재생산해야하는 여성의 위치와 자기 자신뿐 아니라 그 가족을 재생산해야 하는 여성의 위치는 이렇게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어머니로써의 여성은 전사회를 거쳐 절대적 진리라면, 노동하는 여성은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자본가의 노동계약관계에 의한 노동착취관계이기 때문이다. 바로 계급적인 문제이고, 계급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여성이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에는 당장의 관심이 있지만, 여성 자신과 여성이 낳은 그 노동력의 재생산과 노동력 유지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당장 죽지만 말고, 살아서 자본가계급이 원하는 잉여노동을 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성의 문제도 계급적으로 바라봐야하는 것이다. 자본주의하에서 여성은 노동력재생산에 역할을 하는 담당자로써 역할을 하는 한편, 상대적 과잉인구로써 유휴 산업인력으로 사회의 저변을 구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② 자본주의하에서 왜 특히 남성보다도 여성이 점차 하향화되는가?  여성 노동자의 계급성 확보의 필요성





자본주의하에서 여성이 왜 점차 하향화되고, 남성에 비해서도 더욱 더 하향화 되는가? 맑스주의적 관점에 의하면, 자본주의하에서 여성의 지위하락과 불평등심화는 단지 자연에서부터 오거나, 남녀 간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닌, 사회적 기원에서 오는 것이다. 맑스주의에 의하면, 여성의 억압상태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일부분으로 바라보고 있다 26).










여성의 하락의 기원은 여성의 두 가지 경제적 상태의 측면에서부터 유래된다. 첫째,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다르고, 여성이 점차 낮은 임금, 직업을 가질 기회가 적고, 불안정노동상태에 머물게 되며, 남성보다 더 파트타임노동자로 변해간다는 것이며, 둘째,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의 경우, 자본주의적 관계 밖인, 가사일을 주로 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자본주의사회는 여성을 자본이 필요할 때는 고용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해고하는 ‘산업예비군’으로 재편시켰고, 여성노동자들은 자본주의의 값싸고, 유연하고 일회적인 노동에 대한 요구도를 만족시키고 있으며, 자본주의 경제의 부흥과 쇠퇴의 주기에 잘 맞추어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매 공황의 시기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증가하게 되며, 이렇게 경제위기 때마다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구출하기 위한 여성의 노동시장으로의 투입과정은, 여성들이 점점 주변의 직업과 산업들로 재편됨으로써 여성의 지위하락을 낳고 있다. 










간병인 노동자들의 진입경로를 보아도 이와 유사하다. 간병인 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간병노동시장에 들어오게 된 시기가 대개 1998년 경제위기 직전이나 직후의 시기로, 가계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과 나이가 들어 다른 직장으로부터 밀려나게 된 것이 간병노동자가 된 이유이다. 한국에서 40대를 넘긴 여성을 받아주는 직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병노동자들은 가계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간병노동시장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렇게 간병노동시장에 진입한 후에도 여성 간병 노동자들이 간병노동을 택하게 되고 또 그 일을 하게 만드는 중요한 동기는 "남성보다 강한 여성의 강한 모성애"이다. 결국, 자본주의하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자녀에 대한 모성애마저도 자본가계급에게 착취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하에서 전반적으로 보아 여성이 남성보다도 더 착취를 당하고 있는 사회적 구조하에 있다. 현 자본주의사회에서 여성노동자의 사회적 위치는 또한 자본주의 전단계인 봉건주의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억눌려왔던 것이 자본주의사회에 구습으로 남은 채, 봉건주의의 구습이 상존하는 자본주의사회의 생산관계로의 재편의 상태가 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계급관계 속에서 기원하는 것이며, 해결의 관점도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3. 결론: 전체 여성노동자의 사회적 연대와 계급적 단결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생산력은 발달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집약적이고 소모적인 돌봄노동이 증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들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간병노동자의 탄생과 증가의 배경을 보면, 그 외형적이고 단기적인 원인은 1997년말 경제위기와 같은 경제주기가 작용을 했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병원자본의 이윤추구에 있다. 병원자본가들은 병원의 고급인력의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직접고용인력을 고용하는 대신 환자를 이용한 “환자-간병인 간의 특수고용”관계를 이용하여 간병인들을 실질적으로 병원에 고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저임금으로 24시간 동안 병원에 상주하는 간병노동자를 고용하는 이유는 병원자본가들의 병원시설의 절약, 즉 치료 및 재활시설의 절약을 통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그 책임을 간병노동자의 개인의 노동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의도에서였다. 병원자본이 애초에 간병노동자들을 고용한 목적이 비용절감 (불변자본의 절약과 인건비의 절약)이었기 때문에, 간병노동자들을 위한 시설과 복지제도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병원자본의 입장에서는 당연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본주의하에서 병원자본가들의 이러한 간병노동자들의 노동착취는, 사회적 발달로 인한 과학기술혁명의 혜택을 민간병원자본가들이 사유하고 착취하려는 것이어서, 전 사회의 발달을 저해하고, 사회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간병노동자들의 일, 즉 사람을 돌보는 일은 매우 숭고하고 희생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이러한 숭고한 일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왜곡되어있는 점이며, 이러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와 대우인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간병돌봄노동의 왜곡된 이미지와 역할에 간병노동자들을 규정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개개인의 간병노동자들이 순례자적인 봉사와 희생을 강요당하면서 또 그 역할을 자임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존엄성도 헌신짝처럼 여기는 자본가계급의 본질을 파악하였다. 자본주의하에서 여성, 그리고 동시에 간병노동자의 문제에는 여성으로써 자본주의를 지지시키는 가부장적 권위에 억눌리고, 노동자계급으로써 자본가계급에게 착취당하는 이중의 문제가 중첩되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문제의 본질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자본주의를 지지시켜주는 가부장적 권위는 결국 자본가계급의 사적재산의 유지와 존속, 재생산과정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관습과 관념인 것이다. 문제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관계이다.





우리는 여성노동자들의 낮은 사회계급의 상태를 숨기지도 않으며, 이를 한탄만 하고 있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이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사회적으로 당당히 알려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할 것이다. 이제 문제의 본질을 스스로 드러낼 때이다. 이제 현대자본주의가 여성간병노동자에게 가하는 무거운 짐의 무게를 여성간병노동자에게만 지우지말고, 여성노동자뿐 아니라 남성노동자가 모두 함께 전체 노동자계급의 문제로 삼고, 자본주의적 노-자 계급관계의 철폐를 위하여 나가야 한다. 현재 여성노동자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본가계급의 노동착취를 끊어내는 투쟁의 각을 세워나가는 것이다. <노사과연>










<참고문헌>





1. 칼 맑스. ��자론본��.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1990년판.





2. Stevi Jackson, 1999. Marxism and Feminism. in the [Marxism and social science] Edited by Andrew Gamble David Marsh, and Tony Tant.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Urbana and Chicago. Macmillan press.LTD.






1) 200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자료. 출처: “특수고용 연구포럼 실태조사결과 발표” 2006년 9월 18일 국회의원회관 104호 간담회실. 주관: 산업노동학회, 산업사회학회, 민변 노동위원회,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 노동기본권실현 국회의원 연구모임.






2) “가정을 책임져서 의식주를 해결하려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 간병사들은 거의 다가 가정이 잘못 되었거나, 가정을 책임져야 하거나, 자식들 교육 때문에 꼭 벌어야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단 말이예요 (간병노동자 A).” “아빠들보다도 우리 한국여성들이 모성애가 참 강하기 때문에 엄마들이 취해야 하는 이런 태도는 감히 다른 분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진짜 눈물 나는 일들이 많습니다 (간병노동자 B).”






3) ��자론본�� 3권, 3편, 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 p. 307.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1990






4) 2008년 9월 13일 현재 18만 명 이상 (자격취득자)의 요양보호사가 배출되었으나, 현재 요양보호수급권자가 18만 2,051명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요양보호사와 서비스대상자의 비율이 1:1에 해당할 만큼 과잉공급되었다. (출처: 제갈현숙. 요양보험제도 실시 후 요양서비스 현황과 과제. 출처 자료집: 요양현장 실태보고 및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개선방안 토론회. 2008.11.14. 국회도서관 대회의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 국회 박은수 의원실)






5)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본인부담률은 시설입소인 경우 20%, 재가시설의 경우 15%이다. 정부는 애초 요양시설 이용시 30-40만원 정도의 비용부담을 하게 될 것으로 공언했다. 그러나 요양시설 이용시 식재료비, 간식비 등 비급여 명목의 부담금을 포함하여 약 55만원~80만원까지 부담하는 것이 현실이다” 출처: 제갈현숙. 같은 책.






6) “노인장기요양보험은 2007년 4월 국회를 통과하여 65세이상 노인 또는 64세이하 치매, 뇌혈관성 질환, 파킨슨 병 및 관련 질환과 같은 노인성질환자를 대상으로 3등급 이내 판정자를 대상으로 요양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제갈현숙. 같은 책.






7) 제갈현숙. 같은 책.






8) 제갈현숙. 같은 책.






9) 제갈현숙. 같은 책.






10) 이미 특수고용노동이라는 용어 자체의 허구를 직감하고 있는 간병노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직접고용을 해라' 노동조합에서 이걸 주장하는 것이거든요. 이렇게 (병원이) 직접고용을 하게되면 근로기준법을 지켜야하고, 그러다보면 최저 임금제도도 만들어지겠죠...... 그런데, 병원 측은 우리에게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부르면서 근로기준법이 없이 무조건 갖다가 부려먹는 거예요 (00병원 간병노동자)"






11) 칼 맑스, ��자론본��, 제 3권 제1편 제 5장, 불변자본 사용의 절약,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1990.






12) 칼 맑스, ��자론본��, 제 3권 제1편 제 5장, 불변자본 사용의 절약, 김수행역.비봉출판사.1990






13) 칼 맑스, ��자론본��, 제 3권 제1편 제 5장, 불변자본 사용의 절약, 김수행역.비봉출판사.1990






14) “노동자는 자유인으로서 자기의 노동력을 자신의 상품으로서 처분할 수 있다는 의미와,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노동력이외에는 상품으로서 판매할 다른 어떤 것도 젼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기의 노동력의 실현에 필요한 일체의 물건으로부터 해방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칼 맑스 ��자론본�� 1권 2편 6장 p. 214,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1990).”






15) 잉여가치는 오직 노동의 양적 초과에 의해서만, 하나의 동일한 노동과정의 시간적 연장에 의해서만 생겨나는 것이다 (칼 맑스 ��자론본�� 1권 2편 7장 p. 253.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1990). 맑스에 의하면 자본가는 노동력을 사용하기 위하여 노동자로부터 노동력을 구매한다. 노동력의 사용이 바로 노동이다. 노동력의 구매자는 노동력의 판매자에게 노동을 시킴으로써 노동력을 소비한다. 노동자가 작업장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그의 노동력의 사용가치, 다시 말하면 그것의 사용, 곧 노동은 자본가의 것으로 된다.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상품으로 판 노동력의 특징은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과정에서 노동력이 창조하는 가치는 그 크기가 서로 다른 양”인데, 노동력의 판매자는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실현하면서 그 사용가치를 양도한다. 그리하여 자본가는 노동력을 노동과정에서 사용하여, 즉 노동과정에서 노동의 양적초과, 즉 노동과정의 시간적 연장을 통해서 잉여가치를 창출하게 하고, 이를 자본가가 사유하게 되는 것이다 (칼 맑스 ��자론본�� 1권 상, 하,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1990). 






16)  “노동과정을 고찰할 때 우리는 우선 그것의 역사적 형태가 어떠하건 간에, 그것을 추상적으로, 즉 인간과 자연사이의 과정으로서 취급할 때, 만약 우리가 노동과정 전체를 그 결과의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노동수단과 노동대상의 양자는 생산수단으로 나타나고, 노동 그 자체는 생산적 노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분명하다 (칼 맑스 ��자론본�� 1권 5편 16장 p. 639.). 그러나, 한편 자본주의하에서의 생산적 노동의 정의는 “생산과정을 단순히 노동과정의 입장에서만 규정하는 방식은 결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을 설명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다 (칼 맑스 ��자론본�� 1권 5편 16장 p. 639).” 그리하여, 자본주의하에서의 생산적 노동의 개념은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그리하여 “자본가를 위하여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 또는 자본의 자기증식에 봉사하는 노동자만이 생산적이다 (칼 맑스 ��자론본�� 1권 5편 16장 p. 640.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1990).”






17) 2002년 6월말기준으로 분석한 자활정보센터 (2005출간) 자료. 출처: 출처: “특수고용 연구포럼 실태조사결과 발표” 2006년 9월 18일 국회의원회관 104호 간담회실. 주관: 산업노동학회, 산업사회학회, 민변 노동위원회,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 노동기본권실현 국회의원 연구모임.






19) 같은 책






18) “가변자본이 불변이어서 동일한 수의 노동자가 동일한 명목임금으로 고용되고 있는 경우, 절대적 잉여가치의 증대 또는 잉여노동과 노동일의 연장은 불변자본의 가치를 총자본과 가변자본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저하시키며 이에 따라 이윤율을 증대시킨다.  왜냐하면 불변자본의 고정부분의 규모는 작업이 16시간 계속되든 12시간 계속되든 변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리고 노동일이 연장되더라도 불변자본의 가장 값비싼 부분인 고정부분에 대하여 새로운 투자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정자본의 가치는 보다 짧은 회전기간에 재생산되며, 일정한 이윤을 얻는 데 필요한 고정자본의 투하기간은 단축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노동일의 연장은, 초과노동시간에 대하여 보수를 지불하더라도, 그리고 어느 한도까지는 초과노동시간에 대한 보수가 정상적인 노동시간에 대한 보수보다 높다 하더라도, 이윤을 증가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근대적 산업체제에서 고정자본을 증대시켜야 할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짐에 따라 이윤에 눈먼 자본가들은 노동일을 점점 더 연장하게 된 것이다 (칼 맑스. ��자론본�� 3권, 3편,  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 비봉출판사, 김수행번역본, 1990)19).”






20) “밤에 소변을 한 시간마다 체크해야 되는 경우도 있어요. 한 시간 마다. 그럼 한 시간마다 해서 기록지에 적어줘야 돼요. 그럴 경우에도 잠 못 자죠 (00병원 간병노동자).”






21) "환자 옆에 조금이라도 자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가지고, 12시부터 1시까지만 푹 자라 하면 그 잠이라도 얼마나 좋겠어요. 1시간이라도...... 그 전에는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드니까 잠을 못자면 틀려지더라구. 잠 못 자는 거 제일 힘들어 (00병원 간병노동자).”






22) 간병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은 대개 스스로 거동이 어려운 환자들이다. 간병노동자들에게는 이들을 들고 내려야 하는 육체적 하중이 매우 심한 노동인 것이다. 어느 간병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느 여자환자를 예를 들면, 그분이 105킬로예요. 침대 사이드에 배가 딱 닿아요. 그러니까 한번 체위변경하려면 올라가서 갖은 애를 다 써야 돼요. (00병원 간병노동자).”






23) “의사들이 회진돌 때, 인턴선생이 회진보고를 할 때, 내가 돌보는 환자에게서 슈퍼박테리아균이 있다고 보고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전혀 모르는 줄 알고 우리를 무시하지만 우리는 어떤 균이 어떤 균인지 알아듣는단 말이예요 (00병원 간병노동자)”..






24) “병원에는 환자들만 있기 때문에 기운 자체가 눌려. 그래서 더 아파요. 그래서 병원 밖에 나가면 날아갈 것 같은데...... (00병원 간병노동자)”






25) ��자론본�� 3권, 3편, 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1990






26) 이러한 관점은 남성 가부장제를 여성불평등의 가장 핵심적인 기원으로 보는 역사적 여성주의자 (Feminists)들과 대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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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여성 간병노동자의 정치경제학적 위치와 그 함의[3] 손미아|회원 2009-03-25 2599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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